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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9-08] 그레트헨
창작의 샘터/잠본이 환상극장 | 2010. 7. 4. 23:53
 





<< 그레트헨 >>

Gretchen







“어떻게 된 일이야? 온통 헝클어졌잖아? 달리기라도 한 거야?”

엉망으로 흐트러진 사촌의 긴 금발을 단정하게 땋아주면서 그레타가 물었다.

“아냐, 그냥...... 정말 아무것도 아냐.”

순진한 그레트헨은 황급히 얼버무리려 했지만 그레타의 눈썰미를 피할 수는 없었다. 촉촉한 그녀의 뺨은 눈에 띄게 붉어져 홍당무가 되어 있었고, 맥박도 어딘가 정상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레타는 사촌의 시골 처녀답지 않게 고운 머리카락을 뽑히지 않을 만큼 슬쩍 잡아당기며 다시 추궁했다.

“나이드신 네 엄마는 그냥 넘어가실지 몰라도 내겐 안 통해. 살짝 말해봐. 왜 그렇게 흥분했어?”

“아야, 알았어, 잡아당기지 마. 실은 말이지.......”

주저주저하며 그레트헨은 자기가 앉은 의자 뒤에 서서 솜씨좋게 머리를 땋아주는 사촌에게 얘기를 꺼냈다. 거의 소근거리는 듯한 목소리로.

묵묵히 듣고 있던 그레타의 얼굴이 미묘하게 일그러졌다.

“잘생긴 신사? 고해성사를 마치고 나오는데, 널 붙잡았다고?”

“글쎄 날 ‘어여쁘신 아가씨’라고 부르면서 집에 데려다 주겠다지 뭐니.”

“그래서 넌 어떻게 했는데?”

“너무 놀라서 ‘난 어여쁘지도 않고 아가씨도 아니에요. 혼자 갈 수 있어요’라고 말하곤 냅다 달렸지. 근데 집에 와서 생각해 보니 좀 후회되는 거 있지.”

머리를 거의 다 땋은 그레타가 파우더를 집어들며 장난스럽게 이죽거렸다.

“왜, 네가 꿈에 그리던 왕자님이 나타났는데 모르고 걷어찬 것일까봐?”

“놀리지 마. 난 진지하게 말하는 거야. 한번 흘낏 보기만 해서 잘은 모르겠지만 굉장히 믿음직하고 잘 차려입은 분이었어. 분명히 좋은 집안 출신일 거야. 그 훤칠한 키에 널찍한 이마만 봐도 알 수 있다구. 그렇지 않고서야 그렇게 대담하게는 못했을걸.”

파우더를 사촌의 목덜미에 정성들여 뿌려주던 그레타의 손이 갑자기 멈췄다.

“얘가 이제보니 단단히 홀렸나 보네. 제발 정신차려라. 네가 예쁘고 착하니까 지나가던 아무 남자나 그렇게 수작을 걸어온 게 어디 한두 번이었니? 잘 차려입은 녀석일수록 사기꾼이 많은 법이라구.”

그레트헨은 목을 쑥 내밀고 샐쭉한 표정으로 사촌을 돌아보며 불평했다.

“넌 너무 세상 일을 어둡게 보는 게 탈이야. 조금은 밝게 생각하는 게 어때?”

“내 말은 조심해서 나쁠 거 없다는 소리야.”

“네이, 어련하시겠사옵니까.”

이번에는 그레트헨이 빈정거리는 투로 말을 받았다. 그레타는 뭔가 한두 마디 더 하려 했지만 골이 난 그레트헨은 손질이 끝나자마자 벌떡 일어서서 뒷마당 쪽으로 나가버린다. 그 뒷모습을 바라보는 그레타의 눈매가 예사롭지 않다.

하지만 뒤따라나가려고 하는 순간, 덩치 좋은 신앙인인 그레트헨의 어머니가 그녀를 불러 시장으로 보내는 바람에, 더이상 물어볼 수는 없었다.





하루 일과가 대충 끝나고 날이 조금씩 어둑어둑해지는 시간. 그레타는 심부름을 마치고 숙모가 사는 작은 집에 돌아와서 한숨을 내쉬며 현관문을 열었다.

그녀의 마음은 편치 않았다. 아까의 이야기가 마음에 걸려서이기도 했지만, 자기가 한 말로 인해 그레트헨이 상처를 입은 게 아닌가 하는 걱정도 없지는 않았던 것이다. 그녀가 집에 있다면 솔직하게 사과하고 그녀의 이야기를 다시 확인해야 했다. 이웃의 슈베르트라인 부인 말로는 요새 며칠 동안 외지에서 온 듯한 수상한 두 남자가 자주 이 근처에 얼씬거린다고 하니, 그녀가 걱정하는 것도 당연했다.

숙모와 사촌도 일을 나간 듯, 방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아니, ‘아무도’라는 것은 정확한 표현이 아니었다. 주인이 없는 건 확실했으나 누군가 다른 자가 있었다. 그레타가 램프에 불을 붙이자 그들의 윤곽이 보다 또렷하게 드러났다.

“......................?”

그들의 거실이자 침실이고 주방이기도 한, 자그마하고 깨끗한 방 안에 처음 보는 두 남자가 서 있었다.

한 명은 30대쯤 되어보이는 잘생긴 얼굴의 훤칠한 청년으로, 옷차림은 제법 화려했지만 얼굴에는 낭패스런 표정이 떠올라 있었고, 또 다른 한 명은 나이를 짐작할 수 없는, 우울하면서도 짓궂어 뵈는 얼굴의 호리호리한 사내로, 손에는 기타를 들고 있었고 옷은 온통 검은색이었다. 두 번째 사내는 동행인과는 달리 당황스러워하는 기색은 특별히 없었다. 오히려 ‘이거 재미있게 되어가는군’이라고 말하듯이 장난스런 웃음까지 지어보이고 있었던 것이다.

“당신들은 누구죠? 여길 어떻게... 허락도 없이?”

두 사람이 난감한 얼굴로 그녀 쪽을 바라보다가 뭔가 말하려 한 순간, 그들이 바로 장롱 앞에 서 있는 것을 알고 그레타가 소리질렀다.

“도둑이야! 강도야! 누가 좀 와 줘요!”

그녀는 두 남자가 자기 쪽으로 다가오는 것을 알고 방 밖으로 재빨리 뛰쳐나가 문을 밖에서 잠그고 이웃집을 향해 더 크게 소리질렀다. 그 소리를 듣고 몇몇 사람들이 달려오자 그녀는 문을 열고 그들과 함께 힘차게 들어갔다. 그러나 이미 집 안에는 쥐새끼 한 마리도 남아있지 않았다.

“방금까지 여기 있었는데... 창문이나 뒷문으로 도망친 걸지도 몰라요!”

“하지만 전부 안에서 잠겨 있는데?”

“내가 거짓말을 했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이 바닥을 잘 보세요.”

“어어 진짜네. 모래 위에 흙발자국이 나 있어. 두 사람씩이나.”

집안을 청결하게 유지하기 위해 바닥에 깔아놓은 하얀 모래 위에 확실히 그 집 사람의 것일 리는 없는 발자국이 두 개 나 있었다. 그러나 그 발자국들은 사방팔방으로 우왕좌왕하다가 갑자기 창 쪽으로 다가가더니 창 밑에서 뚝 끊겨 있었다. 물론 창문은 안에서 단단히 자물쇠가 채워져 있었고 거기에 더하여 나무로 만든 작은 덧문까지 닫혀 있었다.

아무리 궁리해 봐도 제대로 된 해답이 나오지 않자 지쳐버린 사람들은 고개를 갸우뚱하며 집으로 돌아갔고, 그레타 혼자만이 그 의문의 발자국을 앞에 두고 이맛살을 찌뿌리고 있었다. 이윽고 숙모와 사촌이 돌아오자 그레타는 일단 그들에게 사실을 이야기하고 장롱 안에서 없어진 물건이 있는지 살펴보도록 권했다.

“아니, 별로 없어진 건 없나본데.... 어라, 이게 뭐지?”

숙모가 집어든 것은 흑단[黑檀]으로 만들어진 작은 상자였다.

“세상에! 값진 보석이 잔뜩 들어있어요. 순금 팔찌, 루비 목걸이, 홍옥이 박힌 반지까지... 어떻게 된 일일까?”

“숙모님께서 돈을 빌려주면서 담보로 잡으신 건 아닌가요?”

“아니야 마기, 내 기억으로는 그렇지 않아. 이건 생전 처음 보는구나.”

사실 두 소녀의 이름은 똑같은 마르가레테Margarete였지만, 구별하기 위해서 몇 가지 다른 이름을 쓰고 있었다. 이 집의 안주인께서는 금발인 자기 딸은 그레텔Gretel, 갈색머리인 조카는 마기Magi라고 불렀으나, 이웃들은 딸을 그레트헨Gretchen, 조카를 그레타Greta라고 불렀고, 본인들도 이쪽을 더 좋아했다.

이야기로만 듣던 보석이 눈앞에 한줌씩이나 쌓여있는 걸 본 그레트헨은 깡총깡총 뛰면서 자기가 갖게 해 달라고 졸랐다. 그러나 숙모는 엄한 얼굴로 말했다.

“마기의 말이 맞다면 이건 아까 여기 숨어들어온 수상한 자들이 놓고 간 걸게다. 장물이나 밀수품일지도 몰라. 게다가 왠지 이 상자에서는 무언가 사악한 기운이 넘실거리는 게 느껴진단 말이다. 적어도 그다지 축복이 깃들어 있지 않은 건 틀림없어. 그러니...”

“오, 엄마, 진심은 아니시겠죠? 설마...”

“왜 아니라고 생각하는 게냐? 부정한 재물은 마음을 어지럽히고 육신을 좀먹는 법이다. 이것을 성모님께 바치도록 하자꾸나. 그러면 분명 한없는 축복을 내려주실 게다!”

걱정스런 얼굴로 그 물건들을 지켜보던 그레타도 동조했다.

“제가 내일 아침 신부님을 모셔오겠어요. 꺼림칙한 건 빨리 치워야죠.”

그러나 그레트헨은 불만이 가득한 얼굴이었다.

“얻는 것이라면 뭐든지 불평없이 받는 게 도리 아니에요? 이렇듯 친절하게 우리에게 물건을 가져다주는 분이 설마 주님을 배반했겠어요?”

숙모는 더욱 더 엄한 표정으로 딸에게 말했다.

“그레텔, 어떻게 그런 소릴! 이게 너한테 온 선물이라고 생각하는 게냐 뭐냐?”

그레트헨은 움츠러들면서도 뭔가 말하려 했다.

“저는 다만......”

그레타가 사촌의 어깨를 잡고 제지했다. 그녀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한순간의 유혹에 눈이 멀어서는 안돼. 내가 본 그자들은 분명 좋은 의도로 이걸 갖다놓은 건 아니라고 생각해. 어머니 말씀 들어라.”

그레트헨은 그녀의 눈을 피하여 시선을 내리깔고 입술을 깨물었다.

다음 날, 쏜살같이 달려온 신부[神父]는 보물을 보고 눈이 휘둥그래지더니 손을 싹싹 비비며 물건들을 챙겨넣고 안녕을 고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참 잘 생각하셨습니다. 오직 교회만이 부정한 재물을 소화시킬 수 있죠.”

그레트헨은 그때까지도 미련이 가득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어릴 때부터 그녀는 반짝이는 거라면 다 좋아했다. 그레타는 그런 사촌이 걱정되어 견딜 수가 없었다. 신부가 돌아간 뒤에도, 보석을 두고 간 사람에 대한 궁금증이 사라지지 않은 나머지, 며칠 동안이나 멍한 얼굴을 하고 앉아있었던 것이다.

두 번째 흑단 상자가 장롱 안에 나타난 것은 그로부터 일주일 뒤였다.





“그걸 어떻게 했니?”

“일단은 마르테 아주머니께 맡겼어. 엄마에게 드렸다간 또 교회에 갖다바칠 게 뻔하니까.”

“슈베르트라인 부인한테? 잘하는 일일까, 그게?”

그레타는 의심스런 눈초리를 던졌다.

“안될 게 뭐 있어? 구경하고 싶으면 언제든지 오래. 그 보석들을 달고 있으려니까 내가 왕족이 된 기분이던걸. 아주머니뿐만 아니라 오늘 그 집에 들른 어떤 손님도 나를 귀하신 몸으로 보더라구.”

그레트헨은 기뻐 어쩔줄 몰라 했지만 그녀의 사촌은 전혀 엉뚱한 부분에 대해 반응을 보였다.

“손님? 그 집에 손님이 오는 일이 있어?”

“파두아에서 아주머니 남편이 돌아가셨나봐. 소식을 전하러 온 거래.”

“그 할망구, 재혼하길 그렇게도 바라더니 소원 풀겠네.”

“그런 식으로 말하지 마. 내게 잘해주는 좋은 분이셔. 그러지 말고 너도 한번 찾아가서 멋지게 꾸며봐. 얼마나 좋은데.”

“됐어, 너나 많이 꾸며. 내 얼굴로는 꾸며도 안돼.”

그레트헨은 입가에 조소[嘲笑]를 띄우고 고개를 숙이는 사촌의 머리카락을 살짝 쓰다듬으며, 밝은 목소리로 위로한다.

“무슨 소리야! 몰라서 그렇지 네가 얼마나 이쁜데.”

“그렇게 생각해?”

“나만 그런게 아냐. 어제 리스헨을 우물가에서 만났는데, 걔가 하는 말이 ‘역시 바덴에서 살다 오면 온천 덕에 피부가 좋은가봐?’였다구. 어때?”

“말만이라도 고맙다. 그건 그렇고, 간이 어떤지 맛 좀 봐.”

그레타는 쓴웃음을 지으며 사촌에게 나무 국자를 건네주었다. 그레트헨은 미소지으며 기꺼이 그 부탁에 응했다. 그레타는 짠맛에 대해 약간 둔감해서 항상 사촌에게 자문을 구하는 편이었다. 그런데 흥겹게 국을 젓는 그레트헨의 태도가 어째 좀 이상했다. 마치 즐거운 꿈 속을 헤매는 사람 같았다.

“어째 기분이 좋아 보이네.”

“으응, 그렇게 보여?”

무심결에 오래된 콧노래까지 흥얼거리고 있으니 그렇게 보이지 않을 리가 없다. 그레타의 기억이 정확하다면, 분명 그 노래는 병악한 왕비와 귀중한 황금잔과 뒤에 남겨진 임금님의 이야기를 다룬 것이었다. 그렇게나 슬픈 이야기가 저렇게나 흥겨운 가락에 실려 전해질 수 있다는 게 뭔가 부조리하게 느껴졌다.

“보석 때문만은 아닌 것 같아. 뭔가 또 있지?”

“그레타는 정말 속일 수가 없네. 그래. 또 있어.”

“뭔데? 내게만 살짝 말해봐. 어서.”

“만났어, 드디어.”

“누구를 만났다고?”

그레트헨은 그 말에는 대답하지 않고 금발을 찰랑거리며 엉뚱한 소리를 했다.

“난 이제 충분히 ‘어여쁘신 아가씨’야. 그렇지?”

“너...설마?”

겨우 일주일 전의 대화를 기억해 낸 그레타는 벌린 입을 다물 줄 몰랐다.

“슈베르트라인 아저씨의 사망증명서를 만드는데, 공증인이라며 찾아온 게 바로 그 사람이었어. 정말 멋진 우연 아니니?”

“......우연일까나......”

그레타는 석연치 않은 느낌을 받았지만 그것을 말로 표현할 수가 없었다.





그로부터 여러 날이 지났다. 그와 동시에 그레트헨의 태도도 점점 희한해졌다.

“사랑한다-안한다-사랑한다-안한다-...”

“그 꽃들 좀 그만 괴롭혀라. 벌써 열두 송이도 넘게 했잖아.”

옆에 누워 있던 그레타가 베개로 머리를 감싸며 나지막하게 외쳤다.

“-사랑한다!”

그런 말에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아스텔꽃의 마지막 남은 꽃잎을 뜯어내며 기뻐하는 그레트헨이었다. 그레타는 그런 그녀의 순진함에 기가 찰 노릇이었다.

“그 하인리히란 사람이 그렇게도 좋아?”

그레트헨은 대답 대신에 오른손을 그녀 쪽으로 내밀어 보였다.

“너도 알지? 내 손... 요리하고 청소하고 뜨개질, 바느질까지 하다 보니 언제나 더럽고 거칠잖아. 그런데 그사람은 내 손이 좋대. 키스까지 해주지 뭐야. 무슨 뜻인지 알겠어? 내 손이 아름답대!”

“두번 아름다웠다간 뭔 일이 날지 모르겠군.”

말은 그렇게 했지만, 그레타는 사촌의 심정을 어느 정도 헤아릴 수 있었다.

숙부가 약간의 재산을 남겨놓고 세상을 떠나서 굶주릴 정도는 아니었지만, 언제나 엄격하고 신실한 그레트헨의 어머니는 딸에게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많은 일을 시키고 있었다. 전염병으로 일찍 부모를 여의고 숙부네 집에서 지내고 있던 그레타의 경우, 더하면 더했지 봐주는 일은 없었지만, 그레트헨과는 달리 너무나 일찍 세상의 혹독함을 알아 버린 그녀는 싫은 내색 없이 잘 버텨내었다. 오히려 친딸인 그레트헨 쪽이 그런 어머니에 대해 불만스럽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녀가 남들의 칭찬이나 아부에 놀랄 정도로 약한 것은 그 때문이었다.

“게다가 뭐랬는지 알아? 어떤 똑똑한 친구와의 대화보다도 내 눈길, 내 말 한마디가 훨씬 즐겁다고 했어. 정말 믿어지지가 않아. 그렇게 고귀한 신분에 배운 것도 많고 예의바른 사람이 나같은 애를 좋아한다니 말야! 매일 밤 잠자리에 들 때마다 그사람 생각으로 머리가 꽉 차서 어떡해야 좋을지 모르겠는거 있지!”

은근히 골이 난 그레타가 쏘아붙였다.

“너, 이렇게 가다가는 내가 숙모님에게 말하지 않으면 안될지도 모른다는 거 알지?”

그레트헨의 얼굴에 절박한 표정이 떠올랐다. 그녀는 침대에서 몸을 일으켜 옆에 누워있던 그레타를 붙잡고 소리죽여 말했다.

“오, 제발, 그레타. 엄마에게는 말하지 마. 아직은 안돼. 부탁이야.”

“네가 조금만 더 자제하면 나도 이렇게까지 말하지는 않아. 그나저나 네가 하는 말만 들으면 그 남자는 못하는 게 없는 것 같다? 병도 고치고 별점도 치고 주님의 가르침도...”

“그게... 약간 곤란한 얘긴데, 그이는 신학 공부는 많이 했지만...”

“무슨 소리야?”

“주님을 믿지 않는 것 같아.”

“교인이 아니라는 말이야? 마법사나 집시 같은 족속이란 거야?”

그레타는 어려서 부모님을 잃은 뒤로는 신이고 나발이고 될대로 되라고 생각하는 편이긴 했지만, 교회가 중심이 된 생활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녀도 주변의 거의 모든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신을 부정하는 불가지론자[不可知論者]나 다른 신앙을 가진 이교도에 대해 편견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 자들은 끼리끼리 몰려다니며 이상한 의식을 거행하고 어린애를 잡아먹는다는 흉흉한 소문이 퍼져 있어서 별로 가까이하고 싶지 않은 터였다.

“잘은 모르겠어. 하지만 이런 얘기는 했어. ‘누가 감히 자기는 신을 믿는다고 말할 수 있을까? 내게는 감정이 전부라오.’라던가 뭐라던가.”

“어쩐지 위험하게 들리는데. 당분간 거리를 두는 게 어때?”

“그건 안돼. 그이와 떨어진다는 생각만 해도 미쳐버릴 것만 같은걸! 할 수만 있다면 그이와 함께 있는 순간에 시간이 영원히 멈춰버리게 하고 싶어!”

“넌 이미 충분히 미쳤어.”

“그래도 좋아. 함께 있을 수만 있다면! 내가 꼭 그를 주의 품으로 돌아오게 하겠어!”

“퍽도 돌아오겠다. 넌 매사를 너무 쉽게 생각해.”

그레트헨은 입을 다물고 베개를 움켜쥔 채 천장을 노려볼 뿐이었다. 아무래도 안되겠다고 생각한 그레타는, 멍하니 천장을 올려다보다가 화제를 돌렸다.

“그런데 그 사람과 늘 함께 다닌다는 친구는 또 뭐야? 그사람도 훈장이야?”

“아닌 것 같아. 기분나쁜 사람이라서 난 항상 피하는 편이야. 저런 사람과는 빨리 헤어지는 편이 좋을 거라고 내가 충고해도 그는 웃기만 할 뿐인걸.”

“약점 잡힌 거 아냐? 어떻게 생겼어?”

“악사인가봐. 현이 여러 개 달린 악기를 들고... 되게 말랐고 옷은 온통 검정색으로...”

“뭐라고?!”

“왜 그래? 아는 사람이야?”

“그건 아냐... 좀 걸리는 게 있어서.”

그레타는 자기가 목격한 수상한 두 남자를 떠올리고 있었다.

“하여튼 그런 수상한 녀석과 같이 다닌다면 더더욱 조심해야 하지 않겠어? 한 귀로 흘려듣지 말고 잘 생각해 봐. 하다 못해 발렌틴이 주둔지에서 돌아올 때까지만이라도...”

“오빠 얘긴 하지도 마. 칼만 휘두르면 다들 겁내는 줄 아는 꽉막힌 병정 주제에 잘난 척은 혼자 다한다니까.”

“그렇게 함부로 말하는 게 아니야. 너한텐 하나뿐인 오빠잖아.”

“왜 갑자기 그런 표정을 지어? 그레타... 너 설마 오빠를...”

“지, 지금 그런 얘길 하려는 게 아니잖아. 하여튼 신중해야 해. 잘못하다간 대장간집 바르바라처럼 하룻밤 새 버림받고 배가 남산만해지는 수가 있어.”

“그건 그애가 부주의했기 때문이야. 나는 그러지 않아. 하인리히도 신사고.”

“신사가 더 위험할 때도 있어. 아직 갈 데까지 간 건 아니지?”

“아냐.”

“말은 그렇게 하면서 혹시 숙모님이 안 계신 날에 이 집에서...”

얼굴이 잘 익은 홍당무처럼 벌개진 그레트헨은 상체를 일으키고 그레타의 얼굴에 난폭하게 베개를 집어던졌다. “그런 일 없어! 내가 바본줄 알아?”

“미안 미안. 너무 큰 소리 내지 마.”

그레타가 팔꿈치로 베개를 막으며 쓴웃음을 지었다.

그때 램프를 들고 숙모가 들어오는 바람에 둘의 대화는 중단되었다.

“그레텔! 마기! 왜들 이리 소란이냐? 내일 아침 예배에 늦지 않으려면 자 둬.”

“죄송해요.”

그들은 하얀 시트를 머리 위까지 끌어올리고 풀죽은 소리로 대답했다.

“이 얘긴 나중에 해. 엄마에겐 비밀.”

“알았어. 하지만 조심해.”

“언니처럼 굴지 마.”

“네가 너무 허수룩하니 내가 걱정이 안 될--”

“그만! 어서 꿈나라로 가지 않으면 이빨 요정이 화내....”

“너 나이가 몇이냐?”

그러나 그레트헨은 이미 고양이처럼 가르릉거리며 잠에 빠져 있었다.

그레타는 혀를 차며 다시 자리에 드러누웠다.





그때만 해도 그레타는 일이 그렇게나 커질 줄은 짐작도 못했었다.

‘내가 그때 좀더 주의를 했었더라면-’

그러나 이제 와서 그렇게 생각해봐야 이미 엎지른 물이었다.

기억을 더듬어보면 확실히 그날 낮의 그레트헨은 뭔가에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이었다. 그전에도 하인리히인가 뭔가 하는 이방인 때문에 냉정을 잃고 멍하게 지내는 것을 보아왔기 때문에 그다지 심각하게 생각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다시 찬찬히 생각해보니 그날의 그녀는 평소 때와 달라도 한참 달랐다. 뭔가 오랫동안 마음먹고 있던 일을 실행하려는 결심을 겨우 굳히고, 억지로 용기를 짜 내어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고 있었던 것이다.

정말로, 그날 저녁 식사 때까지만 해도 모든 것이 정상이었다.

“마기, 저 언덕 건너 알트마이어 부인 댁 알지? 거기서 광주리 만들 일손이 부족하다고 하더구나. 오늘 저녁에 건너가서 좀 도와드리고 오너라.”

“숙모님, 그 집 일이라면 금방 끝나지 않을 텐데요? 지난번에도 이틀 밤낮을 꼬박...”

“수확은 멀었고 다른 일도 없어서 어중간한 시기에, 일부러 일거리를 주시는 게 얼마나 고맙니? 너도 얹혀 사는 주제에 밥값은 해야 하지 않겠어? 모든 걸 공짜로만 누리려 들면 성 발렌티누스께서 노하신다.”

“...지금 곧 건너갈게요.”

“그래야지.”

그레타는 맛없는 사우어크라우트[양배추절임] 몇 조각을 딱딱한 호밀빵 사이에 끼워 보란 듯이 우적우적 먹어치우고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서 나갈 채비를 했다. 그때 그레트헨이 들어와서 어머니에게 수프 그릇을 건네 주었다. 숙모는 그것을 받아들고 먹기 시작했다. ‘양념이 이게 뭐냐, 건더기는 좀더 잘게 썰었어야지, 야채는 좀더 아끼랬잖아’ 운운 하는 질책 몇 마디도 빼놓지 않고 말이다.

‘.....................?’

그레타는 사촌이 수프와 자기 어머니를 번갈아 곁눈질하며 왠지 불안한 표정을 짓는 것을 눈치채고 궁금증이 일었지만, 숙모가 재촉하는 바람에 머리수건을 쓰고 램프에 불을 켜든 뒤 밖으로 나갔다. 알트마이어네 집으로 가는 길은 이미 환하게 알고 있었고, 아직 초저녁이라 혼자 가도 위험하지는 않을 터였다.

사방에서 깜빡거리는 희미한 램프 불빛들이 불안스럽게 깜빡이던 그레트헨의 눈동자를 연상케 해서 찜찜한 기분도 들었지만, 품삯을 제대로 받으려면 딴생각은 금물이었기에, 그레타는 일부러 고개를 휘휘 저으며 그 생각을 몰아냈다.

‘..............어?’

그때, 옆으로 낯익은 그림자 둘이 지나가는 듯한 느낌이 들어 고개를 돌려 보았으나, 이미 그곳에는 아무도 없었다. 칼을 찬 키큰 남자와 악기를 옆에 낀 버드나무같은 사내의 실루엣을 본 것 같았는데...

‘...기분 탓인가...’

“아니, 기분 탓이 아니야.”

“에에?”

어느 사이에 나타났는지, 바로 앞길에 붉은 보자기같은 망토를 뒤집어쓴 사람의 그림자가 나타났다. 자세히 보니 망토 안으로 반쯤 내민 얼굴과 검은 치맛자락이 언뜻 보였다. 왼손으로는 박달나무 지팡이를 짚고 오른손에는 수정 구슬 비슷한 물건을 들고 있었다. 목소리로는 도무지 나이를 짐작할 수 없었으나 여자인 것만은 틀림없었다.

“......당신, 집시인가요?”

“그렇게들 부르지.”

“무슨 볼일이죠? 난 점 같은 데 흥미 없어요.”

“네 가족들에 관한 일이야.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어서...”

거기까지 말하던 그녀는 갑자기 뒤편에서 다가오는 도깨비불같은 빛덩이들을 돌아보고 눈쌀을 찌푸렸다. “안되겠군. 여기까지 쫓아올 줄이야. 그럼 나중에!”

“아니 이봐요, 나머지 말도 해주고 가야죠!”

그러나 나막신을 신은 그 여인은 삐걱거리는 소리를 내며 달아나버렸다.

‘......대체 뭐하러 나타난 거야?’

그레타는 고개를 갸우뚱하다가 점차 짙어지는 어둠을 헤치고 길을 재촉했다.





“숙모님? 저 왔어요.”

그레타는 피곤한 얼굴로 현관문을 열고 작은 집 안에 들어섰다. 대답 소리는 들려오지 않았다.

‘다들 아직 자고 있나? ...하긴 새벽녘이니...’

졸음 가득한 눈으로 사방을 둘러보고 있자니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그레트헨? 너... 무슨...?”

그레타는 사촌의 흐트러진 모습에 놀라서 소리질렀다. 그녀는 자기 어머니의 침대 곁에 무릎을 꿇은 채 어떻게든 어머니를 깨우려고 마구 흔들어대고 있었다. 저녁놀 같은 금발은 엉망으로 헝클어졌고, 잠옷은 반쯤 찢어진 채 몸에 겨우 달라붙어 있었으며, 두 다리 사이에서 선혈[鮮血]이 배어나오고 있었다.

두 눈은 초점을 잃고 멍하니 앞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입으로는 정신나간 사람처럼 계속 같은 말을 되풀이하고 있었다. 목소리도 다섯살 어린애처럼 혀짧은 소리에 가까웠다.

“엄마? 엄마, 일어나요. 엄마, 아직까지 자면 어떡해... 내가 넣은 그것 때문은 아니지? 엄마, 제발 아니라고 말해줘요. 나 착한 아이지? 제발 일어나요..”

그레타는 최악의 사태를 상상하고 오싹해졌다. 그녀는 일단 문을 잠그고 사촌의 곁으로 달려가서 두 어깨를 잡고 그녀의 고개를 자기 쪽으로 돌렸다. 사촌은 마치 자기를 생전 처음 보는 사람처럼 멍청한 얼굴로 바라보다가 횡설수설하기 시작했다.

“얘, 너 괜찮니? 정신차려, 대체 어떻게 된 거야. 숙모님은 왜 안 일어나셔?”

“누구세요? 난 아무것도 안 했어요. 살려주세요. 제발, 엄마에게는 말하지 말아요. 아시면 나는 큰일나요. 하인리히는 어디 있지? 하인리히, 하인리히!”

그레타는 사촌의 두 뺨을 찰싹 두들기며 강하게 다그쳤다.

“나를 잘 봐. 나 그레타야. 네 사촌이야. 제발 정신차려! 왜 그러는 거야?”

“그레타? 그레타... 그레타! 나를 꼭 붙잡아줘. 어디에도 가지 말아줘. 난 정말 이렇게 될 줄 몰랐어. 난 단지 그가 나를 사랑한다고...”

“그래, 그래, 알았어, 진정해, 마음을 가라앉혀. 네 잘못이 아니야.”

그레타는 그녀를 진정시킨 뒤 침대에 누워있는 숙모를 살펴보았다. 항상 주님에 대한 열정에 가득하던 얼굴은 창백한 납빛으로 변해 있었고 숨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맥을 짚어 보았지만 전혀 뛰지 않았고 피부는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그녀는 숙모는 이제 틀렸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그레트헨이 뭔가를 넣었다고 했나? 그 수프... 진작에 알아차려야 했다!

“너 좀 쉬어야겠다. 이리와. 아냐, 숙모님은 내게 맡겨. 네 몸부터 돌보라고.”

그레타는 사촌을 다른 침대 쪽으로 부축하여 데려간 다음, 엉망진창이 된 옷을 벗기고, 미리 길어놓은 물에 수건을 적셔서 몸 구석구석을 정성들여 닦아 주었다. 그리고 헝클어진 머리를 대충 빗기고 다른 옷을 입게 한 다음 그녀를 침대에 눕혀 휴식을 취하게 했다.

그녀는 완전히 정신이 나간 듯 모든 것을 사촌의 손에 내맡기고 가만히 있다가, 차가운 물수건이 몸에 닿을 때마다 고통스런 신음소리를 내어 그레타를 곤란하게 했다. 마치 전쟁터에서 구사일생으로 살아돌아온 부상병을 간호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하긴 실제로 본 것은 아니고 발렌틴에게 얘기만 들은 것이지만.

그레트헨이 정신없이 자고 있는 동안에 그레타는 찢어진 잠옷과 물수건을 아궁이에서 태워버리고, 사촌이 장보러 갈 때 쓰는 바구니를 뒤져서 조그만 연두색 약병을 찾아냈다. 병 속의 액체에서는 희미한 허브 냄새가 났다. 약사인 지벨 씨네 집에 갔을 때 맡은 것과 비슷한 것이었다.

분명 그녀의 기억이 틀리지 않았다면 지벨 씨는 이렇게 말했다.

‘아! 그건 불면증에 걸린 사람에게 처방할 거야.’

‘불면증이오?’

‘세 방울만 들이키면 깊은 잠에 빠져들지, 하지만 그 이상 마시면-’

‘어떻게 되나요?’

‘영원히 깨어나지 못할 수도 있어. 만지지 않는 게 좋을게야.’

그레타는 몸을 부르르 떨며 병을 깨버리려다가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일단 아궁이 뒤편에 감추어 두기로 했다. 그 남자를 고발하기 위해서는 꼼짝 못하게 만들 증거가 필요할 테니까.

그녀는 흐트러진 실내를 대충 정리하고, 아직도 침대에 누워 꼼짝도 않는 숙모의 시체가 최대한 자연스럽게 보이도록, 팔다리를 이리저리 움직여 놓고 시트를 다시 덮었다. 다행히도 피부가 검게 변하거나 발진이 일어나거나 하는 흔적은 남지 않았으니 잘만 하면 자다가 심장마비로 죽은 거라고 해도 믿을 것이다.

그 모든 잡일을 해치우고 나서 그레타는 사촌 옆에 쓰러져 잠이 들었다.

그들이 일어난 것은 해가 중천에 떠오른 점심 때였다. 그레타는 훨씬 피곤했음에도 불구하고 긴장했기 때문인지 먼저 깨어나서 사촌의 얼굴을 살폈다. 모든 것을 잊어버린 듯 평온한 얼굴로 자는 그레트헨의 얼굴을 보고 있자니 모든 게 꿈처럼 생각되었다. 하지만 옆 침대에는 엄연히 숙모의 차가운 시체가 버티고 있었다. 이마를 쓰다듬는 사촌의 손길을 느꼈는지 그레트헨이 눈을 떴다.

“...잘 잤어?”

“...응.”

“좀 어때?”

“나쁜 꿈을 꿨지만 몸은 가뿐해.”

“......꿈?”

“그래, 분명히 악몽이었을 거야. 너도 꿈 속에서 내가 얼마나 바보같았는지 알면 배를 잡고 웃을 걸! 하인리히가 내게 이상한 약병을 줘서... 그가 여기에 들어오는 걸 엄마가 알지 못하게... 그리고 그 다음엔... 모르겠어. 그 다음부터는 잘 생각이 안 나. 어쨌거나 그가 돌아가고 아침이 되었는데... 아무리 흔들어 깨워도 엄마가 일어나지 않는 거 있지... 그래서 울고 있는데... 그때...”

그레타는 난감한 표정으로 사촌을 바라보았다.

“그래, 정말 지독한 악몽이었구나... 깨어나서 다행이야...”

사람 좋은 그레트헨은 기지개를 켜며 자리에서 일어나 어머니의 침대로 다가가서 그녀를 깨우려 했다. 그레타가 말릴 사이도 없이.

“엄마, 일어나세요. 벌써 점심이 다 됐어요. 그레타도 돌아왔고요. 엄마...?”

작은 오두막 안에 날카로운 비명이 울려퍼졌다.





숙모의 장례는 마을 사람들의 도움으로 간소하게 치러졌다.

군대에 복무하느라 장기간 집에서 떠나 있던 아들 발렌틴에게도 기별이 갔으니, 아마 몇 주 후에는 이리로 돌아올 것이다.

장례를 마치고 피로한 얼굴로 식탁 주위에 둘러앉은 두 소녀는 침울한 분위기에 잠겨 있었다.

“나 때문이야. 나 때문에..................”

그레타는 자기가 몸가짐을 단정히 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끊임없이 자책하는 사촌을 감싸며, 그날 밤의 일은 악몽을 꾼 것이고, 그녀의 어머니가 하필이면 그날 밤에 주님의 곁으로 간 것은 순전한 우연이라고 설득했다.

그레트헨은 그 말에 얼마간 안도하면서도 역시 죄책감을 완전히 떨쳐버리지는 못했는지, 이렇게 반문했다.

“그래도 역시 내가 못된 마음을 먹었기 때문에 벌을 받은 거겠지? 그런 거지?”

“그렇지 않아. 네 잘못이 아냐. 우연한 사고였어.”

“위로하려고 할 필요 없어!”

“나도 위로하려고 이러는 거 아냐! 네가 기운을 차려야 나도 살지!”

“어떻게 하면 좋아? 엄마도 없이, 이제 어떻게 하면...”

“성모님이 굽어 살피실 거야, ‘그레텔’.”

그레타는 일부러 숙모의 말투를 흉내내어 그녀를 격려했다.

“그러니까 기운 내.”

그레트헨은 눈물범벅이 된 얼굴을 억지로 펴 보이며 대답했다.

“너도 제법 쓸만하구나, ‘마기’....”

그것 또한 숙모의 입버릇이었다.

둘은 두 손을 마주잡고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고인을 욕되게 하는 것 같아 약간 마음에 걸렸지만, 기운을 되찾는 데에는 그 이상 가는 것이 없었다.

그레트헨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성 안쪽 골목에 계신 성모님께 꽃이라도 바쳐야겠어...”

“같이 가 줄까?”

“아냐, 나 혼자 갔다올게.”

그레타는 그녀가 어떻게든 버텨나갈 자신을 얻은 것이라 여기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나 진짜로 곤란한 일은 그 뒤에 벌어졌다.





“그레타...”

“응?”

장례식이 끝나고 며칠 후, 그레트헨은 초조한 얼굴로 사촌에게 고백했다.

“...주기가 돌아왔는데도... 피가 안 나와... 어쩌지?”

“뭐야?!”

그레타는 우려하던 일이 닥쳐온 것을 알고 펄쩍 뛰었다.

그날 이후로 그레트헨의 배는 서서히 불러 왔다. 먹는 것과 마시는 것도 두 사람 몫이 되었고 조그만 일에도 예민하게 반응하며 헛구역질도 했다. 두 사람은 어떻게든 이 일이 새어나가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였지만, 발없는 말이 천리 간다고 결국 온 마을에 소문이 퍼졌다.

때맞춰 군에서 돌아온 그레트헨의 오빠 발렌틴이 이 사실을 알고 경악한 것은 말할 필요도 없었다.

“어쩌면 네가 이럴 수가 있니! 우리 가문을 욕되게 해도 분수가 있지!”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근엄한 얼굴을 하고 발렌틴이 꾸짖었다.

그의 여동생은 고개를 푹 꺾고 잠자코 듣고만 있었다.

“내 친구들이 꽃 같은 처녀를 칭찬하고 찬사 속에서 술잔을 들이키면, 나는 항상 ‘그러나 온 나라 안에 하나라도 내 누이동생 그레트헨과 견줄 아이가 있느냐’고 큰소리를 쳤단다. 그러면 자랑하던 녀석들이 모두 입을 다물어 버렸지. 그런데 지금은!--- 돼먹지 못한 잡것들까지도 코를 실룩거리고 핀잔을 주며 나를 모욕한단 말이다! 녀석들을 메다꽂아주고 싶지만 녀석들을 거짓말쟁이라고 할 수는 없단 말이야! 이게 얼마나 괴로운 일인지 너는 모를게다.”

아무 말도 못하고 울먹이는 그레트헨의 어깨를 감싸고 그레타가 반박했다.

“이봐,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잖아! 얘는 하룻밤 사이에 가장 소중한 것을 모두 다 잃고 건강까지 해쳤어. 가문의 영광은 소중하고 네 여동생의 기분은 어찌돼도 좋단 말야?”

“사촌은 우리집 문제에 끼여들지 마. 이건 그애가 처신을 잘못한 탓이니까.”

“아무리 그렇다 해도 이 아이를 그런 지경에까지 몰아넣은 건 그 하인리히라는 남자의 잘못이야. 그레트헨에게만 책임을 돌리는 건 너무하잖아?”

“마음을 곧고 바르게 가진다면 유혹 따위는 물리칠 수 있어. 그게 안된다면 그건 창녀나 다름없는 거지.”

“그런 말이 어디 있어! 이 아이는 너무 순진했기 때문에 이런 일을 당한 거야. 그 남자를 진정으로 사랑했기 때문에......”

발렌틴은 머리카락을 쓸어넘기며 짜증스런 목소리로 말을 끊었다.

“사랑 좋아하네. 그러니까 여자는 안 된다는 거야. 하여간 이 일에 대해 왈가왈부하지 마. 그 빌어먹을 자식과 해결해야 할 일이 있다면 내가 할 테니까.”

“발렌틴!”

“이건 가문의 명예뿐만 아니라 군인의 명예가 걸린 문제야.”

“해도 너무하네. 그레트헨은 네가 위로해줄 거라고 믿고 기다렸...”

그레타가 떨리는 목소리로 소리지르려는 순간, 현관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발렌틴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고 그레타가 급히 달려가서 문을 열었다.

그녀는 문을 열자마자 숨을 삼키며 뒤로 한발짝 물러섰다. 전에 보았던 그 호리호리한 몸매의 악사가 비열한 표정을 지어보이며 모자를 들어올려 인사했다.

‘이 자는...! 그럼 역시 하인리히라는 사람은 그 때 그......!’

악사는 단도직입적으로 발렌틴에게 다가와서, 능글맞게 자기 할 말을 전했다.

“‘그 빌어먹을 자식’의 전갈입니다. 여동생의 일은 유감으로 생각하나, 나는 어떠한 일도 해 줄 수 없다. 그러나 결투라면 언제든지 받아주지. 이상.”

“내 말을 엿들었군! 쥐새끼 같은!”

발렌틴은 불같이 화를 내며 그의 기타를 빼앗아 무릎으로 두동강냈다.

“이런... 그나저나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장소와 시간은 당신이 정하시죠.”

“정하고 말고 할 것도 없다. 그자를 데려와! 마을 광장에서 승부를 내자!”

“좋으실대로.”

그레타는 어쩐지 불길한 예감이 들어 그를 말리려 했다.

“발렌틴, 진정하고 냉정하게 판단해. 저자들은 사방이 막힌 방도 드나들 수 있는 놈들이야. 마법사일지도 몰라.”

“두렵지 않아. 저 색마 녀석을 쓰러뜨려서 조금이라도 오명을 씻어야지.”

“그건 그레트헨을 위한 거야?”

그는 사촌의 당돌한 질문에 가소롭다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나 자신과 가문을 위한 걸로 충분치 않나?”

그레타는 화가 치밀어오른 나머지 그의 따귀를 한 대 올려붙였다.

“빌어먹을 자식은 바로 너야! 한번이라도 이 아이 입장에서 생각해본적 있어?”

발렌틴은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뺨을 문지르며 반문했다.

“내가 왜 그래야 하는데?”

그레타는 할 말을 잃고 그를 노려보기만 했다. 잠자코 있던 그레트헨이 갑자기 두 사람 사이에 끼여들어 물었다.

“오빠, 하인리히를 죽일 건가요? 그 사람은...”

“당연한 거 아냐? 너에 대한 문제는 그 다음으로 미루지.”

“그러지 마세요. 제가 잘못한 일이라면 차라리 저를...”

“비켜!”

군복 소매를 붙잡고 말리는 여동생을 뿌리치고 그는 검을 빼든 채 밤거리로 나섰다. 마치 세상의 모든 악을 심판하기라도 하려는 것처럼 위풍당당하게.





결투는 너무나도 어이없게 끝나버렸다.

처음에는 군인으로서 훈련을 받은 발렌틴이 우세한 것처럼 보였다.

“이제 포기해라. 네 뒤는 벽으로 막혀 있어!”

“제법이시군. 과연 신성로마제국 황제의 군인이야. ---하지만!”

“무슨 짓을---?”

하인리히라는 그 남자는 궁지에 몰렸으면서도 미끈한 얼굴에 교만한 웃음을 띠는 것을 잊지 않고 뭔가 알아들을 수 없는 주문을 외웠다. 그러자 다음 순간 눈부신 불꽃이 일어나 상대의 앞길을 가로막고, 차가운 물결이 굽이쳐 상대의 움직임을 둔하게 하고, 세찬 흙바람이 불어와 상대의 눈을 멀게 했다. 정령소환[精靈召喚]을 하는 것으로 보아 그는 역시 보통 마법사가 아니었다.

“이, 이럴 리가 없는데... 내 상대가 악마란 말인가...?”

“흥, 난 이미 악마를 초월한 몸이시다!”

옆에서 보고 있던 검은 옷의 악사가, 둘로 쪼개진 기타를 아까운 듯이 내려다보며 ‘예 그러시겠지요’라고 빈정거렸다.

그 요사스런 주술 덕분에 발렌틴의 칼날 끝은 자꾸만 허공을 가르며 빗나갔고, 계속되는 실패에 그가 당황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고 주춤거리자, 그 틈을 놓치지 않은 하인리히의 검이 그의 심장을 관통했다.

“...우욱! 내가 졌다...”

“오빠----!!!”

마침 헐레벌떡 달려온 그레트헨과 그레타가 그 광경을 보고 말았다.

칼날을 빼낸 하인리히는 피를 닦으며 퉁명스럽게 중얼거렸다.

“별로 기쁘지도 않군. 피가 너무 많이 튀어서 꼴이 말이 아냐.”

“하인리히, 당신이 어떻게 이럴 수가...?”

그레트헨의 시선을 받은 그는 겸연쩍은 듯 고개를 돌렸다.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닙니다, 박사님! 집행관이 오기 전에 빨리...”

“재판은 질색이니 달아나야겠지. 그럼 나의 그레트헨...”

“인사할 시간이 없어요, 어서!”

그들은 눈 앞의 공간을 일그러뜨리더니 그 틈새로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레트헨은 무릎을 꿇고 땅바닥에 쓰러진 오빠를 일으키려 했으나 그는 이미 마지막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그레타는 망연자실한 채 그 자리에 서서 그들을 지켜보았고, 광장 주변 건물에서 사람들이 웅성거리며 몰려나오고 있었다.

“살인이야!”

“욕하고 쥐어뜯고 악을 쓰며 서로 칼질을 했어요.”

“범인은 벌써 도망쳤나?”

“오빠! 정신차리세요! 돌아가시면 안돼요! 오오, 주여, 굽어 살피소서!”

“......쳇, 농담이라도 주님을 찾진 마라... 이미 일어난 일이니... 딱하지만 어쩔 수 없지 않느냐. 너는 이제 사람들하고 어울리지도 못하고... 교회에 가도 제단 앞에 서지 못할 거다. 아름다운 레이스 옷깃을 달고 춤을 출 수도... 없겠지! 설사 주님이 용서해 주신다 하더라도... 이 세상에선 저주받을 거다...!”

그레타는 죽어가면서도 동생에게 차갑게 대하는 그의 위선적인 태도에 속이 뒤집힐 지경이었다. 그녀는 발렌틴의 귀에 대고 작은 소리로 속삭였다.

“그런 말 말고 너의 영혼이나 주님의 심판에 맡기지 그래? 그레트헨은 너만 의지하고 있는데 위로의 말 한마디도 없이 이게 무슨 짓이야?”

“....흥... 마음 같아서는... 그 뚜쟁이 마르테나 참견꾼인 너까지 전부 두들겨패고 싶지만... 이제는 무리겠지... 으윽...”

“정신 좀 차려. 그레트헨은 결투 따위 바라지도 않았어! 오로지 자기만족을 위해 싸움을 걸어 놓고 이렇게 엎어져서 어쩔 거냐고? 그레트헨은 네가 곁에 있어주기를 바란단 말야!”

그레타의 역설에도 불구하고 그는 싸늘한 비웃음으로 답할 뿐이었다.

“...여전히... 잘난 척이군... 너같은 여잔... 지옥에나 가라지...”

“오빠!”

그레트헨이 뛰어들었다.

“날 위해 눈물을 흘릴... 필요는 없다. 나는... 군인으로서 이 세상에서 할 일을... 다했으니...까...”

“오빠----!!!”

그레트헨은 차갑게 식어가는 오라버니의 유해 위에 쓰러져 오열했다. 그레타가 그녀의 어깨를 감싸고 위로하려 했지만 막무가내였다.

사람들이 시체를 운반해 갔고 그레트헨은 그레타의 품에 안겨 계속 훌쩍거렸다. 그레타는 그런 그녀를 달래며 중얼거렸다.

“네 탓이 아냐, 네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어.....”

“그렇지만... 그렇지만, 엄마도 오빠도 나 때문에...”

“그러니까 더더욱 네가 살아야지. 그들 몫까지 살아야지. 안 그래?”

“살 수 있을까? 이런 내가 살아갈 수 있을까......?”

그레타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럼!’이라고 말해주고 싶었지만 어째서인지 혀가 잘 돌아가지 않았다.

사람들이 그들을 둘러싸고 수군거리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10



갓 태어난 아기는 포대기에 싸여 천진난만하게 웃고 있었다.

그 포대기를 가슴에 안고 아기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금발의 소녀는 몇 번이고 망설임 가득한 발걸음으로 다리의 이쪽 끝과 저쪽 끝을 왔다갔다하더니, 결국 결심을 굳힌 듯 다리의 한가운데로 걸어가서 혹시라도 사람이 오지 않는가 주위를 살펴본 다음, 발 아래의 검푸른 강물을 내려다보며 몸을 떨었다.

그녀가 포대기를 머리 위로 치켜들었다.

다음 순간, 포대기는 강물 위로 천천히 떨어져 내려간다. 그 짧은 순간이 소녀에게는 영원과도 같이 길게 느껴진다. 이상하다고 느낀 아기가 울기 시작했지만 그 가냘픈 울음소리는 콸콸거리는 강물 소리에 묻혀 소멸되고 말았다.

그때 누군가 붉은 옷을 걸친 사람이 다리 저편에 나타나서 걸어오는 것이 보였다. 겁에 질린 소녀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다리 반대편으로 도망쳤다. 마치 누가 쫓아오는 것만 같아서, 한 순간도 멈춰서지 않고 집까지 곧바로 달려갔다.

아늑하지만 을씨년스런 오두막에 도착한 그녀는 침대에 드러누워 무표정하게 천장을 올려다본다. 방 한구석에 걸려 있는 작은 십자가상이 그런 그녀를 걱정스런 표정으로 내려다보고 있다.

하지만 이제, 돌이킬 수는 없다는 것을 그녀는 안다.

저녁때가 되고, 그녀의 갈색머리 사촌이 일감을 들고 돌아왔을 때, 그녀는 담담한 얼굴로 이렇게 말한다. “그애는 이제 없어. 멀리 가버렸거든.”

사촌은 어째서 그런 짓을 했느냐고 묻지만 그녀는 대답하지 않는다.

그저 초점 없는 눈으로 허공을 바라볼 뿐이었다.

“그 아이를 보면 그 사람이 생각나서...인 거야?”

멍한 눈에 약간의 반짝임이 돌아오더니 갈색머리 쪽으로 시선이 옮겨진다.

“내가 저지른...모든 죄악이...생각나서...일 지도...”

그녀의 두 눈에서 아침이슬을 머금은 거미줄같은 두 줄기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건 죄악에 죄악을 추가하는 것밖에 안 되잖아! 아기도 하나의 생명이야! 신부님이 하신 말씀 못 들었...”

“알아.... 그래서... 조만간 관청에 나갈거야...”

“뭐?”

“모든 걸 말하겠어... 모든 것을...”

“그레트헨...너...”

그녀는 눈물자국이 남은 얼굴에 억지 웃음을 지으며 사촌의 손을 꼭 잡았다.

“내가 도망치지 않도록... 도와줘.”

“..................”

“도와줘, 마르가레테.”

갈색머리 소녀는 금발의 사촌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무겁게 고개를 끄덕이며 남은 한 손을 상대방의 손에 포갰다. 그리고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알았어.................... 마르가레테.”



11



산후조리가 끝나고 어느정도 건강을 회복한 그레트헨은 자수했다.

그러나 관청에서는 그레트헨의 얘기를 진지하게 들어주지 않았다.

오히려 마을 전체에 떠도는 소문을 더 진지하게 고려하는 편이었다. 덕분에 세상물정 모르고 열심히 일만 하며 순수하게 세상을 살아온 그레트헨은, 점잖은 귀족을 유혹하여 타락의 길로 빠뜨리고 그 과정에서 방해물인 친어머니와 친오빠를 살해했으며 급기야는 죄악의 열매인 아기마저도 유기해버린 사상최강의 극악녀로 매도당했다.

그녀는 스스로를 변호할 기회도 없이 차디찬 감옥 안에 갇혔다.

같이 출두하여 그녀를 두둔하고 하인리히라는 남자를 사건의 원흉으로 고발할 생각이었던 그레타는 위압적인 분위기에 제대로 말도 꺼내보지 못하고 쫓겨났다. 그래도 끊임없이 사촌을 면회하러 감옥을 드나들면서 집행관을 상대로 여러가지 설득을 시도해 보았지만 도통 먹혀들지를 않았다.

“그애가 먼저 유혹한 게 아닙니다. 그애가 덫에 걸려든 거예요!”

“즐기고 나서는 다들 그렇게 말하지.”

“그는 그애를 반강제로 응하게 했어요!”

“그렇지만 애초에 집 안으로 끌어들인 건 그 아가씨라며?”

“그애는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건지도 몰랐어요.”

“그건 본인이 알아서 조심해야지. 주님의 가르침은 폼으로 배우나?”

“하다 못해 그 남자를 소환해서 심문이라도...”

“아 되게 귀찮게 구네. 면회 안할 거면 돌아가 돌아가!”

그레타는 집행관의 쌀쌀맞은 대응에 주눅이 들어 감옥 출입문을 나섰다.

그때 마침 두 남자가 그녀와 스쳐지나가면서 뭔가 두런두런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얼마 전에 흑단 상자를 챙겨 간 신부와, 축제날에 가끔 보는 영주의 측근이었다. 뭔가 수상하다고 느낀 그레타는 귀를 쫑긋 세웠다.

“그 건은 말썽 없이 처리했겠지요?”

“여부가 있겠습니까. 신부님 말씀대로 모든 걸 그 여자의 책임으로 했습니다.”

“잘했소. 파우스트 박사님 같은 고명하신 분이 이런 추문[醜聞]으로 시간을 낭비해서야 쓰나. 그분은 우리 신학계의 거성[巨星]이란 말이오. 시골 처녀를 꾀어내고 멀쩡한 군인을 죽였다고 해서야 체면이 안 서지.”

“그러게 말입니다. 다음에 그분을 뵙게 되면 잘 말씀드려 주십쇼.”

“그건 걱정마시오. 그 여자가 모든 걸 폭로할까봐 당황스러웠지만, 오히려 상황을 우리 뜻대로 요리할 수 있어서 천만다행이었지.”

“주님의 뜻은 오묘하기도 하지요.”

“악마의 뜻일지도 모르지. 흐흐흠.”

단숨에 상황을 이해한 그레타는 재빨리 그곳을 빠져나와 집으로 달려갔다.

‘그레트헨... 너는 속고 있는 거였어... 이렇게 바보같을 수가...’

그녀를 이대로 감옥에 놔두면 필시 죽게 될 터였다. 그렇게 둘 수는 없다.

‘...너는 도망치지 않도록 도와달라고 했지만... 이젠 상황이 바뀌었어!’

그레타는 아궁이 뒤편에 잘 감추어 둔 그 약병을 다시 꺼냈다.

약병을 바라보는 그녀의 눈빛이 예리하게 번득였다.



12



죄수에게 넣어줄 사식[私食]이라고 속이고 약을 탄 포도주를 들고 들어가는 것은 아주 쉬운 일이었다. 또한 죄수가 몸이 아파서 마실 수가 없으니 당신들이라도 드시겠어요? 라고 하며 집행관이나 간수들에게 대접하는 것도 식은 죽 먹기였다. 혹시나 술을 즐기지 않는 별난 사람이 있을 가능성을 대비하여 약을 탄 과일 주스도 함께 준비했다. 다행히도 약은 쓰고도 남을 만큼 들어있었다.

5분도 안 되어서 그것을 받아 마신 사람들은 픽픽 쓰러져 쿨쿨 자기 시작했다. 분량을 제대로 맞춰 넣었다면 내일 새벽 쯤에 일어날 것이고 제대로 맞춘 게 아니라면 영원히 깨어나지 못할 것이다. 그레타에게 있어서는 어느 쪽이든 상관없었다. 서로 짜고 해먹는 교회와 관청의 실태에 완전히 정나미가 떨어진 이상, 더 지독한 일도 못할 것 없다고 생각할 정도였으니까.

그녀는 램프와 간수에게서 빼낸 열쇠 꾸러미를 들고 그레트헨이 갇혀 있는 감옥 문 앞에 도착했다. 자고 있는 것인지 감옥 안에서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녀는 쇠창살 너머로 나지막하게 소리쳐 불렀다.

“그레트헨!”

“누구? 거기 있는 건 누구죠? 엄마? 엄마예요? 날 데려가려고 오셨나요?”

“아냐.”

“아니라고요? 그럼 오빠? 제발 나를 두고 가지 말아요...”

눈에 띄게 쇠약해진 그녀의 목소리가 쇠사슬 끄는 소리, 짚단이 버석거리는 소리와 함께 들려왔다. 창살 너머로 수척해진 사촌의 얼굴을 어렴풋하게 확인한 그레타는 눈물로 눈 앞이 흐려지는 것을 느끼며 대답했다.

“나야, 그레타.”

상대가 유령이 아닌 현실의 인간임을 깨달은 그레트헨은, 겨우 냉정을 되찾고 힘없는 목소리로 이렇게 물었다. 누더기가 다 된 낡은 외출복 차림이었다.

“...그레타? 어쩐 일이야? 이런 밤중에? 지금은 면회 시간이 아닐텐데...”

“가만 있어 봐. 지금 문을 열테니까.”

그레타는 짤랑거리는 소리가 밖으로 새어나가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알맞은 열쇠를 찾아 감옥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들어가자마자 그레트헨의 곁에 다가가서 그녀를 옭아매고 있는 쇠사슬도 풀어주었다.

“이러면 안 돼... 나는 받아 마땅한 벌을 받는...”

“내 말 들어봐. 너는 분명히 죄를 지었어. 완전히 네 탓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말야. 하지만 그건 신에 대해서고, 가족에 대해서고, 너 자신에 대해서지, 교회나 관청에 대해서는 아니야. 녀석들은 자기들의 체면과 이익만으로 일을 처리하고 있어. 네가 저지른 죄 이상으로 뒤집어쓰고 여기 영원히 갇혀있게 된 것도 다 그것 때문이야.”

“난 네가 무슨 소리를 하는건지 모르겠어.”

“하인리히 그 자식이 추문에 휘말릴까봐 너에게 다 덮어씌웠다는 뜻이다!”

그레트헨의 파리한 얼굴에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 스쳐지나갔다.

“말도 안 돼. 그이가 왜... 오빠를 죽이긴 했지만 그건 정당방위였어.”

“이젠 제발 정신차려. 그는 널 사랑하지 않아. 사랑한다면 애초에 이런 곳에 갇혀있게 놔두지도 않았을 거야. 어서 빠져나가자.”

그레트헨은 겨우 납득한 눈치였지만 여전히 걱정거리가 가시지 않은 말투였다.

“하지만.... 어디로 도망치지? 어디로 가도 관헌의 눈을 피할 수 없어...”

“그러게 말입니다. 차라리 여기서 두분 다 달콤한 죽음을 맛보는 게 어때요?”

그레타는 본능적으로 제자리에서 튀어올라 그레트헨의 옆에 바짝 붙었다. 빼꼼히 열린 감옥 문 저편에 검은 옷의 악사가 칠현금[七絃琴]을 들고 서 있었다.

“또 만나는군요, 아가씨들.”

“당신은 하인리히의 친구군. 우릴 어떻게 할 셈이지...?”

기력이 쇠한 그레트헨 대신 그레타가 침착하게 말을 꺼냈다.

“피해망상이 심하시군. 제가 나타나기만 하면 뭔가 저지를 거라 생각하나요?”

“그렇게까지 당했는데... 의심하는 건 당연하잖아?”

“그럼 소원대로 해 드리죠. 박사님, 당신 차례올시다.”

“......하인리히?!”

키가 훤칠한 고급옷의 남자가 장검을 옆에 차고 들어왔다. 악사는 그냥 문 앞에 버티고 서서 어떻게 되어가나 흥미진진하게 지켜볼 뿐이었다.

“나의 그레트헨, 정말 끝까지 나를 애먹이는군.”

그의 목소리는 감미롭게 들렸지만 그 안에는 따가운 가시가 숨어있었다.

“무슨.......”

“당신은 그냥 아기와 함께 조용히 살았으면 좋을 뻔 했어.”

“당신이 점지한 아기, 내가 낳은 아기예요! 죽이는 게 싫었다면 당신이 날 도와주었어야죠!”

배신감에 가득차서 그레트헨이 외쳤다.

“아기야 죽든 살든 난 관심 없어. 당신이 입만 놀리지 않았으면 모든 게 평화로웠을 거야. 하지만 이렇게 좋은 여관에서 일생을 보내는 것도 나쁘진 않겠지. 그렇게 생각하고 안심하고 있었는데 이번엔 당신의 이 건방진 사촌께서 당신을 빼내려고 하더란 말씀이지.”

“어떻게 그걸......”

“마법이란 여러가지 일을 가능케 하지. 아, 움직이지 마!”

그레타가 앞으로 뛰어들어 그를 붙잡으려 하자, 그가 자유로운 한쪽 손으로 뭔가를 던졌다. 손바닥만한 양피지 조각에 피로 쓰여진 고대문자가 영롱한 빛을 발하며 그녀 주위에 보이지 않는 그물을 쳤다. 한자리에 붙박힌 그레타는 허공에 대고 주먹질을 하며 버둥거렸다.

문 밖에서 보고 있던 악사가 쿡쿡거리며 웃음을 참았다.

하인리히가 그레타의 앞으로 다가가서 칼을 그녀의 목에 들이댔다.

“그레트헨은 데리고 놀 가치가 있었지만 당신은 방해만 될 뿐이라서... 유감스럽지만 여기서 없애 드리지. 시간이 없고 하니 아주 고전적인 방법으로.”

“악마!”

“말했잖아? 나는 악마를 초월한 사나이야.”

“그런 것 치고는 하는 짓이 너무 쪼잔한걸.”

“어디 이래도 입을 놀리나 보자!”

그의 칼날이 서서히 그레타의 목을 파고들기 시작했다. 그녀가 이를 악물었다.

그때 그레트헨이 째지는 듯한 소리를 지르며 그쪽으로 달려들었다.

“하인리히이이이이!”

그녀는, 며칠동안 감옥에서 굶으며 지낸 사람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엄청난 힘으로 쇠사슬을 휘둘러 그의 후두부를 강타하고, 그가 충격을 받아 머뭇거리며 칼날을 아래로 향한 사이에, 그의 옆으로 달려가서 손등을 쇠사슬로 냅다 두드려 칼을 바닥에 떨어뜨리게 했다. 당황한 하인리히는 손을 내저으며 그녀를 말리려고 했다. 그러나 그레트헨은 칼을 집어들고 그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자아, 나의 그레트헨, 당신은 그런 여자가 아니잖소. 화를 가라앉히고...”

“당신이 착각하고 있는 게 하나 있어. 하인리히.”

그녀는 장검을 양손으로 움켜쥐고 두 팔을 잠시 뒤로 당겼다가 그의 오른쪽 가슴을 향해 일직선으로 밀어올렸다. 그녀가 숨을 몰아쉬며 말했다.

“나는 ‘당신의’ 그레트헨이 아냐.”

“이, 이런....... 이런...................!!!!”

“마르테 아주머니의 정원에서 당신이 그랬었지? 나와 있을 때 말하고 싶지만 절대 해서는 안되는 말이 있다고... 내게 보낸 편지에도 썼었고,

...그게 뭐냐면...”

“안돼------------!!!”

“<순간이여- 멈추어라, 너는...... 참으로 아름답구나!>”

“이...........................!”

칼날을 가슴에 맞은 하인리히는 고통과 낭패감이 뒤범벅된 얼굴을 하고 비명을 지르며 몸부림치기 시작했다. 그의 전신이 서서히 모래알처럼 입자화[粒子化]되더니, 유리창이 깨지는 것과 같은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사방으로 산산히 흩어졌다. 문 앞에 서 있던 악사가 의외라는 얼굴로 안을 들여다보고 혀를 찼다.

“이런, 이런, 이렇게 될 줄이야... 내 체면이 말이 아니군.”

그와 동시에 그레타를 가두고 있던 그물도 사라졌다. 그레트헨은 그녀가 무사한 것을 보고 미소지으며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평생동안 쓸 힘을 한꺼번에 다 써버린 것만 같았다. 그레타가 달려와서 그녀를 부축하고 감옥 문을 나섰다. 두 사람은 서로 마주보며 미소지었다. 피로감에 찌든 얼굴에 생기가 돌았다.



13



악사가 난감한 얼굴로 두 사람을 바라보며 입맛을 다시고 있었다.

“아직도 볼일이 있어? 아까도 지켜보기만 한 걸 보면 당신은 우리를 어떻게 할 생각은 없나 본데.”

아직 기운이 남아있던 그레타가 쏘아붙였다.

“나는 박사의 영혼이 목적이었소. 그가 하늘끝까지 기고만장해져서 완벽하게 타락할 때까지 힘을 빌려주며 여행을 시켜주는 도중이었지. 하지만 당신들 덕분에 그 재미도 다 끝장 났어. 이렇게 된 이상 대신 당신네의-”

“그렇게는 못할 게다, 어릿광대 볼란트여!”

“--너는!”

감옥 밖에서 키작은 사람 그림자 하나가 공중에 뜬 채로 가볍게 다가왔다.

그레트헨을 부축하고 위를 올려다보던 그레타가 놀라서 중얼거렸다.

“맙소사.....”

불행이 시작되던 밤에 나타나 경고해 주려 했던 집시 여인이었다!

“잘 있었어? 그래도 아직은 둘다 건강해 보이네.”

검은 옷의 악사는 그 여인을 보자마자 ‘다 틀렸군’이라는 표정을 짓더니 “어디 두고 보자!”라는 전형적인 대사를 내뱉고는 날개가 여섯 개 달린 박쥐로 변하여 발푸르기스 방면으로 힘차게 날아가버렸다.

그레타와 그레트헨은 멍하니 그 광경을 바라보다가 여인의 인도에 따라 감옥 밖으로 나와서 사람들의 눈이 미치지 않는 마을 외곽 지역으로 걸어갔다. 더이상 걸을 수 없을만큼 먼 거리를 걸은 뒤에야 겨우 쉴 수 있었다.

아무리 오래 걸어도 결코 지친 기색을 보이지 않는 붉은 옷의 여인에게 그레타가 조심스레 말을 걸었다.

“이제야 당신이 그날 밤에 해주려던 말이 뭔지 알겠어요. 하지만 좀더 확실하게 말해 주었더라면...”

“어머나, 맞아, 그런 일도 있었지. 하지만 그때는 나름대로 사정이 있어서 좀 바빴거든. 어쨌거나 너희 두 사람이 잘 헤쳐나가서 오늘에 이르렀으니 그래도 불행 중 다행 아니겠니?”

그레트헨이 지친 얼굴로 질문을 던졌다.

“부인은 누구시죠? 단순한 집시 점쟁이가 날아다닌다는 얘기는 못 들었어요.”

“그래 그럴거야. 아까 그녀석과 마찬가지로 나도 다른 세계에서 온 존재지. 너희들의 교회에서 천국이니 지옥이니 멋대로 떠들고 있지만 사실 그런 구분은 상당히 편파적인 거라는 얘길 일단 해둬야겠다. 난 그 두 곳 어디에도 속하지 않고 그보다 훨씬 오래되었거든.”

“아아, 그래서 아까 그 녀석도...”

“나보다는 나중에 생겨났기 때문에 힘이 좀 딸리지. 후훗.”

망토 아래로 보이는 입이 장난스레 웃고 있었다. 보기에 따라서는 엄청나게 늙은 것 같기도 하고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젊어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어째서 우릴 구해주었나요? 우린 당신에게 아무것도...”

“이제부터 해주면 되잖아. 난 너희처럼 신에게도 인간에게도 버림받은 아이들을 모으고 있거든. 나와 여행을 떠날 생각 없어?”

그레트헨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옆에서 지켜보던 그레타의 얼굴 또한...

“말씀은 고맙지만... 저는 갓 태어난 생명을 죽인 몸이에요. 그걸 없었던 일로 하고 나 혼자만 편한 인생을 사는 건... 왠지...”

집시 부인은 그 말을 들었는지 못들었는지 길 저편을 가리켰다.

“아, 내 일행이 오는군.”

길 저편으로부터 달려오는 것은 엄청난 수의 마차들이었다. 거기에는 가지각색의 복장을 입은 사람들과 못 보던 동물들이 가득했다. 사람들은 대부분 집시였지만 그 외의 인종도 섞여 있었다. 그 중 한 대의 마차에서 머리에 스카프를 두르고 비단 바지를 입은 여자가 뛰어내려서 그레트헨 쪽으로 다가왔다. 그녀는 가슴께에 끈으로 고정시켰던 꾸러미를 그녀에게 웃는 얼굴로 건네주었다.

그레트헨은 썩은 동태눈 같은 눈초리로 그것을 살펴보다가 탄성을 질렀다.

“내 아기!!!”

“정말? 정말? 어떻게 된 거야?”

그레타가 달려와서 같이 환호성을 질렀다.

붉은 두건을 벗고 얼굴을 드러낸 집시 여인이 활기차게 말했다.

“살다보면 지나가다 줍는다는 일도 있는 모양이지.”

그레트헨은 뭔가를 떠올리고 다시 한번 탄성을 질렀다.

“그때- 다리 건너편에 나타난 붉은 옷! 당신이었군요!”

여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검은 머리에 나이를 알 수 없는 신비한 얼굴, 그리고 모든 것을 포용하는 자비심과 모든 것에 맞설 수 있는 용기를 겸비한 자태였다.

그녀가 다시 질문했다.

“함께 갈래? 굶어죽을 염려는 없을거야. 할 일이 좀 많겠지만.”

“---좋아요!”

이번에는 망설임 없이 동시에 대답이 나왔다.

“자아, 그럼 출발!”

집시 여인이 선두의 마차에 올라타고 기운차게 호령했다. 그레타와 그레트헨도 아기를 데리고 같은 마차에 올라탔다. 처음 보지만 모두 따뜻한 느낌을 주는 사람들이 그들을 맞이했다. 마차들이 덜컹거리는 소리를 내며 굴러가기 시작했다.

아기와 바깥 풍경을 번갈아가며 바라보고 있던 그레트헨의 어깨를 그레타가 다정하게 감싸며 말했다.

“정말 잘 됐다. 그치?”

그레트헨이 사촌의 눈을 잠시동안 들여다보며 진지하게 말했다. 그녀는 며칠 전에 비해 한 뼘 정도는 더 큰 것 같이 느껴졌다.

“네 덕분이야...... 고마워, 마르가레테.”

그레타가 살짝 얼굴을 붉히며 말을 받았다.

“나도........ 살아있어 줘서 고맙다, 마르가레테.”

“둘다 이제는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드나 보네?”

붉은 옷의 집시여인이 고삐를 잡고 말을 몰면서 그들에게 말을 걸었다.

“네... 그런데 한가지 궁금한 것이...”

“뭐든 물어봐. 상담료는 5페니히.”

“아니, 점을 쳐 달라는 게 아니라...”

“농담이야, 궁금한 게 뭐지?”

그레트헨이 그레타와 시선을 마주쳐가며 머뭇머뭇 질문을 꺼냈다.

“당신의 이름은요?”

집시 여인은 살짝 웃더니 약간 뜸을 들이며 답변을 내주었다.

“내 이름은.................”

두 소녀가 그 이름을 들으려고 몸을 앞으로 숙였다.

“릴리스.”







THE END!





(C) ZAMBONY 2003.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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