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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05-26] 왜 페기 진은 이사가야 했는가
감상과 연구/만화관련 | 2010. 7. 11. 02:12


...80년대후반에서 90년대초반으로 넘어가는 어떤 시절에 우리의 찰리브라운씨는
   거의 40년 가까이 지켜온 여름캠프여행관행(...)을 순순히 따라서 그다지 재미도
   없는(가끔 예외도 있긴 했다) 캠프에 참여하러 버스에 올라 이름도 안나오는 어
   떤 고장으로 갔다가 그곳에서 페기 진이라는 쌈박한(...) 소녀를 만나
   일생일대의 경험(뭘 생각하는거냐)을 하게 되는데, 특히나 이번에는 그동안 계속
   찰리브라운이 그래왔던 것처럼 도저히 전해지지 않는 허무한 짝사랑이 아니라
   (마시와 페퍼민트 패티는 찰리브라운을 놓고 다투고 찰리브라운은 붉은머리 소녀
   때문에 정신없고 샐리는 라이너스를 죽어라 쫓아다니고 루시는 슈로더를 미치게
   만드는 취미가 있다 ;;;) 놀랍게도 둘이 서로 마음이 통하는 그런 관계가 되더라
   는 것이다. (단순히 찰리의 혀가 미끄러져서 나온 '브라우니 찰스'라는 기괴번쩍
   한 이름 때문만은 아닌 듯한 것이 ;;;) 그렇게 해서 즐겁게 캠프생활을 보내고
   편지교환도 하고 (오빠가 가명을 쓰고 있었다는 몰랐던 샐리덕분에 물거품 될뻔
   하기도 했지만 ;;;) 사랑에 눈이 먼 찰리브라운은 붉은머리 소녀와 페기 진의
   사이에서 갈등하기도 하지만 대체로 붉은머리쪽을 잊어버리는 방향으로 되어가
   는데다가 크리스마스에는 아끼던 만화책까지 몽땅 팔아서 페기 진에게 줄 장갑
   을 사기도 하는 것이다(그러나 몇초 차이로 페기 진의 엄마가 같은 장갑을 사
   줬기 때문에 그 장갑은 결국 스눕히의 손에 들어간 것이었으니 ;;;).

   그러한 흐름 속에서 '이젠 찰리브라운도 40년가까이 끌어온 싱글생활에 종지부를
   찍을 것인가?'(라고 해도 초등학생이 뭔 싱글이고 커플이고를 따지나 ;;;)라는
   궁금증을 불러일으키던중 갑자기 뜬금없이 '페기 진은 이사를 가버렸어!'라는
   말 한마디로 둘의 관계는 박살이 나고 만다. 게다가 며칠 뒤에는 아예 찰리의
   머릿속에서 페기 진이라는 이름 자체가 사라져버린다.('누구라고?')

  
  
 

...어째서 페기 진은 이사를 가야 했을까.
   찰리브라운의 캐릭터 자체에 열쇠가 있다고 생각하면 간단한데,
   찰리브라운은 40년가까이 인생의 낙오자로서 우유부단하고 운이 지지리도 없고
   무기력하고 울적하고 평범하기 그지없는 그러한 성격을 유지해 온 터이다.
   그런 특성 때문에 비참하기 그지없는 삶을 살것 같으면서도 언제나 낙천적으로
   세상을 보고 우울한 일보다는 즐거운 면을 보려고 노력하며 어떻게든 살아가는
   그의 모습은 애독자들에게 있어서 하나의 이정표일지도 모른다.
   어떻게 보면 그는 평범한 현대 미국인의 초상으로서 자신이 낙오자라고 느끼는
   수많은 사람들을 대변하는 대변인이고, 또한 끝없이 실수를 저지르고 그속에서
   다시 일어섬으로써 그들에게 위안을 주는 하나의 희생양일지도 모른다.
   그러한 그에게 진짜 행복이 찾아와서 그 성격이 바뀌어가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결국 그렇기 때문에 페기 진은 제거되어야 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찰리브라운은
   싱글들의 희망이고 낙오자들의 호프이다. 그러한 그가 사랑에 성공하여 싱글을
   벗어나고 더이상 고민하지 않는(물론 이것만으로 모든 것이 다 해결되어 찰리가
   전혀 다른 인간이 될 것 같지는 않으나 적어도 그러한 변화에 대한 실마리는
   충분히 나타날 수 있는 것이므로) 그런 사람이 된다면 어떻게 되는 걸까?
   그렇게 되면 찰리 브라운은 더이상 찰리 브라운이 아닌 단순한 만화캐릭터에
   지나지 않게 되고 꼭 피너츠만 보지 않아도 어디서든 볼 수 있는 정말로 '평범한
   ' (인간으로서는 평범하지 않으나 가상의 인물로서는 흔해빠진) 그런 인간으로
   변해버릴지도 모른다.
   그것은 피너츠의 장기연재를 지탱해온 보수주의에 있어서는 위협으로 작용할
   수도 있는, 정말로 위험한 사건이다. 찰리 브라운은 멍청하고 운이 나쁘기
   때문에 비로소 찰리 브라운이다. 그런 그를 뭔가에 '성공한' 사람으로 만들어
   버린다면 더이상 그는 찰리 브라운이 아니게 될지도 모른다. (그가 연날리기에서
   그리고 야구경기에서 한번도 이기지 못하는 것은 단지 그가 멍청하기 때문이 아
   니라 그의 그러한 개성을 계속 유지하려는 작가의 간섭, 또는 만화적인 관성의
   작용이 있기 때문이라고 나는 믿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페기 진은 이사가야 했던 것은 아닐까?
  



ps 희생양에 대한 이야기는 어슐라 르귄의 '오멜라스를 떠나는 사람들'과
   연관지으면 꽤 알기 쉽다. 행복한 하나의 사회를 유지하기 위해서 영원히
   비참한 생활(이라고도 할수없는 생존)을 계속하는 어떤 '아이'의 이야기다.
   그를 보며 사람들은 자기 처지에 위안을 느끼고 행복을 즐길 수 있다.
   그러나 그 때문에 '아이'는 결코 그곳을 벗어나지 못한다!

ps '천재 유교수의 생활'외전 중에서(같은 작가가 그린 유교수의 꿈 이야기들)
   인간의 즐거움을 위해 만들어진 동화나 민담의 캐릭터들에게 그들나름의 감정
   과 생활이 있음을 인정하고 그들을 구하기 위해서 신(으로 추정되는 어떤 존재)
   에게까지 달려드는 용감한 유교수. 찰리브라운에게는 그런 인물이 찾아와줄수
   없는 것일까?

ps 수업시간 앞두고 뭔 개소리를 하고 있는 건지 -_-

ps 찰리브라운의 tv스페셜 중에서, 미식축구에는 패배하지만 댄스파티에 참가한
   찰리가 그 '붉은머리 소녀'에게 선택받아 행복한 춤판을 벌이지만 아침에 깨
   어나서 아무것도 기억 못하게 되는 것(오히려 옆에서 구경한 라이너스는 생
   생하게 기억하고 있는데도!)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캐릭터의 개성이라는 것은 굳어져버리면 감옥이나 마찬가지인 것이다.
   ('붉은머리 소녀'는 원작에서는 결코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데, 이것은 슐츠의
   개인적인 경험과 연관이 있는 듯하다. 애니메이션에 등장하는 붉은머리 소녀는
   원작과는 다르며, 결코 그 '이상적인 여인'은 아니라는 것이 슐츠의 생각인
   것 같지만 이것까지 얘기할 필요가 있을지 어떨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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