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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12-31] 이상한 성탄의 바스크 제3장
패러디 왕국/건담관련 | 2009. 11. 24. 23:19
 


제 3 부 Ghost In The Pocket

ポケットの中の幽靈




  바스크는 침대에서 코를 골다가 깜짝 놀라서 눈을 떴다. 언제 잠이 들었었지?

  대체 시간이 얼마나 지난 것인가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유령과 함께 돌아다닌 시간은 반나절도 안되는 것처럼 느껴지는데, 시계는 벌써 12시 15분 전이 아니던가? 이놈의 시계가 도대체 어떻게 되어먹은 거야?

  이윽고 시간이 되어 시계가 “할로~~ 할로~~ 할로~~ 할로오~~” 소리를 내기 시작, 결국 열두 번을 채우고 말았다. 바스크는 점점 겁이 나기 시작했다. 첫 번째 유령만 해도 골치 아팠는데 아직도 둘이나 남았다는 얘기냐? 차라리 콜로니레이저로 날 죽여라.


  정신을 가다듬고 침대에서 일어선 바스크는 벌써 두 번째 유령이 찾아와 있음을 알았다. 적어도 이번에는 요란한 쇼는 벌이지 않는군. 다행이다. 심근경색증이 생길 판인데 자주 놀라면 큰일이야. 이런 바스크의 생각을 알아차리기라도 한 것처럼 유령은 상냥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두 번째의 유령은 초록색 머리를 가진, 가냘픈 몸매의 약간 더 젊은 여자였다. 열 여섯이나 일곱 정도일까. 사실 보라색 립스틱을 바른 것만 빼면 소녀라고 해도 좋을 만큼 앳된 얼굴이었지만, 그 창백한 얼굴에는 뭔가 알 수 없는 슬픔이 떠올라 있었다. 입고 있는 겉옷은 보라색의 헐렁한 푸대자루같은 커스튬이었는데 한때는 유행의 첨단을 달렸을지도 모르나 이제는 어쩐지 색이 바랜 것 같다는 인상을 받기에 충분했다. 아까의 유령이 뭔가 유혹적이고 자유스러우며 신비로운 느낌을 주었다면, 이 유령은 어쩐지 날렵한 몸놀림에도 불구하고 어딘가 새장에 갇힌 새처럼 애처롭다는 느낌을 발산하고 있었다.

  (*배경 음악: 은색 드레스, 연주곡)

  바스크가 유령에게 말을 걸었다.

  “아가씨는 그럼 현재의 크리스마스 유령이겠군. 맞나?”

  “그렇습니다. 제 전임자가 불편하게 해 드리지는 않았는지요?”

  “아주 '많이' 불편했지. 하지만 그게 자네들의 임무라면 내게는 달리 선택권이 없는 거겠군. 그런 건가?”

  “불행하게도 그렇습니다. 이제 저를 따라오시죠.”

  “내가 거절한다면?”

  그 순간 유령은 온몸에서 푸른빛의 오라를 발산하며 얼음장같이 싸늘한 표정을 지어 보였고, 그 뒤에서 커다란 검은 상자곽같은 물체가 서서히 떠오르고 있었다. 그 물체의 가운데 부분에서 심상치 않은 불빛이 비쳐 나오기 시작했다.

  “확산 빔포인가!”

  “아직도 망설이고 계신가요?”

  “알았어 알았다고, 같이 가면 되잖아.”

  “현명한 선택이십니다.”

  어느새 유령은 평소의 상냥한 표정으로 돌아와 있었다.


  그들이 검은 상자곽을 타고 당도한 곳은 서기 브라이트 크래칫의 남루한 집이었다. 왜 하필 이곳이 첫 번째 목적지가 되었는가에 대해서 바스크는 의문을 가지게 되었으나 빌어먹을 유령이 하는 일인만큼 따져봤자 별 소득이 없을 거라 생각하고 가만히 보고만 있었다. (*많이 똑똑해졌다..)

  유령은 어느새 어깨에 TITANS라고 쓰여진 마크가 붙은 방한용의 남색 군용코트를 껴입고 있었다. 바스크는 문득 온몸에 한기가 몰려오는 것을 느꼈다. 난 왜 아무것도 안 주는 거야?

  “이건 추위를 막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이해해 주세요.”

  족집게로군.

  거실 안에서는 크래칫의 부인 미라이와 아들 하사웨이가 열심히 트리를 장식하고 있었다. 그들의 얼굴에는 바스크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기쁨과 행복의 표정이 떠올라 있었는데, 그들이 만드는 트리에는 마치 미노프스키입자가 깔린 어두운 우주공간에서 친절한 우주선이 비추어 주는 형형색색의 항로등과도 같은 밝고 영롱한 빛이 담겨 있었다. 트리 위에 걸려 있는 산타건담의 장식물이 희미한 전등 빛을 받아 은은히 반짝였다.

  거실에는 구세기의 유명한 가수가 부른 “징글벨을 잃어버렸어”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올해도 화이트 크리스마스가 될 것 같네요, 엄마.”

  “그래, 콜로니 기상관리국이 마음을 잘 써주는 모양이다. 사실 오늘 또 눈이 내리게 하면 며칠동안 물질 순환을 재조정하느라 애를 먹을지도 모르는데, 얼마나 고마운 분들이니?”

  그것은 사실이었다.

  “그런데 아빠는 왜 아직 안 오실까요?”

  그때, 흥겨운 음악 소리를 뚫고 한 줄기의 맑은 초인종 소리가 들려왔다. 어머니와 아들은 재빨리 달려가서 문을 열었다. 그의 경력만큼이나 오래된 초라한 의복으로 가까스로 추위를 막고 있는 가장(家長) 브라이트가 그의 어깨에 귀여운 딸 체밍을 태우고 피곤한 걸음으로 들어섰다.

  불쌍한 체밍은 한쪽 다리를 심하게 절고 있어서 제대로 걷기 위해서는 세라믹 복합재로 만든 튼튼한 지팡이가 필요했다. 그러나 브라이트가 돈이 없다보니 카사레리아제 박달나무로 만든 싸구려 지팡이를 짚고 다닐 수밖에 없었다. 오 가여운 영혼이여!

  (*뭐하는거냐 작가, 네가 정말로 디킨즈인줄 아냐)

  브라이트는 하사웨이와 체밍에게 작은 선물 보따리를 건네주었고 그들은 얼굴에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하사웨이의 선물은 중고 장난감 시장에서 산 초합금 RX-78이었다.

  “아무로 레이처럼 훌륭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 고맙습니다, 아빠! ♬”

  체밍의 선물은 새로 나온 개정판 할로였다. 체밍이 앉은 채로 할로를 공중에 살짝 던졌다가 다시 그것을 받아들며 즐거워하고 있었다.

  “할~~~~로!”

  “<<하로>>”

  “소중하게 다뤄야 한다. 그놈이 세 번째이니까. 지난번 녀석도 너무 자주 굴리더니 망가졌잖니.”

  “♪ 네에~~.♪”

  (*그들은 모조품을 산 것이 틀림없다. 진짜 할로는 절대로 망가지지 않는 범용 전환경대응형(汎用全環境對應形)이니까.)


  그들은 조촐하지만 정성이 담긴 식사가 준비되어 있는 작은 식탁에 앉아서 기도를 드리기 시작했다. 온갖 성자와 친척들과 은혜를 베풀어준 이들은 위한 기도가 지나간 다음, 모두들 식사를 하려고 스푼을 들었다. 그때 언제나 남에게 감사하는 것을 미덕으로 삼는 미라이가 남편에게 말했다.

  “별로 좋아하지는 않겠지만, 당신의 고용주를 위해서도 기도해야 하지 않을까요?”

  “바스크 사장을 위해서 기도하느니 차라리 지크 지온을 외치는 게 나을걸.”

  저 녀석다운 말이군. 바스크는 조용히 되뇌었다. 저놈을 역시 해고해버릴까 아니면...

  그때 미라이의 조용하고도 설득력 있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래도 그분이 없었더라면 이 성찬도 없었을 거 아녜요? 아무리 싸늘하고 인정 없는 분이라고 해도 마음 한 구석에는 그렇지 않은 부분도 있을 거예요. 그리고 그렇지 않다고 해도, 이 좋은 명절날에 그분은 하루종일 혼자서 쓸쓸하게 보내실 텐데, 그것만으로도 불쌍히 여기고 기도를 해 주어야 하지 않을까요?”

  (*그런데 이게 미라이냐 베르단디냐)

  “하긴 그렇지. 당신의 그런 점이 역시 마음에 든다니까. 자 그럼 우리 모두 인정머리 없고 독불장군이지만 그래도 우리의 생활을 돌보아주시는 바스크 사장님을 위해 기도하자꾸나. 어쨌거나, 오늘은 크리스마스가 아니겠니? 자, 예언자 성 토미노, 목수 성 오카와라, 화공 성 야스히코의 이름으로 바스크씨를 위해 축복을!”

  그들의 진심에 찬 기도를 듣는 순간, 바스크는 일단 해고는 보류해 두자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의 마음은 여전히 황폐했다.


  떠나기 전에, 바스크는 갑자기 불현듯 돌연히 언뜻 (*동의어 실력 테스트 중...) 한가지가 궁금해졌다. 그래서 유령을 쳐다보고 물었다.

  “저 다리를 저는 꼬마가 오래 살까?”

  유령은 허를 찔린 듯이, 잠시 아무말도 않다가 대답했다.

  “그것은 미래의 영이 신경쓸 일입니다. 저에겐 어떠한 권한도 없지요.”

  “하지만 너도 그것을 알아낼 수 있는 능력은 있을 것 아닌가?”

  잠시 유령의 보라색 입술이 알듯말듯하게 떨렸다. 그러나 그 떨림은 곧 사라졌다.

  “불길한 징조가 보인다는 말밖에는 해드릴 수가 없습니다. 제 눈에는 저 아이의 모습이 투명하게 보이는군요. 그 애의 지팡이만 빼고 말입니다. 그게 뭘 뜻하는지 설명드릴 수는 없습니다만.”

  (*C. J. Cherry 作 <카산드라> 참조.)

  “하지만 그게 사실이라면 어떻게 해줄 수는 없는 건가?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저들을 위해서.”

  “흥미롭군요. 언제부터 남 걱정을 하게 되신 겁니까?”

  “모르겠어. 하지만, 지난 수년간 잊고 있었던 어떤 감정을 저 애가 일깨워준 것만 같아서 말이지. 어험, 그렇다고 해서 내가 완전히 크리스마스를 축복하는 치들과 같은 반열에 서게 되었다고는 생각하지 말라고. 난 단지 저 아이가 가족들에게 심어준 즐거운 기억들이 어느 순간 쓰라린 비수로 변할 것만 같아서 걱정하는 것뿐이야. 왜 알잖나. 만약에 저 애가 죽기라도 해서 저 애 아버지가 의기소침해지고, 결과적으로 그의 근로의욕이 떨어지면 내 회사에도 안 좋다는 걸?”

  유령의 마른 얼굴에 깊은 책망과 고뇌의 표정이 떠올랐다.

  “기억이라고요! 과거의 기억도 외면하시는 분에게 현재의 기억이 무슨 소용이죠? 자신의 잃어버린 일부분을 찾지도 않는 이에게 지금 즐겁고 행복한 것이 대체 어떤 의미가 있는 거죠? 당신이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이봐, 난 단지 내 일에 대한 걱정을 말한 것뿐이야.”

  “어련하시겠어요. 당신은 항상 그런 식이겠죠.”


  그들이 다음에 간 곳은 바스크가 알지 못하는 지구권의 다른 부분이었다. 커다란 광물 채굴용 소행성 키케로의 한 구석에서 열심히 땀흘리며 일하는 광부들이, 힘든 일과를 마치고 한 곳에 모여서 그리운 가족들이 보낸 소포를 뜯어보며 기쁜 성탄을 축하하고 있었다.

  “메리 크리스마스, 토레스!”

  “메리 크리스마스, 아스토나지.”

  “어이 거기 들고 있는 건 뭐야? 자네의 그녀가 또 편지했나?”

  “그래, 세실리아가 올해도 잊지 않고 성탄 엽서를 보내왔어. 자네는 어때?”

  “별로 안 좋아. 케라는 작업에 바빠서 시간이 없나봐.”

  “그거 안됐군, 어때, 오늘 모두들 모여서 파티나 하는 게?”

  “좋지, 그루스하고 트러져에게 연락했나?”

  “그래. 오무르하고 살로몬에게만 전하면 될 거야. 그 친구들 외근중이거든.”

  “좋았어. 그럼 네스하고 모라에겐 내가 전할게. 맛있는 소행성 푸딩을 만들어 달래야겠군.”

  (*어디선가 들은 듯한 이름만 줄줄이 외면 패러디인줄 아냐. 정신차려라 작가야)


  다음으로 본 곳은, 솔로몬 주역, 우주 한 구석에 외롭게 떠 있는 조난감시용 위성. 그 안에서는 차가운 우주의 정적을 깨기 위해 시끄러운 음악을 틀어두고 포커를 하고 있는 두세 명의 당직 감시대원들이 쓸쓸하지만 훈훈한 성탄을 보내고 있었다. 그들은 이윽고 포커를 걷어치우고 정성 들여 준비한 다이쿤 주(酒)를 나눠 마시며 서로에게 복된 성탄을 기원하는 것이었다. 좁은 공간이었지만, 그들의 마음은 주피트리스만큼이나 넓고 컸다.


  그곳을 지나 또 수십 리, 그들은 콜로니와 지구 사이를 바쁘게 왕복하며 화물을 나르고 소식을 전하는 쌍동형의 콜럼버스급 수송선을 바라보고 있었다. 선실에서는 언제나 분주하게 일하는 선원들의 모습에, 평소와는 다른 들뜬 분위기가 겹쳐서, 훈훈하고 온정적인 공기가 감돌고 있었다. 그들의 봉급이 얼마나 되든, 그들의 직급이 무엇이든, 오늘은 크리스마스이다. 그것은 모든 이들에게 마찬가지였고, 누가 인위적으로 바꿀 수는 없는 것이었다.


  그리고 지구의 어느 작은 환경보호지구, 그곳에 몰래 숨어사는 불법 거주민들에게도 오늘은 역시 크리스마스였다. 작은 밭뙈기들을 옆에 낀 통나무집들, 그리고 그 안에서 경건한 마음으로 기도 드리며 성령의 축복을 기원하는 어른들과 아이들, 그리고 그 옆에 웅크리고 앉아서 밥이 나오기만을 기다리며 꼬리를 치는 베이지색의 개. 그리고 그 옆에 굴러다니는 할...로???

  (*그렇다고 해서 이것이 누구누구네 집을 암시한다는 것은 아니다. 알다시피 이 세계에서는 할로가 거리에 굴러다닐 만큼 흔하다)


  하여튼 그 많고도 많은 광경, 사람들의 삶과 기쁨, 그 모든 것을, 유령은 바스크에게 보여주었던 것이다. 문제는 너무 빨리빨리 지나가는 바람에 바스크가, 자기가 뭘 봤는지조차 기억을 못하는 건 물론이고, 자기가 어떤 상황에 처한 것인지도 잊어먹는 사태가 생겨서, 결국 다시 한번 한바퀴를 돌아야 했다는 것이지만, 아무튼 모든 것은 이런 식으로 펼쳐졌다.

  (*배경 음악: “지구에 메리 크리스마스”)


  마지막으로 간 곳은 아니나다를까 바스크의 조카 제리드 메사슈미트의 집이었다. 그 안에서 퍼져나오는 밝은 불빛과 환한 웃음소리에 바스크는 약간 소외감을 느꼈지만, 유령의 눈초리가 하도 섬뜩해서 억지로 들여다보아야만 했다. 조카의 활기찬 목소리가 들려왔다.

  “글쎄, 아저씨는 정말로 크리스마스가 뭐하는 날인지 이해하질 못하시는 모양이야, 늘 그래 왔지만, 왠지 올해는 특히나 아저씨가 불쌍해 보이더라고. 생각해 봐, 이렇게 다른 사람들은 가난하건 부자이건 간에 오늘 하루만은 즐겁고 기쁘게 보내는데 말이지, 그분 혼자만은 그 춥고 썰렁한 골방에서 부들부들 떨며 다음 분기의 손익이 어떻게 될까, 뭐 그런 것만 계산하고 계실 것 아냐? 정말 가엾은 분이지. 저녁식사에 초대를 해 놓긴 했지만, 오실 지 모르겠어.”

  깨끗한 지구의 바다같이 푸른 머릿결과 푸른 눈동자를 지닌 그의 아내 마우아가 말했다.

  “그런 사람은 아마 악시즈에 깔리는 순간까지도 자기가 어떤 문제를 가지고 있는지 깨닫지 못할 거야.” 

  식탁에 합석해 있던 친척과 친구들도 공감을 표했다. 아마 이들이 살아 있는 동안에는, 바스크는 연방정부 지방선거에 출마할 꿈도 꾸지 말아야 할 것이다.

  “하지만 난 용서해드릴 수 있어.”

  제리드가 착 가라앉은 목소리로 정감을 담아 말했다.“

  “아저씨 자신은 모르시겠지만, 결국 그렇게 해서 고통을 당하는 건 언제나 아저씨 자신이거든. 그걸 생각하면 아저씨에 대해서 결코 화가 나지는 않아. 아무튼,”

  다음 말은 바스크가 들어봐도 기절초풍할 만한 것이었다.

  “사랑하는 아저씨를 위해 다시 한번 메리 크리스마스! 성 카미유의 기호와 성 쥬도의 축복이 함께 하기를!”

  “성 카미유? 사내인가........?”

  그 이름을 처음 듣는 사람으로서는 당연한 반응이었다. 그렇지만, 만약 성 카미유가 살아 있었다면 바스크는 죽을 각오를 해 두어야 했을 것이다.


  바스크는 더이상 보고 있을 수가 없어서 창문으로부터 물러서서 유령 쪽을 돌아다보았다. 어쩐지 유령의 모습이 아까와는 달라 보였다. 얼굴은 변한 것이 없는데 어째서 몸통이 저렇게 불어났지? 그러한 의문에 대답이라도 하듯 유령은 자기가 입고 있던 방한 코트를 펼쳐 보였다. 그 안에는 양쪽에 각각 한 명씩, 오렌지색 머리의 열 살 남짓한 여자애 두 명이 쌔근쌔근 자고 있었다. 짐머드 복사기로 찍어낸 듯 똑같은 모습에, 똑같이 귀여운 귀밑머리를 늘어뜨리고 있었다. 그들의 표정은 천사 같았지만, 역시 그들에게서도 현재의 유령과 똑같은 깊은 아픔이 느껴졌다. 바스크는 문득, 너무나 똑같은 두 소녀의 외모를 비교하는 일에 현기증을 느꼈다.

  “부업으로 베이비시터도 하나?”

  유령은 바스크의 냉소 어린 농담에 아무런 감정도 표시하지 않았다.

  “이들은 나의 일부, 역시 현재를 표상하는 유령들입니다. 다만 나와는 달리 일정 시간이 지나야만 각성을 할 수 있기 때문에 그 전까지는 제가 돌보아 줘야 합니다. 이들의 힘은 저보다 훨씬 강력하지만, 아직 이들이 깨어나려면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합니다.”

  콜드 슬립(인공동면) 상태인가. 바스크는 머리가 어지러워졌다.

  “이젠 볼장 다 봤군. 그래 내게 무엇을 더 보여 줄 건가?”

  “제 역할은 여기까지입니다. 다음부터는 제 후임자가 알아서 할 겁니다.”

  “그 유령도 너만큼이나 무뚝뚝한가?”

  “그건 모릅니다.”

  갑자기 멀뚱해진 바스크가 소리쳤다.

  “잠깐만! 그럼 나는 어떻게 내 방으로 돌아가나? 거기서 다음 유령을 기다려야 하는 거 아냐?”

  “그가 직접 당신에게 올 겁니다. 이제 시간이 되었군요.”

  “시간? 무슨 시간 말인가?”

  바스크의 단세포적인 기억력을 일깨우기 위해 유령이 소리쳤다.

  “12시이지요!!!”

  그리고는 유령은 마치 약속시간에 늦은 신데렐라마냥 머리를 나풀거리며 빠르게 밤거리를 달려갔다. 인간의 힘으로는 따라잡을 수 없는 반사속도였다.

  바스크는 또다시 혼자 남았다.



-Third Interlude-



  근처의 우주 공간에서는, 마치 해병대를 연상시키는 한 떼의 땅딸막하게 생긴 인형전차(人形戰車)들이, 우주선 외벽에 매달려서 서로에게 머신건을 난사하고 있었다. 키리코 큐비는 언제나 이 지겨운 백년 전쟁이 끝날 것인지 궁금했다. 적지 깊숙한 곳에 숨겨진 한 개의 냉동캡슐이 그의 눈에 띈 것은 바로 그 순간이었다.

  그는 처음으로 상관의 명령을 거역했다...

  이제 이 이야기 중에서 이들을 다시 볼 기회는 아마도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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