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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08-21] 울트라하 : 본편 제12화
창작의 샘터/울트라하 | 2010. 7. 4. 2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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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OOTING... ▶





동거녀는... 라하세르는 꿈을 꾸고 있었다.

그러나 꿈 치고는 약간 이상한 데가 있었다. 그때까지 그녀가 꾸어온 꿈이라고 해봐야, 이전에 고향에 있었을 때의 경험이나 자기의 종족 사이에 전해 내려오는 전설들, 그리고 여러 가지를 배우기 위해 우주를 돌아다니던 짧은 연수 기간에 알게 된 행성들과 생물들에 대한 것이 대부분이었고, 또한 지구로 온 뒤에는 그곳에서 새로 익힌 갖가지 신기한 것들과 지구 고유의 옛날 이야기, 그리고 거기서 만난 사람들에 대한 꿈이 추가되었다. 그러나 이제까지 그녀가 꾸어온 어떤 꿈도, 지금 꾸고 있는 꿈만큼 기괴하고, 아름답고, 현란하고, 가슴벅차고, 알 수 없는 것들로 가득차 있었던 적이 없었다.

그녀는 마치 빛과 같은 속도로 미지의 미로 속을 떠 다니는 중이었다. 그 미로는 불투명한 것 같으면서도 때때로 투명해지고, 기계류가 얽혀있는 듯하면서도 때때로 생물처럼 호흡하고, 어둠에 싸여 있으면서도 때때로 이 세상에서는 볼 수 없었던 기묘한 빛을 내뿜는, 신비한 구조물이었다. 그 속에서는 앞과 뒤가 쉴새없이 뒤바뀌고, 오른편이 왼편을 대체하며, 위와 아래가 정신없이 뒤집히면서 서로의 자리를 채워 나가는 뜻모를 패턴을 되풀이하고 있었다. 미로의 주위를 둘러싼 광활한 공간 바깥에서는 가끔 어떤 문자나 숫자 같은 것들을 내포하고 있는 빛의 화살들이 바쁘게 날아오고, 또 왔던 곳을 향하여 다시 날아가고는 했다. 그럴 때마다 미로를 둘러싼 방벽들도 민감하게 반응하여, 거녀가 날아가는 앞길에 어떤 종류의 수식과 기호들을 신경쓰일 정도로 현란하게 비추어 주고는 했다.

거녀는 어떠한 종류의 육체적인 감각도 감지할 수 없었다. 그곳에서는 맛도 냄새도 소리도 모습도 촉각도 모두 순수한 ‘정보’의 형태로 바뀌어서 제멋대로 이리저리 자유롭게 흐르고 있었다. 그곳은 1과 0으로만 모든 것이 처리되는, 어찌보면 꽤 삭막한 법칙에 따라서 모든 것이 움직이는 질서의 세계였다. 그러나 거녀의 정신으로 직접 흘러들어오는 그 세계의 모습은 마치 작년 겨울에 처음으로 보았던 ‘크리스마스 트리’라고 하는 구조물처럼, 아름답게만 느껴졌다. 아무런 의미도 부여되지 않은 순수한 빛들이 미로를 헤치고 사방으로 퍼져 나가고, 몰려 들어오고, 서로 합쳐지고, 다시 나누어지고, 그리고는 또다시 퍼져 나간다. 거녀는 그러한 광경을 느끼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즐거움을 느꼈다. 감각의 무화(無化)는 전혀 불편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그것을 자연스럽게 인식함으로써 끝없는 마음의 평안을 손에 넣을 수 있었다.

거녀는 이곳을 떠나고 싶지 않았다. 가능하면 영원히 이 안에서 요정처럼 떠다니고 싶었다. 중력도 공간도 규칙도 책임도, 나아가서 그 어느 것도 그녀를 구속하지 못하는 그 영원(永遠)의 미로를 끝없이 헤쳐 나가고 싶었다.

갑자기 미로의 위편에서 -곧 그 방향은 의미를 잃고 새로운 방향으로 바뀌었지만- 뭔가 정체를 알 수 없는 형광빛의 부정형(不定形) 스파크가 발생했다. 위치는 끊임없이 바뀌었지만 그것이 발산하는 이유모를 중압감은 전혀 줄어들지 않고 배가(倍加)되어 가고 있었다. 거녀의 활기에 차 있던 정신이 움츠러들었다. 불안감이 서서히 그녀의 마음 속에 퍼져나가고 있었다.

실수로 물 속에 떨어진 푸른 잉크 한 방울처럼 서서히, 그러나 확실하게.

스파크의 중심으로부터 뭔가 굉장히 빠른 개체(個體)들이 마치 남의 집 대문을 억지로 비틀어 열고 뛰어들어오듯 난폭하게 튀어나왔다. 그것들은 거녀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빛의 미로 속으로 날아들어와 무방비상태로 떠 있던 거녀의 가녀린 몸을 차례로 후려치고 지나갔다가 다시 날아와서 같은 공격을 반복했다.

‘.......아파!’

거녀는 여기서도 고통을 느낄 수 있다는 것에 대해 놀라고 당황해하고 있었다.

‘.......누가? ...어째서 나를? ...왜?’

거녀는 어떻게든 공격을 면하려고 끈질기게 몸을 피하면서 보이지 않는 공격자들을 향해 모든 감각을 집중했다. 사방으로 뻗어나간 감각의 거미줄을 통해 어떠한 상(像)이 거녀의 사고 중추로 전달되었다. 그것은...

‘.......이건, ......말도 안돼........!’

거녀의 정신 한구석에 당혹감이 끼여들었다. 때를 같이하여 공격자들이 자기들 주위에 둘러쳐져 있던 노이즈를 걷어내고 더욱 생생한 모습으로 형상화되었다.

‘......정말로 말도 안돼...... 어째서, 어째서 이래야 하는거야!!!’

건달사우르스가 네 다리를 기운차게 움직이며 앞으로 다가와 회색의 숨결을 내뿜었다. 제오니스 성인이 집게발을 쩔꺽거리며 위로 올라서서 휴대용 입자빔을 조준했다. 네드리드리가 크게 날개짓을 하면서 소리없는 포효를 내지른다. 사텔라이트가 안테나로 가득한 동체를 구불구불거리며 바늘미사일을 갈긴다. 인큐버스가 잉큐의 대군단을 이끌고 다가오면서 냉기에 충만한 눈보라를 내뿜는다. 럭키펫-1이 가시돋힌 꼬리를 휘저으며 나지막하게 그르렁거린다. 뉴킬리오나이트가 길다란 몸통을 꿈틀거리면서 강산성의 수액을 뱉아낸다. 가짜 울트라면과 히메가 나란히 손을 잡고 그것을 비웃듯이 내려다본다.

‘......이젠, 어떡해야 하지? 나는...?’

라하세르의 편안한 단꿈은 순식간에 디지털의 악몽으로 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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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트라하 ― 별에서 온 여왕

ウルトラハ ― 星からの女王さま

(C)央久プロ․NOW․ウルトラハ製作委員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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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EW  OPENING  :  ECLIPSE  ★



갑자기 세상을 뒤덮는 검은 어둠

이리저리 무너지는 자연의 균형

사방을 둘러봐도 의지할 곳 없네

믿을 건 오직 나의 용기뿐! (Ultraha)


절대로 물러서지도 도망치지도 않아

여기서 돌아봐도 동정받을 수 없어

남들을 바라봐도 위로받을 수 없어

두려움만 퍼져나갈뿐! (Ultraha)


불타올라라 나의 용기 세상을 밝히는 등불

솟아올라라 나의 희망 사랑을 지키는 미소!

어둠 속에 남겨져서 홀로 싸운다 해도

나는 포기하지 않아 (Never Give Up!)


부활하여라 나의 광채 어둠을 부수는 불꽃

뛰어넘어라 나의 한계 목숨을 걸고서 돌진!

절망 속에 방황하고 주저앉는다 해도

나는 다시 일어설 거야 (Just Carry 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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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화 첫키스는 누구와?

第12話 『ファ―スト․キスはだれ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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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깨어나지 못했다고요? 벌써 11일이나 지났을텐데...”

하라대원이 설록차가 담긴 종이컵을 두 개 들고 와서 상대방에게 하나를 건네주며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그들은 본부 옥상의 간이 휴게실에 와 있었다.

동거녀는 여전히 혼수상태에 빠진 채 병상에 누워 있었다. 쇠약해진 건강은 어느정도 회복되었고 몸의 다른 부분도 말끔히 나아가고 있었지만, 어째서인지 의식은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뇌사상태도 아니었다. 뇌는 멀쩡하게 살아 있었지만, 계속 잠만 자고 있다는 의미였다.

“이건 그냥 느낌이지만, 어쩐지 본인이 깨어나는 걸 거부하는 것처럼 보여요.”

순박하고 소탈한 얼굴을 한 구급반의 터줏대감 미나대원이 대답한다. 지난 며칠동안 보고서 작성하랴 동거녀 돌보랴 여러 가지로 바빴던 탓인지 안색이 영 좋지를 않다. 하라대원이 다소 놀란 표정을 지으며 말꼬리를 잡았다.

“...‘거부’라고요?”

“그냥 그애를 간호하고 있자니 그런 느낌이 드는 것 뿐이에요. 뭔가에 겁먹어서 잔뜩 움츠린 토끼마냥, 더욱 더 깊숙하게 안으로만 파고들어버리는, 뭐 그런 거죠. 어쩐지 제 눈에는 꼭 그렇게 보여서.”

자기도 모르게 종이컵을 쥔 손을 희미하게 떨면서 두서없이 말을 이어나가는 미나대원의 얼굴에 그늘이 진 것을 하라대원은 놓치지 않았다. 다정한 큰언니같이 마음이 넓은 미나대원은 동거녀를 특히 막내동생처럼 귀여워했다.

“거부할만한 이유라도 있었나요? 정신적인 고민이라던가...”

“그걸 잘 모르겠어요. 그애는 그다지 고민거리같은 게 있어 보이지를 않았거든요. 오히려 우리가 걱정하고 있을 때마다 불쑥 나타나서는 우리를 위로할 정도였으니까요. 아무리 어려운 상황이라도 꼭 분위기를 밝게 하려고 무진 애를 쓰고는 했죠. 때로는 그게 좀 지나쳐서 박사님에게 꾸중을 무지하게 듣기도 했지만...”

미나대원의 피곤한 얼굴에 잠깐동안 미소가 스쳐지나간다.

“...악의가 있었던 건 아니었고, 언제나 진심으로 도우려고 했던 것 같아요. 그러다가 일이 좀 틀어지면 어김없이 울상이 되어버려서 그럴 때마다 우리가 달라붙어서 달래주어야 했고... 그러는 동안에 우리들도 긴장이 풀려서 저도 모르게 웃어버리고. 그때는 그냥 귀찮은 아이구나 하고 여겼었는데, 생각해보니 세상에 그런 애도 흔치 않은 것 같더라고요.”

하라대원도 얼마 안되는 기간동안 같은 걸 느끼고는 했다. 묘하게 존재감이 희박한 아이라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꽤 사람들을 신경써 주고, 분위기를 바꾸려고 애쓰는, 약간은 맹하지만 좋은 아이. 있을 때는 그런가보다 하지만, 정작 없어지고 나면 왠지 허전한 그런 아이.

그러고보니 동거녀가 병상에 들어박힌 이후로 PETS의 분위기가 묘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별로 중요한 사람도 아닌 것 같은데, 어째서 그 사람 하나 때문에 이렇게 공기가 달라져버리는 걸까. 처음에는 구급반만 그랬으나, 점차 그러한 분위기가 본부 전체로 알게모르게 퍼져나가는 것이었다.

거녀의 엉터리 처방과 무모한 치료로 인한 가벼운 소동, 거녀가 여기저기에 바쁘게 운반해 가는 도시락과 당근주스의 달그락거리는 소리, 거녀가 눈치없이 꺼낸 말 때문에 E-M반응탄처럼 폭발하여 길길이 날뛰는 무휼박사의 아우성, 실수연발의 거녀를 놀려대며 깔깔거리는 미나와 선림의 수다, 거녀의 끝없는 호기심에 답하여 여러 가지를 설명해주다가 식사를 못하고 마는 PETS대원들. 이런 사소한 것들이 마치 정화기를 거쳐 나오는 신선한 공기처럼 주변을 맴돌면서 본부의 분위기를 밝게 해오는데 일조했던 것인데, 지금은 그것들이 모두 빠져 있었다. 그렇다고는 해도, 이건 정말 너무했다.

“아무튼 걱정이네요. 빨리 깨어나야 의무반도 정상을 되찾고 미나씨도 잠 좀 자게 될텐데...”

그다지 위로가 된다고는 할 수 없는 하라대원의 무미건조한 말투. 그러나 실은 이 정도도 하라대원으로서는 대단히 마음을 써 주는 편이라는 사실을 미나도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다. 그리고 거녀에 대한 하라의 걱정도.

“하라씨도 그애가 깨어나길 기다리는 것 같은데, 뭐 다른 이유라도?”

“그럴리가요. 그냥 같은 동료로서 걱정하는 거고, 그건 우리 모두가 마찬가지잖아요.”

“그건 그래요.”

그러나 하라대원은 차마 거녀에게 뭔가를 물어보고 싶어서, 라고는 말할 수 없었다. 병상에 누워있는 환자에 대해 어떤 의혹을 품고 있다는 것 자체가 깨끗하지 못하게 여겨졌던 것이다. 하라대원은 그 정도로 결백한 사람이었다.

하라대원은 설록차를 다 마시고는 종이컵을 구겨서 눈에 띄게 신경질적인 동작으로 옆에 있는 휴지통에 던져넣었다. 휴지통 안에 가득한 쓰레기들이 마치 자기 마음 속의 앙금처럼 보여서 기분나빴다. 미나대원은 그런 하라대원의 모습을 보고 뭔가 있구나, 라고 느꼈지만 예의상 그만 묻기로 했다.

그러한 사려깊음 또한 미나대원의 미덕이었다.





지구와 태양 사이의 어느 지점에 위치하는, 적막하고 쓸쓸한 우주공간.

지구로부터 1억 킬로미터는 족히 떨어진 이곳에 자연물로는 보이지 않는 기괴한 물체 몇 개가 종합선물세트처럼 한데 잘 묶인 채 서서히 떠 다니고 있다. 바로 며칠전에 그 성난 거인의 힘에 의해 지구로부터 추방당한, 6마리의 변종 잉큐들이었다.

태양 표면에서는 때때로 플레어의 대폭발이 일어난다. 심한 폭발이 일어날 경우에는 플라즈마가 급격히 팽창하거나 코로나 루프가 자기력에 의해 심하게 요동쳐서, 강력한 충격파가 발생하기도 한다. 큰 플레어에서는 코로나의 자기장 구조가 대규모로 변화하기 때문에, 그로 인해 거대한 플라즈마의 구름이 행성간 공간으로 방출되는 현상도 일어난다. 이 플라즈마의 구름이 우연히 지구쪽을 향하여 튀어나왔을 경우, 약 이틀 후에 지구에 도달하여 지구의 자기권을 교란하고 자기폭풍을 일으키기도 한다. 문제의 플라즈마 구름이 태양의 강렬한 복사열과 함께 잉큐들을 직격했을 때, 누구도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 이글거리는 거대한 열원(熱源)이 미치는, 설명할 수 없는 작용으로 인해, 잉큐들의 표면이 갑작스럽게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6개의 잉큐들이 녹아서 하나의 커다란 얼음덩어리로 합쳐짐에 따라, 그 얼음 안에 함유되어 있던 나노머신들도 예정에 없던 제2차 변이(變異)를 일으키려 하고 있었다.

이윽고 마침내 거대한 하나의 얼음고치로 변해버린 잉큐의 잔해(殘骸)는 스스로 태양으로부터 에너지를 얻어낼만큼 충분히 복잡한 에너지 변환 기관을 생성하게 되었다. 마치 살아있는 생물처럼 꿈틀거리며 탐욕스럽게 태양빛을 집어삼키던 얼음고치는, 이윽고 자체 내에서 반발 필드를 발생시켜 태양으로부터 점점 멀어지기 시작했다. 얼음고치의 거칠거칠한 표면이 검푸른빛을 띤 형광색과 샛노란빛을 띤 연록색 사이를 오락가락하며 의미심장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 물체는 한치의 오차도 없이 정확하게 지구 쪽으로 접근하고 있었다.





거녀는, 아니 라하세르는 혼란에 빠져서 미로를 통하여 도망치고 있었다.

추적자들은 계속해서 앞뒤를 다투어 그녀가 가는 곳으로 쫓아오는 중이었다. 앞뒤, 위아래, 좌우가 불규칙적으로 뒤바뀌기 때문에 뒤에서 쫓아오던 녀석들이 갑자기 앞으로 와 있기도 하고, 아래쪽에서 부딪쳐오던 녀석을 막으려 하니까 어느새 왼편으로부터 격돌해 오기도 하는 등, 이상한 추격전이 계속되었다. 부딪치고 상처입으며 끝없이 도망치던 거녀는 ‘앞’으로 가려는 의지가 강하게 집중될수록 방향이 랜덤으로 바뀌는 현상이 차츰 줄어든다는 것을 알아챘다. 현실의 고통에 해당하는 감각은 결여되어 있었지만 그에 상응하는 무언가가 쉴새없이 거녀의 마음을 파고들어 그녀를 지치게 만들었다. 보이지 않는 실리콘의 통로 위를 나비처럼 가볍게 떠다니던 그녀의 몸이 점점 쇳덩이를 단 것처럼 무거워지고, 도망가는 속도도 눈에 띄게 느려지고 있었다. 그러는 동안에 추적자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마구잡이로 달려들어 각자의 공격 기술로 그녀를 사정없이 유린했다. 건달사우르스의 농축비듬이, 제오니스 성인의 집게날과 입자빔이, 네드리드리의 광포한 휘둘러치기가, 사텔라이트의 바늘미사일과 공간대포가, 인큐버스의 냉동광선이, 럭키펫의 전격파(電擊波)가, 뉴킬리오나이트의 날카로운 뿔과 유황 안개가, 그리고 가짜 울트라면의 레드 핫 사이클론이 몰려왔다. 거녀는 현실에서는 꿈도 못 꿀 90도 직각선회비행이라던가 ‘ㄷ’자형 급선회비행 등을 적절히 응용하여 할 수 있는 한 최대한의 회피를 하려 하고 있었지만, 결국 히메의 광채찍에 전신을 휘감기면서 공중에 무방비로 매달린 꼴이 되어, 더 이상 도망갈 수도 없는 처지가 되고 말았다.

//어딜 가려고 하지, 라하? 너는 여기서 죽어야 해♥//

‘히메.... 어째서?’

//꼭 이유가 필요할까? 너는 언제나 도망칠 생각만 하지? 그것만으로도 너는 우리 일족에게 폐를 끼치고 있어! 너처럼 멍청한 아이가 여왕이 되려고 하기 때문에 될 일도 안되는 거야! 알겠어, 어리광만 부리는 공주님?//

‘그렇지만... 나는...’

//변명은 필요없어! 단숨에 끝날테니 전혀 아프지 않을 거야♥ 그 뒤에는... 진정으로 네가 바라던 영원한 잠, 영원한 망각이 기다리고 있지! 어때, 정말로 네가 바라던 것이 바로 그거 아니었니? 이제와서 부정할 생각은 아니겠지?//

순간적으로 그래요, 라고 대답하려던 라하세르의 의식에...

뭔가 다른 감정이 생겨났다. 비참함, 억울함, 오기, 그리고 분노.

‘아니에요! 나는 그런 거 바라지 않아요. 히메가 틀린 거예요! 난...’

//변명은 듣지 않겠다고 했지!//

히메가 격렬한 동작으로 거녀의 몸을 아래쪽으로 팽개치며 채찍을 거두어들이는 것과 동시에, 상하좌우를 둘러싸고 기다리고 있던 괴수들이 일제히 공격을 개시, 거녀의 연약한 정신체는 피투성이가 되어, 더 이상 날아오를 힘을 잃고 떨어지기 시작했다. 어느새 눈앞에 있던 거대한 미로는 연기처럼 사라지고, 오로지 깊이를 알 수 없는 거대한 구덩이만이 남아, 힘없이 떨어져내리는 거녀를 세차게 세차게 끌어당기고 있었다. 아래로, 아래로, 또 아래로.

그야말로 번뇌의 무저갱(無低坑)속에서 펼쳐지는 끝없는 자유낙하의 퍼포먼스.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누구도 듣지 못할 거녀의 비명만이 노이즈의 간섭을 뚫고 울려퍼졌다.





마침내 지구 근처까지 날아온 의문의 얼음고치는 대기권에 진입하기에 앞서, 마찰열로 인한 손실을 막기 위해 반발 필드를 응용한 대전 방어벽을 주변에 펼치고 진입 각도를 스스로 조정하는 프로세스를 거치고 있었다. AOL의 감시 위성이 뭔가 수상한 움직임을 눈치채고 지상기지에 통보하지만 이미 사태는 그들의 손에서 벗어난 지 오래였다. 얼음고치의 최종 목적지는 앙끄시, 정확히 말해서 PETS본부가 있는 앙끄시 교외였던 것이다.

“어쩐지 이번 여름에는 유달리 얼음 때문에 골치를 썩이게 된단 말이야.”

“그래도 시원하잖아요. 만약에 말이죠, 온몸이 불덩이인 괴수가 나타난다고 상상해보세요. 가까이 가기도 싫어질 걸요.”

물론 이에 대해 20분만에 연락을 받은 PETS본부는 나름대로의 대책을 세우기 위해 고심하고 있었다. 신속한 대책회의 결과, 얼음고치의 속성과 목적을 알아내기 위한 조사를 제1목표로, 그리고 그 목적이 본부 파괴일 경우를 상정한 대항전을 제2목표로 하는 방어작전이 세워졌고, 본부건물 주변에는 급히 출동한 방위군 장갑차부대와 한랭지전용의 백곰부대가 긴급 배치되었다. 그리고 2중 3중의 바리케이트로 둘러싸인 본부 안에서는 부상으로 인해 비상대기중인 하라대원을 제외한 전 멤버가 각자 지급된 무기와 교환용 비상탄환을 점검하며 전투태세를 갖추는 중이었다. 얼마전의 대(對)바드니스 성인 전투를 교훈 삼아 이번에는 정비반 및 일반대원은 물론, 영양관리실장(아직도 입심은 건재하다)과 경비보안실장(아직도 드라마를 즐겨본다)에게도 유사시를 대비하여 전투장비를 지급할 정도였다.

다만 여전히 의식불명 상태인 어떤 사람(...)을 돌보는 중인 의무반의 대원들에게만은 방어전에 직접 나서지 않아도 된다는 특별허가가 떨어졌다. 그들은 2주일 이상이나 의식을 회복하지 못하고 피하주사로만 생명을 이어가는 그녀의 상태를 염려하여, 어떻게든 의식을 일깨우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중이었다. 몸은 건강을 회복해가고 있으나 어찌된 일인지 정신이 깨어나려 하지를 않는다는 진단에 근거, 무휼박사가 몸소 개발한 자가정신탐사 프로그램을 그녀의 뇌에 연동시켜, 거부의 원인을 찾아내어 환자 스스로 깨어나게끔 하자는 계획을 실행중인 것이었다.

문제는 프로그램의 처리용량이 만만찮다는 것이어서, 여러 가지 조정작업으로 바쁜 본부의 메인컴퓨터로는 감당하기 어렵다는 점이었다. 그러나 피요대원의 한마디가 모든 문제를 해결한 것이었다.

“우리에겐 하늘의 응원군이 있지 않아요?”

ANC-98의 하이아 사령관도 어메장관의 부탁을 받고 흔쾌히 승낙, 동거녀 부활 프로젝트(...)는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었다.

그놈의 얼음덩이만 떨어지지 않았다면 말이지, 장관은 귀찮다는 표정으로 담뱃재를 털며 생각했다.

문제의 얼음고치는 그로부터 약 23분 14초 후에 앙끄시 교외에 낙하했다.





동거녀의 의식은 끝없는 나락을 향해 무서운 속도로 떨어져내리고 있었다.

‘이제 나는... 어떻게...되는 걸까...’

점점 흐려져 가는 의식 속에서 거녀는 이렇게 되뇌일 뿐이었다. 이대로 한없이 있지도 않은 바닥을 향해 떨어져 내려가는 것만을 반복하며 무한한 시간을 보내야 하는 것일까, 아니면 어느 한 시점에 바닥이라 불릴 만한 어딘가에 닿아서 완전한 망각으로 빠져들게 되는 것일까, 아무리 생각해봐도 답이 나오지 않는, 아주 까다로운 문제였다. 거녀의 마음이 점점 차가워지고 있었다.

그런 게 무슨 소용이야, 갑자기 이런 말이 마음 속으로부터 울려나왔다.

어떻게 되든 나는 이제 끝인거야, 나는 애초부터 바보였고 앞으로도 바보일테니까, 차라리 이렇게 끝나버리는게 좋을지도 몰라... 그래, 내가 정말로 원한 게 이거였을지도 모르겠어, 끝없이 도망치기만 하는 것, 그래서 결국은, 도망치는 것으로부터도 도망칠 수 없게 되어버리는 것... 영원(永遠)을 향한 도피(逃避).

그게 내게 어울려. 나는...... 여왕이 될 수 없는 아이였던 거야, 처음부터.

<<어째서 그렇게 생각하는 거죠?>>

바로 그때였다, 거녀의 마음속에 또 하나의 목소리가 울려퍼진 것은.

‘누구......?’

<<어째서 자신을 그렇게 가두어 두려고만 하는 거죠? 자신이 정말로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 알아보지도 않고서, 그렇게 도망가려고만 하면 뭐가 달라지죠?>>

정체 모를 목소리는 따스하지만 준엄한 어조로 그녀의 의식에 부드럽게 파고들어 질책을 가하고 있었다.

‘어디서 말하는 거지? 나를 알고 있어?’

<<결국 당신도 그것밖에는 안 되는 사람이었나요? 우리가 헤어질 때 ‘서로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자’고 말한 것은, 당신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었던 것이었나요? 라하세르 바스타젠 드 올트란 6세 공주님......!>>

‘너는......’

순간, 밑을 향해서 계속 떨어져내리던 거녀의 마음 속에 어떤 변화가 생겼다.

‘...누군지 알 것 같아... 그동안, 나를 쭉 지켜봐주었던 거야? 내가 남들에게 폐만 끼치고, 실수만 저지르고, 바보같은 짓만 해왔는데도? ......나를?’

<<그렇게 자신을 비하하지 마세요. 당신은 당신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멋진 사람이에요. 그리고 만약에 그렇지 않다고 하더라도, 당신은... 변함없는 나의 친구니까요. ......라하세르♡>>

나는 혼자가 아니었어! 나는...

갑자기 거녀의 이미지가 허공에 정지했다. 마치 시간과 공간의 흐름이 전부 멈추어버린 것처럼 순식간에. (이 부분에서 360。 카메라 기법을 사용!)

거녀는 가만히 떠 있었다. 더 이상 아래로부터 끌어당기는 힘은 느껴지지 않았다. 오로지 다시 올라가야겠다는 의욕이 용솟음칠 뿐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거녀는, 아니 라하는 다시 위로 날아올랐다.

새처럼 자유롭게.





“젠장! 화염방사기가 듣지를 않아! 보기보다 굉장한 녀석이다!”

백곰부대의 지휘를 맡은 신우근 대위(그동안 승진했다)는 쌍안경으로 목표물을 관찰하며 짜증스러운 목소리로 소리를 질렀다. 뭔가 일이 꼬여 가고 있었다.

마치 정확히 계산이라도 한 것처럼 PETS본부 3킬로미터 전방에 별 충격파 없이 강하해온 문제의 얼음고치는 방위군 탱크들의 공격을 비웃기라도 하듯 별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었다. 뭔가 무르익기를 기다리듯이, 비석처럼 지면에 세로로 처박힌 채 특제 화염방사기와 신형 증기방열포의 위력에도 꿈쩍하지 않고 묵묵히 시간만 잡아먹고 있었다.

본부 안에서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PETS대원들 역시 초조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저정도로 깨지지도 않고 버티는걸 보면 보통 얼음덩이는 아닌게 분명한데, 어째서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고 기다리기만 하는 걸까?

“...마치, 부화를 기다리는 새의 알처럼...”

숙소에서 재활치료를 겸한 체조를 하고 있던 하라대원이 무표정하게 중얼거렸다. 이런 상황에서도 자기 몸을 충실히 다져두는 것이 하라대원의 성격이었다.

그런데, 위의 말을 몇번 되뇌이던 하라대원의 표정이 갑자기 바뀌었다.

“...부화? 설마! 그렇다면...”

하라대원은 당장에 체조를 때려치우고 급히 베이지색 환자복에서 은색 제복으로 갈아입은 뒤 침대 밑에 감춰둔 개인화기를 찾아내어 내려갈 준비를 서둘렀다. 마음이 급하다 보니 평소에는 몇초만에 착용할 수 있었던 보호용구도 잘 몸에 들어맞지가 않아서 초조했다. 하라대원은 준비를 끝마치자마자 복도로 달려나갔다.

“늦지 말아야 할텐데...... 잘못하면...”

그 ‘잘못하면’이 눈앞에서 벌어지려 하고 있었다. 화염의 고에너지를 충분히 받아들인 얼음고치는 본래의 임무를 다하여, 파파팍 하는 소리와 함께 양옆으로 갈라지고 있었다. 장관 이하 PETS멤버들은 그 속에서 뭐가 나오든 간에 절대로 놀라지 않겠노라고 속으로 다짐하고 핸드미사일의 조준을 맞추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또 한 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얼음고치 안에서 저벅저벅 걸어나온 것은............

울트라하를 꼭 빼닮은 요염한 자태의 「얼음의 거인」이었던 것이다!

“세상에 이럴 수가!”

유성대장이 DD건을 위로 치켜들며 당혹감에 가득한 목소리로 소리질렀다. 동시에 장관이 침착하게, 그러나 다소의 낭패감이 배어나오는 목소리로, 인터컴에 대고 명령을 내렸다.

“전력을 집중하여 포격개시!”

그들의 본부를 지키기 위한 진짜 전투가 지금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타락의 구덩이 위로 날아올라 다시 빛의 미로가 펼쳐진 그곳으로 돌아온 거녀는 어느 사이엔가 울트라하의 본래 모습으로 돌아와, 당황한 눈으로 그녀를 지켜보며 반격을 가하려 하는 괴수들 앞에 위풍당당하게 떠 있었다. 그들이 또다시 한꺼번에 몰려오며 공격을 가하려고 하는 순간!

‘이제는 당하고만 있지 않겠어! 증! 폭! 세르바스타-----------------!’

라하는 괴수들이 대처하기도 어려울 만큼 재빠른 스피드로 사방을 날아다니며 그들의 공격을 차단하고 혼을 빼놓을 정도로 강렬한 킥과 펀치를 골고루 사이좋게 먹여 준 다음, 그들을 한곳에 모아 황색의 강력한 에너지 필드 안에 가두고는, 머리의 램프에서 발산되어 나오는 강렬한 빛의 에너지를 두 손에 모아 하늘을 향해 기도를 드리는 듯한 동작을 취하면서, 다음 순간 왼손을 앞으로 뻗고, 오른손을 그 뒤에 위치시킨 뒤, 오른손을 왼손 쪽으로 이동시켜 두 손이 부딪히게 함으로써 에너지를 증폭, 그 증폭된 에너지를 그대로 에너지 필드에 전이(轉移)시킴으로써 그 안에 들어있던 괴수들을 한꺼번에 날려버린 것이었다.

현실에서라면 생명의 위협 때문에 좀처럼 쓰지 않는 초필살기이다.

생명의 숨결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노이즈의 무더기로 변하면서 사방으로 흩어져버리는 괴수들의 잔해. 라하는 다시 지구인 동거녀의 모습으로 돌아와서 그 허무한 파멸을 냉정한 눈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결국 이곳은 전뇌공간, 의식과 기계가 하나로 연결된 디지털의 세계. 그래, 저 괴물들 또한 지금까지의 내 기억들이 만들어낸 부정적인 나의 모습,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어.

결국 내가 죽기를 바랬던 것은... 나였던 거야. 히메가 아니라...

<<이제는 자신이 생겼나보죠?>>

착잡한 마음으로 자기를 되돌아보고 있던 동거녀의 눈 앞에 어떤 사람의 이미지가 나타났다. 자기보다 약간 어려보이는 깜찍한 소녀의 이미지가.

그 소녀는 마치 이 세상 사람이 아닌 것 같은 맑고 티없는 얼굴을 하고, 생글거리는 눈동자와 장난기어린 입술을 반짝이며 거녀를 사랑스럽게 바라보고 있었다. 거녀는 이미 상대가 누구인지를 깨닫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마음 속에 품고 있었던 말들이 자연스럽게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그렇긴 하지만... 이건 결국 내 생각 속에서만 있었던 일이잖아. 과연 내가 현실로 돌아가도, 지금처럼 잘 할 수 있을까? 난 그게 두려웠어.’

<<자신을 믿으세요. 당신은 충분히 할 수 있어요. 그게 바로 당신인걸요.>>

‘그치만...... 그치만 나...... 어쩐지 아직도 자신이 없어... 정말로 내가 잘해나갈 수 있을까, 정말로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고 여기 남아도 괜찮은 걸까, 정말로 내가 남들에게 떳떳한 그런 존재가 될 수 있는 걸까... 어떻게 생각해야 할지, 어떻게 행동해야 좋을지... 난......’

냉정하게만 보이던 거녀의 두 어깨가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하더니, 결국 거녀는 훌쩍이며 그 자리에 무릎을 꿇고 말았다. 맑은 얼굴의 소녀가 앞으로 다가와서 동거녀의 상반신을 품에 안고 그녀의 머리칼을 가볍게 어루만졌다.

‘......어떻게 해야 좋을지 정말 모르겠어. 그때... 바로 그때, 실수로 본부를 날려버린 이후로 밤마다 나쁜 꿈에 시달리고, 계속 어처구니없는 짓만 되풀이하게 되고, 잘 하려고 하면 할수록 이상하게 꼬이기만 하고... 게다가 내가 가장 좋아하던 히메까지 갑자기 나를 죽일 듯이 공격해 오고, 그때는 정말 미칠 것만 같았어..... 누구와 얘기라도 하고 싶었지만 이곳에서는 아무도 이야기할 사람이 없었어, 나의 정체가 드러나면 안되니까... 유일하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우리 할머니 뿐이지만, 할머니도 일 때문에 바쁘셔서... 그래서...’

소녀는 길잃은 어린아이처럼 계속해서 훌쩍이며 울음섞인 목소리로 털어놓는 거녀의 하소연을 다 이해한다는 얼굴로 묵묵히 듣고만 있었다. 아무런 위로의 말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모든 것을 털어놓고 나자 거녀의 가슴속이 유난히도 따뜻해져 왔다. 차가워지기만 하던 마음을, 굳게 닫혀버리려 하던 마음을 녹일 만큼 따뜻한 기운이 가슴 가득히 퍼져 나갔다.

‘......안시, 말해줘. 나 정말로 여기에 있어도 되는 걸까? 난......’

<<그걸 결정하는 건 당신이에요. 저는 단지 당신의 고민을 들어드리는 것 밖에는 할 수가 없어요. 기억하세요 라하세르. 아무리 힘들고 괴로워도 스스로의 길을 스스로가 결정할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여왕이라는 것을.>>

그 말을 듣는 순간 동거녀의 마음 속에 한줄기 서광이 스치고 지나갔다.

안시는 나를 믿고 있기에, 저런 말을 해줄 수 있는 거야. 나는 믿음을 얻고 있어. 비록 그것이 단 한명의 믿음일지라도, 누구도 알지 못하도록 감춰진 믿음일지라도. 그것은 소중해.

안시는 내 친구니까. 나의 결점까지도 감싸줄 수 있는 그런 친구니까.

친구니까.

거녀, 아니 라하는 드디어 결심을 굳힐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그녀는 우는 것을 멈추고 고개를 약간 들어올려, 자기를 변함없이 자애롭게 바라보고 있는 소녀의 맑고 깊은 눈동자를 마주보았다. 자기를 위로하기 위해 가상으로 만들어진 이미지라고는 해도, 너무나 정교해서 진짜같은 그 눈동자를.

‘안시, 정말로 고마워. 내가 진짜 필요로 했던 것은 어쩌면... 이런 고민을 털어놓고 얘기할 수 있는 그런 친구였을지도 몰라. 네가 아니었으면 난 여전히 어둠 속에서 헤매고 있었을 거야. 너의 은혜, 절대로 잊지 않을게. 절대로.’

소녀가 가뭄 끝에 내리는 단비처럼 시원한 느낌의 미소를 지으며 답한다.

<<천만에요. 저는 단지 당신이 고통을 극복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했을 뿐이고 그것을 해낸 사람은 바로 당신 자신인걸요. 또 만약에 당신이 회복되지 못했었다면 저로서도 많은 손실이 있었을 거고요. 저는 당연히 할 일을 한 것 뿐이죠. 그런 뜻에서...... 축하해요, 라하세르♡>>

‘아무튼 안시 덕분인 건 사실이잖아. 어떻게 보답하면 좋을지...’

<<정 그러시다면 수고비는 분당 만원이에요♡>>

‘안시이.........(-_-)’

<<농담이에요 농담. 하여간에 이번 일 때문에 저도 꽤 힘들었어요. 어메장관님 부탁도 있고 해서 사용허가가 나기는 했지만, 위성통신을 통해서 PETS본부와 연결하는 것도 보통일이 아니었고, 또 박사님의 프로그램을 돌리기 위해서뿐만 아니라, 지구인과는 좀 다른 당신의 심층심리를 추적하기 위해 제 회로의 절반을 동원했어야 했거든요. 물론 시험적인 장치였으니 데이터 수집으로서는 꽤 좋은 케이스가 되기는 했지만.>>

현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거녀는 갑자기 바깥 일이 궁금해졌다.

‘이제는 깨어나봐야 할 것 같애. 혹시 밖에 무슨 일이라도 있어? 얼마동안 여기에 머물렀는지도 기억이 안 나. 우웅.’

<<원하지 않더라도 당신은 지금 깨어나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이에요. 당신이 전에 지키지 못했던 것을 이번에야말로 지켜야 하니까요. 자아 그럼...>>

거녀는 무슨 뜻인지 알 수가 없어서 눈만 멀뚱멀뚱하고 있었다. 바로 그때,

<<......조심하세요, 친애하는 라하세르. 나의 여왕님♡>>

소녀는 당황하는 거녀의 표정은 전혀 생각지도 않고 거녀의 얼굴에 자기의 얼굴을 바짝 들이대더니 두 손으로 그녀의 턱을 살포시 받쳐들고 가만히 자기의 입술을 거녀의 입술에 겹치는 것이었다!

‘................?!’

파팟! 눈부신 빛과 함께, 거녀는 깨어났다. 의무실의 치료 캡슐 안에서.

선림과 미나, 기타 대원들의 환호성으로 거녀는 귀가 맹맹할 지경이었다. 오직 무휼박사만이 냉정하게 (그러나 안도의 한숨을 쉬며) 치료 캡슐의 재조정을 수행했다. 적어도 이걸로써 걱정거리 한 가지는 덜게 된 것이다.





전황은 절망적이었다. 편의상 ‘얼음의 여왕’이라 불리게 된 그 괴물은 방위군의 전차부대와 백곰부대의 병력을 가볍게 밟아버리고는, PETS대원들의 치열한 공격에도 끄떡하지 않고 계속 전진, 3중 방어선 중에서 이미 2개의 방어선을 때려부수고 이미 본부 바로 앞까지 와 있었다. ‘얼음의 여왕’이 건방진 포즈로 휘두르는 얼음채찍과 아이스체인이 본부건물의 바깥을 매몰차게 할퀴고 지나갔다. 덕분에 그 앞에서 항전하고 있던 PETS대원들은 떨어지는 파편들을 피해 이리뛰고 저리뛰고 난리가 났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그 속썩이던 동거녀가 제시간에 깨어나 줘서 의무반이 그녀를 자동 회복 장치에 맡기고 밖으로 달려나와 부상자를 돌볼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었다. 비상시인지라, 하라대원도 아까 나왔던 차림 그대로 전투에 임하고 있었다. 어찌되었든 간에, 기껏 새로 지은 건물을 또다시 망가뜨리게 둘 수는 없다. 모두의 마음에는 결사항전을 위한 각오가 충만해 있었다.

“또다시 본부가 무너지면 우리는 1년의 무임금 추가노동을 또 해야 한다고!”

“옳소! 한 번만 하면 됐지, 또 막노동을 하는건 지겨워! 그럼그럼!”

그러한 각오는 정비반 개발반 의무반 사무반을 가리지 않은 공통적인 것이었다. 건물을 새로 지으면서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이것만 봐도 알 수 있다.

...그러나 ‘얼음의 여왕’을 막아내는 것에는 각오 이상의 것이 필요했다. 울트라하와 맞먹는 40미터급의 거인인데다 힘도 대단하고 채찍과 사슬을 병용하여 사람을 후리는(...) 무서운 기술을 소유하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잉큐와는 달리 위력은 약하지만 자유자재로 방향조절이 가능한 고밀도 냉동광선을 무기로 하고 있었다. 어떤 곳은 얼어붙고 어떤 곳은 금이 가고 어떤 곳은 껍데기가 날아가고 본부건물의 모양새는 시간이 갈수록 기괴해져가고 있었다. 몇몇 통로가 폐쇄되었고 몇몇 출입구가 사용할 수 없게 되었다. 펫츠이글의 정비도 아직 제대로 끝나지 않은 터라서 출동에는 무리가 있었다. 특히 지난 잉큐戰에서 무참하게 깨진 β호는 처음부터 끝까지 다시 만드는 것에 가까운 오버홀을 받는 중이어서 출동은 아무래도 불가능했다.

그럼에도 겁없는 우리의 PETS는 방위군에서 추가 출동 대금 대신 빌려온 핸드미사일과 숄더런처를 코만도처럼 구사하며 이리저리 자리를 바꿔가면서 ‘얼음의 여왕’을 괴롭히고 있었다. 옥상 위에서 제1탄을 발사하여 그쪽을 노리게 되며는 다시 2층에서 제2탄을 발사하여 주의를 돌리고 다시 주의가 흐트러진 틈을 타서 뒤편에서 제3탄을 발사하고, 동시에 건물 주변에 펴놓은 까마귀 포획용 철그물(...)에 전기를 흘려보내어 녀석을 근접공격하는 입체적인 전술이 동원되었다. 그렇지만 그것도 근본적인 대책은 아니어서, 어떻게 녀석을 물리칠까 하는 문제로 장관과 피요대원이 특히 고심하고 있었다.

“너무 가까워서 E-M반응탄을 쓸 수는 없고...”

“또 체표면에 특수 코팅이 되어있는지라 열로써 녹이는것도 한계가 있습니다.”

“폭발물을 설치하는 것은 어떤가?”

“가는 방향에 폭발물을 매설하고 유인하는 것은 성공확률이 낮습니다. 저쪽도 지능이란게 있는 듯 하기 때문에 피해갈 가능성이 더...”

“아니, 내 말은 저녀석 몸뚱이 위에 직접 설치한다면?”

“그러자면 결사대를 조직해야 할텐데 여기 있는 공무원들 중에 누가 그런 일을 줄서서 하려고 들겠습니까?”

“내가 하겠어. 방위군 훈련학교 시절에 암벽등반을 한 일도 있고, 폭발물에 대해서도 웬만큼 배웠으니까.”

“하라선배! 무립니다. 아직 다리부상이 완치되지도 않았는데!”

“그래, 하라군이 맡기에는 너무 위험하다. 내가 가겠다.”

“대장님, 저도 가겠습니다! 아직 쌩쌩하니 하라선배 대신에 제가, 핫핫핫!”

“유태씨, 너무 흥분하면 혈압 올라가요. 이건 위험한 일이에요.”

“이봐 천재양, 나를 무시하지 마라! 이래봬도 학교시절에 등산부였어!”

“아무튼 누가 할건지는 좀 있다가 정하고, 폭발물부터 이리로 들고오게. 가능한한 동원할 수 있는 것은 다 동원하도록 해야지.”

“그것만은 제가 하죠. 부상당했어도 할수있을만큼 간단하니까.”

“그럼 하라군에게 맡긴다. 쓸데없는 짓은 말고 폭발물을 가져오기만 해다오!”

“장관님, 회의중에는 금연입니다.”

“지금 그거 따질 땐가! ....으읍, 쿨럭 쿨럭 ;;;”

‘얼음의 여왕’을 모두가 달라붙어 정신없게 만드는 동안, 하라대원은 건물 안으로 비호처럼 (그러나 부상을 입어서 평소때보다는 느리게) 달려들어가 폭발물 저장고로 향했다. 물론 장관의 특별허가증과 저장고를 열기 위한 카드키를 받아든 뒤의 일이다. 한참 뛰어서 3층의 의무실 근처를 지날 때, 그녀의 앞쪽 복도로 누군가가 달려가는 것이 보였다. 이상하네, 밖에서 전투중인 인원을 빼면 모두 퇴근했거나 대피중일텐데... 그럼 저건 누구?

조명이 꺼져서 어두워진 복도를 뚫고 그 수상한 그림자 쪽으로 달려가본 하라대원은 점차 창문가에 가까워지면서 빛이 들어와서 밝아지는 복도를 바라보며 놀라움에 가득차 숨을 들이쉬었다.

바로 등신대(等身大)의 울트라하가 그녀 앞에서 달려가고 있었던 것이다!

“이봐, 잠깐만! 거기 기다려!”

아직 부상이 낫지 않아 약간 절뚝거리는 다리를 이끌고 하라대원이 그쪽으로 접근하며 소리질렀다. 이번에야말로 확실히 따져보리라. 이번에야말로.

그 소리를 들었는지, 은빛의 외계인이 가만히 고개를 돌려 하라대원 쪽을 바라다보았다. 가면같은 얼굴이라 표정을 알 수는 없었지만 하라대원의 육감으로는 어쩐지 당황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나에게... 뭔가를 들켰기 때문에?

“묻고 싶은 게 있어. 너는 대체 누구지? 왜 우리 앞에만 나타나는 거야?”

그러나 울트라하는 대답하지 않은 채 그녀를 몇초동안 물끄러미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다시 방향을 돌려 창문 쪽으로 달려갔다. 그리고는 놀라서 소리지르며 제지하려는 하라대원의 목소리를 뒤로 하고, 창문 유리를 깨고 바깥으로 용감하게 뛰어내렸다. 그쪽으로 달려가서 창문을 살펴본 하라대원이 중얼거렸다.

“아무리 급해도 창문은 열고 뛰어내려야지. 이번 달 유리값만 해도......... 아니 참, 내가 무슨 소릴 하는거지? 나는 저장고로 가는 길이었는데...”

하라대원은 임무를 생각해내고 오던 길로 돌아섰다.

그러나 바로 그때, ‘얼음의 여왕’이 더블체인을 내리치는 바람에 그쪽 건물의 일부가 큰 손상을 입었고, 하라대원이 있던 3층 일대는 초합금제 셔터로 폐쇄되기 시작했다. 하라대원은 전속력으로 가까운 셔터를 향해 달렸지만, 누군가가 풀어놓은 소방호스에 발이 걸려 우아하게 넘어지고 말았다. 철커덩.

셔터 사이에 갇혀 오도가도 못하게 된 우리의 하라대원.

“......이게 대체 뭐야. 왜 나만 이런 꼴을 당해야 해? 작가, 대답해봐!”

...랄 라라. 라하주세요. (딴청)





“역시, 그녀가 다시 일어선 거예요! 이젠 살았다!”

‘소년’이 웃음기를 되찾았다.

“거참, 속썩이는게 꼭 내가 아는 누군가를 닮았군.”

무휼박사가 이마의 땀을 닦으며 감탄 섞인 눈으로 거인을 바라본다.

밖으로 뛰어내린 라하세르는 건물에 피해를 주지 않도록 안전거리 내에서 깔끔하게 거대화(巨大化)를 마침으로써, ‘얼음의 여왕’에 맞설 준비를 끝냈다. 전번에 건물 안에서 곧바로 거대화해버리는 바람에 PETS본부를 날려먹은 아픈 추억을 가지고 있는 그녀로서는, 정말로 정성들인 변신이 아닐 수 없었다. 그래서 일단 환자인 동거녀가 돌아다니는게 눈에 띄면 곤란하니까 본부 내에서 등신대로 변신한 뒤에, 밖으로 나와서 거대화한 것이다.

//뭐가 어째! 멋대로 남의 치부를 들춰내지 말고 빨리 써!//

...얘가 작가에게 못하는 소리가 없네.

아무튼 그리하여 다시한번 대지에 우뚝 선 무적의 거녀(巨女) 울트라하는 신중하게 거리를 유지하며 상대방의 전력을 탐색하기라도 하듯이 앞뒤로 왔다갔다하기 시작했다. 뜻밖의 응원군에 흥분한 PETS대원들은 온힘을 다해 응원한다.

그러나 ‘얼음의 여왕’은 그렇게 호락호락한 상대가 아니었다. 너무나 차가워서 살을 에이는 듯한 얼음채찍과 아이스더블체인이 피부에 닿자 라하는 저도 모르게 비명을 질렀다. 이미 여러번 나왔듯이 울트라인의 감각으로는 ‘추위’와 그로 인한 고통을 통상의 ‘고통’과 같이 처리할 방법이 없기 때문에, 이 경우 S/M모드로의 전환이 곤란한 것이다. 게다가 상대방의 손가락에서 나오는 필살의 냉동광선은 라하세르에게 있어선 쥐약이나 다름없었다.

얼음채찍에 동체를 묶이고, 아이스체인에 사지를 구속당한 채 본부 앞뜰에 꼴사나운 자세로 드러누워 버린 울트라하의 앞에 버티고 선 ‘얼음의 여왕’은 냉동광선을 최대출력으로 끌어올려서 라하세르의 심장을 관통, 그녀를 끝장내려고 준비하고 있었다. ‘얼음의 여왕’을 이루는 잉큐의 나노머신들은 잉큐들을 물리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그녀를 최대의 위험요소로 판단, 일부러 그녀와 같은 모습을 따서 새로운 형태로 진화한 다음, 진짜 울트라하를 말살하려는 중인 것이다! 얼음채찍의 서늘한 감촉에 고통스러워하며 몸부림치는 울트라하, 과연 이것이 그녀의 최후가 될 것인가?

그때, 라하세르의 마음 속에서는 몇 가지 생각이 또다시 싸우고 있었다.

//......추워. 팔다리가 떨어져나갈 정도로... 아무리 해도... 아무리 해도 추운 것에는 이길 수가 없어...

어떻게 하면 좋지? 이대로 죽는 걸까? 기껏 다시 살아돌아왔는데 하루도 안 돼서 이렇게 죽는 걸까?//

그때, 어디선가 들려오는 듯한 안시의 목소리가 그녀를 일깨웠다.

<<당신이 전에 지키지 못했던 것을, 이번에야말로......>>

//그래! 나는 전에 본부를 지키기는커녕 파괴하고 말았어! 그건 내 실수였어. 어떤 말을 갖다붙여도 분명히 내 잘못이었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대로 포기해도 되는 걸까? ...또다시 내 눈앞에서 본부가 무너지는 것을 보고만 있어야 하는 걸까?

............아니야, 절대 그렇게 두지 않겠어! 절대로!//

그 순간, 라하세르의 전신에서 마치 태양의 그것과도 같은 붉은 빛이 쏟아져나왔다. 그리고 그 붉은 빛은 그대로 열이 되어, 얼음채찍과 아이스체인을 순식간에 녹여버리고, ‘얼음의 여왕’을 주춤하게 할 정도로 뜨거운 열기를 발산했다!

//울트라하----------------------------------다이나마이트!!!//

마치 인간적인 노동환경을 보장해 달라며 분신자살을 선택, 세상을 경악케 했던 옛날의 어떤 노동자처럼, 온몸에 이글거리는 불꽃을 싣고 서서히 일어나 사뿐히 땅을 밟아가며, 놀라 뒷걸음질치고 있는 ‘얼음의 여왕’에게 다가가는 그 모습은, 그야말로 ‘불의 여왕’ 그 자체였다.

그렇다. 울트라하는 지금에 와서야 겨우 추위를 극복한 것이다!

//춥지 않아, 무섭지 않아, 외롭지 않아!!! 자-----------간닷!!!//

불꽃이 넘실대는 울트라하의 전신으로부터 장미꽃 가시가 박힌 불의 채찍이 수십갈래 뻗어나와, 상하좌우를 넘나들며 ‘얼음의 여왕’을 마구 꿰뚫기 시작했다. 당황한 ‘얼음의 여왕’이 냉동광선으로 방패를 만들어 피하려 하지만, 불타는 채찍의 갈래들은 그것마저도 관통하여 본체를 낼름낼름 핥아버린다. ‘얼음의 여왕’이 점점 기운을 잃고 비실거리며 녹아내리기 시작한다.

그리고 결정타! 채찍들을 거두어들인 라하세르는 불타는 몸체를 이끌고 앞으로 돌진하여 ‘얼음의 여왕’을 꽉 껴안고 그 얼굴에 해당하는 부분에 뜨겁고도 정열적인 키스를 퍼붓는다. 자기의 얼어붙은 마음, 부끄러운 과거, 그리고 극복해야만 하는 약점을 모두 다 껴안으려 하는 것처럼, 그리고는 모두 다 불태워버리려 하는 것처럼...

그리고 마침내, ‘얼음의 여왕’은 흔적도 없이 녹아내리고, 그 안의 나노머신들 또한 소립자 단위까지 불타버려 영원히 수복할 수 없게 되었다.

“보았는가 제군!!! 저것이 바로 진정한 열혈이라는 것이다!”

‘얼음의 여왕’을 처리하느라 불꽃을 모두 다 써버린 라하세르가 재빨리 하늘로 날아올라 사라진 뒤에 괜히 흥분한 유성대장이 하늘을 바라보며 소리질렀다. 옆에서 조사차 들른 신우근 대위가 왠지 불쌍하다는 얼굴로 그를 쳐다보고 있는 것은 전혀 생각지 않고서.

한편, 건물 안에서는...

“누가 나좀 꺼내줘요~~~~~~~~~~~~~~~~~~~~~~~~~~~~~~~~~”

하라대원의 우렁차지만 어딘가 모르게 애처로운 비명이 퍼져나가고 있었다.

뜻밖에도, 하라대원은 어둠을 무서워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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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EW  ENDING  :  NEXT  QUEEN ☆



고귀함과 우아함의 향기에 싸여

세상을 발 아래 굴복시킨 그대

하지만 두 뺨 위의 눈물은

무엇을 말하는 걸까요


당당함과 청순함의 광휘를 펼쳐

자유의 노래를 전하는 그대

하지만 그 입술의 떨림은

무엇을 구하는 걸까요


이겨내요 버텨내요 그대의 시련

아무도 함께할수 없는 시간을

다가가요 마주봐요 그대의 약점

지금이 아니면 할수없는 일들을


언젠가 모든 것이 끝나고 나면

사람들은 말하겠죠 그대의 영광

거짓과 악의가 세상 가득 채워도

사람들은 믿고 있어요

그대의 전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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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央久プロ․NOW․ウルトラハ製作委員會  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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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REBOOTING... ▷





-의무실에서는...

“요 깍쟁이. 매번 말도 없이 사라져서 우릴 그렇게나 고생시키더니 이번에는 아주 사람을 잡아라 잡아.”

“그러게 말야. 남들은 더운 날씨에 피서도 못가보고 죽을맛인데 자기는 시원한 캡슐 안에서 2주씩이나 쿨쿨 자구, 사람이 그러면 못써.”

“죄송해요. 또 걱정 끼쳐 드려서...”

“걱정? 하이구! 걱정은 누가 걱정했다고 그래? 네가 죽으면 우리가 부려먹을 사람을 또 구해야 하니까 그런거 뿐이라고. 그렇죠, 미나언니?”

“그래, 나도 솔직히, 이 나이에 시체 치우긴 싫거들랑. 오호호호”

“.............(T_T)”

“그래도 말야, 거녀양. 일단은 다 나았다니 참 기뻐.”

“그래, 잘 돌아왔어. 건강해지면 그동안 꿈꾼 얘기나 해줘. 재미있을것 같애.”

“정말요? 정말로 제가 여기 있어서 기쁘세요?”

“그러엄. 우리가 할 일이 반으로 줄어들잖니. 자, 말이 났으니 말인데, 이 빨랫감하고 저 서류들부터 시작해줘. 거녀양은 착하니까 잘해주겠지, 응?”

“야야, 선림아. 이제 겨우 병상에서 일어난 사람에게 못하는 말이 없구나.”

“오오, 미나언니......”

“그렇게 가벼운 일만 주면 어떻게 하니. 자 여기 의무실 청소당번. 오늘 거녀양 차례인거 알지?”

“..............둘다 너무해... (T_T)”

“애걔걔, 또 울려고 한다. 거녀양은 너무 마음이 약하다니깐.”

“누가 아니래. 농담이야 농담. 이번 주말까지는 푹 쉬어도 돼.”

“정말요? (반짝 반짝)”

“그렇게 말하니까 또 금방 바뀌네. 아직 어려. 우후후후♥”

“귀엽잖니. 내버려 둬라 얘.”

“난 장난감이 아니에요. 가지고 놀지 말아주세요 흑흑”

“알았어 알았어. 참 곤란한 애라니깐.”

“그런데 거녀양, 어제 깨어난 뒤에 어디 나갔었어? 캡슐의 자동기록이 좀 이상한데...?”

“네? 아아, 네, 잠깐 화장실 좀......(^_^)”

“화장실을 30분씩이나 다녀오다니 어디 문제가 있는 거 아냐?”

“아, 아니에요. 그럴리가요.”




-사령실에서는...

“기념파티?”

“그래요. 우리 동료인 거녀양이 눈을 뜬 날이기도 하고 정체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지금 당장은 우리의 호프인 울트라하가 돌아온 날이기도 하니까, 여러 가지로 겸사겸사해서 파티를 좀 열자는 거요. 대원들의 사기 진작도 될거고, 여름 휴가를 못 갔으니 스트레스 해소도 하고.”

“장관님다운 생각입니다만 나는 영 마땅치 않소.”

“왜요?”

“동거녀양은 쓸데없는 무단 근무이탈에다 잦은 결석으로 직장 분위기를 흐려놓은 일이 많아서 차라리 없는 게 나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파티고 뭐고 버릇만 나빠지게 할 것 같아요.”

“그렇게 말하면서 거녀양의 침상 밑에 폭죽과 케익을 숨겨둔건 누구시더라?”

“어흠, 그, 그건 어디까지나 환자에 대한 의사의 예의일 뿐이오. 오해는 마시오.”

“참 훌륭한 의사이십니다그려.”

“알겠소 알겠소, 맘대로 하시오. 하지만 난 어디까지나 파티에는 반대했다는걸 잊지 말았으면 좋겠소.”

“기록으로 남겨 둘테니 걱정 말아요.”

“앗, 그럴 것까지는...”

“왜, 겁나시오? (^_^)”

“..............(-_-)”




-그리고 후기

그날 밤 PETS기지는 대원들의 합창소리와 폭죽 터뜨리는 소리, 병마개 따는 소리로 하얗게 지샜다는 전설 아닌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화제의 주인공인 동거녀에게 모두 다 한잔씩 먹이려고 무진 애를 썼다는 것은 특기할만한 일이다. 왜냐하면 그 때문에 거의 회복된 거녀가 또다시 며칠간 치료캡슐 신세를 져야 했기 때문이다.

하라대원은 또다시 울트라하가 나타났을 때 없어졌다는 이유로 무진장의 질문공세를 받았으나 그럭저럭 우아하게 넘긴 모양이다.

다만 파티 자리에서도 계속해서 흘끔흘끔 동거녀 쪽을 쳐다보는 일이 많아서, 일부에서는 둘이 사귀고 있는게 아닌가 하는 악의 섞인 농담까지도 나올 정도였다고 한다.

아무튼, 며칠 뒤 PETS 본부 근처의 야산에, 석양을 바라보며 푸근한 표정을 짓고 서 있는 동거녀의 모습이 있었다.

그녀는 잠시 하늘을 바라보다가 자기의 두 손으로 시선을 옮겼다.

‘자기의 길을...... 스스로 개척해 나가는 것,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여왕...’

거녀는 뭔가를 떨어내버리듯 머리를 세차게 흔들고 나서는 다시 다정한 눈으로 하늘을 올려다보며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이제는 알 것 같아... 내가 어떻게 해야 할지를...... 고마워, 안시.”

거녀는 저무는 해를 바라보며 야산에서 내려와 퇴근준비를 했다.





그러나 이것은, 또 다른 이야기의 시작에 지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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