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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12-25] 울트라하 : X-마스 스페셜 1999
창작의 샘터/울트라하 | 2010. 7. 4. 2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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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녀양, 그거 알아?”

“뭐가요?”

“요새 장관님이 말도 없이 자주 어딜 나갔다 오시는 거.”

“연말이니까 인사다닐 데가 많은가보죠 뭐. 신경쓸만한 일도 아니네요.”

“그것만이면 말을 안하지. 이건 아까 하라씨에게 들은 얘긴데, 어제 은행에 전기료 내러 갔다가 장관님을 봤다는 거야. 현금인출기로 한달 봉급의 두 배는 족히 되는 금액을 인출하고 계시더래. 곤란할까봐 마주치지 않게 그냥 나와버렸다는데, 궁금해서 견딜 수가 없더라나. 어디다 쓰려고 하시는 걸까 하고.”

“비자금을 빼내어 호피코트라도...”

“바보, 장관님 혼자 사시잖아. (-_-)”

“그러고보니 장관님 성격에 어디에 목돈 들일 데도 없을텐데... 이상하네요.”

“생각해보면 말야, 요 3년간 계속 성탄절만 되면 장관님 행동이 수상했어.”

“선림이 네가 보기에도 그렇디?”

“이를테면 갑자기 저축해둔 돈을 찾아서 어딘가로 슬쩍 사라지셨다가 휴일만 지나면 되게 피곤한 얼굴로 나타나신다던가...”

“알았다! 궁극의 해답이에요 이건!”

“뭔데 그래 거녀양? 말해봐 말해봐.”

“혹시 장관님의 정체가 산타클로스 아닐까요?”

“......선림아, 얘 바깥으로 끌고 나가서 고이 묻어주어라. (-_-)”

“아앗, 노, 농담이라니까요, 살려주세요, 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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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LTRAHA X-MAS SPECIAL

「The White Noel」

(C)央久プロ․NOW․ウルトラハ製作委員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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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서로를 믿지 못하는 걸까요? 왜 작은 일이라도 캐내어 소문을 내지 않으면 견디지 못하는 걸까요? 정말 모르겠어요.”

동거녀의 자취방에 있는 탁상거울은 평범한 거울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는 정교하게 만들어진 장거리 시공간=텔레파시 증폭기가 숨겨져 있다. 거녀, 아니 라하세르가 본국과의 연락을 취하는 데 있어서 없어서는 안될 중요한 아이템이다. 그러나 마음과 마음으로 대화를 나눈다는 것은 서로를 이해하는데 있어서는 매우 효과적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상대방을 눈으로 ‘보고’ 연락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다소 애매한 방식이기도 했다. 라하세르는 여기에 앉아서 거울의 비밀 스위치를 켜고 정신을 집중하면 수백만 광년 저편에 떨어져 있는 할머니와 얼마든지 대화를 나눌 수 있었지만, 접촉할 수 있는 것은 그 사고의 파동뿐이고, 실제로 할머니가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는 순전히 기억에 의존하는 수밖에 없었다. 라하세르는 그런 것이 불만스러웠다.

어쨌거나 할머니인 울트라의 여왕은 부드럽게 그러나 솔직하게 대답해준다.

“그건 그들이 우리와 같은 방식의 ‘대화’를 모르기 때문일 게다. 그들의 조상은 수만년에 걸쳐 다양한 방식의 소통을 실험해 왔지만 결국 남은 것은 ‘말’이라는 수단 하나뿐이었지. 하지만 라하야. ‘말’이라는 것은 결국 수많은 방법들 중 하나에 불과하단다. 네가 주의를 그리 기울이지 않는 몸짓이나 표정, 평소의 행동, 서로를 바라보는 눈빛, 심지어는 냄새나 촉감까지도 모두 ‘소통’의 일부가 될 수 있는게야. 하지만 지구인들은 ‘말’에만 너무 많은 것을 부여한 나머지 다른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말았던 것은 아닐까. 그래서 어쩌면 서로를 이해하는 데 소홀해진 것일지도 모르겠다. 중요한 것은 ‘말’이 아닌데도 말이야.”

“하지만 저는 그들의 마음을 알아요. 장관님이 떳떳하다는 것도 느낄 수 있고요. 그렇지만 그것을 다른 이들에게 전해줄 수는 없잖아요. 그래서 더 안타까워요...”

“그들도 깨닫게 될 게다. 네가 친구라고 믿는 이들이라면, 충분히 그런 것쯤은 극복할 수 있게 될거야. 오히려 길게 보면 그것이 그들에게는 좋은 경험이 될지도 모르지. 그건 그렇고, 요즘 공부는 잘 되어가니?”

“노력한만큼은 되어가는 것 같아요. 여전히 이곳의 추위는 몸에 맞지 않아서 싫지만 이제는 견딜만 해요. 참! 그리고 저, 이번에 또 새로운 기술을 익히게 될지도 모르겠어요. (^^)”

“잘되고 있다니 기쁘구나. 건강해야 한다.”




싸늘한 겨울 바람이 사람들의 폐부(肺腑)를 사정없이 찔러대는 번화가의 한복판에 네 개의 기분나쁜 그림자가 어슬렁거리며 뭔가를 쫓고 있다. 각기 다른 사이즈에 각기 다른 발걸음에 각기 다른 목소리로 이야기하고 있지만 옷들만은 묘하게 촌스러운 갈색 트렌치코트와 갈색 중절모에 갈색 에나멜구두로 통일하고, 얼굴을 효과적으로 은폐하기 위해 길가 노점상에서 싸게 구한 플래스틱 색안경과 피카츄 마스크를 다들 쓰고 있었다. 마치 백주대낮에 마약가방을 들고 도망친 조직원을 필사적으로 찾고 있는 얼치기 갱단 같은 꼴이라, 지나가던 이들이 흘끗흘끗 호기심에 찬 눈길을 보내기도 하지만 그들은 별로 신경쓰지 않고 사방을 둘러본다.

“가만가만, 놓친 것 같은데. 어디로 갔지?”

겉으로는 니힐하지만 속으로는 열혈에 넘치는 총각의 목소리다.

“연휴가 다가오니 길거리에 사람들이 넘쳐나는데요. 벌써 세 번째 놓쳤으니.”

아무리 당황스러운 상황에서도 냉정을 잃지 않는 여자의 목소리다.

“아, 저쪽 아닙니까, 대장?”

다소 성격이 급한 티를 내는 덩치의 목소리다.

“그렇군, 저쪽 모퉁이로 돌아가고 있다! 서둘러!”

대장이라 불린 사내가 어떤 방향을 가리키며 전속력으로 달리기 시작했고 나머지도 허겁지겁 그 뒤를 따른다.

“그런데 대체 언제까지 이짓을 해야 하죠? 벌써 점심시간을 훨씬 넘겼...”

그리고 아직 소년 티를 벗지 못한 장난스런 목소리도 있다.

“목표물의 목적이 밝혀질 때까지다. 점심은 저녁 때 한꺼번에 해결해도 돼.”

대답은 상상 외로 무정했다.

“아이고 내 팔자야.;;;”

그들은 발에 불이 나도록 뛰었다.




그들의 목표물은 마침내 원하는 장소를 찾아낸 듯, 길가의 어느 까페로 들어섰다. 오락과 사교의 중심가로 소문난 보곰2가이지만 이 구역만은 예외적으로 한적한 편이었다. 그 남자가 일행과 함께 들어간 곳은, 작고 허름하긴 하지만 일단 안으로 들어가보면 아늑한 느낌을 자아내는 신기한 영상까페로, ‘어서오세요! 여기는 마왕의 숲♥’이라고 쓰여진 간판이 붙어 있었다. 4인의 그림자는 재빨리 가게 안으로 들어서서 그들을 맞이하는 종업원의 인사도 들은체만체하고 목표물이 가장 잘 보일만한 자리를 골라서는, 각자 조심스럽게 의자에 걸터앉았다. 그들 중 가장 어린 목소리가 까페 한가운데의 멀티비전에서 틀어주고 있는 영상을 보고 들뜬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우하, 『우주전함 토마토 완결편』이닷! 저 전설의 LD를 어디가서 구했을까?”

“조용해, 이 멍청아. 들키고 싶어서 안달이 났냐?”

‘소년’이 숨은 마니아 기질에 불타올라 무심결에 큰 소리를 내자 옆에 앉았던 유태대원이 나지막하지만 성깔있는 목소리로 그를 다그치며 그의 입을 세게 틀어막았다.

“켁켁 숨막혀. 그래도 이럴것까지는 없잖아요. 죽는줄 알았네.;;”

“우리는 지금 장관님 몰래 뒤를 밟고 있는 거니까 들키지 않도록 조심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야. 사생활에 관련된 문제니까 되도록 조용히 처리해야 한다구.”

중절모 아래로 삐져나온 긴 머리카락을 쓸어넘기며 하라대원이 힐책한다.

“이런, 목표가 뭔가 눈치챈것 같군. 모두 고개를 숙여, 메뉴판을 들여다보는 척 해! 빨리!”

유성대장의 적절한 지시 덕택에 그들은 위기를 넘길 수 있었다. 그들로부터 멀리 떨어져 앉아있던 어메장관은 어디선가 익숙한 목소리가 들린 것 같은 느낌에 잠시 주변을 돌아보다가 결국 아무것도 찾지 못하고 다시 앞자리의 일행에게로 주의를 돌렸다. 그 일행은 아무리 봐도 고교 1년생 정도로밖에 보이지 않는 어린 소녀였다.

4인의 중절모는 서서히 고개를 돌려 그쪽을 바라보았지만 거리가 너무 멀어서 무슨 얘기를 하는지 잘 들리지가 않았다. 단지 장관이 앉은 자리가 창 쪽이었기 때문에 밝은 빛 속에서 뭘 하고 있는지는 한눈에 들어왔다. 그들이 그쪽을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는 동안 귀여운 에이프런 차림의 종업원이 네 번이나 다가와서 뭘 시키실거냐고 긁어댔지만, 하라대원이 냉정하게 꺼낸 앙끄방위군의 특별조사증(물론 가짜다)과 유태대원의 조폭같은 눈초리(물론 진짜다)에 기가 죽어 카운터로 돌아가야만 했다. 오직 ‘소년’만이 그쪽에 흥미를 잃고 비디오 화면으로 고개를 돌려, 고다이 규석 타이라가 비장한 표정으로 함수파동포(函數破胴脯)를 전력발사하는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장관은 일행을 위해 초코파르페와 장미케익을 주문하고 자기는 홍차를 시킨 뒤, 뭔가 계속해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뭐가 그리도 즐거운지 상대편 소녀는 끊임없이 웃음을 터뜨렸고, 장관은 여러 가지 손짓을 섞어가며 웃는 얼굴로 거침없이 대화를 이끌어나갔다. 그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보아 둘은 전에도 몇 번 만났고, 매우 친한 사이인 것 같았다. 추적자들은 저렇게 오랫동안 무슨 이야기를 하는건지 궁금하여 죽을 지경이었다. 하루종일 장관을 쫓느라 식사도 못한지라 아랫배가 요동을 치고 머리는 지끈거리는데, 두 사람은 몇시간동안 일어설 줄을 몰랐다.

“선배... 배고픈데 뭐 간단한 거라도 시키죠, 마침 경양식도 있네요... 예?”

“돈을 유태군이 낸다면 난 반대 안해.”

“대장님... 제 얼굴이 반쪽이 된거 안 보이십니까?”

“자네 얼굴은 워낙 넓으니까 좀더 줄어들어도 돼.”

“.........우어 (-_-;;;)”

만화만 보면 배고픈줄 모르는 ‘소년’이 부러워지기 시작하는 유태대원이었다.




그렇게 몇 시간이 지난 뒤, 두 사람은 차를 다 마시고 대충 자리를 정리한 뒤 까페를 나서서 다시 복잡한 길거리로 들어섰다. 네 명의 그림자도 도끼눈을 부릅뜬 종업원의 얼굴을 싸악 무시한 채 그들을 쫓아 일어섰다.

얼마동안 길을 걷던 두사람은 뭔지 알 수 없는 대화를 나누다가 어떤 커다란 건물 안으로 들어섰다. 황급히 그 뒤를 따라 달려간 네사람은 그 건물에 붙은 간판을 보고 경악의 표정을 지었다.

“......내 눈이 잘못된 건가, 아니면 저들이 진짜 러브호텔로 들어간 건가?;;”

“대장님의 눈이 잘못되었기를 빌고 싶지만... 그럼 제 눈은 어찌된 걸까요?;;”

여간해서는 잘 놀라지 않는 하라가 반쯤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한다.

“원조교제 아닐까요? 장관님도 결국은 중년남 아닙니까.”

나이에 맞지 않게 능글맞은 어조로 ‘소년’이 말한다.

“믿을 수 없다! 다른 합당한 설명이 있을거야! 그래야만 해!”

도덕의 화신이라도 되는양 유태가 소리지른다.

“일단 우리에게는 확실한 증거는 아무것도 없고 정황 뿐이니까, 함부로 무리한 추측을 하는 것은 삼갈 필요가 있겠는데요.”

어느정도 충격을 받기는 했지만 그것을 애써 드러내지 않으려는 하라였다.

“아아~ 세상 정말 모를 일 투성이로군. 장관님이 좀 엉뚱한 데가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그정도로 타락했으리라고는 믿지 않았는데, 히익;”

‘소년’의 허탈해하는 말에 유태가 주먹을 들이대고 으르렁거리자, 대장이 그를 말리며 다음 행동지침을 결정한다.

“보다 확실한 증거를 찾을 때까지 판단은 유보한다. 여기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고 저들이 언제 나올지도 모르는 일이니 일단은 물러나도록 하자. 배도 채우고 피로도 풀어야 하니 말야.”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들은 근처 지하철 보관함에 맡겨둔 사복을 찾아서 갈아입고 가까운 버거퀸에 몰려들어 음식을 우겨넣기 시작했다.

우연인지는 몰라도, 그들이 퇴각하고 약 30초 후에 장관과 소녀는 다시 그 건물을 걸어 나왔다. 장관은 잠시 길거리를 휘휘 둘러보더니, 재미있어 죽겠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소녀의 손을 잡고 인파 속으로 모습을 감췄다.

물론 4인의 그림자는 그런 것 따위는 꿈에도 몰랐을 것이다.




시간은 벌써 6시를 넘어가고, 거리에는 어둠이 깔리고 있다.

앙끄시의 관광명소 중 하나로 손꼽히는 ‘연인들의 광장’에서는, 크리스마스를 맞이하여 많은 커플들이 서로서로의 손을 잡고 황홀하게 거닐고 있었다. 이곳은 지금으로부터 약 130년 전에, 국경을 넘은 아름다운 사랑이야기로 세상을 울게 만든 애리가(愛李家)와 가주야(嘉珠也)라는 유명한 커플을 기념하여 만들어진 일종의 기념광장으로, 해마다 특별한 날이 되면 꼭 전국에서 모여드는 커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는 곳이기도 하다. 광장 한가운데에 세워진 기념탑에는 이 전설의 주인공들인 날개달린 천신족 애리가와 정권찌르기의 인간족 가주야를 본따 만든 기념상이 손을 굳게 맞잡고 서 있다. 그 아래에는 도무지 용도를 알 수 없는 이상한 트레일러 모양의 기념물도 자리를 지키고 있는데, 이 기념물은 여름에는 묘하게 생긴 로봇으로 변하여 물을 뿜는 분수대 역할을 하고, 겨울에는 다시 차로 돌아가 폭폭폭 연기를 뿜어대며 맛있는 고구마를 굽는 화덕이 되어주는 것이었다.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모두들 그 기념물을 다의모수(茶義冒秀)라는 기괴한 이름으로 부르고 있었다. 그 계절의 낭만을 불러일으키는 재미나는 역할과 옛 시절을 일깨워주는 고색창연한 디자인은 기념엽서로도 만들어져 널리 팔리고 있으니, 한 번쯤 본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기념상 주위로는 새들이 날아와서 쉴 수 있는 넓은 화단과 해시계, 그리고 연인들을 위한 특별 데이트 코스로 인기가 있는, 울창한 수풀이 보기좋게 배치되어 있었다. 물론 이런 날을 기념하기 위해서 시당국이 특별히 설치한 크리스마스 장식물들도 빠질 수야 없었다. 광장 한구석에는 101종류의 고전 캐롤을 무한반복으로 불러대며 ‘호우호우호우! 메뤼 크릿스마쓰---’(솔직히 역겹다;)를 외치는 15미터급의 ‘말하는 트리’와 뭔가 애매한 눈빛을 하고 지나가는 연인들을 쏘아보는 꽃사슴 풍선들도 있었다.

그리고 또한, 대박을 잡지는 못해도 본전은 건지겠지라는 속편한 생각에서 그동안 남아있던 재고품들을 잔뜩 들고 와서 어떻게든 장사를 해보려 하는 노점상들이 모여들어 하나의 간이시장을 형성하고 있었다. 군밤, 군고구마, 쥐치포, 와플, 계란빵, 잉어빵, 붕어빵, 솜사탕, 햄버거, 팝콘, 토스트, 보리차, 생강차, 칡차, 녹차, 커피, 코코아, 기타등등 화려한 라인업을 자랑하는 먹거리들의 향연, 그리고 명절의 대목을 노리는 엽서, 장식품, 케익, 사탕, 액세서리, 폭죽, 풍선, 뿔피리, 인형, 샴페인, 가발(......?) 등등 선물용품을 파는 곳도 있고, 게임을 해서 표적을 맞추면 상품을 주는 알만한 곳들도 있었다.

물론 계절의 낭만과는 별 상관없이 불우한 이웃을 돕고자 애쓰는 자선남비와 구세군들도 있기는 하지만 사람들의 관심을 그다지 끌지 못하는 것이 불행이었다. 그래도 딸랑거리는 종소리는 결코 멈추지 않았지만.




한편 거기서 별로 멀리 떨어지지 않은 장소에서는 몇 대의 TV카메라가 돌아가고 있었다. 명MC로도 한참 주가를 올리고 있는 DJ.젤론=고고의 우렁찬 멘트가 들려온다.

“오늘도 변함없이 여러분의 안방을 찾아가는 ‘앙끄탐방 - 대도시에 외쳐라!’ 오늘의 무대는 ‘연인들의 광장’으로 알려진 투장공원(鬪將公園)이 되겠습니다. 지금 저희들 주변에는 크리스마스 분위기에 들떠 서로서로 손잡고 다니는 연인들이 수두룩하군요. 오늘의 초대손님은 최근 영화출연이 확정되어 화제를 모으고 있는 개그맨 신동협씨와, 공인커플이신 이수라씨를 특별히 모셨습니다. 시청자 여러분께 인사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시렵니까, 제가 곁에 앉아도 되시렵니까?”

“...동협씨 뭐하는거야, 추해.”

“아, 이런 그만 데뷔시절 버릇이 나와서... 핫핫 여러분 안녕하세요. 여러분의 귀염둥이 신동협입니다.”

“저는 이수라입니다. 모두 좋은 연말 되세요.”

“아, 두분이 같은 산타모자를 쓰셨군요. 커플패션인가요?”

“그런 셈이죠. 우린 이런 사이에요.(^^)”

대충 이런 식으로 지난 성탄과 별 차이가 없는 하루가 지나가고 있었다.




하지만 그 한구석 알려지지 않은 어떤 모퉁이에서 어째 빌려입은 듯한 산타복장을 하고 물건을 파는 어떤 사내의 모습은 좀 부자연스러웠다. 감기에 걸린 듯 쉰 목소리에다가, 어울리지도 않는 질투마스크 찬가를 최대음량으로 틀어놓고, 게다가 이런데서는 별 인기가 없을 듯한 싸구려 물건들을 뻔뻔하게 팔고 있었던 것이다.

“자자 한 번 구경들 해 보세요. 이건 식사후에 미처 이를 닦지 못하고 바로 키스해야 하는 연인들을 위한 구강청정제입니다. 박하향과 바닐라향, 딸기향의 세 가지가 있어요. 이건 오늘처럼 날씨가 애매할때도 화이트 크리스마스 기분을 낼 수 있는 인공눈(雪) 스프레이, 흰색뿐만 아니라 크림색과 오렌지색도 있죠. 그리고 이건 커플들을 위해서 특별히 만든 2개 1세트의 산타모자올시다. 헐렁하게 만들어져 있어서 머리가 크신 분들도 문제가 없습니다. 자자 골라보십시오~”

더더욱 알 수 없는 것은 그의 물건들이 대체로 잘 팔리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아저씨, 못보던 분인데 이곳에는 처음이신가보죠? ...외국 분이신가요?”

그곳을 지나던 경비원이 호기심에 찬 눈길을 보낸다. 간이시장이라도 해마다 고정적으로 참가하는 사람이 있고 아닌 사람이 있다. 국제도시라는 명성에 걸맞게 해마다 외국인 보따리들도 늘어나고 있다. 물론 사전에 시 당국의 허가를 받도록 되어있는 만큼 큰 문제는 없다.

“예? 아아, 앙끄가 재미난 곳이라는 얘기를 듣고 왔습죠.”

나이를 알 수 없는 그의 회색 눈동자가 기분나쁘게 붉은 색안경 아래에서 이상스럽게 빛난다. 그가 바라보는 공원 반대편에는 불안스럽게 매달려 있는 꽃사슴 풍선들이 있다. 그는 시계를 들여다보더니 고개를 희미하게 끄덕인다.

“저... 죄송합니다만, 저희 부스에 배터리가 떨어져서요. 예비전원이 있으시면 좀 빌려주시겠어요?”

사내가 고개를 돌리니 산타복장이 잘 어울리는 17세쯤 되어 보이는 단발머리 소녀가 앞에 서 있었다. 아마도 선물용 캔디 판촉을 맡고 있는 듯, 몇 가지 알록달록한 캐릭터 배지가 복장 여기저기에서 고개를 내밀고 있다. 머리카락은 부분염색을 했는지 은은한 갈색과 초록색이 자연스럽게 배어들어 있었고, 수정처럼 맑은 두 눈동자는 겁없이 사내를 응시하고 있었다. 눈 위에 떨어진 피처럼 새빨간 산타 복장에는 티끌 한 점 없었고, 약간 사이즈가 큰 것처럼 보이는 빨간 모자는 앙증맞게 그 귀여운 머리 위에 얹혀 있었다. 약간 양 옆이 파인 코트의 아래쪽으로는 타이즈 차림의 가느다란 다리가 보일락말락 했다.

“전원 말인가요. 그거라면 이쪽 뒤에 있는데 잠시 들어오시겠소? 혼자서 옮기기엔 좀 무거워서 말이지요.”




한편 또다시 촬영현장.

“자 그럼, TV를 지켜보고 계시는 수많은 시청자들을 위해, 두분이 서로 사랑을 속삭이는 훈훈한(닭살돋는) 장면을 보여주시겠습니까?”

“아 그럼요. 자기야, 내가 먼저 할게. 사......”

“왜 그래, 자기?”

“사... 사.... 사... 사오정? 아니 이게 아닌데, 사과나무? 사브레? 사이코? 사시미? 사철탕? 사기꾼? 사파이어? 사다리? ...왜, 왜이러지?;;;”

“어휴 답답하긴, 뭔 남자가 그리 소심해갖구. 그 한마디도 못해? 내가 할게. 자기야, 사...”

뭔가 이상함을 느낀 MC가 그들을 애매한 표정으로 쳐다보고 있는 가운데, 이수라 또한 비슷한 삽질을 연발한다.

“...이상하다... 사라다? 사고뭉치? 사카린? 사이로? 사부님? 사상범? 사만코? 사루비아? 사... 사... 사..... 어떻게 된거야? 이럴 리가;;;”

“아무래도 말하기 곤란하신가본데 그럼 글로 써주세요. 자 연필과 종이.”

그러나 연필을 받아쥐고 뭔가를 쓰려고 필사적으로 노력하던 신동협은 결국 떨리는 손을 주체하지 못해 연필을 놓고 만다.

“동협씨 대마초 피웠어? 대체 왜이래?”

“나도 모르겠어. 내가 왜 이러지? 이상해 울먹울먹;”

“그럼 내가 쓸게, 이리줘. ......어어, 내 손도...??? 모, 못 쓰겠어! 그 말만 생각해도 손이 떨리고 속이 메슥거려! 우. 우욱... 와앙~ 어떡해~~~”

커플의 기괴한 행각을 보다못해 젤론=고고는 중지 사인을 보냈고 생방송은 그 자리에서 중단되었다. 같은 시각, 공원 곳곳에 퍼져있던 수많은 커플들이 비슷한 증상으로 괴로워하고 있었다. 그들 모두가, 어느 특정한 단어를 말하거나 쓰거나 생각만 해도 몸 상태가 이상해지는 것을 느끼고 당황하고 있었다.

........................바로 ‘사랑’이라는 단어를!




“쳇, 뭐가 전설의 관광지냐. 그냥 보통 공원이잖아.”

“뭘 기대했는데요, 덩치큰 형씨? 이곳을 전설로 만든 건 공원 그 자체가 아니라 그 이름 때문에 모여드는 수많은 연인들이라구요.”

“너 한마디만 더 하면 염라대왕과 데이트하게 해줄줄 알아.”

언제나 다름없이 이죽거리는 ‘소년’과 크르릉거리는 유태였다.

“그나저나 피요양은 어떻게 된 거죠? 며칠동안 안보이던데...”

‘소년’이 그제서야 생각났다는 듯 말한다.

“감기래. 치료차 휴가를 받아서 집에 누워있을거야.”

피요대원과 특히 친한 하라의 대답이 간결하다.

“헤에, 천재도 감기에 걸리는가보네.”

유태는 적잖게 놀라는 표정이었다.

“생각을 잘못 한 것 같군. 차라리 그쪽에 문병이나 갈걸 그랬어.”

대장은 인상을 찌푸리며 자기의 판단을 후회한다.

“너무 먼 거리니까... 내일 가죠 뭐.”

피요양이 걱정되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다른 대원들을 피곤하게 해서는 안된다는 생각도 들었기 때문에 하라는 그렇게 말한 것이었다.

“그나저나 장관님의 그 일은...”

“관둬. 지금 생각해봐야 답도 안 나오고 머리만 아파.”

유성대장은 고개를 저었다.

헛된 추적으로 인해 허탈해진 마음과, 불규칙적인 식사로 인해 싸르르해진 위장을 안고 버거퀸을 나선 4인의 그림자(...이거 잘못하면 별명 되겠다;)는 마침 휴일을 맞이하여 특별히 할 일도 없었던 터라서, 가까운 곳에 위치한 ‘연인들의 광장’에나 가보자는 ‘소년’의 철없는 제의에 응하여 그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던 것이었다.

주변은 흥청거리고 사람들은 북적거리고 세상 모두가 즐거워 보였지만 정작 그들 자신은 도통 그 속에 섞여들 기분이 나지 않았다.

그들 모두가 솔로였던 것이다. (-_-)

그때, 다소 어색해진 분위기를 깨기라도 하듯 엄청난 굉음과 함께 뭔가가 공원 한쪽에서 서서히 몸을 일으키는 실루엣이 눈에 들어왔다. 그와 더불어 놀라 도망치는 사람들의 비명소리와 주변의 부스들이 찌그러지는 효과음, 그리고 뭔가알 수 없는 물건들이 마구 깨지고 바스러지는 소리까지.

“뭐야? 올해는 특별한 행사라도 있나 보네?”

무심한 얼굴로 유태가 중얼거린다.

“『초인 철갑산』 어트랙션 쇼가 바로 이런 분위기였죠. 깨지고 부서지고.”

특촬에도 일가견이 있는 ‘소년’이 궁시렁댄다.

“잠깐, 어트랙션이라면 무대 위에서만 하는거잖아! 이건 뭔가 이상해!”

피곤해도 날카로움은 잃지 않는 하라였다.

“그말대로다. 저쪽에서 무슨 일이 난게 틀림없다! 가보도록 하자!”

“대장님, 그건 원칙적으로 경찰이 할 일이고 우리는 지금 비번인...”

‘소년’의 항변은 대장의 능숙한 답변에 막혀 버렸다.

“제군, 나는 그냥 가보자고 했지 일을 하자고 한 적은 없는데!”

그들은 급히 달리기 시작했다. 몇몇 구세군들이 자선남비를 철거하고 대피준비를 서두르고 있었다. 그리고 또 한쪽에서는 산타복장을 한 몇몇 아르바이트생이 전원을 빌리러 갔다가 돌아오지 않는 동료를 찾고 있었다. 그러는 동안, 광장의 네 방향에 매달려 있던 여덟개의 꽃사슴 풍선들이 갑자기 대지와의 인연을 끊기로 결심한 듯, 하늘 높이 힘차게 떠오르기 시작했다. 누군가가 지상과의 연결선을 일부러 절단한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갑작스런 소동 때문에 풍선에 신경쓰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재빠르게 출동한 경찰과 대치한 15미터급의 거대 크리스마스 트리는 사방에 솔잎과 리본을 마구 흩뿌리면서 앞으로 앞으로 전진하고 있었다. 트리 위에 불규칙적으로 매달린 종과 솔방울과 별들에 공원 가로등의 불빛이 어지럽게 반사되고 있었다. 트리의 아랫부분에서는 이동용의 캐터필러가 나와 도로를 무참하게 파헤치며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고, 옆부분에서는 네 개의 기계팔이 뻗어나와 경찰의 총격을 모두 막아내고 있었다.

“젠장! 전혀 맞지를 않아!”

트리의 윗부분에서 뻗어나온 플랫폼 위에는 바로 그 붉은 선글래스의 수상한 산타가 구식 마이크를 들고 위풍당당하게 서 있었다. 그는 총격이 미치지 않는 15미터 위의 허공에 서서 대연설을 감행하였다. 트리 전체가 확성기라도 된 듯 그의 왜소한 목소리가 천둥처럼 쩌렁거리며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동시에 그곳에 와 있던 방송국 중계차들은 정체불명의 괴전파가 그들의 송신기를 차지하고 있음을 발견하고 황당함에 몸을 떨고 있었다. 그 괴전파는 그 산타가 하는 말을 각 방송국으로 직접 전달하는데 아주 유용했다. 아무래도 트리 안에 강력한 다중방향 전파발신장치가 숨겨져 있는 듯 했다.

“앙끄시, 나우민국, 그리고 세계의 여러분! 나는 산타클로스는 믿지 않지만 크리스마스는 믿는, 프레드 레인버그라는 사람이다!!! 크리스마스는 원래 전인류의 성자 예수 그리스도가 태어난 사랑과 정의의 축일이었다! 진정한 크리스마스는 지나간 한해를 되돌아보고 가난한 이웃을 도우며 스스로를 바로잡는 반성과 새출발의 계기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크리스마스는 어떤가? 얄팍한 상혼과 천박한 저널리즘의 야합으로 인해 온통 커플들만이 판치는 선택받은 자들의 축제로 변질되지 않았던가! TV에서는 의미도 없는 특집프로나 죽어라 돌려대고, 장사꾼들은 어떻게 하면 좀더 많이 좀더 박하게 팔 수 있는가만 고민하고, 매정한 커플들은 주변의 시선 따위 상관하지 않고 자기들만의 행복에 취해 질투와 분노의 오오라가 퍼지는 것조차 눈치채지 못하고 세상을 휘젓고 다니지 않는가! 이것이 과연 올바른 크리스마스의 모습이라고 보는가? 아니다! 결코 아니다! 우리는 이제 모든 것을 바꾸지 않으면 안된다! 연인들만을 위한 추악한 크리스마스가 아니라, 모든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줄 수 있는, 공정한 축일로서 거듭나게 하지 않으면 안된다! 이것은 결코 개인적인 질투심에서 하는 헛소리가 아니다! 나는 세상의 미친 크리스마스와, 세상의 꼴사나운 커플들과 싸우기 위해 여기에 섰다. 그렇다! 나는 전사(戰士)다! 오라 배틀러 단바인--- 오라 슈트 단바인--- 어택 어택 어택! 나는--- 전사-------!!!!!!”

(...............미친놈 아냐 이거;;;)




경찰들보다 한발 뒤에 서서 이 기괴번쩍한 짓거리를 지켜보고 있던 PETS대원들의 상공에 갑자기 요란한 소리를 내며 크롬빛의 번쩍이는 상자형 수송선이 나타났다. 그 수송선의 옆구리에는 자랑스럽게도 P.E.T.S. Special Transport Division이라는 글자가 큼지막하게 새겨져 있었다. 수송선의 한쪽 해치가 기운차게 열리더니 그 안에서 펫츠이글-α와 펫츠이글-β가 눈부신 플라즈마 불꽃을 분사하며 발진, 지상으로 내려오더니 바로 그들 앞에 수직이착륙했다. α의 조종석에서는 조종사 복장을 갖춘 어메장관이, β의 조종석에서는 구급반 복장 위에 임시로 조종사용 가드 기어(보호용구)와 헬멧을 쓴 동거녀가 튀어나와 대원들을 놀라게 했다.

“거녀양! 어떻게 여기를...”

“일손이 부족하다보니 끌려나왔어요.♥ 전에 우주에 나갔을 때 조종해본 경험도 있고 해서...”

“그래도그렇지 너무 위험한 짓이었어, 내 생각에는;;”

“그렇지 않아요. 도와주는 사람이 있었으니까.♥”

“응?”

그러고보니 β의 부조종석에 처음 보는 사람이 타고 있었다.

“장관님! 도대체 이건 무슨...”

“설명은 나중에. 그건 그렇고, 인사하게. W.A.T.C.H.의 인스펙터 윈드 씨야.”

“프리벤터 윈드 라고요?”

“인스펙터 윈드! (-_-)”

장관의 호통과 함께 키큰 사내가 검은 장갑을 낀 손을 내밀었다. 단정하게 깎은 짧은 머리에 요령좋게 생긴 얼굴을 가진 30대 초반의 남자였다.

“처음뵙겠습니다. 윈드라고 합니다. 저녀석은 원래 우리가 쫓던 놈이죠.”

WATCH는 Worldwide Anti-Terrorism Central Headquarters(범세계적 대[對] 테러리즘 중앙대책본부)의 약자로, 아메리고 대륙을 중심으로 활동중인 국제 과학 수사 기관이다. 창설된지는 수년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각국의 경찰과 협조체제를 구축하여 여러 가지 세계규모의 대사건을 해결하는데 큰 공을 세워 왔다. 인스펙터(inspector)는 그중에서도 최상급의 민완 수사관에게 붙이는 직함이다.

“그렇다면 저 레인버그는 국제 테러범인가요?”

하라대원의 질문에 그는 애매하게 고개를 젓는다.

“그렇게 위험한 놈은 아니라고 생각했었지만... 다소 문제가 있는건 사실입니다. 녀석의 소재를 찾느라 수년간 고생해왔는데 오늘에야 비로소 꼬리를 잡게 되었기에... 녀석의 체포를 도와주신다면 정말 고맙겠습니다.”

“그 문제라는게 정확히 뭔지...”

유성대장의 질문에 장관이 빠른 말빨로 얘기하기 시작한다. 시간이 없다.

“레인버그는 서부 게르마뇽 출신으로, 전공은 뇌신경생리학이었지. 국비장학금을 탈만큼 우수한 학생이었는데, 자신의 연구를 계속하기 위해 나우민국으로 유학을 왔고 앙끄중앙과학대학에서 박사학위도 땄다는군. 그때 마침 게르마뇽 재통일 사건이 일어나서 본국이 혼란이 빠지는 바람에 십수년동안 고국에 돌아가지 못한 채 앙끄에 묶여있었다네. 그러는 동안 비자는 만료되고 돈은 떨어지고 장학금도 한도가 있었기에, 그는 직업을 찾아 이곳에 정착해볼까 생각도 했지만 우리 사회의 뿌리깊은 외국인 기피풍조 때문에 취직도 못하고 노숙자로 전락했다는 거야. 그래서 결국 고향으로 돌아갈 비행기표 값을 벌기 위해 범죄조직과 손을 잡고 그들의 주문대로 약품을 제조해 주는 일을 하다가, 앙끄경찰에 잡혀서 수년동안 감옥살이를 했지. 그리고 그동안 그의 조국은 겨우 안정을 되찾아서 그가 돌아갈 길이 열렸지만, 그는 출소 후에도 귀국을 택하지 않고 여기 남았다네. 그 이유는 아직까지 불명이지만.”

“의심가는 이유가 하나 있는데, 그는 학생시절부터 외로운 환경에서 자라난데다가 한창때는 대학 4년간 100명의 여인에게 프로포즈했다가 모두 거절당했다는 아픈 경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때의 경험 때문에 공휴일과 연인들을 저주하는 괴벽을 키우게 되었고, 그것이 오늘의 범행 동기라고 보입니다.”

윈드의 부연을 듣고 ‘그게 뭐야’라고 말하는 듯한 어이없는 표정을 지어보이는 PETS 대원들.;;;

“그런데 꽤 자세한데까지 알고 계시네요.”

하라대원이 감탄하는 투로 말한다.

“사실은 방위군의 백준박사가 저놈 동기생이었대. 함께 앙끄방위군 중앙네트를 해킹한 적도 있었대나 뭐래나.”

“............................(;;;;;;-_-)”

그러는 동안에도 레인버그의 확성기는 공원 전체를 진동시키고 있다.

“...내가 지난 일주일동안 이 광장에서 판매한 모든 물건에는 어떤 형태로든 특수한 종류의 약품이 함유되어 있었다. 그 약품은 인간의 뇌신경에 약간의 무해한 조작을 가하는 원리를 이용하는 것인데, 내가 지정한 특정한 ‘단어’에 대해서 신경이 차단 작용을 일으키게끔 하는 것이지. 이번에 지정한 낱말은 바로 ‘사랑’이다! 내 약품에 접촉한 모든 커플들은 사랑이라는 말을 입에 올리려고만 해도 몸에 이상이 생겨 견딜 수 없게 될거야. 물론 해독법은 있지만, 정확한 처방은 나 혼자밖에 모른다. 게다가 이건 실제로 사랑을 하고 있는 사람의 뇌분비물에만 영향을 받기 때문에 커플이 아닐 때는 별 상관 없지만 일단 커플이 되고 나면 ‘사랑’이라는 말은 죽었다 깨어나도 못하게 된다! 결국 이 증세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사랑’ 없이 그냥 같이 살던가, 아니면 ‘사랑’을 말하기 위해 헤어져야만 하는거다! 얼마나 천재적인 발명인가!!! 으흐하하하하하하하하! 커플따위------ 커플따위----------- 이 지구상에서 영원히 사라지게 해 주겠다! 오늘은 앙끄市, 다음은 어울市, 내일은 빛그림市, 그 다음은 에쉐프市, 그렇게 해서 전 나우민국에서 사랑을 추방한 뒤에, 더욱 더 강력한 ‘인터내셔널 버전’을 살포하여 전 지구에서 사랑을 몰아내리라! 아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소년’은 그 말을 들으며 심각하게 고개를 끄덕인다.

“으음, 『마도로스 플러스』도 인터내셔널 버전으로 인기를 끌었었지. 맞아.”

“뭔 헛소리 하고 있어! 대장님. 일초라도 낭비하면 안됩니다. 출격합시다요!”

“좋다, 가자! 장관님, 다녀오겠습니다!”

장관과 윈드는 간절한 표정으로 손을 흔들어 주었다. 두 대의 펫츠이글은 쏜살같이 하늘로 떠올라 거대한 트리를 향해 날아갔다.

‘소년’은 만일에 대비하여 지하철을 타고 본부로 돌아가고, 장관과 윈드는 경찰과 함께 이동하며 사태를 관망하기로 했다. 만능 수송선은 거대한 몸집에 비해 가동시간은 짧아서, 어느새 파란 불꽃과 함께 본부로 복귀하고 있었다. 지난 번의 기지 방어전 이후 보다 광범위한 행동반경을 얻기 위해 서둘러서 발주한 신병기였는데, 이제야 완성이 된 것이다.

“아 그런데 동거녀양, 자네는 어떻게 할... 아니 이봐, 어디 가나!”

“잠깐만요, 볼일이 있어서요!”

화장실이 급한가보다라고 지레짐작한 장관은 윈드와 함께 앞으로의 대책을 숙의하기 시작했다.




펫츠이글 두 대가 트리를 둘러싸고 선제공격을 벌이지만, 트리는 꿈쩍도 않고 의연히 시내 쪽을 향하여 전진만 한다. 산타수염을 뜯어내고 플랫폼에 올라서서 세상을 굽어보며 광기에 찬 미소를 짓고 있던 레인버그는 펫츠이글의 하부 해치가 열리는 것을 쌍안경으로 포착하고는 다시 마이크를 집어든다.

“이것봐 정의의 지방공무원 나리. 기총으로 효과가 없으니까 뭔가 커다란 걸 터뜨릴 모양인데, 그럴 시간이 있으면 여길 좀 봐주시지 그래.”

그의 목소리에 심상치 않은 기운을 느낀 대원들은 관측용 모니터에 나타난 영상을 확대한다. 그 영상을 바라보던 유성대장의 얼굴이 파랗게 질린다.

“공격중지. 놈은 인질을 잡고 있다!”

트리의 솔잎 무성한 가운데 부분이 서서히 열리면서 전극과 회로들이 복잡하게 교차하는 가지 부분이 드러났다. 그 가지의 정중앙에는 정신을 잃은 산타복장의 소녀가 능숙한 솜씨로 꽁꽁 묶인 채 무기력하게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다. 여기서 엔드메이커 반응탄이나 고주파 냉각 미사일을 쐈다가는 인질이 위험하다. 유성대장과 하라대원은 자신들의 무력함에 치를 떨었다.

그런데 유태대원의 반응이 좀 이상했다.

“...................오, 오옷, ...귀.엽.잖.아.(0_0)”

“유태군, 무슨 소리야! 정신차려!”

“선배, 저도 드디어 5년만에 솔로를 면하게 되나봐요. 하늘의 계시예요!!”

“유태군, 인질을 앞에 두고 농담할 때가 아니다!”

그러나 때로는 이상할 정도로 태평해지는 유태대원은 모니터에 찍힌 소녀의 얼굴을 이리저리 뒤집어보고 돌려보고 확대해보고 축소해보고 합성해보고 검색해보며 묘하게 황홀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에게는 이미 움직이는 트리는 관심의 대상이 아니었다. 한편 그러는 동안에도 레인버그는 트리를 계속 전진시키며 확성기를 통하여 떠들어대고 있었다.

“공원 주변에 떠오른 8개의 풍선을 보고 있나? 그 안에는 호흡기를 통해 흡수되도록 특수하게 정제된 나의 약품이 가득 차 있다. 이제 각각의 풍선들을 그 바깥에 장치된 소형로켓을 이용하여 앙끄시의 주요 지구로 보낼 것이다. 그리고는 가장 인구밀도... 아니 커플분포도가 높은 지역마다 하나씩 빠방! ...아주 재미있겠지? 폭발은 앞으로 두시간 후로 맞춰놨고 코스도 이미 잡혀있다. 해제 암호는 나만 알고 있지. 그리고, 미리 경고해 두겠는데, 난 인질을 잡아두고 있으니 허튼 수작은 마라. 그나마 한 열명쯤 잡아둘까 했지만 내가 인정이 많아서 하나만 잡아둔 줄 알라구.”

사실은 열명이나 잡을 시간이 없어서였지만.. 레인버그는 속으로 낄낄거렸다.

두 대의 전투기가 애매하게 트리 주변만을 돌고 있을 때, 하나의 거대한 빛이 공원 숲속에서 일어나더니, 그 빛속에서 실체화된 거인의 육체가 체조선수처럼 우아한 공중 3회전을 보여주며 허공을 날아와서 정확하게 트리 앞에 착지했다. 주변의 공중전화 부스가 덜커덩 넘어가고 전신주 두어 개가 진동을 못이겨 젓가락처럼 부러졌다. 끊어진 송전선에서 가벼운 스파크가 일어난다.

울트라하의 등장이다.

“허, 드디어 ‘소문의 거인’까지 등장했군. 내가 유명인이 된 기분인데 핫핫!”

체포된 뒤에는 더 유명해질거다. 하라대원은 속으로 거칠게 내뱉었다.




거인은 공격자세를 취하고 트리 앞을 막아서더니, 트리의 양 옆을 두 손으로 잡고 가슴을 트리의 중앙부에 딱 붙인 채 두 발로 버티면서 트리의 전진을 막으려고 애쓴다. 그러나 트리는 성난 황소처럼 쉽게 멈춰지지가 않는다. 게다가 레인버그가 산타모자에 달린 리모콘을 조작하자 트리에 달려있던 크리스마스 볼(공모양의 장식물)들이 한꺼번에 굴러나와 거인에게 부딪히면서 일제히 폭발했다. 볼을 위장한 폭탄이었던 것이다.

“이건 어떠냐!”

다른 버튼을 누르자 트리에 달려 있던 골든벨들이 일제히 시끄러운 소리를 내며 울리기 시작한다. 그 강력한 음파 공격에 주변에 서 있던 자동차의 유리창이 깨지고 사정권에 들어와 있던 펫츠이글 두 대도 전자기기에 혼란을 일으킨다. 엄청난 진동파에 걸려든 거인이 괴로운 듯 몸을 뒤튼다.

“유태군, 나도 인질을 구출하고 싶은 마음은 있지만, 트리의 표면에 전자기장이 형성되어 있어! 너무 가까이 접근하면 기계가 말을 듣지 않게 된단 말야!”

하라대원의 항변에도 굴하지 않고 여전히 불타오르는 유태대원.

“젠장, 이런 때 그 뵈기싫은 천재 꼬마라도 있다면 뭔가 꾀를 내었을텐데... 아 그렇지, 이 β호에도 ‘그거’가 실려 있었죠, 선배?”

“아직 실험단계라서 5분밖에 작동 안해. ......해볼거야?”

“해볼랍니다!”




레인버그는 거기서 멈추지 않고 또 다른 공격을 시작한다. 거대한 소나무 가지 속에 숨겨져 있던 기계팔들이 다시 튀어나와 선물꾸러미 하나씩을 꺼내더니, 무작위로 거인을 향해 던지기 시작했다. 라하세르는 폭탄으로 짐작하고 재빨리 피하지만, 땅에 떨어진 선물상자에서는 무수한 2미터짜리 미니로봇들이 튀어나와 밀집공격을 가하기 시작했다. 미니로봇들은 산타클로스, 루돌프, 생크림케익, 통나무집, 펭귄, 크리스마스트리 등등 다양한 형상을 띠고 있었는데, 하나하나의 공격은 보잘것없었지만 50여대가 넘는 미니로봇들이 개미떼처럼 빽빽하게 몰려들어 가하는 공격은 장난아니게 심각했다. 균형을 잃고 땅에 쓰러져버린 거인의 몸이 붉은 물결로 뒤덮여 보이지 않게 되었다. 레인버그는 악의에 가득한 미소를 지으며 이빨을 드러냈다.

“어떠냐 울트라하, 지구인 중에도 이런 천재는 있다는 말씀이... 어엇?”

지면을 빽빽하게 뒤덮고 있던 미니로봇들의 한가운데에서 엄청난 불길이 타오르더니, 50대중 절반에 가까운 22대의 미니로봇이 폭발하고 나머지는 가동불능상태에 빠진 채 땅에 드러누웠다. 그 붉은 장막을 우수수 떨어버리고 거인이 당당하게 일어선다. 순간적으로 전신을 폭발시키는 초필살기 울트라하 다이너마이트를 구사한 것이다.

“제, 제법이군. 하지만 이걸 잊지마! 내게는 인질이 있다! 내게 무슨 짓을 했다가는 당장에--!”

그러나 그의 득의양양한 협박은 곧이어 날아온 펫츠이글-β의 엔진소리에 가로막히고 말았다. 그 전투기는 마치 술취한 사람이 조종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무모한 모션으로 트리의 정면을 겨냥하고 날아와, 정확하게 그 아래쪽을 들이받았다. 뾰족한 송곳 같은 전투기의 기수가 트리의 외벽을 형성하는 녹색의 솔잎층에 격돌, 엄청난 충격을 선사했고, 레인버그는 하마터면 플랫폼에서 떨어질 뻔 했다. 그는 자세를 바로잡고 마이크를 고쳐잡은 뒤 소리질렀다.

“무, 무슨 짓이냐! 쓸데없는 장난은 그만둬! 접근했다간 너희들만 손해다!”

그러나 펫츠이글-β는 그의 말을 비웃기라도 하듯 동체 후부에서 캡슐형태의 돌기를 2개 꺼내더니 거기서 강력한 전자기장 차단막을 발생시켜, 기체의 피해를 최소한으로 줄이고 있었다. 그 사이에 조종을 부조종석의 하라대원에게 맡긴 유태대원은 허리에 구조용 와이어를 연결한 뒤 양손에 소방용 쇠도끼를 들고 조종석으로부터 뛰어내려, 인질이 있다고 짐작되는 부분의 외피를 무자비하게 두들겨부수기 시작했다.

“유태군, 앞으로 2분이야!”

유태대원이 흔들리지 않게 최소한의 중심을 유지하면서도, 기계팔의 난무에 맞서 이리 피하고 저리 피하던 하라대원이 초조하게 소리지른다.

“곧 다돼갑니다! 잘만 버텨주세요! ---------------히야앗!!!”

그의 괴성과 함께 마지막 외피가 벗겨져나가고, 전선과 회로들이 뒤엉킨(아까도 했던 말 같은데;) 소나무의 ‘가지’가 보이기 시작했다.

“기다려라, 산타소녀-----! 오빠가 간다-----------------!!!”

레인버그는 그들의 작업을 방해하기 위해 트리를 이리저리 흔들어서 펫츠이글-β를 떨어뜨리려고 했지만, 어느 사이엔가 뒤로 다가온 라하세르가 무서운 힘으로 트리를 꽉 잡고 고정시키는 바람에 기회를 잃고 말았다. 그러는 사이에 유태대원은 자신이 깨뜨린 틈 사이로 비집고 들어가 인질을 품에 안고는 그녀를 묶은 줄을 끊고 소녀를 자기 가슴팍에 달린 연결용 후크(hook)로 잡아맨 뒤에 다시 틈새로 빠져나와 목이 터져라 소리질렀다.

“선배! 됐어요! 우주 끝까지 날아가 주십쇼-------!”

“정말 못말리겠어, 유태군은... (훗)”

한계시간 5분을 겨우 2초 남겨둔 채 펫츠이글-β는 목표물인 트리로부터 이탈, 안전권으로 빠져나갔고, 전투기에 매달린 유태대원은 구출한 인질이 바람에 날아갈세라 소중하게 꽉 붙들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이 떠나자마자, 견제태세를 취하며 그 주위를 맴돌던 펫츠이글-α가 맹공격을 감행했고, 그로 인해 트리의 기세가 한풀 꺾이자, 울트라하는 재빨리 아공간 포켓에서 거대한 기프트호스(선물 넣는 긴 양말)를 소환, 트리에 남아 있던 폭탄 볼을 떼어내어 호스 안에 가득 집어넣고는 마치 곤봉처럼 맹렬하게 휘둘러 엄청난 스핀을 먹인 뒤, 곧바로 그 양말로 트리를 강타하여 상당한 데미지를 입히는 데 성공한다. 그 다음에는, 다시 거대한 스프러싱(가문비나무의 가지와 리본 등으로 만드는 장식용 고리)을 소환, 그 고리를 높이 치켜들고 마치 도넛처럼 뚫린 구멍의 중앙에서 반양자빔을 발생, 증폭하여 트리를 향해 발사, 이동용 캐터필러를 무력하게 만든다. 사방에서 연기를 내뿜으며 비틀거리는 트리를 향해 마지막 일격을 먹이기 위해 다가서는 라하세르.

그러나,

“내가 어릴 때 즐겨보던 만화에 이런 대사가 나오더군. ...‘이걸로 끝났다고 생각지 마라!’ 세상의 진리란 다 그런거지, 응?”

플랫폼을 안으로 집어넣고 안전벨트를 메는 레인버그. 그와 동시에 트리가 맹렬한 회전을 시작하더니 바깥을 감싼 녹색 외피가 우수수 흩어지고, 반짝거리는 회로와 전선이 난무하여 그로테스크하게 보이는, 뼈만 앙상한 가지가 나타난다. 레인버그가 탄 조종석은 안으로 수납되고, ‘가지’는 캐터필러 부분과 분리되어 상하로 180도 회전, 아까와는 달리 인간의 골격 같은 모습으로 변모한다. 그리고 놀랍게도, 아까의 전투에서 분리되었던 ‘외피’들이 다시 자석에 끌린 철가루처럼 그 ‘골격’에 달라붙어, 스스로를 재조직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이게 이녀석의 진짜 모습이다! 이길 수 있겠는가, 울트라하!!!”

재조립이 끝난 그 메카의 모습은 잭 프로스트(동화에 나오는 눈의 요정)의 형태를 완벽하게 본딴 거대기계인형, 즉 메가=마리오네트였다. 15미터급의 잭은 놀라서 그 자리에 멈춰선 라하세르에게 숨쉴 틈도 주지 않고 공격을 가하기 시작한다. 손가락에서 나오는 얼음 미사일과 모자에서 쏟아지는 인공 눈보라, 그리고 그 눈보라를 방패삼아 자기의 거짓 영상을 도처에 비춰대는 은폐술까지. 그 뜻밖의 반격에 당황한 유성대장은 다시 공격을 가하지만 몰아치는 인공 눈보라 때문에 엔진이 얼어붙어 비상탈출을 해야 했고, 임시가설된 보급용 포스트로 대피한 펫츠이글-β는 수리에 걸리는 시간 때문에 재출격은 무리였다. 방위군은 마침 시 외곽에 나타난 k모 범죄단체의 공격에 대비하느라 정신이 없었고, 경찰은 이런 종류의 일에는 무력했다. 사방에서 날아드는 얼음 미사일과 눈보라의 폭풍에 라하세르는 정신이 멍해질 지경이었다. 결국 그 엄청난 공격에 이기지 못한 정열의 거인은 땅바닥에 무릎을 꿇고 공공도로에 큰 손상을 입히며 쓰러졌다.

멀리서 이 상황을 지켜보던 어메장관의 뇌리에 문득 어떤 생각이 스쳐지나갔다. 엉뚱하지만 한 번 해볼만한 그런 생각이.




“헷, 겨우 이정도인가. 추위에 약하다는 정보는 이미 입수하고 있었지만 그래도 설마 이정도로 약할 줄은 몰랐는걸... 뭐 아무튼, 네게 유감은 없지만 나의 원대한 계획을 방해하게 둘수는 없지.”

한편 바닥에 쓰러진 라하세르는...

//우웃, 또 추위가... 이대로 당할 수는... 없는데... 이대로...//

점점 정신을 잃어가던 그녀의 귀에 뭔가 따뜻한 소리가 들려온다.

//......종... 소리? 하나가 아니야.............!“

그렇다. 하나가 아니었다.

인공 눈보리가 그치자 수십, 수백명의 사람 그림자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공원 주변의 번화가에서 구호활동을 펼치고 있던 모든 구세군들이 자선남비를 들고 그곳에 달려온 것이었다. 그들은 언제 거대한 요정의 발 끝에 희생당할지 모르는 상황인데도 놀랍도록 평온한 얼굴로 그 자리에 서서 손에 든 작은 종을 울려대고 있었다. 딸랑 딸랑 딸랑 딸랑 딸랑.

그 선두에 언제나 엉뚱한 짓만 벌이는 어메장관이 서 있었음은 물론이다. 그는 꿈꾸는 소년같은 맑은 얼굴로 빌려온 종을 말없이 울리고 있었다. 놀라서 그를 쳐다보는 대원들의 뜨아한 눈길도 전혀 의식하지 않고서.

‘하지만 라하야, 결국 ’말‘이란 것은 수많은 방법 중 하나에 불과하단다...’

라하세르는 그제서야 할머니의 말씀이 무슨 뜻인지 이해했다.

//......모두들... 나를 믿고 있는 거죠...?

   느껴져요. ......모두의 희망이!!! ......모두의 마음이!!!//

한편 잭의 조종실에서 레인버그는 때아닌 오한과 편두통에 시달리고 있었다. 마음이 산란하고 복잡했다. 뭔가 기억하기 싫은 게 자꾸만 떠오르려 하고 있었다. 그는 바락바락 소리를 질렀다.

“................어리석은 깡통들이!!!!!!!!!!!!!!!!!!!!!!!!!!!!!!!!”

싸움을 지켜보던 윈드가 쓴웃음을 짓는다.

“자넨 졌어. 프레드.”

다시 기운을 차린 울트라하는 재빨리 일어서더니 눈부신 녹색 광휘(光輝)에 휩싸였다. 다음 순간 완전한 녹색의 거인으로 변한 울트라하는 양팔을 좌우로 뻗고 그 자리에 선 채 맹렬하게 회전하기 시작했다. 녹색의 그녀가 엄청난 속도로 회전하는 모습은 곧 윤곽만 남긴 채 거대한 소용돌이로 변했고, 그것은 어떻게 보면 또 하나의 거대한 크리스마스 트리이기도 했다. 그 녹색의 소용돌이는 땅을 박차고 하늘로 뻗어오르더니 잭을 향하여 맹스피드로 돌진해 와서 그 몸통을 정통으로 관통하고 지나갔다. 잭은 심하게 손상되어 바닥에 주저앉았지만 아직도 얼음 미사일을 날리고 있었다.

소용돌이가 멎고 다시 원상태로 돌아온 거인이 하늘을 향해 경건하게 왼팔을 뻗더니 오른팔을 바깥쪽으로 뻗었다가 다시 머리를 향해 굽히면서 머리의 램프와 양손이 교차, 그 순간 울트라하의 머리 위에 커다란 노란 별이 생기면서 이제까지 본 적이 없는 강력한 빔이 그 별의 중심부로부터 발산되었다.

후에 국제괴수학회에서 ‘베들레헴의 별’이라고 이름붙인 신필살기의 등장이다.

빔을 얻어맞아 파쇠뭉치가 되어버린 잭은 허무하게 무너져내렸다. 기막힌 사명을 띠고 출동한 구세군 전원은 파편을 피해 급히 도망치고 있었다.

역시 임무를 끝낸 구원의 여왕 울트라하는 깜깜한 밤하늘로 사라져 갔다.




불시착한 펫츠호크-β에 기대어 상황을 애타게 지켜보던 PETS대원들 또한 기쁨에 겨워 날뛰고 있었다. 특히나 유태대원은 방금 구출한 소녀가 언제나 깨어날까 조바심을 내고 있었기 때문에 더더욱 심하게 날뛰었다.

“이제 내가 울트라하가 아니란 게 증명된 거지?”

그런 가운데서도 하라대원이 칼날 자르듯 쏘아붙였다.

“모를 일이죠. 외계인이라면 분신술을 쓸지 누가 압니까요.”

겨우 여유가 돌아온 듯 능글맞게 말하는 유태대원이었다.

“농담은 그만하고, 손님이 정신을 차리는 것 같군.”

그나저나 어디선가 본 듯한 얼굴인데 이상한걸. 아까는 급박한 상황이어서 제대로 살펴볼 겨를이 없었는데, 이제와서 자세히 뜯어보니 분명 아는 사람 중 누군가를 닮은 얼굴이었다. 하라대원은 기시감(旣視感)이라는 단어가 생각나긴 했지만 ‘설마...우연이겠지’라고 되뇌었다. 어쨌거나, 구급용 모포에 눕혀둔 인질이 깨어나려는 순간이다.

“......으, 응....”

“아가씨, 정신이 들어요? 고생 많았죠? 이젠 괜찮습니다 핫핫핫!”

누운 채 그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던 소녀가 갑자기 눈을 크게 떴다.

“................유태씨! 여기서 뭐해요? 어머 세상에, 하라선배도 왔네.;;”

“................으잉?;;;;;; <띠융>”

산타복장의 인질소녀는 바로 피요대원이었던 것이다.




레인버그는 빔을 맞기 직전에 스프링 장치로 조종석을 분리시켜 탈출한 뒤 낙하산을 펼치고 땅에 내려섰다. 그는 여전히 광기에 가득한 얼굴로 산타모자 속의 리모콘을 만지작거리며 최후의 협박을 하고 있었다.

“흥, 그래도 아직 내겐 8개의 가스풍선이 있지. 이 풍선들의 폭발시간까지는 앞으로 15분. 해제 암호는 모두 8개의 단어로 되어있지만 내가 아니면 아무도 알아내지 못할걸! 암호를 알고 싶다면 15분 안에 내 도주로를 보장해줘야겠다! 어떤가, 공무원 나으리들?”

마침 경찰은 레인버그의 은신처에서 풍선에 명령을 내리는 통신장치를 발견하고 암호를 풀기 위해 전력을 다하고 있었다. 그러나 2시간이 채 14분도 안 남은 지금까지도 신통한 결과를 얻지 못했던 것이다. 전투가 종료되어 할 일이 없어진 PETS의 멤버들과 어메장관 역시 이 수수께끼에 매달려 밤을 밝히려 하고 있다. 또한 레인버그가 퍼뜨린 기괴한 약물을 연구하기 위해 달려온 무휼박사 이하 구급반도 약물의 화학식을 푸느니 차라리 본인을 족치는게 더 빠르겠다고 단정하고 이 문제에 뛰어들었다. 레인버그는 인스펙터 윈드에 의해 구속되었으나 전혀 입을 열지 않고 있다. 어느덧 날씨는 영하로 접어들어 거리에는 눈발이 날리고 있었다. 인공 눈보라가 아닌 진짜 눈이다.

앞으로 13분 28초.

“크리스마스에 범행을 저지른걸 보면 크리스마스와 연관이 있는 단어일텐데, 문제는 8개 전부가 아무 관련이 없는건지 아니면 한 세트인건지...”

“꼭 크리스마스만 연관이 될 수는 없겠죠. 그의 어린시절 경험이라던가..”

“난수표로 짜넣는 숫자 같은 것은 아닐까?”

“기억하기 쉽게 하려면 역시 낱말일 거라고 봐.”

앞으로 11분.

그 와중에 수수께끼 풀이에는 아무 흥미도 없고 현재로서는 솔로이기 때문에 커플을 갈라놓는 가스의 살포에 아무런 관심도 가지지 않고 있던 선림은 그전날에 본 영화 이야기를 신나게 늘어놓고 있었다.

“글쎄 말야, 그 일벌레 아빠가 아들에게 줄 장난감을 타기 위해 방송국 퀴즈에까지 응모를 하러 마구 달려가는데, 정답을 입으로 줄창 외우면서 가는 폼이 얼마나 웃기던지...”

“그래서그래서, 답이 뭐였는데요?”

동거녀의 호기심어린 질문에 답하느라 애쓰는 선림.

앞으로 7분.

“그게 좀 복잡해서... 뭐였더라? 산타의 썰매를 끄는 사슴...아니 순록의 이름이었지 싶어. 왜 있잖아. 루돌프말고, 아메리고 사람들은 꽤 잘 아나 보던데..”

“아, 그거 말야? 나도 그 영화 봤는데 좀 특이해서 메모해 놨을걸. 나중에 강아지나 고양이 이름 지어줄 때 참고하려고 한건데... 아! 이거다.”

앞으로 4분.

미나가 건네준 수첩을 낭랑하게 읽어나가는 선림.

“맞아맞아. 태셔, 댄서, 프랜서, 빅슨, 코멧, 큐피드, 도넛, 브릿즌.”

“태셔, 댄서, 프랜서, 빅슨, 코멧, 큐피드, 도넛, 브릿즌?”

앞으로 1분.

“이걸 하나하나 리듬을 타고 외워나가더라. 꼭 무슨 주문 외는 것 같지?”

그 순간, 옆에 수갑을 찬 채로 찌그러져 있던 레인버그가 괴성을 지르며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모두 망쳤어! 그걸로 하는게 아니었어! 이젠 다 끝났어! 나는 바보야! 어떻게 그렇게 멍청할 수가 있었을까! 아무도 모를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크아아아!!!”

그리고 모두가 그의 말을 제대로 이해하기도 전에, 옆의 경찰관이 통신장치를 살펴보더니 기쁜 목소리로 말하는 것이었다.

“암호 입력 완료. 폭파장치 해제되었습니다. 뭐 어떻게 된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렇다는군요. 수고하셨습니다.”

“에에---? 순록 이름이 암호였던 거야?”

“범죄자치고는 어린애같은 데가 있었네... 귀엽다.”

그 한쪽에서는 상황이 어떻게 되었는지도 모른채 어메장관과 무휼박사가 수수께끼 풀이에 빠져 헤어나올 줄 몰랐다.

“그러니까 이 부분에서는 크로스워드 퍼즐도 생각해볼 필요가 있어.”

“아니 아니, 그건 너무 난해하지. 역시 스무고개로 하는 편이...”

그들을 못본체 하며, 유성대장은 윈드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도 구세군에 뭔가 맺힌게 있나 보죠?”

“그를 100번째 차버린 여자가 바로 구세군에서 일하고 있었거든요.”

“.....못말리게 쫀쫀한 놈이로군;;;”

“아무튼 당신네 장관님은 참 대단한 분이군요. 구세군들을 불러모아 그쪽으로 나갈 때는 -이런말 해서 죄송하지만- 혹시나 미친 게 아닐까 하고 생각했었는데, 제가 오해한 것이었어요. 정말 큰 걸 배웠습니다.”

“잠든 거인 깨울 때는 구세군을 불러라, 같은 거요?”

“아닙니다. 크리스마스는 연인들만을 위한 날이 아니라는 것, 이죠.”

“............?”

“구세군의 정신, 그것은 이웃을 돕고 서로를 사랑하는 것이었죠. 그것이 단지 헛된 구호에만 머무른다면... 그때는 정말로 크리스마스는 끝장나겠지만. 장관님은 적어도 그것이 아직은 여전히 살아 있음을 제게 보여주었습니다.”

“아아......”

풀이 죽어 쭈그리고 앉은 레인버그를 돌아보며 윈드는 말한다.

“프레드의 동기는 사실 말도 안되는 거였지만... 그가 한 말이 다 틀린 것은 아니었을지도 모릅니다. 진정한 명절의 의미는 죽어가고 있는게 아닐까요?”

“글쎄요. 저로서는 뭐라고 말하기가 힘들군요.”

“아무튼 감사했습니다. 장관님은 바쁘시니 대신 인사 좀 전해 주십시오.”

“그러죠. 저희도 감사드립니다.”


아무튼 상황종료. 시각은 밤 3시 45분이었다. (에구 지친다.. 작가 살려;;;)




“......꼬마, ...너였냐?”

“그럼 누군줄 알고 구한거예요? 기가 막혀서!”

유태대원은 하늘이 무너지는 느낌이었다. 기껏 첫눈에 반하여 목숨걸고 구출한 그의 산타소녀가 하필이면 평소에 티격태격하던 그 ‘천재 꼬마’일건 또 뭔가. 아아 올해도 여전히 마(魔)가 끼었군. 내년에는 좀 재수가 좋아져야 할텐데.; 유태대원은 정말로 그렇게 생각했다.

“이게 뭐야! 난 속았어!!! 나의 산타소녀 돌려줘어----------!!!!!!”

“원래 없는걸 어떻게 돌려줘요!!!!!! 바보 아녜요???”

그런 두 사람의 어이없는 싸움을 보고 피식 웃어버리는 하라대원이었다.

‘...그건 그렇고, 피요양이 저렇게 귀여웠었나?’

피요대원은 알고보니 감기에 걸린 것이 아니고 어떤 말못할 이유가 있어서 성탄 연휴동안 그곳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기 위해 휴가를 신청한 것이었다. 도대체 어떤 이유였기에 솔직히 말하지 않고 꾀병을 부려야 했을까 하는 의구심도 들기는 했지만.

평소의 책벌레 이미지만 보고 살던 동료들의 눈에는, 피요대원이 미소녀라는 것이 잘 인식되지 않았던 것이다. 머리를 약간 염색하고 안경 대신 콘택트렌즈를 끼고 산타복장을 한 것 뿐인데도, 전혀 다른 사람인줄 알았다니.

‘어쩌면, 우리가 피요양에게 너무 무심했던 걸지도 몰라...’

돌아오는 새해에는... 그러나, 하라대원의 생각은 두 사람의 언쟁에 가로막히고 말았다.

“착각하지마라, 넌줄 알았으면 그냥 냅뒀을거다. 천재니까 어련히 알아서 살아나려구. 응?”

“유태씨의 문제는 바로 그 꽉막힌 머리라고요!”

“내 머리는 멀쩡해, 오히려 네 머리가 너무 좋아서 탈이지!!”

“야만인! 둔탱이! 머저리!”

“책벌레! 안경잽이! 땅꼬마!”

아무래도 말려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을 때, 뒷정리를 도와주던 동거녀가 그 소리를 듣고 들어왔다.

“평소보다 더 심하게 싸우네요. 두 사람.”

“이런 후배들을 데리고 일해야 하는게 때로는 슬프다니까. 아무래도 저 둘은 영원히 친해지지 못할 것 같애.”

하라대원의 푸념에 동거녀는 조용히 고개를 젓는다.

“저는 그렇게 생각 안해요. ‘말’이라는 것은... 결국 수많은 방법들 중 하나에 불과하니까요. 그렇죠?”

“......아아. 그렇네, 정말...”

동거녀의 따뜻한 웃음을 보고, 하라대원도 생각이 바뀌기 시작했다.

좀더 따스한 눈으로 지켜보자.

좀더 다정하게.




“라하세르, 오늘은 왠지 다른 때보다 기분이 좋아 보이는구나.”

“네, 지난번에 말씀드린 문제 때문에요. 그때 해 주신 말씀, 이제야 무슨 의미인지 어렴풋이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애요. 감사합니다. 할머니.”

“도움이 되었다니 다행이로구나. 아직도 마음고생하고 있을까봐 걱정했단다.”

“그런데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게 생겼어요.”

“또?”

“우리의 임무는 지구인을 지키는 것인데... 지구인이면서 같은 지구인을 해치는 자를 저지하는 것은 어떻게 해석해야 하죠? 그들도 결국 지구인인데, 그들을 해치는 것도 지구인을 해치는 것이 되지 않을까요? 그렇다고 한다면, 저는 어떻게 하든 결국 지구인을 해치게 되는 거예요. 이렇게 생각하니 정말로 혼란스러워져서...”

“라하세르.”

“네?”

“다시 배워야 할 게 있구나. 우리의 임무는 ‘생명’을 지키는 것이야. 따지고 보면, 결국 우리가 하는 모든 일 자체가 생명을 지키기 위해 다른 생명을 해하지 않으면 안되는 힘들고 괴로운 과정이란다. 하지만, 과연 어떤 생명이 보호받아 마땅하고 어떤 생명이 타도되어야 마땅한지 누가 결정할 수 있을까? 그리고 그런 결정을 내린다 해도 얼마나 올바른 것이 될까? 이건 우리 종족이 태고적부터 품어 온 근원적인 의문이란다. 이에 대한 해답을 찾아내는 것 또한 너희들 여왕 후보생의 과제 중에 들어가 있어. 그걸 명심하거라.”

“그건 대답이 아닌데요. 질문에 질문으로 답하시는건 반칙이에요.”

“그게 여왕의 특권이란다.♡”

“......할머니도 참;;;;;;”

동거녀는 곤혹스러운 기분이었다. 하지만 속았다는 느낌은 전혀 들지 않았다.

언젠가는 찾을 거야. 나의 해답을.




프레드 레인버그는 WATCH에 의해 구속되어 앙끄를 떠났고, 그가 뿌린 의문의 약품은 조만간 해독제가 만들어질 예정이다. 그때까지는 상당히 많은 수의 커플들이 ‘사랑해’라는 말 한 마디 때문에 골치를 앓을 듯 하다. 물론 다른 사람에게 그 말을 녹음하거나 대필하게 해서 필요할 때마다 꺼내 쓰는 방법도 있기는 하지만, 역시 스스로의 입과 손으로 하는 것만큼 절실할 수는 없는 것이다.

‘연인들의 광장’은 여전히 붐비고 있다. 물론 다른 지방에서 온 연인들이 더 많아지긴 했지만, 장사하는 사람들에게는 그런 것은 아무래도 좋다.

그해 성탄절도 그렇게 흘러갔다.

“장관님 추적 작전, 결국 실패였나요?”

“응, 피요양이 같이 있었으면 더 재미있었을텐데.”

“전, 그게......”

“아아, 알고 있어. 가지 않으면 안될 사정이 있었겠지. 굳이 묻지는 않을게.”

“저... 사실은...”

피요양은 말을 멈추고 손가방에서 예쁘게 포장된 작은 선물을 꺼냈다.

“......며칠 늦었지만, ...받아주시겠어요?

하라는 잠시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애매한 눈초리로 상대를 바라보다가, 갑자기 뭔가를 깨달은 듯 얼굴에 웃음기를 띄기 시작했다.

“그럼, 누가 주는 선물인데.”

그들의 손 끝이 맞닿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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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央久プロ․NOW․ウルトラハ製作委員會  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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