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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04-05] 시공의 여행자 K
패러디 왕국/건담관련 | 2009. 11. 24. 2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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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공의 여행자 K』

~기동전사건담 超外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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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Pastiche Written by ZAMBONY@hitel.net 1998/04/05

Based on the Characters & Situations copyrighted by SUNRISE

...and a Very Special Real-life Person, Without His Permission (Sorry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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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BEGINNING―




U.C. 0087



우주는 본래 조용하지만, 인간의 활력은 그 우주를 잠시라도 가만 놔두지 않는 모양이다. 특히 인간이 우주에서까지 전쟁을 하게 된 뒤부터는 더욱 그렇다.


월면의 폰 브라운 시(市) 외곽에 위치한 대규모 공장 안에서 뭔가가 이루어지고 있는 듯하다. 오늘도 어김없이 여러 명의 메카맨들이 커다란 기계류 옆에 매달려 바쁘게 일하고 있다. 그들 바로 아래에는 작업 상황을 옆에 설치된 모니터도 점검하면서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 몇몇 상급 엔지니어들의 모습이 보였다.

“이런 구상은 위험한 것 아닐까? 3단 변형은 아직까지 안정성이 충분하지 못해. 게다가 소문에 따르면 저쪽 프로젝트 팀에서도 같은 구상을 가지고 2년 전부터 작업해 왔다는 말도 있어. 잘해 봤자 흉내내기라는 소리만 들을지도 모른다구.”

“기본 컨셉은 확실히 저쪽이 먼저 잡은 것이니까 거기에 대해서는 할 말이 없어. 하지만 우리의 접근 방법은 저쪽과 근본적으로 다르지. 저쪽 팀에서는 같은 3단 변형이라 해도, 다소 목적이 모호한 만능 결전병기의 형태를 목표로 하는 모양이야. 하지만 우리는 선봉 돌파와 거점 공격이라는, 철저히 전문화된 기능을 추구하고 있으니까, 그 점을 강조하면 차이를 둘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그럼 이대로 계속 진행할 생각인가. K?”

“자네가 윗사람들을 어떻게든 납득시켜 주기만 한다면...”

K라고 불린 남자는 둥근 안경을 끼고 약간 마른 체구에 별 볼일 없는 용모를 하고 있는 동양계의 청년이었다. 그러나 그의 눈은 날카로운 재기로 번득이고 있었다.

그들이 있는 곳 바로 위에서 신형 MS의 골조를 손보고 있던 젊은 기술자 한 명이 잠깐 K 쪽을 바라보고는 눈을 비볐다. 그러나 그는 다시 고개를 돌리고 자기의 일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설마 잘못 본 것이겠지... 세상에는 닮은 사람도 많으니까...’

그는 4년 전에 우연히 만난 어떤 남자를 생각하고 있었다.

그 때 만난 곳은 물론 달이 아니었지만.




U.C. 0083



“이것이 바로 3번째의 실험기입니까?”

“그렇습니다. 보시다시피 방금 태어난 갓난아기입니다만, 귀하의 프로그래밍만 끝나면 이놈도 제 몫을 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부드럽게 웨이브진 갈색 머리카락이 인상적인 젊은 여인이 수령장을 받아서 사인을 한 다음 상대방에게 건네주었다.

“수고가 많으셨습니다. 나머지 과정은 저와 라비앙 로즈의 스탭이 알아서 할 테니 염려 놓으셔도 될 거예요.”

“그럼 전 이만...”

둥근 안경을 낀 호리호리한 남자는 살짝 고개를 숙여 보이고는 캣 워크(좁은 복도)를 지나 도크 구역 밖으로 나갔다. 그의 뒷모습에서 기술자로서의 자신감과 함께 정든 자녀를 떠나 보내는 부모의 아쉬움 같은 감정이 함께 느껴진 것은 착각이었을까?

“저 사람 인가요? 이번에 사내(社內)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는 신진 엔지니어가...”

근처에 서 있던 소년 메카맨이 다가와서 질문을 한다. 15세 정도로 보이는 앳된 얼굴이었지만 그의 손에는 다년간의 경험으로 인해 못이 박혀 있었고 입은 작업복도 기름때투성이로 더러워져 있었다.

“그래, K라는 사람이지. 시대를 앞서가는 파격적인 디자인으로 윗분들을 놀라게 만들었다던데. 어디 한 번 내가 직접 봐야겠는걸. 어쩐지 이 녀석이 마음에 들어서 말야.”

루셋 오데비는 새로 들어온 MS를 살펴보기 위해 가벼운 몸놀림으로 무중력의 플로어 위를 떠갔다.

어쩐지 시대에 걸맞지 않는 무뚝뚝한 형체를 띠고 있는 흰색의 MS가 그녀의 앞에 서 있었다. 물론 여기에 있는 것은 그 ‘실험기’의 일부에 불과했다.

“내일부터는 트라이얼(시운전)을 해야 하니까, 빈틈없이 준비해 두도록 하라고 모두에게 알려 줘.”

“옛.”

소년은 스패너를 장난 삼아 돌리던 손길을 멈추고 왔던 길로 되돌아갔다.




U.C. 0152



지구.

동유럽 어딘가의 지하에 위치한 비밀 공장.

그 어둠침침한 공장 안에서 십수 명의 작업원들이 부산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들의 얼굴 표정에는 분명 당장이라도 누군가로부터 공격받지 않을까 겁먹고 있는 것이 확연하게 드러나 있었다. 그들의 마음이야 어쨌거나 그들의 손은 윤활유라도 친 듯 바쁘게 움직였고 그들의 주위를 둘러 싼 길다란 조립 라인을 거쳐서 수대의 모듈이 완성되어 가고 있었다. 그냥 보아서는 도대체 무엇에 쓰는지 알 수 없는, 깔끔한 곡선을 띠고 있으면서도 보는 이에게 야무진 인상을 주기에 충분한 그 기계류들은, 완성되자마자 조심스럽게 공장 뒤편의 행거(격납고)로 보내어져, 차곡차곡 제 자리에 놓여졌다.

작업 과정을 숨죽여 가며 지켜보던 두 명의 노인이 작은 소리로 속삭였다.

“제국의 움직임은 어때? 여기마저 탐지 당하면 곤란해진다구.”

“놈들도 이곳까지는 신경을 못 쓰는 모양이야. 하지만 언제라도 들이닥칠지 알 수 없는 상황이라고 그러더군. 바르셀로나는 벌써 넘어갔고, 지난달에는 라게인이 점거 당했대.”

“그곳은 이 공장에서 별로 멀지 않은 곳이잖나.”

“바로 그게 큰일인거야.”

안경을 끼고 콧수염을 기른 노인이 한숨을 쉬었다. 그보다 한 열 살은 더 먹은 듯한, 반 대머리에 가느다란 눈매를 지니고 약간 멍한 표정을 띤 노인이 말을 이었다.

“그런데 이건 코어 블록이 아닌가? 이렇게 조그만 기체에 이런 시스템을 우겨 넣다니 좀 무모한 짓이 아니었을까.”

“그러게 말이지. 우리가 일하던 때만 해도 15미터급에서 이런 곡예를 부릴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으니까. 기껏해야 등뒤로 끼우는 형태가 고작이었지, 아마.”

“비용이나 뭐 그런 문제는 없나? 안정성 검사도 해 봐야 할 것 같은데 지금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시간을 오버할 수도 없고... 고민인걸.”

“자금줄은 어떻게 마련된 모양이지만... 제대로 움직일 수 있을지.”

“대체 어떤 미치광이가 해낸 생각인가?”

안경을 낀 노인이 머리를 긁으며 기억을 더듬더니 느릿느릿하게 대답한다.

“지난번에 달에서 이쪽으로 옮겨 온 어떤 젊은이라지, 아마. 모두들 그를 K라고 부르는 걸 들었네.”

“K? 본명은 뭔데?”

“나도 모르겠어. 말을 안 했으니까. 다만 둥근 안경을 끼고 있었다는 것밖에는...”

흰머리의 노인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상한걸. 전에도 그와 비슷한 천재가 있었던 것 같은데.

‘하지만 그건 이미 70년도 전의 일 아닌가. 설마 그럴 리가...’

로메로 마라발은 고개를 저었다. 역시 그럴 리가 없어. 그의 자손이나 친척일지는 몰라도. 그는 콧수염의 늙은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오티스, 그를 만나 볼 수 있을까?”

“이미 늦었어. 어제 오후에 마벳이 지브롤터까지 데려다 주었다는군. 달로 돌아가려는 모양이야. 가족들도 그곳에 있다고 하니까.”

“그런가... 아쉬운걸.”

그러고 보니 한 30년 전에도 비슷한 경험을 했던 것 같다. 세상에 참 희한한 일도 다 있지. 로메로는 잠시 동안 상념에 잠겼다.

하지만 그에게는 다른 할 일이 많았다.

그는 곧 그 생각을 잊어버릴 수 있었다. 노인들은 뭐든지 쉽게 잊는다.

그런 것도 때로는 축복이 되는 법이다.




F.C. 59



희끗희끗해진 머리가 제대로 빗질도 하지 않는 듯 이리저리 삐죽하게 튀어나와 흡사 중세의 열혈만화 주인공이 늙은 뒤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 주는 듯한 모습을 한 초로(初老)의 과학자 한 사람이 조명도 별로 잘 들어오지 않는 갑갑한 행거 안에서 몇 명의 조수들과 함께 그의 발명을 손보고 있는 광경은 지난 구세기(舊世紀)에 만들어진 삼류 공포영화들을 연상시키는 음침하고도 비장한 맛이 있었다.

단지 이곳이 콜로니 안이어서 천둥번개가 없다는 것만 제외한다면.

“아버님, 이제 최종 단계입니다. 마지막 세팅만 마치면 끝납니다. 기쁘시죠?”

역시 만화적인 헤어스타일과 초롱초롱한 눈매를 가진 그의 큰아들이, 그 복잡 기괴한 기계에서 튀어나온 갖가지 전선들을 타 넘고서 그의 옆에 와서 미소짓는 얼굴로 보고한다.

그는 계측용 소프트웨어가 구동 중인 노트북을 손에 끼고 있었는데 그 화면 위에는 마치 눈(雪)의 결정을 연상시키는 복잡하기 이를 데 없는 입방격자의 컴퓨터 그래픽 화상(畵像)이 쉴 새 없이 변화를 거듭하는 모습이 비치고 있었다. 마치 일종의 세포 분열 시뮬레이션을 보는 듯한 화상이었다.

피곤해 보이던 노인도 역시, 웃는 얼굴로 그를 맞이했다.

“오 그래. 그거 정말 다행이구나, 쿄우지. 전번의 작업 상황으로는 도무지 올해 말까지 끝내지 못할 것으로만 보였는데.”

“그 동안 모두들 철야 작업을 한 덕분이죠.”

“이제 이것만 완성되면 인류에게는 상상도 못한 새로운 미래가 열리게 될 거야. 오염도 질병도 고통도 재앙도 없는, 진정한 자연으로의 복귀가 말이다.”

“아버님의 꿈이 실현되는 것을 꼭 제 눈으로도 보고 싶습니다.”

“정말 고맙구나. 네가 아니었다면 결코 해내지 못했을 테니까 말이다.”

“그 친구에게도 감사하셔야죠. 이 MF의 레이아웃을 잡은 그 엔지니어 친구 말입니다. 아버님의 아이디어를 훌륭하게 구체적인 도안으로 잡아낼 수 있었던 건 오직 그 친구가 도와준 덕분이니까요.”

“그 K라는 친구 말이냐? 물론 나도 감사를 하려고 했지... 그런데 바로 이틀 전에 말도 없이 떠나 버렸단다. 뭔가 급한 일이 있었던 모양이야.”

“그렇게 예의를 모르는 친구는 아닌데... 아무 말도 남기지 않았나요?”

“아무 것도... 아 잠깐, 숙소에 이런 메모가 남겨져 있었단다. ‘군(軍)을 조심하라. 무슨 일이 생기면 지구로 가라’... 대체 무슨 의미인지 원...”

“수수께끼 풀이 같군요. 뭐 할 수 없죠. 이제는 그 친구 없이도 어떻게든 해낼 수 있으니까 별 문제는 없을 거예요.”

“그건 그렇고, 도몬도 여기 있었더라면 좋았을 텐데...”

“수행 중이라니까 어쩔 수 없죠. 하지만 때가 되면 꼭 돌아오는 애잖아요. 이번에도 꼭 돌아올 겁니다. 너무 상심 마세요.”

라이조우 카슈 박사는 벅차 오르는 감격에도 불구하고 다소 쓸쓸함이 섞인 눈빛으로 그의 일생 일대의 발명품을 바라보았다.

그것은 ‘궁극의 건담’이라 불리게 될 하나의 거대한 머신이었다.




U.C. 0128



“말도 안되는 디자인이야. 대체 MS에 해골 마크는 왜 붙이는 걸까?”

“해적들이 쓰게 되거든.”

“해적???”

사나리(S.N.R.I.)의 지상지사(地上支社)에서는 의문의 고객으로부터 주문 받은 신형 MS의 제작이 한창 진행되고 있었다. 그 기체들 중 한 대를 나타내는 기본 설계도를 프린트 아웃하여 찬찬히 훑어보며 설계상의 문제를 재검토하던 기술자들 중 한 명이 고객의 이상한 취향에 대하여 트집을 잡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었다. 지금까지 MS에 해골바가지를 달고 나오는 경우는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니까 말이다.

“더이상은 나도 모르겠어. 그냥 해적이라는 말만 들었으니까.”

“어딘가에서 해적을 주제로 한 테마파크라도 만드는 건가? 그럼 이 MS는 어트랙션(전시)용일지도 모르겠네?”

“어트랙션용의 하비 MS에 실탄(實彈)을 적재하는 거 봤어?”

“무슨 상관이야. 우리는 납기일만 제때 맞추면 그만이라구. 어떻게 써먹든 간에 그건 고객 맘이지. 개발 코드도 우리와는 일체 관계가 없는 것처럼 다시 부여되니까 이쪽으로 의심이 돌아올 일도 없고 말야.”

“게다가 요즘은 연방군에서도 MS를 감축한답시고 야단이니 들어오는 일도 거의 없잖아? 소대장용의 F91을 무더기로 발주 받은 것은 그나마 다행이지만, 이대로 가다간 하루아침에 실직자가 될지도 모르겠다니까. 요즘 형편을 보아하니.”

그들이 떠드는 꼴을 한쪽 구석에서 관심 없다는 태도로 지켜보고만 있던 젊은 사내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는 사무실 구석에 놓인 벤딩 머신에서 홍차 한 잔을 뽑아 들고는 서류를 옆구리에 끼고 문 밖으로 나갔다. 둥근 안경을 끼고 검은 머리칼을 가진 마른 체구의 동양계 사내였다.

“봤어? 바로 저 녀석이야. 이 기체의 설계자가.”

“아직 젊은 놈이잖아? 어떻게 설계 주임 자리까지 올라갔지?”

“요즘 인재 구하기가 어려워서겠지 뭐.”

“어쨌거나 이 기체, 해골 마크만 빼고 보면 기가 막힌 장비들로 꽉 차 있어. 단검에다 사슬 달린 가위손에, 무기를 겸한 빔 쉴드, 게다가 이 고출력의 외부 돌출형 버니어는 장난이 아니거든!”

“이런 대출력 장비를 써먹으려면 중력이 강한 곳이어야 할 텐데...”

“설마... 목성인가?”

“하여간 대단한걸. 고작 15미터급에 이런 기능을 채워 넣다니. 이런 놈은 F91 이후로 처음 보겠어.”

그때 마침 60대쯤 되어 보이는 한 노년의 기술자가 아까 청년이 나간 문을 통해 그 방으로 들어왔다. 그는 유령이라도 본 사람처럼 약간 당황스런 얼굴을 하고 비틀거리며 문을 열었다.

기술자들 중 한 사람이 담배를 피워 물다가 걱정스런 얼굴로 노인을 맞이했다.

“왜 그러세요 로메로씨. 안색이 별로 안 좋아 보이시는데.”

“아, 아무것도 아닐세. 나이가 들다 보니 빈혈 증세가 있나 봐. 좀 쉬면 나아질 거야. 그건 그렇고, 방금 이 방에서 나간 젊은이가 누군지 아나?”

“글쎄요. 저희들도 만난지 일주일밖에 안되는 친구라서, 그냥 K라고 불린다는 것밖엔...”




A.C. 175



묘하게 양옆으로 뻗어 오른 머리를 잘 빗어 넘긴 콧수염의 중년 귀족이 눈앞에 선 부관의 보고를 듣고서 놀라는 광경은 확실히 매일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특히나 그 귀족이 세계를 쥐고 흔드는 롬펠러 재단의 고위 간부일 때는 더욱 그럴 것이다.

“모두 사라졌다고? 다섯 명, 아니 여섯 명 모두?”

“예, 게다가 연구 데이터도 거의가 소실되어 버리고...”

“어디로 갔을지는 알아냈나?”

“철저한 조사 결과 지구상에는 없습니다. 각 콜로니의 입국 창구를 거쳐 간 자들의 신상을 조사중입니다만 워낙 콜로니의 수가 많고 방문객도 여럿인데다가 만약에 정식 루트를 거치지 않고 밀입국하기라도 했다면 찾아내기가 더 어려워질 것 같습니다. 게다가 아무래도 여섯 명이 각각 따로따로 다른 목적지를 향하여 도주한 것 같아서...”

“그건 아무래도 좋아. 남은 데이터는 MS개발 속행에 충분한가?”

“프로토타입 1기가 남아 있고 그것에 기초한 양산화 플랜의 복사본이 아직 재단 본부의 수중에 남아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최근에 연구하기 시작했다는 그 ‘최강의 기종’에 대한 자료는 모두 폐기된 뒤였습니다.”

“할 수 없는 일이지. 그들과 함께 일한 기술자들은 조사해 봤나?”

“옛, 하지만 그들도 단지 명령만 받는 처지여서 자세한 건 모른다고...”

“억지로 추궁할 것까지는 없겠지. 그들 중 적당한 자를 골라서 개발 책임자로 선임하고 준비된 양산화 플랜을 실현시키도록 지원하게. 지금으로서는 일단 남아 있는 것만이라도 건지지 않으면 안돼.”

“알겠습니다. 그러면 곧 실행에 옮기겠습니다.”

델마이유 공작의 명령에 따라, 전임 개발자였던 하워드의 노하우를 충분히 이해하고 있다고 인정받은 일련의 기술자들이 다시 MS라고 불리는 신형 병기의 개발에 전력한 결과, 롬펠러 재단은 만족할 만한 성능을 갖춘 ‘리오’라는 이름의 양산기와, 그 후속 기체들을 손에 넣을 수 있었다.

그 작업을 진두 지휘한 자는 둥근 안경에 검은 머리를 가진 K라는 동양인이었다고 한다.




A.C. 195



중형 우주전함 피스밀리온 내부.

이곳에서 기계를 돌보는 일을 도맡아 하는 몇 명의 기술자들이 다섯 대의 건담에 매달려 우주용 장비를 손보고 있었다. 화이트 팽과 세계국가군의 대립 양상이 더할나위없이 치열해지고 거대 우주함 리브라가 지구를 향하여 다가가고 있는 이때, 건담의 개입은 필연적인 것이었다.

전란의 시대는 바로 눈앞에서 보란 듯이 타오르고 있는 것이다.

“아이구 이게 뭐야? 살다 보니 MS가 날개를 단 것도 다 보는구만 그래!”

갈색의 긴 머리를 깔끔하게 땋아 넘긴 개구쟁이같은 얼굴의 소년이 놀라는 표정으로 외쳤다. 그의 눈앞에는 방금 오버홀을 마치고 완전히 새로운 기체처럼 산뜻한 모습으로 다시 태어난 어떤 건담의 모습이 있었다.

그들은 그 건담을 ‘제로’라고 불렀다.

“멋있긴 한데 저게 대체 무슨 쓸모가 있는 거야? 말좀 해줘!”

질문을 받은 둥근 안경의 젊은 사내는 자신감에 찬 얼굴로 대답한다.

“저 부품을 굽혀서 전신을 감싸면 대기권 돌입용의 방호막 역할을 해 줍니다. 그리고 대기권 내에서는 다시 부품을 쫙 펴서 글라이더같이 만들면 동력을 낭비하지 않고도 장시간 활공을 할 수 있지요. 보기에는 저래도 나름대로 다 쓸모가 있다고 생각해서 저렇게 한 겁니다.”

“헤에 정말 그런 이유였어? 내가 보기에는 다른 이유가 또 있는 듯한데...”

“물론 있지요.”

“뭔데 그래?”

“...... 멋지지 않습니까, 아무래도?”

“그게 이유라고! 나원참, 기술자라는 양반이 이 모양이라니. 어이 히이로, 넌 왜 아무 말도 없는 거야? 네가 조종할 거니까 네 의견이 가장 중요하다구!”

그들의 옆에 가만히 서서 말없이 건담의 용자(勇姿)만을 차가운 눈길로 바라보고 있던 소년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 녹색 민소매 티셔츠와 몸에 꼭 달라붙는 반바지 차림이 인상적이었다.

“나와는 상관없어... 감정대로 하는 것에 대해 반대하지는 않는다.”

땋은 머리의 소년이 그의 어깨를 툭툭 치면서 어쩔 수 없다는 얼굴로 말한다.

“하여튼 너란 녀석은... 아무리 어처구니없는 상황이라도 흥분이란 걸 모르니 참 답답해서 어떻게 살겠냐. 에헷헷”

그들의 뒤를 지나 브릿지 쪽으로 가던 선글라스와 알로하 셔츠 차림의 키작은 노인은 그냥 그 옆을 지나치려다가 잠시 놀라는 얼굴로 뒤를 돌아다보았다.

그의 시선은 둥근 안경을 낀 젊은 남자의 뒤통수에 집중되어 있었다.

‘저 친구는... K??? 설마 그럴 리가, 벌써 20년 전의 일인데 그건...’

잠시 동안 망연자실해 있던 하워드는 함내에 울려 퍼지는 비상 경보를 듣고는 어깨를 으쓱해 보이면서 다시 브릿지로 향했다.

결전의 때가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A.D. 1996



동아시아 어딘가에 위치한 열도국의 수도 어딘가에 위치한 별로 넓지 않은 방안에서 그가 눈을 뜬다. 뭔가 이상한 꿈을 연속으로 꾼 것 같긴 한데 도무지 기억이 잘 나지를 않는다.

어제 밤늦게까지 새로운 작품에 대한 이미지 스케치를 정신없이 했던 탓인지 눈앞이 가물가물하고 기운이 없다. 빨리 일어나서 뭔가 기운을 낼 만한 꺼리를 찾지 않으면 또 이대로 하루를 헛되이 보낼지도 모르겠다. 자 어서 일어나자.

때마침 전화 벨이 울려서 일어나기는 더욱 수월해졌다. 그는 저도 모르게 나오는 하품을 애써 막지 않고 천천히 일어나 수화기를 들었다.

“여보세요... 아, 이치오키씨? 그러잖아도 한 번 만나 뵙고 의논드리려던 참이었습니다. 그렇군요. 이번 호 마감까지 얼마 안 남았으니 빨리 시작해야겠죠? 그러면, 이번 주제는 뭐가 좋겠습니까? 아아, 『건담 X』에 대해서 좋은 생각이 있으시다고요? 그러면 며칠 내로 한 번 뵙고 아이디어를 정리해 보죠. 네, 저는 물론 상관없습니다. 그럼 다시 한 번 전화 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그는 전화를 끊고 옆에 놓여 있는 둥근 안경을 집어들었다.

오늘도 할 일은 산더미 같은데 시간은 참으로 잘도 가는군. 자 힘내서 해 보는 거야.


카토키 하지메(カトキハジメ)는 오늘도 변함없이 새로운 메카에 도전하는 기분으로 스케치용 연필을 집어들었다.




―THE  CONCLU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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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 ZAMBONY 1998

(C) SUNRISE․SOTSU AGENCY․TV ASAHI 1979-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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