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기/숨기기 가능합니다^^
분류 전체보기 (326)
창작의 샘터 (88)
패러디 왕국 (85)
감상과 연구 (148)
일상의 기억 (5)
보이기/숨기기 가능합니다^^
[2000-03-17] 울트라하 : 본편 제14화
창작의 샘터/울트라하 | 2010. 7. 4. 22:17
 


==========================================================================





“요즘 피부가 버석버석해서 걱정이야. 기미에 주근깨도 전보다 늘고.”

미나대원이 손거울을 들여다보고 얼굴을 꼬집어보며 한숨을 쉬었다.

“환절기니까요. 대도시 공기가 안좋은 탓도 있고. 게다가 지난지난달에는 근교에 운석인지 뭔지가 떨어져서 그런지, 한동안 밤하늘이 먼지로 뒤덮여서...”

옆에서 차트를 정리하던 선림이 그쪽을 올려다보며 맞장구친다.

“뭐 괜찮은 것 없을까? 너네 오촌이 미용실 한다며?”

“글쎄요. 잘은 모르겠지만 요즘 꽤 효과만점인 스킨케어가 있다던데... 이름이 뭐라더라...”

“잘 좀 기억해봐. 내게는 심각한 문제야.”

“TV에서도 대대적으로 광고하던데, 왜 하필 지금 생각이 안날까?”

그때 언제나처럼 덤벙거리는 한명의 그림자가 의무실 문을 박차고 들어왔다.

“으, 늦어서 죄송합니다!!!”

“거녀양 늦는게 뭐 어디 한두번이야? 그런데 오늘은 왠지 기분이 좋아보이네?”

“늦은거 용서해줄테니 썩 털어놓지 못할까~”

머쓱해진 동거녀는 괜히 실실거리며 선배들 눈치를 살펴보더니 제복 어깨의 서브포켓에서 뭔가를 쓰윽 꺼내는 것이었다.

“아아 들켰네요. 최근에 나온 신제품인데 한 이주일 정도 꼬박꼬박 발랐더니만 꽤 효과가 있는 것 같아서요.”

선림이 그 상표를 보고 소리쳤다.

“아, 걔가 말한게 이거였어요!”

“그럼 나도 한 번 써볼까. 거녀양, 늦은 벌로 이건 압수야.”

“에엑~ 너무해요~”

“의무실 최고참인 내게 불만 있냐? 있으면 저기 불편신고엽서가 있으니 서식에 맞춰서 작성한 뒤에 우편으로 보내.”

물론 불만이 있을 리가 없었다.

“그나저나 뭐길래 그렇게 야단이지?”

미나대원은 울상이 된 거녀를 무시하고 오렌지빛의 귀여운 플라스틱병을 빼앗아서 살표보았다. 화려한 꽃무늬와 과일 스트라이프로 장식된 상표 위에는 이런 이름이 박혀 있었다:


                    ꠆ꠏꠏꠏꠏꠏꠏꠏꠏꠏꠏꠏꠏꠏꠏꠏꠏꠏꠏꠏꠏꠏꠏꠏꠏꠏꠏꠏꠏꠏꠏꠏꠏꠏꠏꠈ

ꠏꠎ                  ꠐ                                  ꠐ

                    ꠐ        << 꽃을 든 재벌 >>        ꠐ

                    ꠐ        제조원: 소밍화장품        ꠐ

                    ꠐ     (리 엔터프라이즈 화학부)     ꠐ

                    ꠌꠏꠏꠏꠏꠏꠏꠏꠏꠏꠏꠏꠏꠏꠏꠏꠏꠏꠏꠏꠏꠏꠏꠏꠏꠏꠏꠏꠏꠏꠏꠏꠏꠏꠏꠎ





==========================================================================


울트라하 ― 별에서 온 여왕

ウルトラハ ― 星からの女王さま

(C)央久プロ․NOW․ウルトラハ製作委員會


==========================================================================




★  3rd  OPENING  :  FACE  THE  FUTURE  ★



아무도 지나가지 않은 길을

맨 먼저 지나가는 기분 (기분!)

아무도 해보지 않은 짓을

맨 먼저 저지르는 기분 (기분!)

도무지 쓸데없어 뵈는 일을

골라서 해치우는 기분 (Yeah!)


아직은 아직은 말할 수 없지

나만의 깜짝놀랄 비밀 (비밀!)

하지만 하지만 그때가 오면

함꼐 나누자 밝은 내일 (내일!)

마법의 주문은 어렵지 않아

Let's Face the Future (Yeah!)




==========================================================================


제14화 화장은 누구를 위해

第14話 『化粧は誰のために』


==========================================================================





“살해된 시각은 어제 밤 11시에서 오늘 새벽 3시 사이입니다.”

얼굴에 어울리지도 않는 짙은 콧수염을 기른, 얄팍한 인상의 검시관이 펜으로 메모첩을 딱딱 두들기면서 느릿느릿하게 말을 이어 나갔다.

“분명히 자살은 아닙니다. 뭔가 알 수 없는 미확인 독물에 의한 타살이에요. 일단 방안에는 자살을 할 수 있는 어떤 도구도 없습니다. 주사기라던가 수지침이라던가 말이지요. 게다가 저항의 흔적이 완연합니다. 죽기 바로 직전까지 엄청난 기세로 버둥거린 듯 사지의 근육이 심하게 경직되어 있습니다.”

그의 말을 듣고 있던 반장이 의문스럽다는 얼굴로 물어보았다.

“미확인 독물? 약물학의 권위인 박사로서도 전혀 정체를 알 수 없다는 거요?”

검시관이 곤란하다는 표정을 희미하게 지어보이며 대답한다.

“굉장히 효과가 좋아서 주입한지 수 분 만에 즉사한 것만은 틀림없는데, 도대체 어떤 종류의 독물인지 겉으로 나타난 증상만으로는 잘 모르겠습니다. 아무래도 혈액 샘플을 채취하여 과수원에 보내야 되겠어요.”

물론 여기서 과수원이란 앙끄과학수사연구원의 준말이다.

한창 대화에 열중해 있던 그들의 뒤로 몇 명의 경관과 의료진이 흰 천으로 덮인 들것을 들고 지나간다. 반장의 옆에 서 있던 젊은 형사는 몇 분 전에 보았던 피해자의 얼굴을 떠올리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 평생 잊을 수 없을 것 같은 공포의 표정이었다. 게다가 피해자의 주변에 얼룩져 있던 그 피도 아니고 땀도 아닌 이상한 물질은 대체 뭐람?

반장과 젊은 형사는 대충 현장 조사가 끝나자, 일단 서로 돌아가기로 하고 주차장을 향하여 걸어가기 시작했다. 반장은 이미 다 타버려서 재만 부슬부슬 떨어지는 담배를 습관적으로 빙글빙글 돌리며 말한다.

“하여간에 상당히 어려운 사건임에는 틀림없어. 이중삼중으로 완전히 밀폐된 작업실 안에 앉아있던 건장한 40대 회사원이, 의문의 독물로 살해당하다니! 무슨 옛날 추리소설에 나오는 밀실살인도 아니고 말이지, 내참 기가 막혀서...”

젊은 경관이 거든다.

“게다가 이번에도, ‘그 회사’가 관계되어 있다는 점이 마음에 걸리는데요.”

반장이 바쁜 걸음으로 걸어가는 와중에도 기록을 잠깐씩 들춰보며 말한다.

“홍균성이란 이 남자... 도대체 무슨 일을 벌이고 있었던 거야?”

그들이 걸어가는 주차장 한편에 설치된 커다란 이정표에는,

‘소밍 화장품 제3앙끄공장 - 리 엔터프라이즈 화학부 계열사’

라는 글자가 대문짝만하게 쓰여져 있었다.




“유력기업 소밍화장품의 생산공장에서 총책임을 맡고 있는 현장감독이 살해되었는데, 특별히 원한을 살 일도 없고 그렇다고 해서 도둑맞은 금품이 있는 것도 아니고, 게다가 그가 발견된 작업실은 일부 정규사원만 출입가능한 완전 밀실. 사건은 미궁에 빠져들고 있다-”

‘소년’이 짐짓 냉정한 투로 기사를 요약한 뒤 신문지를 접어서 치운다.

“하지만 어째서 이 사건이 우리에게로?”

하라대원이 납득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장관에게 질문한다.

“에, 그러니까 말이지.”

어메장관은 안경을 살짝 고쳐쓰며 애매한 표정으로 말을 잇는다.

“언론에는 아직 발표되지 않았지만, 현장에서 좀 희한한 것이 발견되었다.”

“희한한 거라니 뭔데요?”

성질급한 유태대원이 그 모호한 표현에 인상을 쓰며 반문한다.

“체액이다...”

“네?”

뜻밖의 대답에 모두들 어리둥절해 한다.

“...인간의 것도 아니고, 지구상의 그 어떤 생물의 것도 아닌!”

“확실합니까?”

유성대장이 신경쓰인다는 듯한 얼굴로 물어본다.

“사실이야. 그래서 경찰에서는 우리에게 이번 사건을 맡겨왔다. 아무래도 자기네들의 수사 한계를 벗어났기 때문이라나.”

“인지(認知) 한계를 벗어난 게 아니고요?”

피요대원이 다소 냉소적인 말투로 비아냥거린다. 장관은 그녀에게 엄한 눈초리를 2초 정도 보낸 뒤, 다시 말을 계속했다.

“하여간 그래서, 이번 살인사건의 수사는 전적으로 우리 PETS의 책임하에 들어오게 되었으니 열심히들 해 주기 바란다.”

장관은 본부 데이터베이스로 전송되어 온 경찰의 수사기록과 관련자료들을 피요대원의 노트북에 옮기도록 지시하고, 전대원을 3조로 나누어 급히 현장에 달려가서 조사하도록 하였다. 유성대장과 ‘소년’이 한조, 피요대원과 유태대원이 한조, 그리고 동거녀와 하라대원이 한조였다. 장관은 본부에서 통신으로 연락을 취해가며 상황을 지휘한다. 무휼박사와 나머지 의무반은 경찰기록을 의학적 관점에서 재분석하는 일을 맡았다.

거녀는 출발 전에 피요대원의 허락을 얻은 뒤 방금 전송받은 경찰기록을 의무반 컴퓨터에 복사했다. 그런 다음 현장에서 검출된 체액의 성분 기록과 피해자의 시신 분석사진을 몰래 빼내어 암호화된 데이터로 바꾼 뒤 손톱만한 분자-데이터-칩에 옮겼다. 다른 대원들은 그동안 출발준비를 끝내고 각자의 탈것에 올라타는 중이었다. 거녀의 헤드세트가 삑삑거리며 경보음을 울렸다.

“거녀양, 곧 출발할거야. 빨리 와!”

“잠깐만요. 이것 좀 끄고 갈게요. 연결선이 어딘가 잘못 엉켰나봐요.”

거녀는 하라에게 변명을 늘어놓으면서 재빨리 데이터칩을 꺼내어 몇 가지 조작을 가했다. 우선 품에서 변신용 부채를 꺼낸 뒤 손잡이 부분에서 몇 가닥의 광섬유를 끌어내어 칩에 연결하고 지구인은 알 수 없는 언어로 두세 가지 음성명령을 입력했다. 약 5초 동안 칩이 서너 가지 색으로 번쩍이더니 갑자기 그 빛이 사라졌다.

거녀는 은하표준어 체계에 맞춰 컨버팅된 그 칩을 두 손으로 감싸고 몇 가지 주문을 외웠다. 그러자 손 안에 보랏빛의 광채가 피어나면서 칩 주변에 반투명의 얇은 막이 형성되었다. 거녀는 완성된 메시지 캡슐을 들고 창문 쪽으로 가서 그 물건을 하늘을 향해 들어올렸다. 보랏빛 구체는 스스로 희미하게 빛을 발하며 하늘로 날아올라, 곧장 거녀의 고향별을 향해 사라졌다.

거녀는 이 모든 일을 3분만에 해치우고 격납고로 달려갔다.




넓게 펼쳐진 제3앙끄공장의 전경 안에 평소때라면 볼 수 없을 진기한 물건들이 늘어서 있었다. PETS대원들을 급하게 태우고 온 2대의 전투기와 1대의 버기가 쏟아져내리는 햇살을 받아 반짝반짝 빛난다. 날씨가 좋은 탓인지 공장의 입지조건이 좋은 탓인지는 알 수 없지만 상쾌한 광경이었다.

하지만 그 공장 주변을 이리저리 둘러보며 조사중인 대원들의 기분은 그다지 상쾌하지가 못했다. 오죽하면 경찰이 이런 애매한 사건을 자기네들에게 떠넘겼을까 싶을 정도로 풀기 어려운 수수께끼였던 것이다. 초상현상의 전문가라는 것이 때로는 별로 반갑지 않은 직업이 되기도 하는 모양이다.

“그나저나 이 공장 건물은 모양이 참 특이하네요.”

거녀가 잠시 쉬려고 거대한 컨베이어 벨트에 올라앉아서 말한다. 지칠줄을 모르고 그 반대편에서 여러 가지 계측기로 비정상적인 점을 찾고 있던 하라대원이 그 말을 받는다.

“그래, 왠지 초현실주의 건축가가 낮잠자다 지은 건물같단 말야.”

건물의 내부는 다른 여러 공장에서 볼 수 있는 것과 같이, 물건을 생산하고 포장하고 운반하는 데 필요한 여러 가지 자재와 기구들이 가득했고, 그밖에 마케팅이나 작업지휘를 위한 사무실과 통신망이 빈틈없이 배치되어 있었다. 모든 것이 지구인이 상상할 수 있는 범위 내의 시설로 가득했고, 이상한 점은 찾아볼 수 없었다. 범죄수사 때문에 폐쇄구역이 되어 모든 직원이 퇴거한 것만 빼면.

문제는 그 바깥이었다.

건물의 전체 모습은 어딘가 균형이 크게 어긋난 듯한 커다란 타원형 다섯 개가 파이프라인으로 연결되어 있는 형태였다. 게다가 그 위에는 의미를 알 수 없는 갖가지 뾰족탑이나 원형의 돌기들이 불규칙적으로 배치되어 있었고, 사방팔방으로 미로와 같은 패널라인이 뻗어나와 각 구조물들을 연결하고 있었던 것이다. 분명 연기나 그 비슷한 것이 뿜어져 나와야 할 굴뚝은 그림자조차도 없었고, 안쪽의 조명이 밖으로 새어나오는 창문도 없었다. 출입구의 배치도 특이하여, 분명 아까 들어갈 때에는 저기 있었던 듯한 문들이 나갈 때 보면 여기에 있다던가 하는 별난 일들이 벌어지곤 하는 것이다. 마치 건물 자체가 스스로 그때그때의 상황에 맞춰 출입구를 새로 만들거나 다시 없애거나 하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였다.

하지만 감히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없었다. 정상적인 상식의 소유자라면, 주변의 뭔가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아차려도 그것을 무의식적으로 무시해 버리기 쉽다. 내가 잘못 본 것이겠지, 라는 식으로 일축하고는 다른 일에 정신을 집중함으로써 그것을 잊으려 한다. 자기가 의지하고 있는 세계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을 하느니보다, 차라리 자기 자신에게 문제가 있는 것으로 넘겨버리는 것이 편하기 때문이다. 그것이 일반적인 보통사람들의 생리인 것이다.

그러나 PETS는 그 반대다. 초상현상 조사 및 대처라는 그들의 임무가 그들을 보다 냉정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들은 공장에 이상한 점이 있다는 것을 분명하게 느끼고 있었다. 다만 보고서를 쓰기에 충분할 정도로 그것을 명확하게 밝혀내지 못한 것뿐이다. 까닭모를 불안감이 공장 전체를 뒤덮고 있었다.

그런 때에, 피요대원이 뭔가를 찾아낸 듯했다. 다른 조의 통신기에 연락이 들어왔다.

“여기는 3층의 B-22구역 중앙 프레스부, 이쪽의 계측 결과가 수상해요.”

“나같으면 그런 파쇄조각이 하는 말보다는 내 자신의 감을 믿을거라고.”

“유태씨는 가만히 있어요.”

“둘다 싸우지 말고, 경과보고 계속해. 곧 그쪽으로 가겠다. 보고는 가면서 계속 들을테니 멈추지 말고 지금 말하도록. C조도 즉시 이쪽으로 집합.”

“가고 있습니다. 대장.”

하라대원과 동거녀도 지정된 장소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공간 이동 잔류파?”

피요대원은 그전에 ANC-98에서 급조하여 유용하게 써먹었던 공간 왜곡파 발생장치를 응용, 주변공간 자체의 특성을 계측, 분석하여 여러 가지 이상한 징조를 밝혀낼 수 있는 디멘션 파라미터를 들고 있었다.

“예. 적어도 4개가 넘는 인간 크기의 개체가 며칠전에 이 자리에서 공간이동을 시도했다는 증거가 남아 있습니다. 공간이동은 이론상으로 상당한 에너지를 소모하기 때문에, 육안으로는 그냥 사라졌다 나타났다 하는것처럼 보여도 사실은 그 자리에 희미한 에너지의 흔적이 남게 되죠. 그 잔류 시그널을 추출하여 추적하면 이동의 시작점과 도착점을 오차 0.337%로 계산해낼 수 있습니다.”

대장은 미심쩍어하면서도 일단은 믿는 표정으로 피요대원을 바라보았다.

“자네 말이 사실이라 해도 굳이 계산할 필요까지는 없겠군. 도착점은 이미 우리도 알고 있으니까.”

“말씀대로입니다.”

“그렇다면 역시?”

“살인이 있었던 TX-47작업실 내부로 이어져 있습니다.”

“이제 밀실살인의 방법은 알아낸 셈이지만, 문제는 누가 어떻게 그런 짓을...”

하라대원이 말하려는 순간 통신기의 외부연결램프가 깜빡였다.

“예, 하유성입니다.”

“나 무휼일세. 방금 과수원에서 보내준 샘플 재분석이 끝났어. 그런 도중에 재미나는 사실을 알았다네.”

“재미나는 사실이요?”

“현장에서 발견된 체액 -인지 뭔지 잘은 모르겠지만- 하고 피해자의 응고된 혈액 안에 남아있던 독극물의 분자구조가 거의 일치한다는 걸세. 다만 인체 내에 있느냐 아니냐에 따라서 화학식에 약간의 변화가 생기는데, 그 변화가 치명적인 영향을 미치는 거 같애.”

“그건 흥미롭긴 하지만 별로 도움되는 사실 같지는 않은데요, 박사님.”

“더 재미나는 게 있지.”

“뭔데요?”

“그 공장이 소밍화장품 소유란건 알고 있겠지? 거기서 만들어낸 인기폭발의 스킨케어가 마침 본부에 있길래 재미삼아 같이 분석을 해봤는데, 그것이...”

그때 통신이 끊기고 귀를 찌르는 듯한 노이즈가 그 자리를 채웠다.

“박사님? 박사님? 본부, 본부 응답하라.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앗, 대장님, 저기에!”

‘소년’이 가리키는 방향의 거대한 철골 위에 뭔가 인간과 비슷한 형체가 서 있었다. 실내의 강렬한 조명에도 불구하고 어두운 우주의 심연처럼 그 정체를 명확히 드러내지 않는 그 형체는, 그들의 시선을 눈치채자마자 어딘가로 사라져 버렸다. 그와 동시에 바깥으로부터 뭔가 무거운 물건이 움직이는 듯한 소리가 들려오더니, 명절날에나 쏘아올릴듯한 수백 개의 불꽃이 그들이 있는 공장 안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어디선가에서 천둥소리가 울리고 굉장한 폭발이 일어났다.

“피요대원은 그 계측기로 방금의 형체가 사라진 방향을 찾아서 추적하라! 거녀대원은 피요대원과 같이 가서 조사를 도와주고, 나머지는 나와 함께 전투태세에 들어간다! 그리고 자네는 (‘소년’을 손으로 가리키며) 어떻게든 밖으로 빠져나가 비이클의 무전기로 연락을 취해 봐! 알았으면 출발!”

유성대장의 적절한 지시에 맞춰, 각 대원은 자기의 위치를 향해 달려갔다.

피요대원은 요란하게 울려대는 그 기계를 들고, 어딘지도 알 수 없는 공장 복도를 향해 기운차게 달려갔다. 동거녀 또한 사방에서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연기를 헤치고 그 뒤를 따라가는 것이었다. ‘소년’도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었다.

전투장비를 꺼내들고 임전태세를 갖춘 나머지 3인의 PETS 대원은 반대편 자재 반입구에서 자기들을 향해 다가오는 그 어떤 존재들의 발자욱 소리를 들었다.

그러나 방해전파가 섞인 연막탄 때문에 그 형체를 알아보기란 어려웠다.

“...외계인일까요?”

“아마도.”

그 말이 전부였다.




“이상하네, 분명 에너지 시그널은 이쪽으로 향하고 있는데, 이곳은 막다른 골목이에요. 숨겨진 문이라도 있는걸까?”

마치 타종시간 5분을 앞두고 열심히 마지막 문제를 풀다가 다시 보니 문제와 답을 전부 엇갈리게 쓴 것을 발견하고 말도못하게 당황하는 여학생처럼 곤혹스러운 표정을 지어보이며 피요대원이 의문을 제기한다. 아무래도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당황스럽기도 하겠지만, 그보다는 저쪽에 남겨두고 온 하라대원의 신상에 신경이 쓰여서일지도 모르겠다. 하여간에 거녀가 보통때보다 침착한 목소리로 대답한다.

“한번 찾아보죠. 뭔가 스위치같은게 있다면 열 수 있을지도 몰라요.”

그때, 거녀의 뇌리에 전에 느껴본 적 없는 낯선 정신의 파동이 느껴졌다. 이제까지는 그들 스스로가 방벽을 치고 있어서 전혀 감지하지 못했는데, 어찌된 일인지 한꺼번에 방벽을 거두어들인 것이다. 저 벽 너머에- 수백, 수천의 ‘그들’이 있었다. 눈으로는 볼 수 없지만 그들의 뇌가 발하는 자장(磁場)이 감지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제와서 왜 그들은 자기네 존재를 스스로 드러내려는 걸까? 방벽을 쳤다는 것은 나처럼 그들을 감지할지도 모르는 존재를 상정하고 있었다는 얘기일텐데?

“......설마 함정???”

“네? 방금 뭐라고 했어요?”

“아, 아녜요. 아무것도. 자, 어서 찾아봅시다.”

거녀는 일부러 과장된 몸짓으로 벽 여기저기를 더듬었다. 하지만 그럴 필요도 없었다.

벽은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스르릉 열리기 시작했고 벽에 기대어 난리법석을 떨던 거녀는 그만 앞으로 넘어지고 말았던 것이다. 피요는 그 꼴을 바라보며 잠시동안 혀를 차더니, 계측기를 앞세우고 새로 나타난 미지의 통로로 발걸음을 옮겼다.




유성 일행은 반대편에 나타난 자들의 정체를 알고 경악했다.

“..............LSL이... 여기에?”

“이건 뭔가 잘못되어 가는 것 아닙니까, 대장?”

그들은 바로 리 엔터프라이즈의 부속 사설 경호 기업인 LSL(Lee's Security Limited co.)의 특수부대였던 것이다. 하나같이 우악스럽지만 표정없는 얼굴에 중장비의 프로텍터와 탱크라도 상대할 수 있을만한 중화기를 짊어진 지옥의 군대가 눈 앞에 버티고 있었다. 특수부대인 만큼 그 실체는 철저하게 베일에 가려져 있어서, PETS대원들조차도 그들의 규모나 실력을 알지 못한다. 그나마 눈썰미 있는 유성대장이 그들의 제복에 붙은 엠블럼을 읽어냈기 때문에 정체를 짐작한 것이다.

“어쩌죠?”

“하라군의 생각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병기는 대(對)괴수 및 대(對)우주인 병기뿐입니다. 인간을 상대로 썼다가는 효과가 어찌될지 장담 못합니다.”

“유태군이라면 어쩌겠나?”

“손해보는 승부는 안합니다. 우리는 공무원이지 군대가 아니니까.”

“정답이다. 그럼 -------------------------------------살아서 만나자!”

“대장님도!”

육중한 발소리를 내며 총구를 올린 채로 걸어오는 그들을 피하여 세 대원은 필사의 탈출을 감행하였다. 연막탄이 사방에서 계속 터지고 세 명은 도망치는 사이에 서로의 흔적마저 잃어버렸다. 겁쟁이라고 불러도 할 수 없었다. 그들의 임무는 괴수와 싸우는 것이지 사람과 싸우는 것은 아니었다. 그것은 근로약관에도 분명히 명시된 사항이다.

공장 안은 무너지는 소리와 찌그러지는 소리의 도가니로 변했다.




“이 내벽은 아까 지나온 길들하고는 다른데요. 전혀 본 적이 없는 양식에, 전혀 들어본 일도 없는 재료로 만들어져 있어요. 게다가 뭔지 모를 광섬유들이 벽을 혈관처럼 감싸고 있는 꼴이라니... 이건 마치...”

피요대원은 새로운 발견에 흥분된 얼굴로 말을 계속했다.

“마치?”

동거녀는 보조를 맞춰 걸어가면서 그녀의 말을 받아주었다.

“...마치, 그러...”

그러나 그녀의 말은 계속되지 못했다. 그 순간에, 눈에 보이지 않는 뭔가가 그녀를 내리친 것처럼 정신을 잃고 쓰러져 버린 것이다. 거녀는 당황스러운 마음에 급히 달려가 그녀를 붙잡았지만 그 얼굴에는 핏기가 없고 표정은 공허했다. 눈은 멍하게 앞만 바라보고 있었는데, 잠든 것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깨어있는 것도 아니었다. 거녀는 피요를 안전해 보이는 곳에 앉혀두고 맥박을 살폈다.

///걱정 말아요. 아주 잠깐동안만 그렇게 있을 테니까.///

거녀는 놀라서 벌떡 일어나 뒤를 돌아보았다. 그곳에는 인간과 비슷한 체형을 지녔으나 하얀 바탕으로 되어있는 온몸에는 불규칙적인 줄무늬가 가득하고 팔다리는 인간의 것보다 훨씬 호리호리하며 머리부분에는 얼굴 대신 기하학적인 도형의 패턴이 끊임없이 스스로를 부수고 다시 형성되는 묘한 창(窓)을 지니고 있는 외계의 종족이 서 있었다.

거녀는 언젠가 초은하지리학 시간에 배운 지식을 떠올렸다.

///챠펠링거 성인이군요, 당신은.///

거녀는 저도 모르게 라하세르의 본래 목소리로 말하고 있었다.

///맞습니다. 알아보니 기쁘군요. 당신이야말로 저희를 이해해줄 유일한 사람이라 생각하여 이곳까지 오시게 한 겁니다.///

///대체 무슨 일이죠? 여기서 무얼 하는 겁니까? 당신들은...///

///알고 계시겠지만 우리 고향별인 챠펠성은 2백 사이클 전에 초신성의 폭발로 인해 멸망했습니다. 그때 운좋게 우주선을 타고 사방으로 피신한 우리들 종족은 일곱 개의 은하 전역을 헤매며 새로운 고향을 찾아나섰어요.///

///그래서 이 지구에도...?///

///극히 일부이긴 하지만 이곳에 닿았던 건 행운이었습니다. 여러 가지 면에서 우리들이 살기에 불편함은 없었으니까요. 하지만 선주민족과 어떻게 교섭해야 할지 난감했습니다. 우리는...///

라하는 문득 챠펠링거인들이 전혀 전투적인 민족이 아님을 기억해냈다. 그들은 상대가 먼저 공격해 오지 않는 한 절대로 공격하지 않는다. 그리고 공격을 하더라도 최소한의 수단으로 최대의 효과를 얻으려고 하는 습성이 있다. 그들의 고향별은 풍요롭고 아늑한 환경이었기 때문에, 그들은 고향을 보존하기 위해서도 전쟁이나 그에 준하는 파괴행동을 금하고 있었다.

///하지만 어떻게 해서 당신들처럼 선량한 이들이 살인을...?///

///그게 좀 문제입니다. 이쪽으로 오세요. 당신 친구는 걱정 없습니다. 그녀에겐 단지 시간이 느리게 흘러가고 있을 뿐이에요. 일이 해결될 때쯤이면 풀릴 겁니다.///




그때 유성대장은 위협사격으로 일관하는 LSL의 1개 사단을 피하여 공장 현관을 향해 뛰고 있었다. 아까 들어온 그 문과는 다른 위치였지만 같은 문임에 틀림없었다. 어떤 마술로 이렇게 되는지는 몰라도, 마치 자기의 의지에 반응하여 문이 생겨나준 것만 같아 대장은 신기함을 느꼈다. 다른 두 사람의 안부가 걱정되었지만 지금은 저 떡대들을 피하는 것이 더 급했다.

하지만 도대체가, 열려진 문 앞으로 가보니 이건 장난이 아니었다!

“......건물이... 아까보다 높아졌단 말인가?”

그는 5층 건물 높이에 해당하는 부분에 외롭게 뚫려있는 현관문을 통하여 바깥을 내려다보고 있는 것이었다. 다가오는 떡대들의 무리를 절망적인 눈초리로 바라보고 있을 때 바깥에서 친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대장니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임------------------------------”

‘소년’이 펫츠 비이클을 몰고 그 아래로 달려오는 중이었던 것이다.

“하압------------------------------! 자.유.낙.하!!!”

대장은 그것을 보자 순식간에 마음을 정하고는 LSL 부대를 향해 섬광탄을 던져 그들의 발을 묶어놓고 문 밖으로 훌쩍 뛰어내렸다. 동시에 그 아래를 달리던 ‘소년’은 정확한 타이밍으로 비이클 지붕 위에 붙어있던 구조용 공기압축 매트리스를 급속 전개하여 대장의 체중을 안전하게 받아내었다. 피나는 훈련의 성과였다!

“아주 잘했어! 이제 한숨 돌리겠군. 그런데 다른 사람들은?”

“저와 이친구만 빼놓고 다들 감감 무소식인뎁쇼.”

조수석 창문으로 유태대원이 얼굴을 내밀며 익살과 걱정이 범벅된 말투로 지껄였다. 비이클은 이제 공장 주변을 포위하고 있던 LSL 고속탱크들을 피하여 요리조리 재빠르게 달려가고 있었다. 유성은 매트리스 위의 손잡이를 꽉 쥐고 몸을 최대한 움츠려 공기저항을 줄였다. 그리고 운전석에 대고 소리질렀다.

“좋아, 펫츠이글이 있는 곳으로 가자! 어떻게든 구해내야지!”

“그쪽도 이미 녀석들이 와글와글 몰려와서...”

“제군, 진정한 열혈은 적의 수를 가리지 않는다!”

간만에 튀어나온 유성대장다운 대사였다. 비이클은 마침내 방향을 돌렸다.

안쪽에서 그들을 지켜보던 LSL부대의 대머리 지휘관이 워키토키를 들고 외부와 연락을 취한다. 21세기가 다가온 마당에도 구식 무전기를 고집하는 걸 보면 꽤 멋부리는걸 좋아하는 녀석들이다.

“이쪽은 돌파당했다. 증거인멸은 일단 포기하자. GEL-004-X5를 이리로 보내라. 그 편이 빠르겠어.”




라하세르는 그 이상한 복도 저편에 이어져 있는 넓은 방으로 안내되었다. 세스타리스라는 이름의 그 챠펠링거인은 침착하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사정을 설명했다. 그 모습은 마치 귀한 자식을 잃고 요양원에 들어박힌 가엾은 노파가 힘들게 지난 세월을 반추하는 것과도 같았다.

///우리는 일단 지구를 살펴보려다가 추락하고 말았습니다. 바로 이 도시의 근교에...///

라하는 두달 전의 운석 추락 사고를 떠올렸다. 언론에서도 그다지 크게 떠들어대지 않아서 금방 잊혀졌지만 잘 생각해보니 그 운석을 발견하고 신고한 것은 리 엔터프라이즈의 우주개발부 직원이었다. 게다가 낙하현장은 엄중히 통제되고 모든 관련 작업은 LSL의 감시를 받았었다. 발견된 운석의 모습조차 언론에 공개되지 않았지만 아무도 그것을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다.

///그래서, 저 사람들이 당신들을 발견해서 이리로 데려와 은폐했다는 거군요. 하지만 무엇 때문에...?///

///우리는 그들을 통해 지구인의 공동체와 교섭하려 했지만 헛수고였어요. 그들은 우리 얘기를 묵살하고 우리 우주선을 빼앗아갔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이곳으로 데려와...///

///그들이 당신들을... 어떻게 한 거죠?///

백색의 존재는 몸을 부르르 떨며 대답을 주저했다.




한편 전투기 탈환을 위해 달려가던 유성대장 일행은 겨우 무선이 회복되어 무휼박사와의 통신을 계속할 수 있었다.

그의 말을 전해들은 세명은 뜨악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그 스킨케어에 외계인의 체액이?!”

“농담이시겠죠?”

“자네같으면 이런때 농담하고 있겠나? 그러니까 이를테면, 저 물질은 그들의 생명 유지에 꼭 필요한 원소들로 구성되어 있어서, 우리로 말하자면 혈액 같은 역할을 하게 되는거란 말일세. 그러나 체외로 배출되거나 또는 다른 생물의 체내로 침투하거나 하면 화학식이 약간씩 변경되어 전혀 다른 역할을 하게 되는거야! 전자의 경우는 피부조직의 생명력을 활성화시켜 주는 물질로, 후자의 경우는 그 생물의 신진대사를 급격히 저하시키는 독물로 말이지!”

유태대원은 자리에 걸맞지 않는 정의감에 불타올라 분통을 터뜨렸다.

“제길 그게 뭐야, 흡혈귀 영화도 이것보다는 낫겠다! 결국 흡혈귀는 외계인이 아니라 인간 쪽이었다는 소리야?!”

‘소년’은 평소보다 더 둥그래진 눈으로 더듬거리며 말했다.

“하지만 그렇다면... 도대체 누가? 왜 그런...?”

그러나 그때 유성대장이 소리쳤다.

“의문은 나중에. 지금은 장비 탈환이 먼저다! 자, 돌격!”

군용 지프 세 대와 고속전차 두 대가 펫츠이글 두 대를 둘러싸고 있는 것이 그들의 시야에 들어왔다. ‘소년’은 스위치를 조작하여 헤드라이트 부분에 숨겨져 있던 LT미사일 포드를 밖으로 끌어냈다. 유태대원은 LS바주카에 탄약을 채워넣었다. 유성대장은 등에 매달고 있던 DD라이플 둘 중 하나를 받쳐들고 고글을 낀 다음, 매트리스 위에 엎드려 사격자세를 취했다.

그들의 전투가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그들은 이곳의 시간으로 두달 동안 우리 동족의 바룸 -생명의 체액- 을 착취하여 물건을 만들어냈어요. 우리는 할 수 없이 그들에게 협조하는 척했지만 언젠가는 빠져나가려는 생각이었죠. 그래서 그 기간동안 그들이 감시하지 않는 한도 내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걸 다했어요. 이제는 최종 조정만 남았죠. 하지만 그때, 일이 틀어지기 시작했어요. 이곳의 언어로 현장감독이라는 그 지구인이 -항상 우리를 ‘밀가루 푸대’라고 불렀지요. 무슨 뜻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별로 좋은 의미가 아닐 거라는 생각은 들었어요- 우리가 뭔가 일을 꾸민다는 생각을 품게 된 거예요. 그는 우리들을 협박했지요. 평소보다 더 많은 바룸을 바치지 않으면 상부에 일러바치겠다고. 그래서 우리들은 어떻게든 그의 입을 막으려다... 결국에는...///

라하세르는 살인의 전말을 이해하고 허탈한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물었다.

///...이건 내가 어찌할 수 있는 일이 아니군요. 이제 어쩌실 거죠?///

///최종 조정이 끝났습니다. 이제 남은 것은...///

그때, 바깥 벽이 심하게 흔들렸다. 그들이 놀란 얼굴로 일어섰다.




“젠장! 대장님, 응답하세요. 유태군? 피요양? 거녀양? 누구든 대답해! 아직도 여전히 먹통이라니, 미치겠군.”

하라대원은 교묘한 도주기술로 LSL의 3개 사단을 따돌리고 안전지대로 피하는 데에는 성공했다. 그러나 그러는 도중에 길을 잃어버려서, 공장 지하의 애매한 곳들을 이리저리 헤매며 통신을 계속 시도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통신기는 한밤중에 정기점검중인 울트라누리마냥 묵묵부답이고, 사방의 길들은 낯설기만 했다. 그러다가 드디어 하라대원도 거녀와 피요가 걸어갔던 그 외계인의 손길이 닿은 통로로 접어들었다. 그리고 통로 한편에 누워 꼼짝않는 물체를 발견했다.

물론 피요대원이었다.

“이봐! 정신차려 피요양! 눈 똑바로 뜨고 뭐하는거야! 이러고 있을때가 아냐!”

곧 냉정을 회복한 하라대원은 피요양의 두 볼을 꼬집어도 보고 들고 있던 수통의 물을 끼얹어보기도 하고 계측기의 회로를 빼내어 가벼운 전기충격을 가해 보기도 했지만 일시적인 시공마비(時空痲痺) 상태에 빠진 피요대원에게는 도무지 효과가 없었다. 인공호흡이나 가슴마사지도 아무 소용이 없는 건 마찬가지였다.

“...도대체 어떻게 된거야. 이런 곳에서... 거녀양은 또 어디로 갔고.”

그때, 안쪽 방에서 거녀와 세스타리스가 함께 느낀 그 진동이 그들이 있는 구역 또한 덮쳐 왔다. 심한 울림과 함께 머리 위의 철골 비슷한 구조물이 떨어져내려왔다.

“...위험해!”

하라대원은 본능적으로 피요대원을 감싸고 몸을 움츠려 충격을 줄이려 했다.

그들이 있던 통로는 순식간에 부스러진 토사(土砂)와 흐트러진 고분자 구조재의 잔해로 덮여 버렸다. 그리고 어둠과 정적이 찾아왔다.




천신만고 끝에 LSL의 병력을 쫓아보내고 전투기를 되찾은 PETS대원들, 그러나 그들이 모르는 사이에 지평선 저쪽에 서 있던 LSL의 초대형 트레일러에서 기분나쁜 형체 하나가 기어나와, 문제의 공장 건물에 달라붙어 파괴를 시작했다.

전신이 각질로 뒤덮인, 족제비 또는 아르마딜로를 연상케 하는 외모의 30미터급 괴수였다. 리 엔터프라이즈의 럭키펫 연구팀이 어딘가에서 연구를 계속하여 만들어낸 것이 틀림없었다.

“자, 가라! 엑스티로시스! 귀찮은 증거를 없애버려!”

대머리 지휘관이 소리지르자 녀석의 파괴는 한층 더 맹렬해졌다.

“뭔지 모르겠지만, 일단 저녀석을 저지해야 한다는 감이 오는걸!”

“가죠, 대장님!”

펫츠이글-α에 유성대장이, 펫츠이글-β에 유태대원과 ‘소년’이 급한대로 탑승하고 날아올라 거기에 대응한다. 그러나 거대한 엑스티로시스는 각질로 이루어진 비늘을 미사일처럼 쏘아올려 그들의 접근을 저지하면서 계속 공장을 파괴해 나가고 있었다.

한편 지하에서는...

///그들이 눈치챘군요. 너무 빨라요. 이대로라면 여길 피하는 것조차 어렵게 됩니다. 우린 결국 여기에 왔다는 사실조차 알리지 못한채 죽는 걸까요...?///

///아뇨, 그렇지 않아요!///

라하세르는 결연한 의지를 담은 목소리로 그렇게 말하며 세스타리스를 격려했다. 학교에서 배운 지식이 아닌, 그녀 자신의 마음을 가지고.

///조정은 다 끝났다고 했죠? 어서 그곳으로 피하세요. 다른 이들도 남김없이 다요. 그리고 바깥의 충격이 되도록 안으로 미치지 못하게 중력장 쉴드를 모두 펼치세요! 나머지는 제게 맡기시고요.///

///당신이 지구 밖에서 온 사람이란 건 알고 있지만, 대체 어쩌려고...?///

///설명할 시간이 없어요. 제발 제 말대로 하세요!///

세스타리스는 애매한 태도로 양 팔을 까딱까딱 흔들어보이고는 -지구인의 고갯짓에 해당한다- 안쪽 구역으로 사라졌다. 얼굴 위의 창에 수많은 의혹의 도형을 띄우면서.

그리고 거녀는 -라하세르는- 반대 방향으로 힘차게 달려나갔다.




대머리 지휘관의 독려에 힘입어, 엑스티로시스는 공장의 일부를 이루고 있는 5개의 타원형 구조물 중 하나를 거의 다 파괴해 가고 있었다. 펫츠이글 두 대는 필사적으로 녀석의 옆을 맴돌며 저지하려 했지만 녀석의 비늘이 방해가 되어서 효과적인 공격이 불가능했다. 그 비늘들은 미사일처럼 날아와서 팍팍 꽂힐 뿐만 아니라 부머랭처럼 곡선을 그리며 제자리로 되돌아가는 성질도 가지고 있어서 그야말로 예측불허의 공중전을 펼치게 되었던 것이다.

그때, 동거녀는 공장 바깥으로 겨우 빠져나와 LSL이나 PETS의 눈이 미치지 않는 저장실 한구석으로 조용히 달려갔다. 그리고 마침내 그 유명한 보랏빛 부채를 꺼내들고 외쳤다.

“여왕이라 불러랏---------------------------------------!!!!!!!!!!!!!!!!”

눈부신 무지개 빛깔의 광채에 휩싸여, 거대한 빛의 여왕 울트라하가 등장했다.

거인이 엄청난 힘으로 괴수의 양 옆구리를 붙잡아 공장건물로부터 떼어놓으려 하는 것을 보고 당황한 대머리 지휘관은 마이크를 붙잡고 고래고래 고함쳤다.

“엑스티로시스! 잡히면 안된다, 탈피공격을 해라!”

그 순간, 거대한 아르마딜로는 비늘로 이루어진 겉껍질을 훌렁 벗어던지고 거인의 손으로부터 빠져나왔다. 울트라하의 손 안에 남아있던 알맹이없는 비늘더미는 한순간 폭삭 주저앉는것처럼 보이더니만, 다음 순간에 마치 자석에 끌린 철가루처럼 하늘로 날아올라 미리 도망쳐 버린 본체에 가서 차르륵 달라붙었다. 그리고 거인이 당황하여 그쪽으로 몸을 돌리는 순간, 본체와의 마찰로 인해 대전(帶電)상태로 변한 비늘들이 다시 날카로운 비수처럼 날아와서 울트라하의 전신에 꽂혔다. 거인을 휘감은 수백개의 비늘들로부터 실 모양의 솔리톤(파동과 입자의 중간상태에 있는 물질)이 뻗어나와 서로서로를 거미집처럼 연결, 거인을 꼼짝 못하게 옭아매는 순간, 거대한 아르마딜로의 본체는 입으로부터 6천 도가 넘는 고열의 화염을 토해내어 거인을 지글지글 구워대기 시작했다.

“젠장! 더는 두고 볼 수가 없어! 공장이 날라가더라도 E-M 반응탄을!”

펫츠이글-β의 조준경이 엑스티로시스에 정면으로 맞춰졌다.

“기다려, 유태군! 저 거인을 잘 봐라!”

남은 시간 앞으로 5분 38초.

고열로 인한 괴로움과 몸을 죄어드는 솔리톤의 압력에 몸부림치던 울트라하의 전신이 한 순간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다크블루로 바뀌더니 다음 순간 거대한 빛과 함께 끊임없이 불타오르는 생명의 레드로 바뀌었다. 그리고 바로 그때, 울트라하는 놀라운 힘으로 솔리톤의 감옥을 끊고 자유를 되찾았다. 대머리 지휘관이 어떠한 지시를 내릴 겨를도 없이, 거인이 치켜든 빛의 채찍이 강렬한 터치로 엑스티로시스를 내려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파괴력에 못이긴 괴수가 마지막 비명을 올리기 직전에, 라하세르의 L자형으로 교차된 두 팔의 에너지가 하나로 모아지면서 촛농빛의 반양자광선이 발사되어 괴수의 숨통을 끊어주었다.

LSL은 꽁무니가 빠지게 퇴각하기 시작했고 펫츠이글 두 대는 아슬아슬하게 폭발권 밖으로 벗어나 기쁨의 환성을 올렸다.

거인의 머리에 있는 램프가 불안하게 점멸하기 시작했다.

남은 시간 앞으로 3분.

“아직 할 일이 남은 건가? 왜 저러지?”

대원들의 궁금증에 찬 시선을 받으면서, 라하세르는 가까스로 폭발의 피해를 면한 공장 건물 쪽으로 돌아섰다. 거인은 맹렬한 스피드로 5개의 타원형 구조물 주위를 돌아다니면서 그 기초부분을 땅으로부터 파냈다. 그리고 중심이 되는 거대한 타원을 마치 기도하듯 하늘 높이 들어올렸다. 물론 그러기 전에, 지구인들이 멋대로 붙여놓은 외피(外皮)와 알맹이를 분리하고, 그 사이의 통로에 쓰러져 있던 누군가를 안전하게 옮겨놓는 것도 잊지 않았다.

남은 시간 앞으로 45초.

“......?!”

바로 그때, 5개의 타원형 구조물이 가운데의 타원형을 중심축으로 해서 서서히 회전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놀랍게도 그것은... 하늘 높이 스스로 떠올랐다. 지구인이 아직은 알지도 못하고 이해하지도 못할 미지의 추진법을 이용하여. 끝없이 펼쳐져 있는 하늘 위로, 더 높이, 더 높이.

라하세르는 세스타리스와의 약속을 지킨 것이다.

남은 시간 앞으로 20초.

라하세르는 비로소 머리의 램프가 경보를 울리는 것을 알고 자신감 넘치는 포즈로 날아올라, 하늘 저편으로 사라졌다. 공장이었던 챠펠링거인의 우주선도 대기권 바깥으로 그 모습을 감췄다.

“대장님... 우리가 지금 뭘 봤던 거죠?”

‘소년’이 여전히 벌린 채 다물어지지 않는 입을 억지로 조절하며 말한다.

“비행접시지 뭐긴 뭐야.”

“처음에는 살인범이 외계인이더니... 그 다음에는 엉뚱하게 지구인이 우릴 공격해 오고, 마지막에는 화장품 공장이 비행접시로 변해서 날아가다니, 대체 무슨 사건이 이따위랍니까요?!”

유태대원이 황당한 표정으로 신음을 내뱉었다.

“세기말에는 별일이 다 일어나는 법이지. 자 우리도 돌아가자구. 이제 방해전파도 걷혔으니 길잃은 친구들도 불러내야지.”

유성대장은 간만에 비쳐오는 석양의 붉은 빛을 한껏 만끽하며 기수를 돌렸다.




세스타리스는, 대기권을 돌파하기 전에 마지막 ‘접촉’을 보내왔다.

그들의 마음이 연결되었다.

///당신이 해 주신 일들... 영원히 잊지 않겠어요.///

///이번에는 꼭 새로운 고향을 찾으시길 바래요. 멋진 항해 되시길.///

///고마워요. 그런데...///

///네?///

///또 다른 ‘우리’는 어떻게 하죠?///

///또 다른 ‘우리’?///

///다른 별에서 온 자들이 아닌... 지구인의 ‘우리’...///

///.......................///

라하세르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빛의 바퀴가 점점 멀어졌다. 무한한 별들을 향하여.




‘......여기는 어디.......?’

피요대원은 먼지로 인해 더럽혀진 안경을 기운없는 손으로 비벼가며 몸을 일으키려고 애썼다. 문득 그러는 순간에 울트라하의 모습을 본 것만 같았다. 그러나 그 모습은 흐릿해지더니 그만 사라지고 말았다. 그리고 그 자리에는 대신 하라대원의 걱정하는 얼굴이 있었다.

“괜찮아?”

“......선배...”

“살아있기는 한 모양이네. 아까는 죽은건지 산건지도 알수없을 정도로 굳어있어서 얼마나 걱정했는지 몰라. 어쨌든 다행이다.”

“어떻게 된 거예요? 나, 아까는 분명히 공장 지하에...”

“그게 말이지... 공장이 사라져 버렸어.”

“...그건 과학적으로 말도 안돼요.”

“난들 어쩌겠어. 사실이 그런걸. 그나저나 거녀양은? 같이 있던거 아니었어?”

“어? 그러고보니...”

호랑이도 제말하면... 이라는 속담을 알기라도 하는지 바로 그때 동거녀의 목소리가 그들의 귀에 은은하게(?) 들려왔다.

“선배- 하라선배애- 나좀- 나좀-”

희한하게도 그 목소리의 진원지는 그들의 발밑이었다. 겨우 기운을 회복한 두사람은 잡동사니들을 대충 치우고 그 밑의 구덩이에 꼴사납게 박혀있던 동거녀를 끌어올렸다.

“도대체가 도움이 안되는 애라니까... 대체 거기는 어떻게 들어갔어?”

“기억이 안나요. 너무나 흔들리고 막 무너져서. 피요양이 갑자기 쓰러졌을 때 너무 겁이 나서 도움을 청하려고... 달려가다가 그만 발을 헛디뎠는데... 정신이 들어보니 사방이 깜깜해서... 생매장되는줄 알았어요 우엥엥-”

“자자, 울지마. 일도 끝났으니 이젠 돌아가야지?”

거의 패닉상태에 빠진 듯이 보이는 거녀를 등에 업은 뒤에 자기를 부축하여 일으켜세우는 하라대원의 옆얼굴을 빤히 바라보며, 피요대원은 생각에 잠겼다.

“......왜?”

“......그냥요. 혹시 하라선배가...”

“내가 뭐?”

“......아니에요. 착각이었나봐요.”

그들이 서있는 폐허 위에도 석양이 깔리기 시작했다.

저편에서 유성대장 일행이 기쁨에 찬 얼굴로 그들을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END





==========================================================================



☆  3rd  ENDING  :  HARMONY  ☆




아침에 서둘러 달려가다

그사람과 경쾌하게 충돌! (꽈당)

뭐라고 사과를 하려 했지만

야속한 입술은 천근! (만근)

얘기할수 있을까 다시 만나면

뭐라고 해야하나 그땐 (글쎄 약간 무릴까)


저녁에 신나게 퇴근하다

그사람과 보기좋게 접선! (럭키)

한마디 인사를 건네 보지만

야속한 소음이 방해! (빵빵)

고백할수 있을까 먼 장래에

당신이 왠지 좋다는걸 (랄랄 라랄 라랄라)




==========================================================================


(C)央久プロ․NOW․ウルトラハ製作委員會 2000


==========================================================================





“아아- 그 뭐였더라, 하여간에 꽃을 든 뭔지가 판매금지라니... 기껏 내 피부에 맞는 걸 찾았다고 기뻐했는데...”

“어쩔 수가 없잖아요. 재료도 의심스럽고 대표는 구속되었으니.”

“거녀양, 그동안에 또 스킨케어 바꾸셨구만. 이리 내놔봐.”

“왜 하필 나만 갖구 그래요? 선림언니는 놔두고...”

“난 직장까지 들고 오지 않으니 그렇지, 메롱~”

“뭐야 이건? <내 피부 속에 괴수가 있다 - 라하네즈>?”

“참 거녀양다운 선택이다 정말.”

“그거 좋은 의미죠? 응? 응?”

“얼굴 저리 치워. 하여간 이건 압수야.”

“너무해애~~~”





“이번 일은 너무 도가 지나치셨습니다.”

“그건 자네 생각이지, 발도제.”

“금전적인 손실은 둘째치고, 이제는 경찰뿐만 아니라 저 멍청한 괴수퇴치반(怪獸退治班) 친구들까지 이쪽을 주목하게 되었지 않습니까! 도대체 회장님의 생각은 어디에 가 있는 겁니까?”

“모든 것에는 빛이 있지, 하지만 그 반대편에는 어둠도 있어. 언제나 세상은 그런 걸세. 그건 지구에서도 변하는 건 아니야.”

“저로서는 아무런 할 말이 없군요. 이제는 뭘 하실 겁니까?”

“바로 이걸세.”

“화장품에 이어서 이제는... 데이트 클럽입니까?”

“비슷한 거지만 훨씬 원대하지.”





To Be Continued...





==========================================================================

:
위로
보이기/숨기기 가능합니다^^
«   2024/04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보이기/숨기기 가능합니다^^
보이기/숨기기 가능합니다^^
보이기/숨기기 가능합니다^^
RSSFe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