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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09-17] 울트라하 : 본편 제16화
창작의 샘터/울트라하 | 2010. 7. 4. 2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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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트라하 2000

ウルトラハ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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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OPENING  :  LIGHT  OF  COURAGE 



Shining! 용기의 빛은

Flying!  결코 꺼지지 않아

Trying!  정의의 마음은

Rising!  모든 것을 뛰어넘는 힘


우리가 영원할거라 믿었던 것들이

어느날 갑자기 허무하게 사라진다 해도

우리가 함께할거라 바랬던 이들이

어느날 갑자기 우리곁을 떠난다 해도

다시한번 일어서자 푸른하늘 아래

상처따윈 잊어버려 너답지 않아


Shining! 기적의 힘은

Flying!  결코 거짓이 아니야

Trying!  사랑의 마음은

Rising!  모든 것을 비춰주는 빛


소녀는 세계를 품에 안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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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화 유성에서 온 연인

第16話 『流星から來た戀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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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은 이제 다 지나간 거 아니었나?”

하라대원이 질서정연하게 줄지어 뽑힌 채 땅바닥에 널려 있는 나무뿌리들을 질렸다는 얼굴로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PETS는 지난 주말에 이곳 기린산에서 원인불명의 광풍(狂風)으로 인해 나무들이 쓰러지고 산기슭의 바위가 깎여나가는 등 이상한 현상이 일어났다는 제보를 받고 현장으로 출동한 것이었다.

“태풍이 아니에요. 만약 태풍이라면 바람이 이리저리 제멋대로 불어서 나무들이 저렇게 한 방향으로만 쓰러지지 않았을 거니까요. 게다가 이 근처의 지반에서 이상할 정도로 높은 수치의 방사능이 잡히고 있어요.”

두세 종류의 계측기와 연결된 노트북을 만지작거리며 피요대원이 말했다.

“그럼 뭔가 커다란 물체가 떨어지면서 나무들을 밀어 쓰러뜨린 거란 말야? 하지만 제보에 따르면 운석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고 다만 산이 태풍에 휘말린 것처럼 저절로 깎이고 부서졌다잖아.”

성질 급한 유태대원이 그 자리에 끼여든다.

“육안에 보이지 않는 뭔가가 떨어졌거나, 아니면...”

“아니면?”

“어딘가 멀리 떨어진 곳에서 곧바로 이 지점으로...”

“순간이동시의 충격파란 얘기야? 아무리 그래도 이정도라면 꽤 큰 물체일텐데.”

하라대원이 미심쩍은 얼굴로 머리를 긁으며 지적한다.

그때 다른 곳의 피해상황을 살피러 산마루를 넘어간 ‘소년’의 말이 들려온다.

“여기 좀 봐요! 큰 구덩이 안에 뭐가!!!”

모두들 달려가 보니 그곳에는 마치 날개 꺾인 백조를 연상케 하는 우아한 은백색 물체가 직경 5.2미터 정도의 구덩이 안에 하늘로 꼬리를 향한 채 구차하게 처박혀 있었다. 그리고 조종석으로 짐작되는 한가운데의 캡슐 스페이스 안에는...




//...없어. 이미 원주민들이 발견한 게 틀림없다. 다음 행동은...//

야심한 틈을 타서 몇몇 희끄무레한 형체들이 문제의 구덩이를 위에서 바라보며 뭔가를 그들만의 언어로 의논하고 있을 때, 갑자기 구덩이 뒤편에서 나선형의 에너지 빔이 날아와 그들 중 몇몇을 증발시킨다. 남은 형체들은 재빨리 뒤로 돌아서서 뭔가 장비를 꺼내들고 대응할 테세를 갖춘다.

//쳇, 한녀석이 살아있었군! 우주선과 함께 모두 해치웠다고 생각했더니!//

//그런 걸 따질 여유는 없다! 현재의 상황에 집중해! 라제, 지휘를!//

//라바르! 오른쪽이다! 람디는 외각으로, 오타스는 후방...//

몇 차례의 폭음이 지나간 뒤에 고요해진다. 공격받은 형체들 중 하나가 간신히 그 자리를 빠져나와서 산 아래로 내려가는 듯하다. 공격자도 그 뒤를 따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들 중 어느 누구도 몇 초 뒤에 옆쪽 산에 떨어진 제2의 물체에 대해서는 신경쓰지 않고 있었다. 그 물체는 조용히 땅 속으로 파고들어 곧장 앙끄시 중심을 향해 전진하기 시작했다...




“벌써 다섯 시간째야. 저러고들 앉아서 심심하지도 않나.”

의무반의 선림대원이 기지개를 켜며 이렇게 불평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추락한 물체 안에서 의식을 잃고 발견된 의문의 두사람은 곧바로 PETS본부에 이송되어 스물 다섯 가지의 복잡한 정밀검사와 응급치료 및 방역처리를 받았다. 외관은 인간과 다를 바가 없었으나 체액의 구성 성분과 골격의 배치가 미묘하게 달랐고, 놀랄 만큼 깨끗한 피부와 균형잡힌 육체를 지니고 있는 것이 특징이었다. 그들은 의식을 회복한 후에 처음 발견되었을 때의 복장 그대로 본부의 조사실로 옮겨져서 탁자를 앞에 두고 나란히 앉아 있었다. 그들이 입은 복장은 마치 흐르는 액체처럼 유동하는 성질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기본적인 패턴은 그대로 유지하는 특수한 물질로 이루어졌는데, 보는 각도에 따라 색깔이 바뀌어서 다소 현란한 느낌을 주었으나 적당히 세련된 차림새였다. 그들은 지구인이 알아듣거나 알아볼 수 있는 어떤 형태의 표현도 하지 않은 채 겁먹은 듯한 얼굴로 서로를 멀뚱히 바라보며 수 시간 동안 가만히 있기만 했다. 국제통역자격증을 지닌(다만 그 획득 과정이 다소 의심스럽다) 유성대장이 지구의 모든 알려진 언어로 접촉을 시도했고 설득의 전문가(사실은 꼬시기의 전문가라는 설이 유력) 어메장관이 나서서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어설픈 판토마임을 연기하기도 했으며 만화나부랭이(본인은 미래를 선도할 시각예술이라고 끈질기게 주장)에 조예가 깊은 ‘소년’이 각종 상징과 기호들을 조합하여 이리저리 보여주기도 했고 심지어는 동물의 친구(주변의 말로는 큰언니가 수의사라고)임을 자부하는 미나대원이 온갖 동물의 울음소리를 흉내내며 한바탕 쇼를 펼쳤음에도 그들의 표정은 풀리지 않았고 어떠한 대답도 이끌어낼 수 없었다.

“다 소용없다고 소용없어. 그저 이런 경우에는 콜린 윌슨의 책을 교과서 삼아 클래식한 고문을 가하며 서서히 말문을 트게 하는 것이...”

“유태씨, 야만인이군요. 우리말도 못하는 이들에게 무슨.”

“난 그래도 시간의 귀중함은 알고 있지. 너와는 달라.”

뚱한 얼굴의 유태가 피요대원의 이마를 손가락으로 톡 친다.

“과격한 수를 쓴다고 해서 이야기가 당장 통하지는 않아. 이것은 역사상 얼마 안 되는 외계생명과의 귀중한 접촉이다. 신중하게 행동해야 해.”

어메장관이 좀처럼 볼 수 없는 진지한 얼굴로 그를 말린다.

그때 동거녀가 쿠킹팩 두 개를 들고 들어왔다.

“뭘 좋아할는지 몰라서 그냥 기본 영양소를 농축한 리퀴드 런치를 가져왔어요. 박사님 말이 이들은 씹지를 못할 것 같다나요.”

그들의 입에는 치아 비슷한 기관이 있기는 했으나 그것은 음식을 씹기 위한 것이 아니라 소리를 내기 위한 발성기관의 일부임이 조사결과 밝혀졌다. 소화기관도 인간과는 약간 달라서 고체를 충분히 소화시킬 능력이 없다는 것이 무휼박사가 내린 결론이었다. 그래서 준비된 것이 우주여행용 액상(液狀)도시락이다.

“나참, 인생의 즐거움 중 하나를 전혀 모르고 사는 족속이로군.”

빠작빠작한 갈비구이를 와드득 씹어먹는 기쁨이야말로 삶의 진실된 가치라고 믿는 유태대원이 애처로운 표정으로 그들을 돌아보며 내뱉었다.

“자, 모두 잠시만 나가주세요. 여러분이 있으면 겁이 나서 식사를 못할지도 모르니까.”

“하긴 우리도 다섯 시간 동안 이짓 하려니 피곤하군. 좀 쉬자구.”

“수고해요, 거녀양.”

“녀석들이 엉뚱한 짓이라도 하면 즉시 불러요. 이거야 원 심심해서...”

마치 그들이 엉뚱한 짓을 저지르길 바라기라도 하는 듯한 얼굴로 누누이 당부하는, 갸륵한(...) 유태군이었다.

다른 대원들이 문을 닫고 나간 뒤, 동거녀는 탁자에 놓아둔 팩을 가리키며 어떻게든 이것이 먹는 것이라는 사실을 가르쳐주려고 애쓴다. 그러나 그들이 도무지 이해하지 못하는 듯하자 결국 마지막 수를 쓰기로 마음먹는다. 거녀는 그들 앞에 한발짝 더 가까이 다가가 둘의 맑은 호수같은 눈을 가만히 들여다보며 입을 움직이지 않은 채 ‘마음에서 마음으로’ 말을 건다.

//겁먹지 말아. 해치려는 게 아니니까.//

예상치 못한 텔레파시에 흠칫하여 뒤로 몸을 빼려는 두 사람.

//아니, 그러지마. 그냥 그대로 있어. 정말로 괜찮아. 믿어도 돼.//

잠시 사이를 두고 소녀 쪽이 먼저 대답을 해 왔다.

//당신은... 이곳 사람이 아니군요! 여기서 뭘 하는 거죠?//

//그것보다도 일단 너희들은 영양을 보충해야 해. 이걸 좀 들어봐. 맛은 별로겠지만 너희들 체질에 맞는게 지금은 이것밖에 없거든. 여길 이렇게 뜯고..//

잠시 망설이던 두 사람은 신중한 동작으로 거녀의 지시에 따랐다. 약간은 어색하던 그들의 사이에 다소나마 화기애애한 기운이 감돌기 시작했다.

한편 밖에서는 만일의 사태를 방지하기 위해 편향유리로 방 안을 들여다보던 하라대원이 약간 의심스럽다는 얼굴로 고개를 갸웃거리는 중이었다.

“어? 하라선배 다시 오셨네요? 어찌나 투정이 심한지 겨우 먹이는데 성공했어요. 같이 좀 드실래요?”

“응? 아니 난 됐어. 여기 두고간 다이어리를 찾아 가려고...”

물론 일부러 놓고 간 것이라는 말은 하지 않는다.

‘... 설마... 아니겠지.’

별다른 이상이 없는 것에 안심한 하라대원은 발길을 돌려 라운지로 향했다.




“여기에 숨어있었군! 하지만 그것도 이젠 마지막이야! 이리 오시지!”

“웃기는 소리! ‘그분’만은 절대 너희 쪽에 넘겨줄 수 없어! 놓지 못해!!”

“자자, 점잖으신 분들이 이거 무슨 짓입니까? 말로 하세요 말로.”

아직 점심 시간이 채 끝나지도 않았을 무렵, 앙끄시 중심의 관광명소 투장공원에 위치한 ‘연인들의 광장’에서 작은 다툼이 벌어지고 있었다. 뭔가를 놓고 깐깐하게 생긴 중년 여자와 비굴하게 생긴 중년 남자가 심하게 드잡이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주변을 순찰하던 경찰관 두세 명이 달려와 그들을 앞뒤로 붙잡고 싸움을 말린다. 마침 공원에서 휴지를 줍고 있던 공공근로의 화신 조필성씨가 그 광경을 목격하고 흥미롭게 바라본다. 사실 이런 단순노동을 하고 있노라면 어떤 비일상적인 광경이라도 재미있게 느껴지기 마련이다.

그러나 그 뒤에 벌어진 사건은 지나치게 비일상적이어서 문제였다.

갑자기 경찰관들이 어떤 보이지 않는 힘에 의해 뒤로 몽땅 나가떨어졌던 것이다. 그리고 그 틈을 타 여자의 손아귀에서 벗어난 남자는 재빨리 도망치기 시작했다. 그때 여자가 손가방에서 뭔가를 꺼내어 남자를 겨누고 단추 몇 개를 조작했다. 그 장치에서 뻗어나온 베타선이 남자를 휘감았고 남자는 괴로워하며 자리에 쓰러져 한참동안 꿈틀거리더니 서서히 갈색 바탕에 하얀 줄무늬들이 얽혀 있는 기괴한 형체의 직립형 생물로 변모했다. 곧이어 여자는 자기 몸에도 베타선을 주입하여 청색 바탕에 하얀 줄무늬가 얽힌 이형(異形)의 존재로 변신했다.

두 존재는 거대화하여 공원 한복판을 무대로 격렬한 싸움을 벌이기 시작했다!

“우째 나한테는 이런 것들만 따라붙는 것이랑가? 진~짜 재수 옴붙었구만!”

혼란에 빠져 대피하는 시민들 사이에 끼어 달아나면서 조필성씨가 한 말이다.




“...훈련용의 프로토 펫츠윙에? 세 사람이나 올라타고 떠났다고?”

“분명히 확인했습니다.”

본부 안에는 적색경보가 어지럽게 울려퍼지고 있었다. 어메장관은 유성대장의 보고를 들으며 난감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도대체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게다가 그들의 탈주를 도와준 사람이 누구인가에 대해서는 더더욱.

“하지만 거녀양에게 그런 실력이 있었나?”

“대강의 좌표와 옵션 몇 가지만 지정해 주면 나머지는 자동으로 운항할 수 있습니다. 조종사가 부상당했을 때를 대비한 시스템입니다만...”

피요대원의 기술적인 설명도 그의 난감함을 가라앉히지는 못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지금 중심가에서 격투를 벌이고 있는 외계인들을 진압하라는 임무가 떨어진 상태였다. 문제의 두 사람이 이번 사건과 뭔가 연관이 있을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그들을 놓쳐버리는 것은 안될 말이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쪽을 추적하기 위해 전력을 분산시켰다가는 진압활동에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다.

장관은 상황실 콘솔 앞에 앉아있는 젤라스 정에게 질문한다.

“위치탐지는 끝났나? 어디로 가고 있지?”

“그것이... 투장공원 쪽입니다. 앞으로 1분후면 도착합니다.”

장관은 담배를 꺼내물었다.

“적어도 한 가지 수고는 덜어주는군. 좋아, 우리도 간다.”

모두들 분주하게 움직이는 가운데 하라대원만이 아까의 의문에 대해 다시 생각하기 시작했다.

‘...역시 그 애한테는 뭔가가... 아니, 그러고보니 펫츠윙의 시동 키는 내가 보관하고 있었을텐데, 어느새... 맙소사, 그러면... 아까 그 다이어리?...’

그러나 출격준비를 확인하는 젤라스 정의 새된 소리가 그 잡상을 깨뜨렸다.

간이 활주로를 박차고 날아오르는 펫츠이글의 모습이 아름답다.

그러나 그들보다도 먼저 목표지점에 도달한 자가 있었다... 땅 속을 통해!




발진시의 충격은 그래도 완충장치가 흡수해 주어서 그다지 심한 것은 아니었다. 그보다는 한참 날아갈 때의 왠지 어질어질한 기분이 불쾌했다. 생각해보면 지난 크리스마스 이후로 이런 건 전혀 타본 일이 없으니 그럴 만도 했다.

‘...남몰래 시뮬레이터까지 이용해서 열심히 연습했는데도... 으이씨...’

지금 거녀가 의문의 소녀소년과 타고 있는 기체는 이제까지의 룽룽실업 주체의 병기개발에서 떠나 신규업체를 선정하여 방위군의 더욱 발전된 기술을 투입해서 개발된 차세대 기종의 실험기였다. 그러나 엔진출력 등에 의문이 제기되는 바람에 정식채용은 무기한 연기되고, 훈련용으로만 사용되고 있는 것이었다. PETS본부에는 시험적으로 4대 가량이 배치되어 있었다. 원래는 2인승이고 조종은 최소 1명만으로도 충분했으나, 지금은 뒷좌석이 두 사람이 억지로 끼어앉은 형태로 해서 3명이 타고 있었다. 은발에 고귀한 인상을 풍기는 소녀가 부조종석에 앉아있고 청록색 머리에 섬세한 얼굴을 한 소년이 그녀의 다리 위에 불안스러운 자세로 걸터앉아 있었다. 두 사람은 겁에 질려 있으면서도 뭔가 결의를 굳힌 표정으로 앞좌석의 거녀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중이었다. 거녀는 비행 도중 오토파일럿이 사소한 고장을 일으키자 수동으로 급히 전환하여 고도를 유지하기 위해 허둥지둥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언뜻 뒤쪽에 신경이 쓰여서 다소 거칠게 입을 연다.

//이제 부탁을 들어주었으니 사실을 말해줄 때도 되지 않았어? 대체 중심가에 나타난 그 거인들과 너희들의 관계는 뭐지? 어째서 그들의 얘기를 듣자마자 이렇게 달려가야 했던거야?//

둘은 약간 망설이다가 서로 고개를 끄덕였고, 소녀가 말문을 열었다.

//우리는 체스카성인(星人)입니다. 나는 폴리램족의 미오라, 그리고 이쪽은 아몰퍼스족의 리에트로입니다. 우리는... 초성신(超星神) - 즉 타니스의 축복을 받지 못한 ‘피에’입니다.//

거녀 - 라하세르는 은하사회학 시간에 배운 것을 되새겨보았다. 확실히 체스카성인은 두 개의 큰 종족으로 갈라져 서로 수만년동안 대립하며 전쟁을 거듭해 왔었다. 그런데 이 두 종족의 남녀가 ‘피에’ - 즉 반려자 사이라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두 종족은 이곳 시간으로 수만년에 걸쳐 서로 미워하고 싸워왔죠. 그런데 최근에 와서 심각한 문제가 생겼습니다. 각 종족의 유전자 코드에 치유할 수 없는 퇴행 증상이 각인되어버린 것이었지요. 진화의 정점에 다다른 결과 더이상 앞으로 나아갈 수 없었기 때문에 거꾸로 뒤로 가기 시작한 겁니다. 이걸 극복하기 위해서는 두 종족이 옛날에, 아주 오랜 옛날에 그랬던 것처럼 서로의 유전자를 교환하여 새로운 진화를 이룩하지 않으면 안 되었는데...//

실제로는 한 행성을 양분하는 두 종족의 장대한 역사와 관련되는 이야기였지만 그것을 라하에게 전해주는 미오라의 어조는 놀랄 정도로 담담했다. 결국 자기들의 이야기로 이어짐에도 불구하고 마치 남의 얘기를 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두 종족 중에서 평화를 바라는 일부의 세력들이 비밀리에 협약을 맺고 자기네들의 우수한 유전자만을 모아 너희 둘을 태어나게 했다는 거야? 오직 자기들이 멸망하지 않기 위해서 생명을 가지고 장난을 쳐?//

라하세르는 그 이야기 자체에도 놀랐지만 그것을 정말 아무렇지도 않게 전해주는 미오라의 대범함에 더 충격을 받았다.

//그래요. 하지만 우리를 만들어낸 세력들은 권력투쟁의 여파로 인해 와해되었고 우리는 갈 곳 없는 몸이 되었습니다. 그로 인해 권력을 잡은 지금의 다수파는 우리의 존재 자체를 위협으로 여기고 우리를 추적하기 시작했지요. 그들은 얼마 후에 종족 전체가 사라진다고 해도 지금 당장의 권력만 유지할 수 있다면 괜찮다고 여기고, 우리를 말살하려는 생각입니다. 새로운 진화를 이루어낼 씨앗이- 우리의 아이가 태어나기 전에 말이에요.//

라하세르는 자신이 생각지도 못한 행성간의 정치문제에 발을 들여놓은 것을 깨닫고 등골이 오싹해졌다. 이러는 동안에 그들의 전투기는 마침내 ‘연인들의 광장’ 상공에 도착했다.

//하지만 그렇다면 왜 다른 데로 도망치지 않고 이리로 온 건데? 저들은 너희 둘을 추격해 온 자들이 분명한데 어째서...//

그 질문에 대해서는 리에트로가 뭔가 할 말이 있는 듯 했다.

//저, 그건......//

바로 그때, 그들의 존재를 알아챈 두 거인 중 갈색인 쪽이 펫츠윙 방향으로 선홍색 에너지 빔을 날려, 서브엔진을 명중시켰다. 기체는 심하게 흔들리면서 아래로 떨어지기 시작했고, 거녀는 비상탈출장치를 작동시켰지만 캐노피만 떨어져나가고 시트가 분리되지 않는 것이었다. 거녀는 이렇게나 부실한 전투기를 훈련용이랍시고 툭 던져준 방위군 윗대가리들에 대해서 속으로 저주를 퍼부었다.

뒤쪽에서는 연기가 번져나오고 눈 앞으로는 지면이 용서없이 밀려들어오고 있었다. 거녀는 이를 악물고 보랏빛 부채를 품속에서 꺼내들었다.

“여왕님이라 불러랏!”

펫츠윙이 지면과 격돌하기 바로 직전에, 어디선가 빛의 거인이 나타나 펫츠윙을 받쳐들고 지면에 사뿐히 내려섰다. 리에트로는 놀란 얼굴로 방금까지 동거녀가 앉아 있었던 빈 자리를 응시하다가 밖의 거인을 알아차리고 다시금 겁에 질려 있었다. 그러나 미오라는 거인이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보고는 그 정체를 알고 안도하는 표정을 지었다.

//당신은... 그 울트라의 왕녀...!//




“드디어 나타났습니다! 지금 두 거인을 상대로 전투에 돌입했습니다!”

‘소년’이 스포츠 중계의 해설자처럼 열띤 목소리로 외친다.

“이번엔 2대 1인가, 좀 힘든 싸움이 되겠군. 그런데 하라군은 어디있지?”

아예 녹차까지 끓여와서 찻잔에 따르며 어메장관이 묻는다.

“펫츠윙의 신호가 끊어진 지점으로 조사를 나갔는데 아직...”

유태대원이 당황하는 얼굴로 대답했다.

“뭐 곧 오겠지. 그럼 유성대장 자네가 하라군 대신 α호를 몰게나.”

“곧 공격 개시하겠습니다. 유태군, 가자!”

“여부가 있겠습니까요.”

펫츠이글은 이륙하자마자 2대로 보기좋게 분리되어 양방에서 울트라하 지원작전에 나섰다. 피요대원은 주변에 배치된 방위군과 협력하여 시가지에 피해가 돌아가지 않도록 효과적인 전략을 짜는 데 골몰하고 있었고, ‘소년’은 다분히 프로레슬링 해설자틱한 어조로 경기(?)를 중계하고 있었으며, 장관은 차 한모금을 마시고는 조용히 숨겨갖고 온 캠코더를 꺼내들었다.

“어험 어험, 그런 것까지 말할 필요는 없잖은가.”

그러니까 세금을 낭비하지 말란 말이야. -_-

“...장관님, 누구하고 얘기하시는 겁니까?”




울트라하는 안전지대에 펫츠윙과 두 사람을 내려주고는 곧바로 두 거인이 엉겨붙어 싸우는 가운데에 뛰어들어 둘을 갈라놓았다. 뜻밖의 사태에 주춤하며 뒤로 약간 물러서서 자세를 가다듬는 두 거인의 사이에서 라하세르는 양팔을 좌우로 크게 치켜들고 두 쪽을 번갈아 바라보며 텔레파시로 호소하기 시작했다.

//당신들의 목적이 뭐든간에, 싸우려면 지구 밖에서 싸워! 이러다간 도시가 다 무너진다구!//

라제라는 이름의 갈색 거인이 오른쪽밖에 없는 푸른 눈을 번득이며 말했다.

//그럴 수는 없어. 그분들은 분명 여기에 계신다! 어떻게든 데려가야만 해! 저 말라비틀어진 실리카 따위에게 넘겨줄 수 없지!//

실리카라는 이름의 청록 거인도 왼쪽밖에 없는 붉은 눈을 번쩍이며 항변한다.

//누구 맘대로! 그분들은 우리가 데려가지 않으면 안돼! 너희들에게 갔다가는 우리 별이 어떻게 될지 모른단 말이다!//

//...그분들? 데려가? 대체 어떻게 된... 허억!//

두 거인은 절대로 물러서지 않겠다는 기세로 맹렬하게 달려들어 가운데를 막아서고 있던 라하세르를 밀어 넘어뜨리고 다시 맞붙기 시작했다. 라하세르는 주변의 건조물 여러 채를 무너뜨리고 지면에 쓰러졌다. 엄청난 진동이 펫츠비이클이 있는 곳까지 전해져 왔다. ‘소년’은 긴급히 차를 후진시켰고 장관은 그 때문에 캠코더와 갈아넣을 테입 몇 개를 바닥에 떨어뜨리고 말았다.

“우오오오오! 스리사이즈가!”

피요대원이 차창 밖에서 ‘난 저런사람 몰라요’하는 표정으로 돌아서고 있었다.

한편 펫츠윙을 발견하고 접근하던 하라대원은...

‘...응? 두 명밖에 없는 것 같은데... 그애는... 어디... ;;;앗!’

...날아온 파편으로 인해 지면이 꺼지는 바람에 지하철 환기구였던 구멍으로 빠져들어가 철근에 대롱대롱 매달리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어디 두고보자 작가. 내가 여기서 나가기만 하면 반드시 죽일텨~~~~~~~~~~”

나도 진심으로 가슴아프게 생각한다. (거짓말)




건물 파편들을 헤치고 다시 일어선 울트라하는 마치 카마수트라의 삽화에서처럼 기괴하게 뒤엉켜 사투를 벌이는 두 거인을 보고는 그쪽으로 달려갔다. 곧 그녀의 두 손에서 백만볼트의 초전기충격파 ‘일렉트로나이저 G’가 방사되어 두 거인을 억지로 떼놓는다. 다시 울트라하가 두 거인 사이에 버티고 서서 두 손을 양쪽으로 뻗고 싸움을 말리는 자세를 취하지만, 두 거인은 여전히 이글거리는 증오를 불태우며 각자 서있던 자리에서 공격자세를 취한다. 두 거인의 양손에 엄청난 에너지가 결집되어, 실리카의 손에는 자주색 광구(光球)가, 라제의 손에는 남색 광구(光球)가 나타나 서로를 겨누고 발사하기 직전까지 간다.

그럼에도 라하세르는 결연한 자세를 유지하며 그 자리에서 물러서지 않았다.

//...여차할 경우에는 대폭발이 일어날텐데... 사람들을 대피시켜야...//

지켜보던 PETS대원들도 긴장하기는 마찬가지다. 장관이 전원 긴급 대피 명령을 발동할까말까 고민하던 바로 그때,

//실리카, 그만둬! 관계없는 사람들까지 끌어들이지 마!!!//

//...미오라님?//

//라제, 그러면 안돼요! 틀림없이 후회할 거예요!//

//리에트로님, 어째서 그곳에!//

미오라와 리에트로가 위험을 무릅쓰고 울트라하의 발치로 달려왔던 것이었다!

//이봐! 그곳에 있으면 위험해! 왜 도망치지 않는거야? 이들은...//

그때까지 말이 없던 리에트로가 격앙된 얼굴로 소리친다.

//아녜요! 그게 아니에요. 우리가 쫓기는 건 맞지만 이들은 달라요. 그게..//

//하앗, 위험해!!!//

두 거인이 들고 있던 광구(光球)가 주변 공간에 부수적인 스파크를 일으켜 바로 옆에 서 있던 ‘가주야와 애리가’의 초대형 동상이 무너지려 하고 있었다. 라하세르는 재빨리 허리를 굽혀 두 사람을 감싸고 동상의 파편을 전신으로 막아내는 것이었다. 그제서야 상황을 깨닫고 손에 집중된 에너지를 거둬들이는 두 거인. 지면을 덮어싸듯이 엎드려 있던 울트라하가 파편을 걷어내며 일어서고 그 아래에서 무사히 위기를 모면한 두 사람의 모습이 드러난다.

“장관님, 그 두사람이 보입니다! 대체 저기서 뭣들 하고 있는 거야? 거녀양은 어디있지?”

“대장, 수수께끼도 좋지만 말이죠... 이제 연료가 다 되어간다구요.”

그리하여 이글 α호와 β호는 공격을 중지하고 보급 포인트에 임시 착륙.

평정을 되찾은 리에트로는 다시 이야기를 시작한다.

//우리가 체스카의 생명의 원천으로부터 목숨을 받아 태어난 후에는, ‘파오리’라고 불리는 후견인이 우리를 길러주죠. 우리는 유전적으로 조작되어 태어난 생명이기 때문에 일반적인 의미에서의 부모가 없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파오리와 우리들 사이의 관계는 친부모와의 그것보다 더 강하고 끈끈하다고 할수 있죠.//

이 대목에서 그는 잠시 호흡을 고르며 두 거인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그래요. 실리카는 미오라의, 라제는 저의 파오리였어요. 그들은 우리에게 알고 있는 모든 걸 가르쳐주고 줄 수 있는 모든 도움을 아낌없이 주었어요. 우리가 체스카를 지배하는 자들로부터 도주할 수 있었던 것도 이들 덕분이에요. 다만 이들은 어디까지나 각자의 피후견인, 즉 ‘미=파오리’에게만 충성하는 것이기 때문에 서로서로는 사이가 좋지 않고 상대의 ‘미=파오리’와도 관계가 없어요. 그래서 만나기만 하면 싸웠지만... 솔직히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어째서...//

리에트로는 감정을 이기지 못하고 어깨를 들썩였다. 그럴 때, 이전보다도 더욱 침착해 보이는 미오라가 그의 어깨를 살며시 감싸며 울트라하를 올려다 보고는 당당한 어조로 말을 계속했다.

//분명 그들에게도 이유가 있으리라 생각하니까 그 이유를 듣기까지만 좀 기다려 주셨으면 해요, 올린세스 라하세르. ...자, 실리카, 내게 말해주지 않겠어? 우리를 우주로 탈출시킨 건 너희들이잖아? 그런데 이제 와서 왜 우리를 도로 데려가려는 거지? 혹시 ‘그들’에게 매수된 것은 아니겠지?//

두 거인은 맥이 풀린 듯 엉거주춤한 자세로 아래를 내려보다가 뭔가를 말하려고 눈을 빛내기 시작했다. 미오라의 얼굴에 ‘그래, 어서 말해, 어서’라고 재촉하는 듯한 표정이 떠올랐다.

그때, 또 다른 이변이 일어났다.

두 사람이 서 있는 지면을 뚫고, 곤충을 닮은 거대한 생물이 나타난 것이다. 크리스탈처럼 투명한 외골격 안으로 마치 혈액처럼 부유(浮遊)하는, 진홍색의 질퍽질퍽한 세포조직들이 너무나도 선명하게 비치고 있었다. 그 조직들은 상당히 불규칙적인 패턴으로 모였다가 흩어지면서 수천가지의 무늬를 만들었다가 금방 해체하곤 했다. 그리고 세포핵에 해당하는 부분에서는 움직일 때마다 황금색의 빛이 스며나와, 외골격 내부를 그로테스크하게 비추고 있었다. 양 옆으로 각 다섯개씩의 집게발이 그 위용을 자랑하고, 머리에 해당하는 부분은 기묘한 역삼각형을 이루며 역시 눈 대신 다섯 개의 더듬이를 달고 있었다.

실리카가 소리를 질렀다.

//...에르소스! 이미 완성되었으리라고는...//

갑자기 나타난 괴수는 두 사람을 집게발로 휘어잡고 지그재그로 움직이며 세 거인을 농락하기 시작했다. 실리카와 라제가 각각 손에서 광구(光球)를 발사했으나 명중시키지는 못했다. 괴수의 나머지 집게발이 촉수처럼 휙휙 늘어나 자유자재로 공격을 가한다. 라하세르는 재빠른 몸놀림으로 공중 3회전, 2단 텀블링, 기타 등등의 재주를 구사하며 그것을 피한 다음에, 두 거인에게 따져 묻는다.

//대체 저건 또 뭐야? ...당신들은 뭔가 아는 게 있나본데... 얘기해줘!//

라제가 에너지 빔을 검의 형태로 바꾸어 반격하면서 말한다.

//두분의 결합을 달가워하지 않는 자들이 보낸 자객입니다. 저희가 온 것은 바로 이것 때문에... 두분이 혹시라도...//

//헤에 뭐야, 그랬었나. 감동적인 이야기네. 뭐 좋아, 나도 좀 도와주면...어라?//

바로 그떄 뒤로부터 다가온 에르소스가 최대한으로 늘어난 집게발을 사방으로 뻗쳐 울트라하의 전신을 꽁꽁 동여매고 몸의 여러 마디로부터 솟아나오는 붉은색의 산성액으로 공격을 가하기 시작했다. 게다가 제한시간이 다가온 덕분에 울트라하의 머리에 있는 램프가 점멸하기 시작했다!

“위험합니다! 이대로 가다간 절대절명입니다! 무슨 방법이 없습니까?”

“내겐 없어. 하지만 그 방법이 저기 오는군.”

이미 자기의 처지를 망각한 ‘소년’의 필사적인 애원에 장관은 이렇게 대답한다. 그 말대로였다. 피요대원은 방위군 전차부대와의 협력을 통해 적극적인 응전에 나서기로 결정하고 장관에게 이를 전달한 뒤 보급 포스트에 가 있는 이글에도 연락을 취한 다음, 비이클로 돌아와서 차 지붕에 장치된 모빌 페이저 캐논을 점검하고 ‘소년’에게 운전을 부탁한다. 비이클이 달린다. α호가 날아온다. β호도 날아온다. 총공격 시작이다! 그리고 지하에서도...

가까스로 지하철역 잔해를 타고 지상 가까이로 올라온 하라대원이 우연히 괴수의 몸체 아랫부분과 조우하여 DD라이플로 집중공격을 가하고 있었던 것이다!

“좋았어, 여기도 한방. 저기도 한방. 이렇게도 한방. 저렇게도 한방. 아래에도 한방. 위에도 한방. 꺄핫핫하 스트레스가 쫙 풀리는데그래!”

마침 그 일격으로 인해 에르소스의 집게발 중 몇 개가 풀리고, 거기에 잡혀 있던 미오라와 리에트로가 지상으로 떨어진다. 먼저 낙하하여 보기좋게 착지한 미오라가 리에트로를 재빨리 받아들어 충격을 최소화한다. 그러나 괴수에게 잡힌 울트라하는 여전히 빠져나오지 못하고, 두 거인도 미오라들의 신변이 염려되어 함부로 공격하지 못하고 있다. 램프는 점멸하고 제한시간은 다가온다.

//리에트로... 결국 그럴 수밖에 없겠다. 동의하니?//

//그래.. 라하세르는 우리의 은인이니까, 충분히 ‘타니스의 빛’을 볼 자격이 있어. 기회는 지금 뿐이라고 생각해.//

//미안하구나... 내가 좀더 판단을 잘해서 다른 별로 갔더라면...//

//무슨 소리야 미오라. 함께 있어서 얼마나 즐거웠는데...//

둘은 서로를 마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손을 맞잡고 눈을 감았다.




//아뿔사! 결국 해버리신 건가요... 미오라님...!//

//야단났군. 이젠 막기에는 너무 늦었어......//

두 거인이 놀라움을 표시하며 바라보는 앞에서, 그전까지 미오라들이 있던 자리에 갑자기 에메랄드 그린으로 빛나는 거대한 뭔가가 나타났다. 전체적인 실루엣은 실리카들과 비슷했지만 크기는 그들의 두 배, 게다가 형체가 확실치 않은 완벽한 ‘빛’의 결정체였다. 두 거인은 두려움에 떨며 물러서서 저도 모르게 한쪽 무릎을 꿇고 두 손을 X자로 교차시키며 고개를 숙여 예를 표했다. 에메랄드 그린의 ‘빛’은 에르소스에게 붙들려 괴로워하는 라하세르 쪽으로 몸을 돌려, 양손을 검의 형태로 바꾸고 우아한 포즈로 십자베기를 선보여, 모든 집게발을 일도양단하였다. 라하세르는 그 자리에 쓰러져서, 무수한 빛의 알갱이로 흩어져 그 모습을 감추었다. 그리고 에메랄드 그린의 ‘빛’은 전신에서 뾰죽한 돌기를 돌출시킴으로써 상상할수있는 가장 흉악한 형태로 변모한 다음, 에르소스에게 무차별 공격을 가하여 녀석을 피떡으로 만들고 만다.

그리고 사명을 끝낸 ‘타니스의 빛’은 두 거인 쪽을 돌아보고 말을 남긴다.

소녀와 소년의 목소리로-

////실리카, 라제, 지금까지 정말 잘해 주었다. 모든 게 다 너희들 덕분이야. 이제 두번 다시 못보겠지만... 언제까지나 너흴 기억하겠다.////

//면목없습니다. 저희들이 좀더 빨리 이렇게 될줄 알았더라면, 주인님들이 희생하실 필요까지는...//

////그 대신, 한 가지만 부탁하고 가고 싶구나. 이제 이 세상을 떠날 시간이 얼마 안 남았어. 들어주겠는가?////




울트라하가 사라진 바로 그 자리에, 정신을 잃고 누워있던 동거녀는 이마에 차가운 기운을 느끼고 겨우 깨어났다. 눈을 떠보니 하라대원이 걱정스런 얼굴로 내려다보고 있는 것이 시야에 들어왔다. 아마도 괴수가 퇴치된 뒤에 현장을 조사하다가 동거녀를 발견한 모양이다. 거녀는 굳어 있는 입술을 억지로 움직여 뭔가 말하려 했다. 지금 말하지 않으면...

“저, 선배... 그 아이...들은?”

“몰라. 바람과 함께 사라졌어.”

“...혹시 우리 모두 꿈을 꾼 건 아닐까요?”

“모든 꿈이 이렇게 흔적을 남긴다면 지구는 벌써 멸망했을걸.”

하라대원의 손이 가리키는 곳을 바라보니 분명 파괴의 흔적이 생생했다.

거녀는 잠시 말문이 막혀 가만히 있었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저기요, 선배...”

“응?”

“다이어리... 뒤져서 미안해요.”

“됐어. 다음부턴 그러지 마. 알겠지?”

역시 사소한 일에는 구애받지 않는 대범함이 하라대원의 장점이었다.

“그런데 말야 거녀양.”

“네?”

“전문가인 우리 모두가 다섯시간씩 매달려서 해도 안되던 의사소통을 어떻게 그렇게 빨리 해낸거야? 비결이 뭔지 내게만 알려주지 않을래?”

“비결은요 뭘. 그냥... 제가 워낙 착하니까 그렇다고나... 에헤헤.;;”

하라대원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그날 이후로 거녀에게 사랑의 꿀밤♥을 자주 날리게 되었다고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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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NDING  :  BLUE  BILLBOARD  ☆



우주는 흔들리는 소용돌이

지구는 떠도는 작은 조약돌

많고 많은 별들 중에서

바로 이곳에서 너를 만난 이유

아직은 잘 모르겠지만

그래도 운명이란 것을 믿기에

함께 내일을 본다 (Ah Ah Ah)


하늘은 푸른색의 빌보드

바다는 흐르는 시간의 길목

지금 바로 이순간 바로 이순간

위기는 끝이 없지만

그래도 기적이란 것을 믿기에

함께 오늘을 달린다 (Hey Hey H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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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Studio Astronuts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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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LOGUE





1개월 후


동거녀는 간만에 주말을 맞이하여 선림과 미나에게 이끌려 앙끄백화점에 쇼핑하러 나갔다. 이 물건이 좋을까 저 물건이 좋을까, 저기서는 무슨 행사, 여기서는 무슨 할인, 너무 무거운데 다음에는 유태군을 동원시키자, 등등 별별 얘기가 다 오가는 가운데 즐거운 시간을 즐기고 있던 거녀.

바로 그때였다. 맞은편에서 어떤 중년부부가 갓난아기 하나를 소중하게 안고 지나가다가 거녀와 우연히 스쳐지나간 것은.

그 자리에 멈춰선 거녀는 뒤를 돌아보았다. 그 부부 또한 웃는 얼굴로 거녀를 돌아보고 잠시동안 서 있다가 가벼운 목례를 하고 다시 가던 길을 갔다.

그러나 그 짧은 순간에, 거녀는 깨달았던 것이다.

//...그랬었군요. 정말 축하해요. 실리카, 라제. 행복하길 바래요... 그애들의 아이가 자라면 당신네 별에도 변화가 찾아오겠죠? 정말로 멋진 변화가...//

그리고 거녀는 아무 일도 없었던 듯한 얼굴로 다시 일행과 합류했다.

가끔 백화점에서는 당신이 상상도 못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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