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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10-22] 울트라하 : 본편 제17화
창작의 샘터/울트라하 | 2010. 7. 4. 2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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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트라하 2000

ウルトラハ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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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OPENING  :  LIGHT  OF  COURAGE 



Shining! 용기의 빛은

Flying!  결코 꺼지지 않아

Trying!  정의의 마음은

Rising!  모든 것을 뛰어넘는 힘


우리가 영원할거라 믿었던 것들이

어느날 갑자기 허무하게 사라진다 해도

우리가 함께할거라 바랬던 이들이

어느날 갑자기 우리곁을 떠난다 해도

다시한번 일어서자 푸른하늘 아래

상처따윈 잊어버려 너답지 않아


Shining! 기적의 힘은

Flying!  결코 거짓이 아니야

Trying!  사랑의 마음은

Rising!  모든 것을 비춰주는 빛


소녀는 세계를 품에 안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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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화 먹은 것은 누구냐?

第17話 『食べたのは誰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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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하여 지금 여기 NOEX에서는 올해로 5년째를 맞는 세계 음식 박람회가 성황리에 개최되고 있습니다. 세계 각지에서 몰려온 일류 요리사들이 천연의 비경으로부터 공수된 수백 가지 요리와 향신료로 일반시민은 평생 맛볼까말까한 놀라운 맛을 속속 선보이는 이 자리에, 지금 정부 고위관료들과 해외에서 온 귀빈들이 줄지어 도착하는 중입니다. 그럼 이제 행사장 안으로 들어가 볼까요.”

언제나처럼 마이크를 붙잡고 열띤 취재를 벌이고 있는 금지해 기자의 멘트는 TV화면을 통하여 행사장으로부터 수십 킬로 밖에 위치하고 있는 PETS 본부에도 도달하고 있었다. 우리의 가난뱅이 PETS대원들은 화면에 연달아 비치는 산해진미와 진수성찬의 황홀한 대행진을 보며 군침만 삼킬 뿐이었다. 점심 대신으로 하려고 뜨거운 물을 부어놓은 운지천 컵라면이 보란듯이 퉁퉁 불어가고 있건만 왠지 식욕이 나지를 않아서 그냥 내버려두고 있는 대원들.

“많기도 많지만 종류도 겁나게 다양하네그래. 저걸 다 누가 먹는거죠?”

유태대원의 흥분된 물음에 유성대장은 어깨만 으쓱해 보일 뿐이었다.

“적어도 우리가 아닌 건 확실하지. 그 라면 안먹을거면 이리줘.”

하라대원은 짐짓 무심한 듯하지만 어딘가 못마땅한 눈길을 화면에 보낸다.

“저 행사 입장료가 장난이 아니라고 들었습니다. 적어도 요리사의 솜씨와 재료비만 따져봐도 길거리에서 자선사업 벌이듯 간단히 할 수는 없겠지요. 돈을 내거나 아니면 그것을 대신할 만한 배경이 있는 사람만이 들어갈 수 있다는 얘길까요?”

피요대원은 이리저리 구겨지다못해 비명을 지르기 직전인 그날 조간신문을 접어들고 행사에 관한 기사를 읽다가 한마디 한다.

“반달 뒤면 ... 시의원 선거가 있죠. 빵과 서커스, 라고는 하지만 너무 비싼 빵이라고 생각지 않으세요?”

“빵은 그렇다치고 서커스는 어디 있담?”

유태대원의 볼멘소리에 그녀는 신문을 기하학적으로 딱 떨어지는 정사각형이 되도록 다시한번 접어가며 답한다.

“하나 있죠. 남자들만 좋아할 서커스라 좀 문제지만.”

옆에서 컵라면을 또 뜯을까 말까 고민하던 동거녀는 이 말에 돋힌 가시를 알아차리고 궁금한 얼굴이 되었다.

“어떤 서커스길래 그러죠?”

“아, 그건......”

‘소년’이 마지못해 젓가락을 꺼내며 시무룩한 얼굴로 말허리를 자른다.

“저기 나오는 상어알 샌드위치는 바라지도 않으니 탕수육이나 좀 먹어봤으면.”

“...그런데 넌 저게 상어알이란걸 어떻게 알지? 자막도 없었는데?”

“...제가, 뭐라고 그랬나요???”

모두의 시선은 애써 얼버무리려는 ‘소년’에게 집중되어 있었다.

(그러고보니 대체 이 친구의 정체는 정녕 무엇이란 말이더냐? 연재 시작한지가 언젠데 아직도 모르겠다!)




맛의 달인들이 모여들어 평생에 다시볼수 없는 광경을 연출하는 박람회 풍경.

석쇠로 보기좋게 익힌 연어살과 온갖 무늬로 아름답게 채를 썬 양상치가 우아하게 조화를 이루면서 부르고뉴산 백포도주와 함께 이 접시에서 저 접시로 돌아다니고, 호밀로 만든 회색빛 크래커 위에 종잇장처럼 얇게 저민 프로마쥬(프랑스산 치즈)를 층층이 쌓고 끝에는 올리브와 체리로 장식한 깜찍한 카나페가 사람들의 찬사를 받으며 입 속으로 사라져간다. 은쟁반 금쟁반 가득히 담긴 베트남식 국수에 타일랜드산(産) 야자후추와 퓨전 드레싱이 아낌없이 뿌려지고, 멕시코산 나쵸 위에 매운양념과 잘게 썬 각종 야채와 다진 고기를 푸짐하게 올려놓은 타코 요리가 참을 수 없는 향내로 사람들을 유혹하고 있다. 다른 한편에서는 요리사의 정성스러운 손끝이 빚어낸 앙증맞은 생선초밥을 한입 가득히 물고 머리 뒤에는 푸른 물결 위에 춤추는 청룡을 띄우는 자칭 요리 평론가라는 인간들이 혀끝을 녹이는 풍미라느니, 밥알 하나하나에 생명의 약동이 느껴진다느니 별별 주접을 다 떨고 있기도 했다. 자세히 찾아보면 그 중에는 서로의 평가만 고집하다 날카롭게 설전을 벌이는 스승과 제자 뻘 되는 두 남자도 있으리라.

또한 잘 안 보이는 어느 한구석에서는 취재를 빙자하고 슬쩍 들어온 작가양반이 소재거리를 찾는다는 명목하에 모카크림과 아몬드를 넣은 에스토니아식 과일푸딩을 몰래 집어먹다가 행사점검요원으로 아르바이트 중인 모 선경양에게 혼찌검이 나는 중이기도 했던 것이었다. (그런데 저런 케익이 실제로 있기는 있던가?)

“내게 누가 케익을 줘어어어어어~! 저 아가씨도 애완동물에게 몰래 주잖아~!”

“굶주리다보니 약간 돌았나봐. 말썽피우기 전에 어서 내보내세요.”

약삭빠른 펫토 햇살이는 이미 큼지막한 테이블 아래로 숨은 뒤였던 것이다.;

행사장 곳곳에서는 세계 각지로부터 초빙되어 온 비장의 요리사들이 자기들의 솜씨를 한껏 뽐내며 방문객들의 주목을 끄는 중이었다. 어딘가 블랙잭을 닮은 헤어스타일을 자랑하는 검은 옷의 주방장은 왠지 졸린 눈으로 열심히 냄비 속을 젓는 중이고, 아버지의 밥집을 물려받아 자수성가했다 하여 화제가 된 소년 요리사의 번갯불 튀는 2단 가쯔동 구워데치기 시범도 관심을 모았다. 그 맞은편에서는 머리에 띠를 두르고 무술영화에나 나올듯한 옷차림을 한 대륙의 요리사들이 세계를 구원하기 위해 전설로만 내려오는 5가지의 요리도구를 모아야 한다면서 행사장 곳곳을 줄기차게 뒤지고 다니는 중이었다. 런던의 안개낀 거리에서 다년간 하숙집을 경영하며 체득한 독특한 요리법으로 세계무대에 진출한 묘령의 미망인 또한 스콘과 머핀을 한가득 구워들고 홍차를 우려내는 중이었다. 별 관계없는 얘기지만 이 부인이 경영하는 하숙에는 꽤 이름난 사립탐정도 묵고 있다는 소문이다. (어이어이 -_-)

이 모든 광경과는 별 상관 없이, 행사장 곳곳을 돌아다니며 디지털 카메라로 여러 가지 요리들의 산뜻한 배치를 남김없이 담으려고 분주하게 서두르는 한 명의 아가씨가 있었다. 별로 인상적인 구석은 없는 평범한 외모에, 약간 깡마른 몸매는 어딘가 금방이라도 넘어질 듯 위태위태하게 보였다. 이 행사 때문에 여러모로 공을 들이고 있는 탓인지 상당히 피곤한 기색이었다.

“어이구 이거 수고하십니다. 월간 ‘미지왕(味之王)’의 정주현씨 아니세요?”

“아, 안녕하세요. 전번 취재 때는 신세 많이 졌습니다.”

“다음호 특집 때문에 오셨나봐요? 언제 한번 저희 호텔에도 들러 주십시오. 좋은 평을 써주셔서 매출이 꽤 늘었어요. 허허.”

핏기가 없는 얼굴로 간신히 웃음을 지어보인 아가씨는 그 신사와 헤어져서 또 다른 음식의 숲으로 탐험을 떠났다. 뱃속에서 들려오기 시작하는 마(魔)의 쪼르륵 사운드에 제동을 걸기 위해 허리띠를 질끈 동여매고서.

그러나 이마에 흐르는 식은땀까지 어찌할 수는 없었다.




“사람살려! 제대로 된 음식 좀 먹으러 왔더니 이게 뭐여!”

“아가야! --누가, 누가 우리 애 좀 찾아줘요!”

“으아아 안돼- 기껏 찾아낸 전설의 요리도구들이-!”

“꼭 붙잡아! 우리 제과점의 명예를 걸고 저 5단케익은 사수해야 한다고!”

“경찰에 연락을- 아니 일단 119에- 젠장 누가 전화좀 가져와!!”

“날아가는 요리를 어떻게든 잡아라! 입으로 받아도 상관없다!”

“<꿀꺽> 그 말이 나오기를 기다렸습니다!”

매서운 일진광풍(一陣狂風)이 행사장 이곳저곳을 휩쓸고, 때아닌 천둥번개의 스파크가 사방에 메아리치며, 테이블 위의 요리들은 근원도 알 수 없고 눈에도 보이지 않는 어떤 힘에 의해 이리저리 흩어지고 마구 어질러졌다. 그리고 그 때아닌 대폭풍의 중심에는 옷매무새가 눈에 띄게 헝클어지고 머리를 귀신처럼 산발한 정주현이라는 아까의 저널리스트가 서 있었다. 그 눈은 초점이 없이 공허하고 입은 반쯤 고통스럽게 열려 있었으며 기운이 없는 팔다리는 금방이라도 꺾어질듯이 휘청거리고 있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전신에서는 반경 수백킬로를 완벽하게 제압하는 염동력(念動力)의 파장이 쉴새없이 방출되고 있었다. 급히 연락을 받고 출동한 PETS도 실내에서의 사건인 만큼, 개인장비만을 갖추고 재빨리 현장인 행사장 안에 달려들어갔다. 행사장 안은 보이지 않는 거대한 폭풍에 휘말려 천장을 향하여 떠오른 온갖 집기와 요리의 파편들, 그리고 재수가 없어서 제대로 대피하지 못하여 거기에 말려든 몇몇 사람들이 허공을 빙빙 돌며 기묘한 소용돌이를 이루고 있었다. 고장난 스프링클러에서 물줄기가 쭘어져 나오고, 합선된 전기 배선은 위협적인 고압 스파크를 흩뿌려댄다.

현장에 있던 경찰관이 증거품으로 입수한 정주현씨의 카메라 기록을 보여준다.

“본인이 들고찍는 중이어서 화면이 개판이지만, 내용은 대충 이렇습니다.”

...

<녹화 기록 시작>

주방장A        “마침 잘만났어요. 당신네 기사 때문에 기분이 별로였어.”

정주현         “......(소음 때문에 분명하게 들리지 않음)......”

주방장A        “실수로 상한 재료를 쓴 것은 3년이나 전의 일이고 이미 처벌도 다 받았건만 그걸 구태여 밝힐 필요가 있었나요? 너무 지나쳤다고 생각지 않아요?”

정주현         “......(마이크의 전원이 잠깐 끊어져서 말소리 단절)......”

주방장A        “관둬요. 그건 지나간 거니 어쩔수 없고. 이번 특집에 우리집 얘기나 좀 크게 내줘요. 기념으로 이거 한그릇 비우시고. ...아니 왜요? 다이어트? 에이, 그래도 한입 맛이라도 봐요.”

정주현         “......(몹시 주저하는 목소리로 뭔가 말하며)....”

주방장A        “아이구 젊은 사람이 뭐 그리 좀스럽나. 자아자아 어서.”

다음 순간, 찢어지는 듯한 비명소리가 들리며 전원이 팍 꺼진다.

<녹화 기록 끝>

...

피요대원이 카메라를 끄고 휴대용 노트북으로 행사장 안의 공간 에너지 분포를 3D화면으로 재구성한 다음, 몇가지 수치를 분석하고 나서 결과를 얘기한다.

“엄청난 양의 사이코메트리 웨이브가 이 안에 꽉 차 있어요. 그 대부분은 대기의 흐름을 교란시켜 저런 폭풍을 만들어내고, 또 일부분은 직접 물체에 작용하는 염동력으로 발산되는 모양인데요. 정주현씨의 내부에 잠재되어 있던 강렬한 에너지가 어떤 충격적인 계기로 인해 한꺼번에 폭발한 건 틀림없는데 그 계기가 뭔지 잘 모르겠네요. 아무튼 정주현씨의 육체는 장기간의 다이어트와 과로로 쇠약해진 상태라서 이대로 가다가는 저 에너지의 분출을 이기지 못하고 죽을지도 몰라요. 그 전에 어떻게든 멈추지 않으면...”

골치아픈 얼굴로 대원들이 숙의를 하는 그곳에 기묘한 애완동물을 거느린 여학생이 주저하며 다가왔다.

“저... 실례가 될는지 모르지만...”

“야아, 당신은 미나대원의...”

유성대장은 여자얼굴에 대해서는 기억력이 좋은 편이다.

“예, 일전에 도움을 받았던 선경이라고 해요.”

“반갑네요. 좀더 즐거운 곳에서 만났으면 좋았을텐데. 새 햇살이는 잘 커요?”

하라대원이 진심으로 반갑게 인사한다. PETS대원들이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면서도 가끔 삶의 보람을 느끼는 때가 아마 이렇게 자기들이 실제로 도움을 줬던 사람들과 다시 만날 때가 아닐까 싶다.

“덕분에요. 그런데 저기 저 사람 얘긴데요...”

“아는 사람입니까?”

유태대원이 매우 궁금해서 펄쩍 뛰어오르고 싶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선경이 고교시절에 잘 알고 지내는 선배였던 예전의 정주현씨는 이른바 세계의 온갖 맛에 도통한 요리의 전문가였다. 그러나 직접 요리를 하는 것보다는, 남들이 요리한 것을 맛보고 그에 동화(同化)되어 엄정한 평가를 내리는 것을 더 즐겼다. 물론 직접 요리하는 것도 싫어하지는 않았고 그런대로 남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수준이기도 했었지만, 순수하게 맛 그 자체를 감상하는 활동에 더 관심이 많았던 것은 분명했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정주현에게는 고민도 있었다.

“너무 맛난 것만 찾아다니다 보니 체중이 알게모르게 늘고 있지 않겠니 글쎄.”

“그래도 언니는 겉으로 보기에는 그리 표나는 정도는 아니잖아요.”

“티끌모아 태산이요 뱃살모아 삼겹살이라는 소리도 못 들었니? 자기도 모르는 새 별로 우아하지 못한 모습으로 바뀌어버리는 건 사양하고 싶다구.”

“그럼 취미를 바꿔봐요. 이를테면 맛보다도 장식을 신경쓴다거나.”

“좋은 생각인데? 너 카메라 이리 좀 줘봐라. 요리사진의 세계를 개척해야지.”

“언니 내일모레 실기시험 있는 고3에게 너무한거 아니우? 나 사진과잖아.”

“어허- 태양같은 선배가 진로를 정하여 매진하겠다는데 그정도 협조도 못혀?”

“뭔 말을 못한다니까 참.”

그날이후 미식가에서 점차 음식 디스플레이에 관심을 옮긴 정주현은 ‘먹는 것’에 대한 불타오르는 욕구를 ‘보는 것’과 ‘기록하는 것’으로 전이(轉移)시켜 가까스로 자신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체중을 유지할 수 있었다.

허나, 그 부작용으로 그녀에게는 고질적인 거식증(拒食症)이 생기게 되었다.

미식 뿐만 아니라 평소의 식사에 대해서도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자기검열을 시작한 것이다.

선경이 그녀를 최근에 만난 것은 1년 전이었다고 한다.

“언니 핼쓱해졌어. 병이라도 생긴거 아니에요?”

“모르겠어... 병인지 아닌지... 아냐, 설탕은 넣지 마. 블랙이 좋아, 블랙이.. 전에는 이정도는 아니었는데, 음식 생각만 해도 돌아버릴 지경이 되는거야. 내 마음 한쪽에서 먹고 싶다는 생각과 먹으면 안된다는 생각이 피터지게 싸우는 느낌이라고 할까... 아, 안돼, 프림도 넣지 말랬잖아... 마치 내가 내가 아니게 되어버린 그런 상태가 점점... 심해지고 있어. ...응? 뭘 그렇게 물끄러미 보고 있니? ...아냐, 완전히 굶지는 않아. 하지만 점점 먹는게 역겨워지는건... 모르겠어. 아무래도 한번 정신과에...”

그러나 그녀는 그 만남 직후 반년간의 해외요리기행을 책임맡는 바람에 그럴 시간조차 내지 못했다고 한다.




“거식증이 폭주를 부르는 방아쇠가 되었다면... 충분히 가능한 일입니다.”

피요대원이 납득했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계속해서 음식에 대한 욕구를 억압해온 나머지, 그 욕구가 거대하게 자라나 또 다른 자아(自我)라고도 할만한 심층심리를 생성했던 겁니다. 아까 주방장의 악의섞인 권고가 그것을 임계점에 다다르게 하는 계기로 작용한 거겠죠. 결국 외면으로 불거져나온 문제의 심층심리는 그녀 안에 잠재되어 있던 멘탈 에너지와 상호작용하여 하나의 의사(疑似)생명체처럼 현실공간 속에 실체화된 것이라고 봐야겠군요. 내부적인 파괴충동을 거꾸로 남에게 돌리는 것은 그리 이상한 일도 아니지요. ‘내가 못먹는다면 아무도 못먹어!’ 이렇게 말이죠.”

어려운 설명에 눈이 뱅뱅 돌아가다못해 골이 멍해진 유태대원이 끼여든다.

“이론은 그만하고 그럼 대체 어떻게 저 아가씨를 말릴건지도 생각좀 해봐~”

“어떻게든 저 사이코메트리 웨이브의 중심부에서 끄집어내어 제정신을 차리게 해야 해요. 정주현씨의 실제 자아는 지금 닫혀있는 상태라서, 뇌파 탐색기를 통해 접근하는 수밖에 없을 거에요.”

“다행히도 풍수해 방지용의 대인방호장비가 준비되어 있습니다. 이걸 이용하여 저 폭풍을 뚫고 돌입하겠습니다!”

지게차로 운반되어 온 크롬도금의 메탈릭 케이스를 열어젖히며 하라대원이 덧붙인다. 그 안에는 강화유체금속으로 멋드러지게 제조된 개인용 간이강화복 라피루스X2-11이 들어있다. 360도 하이파이 부스터로 공중에서도 자유자재로 이동하며, 기류대소멸(氣流大消滅)배리어로 폭풍우의 기운을 약화시켜 진로를 확보, 최첨단의 개인용 인공지능 ‘Y.E.S.O.D.'의 콘트롤 하에 앞으로 전진하는 최신장비인 것이다!

“좋아, 우리 셋이 3방향에서 접근해 들어간다. 피요군은 여기 안전지대에서 상황통제를 맡고, 자네는(‘소년’을 가리키며) 바깥의 방위군 병력과 연락을 유지, 그리고 의무반 여러분은 저쪽 응급박스에서 부상자 구호를 맡아주기 바란다! 하라군, 유태군, 일단 접근을 시도하기 전에 소용돌이에 휘말린 피해자들을 하나라도 더 빨리 구출하여 이리로 운반한 뒤에 셋이서 동시에 돌파작전에 돌입하겠다. 알았나?”

유성대장의 재빠른 지시에 모두가 각자 위치로 달려가 준비를 서두른다.

“야, 근데 거녀양 어디갔냐? 아까부터 안 보이네.”

“응? 분명 내가 구급상자 거기다 놓으라고 할때까지는 있었...”

미나와 선림은 급할때만 없어지는 건방진 후배에게 어떻게 신세를 갚아줄까를 심각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불규칙적으로 일그러진 소용돌이를 형성하고 있는 정체불명의 폭풍우를 헤치고, 3대의 다소 투박하게 생긴 강화복이 손발을 어그적거리고 모터를 휘리링거리며 그 중심에 있는 정주현에게 접근하기 시작했다. 이제 그녀가 있는 ‘폭풍의 눈’은 육안으로도 볼 수 있는 얇은 우윳빛의 에너지 막으로 둘러싸여 사람의 형체만이 겨우 보일 뿐이었다. 세 사람이 각자 정면, 좌측, 우측으로 접근하여 레이저 나이프로 에너지막을 절단하고 그녀에게 매직핸드를 뻗치려 했을 때,

“꺄아---------------------------!”

지축을 울리는 듯한 강렬한 진동과 함께 다시 사람의 것이 아닌 듯한 비명소리가 들리고, 엄청난 에너지의 간섭파와 함께 세 사람은 주변 10미터 밖으로 튕겨나오고 말았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정주현을 둘러싼 그 에너지의 구체(球體)는 소용돌이 안에서 날아다니던 온갖 요리들의 찌꺼기와 집기들의 잔해를 한데 끌어모아 서서히 거대한 형태를 갖춰나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수초(秒)후, 13미터급의 흑갈색 빛깔을 띤 음식 찌꺼기의 덩어리가 마치 생명체처럼 포효하며 행사장 지붕을 뚫고 하늘로 치솟아올랐던 것이었다! 안에 남아있던 관계자들과 주변에 버티고 있던 경찰 및 방위군 병력은 겁에 질려 건물에서 도망치기 시작한다.

“젠장, 우리의 접근이 오히려 일을 더 어렵게 만든 것 같은데요!”

“누가 이럴줄 예상이나 했겠나. 이젠 진짜 완전한 생명체가 된건가, 저녀석.”

“본부, 들립니까? 펫츠이글 무인 스크램블 부탁합니다. 유도좌표는...”

한편 행사장 근처의 인적이 뜸한 주차장에서는,

“역시 예상대로야. 드디어 내 차례로군. 여왕님이라 불러랏----------------!”

빛의 터널을 지나서 정의의 거인 울트라하 등장!




“좋아. 우리도 나간다!”

행사장 바깥으로 앞다투어 달려나온 대원들은 저마다의 메카에 나눠타고 이미 행사장 건물을 벗어나서 격렬한 싸움을 시작한 거인과 괴수가 있는 곳으로 급행한다. 자동조종으로 날아온 펫츠이글이 저공으로 날아온 순간, 유성대장은 미리 준비해둔 스프링보드의 탄력에 힘입어 허공으로 몸을 띄운 다음, α호의 칵핏에서 뻗어나온 탑승용 핸드로프를 단단히 움켜잡고 마치 로데오에 몸바친 서부사나이마냥 유연한 동작으로 몸을 두바퀴 회전시켜 칵핏 안으로 들어갔다. 하라대원과 유태대원 또한 땅에 닿을락말락하게 저공비행하는 β호의 칵핏으로 재빨리 미끄러져 들어가 하늘로 날아올랐다. 피요양은 선경과 햇살이 그리고 ‘소년’을 태우고 전자장비를 풀가동한 펫츠비이클로 지상에서 뒤를 쫓는다.

라하세르는 도마뱀처럼 네 다리가 돋은 채로 격하게 몸부림치며 옆의 호텔과 백화점 건물을 마구 부숴대는 쓰레기괴수 카드라누스(괴수학회는 아직도 건재하다!)를 꽉 붙들고 땅에 패대기를 치거나 하늘로 던져올리는 등 최대한의 공격을 시도하지만 점액질로 각 부위가 연결되어 있는 그 미지의 물체는 그러한 시도를 비웃기라도 하듯 계속해서 이리붙고 저리붙는 식으로 해서 본래의 형상으로 돌아가 파괴활동을 계속하는 것이었다.  세계제일의 솜씨를 자랑하던 음식들이 악취와 끈적임 가득한 쓰레기더미로 변하여 살아 움직이는 그 모습은 가히 그로테스크했다. 펫츠이글이 발사하는 페이저 포나 미사일도 그 말랑말랑한 표면에 흡수되고 말았다. 라하세르는 물밀듯이 질척거리며 밀려오는 녀석의 돌진에 말려들어 지상에 쓰러지고 말았다. 이마의 램프가 빨갛게 빛나기 시작했다.

“대장님. 아까부터 시도를 계속했습니다만, 도무지 피험자의 뇌파와 접속이 되지를 않습니다. 사고파(思考派)노이즈가 너무 심해서 무선으로는 신호를 잡기가 곤란합니다.”

“어떻게든 연결해야 해. 이쪽에서 먼지 이야기를 걸지 않고서는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단 말이야.”

피요대원의 난처하다는 표정을 뷰스크린으로 보고 있던 하라대원이 나선다.

“α호와 β호를 움직이는 중계국 대신으로 사용하죠.”

그리하여 일단 지상의 단말기와 무선으로 연결된 두 대의 전투기가, 다시 유선 케이블을 괴물의 동체에 직접 박아넣는 식으로 하여, 피요대원의 뇌파분석 프로그램과 정주현의 뇌를 직결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제한 시간 앞으로 35초.

피요대원은 노이즈 제거에 어느정도 성공하자 자신의 메시지를 데이터로 번역하여 정주현의 뇌파에 직접 전송하는 식으로 커뮤니케이션을 시도한다.

그러나 탐색기를 통해 돌아오는 대답은 차가운 침묵과 가끔씩 터져나오는 끔찍한 비명소리 뿐이었다. 그런 가운데서도 라하세르는 바닥을 박차고 일어나서 어떻게든 반격을 가하려고 괴물에게 매달리지만 별로 성과가 없다. 공중에 뜬 채로 괴수에게 연결한 케이블을 고정시키느라 안간힘을 쓰고 있는 2대의 전투기 또한 위험한 상황이다.

제한 시간 앞으로 21초.

옆에서 햇살이를 안은 채 겁먹은 얼굴로 사건을 지켜보던 선경이 갑자기 피요대원 쪽으로 몸을 돌리고 말을 꺼낸다. “제가 하면 음성에 따라 데이터의 내용도 달라지나요? 그렇다면 제가 한번 해보고 싶어요.”

피요대원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음성을 직접 데이터로 바꾸는 구술(口述) 프로그램을 실행시키고 연결된 초소형 마이크를 선경에게 건네주었다.

“언니, 내 말 들려요? 선경이에요. 지금 많이 힘들죠?”

제한 시간 앞으로 15초.

“학교 때 생각나세요? 언니는 언제나 모르는 게 없이 자신만만했었죠. 세상 사람들의 가지가지 신기한 맛을 직접 찾아다니며 끊임없이 두근두근한 청춘을 보내고, 그 기쁨을 다른 친구들에게도 알려주려고 이리저리 발벗고 뛰어다니고. 사실, 그때만 해도 그런 언니를 좀 괴짜라고 생각했었어요. 뭔가 한가지에 너무 빠져들어서 가끔은 무섭게 느껴지는... 하지만 내심 부러울 때도 있었어요. 다들 아무 생각없이 그냥 대충대충 사는 요즘에, 아직도 저렇게 진심으로 인생을 즐기는 사람이 있구나... 하는 생각에. 그런 언니를 묘하다고 여기면서도 사실은 정말로 좋아했었던 것 같아요.”

그 순간부터, 카드라누스의 움직임이 미묘하게 느려지기 시작했다.

선경은 햇살이의 초롱초롱한 눈을 잠시 바라보다가 말을 이었다.

“언니가 체중 때문에 고민하고 느닷없이 사진으로 길을 바꾸겠다고 했을 때는... 약간 이해가 가지를 않았었어요. 그렇게 좋아하던 미식의 길을 어떻게 저렇게 쉽게 포기할 수 있었을까. 한참동안 생각해봤지만 결국 답이 나오지 않아서 포기했죠. 그뒤에 밥을 먹기가 힘들어진다고 얘기했을 때에도... 걱정되기는 했지만 그렇게 크게 염려하지는 않았어요. 언니는 언제나 혼자 알아서 잘 하는 사람이었으니 이번에도 그렇겠지, 하고 믿어버렸거든요. 하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그게 아니었구나, 라는 생각이 들어요. 내가 좀더 일찍 알았더라면 좋았을 텐데... 언니가, 그렇게 강하고 자신에 찬 것처럼 보이던 주현이 언니가, 사실은 그렇게도 내게 기대고 싶어했었다는 걸... 조금만 일찍 깨달았더라면 그때 내 쪽에서 언니를 병원에 강제로라도 끌고 갔었을텐데...”

목이 메이는지 선경의 말은 끝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아주 약간의 간격을 두고 그녀는 다시 말을 계속했다. 옆에서 피요대원과 ‘소년’이 기대와 불안이 교차하는 표정을 지으며 그것을 담담히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니까, 그러니까 언니, 남들이 뭐라고 하던, 역시 언니에겐 맛의 길을 탐구하는 그 모습이, 정말로 어울린다고 생각해요. ...더이상 언니의 꿈을 억누르지 말고, 사진 속에 스스로를 가두지 말고, 언니가 다시... 하고 싶은 일을 했으면 좋겠어요. 이세상에서 언니만이 만들수 있는... 새로운 맛을 찾아서...”

제한 시간 앞으로 8초.

카드라누스의 움직임이 눈에 띄게 느려지고 전신에 새하얀 균열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괴수는 약먹은 가메라마냥 두 뒷다리로 벌떡 일어선 채 수천개의 바늘을 날로 집어삼킨 듯한 괴로움에 몸부림친다. 바로 그때, 자세를 가다듬은 라하세르는 하늘로 날아오르더니 전신을 투명한 빛의 배리어로 둘러싸고는 그대로 카드라누스에게 정면돌진, 쓰레기괴수의 동체 한가운데를 꿰뚫고 반대편으로 나와서 대지에 내려섰다. 엄청난 스파크와 굉음에 휩싸여 조직붕괴를 일으키기 직전인 괴수를 향해 필살기인 레모나이트 광선을 발사하여 흔적도 없이 날려 버리는 울트라하. 물론 재빨리 케이블을 회수한 펫츠이글 α호와 β호도 옆에서 합동으로 페이저 포를 발사, 그녀를 도운 것이었다.

제한 시간 앞으로 2초.

비이클이 울트라하의 발 밑으로 달려오고 선경이 가장 먼저 내려서서 걸어온다. 울트라하는 우아하게 땅 위에 한쪽 무릎을 꿇고, 주먹을 쥐고 있던 오른손을 앞쪽 아래로 내민 다음 그것을 펴 보인다. 그 안에는 거짓말처럼 구출된 주현이 아무일도 없었던 것처럼 잠들어 있었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그녀의 얼굴에 다시 활기가 돌아와 있었다는 점이다. 바람같이 달려가 소중한 선배를 얼싸안고 땅 위로 내려오는 선경. 그리고 그 뒤에서 감격스런 표정으로 그것을 지켜보는 우리들의 밥벌레 PETS 대원들.

울트라하는 석양을 등지고 하늘 높이 날아올라 순식간에 사라졌다.




“아아- 생각할수록 무섭군. 역시 여자란 미(美)에 약한 동물인가봐.”

유태대원으로서는 별생각없는 소리였지만 옆에 있던 하라, 피요 두사람의 속을 긁어놓기에는 충분했다. 그들은 하루의 피로에 지친 몸을 이끌고 본부로 돌아와서 보고서를 작성하느라 회의실에서 머리를 싸매고 있었다.

“어이 아가, 우리 들으라고 하는 소리냐?”

“아니 그럴리가 있겠습니까. 그냥 이번 사건이 그랬다는 얘기죠 우헛.”

“아아- 생각할수록 애처롭군. 역시 남자란 주먹에 약한 동물인가?”

“야야 천재씨, 내게도 주먹은 있다구. 말 조심혀.;;-_-”

“퇴근이 코앞인데 보고서 안 쓰고 뭐해!”

부하들의 애매한 말다툼에 최종적으로 속을 썩는 사람은 역시 유성대장이다.

한편 옆에서는 미나와 선림이 상습적으로 근무이탈을 일삼는 동거녀에게 한바탕 설교를 늘어놓는 중이었다.

“해도해도 너무하지. 차라리 애인이 생겼거나 부모가 편찮으시거나 하는 평범한 이유라면 또 모르겠는데, 뭐 과자중독이야 네가?”

“그래, 이번에도 브라운베이커리의 야자파이 먹으러 갔었냐?”

“아뇨, 이번에는 좀 입맛을 바꿔서 멍킨도너츠의 생크림비스마르크를...”

“박사님이 출장중이라고 아주 단단히 빠졌구만~ 거녀양 오늘 야근이야--♥”

“헉, 너무하시와요.;;;”

이리저리 옹기종기 모여있을 때, 갑자기 회의실 문을 살짝 열고 ‘소년’이 뭔가 대단히 중대한 발표라도 하듯 말을 꺼낸다.

“대장님! 유태씨! 시작했어요 벌써!”

“뭣? 진짜야? 2000 미스 앙끄여- 내가 간다-”

“다른건 몰라도 수영복 심사는 놓칠수 없지! 하라선배, (대충대충) 보고서 여기 있어요. (헐레벌떡) 대장, 같이 가요~~”

거녀는 뒤통수를 한대 맞은 기분이었다.

“...남자들만 좋아할... 서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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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NDING  :  BLUE  BILLBOARD  ☆



우주는 흔들리는 소용돌이

지구는 떠도는 작은 조약돌

많고 많은 별들 중에서

바로 이곳에서 너를 만난 이유

아직은 잘 모르겠지만

그래도 운명이란 것을 믿기에

함께 내일을 본다 (Ah Ah Ah)


하늘은 푸른색의 빌보드

바다는 흐르는 시간의 길목

지금 바로 이순간 바로 이순간

위기는 끝이 없지만

그래도 기적이란 것을 믿기에

함께 오늘을 달린다 (Hey Hey H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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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Studio Astronuts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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