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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06-07] 건담 인생극장
패러디 왕국/건담관련 | 2009. 11. 24. 2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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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담 인생극장

― ガンダム人生劇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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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ort-short parodies written by ZAMBONY@hitel.net

1998/0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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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When  You  Need...



그 청년은 적에게 쫓기고 있었다. 공사판 노동자같은 허름한 옷차림에 손에는 불량배들이나 낄만한 장갑을 끼고, 붉은 망토와 붉은 머리띠를 두른 고약한 인상의 삐죽머리 청년은 거대한 몸집의 적에게 쉴 새 없이 쫓기면서도 여유만만한 표정을 지으며 한 구석에 가서 멈춰섰다. 그리고 과장된 몸짓을 지어 보이며 마치 룸살롱 손님이 웨이터를 불러내듯이 손가락을 힘차게 튕기는 것이었다.

“간다므-----------------------------------!!!”

그러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당황한 청년은 다시 도망가기 시작했다. 그는 주머니에서 손바닥만한 통신기를 꺼내들고는 어딘가로 연락을 취한다.

“레인, 어떻게 된거야? 내가 불렀는데도 안 오잖아!!!”

그의 상대방인 젊은 여자는 어딘가에 꼭꼭 숨겨진 캐리어 안에서 열심히 거대한 MF의 여기저기를 손보고 있는 중이었다. 한 손으로는 볼트를 조이고 다른 한 손으로는 계측기를 조정하면서 난감한 얼굴로 그녀가 대답했다.

“미안, 수리가 아직 덜 끝났어. 힘들겠지만 조금만 더 버텨줘.”

청년은 계속 도망가면서 뭐 씹은 얼굴로 투덜거리고 있었다.

“이대로는 이길 수 없다구! 맨몸으로 MF하고 싸우기라도 하라는 거야, 뭐야?”

“헤에, 그것도 못하면서 네가 동방불패 제자라는 거야?”

“............(-_-;)”

청년은 쓰디쓴 감정을 삼키며 계속 달려갈 수밖에 없었다.



― 後 記 ―


(갑자기 장면이 바뀌어, 정장차림에 검은 안대로 한쪽 눈을 가리고 있는 콧수염의 사나이가 마이크를 쥐고 무대 위에 나타나서 지껄인다.)

“...그래서 여러분, 도몬 카슈는 그날 난생 처음으로 발이 부르트도록 도망을 다녀야만 했다고 합니다. 아! 마침 저기 오는군요.”

(청년이 그 쪽으로 달려오면서 외친다.)

“거기 자네, MF를 상대로 싸울 수 있는가?”

(여기저기서 ‘말도 안돼’ ‘내가 어떻게’ ‘그런 일이’라는 말이 들려온다.)

(청년이 한숨을 쉬고는 다시 달려가면서 소리지른다.)

“그런가...... 그럼 모두 달려!!![*1]”

(그의 말이 끝나자마자, 우락부락한 MF의 발이 무대를 짓밟고 들어온다.)



…알겠는가? 당신도 살고 싶으면 어서 도망가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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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Endless  Goodbye



우아하고 고풍스럽게 꾸며져 있는 어느 집의 거실 안에서 한 남자와 한 여자가 뭔가를 심각하게 이야기하고 있었다. 남자는 어깨까지 늘어진 길다란 백금빛 머리카락과 조각품처럼 수려한 외모가 돋보였고, 반대로 여자는 짧게 자른 검은 머리를 하고 마치 소년 같은 중성적인 매력을 발산하고 있었다.

이제 그들의 대화도 막바지에 다다른 것 같다.

“......알겠는가, 노인? 마지막 작품이 끝난 이상, 이제는 더 이상 생활을 이어 갈 수단이 없다.[*2] 따라서, 아쉽더라도 새로운 일이 생길 때까지만 따로 있는 편이 좋겠다는 것이다. 이해해 주겠는가?”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기껏 다시 만났더니 또 헤어져야 한다는 것은... 너무나 가혹한 일이라고 생각지 않으십니까, 당신은?”

“그 말도 일리는 있다. 그러나, 당장의 행복만을 생각하는 커플에게 미래는 없다.”

“......안녕이라는 말은 하지 않겠습니다, 젝스.”

여자는 말 없이 한 손을 들어 문 쪽을 가리켰다. 남자가 짐을 싸들고 조용히 문을 나선다.

정문을 향해 걸어가는 남자의 품 속에서 작은 호출음이 들려온다.

그는 걸음을 잠시 멈추고 휴대폰을 꺼내어 귀에 댄다.

“음, 나다. 뭐? 그래? 확실한가? ...... 고맙다.”

휴대폰을 다시 집어넣은 남자는 얼굴을 들어 푸른 하늘을 바라본다.

“......이것으로, 이것으로... 이제 희망을 버리지 않아도 된다.”

그는 발치에 놓아두었던 가방을 집어들고 발걸음을 돌려 집으로 향한다. 그의 뒤쪽으로 GUNDAM THE MOVIE라고 쓰여진 광고용 포스터 몇 장이 바람에 날려 이리저리 흩어지는 모습이 보인다.



…길이 보이지 않는 때일수록 더욱 희망을 가져야만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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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Lost  In  Space!



미래세기 60년, 스페이스 콜로니 네오저팬은 데빌 건담에게 흡수당하여 거대한 궁극의 병기 데빌콜로니로 화(化)한 상태였다. 그 콜로니의 한구석에 위치한 어떤 기밀실에서 키작은 노인 한 명이 총상을 입은 몸을 이끌고 방 중앙의 어떤 물체를 향해 기어가고 있었다. 그 물체는 냉동 캡슐이었는데, 그 안에는 삐죽머리의 늙은 남자 한 명이 조용히 잠들어 있었다.

노인은 마침내 목표물에 도달했다. 그는 제어 패널을 열고 몇 가지 간단한 조작을 마친 다음 캡슐에 기대어 눈물을 흘리며 몇 마디를 중얼거렸다.

“결국 마지막까지 자네에게는 이겨보지 못했군, 카슈...”

우주로 이어지는 전망창 구실을 하던 바닥의 강화유리가 깨지고 캡슐과 노인은 차가운 우주공간으로 내동댕이쳐졌다. 날아가는 유리 파편과 함께 노인이 걸치고 있던 작은 코안경이 언뜻 보이는 듯 하더니 금방 사라졌다.

방출된 캡슐은 주변에 대기 중이던 우주선에 회수되었으나 노인의 모습은 끝내 찾아낼 수 없었다.



― 수개월 후 ―


도몬과 레인은 옛날의 전쟁 때 중립 콜로니로 명성을 날렸던 관광명소 네오스위스를 여행차 방문했다. 간단한 입국수속을 마치고 숙소를 정한 그들은 식사 전에 쇼핑을 하러 거리로 나섰다.

쇼윈도를 둘러보던 레인 미카무라의 눈에 매우 낯익은 키작은 노인의 모습이 비친 것은 바로 그 때였다. 그녀는 도몬에게 급한 볼일이 있다고 양해를 구한 뒤 그의 모습을 쫓아 길거리를 달려가기 시작했다.

노인은 레인의 모습을 전혀 알아채지 못하고 통근용의 소형 버스를 잡아탔다. 그녀는 버스를 쫓아서 계속 달려갔다. 마침내 노인은 어느 정거장에 내렸다. 그제서야 겨우 노인을 따라잡을 수 있었던 레인은 잠시 숨을 몰아쉬고는 노인이 있는 쪽으로 걸어갔다. 여기저기가 많이 변해 있었고, 그렇잖아도 작은 키는 나이 탓인지 더욱 구부정해졌지만, 틀림없는 그 사람이었다. 레인은 밀려오는 눈물을 억지로 참으며 노인에게 말을 걸었다.

“......아버지?”

그쪽을 돌아본 노인은 처음에는 그녀를 알아보지 못한 듯 멍한 표정을 짓다가 잠시 후에야 겨우 생각이 난 듯 표정이 바뀌었다. 그가 입을 열었다.

“......아아, 레인이냐?”

“예, 아버지.”

그러나 그녀의 얼굴에 감돌던 한 줄기 미소는 다음 순간 얼어붙고 말았다.

“건담의 상태는 어떠냐?”

할 말을 잃은 채 그 자리에 굳어버린 레인은 절망하기 시작했다.

‘......아버지, 설마... 산소결핍으로 맛이 가 버린 걸까!!!’ [*3]

그녀는 노인의 어깨를 부여잡고 결국 참아오던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자식은 효도하고 싶어하나 어버이는 기다려 주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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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乙女革命ニナ․パ―プルトン



드디어 초대작 영화 『건달 빵빵팔삼』의 촬영도 거의 막바지에 다다른 모양이다. 몇분 앞으로 다가와 있는 마지막 에피소드의 촬영을 앞두고 여성 출연자 대기실에는 몇몇 캐스트들이 잠시동안의 휴식을 즐기며 수다를 떨어대고 있다.

대본을 들여다보며 정담을 나누던 그들의 화제(話題)는 어느덧 자기들이 얼마나 부당한 대우를 받아왔는가에 이르렀다.

“정말 싫어. 등장하자마자 총에 맞아 죽는게 어디있담.”

웨이브진 갈색 머리를 한 루셋 오데비가 불평한다.

“넌 그래도 양반이지, 난 이제 메가빔포에 꿰뚫릴 운명이시라구.”

붉은 빛이 감도는 군복을 걸친 시마 가라하우가 손부채를 신경질적으로 흔들어 대며 말한다.

“정말 어째서 우리 여자들만 항상 이런 꼴을 당하는 걸까요.”

그래도 가장 팔자가 좋은 편인 니나 퍼플톤이 의문을 제기하자, 시마가 이죽거린다.

“원래 이 ×××할 시리즈의 전통이 그거 아냐.”

그 자리에 모인 사람들의 뇌리에 사랑하는 남자를 떠나보내며 울부짖는 라토라 채플러의 모습이 스쳐지나간다. 전설에 따르면 그녀는 죽은 켈리를 기다리다가 망부석이 되었다고도 한다.

“정말 이대로는 안돼. 뭔가 변화가 있어야지. ... 당신 생각은 어때요, 시몬?”

“에? 아아, 저는 잠깐 볼일이 있어서요... 실례.”

갑작스런 질문에 당황한 재클리느 시몬이 급히 대기실을 나선다.

“왜 저러는 걸까?”

“소용없어. 쟤는 감독에게 이미 매수당했다고.”

시마의 말대로, 시몬은 한구석에 놓여있는 사물함에서 미리 지급받은 멋진 티탄즈 군복을 꺼내어 몸에 대 보고는 황홀해하고 있었던 것이다.

“숙녀분들, 시작할 시간 다 됐어요.”

언제나 마일드한 분위기의 척 키이스가 고개를 들이밀고 알려준다. 그의 말을 들은 출연진들은 슬슬 자리를 털고 일어나서 스튜디오로 들어가기 시작한다. 그들과 함께 걸어가던 니나는 대본을 꽉 움켜쥐고는 한 가지 결심을 하는 것이었다.

“도저히 가만 있을 수가 없어. 어떻게 해서든 그 전통이란 걸 깨고 말거야. 반드시!”

그리고 몇 시간 후, 우라키 소위는 인생 최대의 배신을 당한다.[*4]



…여자가 앞에 나서서 남자를 감싸고 죽는 시대는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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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みんな走れ! ; 『전투메카 자붕글』 최종회 서브타이틀.


[*2] 여기서는 캐릭터를 스튜디오와의 계약에 따라 움직이는 하나의 배우로 취급한 것이다. (엘머 퍼드가 워너社와의 계약서를 찢어버리고 다시는 출연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가 벅스 버니에게 혼쭐이 나고서는 다시 계약서를 풀로 붙이는 이야기를 아는가?) 극중 스토리대로 하자면 젝스와 노인은 테라포밍(地球化)계획을 추진하기 위해 화성으로 떠나게 되므로, 실직의 위험은 없을 것이다. 또한 노인이 젝스를 그렇게 간단하게 떠나보낼 수 있으리라고도 생각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쓴 이유는, 순전히 대사 짜맞추기의 매력 때문일 것이다.


[*3] 정지웅(RUHE)님의 정보에 따르면, 미카무라 박사의 성우는 원조 『기동전사 건담』에서 템 레이 역을 맡았던 키요카와 모토무(淸川元夢)이다. 물론 미카무라의 경우는 우주복도 없이 곧바로 우주로 날아갔으므로 살아있을 가능성은 템의 경우보다 수십배 더 희박하지만, 미래세기 지구권은 어차피 만화적인 과장도 허용되는 자유로운 세계관이므로, 만약에 살아 있었다면 어떻게 되었겠는가를 가정해 본 것이다.


[*4] 니나의 돌연한 행동을 이렇게도 이해해볼 수 있지 않겠는가라는 입장에서 쓰여진 일종의 변명편이라고 할 수 있다. 시마의 경우는 그나마 CD시네마를 통해서 숨겨진 이야기가 나오기 때문에 동정론도 있을 수 있지만 니나의 경우는 여전히 이해 불가능의 헤로인으로 남아있는 실정이다. 어떻게 보면 이것은 건담의 거의 모든 이야기가 ‘남자’의 시점에서 쓰여지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페미니스트라는 건 아니지만, 가능한 모든 관점을 다 생각해 보는 것도 의미는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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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 ZAMBONY 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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