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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4-27] 바비스내처의 침략
창작의 샘터/잠본이 환상극장 | 2010. 7. 4. 23:34
 



<< 바비스내처의 침략 >>

Invasion of the Barbie Snatchers







“토비, 아까 도착한 상자 다 들여놨냐?”

토비라고 불리는 거구의 남자 토바이어스 블룸펠드는 완구점 <토이즈플래닛> 주인의 다소 짜증섞인 질문에 ‘제 기억으론 틀림없이 다 들여놨는뎁쇼’라고 무덤덤하게 답했다.

“그럼 저기 있는 건 뭐지?”

주인이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방향을 바라보자, 출입구 옆 한구석에 처음보는 상자 몇 개가 어느 사이엔가 곱게 놓여 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토비는 ‘거참 이상하네 아까는 이런게 없었는데’라고 궁시렁거리면서도, 일단 소매를 걷어부치고 끙끙거리며 상자를 가게 뒤편의 물품창고로 운반했다. 혹시나 싶어 발신인과 경유지를 살펴보았지만 늘 보내오는 거래처에 늘 부쳐오는 택배회사의 마크가 선명하게 찍혀 있어서 별다른 의심은 들지 않았다. 그는 개점시간을 앞두고 매장 청소하는 일에 몰두하느라 곧 그 상자에 대한 것은 까맣게 잊어버렸다.

“여긴 뭐가 들어있는데 아직도 안 뜯었지? 어디......”

풍선껌을 사시사철 질겅질겅 씹고 다니는 아르바이트생 빌리 멜 와이즈넥이 재고조사차 창고에 들어왔다가 아무렇게나 놓여있는 상자에 호기심을 갖고는, 포장을 풀고 내용물을 살펴본다. 설마 폭탄 테러같은 건 아니려니 하고 조심스럽게 뚜껑을 열어보았지만 특별히 눈길을 끌 만한 것은 아니었다.

“뭐야. 바비인형이잖아. 잘 팔리기는 하지만 아직 재고가 쌓였을텐데 누가 주문했을까? 그나저나 이 포장은 뭔가 느낌이 묘한...”

다른 동종 상품의 패키지와 구별이 안 가는 정교한 포장이었지만 인쇄상태나 글자의 폰트, 문구의 위치가 어딘가 컬러복사기로 찍어내어 제멋대로 콜라주한 것처럼 기묘한 위화감을 주는 것이었다. 그러나 빌리는 그 순간 걸려온 휴대폰을 받기 위해 생각을 잠시 중지하고 창고 밖으로 나갔다.

“아, 퀴니? 그러잖아도 전화하려던 참이었어. 우리 내일 저녁에 만날까?”

물론 그는 여자친구와의 수다에 정신이 팔린 나머지, 반쯤 열려진 상자 틈 속에서 수상쩍은 작은 빛들이 소리없이 반짝이는 것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데릭, 이리 좀 오너라!”

통칭 데릭이라고 불리는 올해 15세의 말썽꾼 프레데릭 애브너는 인자하던 어머니가 평소 때와는 달리 격앙된 목소리로 자신을 부르는 것을 듣고 불안해졌다. 어쩐지 속에서 치밀어오르는 화를 억지로 참고 있는 듯하면서도 굉장히 상실감에 가득한 그런 목소리였다.

“왜 그러세요, 엄마? 오늘은 유리창도 안 깼고 옆집 톰슨과도 사이좋게...”

“그 얘기가 아니야. 여길 좀...... 봐라.”

무슨 일인가 싶어 주방으로 내려온 데릭은 어머니가 가리키는 방향을 보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식당 한가운데 걸려있던 새장이 우그러지고 그 안에 들어있던 어머니의 앵무새 폴로네즈가 참혹하게 찢겨 죽어있었다. 뭔가 날카로운 도구와 강력한 힘으로 잡아뜯고 이리저리 분해한 듯 피와 깃털이 사방팔방으로 흩어져 있었다. 조금만 깨끗이 정리하면 해부학 실험에서 A학점을 맞을 수준이다.

“폴로네즈가! 대체 어떻게 된 거예요? 이거 장난이 아니네!”

어머니는 대답하지 않고 어두운 표정으로 옆에 떨어져 있던 뭔가를 보여준다.

데릭이 애용하는 목공예용 나이프가 피에 물든 채로 떨어져 있었다!

“농담이시겠죠? 전 방금 들어왔고 여기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는 전혀 몰랐다구요. 그 칼은 며칠 전에 숲에 놀러갔다 잃어버렸다고 했던 거잖아요.”

“넌 열살 때 카슨씨네 개의 꼬리에 폭죽을 달고도 같은 말을 했었다.”

“그거야 그냥 장난이었죠. 개도 안 죽었고 다친 사람도 없었잖아요. 아무리 경우가 없어도 이런 메스꺼운 짓을 제가 왜 하겠어요?”

어머니는 그래도 의심스럽다는 얼굴로 계속 아들을 추궁한다.

“폴로네즈가 사람 말을 흉내낼 때마다 기분나빠했었지 않니!”

“그거야 누군들 기분 안 나쁘겠어요? 엄마가 어느날 갑자기 저런 새대가리한테나 신경을 쓰시고 저희 참관수업 때는 코빼기도 안 비치시니...”

아차 싶어 급히 말을 거두었으나 어머니의 표정은 그다지 좋지 못했다.

“난 정말 너에게 실망했다. 말썽은 부려도 착한 아이라고 생각...”

그때 갑자기 바깥 마당에서 펑 하는 소리가 들려오더니 매캐한 냄새와 함께 질펀한 욕지거리가 바가지로 쏟아졌다.

“이런 젠장맞을! 비니! 데릭! 에드나! 모두 이리 좀 와봐!”

“이 문제는 다음에 얘기하자.”

어머니와 아들이 황급히 밖으로 달려가보니 이 집의 가장으로 수염이 텁수룩한 40대 벌목업자 핼 조던 애브너가 망가진 자동차에 매달려서 마치 독약먹고 죽은 애인 끌어안고 징징 우는 로미오처럼 울상이 되어 있었다.

“핼! 아니 도대체 어떻게 된 거예요?”

“악마가 들어왔는지 후세인이 쳐들어온건지 어떻게 된 건지는 나도 모르겠지만, 어제 밤에 제대로 정비해둔 자동차가 시동이 잘 안 걸리길래 배터리를 점검해 봤더니 갑자기 폭발을 일으켜서 이 모양이오. 냉각액과 부동액이 바꿔쳐져 있질 않나, 연료 펌프에는 쓰레기가 가득하질 않나, 카뷰레터도 맛이 가고 브레이크 페달은 휘어져 있고 핸들은 접착제로 빡빡하게 굳혀져 있질 않나, 돌아버리기 일보 직전이오. 대체 관리를 어떻게 했길래 이런 일이 생긴 거요?”

에드나 랭글리 애브너 부인은 그게 왜 자기 탓이냐고 격하게 따지다가, 남편이 보여주는 물건을 보고 숨이 멎을 뻔 했다. 며칠 전에 정원에 흘린 원예용 망사 장갑이 저기에 어떻게?

“우우와~ 이제야 알것 같아요. 엄마 앵무새도 아빠 자동차도 같은 그 무언가에게 당한 거예요! 그러고 그녀석들은 우리들을 이간질하려고 잃어버린 물건들을 현장에 스윽 흘려놓고 유유히 도주한거죠. 음 정말 생각할수록 미스터리한...”

핼은 아들의 추리가 일리없지는 않다고 생각했으나 화딱지난 마음이 더 컸기 때문에 퉁명스럽게 그 말을 받았다.

“그래 도대체 그럼 범인이 누구란 말이냐? 그렘린?”

“에이 아버지도 촌스럽게 그게 뭐예요. 적어도 제이슨이나 프레디 정도는...”

“제이슨이나 프레디가 이런 쫀쫀한 짓을 벌이고 다니냐!!!!!!”

혹시나 아들이 일을 저질러놓고 발뺌하려고 농담하는게 아닌가 싶어 또다시 화를 터뜨리는 핼이었다. 그때 뭔가 생각났다는 듯이 에드나가 끼여든다.

“근데 비니는 어디 있길래 안 나오는 거지?”

“몰라요. 보나마나 지 방에 틀어박혀 인형놀이나 하고 있겠죠. 계집애들이란!”

비니라고 불리는 당사자인 붉은머리의 8세 소녀 위니프레드 애브너는 그말대로 2층 자기 방에서 꼼짝도 하지 않고 엄마가 사다 준 바비인형들과 노는 데 골몰하고 있었다. 그녀는 밖의 소란에는 눈도 꿈쩍하지 않고 인형에게 말을 걸었다.

“으응 아무것도 아냐, 신경쓰지 마. 우리 가족들 시끄러운거 너희들도 알잖아. 근데 너희들 어디서 놀다 왔길래 이렇게 더러워졌니? 우에~ 기름까지 묻었네! 깨끗이 씻어줄테니 조금만 기다려.”





“듀발 씨, 하지만 이 계약서는 당신이 쓴 거 아닙니까?”

성공한 사업가 축에 속하는 마커스 듀발은 대체 어쩌다 이런 일이 생겼는지 도무지 믿기 어렵다는 표정으로 상대가 내준 서류를 다시한번 찬찬히 들여다보았다. 분명 자기가 (엄밀히 말하면 자기의 비서가) 작성하고 서명까지 한 진본이었으나 그 알맹이는 자기가 애초에 생각했던 것과는 엄청나게 달라져 있어서, 이대로 계약을 이행했다간 그의 회사는 별 쓸모도 없는 물건을 잔뜩 사들이고 터무니없는 빚더미에 올라앉을 것이었다. 그는 이맛살을 찌푸리며 이야기했다.

“뭔가 예상치 못한 착오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저희 회사의 용지는 맞습니다만 내용은 저희들이 작성한 게 아니군요. 운반이나 보관 과정에서 바꿔치기당했을 가능성은 없을까요?”

“저희 고객의 신용을 의심하시는 겁니까? 다시 말씀드리지만 이 계약서는 철저한 검증을 거쳐 귀하가 작성하신 원본이 틀림없다는 감정서까지 받아낸 겁니다. 그런 걸 이제와서 이대로 이행하시기 곤란하다고 하시면 다음 번에는 아무래도 법정에서 뵙겠군요. 이런 일이 보통 어떤 결과로 끝나는지 잘 아시잖습니까?”

희끗희끗한 백발에 코안경을 쓴 중견 변호사 벤슨 가드너는 자비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말투로 또박또박하게 자기의 입장을 밝혔다. 마커스는 벗겨지기 시작한 머리털을 세어보기라도 하듯 자신의 머리를 계속 쓰다듬으면서 다른 한쪽 손으로는 손수건을 꺼내들어 식은땀을 닦았다. 틀림없는 우리 회사의 용지에 틀림없는 우리 회사의 타자기, 틀림없는 자기의 서명. 그러나 어느 순간엔가 감쪽같이 변조된 내용. 듀발은 옛날 전설에 나오는 부기맨이라도 끌어들여 이 사건을 설명해보고 싶을 정도로 절박한 심정이었다.

“하여튼 이 문제에 대해서는 좀더 시간을 두고 검토해 보았으면 합니다.”

이것이 그가 내놓을 수 있는 최선의 답변이었다. 벤슨은 경멸하는 듯한 눈초리로 그를 한번 쓱 훑어보더니 가방을 챙겨들고 사무실을 떠났다. 마치 ‘책임지지도 못할 계약을 왜 했냐’라고 추궁하는 듯한 냉정한 눈빛이었다.

‘30년간 키워온 사업을 이대로 파워슈트라우스에게 넘겨준단 말인가.....’

듀발은 십여 분간 말없이 앉아있다가 두통약을 꺼내어 입 안에 털어넣고 물을 마시려고 사무실 반대편의 정수기를 향해 걸어갔다. 그때 구내전화가 울렸다.

“여보세요.”

“사장님, 유감스런 소식입니다만 가드너 씨가......”

“왜? 방금 전까지 나와 이야기하다가 떠났는데.”

“사고를 당했습니다. 혼자 타고 있던 엘리베이터가 갑자기 10층 아래로 떨어졌어요. 중태인 것 같습니다만 자세히는 모르겠고, 보안요원이 엘리베이터 줄을 조사해 보니 아무래도 누가 일부러 자른...”

이건 함정일까? 나와 문제의 계약서 때문에 상담하고 돌아가던 상대측 변호사가 나의 빌딩에서 의문의 사고를 당하여 혐의가 나에게 돌아오거나, 적어도 내가 도의적인 책임을 지게 될 것을 노린 건가? 하지만 이치에 맞지 않는다. 이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나를 궁지에 몰아넣을 방법은 있을텐데? 그럼 진짜 우연한 사고? 어찌되었든 간에 앞으로 몇년간은 편하게 자기는 글렀다.

듀발은 물을 마시는 것도 잊은 채 소파에 주저앉아 멍하니 하늘을 바라본다.

아까 집어넣은 두통약이 바짝 마른 입 안에 말라붙어 녹아들어가고 있었다...

한편 밖에서는 보안요원들이 문제의 엘리베이터를 정밀조사 중이었다. 이제 몇분 뒤면 신고를 받은 경찰이 출동하여 업무를 인계하게 될 것이다. 회사측에 불명예가 돌아오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도 철저히 조사하여 불리한 증거는 감춰야 한다.

“응? 이건 뭐지?”

30대의 남방계 보안요원 모섹 우르바티는 엘리베이터 바깥 위편에 어지럽게 찍혀 있는 조그만 자국들을 돋보기로 찾아내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동료인 아스람 모지즈가 ‘마치 요정이나 뭐 그런것의 발자국 같은데’라며 호기심을 내비친다.

“요정이 엘리베이터 와이어를 끊었다고 하면 누가 믿겠냐?”

그건 그렇지, 라는 대답에 허탈해진 모섹은 결국 더이상 생각하는걸 포기했다.

“그나저나 평소 때보다 손님들이 많이 드나들던데... 위층에서 무슨 행사라도 하는 거야?”

“아까 얼핏 들은 얘기로는 바비인형 전시회라더군.”





남자는 계속해서 제한속도를 훨씬 넘는 스피드로 차를 몰고 있었다. 꽤 늦은 시간이라 별로 인적은 없었지만 그렇다 해도 교통안전이 위협을 받는 것만은 변함이 없었다. 그러나 지금 상황에서 그런 문제는 이 남자 - 스토니 힉스에게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

단 한가지 그를 움직이게 하는 것은 삶에 대한 충동이었다.

몇 번이나 다른 차와 부딪힐 뻔하는 위험한 곡예를 벌이고 십수 개의 가드레일과 바리케이드와 휴지통과 공중전화 부스를 아작내는 묘기를 보여주고 나서야, 비로소 그는 도시를 벗어나 교외로 접어들었다. 그의 날렵하게 생긴 은빛 재규어는 언제나 그를 배신한 적이 없었다. 가솔린이 충분히 남아있는 한은 말이다.

그러나 문제가 생겼다.

‘사이렌? 즈엔자앙! 짭새가 따라붙었군!’

물론 스토니는 여러 차례의 전과기록이 있고 최근에도 몇 가지 위험한 일에 관여하긴 했지만 그가 경찰을 두려워하는 이유는 그것 때문이 아니었다. 콩밥을 먹는 일 따위는 지금 그가 피하려고 하는 것에 비하면 하나도 두렵지 않았다.

그는 보스와 그 부하들이 자기 눈앞에서 어떤 일을 당했는지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뭔가 이익 배당이 어긋나서... 말다툼이 벌어지고 험악한 분위기가 계속되던 중에... 기숙학교에서 돌아온 보스의 어린 딸래미가... 어느 전시회에서 싸게 구했다며 자랑하던... 제길, 아, 안돼, 더이상 생각하면 안돼!

‘이래뵈도 릿지레이서에서 여러 차례 우승한 몸이다! 따라잡힐줄 알고!’

여러 개의 인터체인지와 숲길을 교묘하게 이용하여 마침내 자기를 따라오던 다섯 대의 경찰차를 보기좋게 따돌린 것을 확인한 스토니는 승리감에 젖어 속도를 약간 줄이고 라디오를 켰다. 즐겨듣던 노래가 흘러나왔지만 제목은 기억나지 않는다. 목이 컬컬해진 것을 느낀 그는 허브캔디를 하나 꺼내려고 옆 좌석 앞에 있는 소지품 박스를 열었다.

다음 순간, 그는 자기가 크나큰 오판[誤判]을 했음을 깨달았다.

박스 속에서, 운전석 밑에서, 뒷 트렁크에서, 본넷 아래에서, ‘그것’들이 몰려나왔다. 병아리 눈물만큼도 안 되는 작은 손에 바늘과 잭나이프와 메스와 그밖의 온갖 상상할 수 있는 도구를 들고 하메룬의 피리부는 사나이에게 이끌린 쥐떼처럼 순식간에 차 안을 새카맣게 뒤덮고 그를 꼼짝달싹 못하게 내리눌렀다.

“이 $%@하고 (+#해서 $%*할 ^@&들아--------------------------ㅅ!!!!!!”

스토니 힉스는 자기 머리에 떠오르는 온갖 상스런 욕을 퍼부으며 ‘그것’들을 떼어내고 밖으로 뛰쳐나가려 했으나 문의 자물쇠가 도무지 열리지 않았다. 온갖 날카롭고 뾰족한 것들이 전신을 찔러들어오는 공포스런 감각을 싫도록 만끽하면서 그는 주머니 안에 있던 지포 라이터를 꺼내어 불을 켰다. 불이 차 안에 옮겨붙어 연료탱크로 흘러들어가기 시작했으나, 그는 그 열기를 제대로 느낄 수 없었다. 그의 심장이 격렬한 쇼크로 인해 멈춰버렸기 때문이었다.

급히 달려온 경관들이 간신히 그 자리에 도착했을 때, 스토니의 차는 이미 절반 이상이 새까맣게 타버린 뒤였다.

“---방금 들려드린 노래는 코넬리아 콘웨이의 「I'm Not Your Doll」...”





창고는 연기와 불꽃으로 뒤덮여 한치 앞도 볼 수 없는 아수라장이었다.

뤼 치앙 첸 기동대장은 방독면과 프로텍터를 장착하고 중무장한 부하들을 일사불란하게 지휘하여 창고 안으로 진입, 그 안에서 농성하고 있던 인물을 성공적으로 체포하였다. 뒤이어 시 소방대가 안으로 달려들어가 불길을 잡고 위험물이 없는지 점검하였다. 다행히 사람이 없는 창고여서 인명피해를 걱정할 일은 없었다. 범인이 고작 한 명이란걸 알고 뤼 대장은 허탈한 심정에 사로잡혔다.

어떻게 알고 재빨리 달려온 방송국의 취재진이 범인을 압송하는 기동대원들을 놓칠세라 카메라에 잡고, 기운찬 아나운서가 보도를 개시한다.

“오늘 저녁 5시 34분경 이곳 길리건 카운티 물류창고에서 연쇄 방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범인은 모하마드 아지브라는 37세의 시에나 출신 남자로, 이상하게도 주로 수출용의 바비인형이 적재되어 있는 창고만을 골라서 범행을 저질렀습니다. 다행히도 시경 기동대와 소방대의 합동작전이 성공을 거두어, 사건발생 1시간 20분만에 농성 중이던 범인은 체포되고 불길도 차차 잦아들고 있습니다. 범인의 주변사람들은 그가 이러한 일을 저질렀다는 사실에 대해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으며, 그는 수년간 평범하고 성실하게 살아왔으며 이웃과도 잘 지냈다는 증언을 들려주었습니다. 다만 몇가지 다른 각도로 조사해본 결과, 범인은 독실한 이슬람 신자이며 얼마 전에 사고로 부인과 아이들을 잃어서 심각한 정신적 문제를 앓고 있었다는 것도 밝혀졌습니다...”

모하마드라는 이름의 콧수염을 기른 남자는 끌려가면서 미친듯이 소리질렀다.

“날 놔줘! 내가 어쨌다고 이러는거야? 저것들은 악마의 인형이야! 저것들을 유통시키면 큰일난단 말야! 나 아내와 아이들이 저놈들 때문에... 이런 젠장, 이거 놓으라니까! 난 미치지 않았어! 당신들은 아무것도 모른다고! 으아아아아!”

뤼 대장은 먼발치서 그 모습을 바라보며 안쓰러운 듯이 고개를 저었다.

“존경받는 지역시민이었다는데 어쩌다 저리 되었는지 안타까운 일이야.”

“사람이 망가지는거야 뭐 한순간 아닙니까. 저도 뭔일 나기 전에 딸애에게 바비인형이나 하나 사주려고 합니다.”

뤼의 부하는 검댕투성이의 얼굴로 이렇게 말하더니 뒷정리를 하기 위해 현장으로 돌아갔다. 옆을 돌아보니 아직도 방송국 카메라는 돌아가고 있었다.

“...경찰에서는 오늘 사건을 지나친 신앙심과 정신적 긴장으로 인한 우발범죄로 보고 있으며 범인을 치료하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한편 국방부의 한 인사는 본 사건이야말로 우리들의 문화에 대한 아랍인들의 야만적인 적대감이 그대로 반영된 중대한 사태이며 이를 결코 가볍게 보아넘겨서는 안될 것이라는 강경한 멘트를 남기기도 했습니다. 제조회사인 마텔사가 입은 물질적 손실은 그다지 크지 않으나, 주력상품인 바비인형의 이미지를 개선하기 위해, 보다 많은 노력이 필요할 것이라는 전망입니다. 이상 현장에서 FNN 뉴스, 제시카 맥켄드루가 전해드렸습니다.”





카심 알 마지르는 멍하니 하늘을 쳐다보다 이상한 것을 발견했다.

그날은 분명 구름 한점 없이 맑은 날이었고 모래바람도 심하지 않았는데, 뭔가 형체를 알 수 없는 것들이 하늘을 가로질러 떨어져 오는 것처럼 보였던 것이다. 그러고 보니 아까 몇 대의 아메리고 전투기가 지나가긴 했지만 이쪽에는 별다른 군사시설도 없고 아직 정식으로 선전포고가 이루어지지도 않아서 안심하고 있던 차였다. 그런데...

“알라님 맙소사! 저게 뭐란 말인가?”

카심은 피우고 있던 물담배를 떨어뜨리고 건물 안으로 피해들어갔다. 곧이어 바깥에서 눈부신 섬광이 퍼져나가고 검푸른 연기가 피어올랐다. 전설 속의 거인 진[Jin]이 수십 명 한꺼번에 강림한다 해도 그런 재주는 부릴 수 없을 터였다. 게다가 하늘에서 내려온 것은 진에 비하면 터무니없이 작은 물건들에 불과했다.

G.I.JANE 복장을 하고 아미 나이프와 수류탄을 손에 든...

수만 수천 개의 바비인형이었다.

“..............................................인샬라.”

카심은 마음속에 피어난 충격과 공포를 애써 억누르고 가게 안의 빗자루를 총검 비슷하게 만들어 휘두를 준비를 했다. 같이 있던 주민들이 삽이나 곡괭이나 주방 용구를 집어들고 그의 뒤를 따랐다. 정부군도 등을 돌린 이 마을에서 그들이 의지할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누군가가 보다가 떨어뜨린 고물 액정 TV에서 한 남자가 연설하고 있었다.

“그들은 이제 국제사회의 법과 정의가 얼마나 엄정한지를 스스로 통감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어떤 일이 있어도 그들이 숨겨놓은 대량살상 무기를 찾아내고 말 것이며......”

열띠게 연설중인 길쭉한 얼굴의 중년남자는 손에 연방 대법전과 바비인형을 들고 흥분에 겨운 듯 마구 휘두르고 있었다. 개척시대의 카우걸 복장을 하고 멋스런 라이플을 들고 있는 바비인형의 두 눈동자가 은근슬쩍 요사스럽게 반짝이고 있었지만, 그런 데 신경을 쓰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전쟁은 이제 막 시작되었을 뿐이었다.





“토비, 아까 도착한 상자 다 들여놨냐?”

토비라고 불리는 깔끔한 인상의 청년 텐마 토비오는 완구점 <코도모노오모챠> 주인의 다소 짜증섞인 질문에 ‘제 기억으론 틀림없이 다 들여놨는디유’라고 무덤덤하게 답했다.

“그럼 저기 있는 건 뭐지?”

주인이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방향을 바라보자, 출입구 옆 한구석에 처음보는 상자 몇 개가 어느 사이엔가 슬그머니 놓여 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토비는 ‘거참 신기하네 아까는 분명히 없었는데’라고 궁시렁거리면서도, 일단 소매를 걷어부치고 낑낑거리며 상자를 가게 옆쪽의 전용창고로 운반했다. 혹시나 싶어 발신인과 경유지를 살펴보았지만 늘 보내오는 도매상에 늘 부쳐오는 운송회사의 마크가 선명하게 박혀 있어서 별다른 의심은 품지 않았다. 그는 개점시간을 앞두고 디스플레이 세팅하는 일에 몰두하느라 곧 그 상자에 대한 것은 말끔히 잊어버렸다.

“이건 뭐가 들어있는데 아직도 안 뜯었담? 어디 한번.......”

항상 쟈니즈의 최신곡을 MDP로 귀에 달고 다니는 아르바이트생 카토리 켄이치는 지시받은 물품을 찾으러 창고에 들어왔다가 아무렇게나 놓여있는 상자에 호기심을 갖고는, 포장을 뜯고 내용물을 살펴본다. 설마 중국에서 보내온 괴질[怪疾] 소포같은 건 아니려니 하고 조심스럽게 뚜껑을 열어보았지만 특별히 눈길을 끌 만한 것은 아니었다.

“뭐야. 제니인형이잖아. 인기 좋은 건 알지만 아직 재고가 산더미인데 누가 주문했담? 그러나저러나... 이 포장은 뭔가 평소와 다른 듯한...”

다른 동종 상품의 패키지와 구별이 안 가는 치밀한 포장이었지만 인쇄상태나 글자의 폰트, 문구의 위치가 어딘가 스캐너로 밀어내어 제멋대로 합성한 것처럼 기묘한 위화감을 주는 것이었다. 그러나 켄이치는 그 순간 걸려온 케타이를 받기 위해 생각을 잠시 스톱하고 창고 밖으로 나갔다.

“아, 루미코? 그러잖아도 연락하려던 참이었어. 내일 저녁 시부야, 어때?”

물론 그는 여자친구와의 수다에 정신이 팔린 나머지, 반쯤 열려진 상자 틈 속에서 수상쩍은 작은 빛들이 소리없이 반짝이는 것을 꿈에도 눈치채지 못했다.





THE END?





(C) ZAMBONY 2003.0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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