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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01-01] 울트라하 : 신년 스페셜 1999
창작의 샘터/울트라하 | 2010. 7. 4. 2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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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하라선배 앞으로 온 거네요.”

의무반의 선림이 한보따리나 되는 우편물 중에서 특별히 눈에 띄는 한 가지를 그녀에게 스르륵 내밀었다.

“또 왔어? 도대체 누가 보내는 걸까?”

“그걸 제가 아나요. 발신인도 아무것도 안 적혀 있는데.”

하라대원의 품에는 오색 찬란한 여러 가지 종류의 꽃들로 맵시 있게 꾸며진 꽃다발 하나가 상큼하게 안겨 있었다. 벌써 한 달째, 꼭 출근 시간에 맞추어서 배달되고 있지만, 동봉된 카드에는 발신인을 알 수 있는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단지 ‘당신을 항상 지켜보는...’이라는 구절만이 되풀이될 뿐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꽃다발은, 항상 하라대원의 취향에 딱 들어맞는 향기와 색채의 조합을 유지하고 있었으니 수수께끼는 더해 가기만 하였다.

“드디어 하라대원에게도 봄이 오려나 보군?”

“아직 한겨울입니다, 대장님.”

“.........”

유성대장은 모처럼 좋은 소리를 해주려다가 냉랭한 그 한마디에 입이 얼어붙고 말았던 것이다.

“읍읍, 우우우 읍!”

...아니 이거 진짜로 얼어붙었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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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LTRAHA

☆  NEW  YEAR's  SPECIAL ☆

The  Night  Trap

「除夜の陷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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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처럼의 송년회도 결국 파토가 나고 말았다. 한창 저녁 시간을 보낼 때인 밤 8시에 갑자기 앙끄시 중앙광장에 그놈이 나타나는 바람에 벌어진 일이었다.

그 때문에 한참 파티 분위기를 돋구며 술잔을 뒤집어 흔들고 안주접시를 공중에 날리며 되지도 않는 올드 랭 사인을 불러대던 PETS대원들은 아직 소주 기운이 채 가시지 않은 발그레한 얼굴을 이끌고 현장으로 급히 달려가야 했다.




시간이 너무 촉박했기 때문에 정복으로 갈아입을 여유도, 본부로 돌아가서 장비들을 챙겨올 여유도 없었다. 일단 각자가 기본으로 가지고 다니는 DD핸드건만 가지고 사복 차림으로 현장에 달려간 뒤에, 어떻게든 본부에 남아 있는 당번들과 연락을 취해서 장비들을 보내도록 할 수밖에 없었다. 적어도 이론상으로는 그랬지만 문제는 지금 출현한 괴수가 발산하는 강렬한 자장 때문에 통신기가 전혀 쓸모가 없다는 점이었다.

“장관님, 이럴 땐 어떻게 해야 하는 겁니까요?”

“아주 간단해.”

송년회 때문에 전세 놓은 카페를 온통 뒤집어놓고 빌딩가로 급히 달려나오면서 터져나온 유태대원의 절박한 질문에 어메장관은 한없이 느긋한 어조로 답했다.

다음 순간, 그는 대원들의 놀라는 눈초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상의 속주머니에서 새파란 십자가형 크리스탈을 꺼내 들더니 새까만 밤 하늘을 향해 오른팔을 치켜세우고는 목청껏 소리질렀다.

“우주의 힘을 하나로------------!!!”

“아앗!!!”

약 35.082초의 시간이 경과한 후,

그들의 상공에는...

상공에는...

고물 자전거 2개를 와이어로 대롱대롱 매단 중형 자이로콥터 한 대가 둥둥 떠 있었다 ;;;;;;

“자, 장관님, 이건 도대체...?”

“이 크리스탈은 지금과 같은 심각한 전파방해 상황에도 영향을 받지 않고 본부와 소통할 수 있는 특수 공진장치다. 보는 바와 같이 이것만 있으면 아무리 급박한 상황이라도 본부에 격납되어 있는 메카를 원격 조종으로 불러낼 수 있다.”

“그런데 어째 불러낸 놈이 신통치가 않아 보입니다만...”

“물론 그건 아직 실험단계이기 때문이다! 아직은 이 정도이지만 정말로 완전히 원격조종 체제를 갖추게 되면 펫츠호크나 비이클도 이것으로 불러낼 수가 있을 것이다! 어쨌거나 지금은 시간이 없으니까, 하라대원은 저 자이로를 타고 본부로 달려가서 호크를 가져오고, 나머지 인원은 파워드 사이클에 나누어 타고 현장으로 먼저 가도록 한다!”

“저 낡아빠진 자전거 두 대에 열 명이나 탈 수가 있을까요?”

“그런 일이 있을까봐 다 준비를 해 두었다.”

...자세히 보니 자전거의 측면에는 길다란 판대기가 날개 모양으로 단단하게 붙어 있었다. ‘소년’은 절망적인 표정으로 장관을 바라보았다.

“설마 저기에 모두를 태우려고 하시는 건...”

장관은 언제나와 다름없이 얼굴에 합금강판을 깔고 그를 바라보았다.

“원한다면 사직서는 내가 대필해 주겠다.”

“아니, 아닙니다. 출동하겠습니다!”

그제서야 생존의 위협을 느낀 대원들은 바삐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 미안한데, 우리 어디서 만났었던가?”

“나다 나, 하유성! 벌써 내 얼굴까지 잊었냐?”

“아아 맞다 맞아. 제대로 얼굴 본지 한 3년 넘었으니 말야. 그래 그동안 잘 지냈냐? 들리는 말로는 어디 도살장에 취직했다면서?”

“......방위군이야.”

“아차차 그랬었구나, 미안하다. 자 한잔 받고... 그런데 그 동안 동문들과는 연락을 별로 못한 모양이네?”

“......일에 쫓기다보니까.”

“그래도 그렇지, 너 자꾸 그렇게 연락도 없이 지내다 보면 아무도 못 알아보게 될지도 몰라. 내가 아는 후배 하나도 방위군에 있었는데 너무 오랫동안 병영에 잡혀있다 보니까 가족들 얼굴도 잊어버릴 지경으로...”

이것만 해도 벌써 일곱 사람째다. 이젠 지겹다.



...유성대장은 상념에서 깨어나 눈 앞에 펼쳐지고 있는 광경을 바라보았다. 난데없이 중앙광장에 나타난 괴수 뉴킬리오나이트가 방금 정부청사 앞 분수대를 지나 시계탑 쪽으로 접어들고 있었다. 괴수의 묵직한 발자욱소리가 공기와 지면을 진동시키며 주위 사람들의 몸을 야릇하게 진동시키고 있었다.

유성대장이 앉아있는 비이클의 지휘석 이동전화에 불이 들어왔다. 다행히도 아주 가까운 곳과 연락하는 통신은 괴수의 영향을 받지 않았다.

“상황은?”

“별로 좋지 않습니다! 미사일을 연거푸 다섯 발 먹이고 DD블라스터를 연발로 쏘았는데도 아무 반응이 없습니다! 다음은 LS입자빔으로 복부를 노려보겠습니다! 혹시 모르니 시계탑 주변 시민의 대피를!”

“벌써 연락해 두었으니 그점은 걱정말고 맘껏 퍼부어 주게!”

“롸저!”

하라대원의 믿음직하지만 어딘가 불안한 답을 듣고서 유성대장은 스위치를 껐다. 괴수는 흐느적거리는 다관절의 몸뚱이에서 희어멀건한 유황연기를 귀신처럼 피워올리며 점점 빠르게 빠르게 앞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젠장 오늘 밤은 다 잤군.



“얘 얘, 들었니? 아영이도 이번에 결혼한대.”

“뭐? 그앤 일생 화려한 싱글로 남겠다더니?”

“그게 어디 맘대로 되니, 집안 어른들이 살살 꼬셨겠지.”

“...솔직히 기분은 뭐같지만 축하는 해줘야겠지?”

“하라 넌 어때? 아직 아무 소식도 없어?”

“...기대할 걸 기대해라.”

“헤에 그런 소리 마. 요즘은 예측 불허의 시대 아니니.”

이것만 해도 벌써 일곱 사람째다. 이젠 지겹다.



...하라대원은 잠깐동안의 딴생각을 유치원 아동이 색종이 접듯이 대뇌 한구석으로 밀어버리고 눈 앞에 보이는 타겟에 집중한다. LS입자빔의 포문을 열고 조준을 복부(라고 생각되는 부분)에 맞추어 트리거를 연타한다. 그러나 괴수는 그다지 충격을 받은 것처럼 보이지가 않는다. 아무래도 곤란하다.

“대장님, 입자빔 공격은 실패입니다! 어떡하죠. E-M 반응탄을 쓸까요?”

E-M 반응탄이란 병기 개발국의 백준 교수가 개발한 엔드메이커 반응탄을 뜻한다. 대부분의 비파괴성 체질을 가진 괴수도 이 강력한 물질소멸탄의 위력 앞에는 버티기 어려웠다. 그러나 그 폭발로 인한 주변의 피해도 상당한 편이어서 이곳과 같은 대도시 한 복판에서는 사용하기가 어려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질문을 하는 것은, 그만큼 하라대원이 초조함에 시달리고 있다는 증거였다. 그만큼 눈앞의 적은 요지부동이었다.

“그건 안돼. 일단 피해가 적을 만한 지역으로 유도하는 게 먼저다.”

“그럼 시설물의 파괴를 막기 위한 유인공격이라도 허가해 주십시오.”

“알겠다. 허가한다.”

유성대장은 말을 마치고 옆에서 노트북으로 열심히 스캔 결과를 검토분석중인 명석한 두뇌의 피요대원을 쳐다보았다. “결과는 아직인가?”

“네, 하지만 십여분 뒤에는 아마...”

“십분 이내로 줄이도록. 이건 명령이다.”

“노력하겠습니다.”

피요대원은 너무 서두른 나머지 숫자 두 개를 잘못 입력하고 소숫점 찍는 위치를 세 번이나 틀렸다.



“그게 무슨 소리야? 내가 다른 사람을 우습게 여긴다는 거야?”

“차라리 우습게 여긴다면 일도 아니지. 너는 그것보다 더 심해.”

“어째서?”

“너는 너무 머리가 좋아서 탈이야. 그렇게 간단한 건 오히려 모르다니.”

“이봐, 내 두뇌가 이렇게 움직이는 건 내 잘못이 아냐.”

“너에게는 세상 전부가 커다란 도서관으로만 보이겠지? 다른 사람들은 그 도서관에 꽂혀 있는 책들이고 말야. 그래서 너는 언제나 새로운 사람을 만나면 새로운 책을 펼치듯이 들뜨지만, 그 사람에 대해서 웬만큼 알고 나면 싫증을 느끼고 도망가려고 하지. 마치 헌책을 장터에 내다 팔 때처럼 아무 미련도 없이.”

“그렇지 않아!”

“그럼 저번에 네가 그 애에게 보여준 그 태도는 뭐야? 난 정말 실망했어.”

이것만 해도 벌써 일곱 사람째다. 이젠 지겹다.



...갑자기 끼어든 회상 덕분에 예정보다 14.571초가 늦어지긴 했지만, 우여곡절 끝에 계산이 나왔다.

“저 괴물의 표면 강도는 불확정적입니다.”

“알기 쉽게 말하면?”

“자기에게 발사되는 무기의 위력에 맞춰 표면 강도를 자유자재로 바꿉니다. 그래서 일반적인 탄약이나 광선무기로는 상대할 수가 없습니다.”

“다른 각도에서 접근해야겠군. 약점을 찾을 수는 없을까?”

“워낙 빨리 움직여서 이것밖에는 알아낼 수가 없었습니다.”

그때 호크 2호로부터 유태대원의 솥뚜껑 깨지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제야의 종이 앞에 보입니다! 그곳에는 아직 수많은 시민들이!!!”

“......난처하군.”

비이클 보조석에 걸터앉아서 근엄한 포즈로 보고를 듣던 어메장관은 물고 있던 담배꽁초를 저도 모르게 쭉쭉 빨았다.



“새해도 다가오는데 여전히 그런 자리나 맡고 계시오?”

“이게 뭐가 어때서요?”

“능청은. 이 도시에 궂은 일이 벌어지면 제일 먼저 나서서 힘들게 처리하는데도 욕은 또 욕대로 먹고 그다지 명예롭지도 않은 지위 아니오?”

“나름대로 보람은 있습니다.”

“그건 쓸데없는 자기위안에 불과해요. 대체 당신이 뭐라고 생각하는거요? 지구를 지키는 지방 공무원? 그러지 말고 이젠 좀 슬슬 위로 올라갈 생각도 해 봐요. 이건 당신을 생각해서 하는 말이오.”

이것만 해도 벌써 일곱 사람째다. 이젠 지겹다.



...어메장관은 며칠전의 불쾌한 대화를 애써 잊으려고 하다가 물고 있던 담배를 씹어 삼키고 말았다. 사실은 그래도 상관없었다.

어차피 그 담배는 담배를 가장한 막대 초콜렛이었으니까.

“어째서 저쪽에는 아직 대피명령이 닿지를 않았나?”

“괴수가 발산하는 자장의 범위 바깥이어서 방송을 예정대로 진행하려는 모양인데 지금은 상황이 바뀐 겁니다.”

“제야(除夜)의 타종(打鐘) 중계방송을?”

“네.”

피요대원의 보고를 다 들은 장관은 생각에 잠긴다. 이제 와서 대피명령을 발령하려 해도 괴수의 자장(磁場) 때문에 연락이 제시간에 닿질 않는다. 그리고 제야의 종소리를 들으려는 시민들이 수천 수만 명이나 몰려 있는 판에 섣불리 대피령을 내리면 대단한 혼란과 무질서가 벌어질 수 있다. 그렇다고 대피를 시키지 않자니 그리고 달려가는 괴수 때문에 위험이 더 커진다. 이것 참 골치 아프게 되었군.

“...호크에게 연락해서 놈의 진로를 최대한 딴 곳으로 돌리도록 해.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서 의무반을 근처에 대기시키고 다른 구조대의 구급반과 연계해서 구조활동을 벌일 준비도 서두르도록. 이상.”

“그런데 호크 1호는 연료부족으로, 잠시 착륙한다는군요.”

“그래?”

무휼박사가 지휘하는 메디컬 밴은 이미 현장 근처에서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있었으나, 솔직히 말해 그 안에서 대기중인 대원들의 마음은 그다지 준비되어 있지 못했다.

“허어어어업, 윷이야아! 와아, 나왔다, 나왔어, 모다!!”

“앗, 아냐. 방금 그건 내 차례였다고!!!”

“쯧쯧 미나언니, 비겁하게 제 말을 따먹으시려는거 아녜요?”

“그.게. 선.배.한.테. 할 말이니이---???”

“저, 이 말은 어느 쪽으로 옳기나요?”

“거녀양, 윷놀이 처음 해봐? 그쪽이 아니라 이쪽이라구.”

“비상인데 도대체 뭣들 하는 건가---------!!”

“어라라 박사님, 말판을 깔고 앉으시면 어떡해요! 내일 아침 내긴데!”

......이들의 마음은 벌써 설날에 가 있었다. 물론 아직 이곳의 풍습에 익숙지 못한 탓에 단지 구경만 하고 있는 어떤 사람은 빼고 말이다.



“라하야, 이건 어찌된 일이니? 지난달의 점수는 너무 저조하구나!”

“하지만 그건요...”

“변명할 생각은 마라. 그런 졸렬한 태도야말로 자랑스런 여왕 후보로서 가장 첫 번째로 버려야 할 악덕인 게야!”

“...그래도, 그 말아먹을 작가가 점수 딸 기회를 안 준걸 어쩌라고요~~~”

어이, 변명은 죄악이라는 걸 모르나? (by 제로경)

“어떤 상황에서도 항상 최선을 다 하지 않으면 결코 바라는 결과는 나오지 않는 거야. 그런 평범한 진리를 무시하고서는 여왕이 되더라도 소용이 없는 거란다. 알겠니?”

“...네, 하지만, 저는......”

“이런, 원로원 회의가 곧 열린단다. 다시 연락하마.”

“하, 할머니...”

별과 별 사이를 잇는 마법의 거울은 이미 꺼져 있었다.

“......보고 싶어요, 라는 말도 미처 못 했는데...... (T.T)”

거녀의 눈에서 저도 모르게 머나먼 고향 생각을 담은 결정질의 액체가 스르륵 흘러 내렸다.



...현실로 돌아온 동거녀의 귓가에 난데없는 비명이 들려왔다.

“으아아아악! 괴, 괴수가 방향을 돌렸습니다!”

“그건 잘된 거 아냐, 그런데 왜 그래!”

“그런데... 바로 우리 쪽으로 방향을 돌렸다구요!!!”

밴의 운전을 맡은 시아나요원의 외마디소리와 함께 밴의 차체가 크게 기우뚱거리더니 완전히 뒤집혔다. 무휼박사 이하 의무반은 지독한 충격에 정신을 잃고 말았다.

차가 다시 한 번 뒤집히는 순간, 가장 바깥쪽에 가까이 있던 거녀는 차로부터 굴러떨어져 바깥 잔디밭에 둔탁하게 내려앉았다. 약간의 상처를 입어서 온몸이 쑤셔 옴에도 불구하고 정신을 잃지 않은 것은 천우신조(天佑神助)가 아닐 수 없었다.

“아야야... 모, 모두들... 잠시만... 기다려 줘요...”

거녀는 괴수의 발길질에 엉망진창으로 우그러진 차체를 울상이 된 얼굴로 한 번 바라보고는 반대쪽 방향으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보랏빛 부채가 저녁 노을같은 광채를 내뿜었다.



“이젠 됐어! 나타나 주었어!!!”

‘소년’의 외침이 말해 주듯이, 어디선가 신비하게 나타난 가학의 거인 울트라하는 조금도 손 쓸 틈을 주지 않고 비대한 괴수의 목(이라고 여겨지는 부분)을 부여잡은 채 되도록 사람이 적게 있는 쪽으로 유도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보랏빛이 감도는 그 은빛의 몸매에 불끈불끈 근육(이라고 추측되는 흔적)이 솟아오르는 것을 15미터 바깥에서 관찰하고 있는 ACN의 취재진들조차도 느낄 수 있을 정도의 풀파워였다. 어쨌거나 그로 인해 다시 자신을 되찾은 PETS대원들은 울트라하를 둘러싸고 협공태세를 취하였다.

그러나 그때, 마치 고무줄처럼 몸을 길게 잡아늘여서 거인의 포박을 쉽게 빠져나온 괴수는 거인을 비웃기라도 하듯 유연한 몸놀림으로 꼬리(처럼 생긴 기관)를 휘둘러 거인의 뒤통수를 후려갈긴 뒤 길쭉한 몸 측면에서 집게발을 한 다스 정도 꺼내어 스트레이트 어퍼컷 연타치기 잽 잽 잽을 쉴 새 없이 먹여주는 것이었다. 뜻하지 않은 역공에 쓰러진 거인은 괴수의 질척거리는 몸뚱이에 깔려 일어나지 못하게 되었고, 주변에 모여든 PETS는 가지고 있는 무기를 총동원하여 괴수의 위치를 옮겨 보려고 했으나 역부족이었다.

“이거야 원, 전혀 도움이 안 되잖아 이거!!!”

유태대원은 있는 힘껏 트리거를 눌러대며 빽빽 소리를 질러댔다.



그때, 수백년을 전해 내려온 신비의 종이 매달려 있는 중앙광장의 명물 보신각(保身角)에서는, 수만 명의 군중이 모여든 가운데 타종의 시간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 종은 천 오백년 전에 무서운 마귀를 물리친 기적의 종이라네.”

“나는 이 행사를 보기 위해 한통합중국에서 달려왔지. 기대가 되는걸.”

아레즈라는 허약해 보이지만 날카로운 눈매의 젊은 관광객이 옆에 서 있는 친구에게 흥분된 목소리로 털어놓은 한 마디는 이랬다.

이 곳에 와 있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비슷한 느낌을 가지고 타종의 의식을 기다리고 있었다. 묵은 한 해를 보내고, 새로운 한 해를 맞이하며, 더욱 알찬 미래를 준비하기 위해 마음가짐을 새롭게 하는 경건한 순간을 맞이하려는 것이다.

“무, 무슨 얘기야? 난 TV에 나온다길래 그냥 잠깐 들른건데.”

......경건한... 순간을...



“대장님! 이젠 틀렸습니다! 종루가 있는 방향으로 가고 있어요!”

“제기랄, 대피령을 내리기엔 너무 늦었는데, 어쩌지!”

괴수는 발버둥치는 은빛 거인의 머리끄덩이를 잡고는 마치 새벽에 몰래 버릴 쓰레기 봉지를 갖고 가듯이 질질 끌고 가는 중이었다.



드디어 타종(打鐘).

괴수의 접근 소식을 거의 눈치채지 못한 수만의 군중들은 경이롭다는 표정을 지으며 밤 하늘에 맑게 울려퍼지는 종소리에 귀기울이고 있었다. 그 소리는 마천루가 가득한 중앙광장 주변의 거리를 타고 넘어, 괴물이 다가오고 있는 길목에까지 울려 퍼졌다.

그 순간, 괴수가 움직임을 멈추더니 다시 온몸에서 연기를 내뿜으며 몸을 뒤틀기 시작했다. 괴수가 약해진 순간을 놓치지 않은 거인은 비호처럼 일어나 괴수의 반대방향으로 달려가서 공격자세를 취했다. 뜻밖의 호기(好期)가 찾아왔음을 파악한 유성대장은 이동전화를 끌어안고 절규에 가까운 명령을 내렸다!

“저 거인을 향해 일제사격!”

펫츠호크 2호 및 주변에 포진해 있던 방위군 응원부대는 재빨리 거인을 향해 회심의 일격(...)을 연달아 난사했고, 그것을 고통스러운 포즈로 남김없이 받아들인 거인은 한 번 기절하듯 땅 위에 쓰러졌다가 (그 과정에서 수많은 민간건물이 박살나고 뼈대만 남는 사태가 또 벌어졌다) 다시 무지개빛 광채를 발하며 일어서는 것이었다.

빛의 여왕, 울트라하-S모드의 등장이다!

“됐다! 그동안 우리는 종루에 달려가서 종소리를 계속 울리도록 조처하지!”

“이제 알겠습니다. 저 괴수는 특정 주파수의 음파에 약했던 거로군요!”

유성대장의 재빠른 대처에 감탄하며 다음 행동을 지시하는 장관과, 그제서야 모든 것을 납득하고 고개를 끄덕이는 피요대원, 둘다 간만에 기쁜 얼굴이었다.




그들은 사람들이 모두 돌아가서 한산해진 보신각 앞에 망연히 서 있었다. 쓰레기를 줍고 뒷처리를 하기 위해 모여든 자원봉사자들도 모두 돌아간 시각이었으니, 거의 아침에 가까워지고 있었던 것이다.

유태대원이 아쉽다는 말투로 투덜거렸다.

“아아, 결국 송년회는 엉망이 되어 버렸어.”

‘소년’이 기운을 잃지 않은 어조로 위로한다.

“하지만 괜찮지 않습니까. 또 한건 해결하고 시민들을 구했으니까.”

그러나 이것은, 다음 날이면 어김없이 들어올 건물 파괴에 관련된 민원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말이었다.

“아무튼 제군들 모두 수고했다. 이제 뒷일은 방위군과 경찰이 처리할 테니 그만 돌아가기로 할까.”

어메장관의, 겨울밤에 불타는 군밤호떡마냥 따뜻한 이 한마디를 듣고, 대원들은 갑자기 몰아닥쳐 오는 피로감에 휩싸였다. 그러고보니 이 사건 때문에 한 숨 잠도 못 자고 밤을 샌 것이었다. 그들의 얼굴은 과로로 인해 반쪽이 되었고 입은 옷은 여전히 사복이었으나 이리뛰고 저리뛰고 하는 통에 헝클어지고 구겨지고 꼴이 말이 아니었다. 잘못 보면 노숙자들이라고 해도 할 말이 없을 정도로.

“...참 장관님, 의무반의 상태는?”

“다행히도 밴의 내부구조가 2중 완충 시스템을 갖추고 있었고 차체도 심하게 찌그러진 편은 아니어서 모두 무사하다고 한다. 거짓말같긴 하지만 그나마 괴수가 살짝 발로 찼으니 그 정도이지 안 그랬다면 어떻게 되었을지...”

“그나저나 하라선배는 대체 어디 가 계셨었어요? 간만에 ‘그 거인’이 나타나서 꽤나 재미있게 되었었는데 그걸 놓치다니 참...”

“응? 나는 재보급 때문에 잠깐 저쪽 포스트에...”

피요대원의 깜찍한 질문에 일순 당황하는 하라대원이었다. 도대체 그게 왜 질문거리가 되는 거지?

“정말이에요? 나는 혹시......”

“혹시 뭐?”

“아니에요.♥”

피요대원의 의미있는 윙크를 미처 보지 못한 하라대원은 눈만 깜빡거릴 뿐.



“송년회는 망쳤지만 아직 신년회가 있다! 모두들 오늘은 푹 쉬도록!!!”

“여부가 있겠습니까!!!”

기운찬 함성을 주고 받으며 그들은 모두 보신각을 뒤로 하고 각자의 숙소로 돌아가는 귀로에 올랐다. 다행히도 제야의 타종 행사 때문에 특별 교통편이 운행되고 있었으므로 별 문제는 없을 것이었다. 펫츠호크는 유태대원이, 비이클은 ‘소년’이 가는 길에 본부에 가져다 놓기로 했다. 메디컬 밴은 회수되었고 의무반의 가엾은 부상자들은 응급실로 실려가는 중이었다.

장관, 유성대장, 피요대원, 하라대원은 열차 안으로 들어서며 신년 덕담을 가장한 시시껄렁한 잡담들을 잠에 반쯤 취한 채 주고받는 중이었다. 그러던 중, 피요대원이 장관에게 말했다.

“......아까는 파티 분위기라 하기 힘든 얘기였는데...”

“음?”

“요즘 들어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과연 지금의 제 자신은 완벽한 건가. 이대로 계속 남아 있어도 좋은 것인가, 하는...”

“글쎄, 나도 가끔 비슷한 고민을 하고는 하지. 특히나...”

“특히나 다른 사람들의 눈초리를 신경쓰게 될 때?”

하라대원의 예리한 지적에 장관은 어깨를 으쓱했다.

“그래, 말하자면. 그런 문제로 인해 꽤 골치가 아플 때도 있고, 여러 가지로 마음이 복잡해지기도 하지. 나는 혹시 정체되어 있는 건 아닌가. 남들에게 도움보다는 해를 더 많이 주는 말종은 아닌가 하고.”

“장관님도요? 못믿겠는데요.”

유성대장이 동지를 만난 듯 반가운 마음으로 끼어든다.

“그러고보니 우리 모두 조금씩은 그런 부분이 있었던 거 아닐까요.”

하라대원이 가장 또렷한 목소리로 의견을 낸다.

“그래, 앞으로도 그런 고민은 아마 계속하겠지. 하지만 말이야...”

“하지만 뭔데요?”

장관은 피요대원의 차가운 안경 저편에 감춰져 있는 맑은 눈동자를 잠깐동안 들여다보다가 말을 이어 나갔다.

“...그렇다고 해서 그대로 주저앉는 것도 추하지 않을까. 그럴수록 더더욱 열심히 지금 이 순간을 살아 나가야 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어. 그러기 위해서는 일단... 내 자신을 사랑하지 않으면 안되지. 단점도 포용하고, 고치기 위해서 노력도 하지만, 결코 자신을 포기하거나 비웃지는 말자고...”

세 사람의 눈에 한 순간 의미있는 부드러운 빛이 감돌았다.

“왠지 아까, 제야의 종소리를 들을 때, 그 모든 고민들이 너무나 부끄럽게 느껴졌었어요. 결국 내가 하기에 달려있는 걸, 아무 것도 하지 않고 고민에만 잠겨 있는 것도 비겁한 것이 아닐까 하고... 종소리는 저렇게 맑기만 한데...”

“꼭 그렇지는 않아. 고민에 잠겨있는 시간도 어느정도는 필요하지. 그러는 동안 고민을 벗어날 준비를 자기도 모르게 하게 되니까.”

유성대장이 진심을 담아 말했다.

“장관님,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자네들 양력 쇠나? 난 음력이라네. 허허허.”

“그럼 곱배기로 받으시면 되죠.♥”

피요대원과 하라대원이 동시에 즐거운 목소리로 보충하는 것이었다.

찬 바람이 감도는 지하통로를 지나 열차는 지상으로 솟아나왔다. 멀리서 아침 햇살이 희미하게 비쳐 오고 있었다.

“그런데 ‘그 거인’도 새해를 알는지 모르겠네요.”

“아마 모를 거야. 우리와는 다른 세계의 종(種)일 테니까.”

“그거야 어쨌든, 거인도 새해 복 많이 받기를 바래요. 후후훗.”




동거녀, 아니 라하세르 바스타젠 드 올트란 6세는 문득 어디선가 자기를 축복해 주는 듯한 따뜻한 파동이 밀려오는 것을 느끼고 눈을 떴다. 그러나 그곳은 앙끄중앙종합병원의 응급실이었고, 자기 주위에는 의무반 동료들과 기타 시민들로 이루어진 일단의 부상자들이 그득할 뿐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하는 마음이 포근해지는 것을 느꼈다. 어쩌면 이 세계의 특이한 공전 사이클이 어떤 신기한 마력(魔力)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라하는 그렇게 생각하며 속으로 웃음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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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 ウルトラハ制作委員會․NOW 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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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TS 본부 근처의 교외 상점가에 위치한 어느 아담한 꽃집.

“아, 이번 달에도 계속 보내달라구요. 또 특별주문이겠죠? 알았습니다. 저희들에게 맡기세요. 틀림없이 배달해 드리지요.”

미스터 민트라는 이름의 점원은 전화를 끊고는 다시 일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같은 때, PETS본부 휴게실에서는 평소보다 훨씬 행복한 얼굴을 한 피요대원이 둥근 안경알을 새초롬하게 빛내며 수화기를 내려놓고 있었다.




THE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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