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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04-05] 울트라하 : 본편 제8화
창작의 샘터/울트라하 | 2010. 7. 4. 2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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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OW  IT  BEGAN  ◆





으음... 누가 불을 켠 거야...

아냐, 조금만, 조금만 더 자게 해 줘... 제발...

커튼 좀 닫아 달라니까... 음냐냐...

“이제야 정신이 드나 보군?”

에?

“저런 저런, 아직 무리하게 움직이면 안 돼요. 심하게 다쳤다구. 자, 천천히 고개를 들고, 그래 그래, 이쪽을 봐요.”

이상한 느낌이었다.

마치 아주 오랫동안 깨어나지 않는 깊은 잠을 자다가 억지로 깨어난 듯한 어색함. 거기에다 어둠에 잠겨 있던 두 눈에 새어들어오는 자극적인 햇살. 온몸이 물에 잠긴 솜처럼 무겁고 갑갑하다니... 마치 누군가가 머릿속을 열고 국자로 한바탕 휘저은 것처럼 어지럽지를 않나.

두 눈은 분명히 제대로 뜨고 있는데, 뭔가 하얀 베일이 눈 앞을 가로막은 것처럼 느껴지는 것은 대체 무슨 이유에서일까? 게다가 이 머리에 어설픈 솜씨로 감겨 있는 붕대는 대체 뭐지?

“무사해서 다행이에요. 꼬박 닷새 동안이나 정신을 잃고 있어서, 혹시나 송장 치우는거 아닌가 하고 걱정을 얼마나 했는지. 자, 이걸 좀 들어 봐요.”

따뜻하지만 별로 맛은 없는 듯한 묽은 액체가 스푼을 거쳐 입 안으로 흘러들어오는 것이 느껴졌다. 가끔씩 드문드문 밥알도 섞여 있지만 도무지 간에 기별도 안 갈 지경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어쩐지 불평을 할 때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에, 그냥 가만히 있었다.

앗, 조심해. 입가에 뭔가 뜨거운 것이 흐르잖아!

“쯧쯧, 아직은 팔다리도 움직일 수 없으니 딱해서 원. 자자, 이쪽으로 좀더 고개를 돌려 봐요. 닦아줄테니까. 아, 뜨겁다고요? 조금만 참아요.”

뱃속에 뭔가 들어오고 나서야 사방이 제대로 보이기 시작하다니 정말 미칠 노릇이었다. 그나마 그 덕분에, 그리 깨끗하지도 않은 이불을 덮고 누워있었던 곳이 햇빛은 잘 통하지만 환기는 별로 잘 안 되는 작은 골방이라는 것은 알았으니 다행이었다.

그리고 지금 옆에 앉아 있는 사람이 아주 친절해 뵈는 중년부인이라는 사실도.

하지만, 뭔가 말을 하려고 해도 혀가 굳은 것처럼 말이 안 나오고 있으니 이것 참 큰일이 아닐 수 없다.

아, 아줌마가 또 뭔가 말을 하려고 하는군.

“말할 수 있어요? 안된다고? 저런저런, 머리를 너무 심하게 부딪힌 모양이네. 아, 팔은 움직일 수 있나본데. 그럼 여기에다 뭐든 좋으니까 한 번 써 볼래요?”

다행히도, 배를 채워서 그런지 팔은 어떻게 움직일 수 있게 된 것 같았다.

그녀는 이불 속에서 오른팔을 꺼내어 펜을 쥔 다음, 가져다 준 메모장에 비실비실한 팔놀림으로 가까스로 단 한 줄을 쓸 수 있었다.

「제가 누구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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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트라하 ― 별에서 온 여왕

ウルトラハ ― 星からの女王さま

(C)央久プロ․NOW․ウルトラハ製作委員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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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EW  OPENING  :  ECLIPSE  ★



갑자기 세상을 뒤덮는 검은 어둠

이리저리 무너지는 자연의 균형

사방을 둘러봐도 의지할 곳 없네

믿을 건 오직 나의 용기뿐! (Ultraha)


절대로 물러서지도 도망치지도 않아

여기서 돌아봐도 동정받을 수 없어

남들을 바라봐도 위로받을 수 없어

두려움만 퍼져나갈뿐! (Ultraha)


불타올라라 나의 용기 세상을 밝히는 등불

솟아올라라 나의 희망 사랑을 지키는 미소!

어둠 속에 남겨져서 홀로 싸운다 해도

나는 포기하지 않아 (Never Give Up!)


부활하여라 나의 광채 어둠을 부수는 불꽃

뛰어넘어라 나의 한계 목숨을 걸고서 돌진!

절망 속에 방황하고 주저앉는다 해도

나는 다시 일어설 거야 (Just Carry 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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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화 방황

第8話 『彷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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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일주일 전의 일이구나. 이 허름한 잡화점에서 일하게 된 것도 말이지.

이곳의 주인은 나를 돌봐 준 바로 그 아주머니였는데, 그녀는 항상 친절하고 싹싹한 행동으로 고객들뿐만 아니라 주변 이웃들에게서도 칭찬을 받고 있었어. 그 증거로, 그녀를 아는 사람들은 모두 그녀를 본명 대신 ‘착한송씨’라는 별명으로 불렀지. 주위에 어려운 사람이 있으면 반드시 도와주고, 사정이 딱한 손님에게는 일정 한도 내에서 외상도 주고, 자기가 곤란하지 않을 정도라면 돈을 빌려 주는 일도 있었다고 해. 게다가 근처 동네에서 괴수가 난동을 부린다는 소식이 들리기만 하면 어김없이 영업을 중단하고 동네사람들과 함께 자원 봉사대를 조직하여 구호작업을 도우려고 달려가곤 했다는 거야.

(알고보니 앙끄시를 지키고 있었던 것은 저 캣츠인지 뭔지 하는 형편없는 공무원들 집단만은 아니었나 봐. 그들에 대한 불만은 이곳에서도 예외가 아니어서, 저녁 때만 되면 이웃들이 신문을 사들고 한곳에 모여 그날 벌어진 그들의 실책에 대해 열띤 성토를 벌이며 술 댓 병을 비우기도 하거든.)

그러나 경제가 어려워지고 불황이 눈에 띄게 다가온 요즘같은 시절에 그러한 선행(善行)을 베푼다는 것은 어쩐지 바보짓처럼 보이기도 해.

하지만 그러한 바보짓을 아무런 대가 없이 행복한 마음으로 해치운다는 것이 바로 송씨의 매력이더라구. 따지고 보면 내가 살아난 것도 결국은 그 바보같은 성품 때문이었으니 할 말이 없지 않아?

내 건강은 눈에 띄게 회복되어서 이제는 장부정리도 돕고 간단한 물건 운반도 스스로 할 수 있게 되었어. 하지만 여전히 내가 누구고 무엇을 하고 있었고 어디서 왔는지 하는 기억은 전혀 돌아오지 않고 있었지. 송씨의 말로는 어느 날 괴수에게 엉망진창으로 당한 어느 상점가에 도와줄 일이 없는가 해서 나가 보았다가 무너진 건물더미 아래에 깔려 기절해 있는 나를 우연히 발견하고 크레인까지 동원해서 구해냈더라는 거야.

그때 입고 있었던 옷은 너무 많이 상해서 버렸는데, 버리기 전에 주머니를 뒤져 봤지만 신분증명같은 건 찾을 수가 없었더래. 그나마 남아있는 것이라고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이 쥘부채 하나밖에 없었다는데, 대체 여름도 다 지나간 마당에 왜 부채같은 건 가지고 다녔던건지 모르겠어 정말.

송씨의 부탁으로 나를 진찰해 준 의사 선생님은 그때 머리에 큰 상처를 입어서 기억이 손상된 것이 분명하다며, 자신으로서도 뾰족한 치료방법이 없기 때문에 일단은 건강을 완전히 회복할 때까지 기다렸다가 시내의 큰 병원에 가 보자고 하더군. 그 동안에는 송씨네 잡화점에 딸린 작은 방에서 하숙을 하기로 했어.

그런데 참 묘하게 생긴 의사도 다 있지. 웬만한 장정 서넛은 한꺼번에 때려눕힐 듯한 우람한 체구에다, 과묵한 얼굴에는 어디서 얻었는지도 알 수 없는 희미한 상처자국이 가득하고, 은은한 빛이 도는 검은 가죽 파카는 왠지 칙칙하고 기분나쁜 느낌까지 주는 거 있지. 게다가 등에는 항상 환자 치료하는 것과는 아무 상관 없어 보이는 커다란 죽도(竹刀)까지 매달고 다니질 않나. 진찰받을 때에는 무슨 짓이라도 당하는거 아닌가 해서 속으로 덜덜 떨었다니까 글쎄.

그 의사 이름이 뭐길래 그렇게 야단을 피우냐구?

음... 그게... 아마 ‘풍림잭’이라고 했을 거야 아마.




“박사님. 방금 연락이 하나 들어왔는데요.”

“음, 그래. 뭔가 새로운 소식이 있대?”

“아뇨. 그건 아니고 전에 말씀하셨던 그 후배라는 분한테서...”

“태환군이? 무슨 일인데?”

“우리가 찾는 사람과 비슷한 인상을 한 기억상실 환자가 어제 진찰을 받았다고 하더군요. 다만 이상한 점은......”

“이상한 점?”

“우리가 아는 그 사람과는 전혀 다른 성격이더랍니다. 남을 바라보는 눈매도 아주 날카롭고, 자기의 현재 상태를 제법 냉정하게 받아들이더래요.”

“그럼 아니군. 기억을 잃었더라도 성격까지 바뀌지는 않을텐데.”

“어떻게 하죠?”

“계속 다른 경로를 통해서 알아보도록 하세. 아무리 덜떨어진 동료라도 동료는 동료니까 모른 척할 수는 없잖나.”

“알겠습니다.”




“이거 백정원군 아냐. 여기서 만나게 될 줄은 몰랐는데.”

“누군가 했더니... 돌파리 의사 선생.”

“요즘은 도장에 나가지 않나.”

“나가지 않아요.”

“이제는 용서할 때도 되지 않았는가. 쓸데없는 원한은 몸만 병들게 하지.”

“남의 일에 참견 말아요.”

“선희의 일은 나에게 있어서도 중요했어.”

“.........”

“어려운 일 있으면 찾아오라구. 상담해 줄테니까.”

“......개자식.”




하루종일 가지각색의 손님들을 상대하고 대충 가게 정리까지 끝내고 보니 어느 새 오늘도 저녁 시간이 가까워져오고 있네. 나는 창고에 쌓여 있는 재고들을 다시 한 번 점검하러 일람표와 전자계산기를 들고 안으로 들어가서 먼지를 털어내고 일에 뛰어들었지. 그런데 그때 바깥에서 이상한 경음기 소리가 들려오는 거야 글쎄.

“맙소사, 또 너희들이니!!! 이제 다시는 안 봐도 될줄 알았는데......”

“그렇게 말씀하시면 저희가 너무 섭섭하죠, 숙모님. 저희들이 소년원에서 숙모님 생각을 얼마나 한 줄 아시기나 하세요?”

왁자지껄하는게 뭔가 큰 소동이 벌어질 것 같아서, 나도 일하던 걸 집어치우고 구경하러 달려 나왔지. 그런데 세상에, 그곳에는 이 조용한 동네와는 별로 어울리지 않을 듯한 광경이 펼쳐지고 있었지. 열 다섯에서 열 아홉 쯤 되어 보이는 말대가리같은 소년들 열 일곱명이서 가지각색으로 요란하게 차려놓은 오토바이를 몰고 가게 안으로 밀고 들어와서 진열장을 때려부수고 있는거야. 그 중에 가장 나이들어 보이는 미소년 하나가 아아주 멋진 맥가이버칼을 척 뽑아들고 카운터 뒤에 서 있는 송씨 아줌마를 협박하고 있지 않았겠니. 평소에도 거의 놀라는 법이 없었던 아줌마가 이상하다싶을 정도로 떨고 있는 것을 보니 아주 재미있더라구.

......알아, 알아. 그렇게 생각하면 못쓴다는 거.

하여간에 그 꼬마녀석은 기고만장한 얼굴로 아줌마에게 계속 원한에 서린 말들을 내뱉고 있었지. 아무래도 두 사람은 친척인데, 아줌마가 예전에 걔네들에게 뭔가 실수한 일이 있었나봐.

“정원아, 제발 그만두거라. 선희도 네가 이렇게 되는 걸 바라지는 않을거야!!!”

아, 그러고 보니 아줌마가 며칠 전에 나를 ‘선희’라고 잘못 불렀던 적이 있었는데 그게 친척의 이름이었나봐. 어떤 사람이었을까 궁금한데?

“누나는 숙모님 때문에 죽었어요! 그래놓고 당신이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세요? 그때 당신이 우리에게 조금이라도 관심을 보였더라면 나도 이렇게까지 되지는 않았을 거라고요!!!”

“그때는 내가 잘못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렇게 하는 건......”

“변명은 듣고 싶지 않아요!”

듣자듣자하니 무슨 소린지 갈수록 모르겠네 정말.

나는 창고 문 뒤에서 계속 지켜보기가 너무 지겨워져서 참다참다 못해 매장 안으로 들어섰지. 패거리들 중 몇몇이 내가 나타난 걸 보고 약간 움찔했지만 나 혼자뿐이라는 걸 알고는 상관하지 않고 자기들이 하던 짓을 계속하더군. 진열장 유리를 깨고, 사방에 쌓여있던 물건들을 마구 내던지고, 술병을 깨어 바닥에 마구 퍼붓고, 질서라고는 눈꼽만큼도 찾아볼 수 없는 녀석들이었지 정말.

나는 앞으로 한 걸음 내딛으면서 딴에는 아주 진지하게 말을 걸었지.

“야아 꼬마들. 이제는 그만해. 무슨 이유가 있는지는 몰라도 이렇게 저녁때 남의 가게를 뒤집어 놓는건 새나라의 어린이가 할 일이 아니잖니?”

마치 유치원 보모가 우는 애들을 달래려는 듯이 보였지만 별 효과가 없었나봐. 걔들은 내 말에 코웃음을 치고는 하던 짓을 전혀 멈추지 않고 계속했고, 그 정원이라는 애만이 고개를 돌리고 내 쪽을 보더니만 다시 송씨 아줌마에게 비웃는 말투로 이러더군.

“그동안 형편이 좋아지신 모양이군요 숙모님. 저런 참한 점원까지 두시고.”

“그건 그게 아니고......”

“닥쳐요! 아니던 맞던 그건 내게 아무 상관 없어요! 헤이 아가씨, 지금 기분도 안 좋은데 일단 당신부터 손봐 줘야겠군. 숙모님과는 나중에 천천히 얘기하죠. 거기 꼼짝 말고 있어!!!”

그 맹랑한 녀석이 칼날을 빼들고 내게 달려들길래 나는 순간적으로 겁이 났지만 이대로 물러섰다가는 아줌마가 위험하고 내 체면도 말이 아니니까 일단 앞으로 돌진하면서 녀석의 눈치를 살피고 있었지.

솔직히 이제는 어쩌지 싶었는데 이상한 일이 일어났어. 내 몸이 머리보다도 훨씬 빨리 녀석의 수에 반응하는 거야. 내 기특한 몸은 녀석의 찌르기를 잽싸게 피하고는 순식간에 뒤로 돌아가서 한쪽 팔로는 녀석의 목을 조르고 또 한쪽 팔로는 칼을 든 손을 뒤로 꺾어 움직이지 못하게 만들어버렸지. 아무래도 기억을 잃기 전에는 나도 한 가닥 했었나봐.

나는 속으로는 놀랐지만 애써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을 지어 보이면서 녀석의 목을 간지럽히며 (...) 일부러 따뜻하게 말해 주었지.

“귀여운 얼굴에 이런 시퍼런 칼은 어울리지 않아. 히죽♥”

“그, 거, 우기기겍... 구거걱...”

녀석은 굉장히 놀란 얼굴이었지. 아마 싸움에는 자신 있다고 자부하고 있었는데 어디서 왔는지도 모르는 여자에게 이렇게 당하고 나니 말도 잘 안 나오는 모양이더라구. 나는 옆에 흩어져 있던 수도관 보수용 테이프를 집어들어 녀석의 손발과 입과 두 눈을 예쁘게 포장해서 (...) 카운터 아래에 사뿐히 던져놓았지. 이제 이녀석이 자기 숙모와 얘기를 하려면 좀 오래 기다려야 할 걸.

“야 이자슥들아! 뭘 멀거니 보고만 있어! 대장을 구해야 할 거 아냐!”

역시 놀라고 있던 나머지 열 여섯 꼬마들이 그제서야 정신을 차리고 내 주변으로 몰려들기 시작했지. 저마다 쇠파이프나 각목이나 화장실 고장났을 때 쓰는 흡입기같은 것들을 가득 들고는 살기등등한 눈빛으로 공격할 기회만 노리는 거야 글쎄.

이거야 원, 백설공주에게도 일곱난장이 뿐이었는데 나에겐 왜 이렇게 많이 몰려오는 거야?

......물론 농담할 상황이 아니라는 거 알아.




“농담할 상황이 아닙니다. 회장님. 이건 너무 위험합니다.”

“언제부터 자네가 위험을 두려워하게 되었나, 발도제?”

“제게 닥치는 위험이라면 두려워하지 않습니다만, 이건 혹시 역효과만 내는 것은 아닐까요?”

“나는 그렇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네. 그녀는 우리 생각 이상으로 대단한 능력을 지니고 있어. 평소때라면 그걸 억제하겠지만. 자기의 정체를 전혀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라면, 과연 그러려고 할까?”

“회장님은...... 벌써 거기까지 생각하고 계셨던 겁니까?”

“나는 무턱대고 아무데나 투자하는 사람이 아닐세.”




나는 열심히 녀석들이 던지고 휘두르고 갈기는 것들을 맞받아치느라 죽을 지경이었어. 아무리 몸이 재빠르고 싸우는 데 재주가 있어도 이렇게 수가 많아서야 일일이 상대하기가 쉽지 않은 건 당연하잖아? 기껏해야 한 대 안 맞고 두 대 더 때리는 것이 고작이었지. 아아 이렇게 가다가는 끝이 없겠어.

게다가 그때 카운터 뒤편에 숨어서 이 난투극을 걱정스런 눈으로 지켜보는 송씨 아줌마의 모습이 어쩐지 측은해 보이더군. 아무래도 자기 조카 때문에 경찰에 쉽게 연락할 수도 없는 처지인 모양이야. 에잇 야속해라.

결국 나는 야비한 사람이 되기로 결심하고 정원이라는 애를 집어들었지.

아까 그애가 떨어뜨린 나이프를 내딴에는 우아하게 샤르륵 집어든 다음 그애의 희디흰 목살에 칼날을 갖다대었어. 아까 눈까지 테이프로 봉해진 탓에 그애는 도대체 뭐가 어떻게 되어가고 있는지 모르는 눈치더군. 그걸 생각하니 나는 좀더 유쾌해졌지. 어떠냐 얘들아, 이 누나는 적어도 한 가지는 맘대로 할 수 있단 말이다아.

“더 이상 행패를 부리면 너희들의 대장을 두근 반 고깃덩이로 만들겠어!!!”

그런데 그 중에서 제법 똑똑해 보이는 색안경낀 아이가 받아치더군.

“저울로 달면 두근 반보다는 더 나올텐데!!!”

아, 실수다.

“......하, 하여간에 조금만 움직이면 얘 멱을 딸테니 알아서들 해!!!”

나는 이렇게 말하면서 칼날을 좀더 가까이 정원의 목에 갖다댔지.

“아냐, 그렇게 못할걸. 보아하니 아가씬 미소년을 좋아하는 것 같던데.”

아까 내가 내뱉은 그 한마디로 내 취향을 추측해내다니. 놀라운 녀석이네.

“음... 미소년은 살아있을때만 가치가 있는건 아니야.♥”

나는 그로부터 몇 분 동안 눈싸움을 좀 해야만 했지.

그애들은 한동안 내 불타는 눈빛을 들여다보고는 내가 농담을 하고 있지 않다는 결론을 내렸는지 순순히 가지고 있던 물건들을 땅바닥에 철퍼덕 내려놓고는 뒤로 슬금슬금 물러서더라구. 나는 그제서야 속으로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면서도 겉으로는 여전히 긴장을 풀지 않고 칼날을 서서히 집어넣으려 했지.

그때 한 통통한 녀석이 어설프게도 자기 속주머니 안에 손을 쑥 집어넣더니 잘 손질된 모형총을 하나 싹 꺼내어 발사하려 드는 게 아니겠어? 내 머리가 미처 생각을 정리하기도 전에 내 한쪽 손은 재빠르게 움직여서 바닥에 떨어져 있던 테니스공으로 녀석의 손을 맞히는 데 성공했지.

“내 사랑의 피칭♥을 맛보고 싶은 사람 또 있니-----?”

그 뒤로는 아무도 허튼 수작을 하려고 들지 않더라구.



나는 녀석들을 계속 노려보면서 바닥에 떨어진 흉기들을 다시 쓰지 못하게 한데 모아두었지. 숨어 있던 아줌마도 더 이상 위험하지 않다는 것을 알고는 나와서 나를 도와주었어.

그때 바깥쪽에서 사이렌 소리가 들리더군. 아줌마는 전화통에 손도 대지 않았지만 아무튼 경찰이 뭔가 이상이 있다는걸 알고 달려오는 모양이야. 아무래도 꼬마들이 뭔가를 잘못 망가뜨려서 경보기가 울렸거나 아니면 이웃의 누군가가 신고한 것이겠지 뭐.

녀석들은 그 자리에 서서 겁먹은 얼굴로 떨고 있었어. 너무 진이 빠진 나머지 도망칠 배짱마저도 잃은 모양인데. 저런 녀석들이 뭘 믿고 불량배질을 해 온건지 정말 한심하더군. 그때 내게는 이대로 녀석들을 경찰에 넘겨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지. 왜 그런지는 설명할 수가 없지만 말야.

“자 너희들, 도망칠 기운조차 없다면 이쪽으로 와! 이 창고 안에 숨어서 죽은 쥐처럼 꼼짝 말고 있으란 말야!!!”

그애들은 놀라면서도 결국은 내 말대로 창고 안에 들어가서 사방에 쌓여 있는 상자 뒤편으로 숨었지. 워낙 재고가 많고 창고가 넓다보니 열 일곱 명이 숨을 자리는 충분하더군. 아직도 꽁꽁 묶여서 상황을 전혀 파악 못하고 있던 정원이는 다른 패거리들이 짐짝 나르듯이 이고 달려들어갔지. 아마 경찰들이 자기를 잡아간다고 생각한건지 몸부림을 쳐 대더군. 어머 몸부림도 참 귀여워♥



한 5분쯤 뒤에 서너 명의 경찰관들이 달려와서 이것저것 조사를 하기 시작했고 나와 아줌마는 한떼거리의 불량배들이 달려들어와서 행패를 부리다가 경보기 소리를 듣고 달아났다고 시치미를 뗐지. 물론 걔네들의 오토바이는 이리저리 어지럽게 흩어져 있었지만 경찰관들은 별로 신경쓰지 않더라구. 오히려 경찰 생활 20년에 이렇게 제 물건도 안 챙기는 패거리들은 처음이라며 껄껄 웃는 아저씨도 있었더라니까. 창고에도 눈길을 주기는 했지만 거기까지는 미처 조사할 생각이 들지 않았던 모양이야.

경찰이 가고 난 뒤에 나는 아줌마에게 뭔가 물어보고 싶었지만, 아줌마는 가만히 고개만 떨어뜨리고 카운터에 앉아 울고 있었어. 그 모습을 떫은 얼굴로 바라보던 나는 더 이상 말하지 않고 창고로 들어가서 꼬마 녀석들을 데리고 나와서 가게를 치우게 했지.

모두가 순한 양처럼 말을 잘 들었던 건 아니었지만 하여간 큰 반항은 하지 않더군. 난 약 네 시간쯤 후에야 정리를 끝내고 녀석들과 녀석들의 오토바이를 싸악 쓸어낸 다음 가게 문을 닫을 수 있었지. 아줌마는 피로한 얼굴로 살림방에 들어가서 드러누워 버렸고. 나는 일부러 따라 들어가지 않고 밖으로 나와서 하늘의 별만 바라보고 있었어.

이상한 느낌이야... 마치 내가 이 곳 사람이 아닌 것 같은... 그래서 뭔가 도와주고 싶어도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는 게 아닌가 하는... 그런 느낌...




“지금쯤 그애도 저 하늘의 별을 보고 있을까요, 미나선배?”

“글쎄다. 운좋게 숨을 쉬고 있다면야 왜 안 그렇겠어.”

“선배는 너무 비관적이라서 탈이에요.”

“선림이 너도 나만큼 나이를 먹어봐라. 그렇게 안 되나.”

“그나저나 이 고양이를 언제까지 제가 책임져야 하는 거예요? 먹기는 돼지처럼 먹고 잠자기는 개처럼 자는데 도무지 귀염성이라고는 없어서...”

“그럼 이 나이에 내가 하리?”

“못들은 걸로 해 주세요. ... 그나저나, 정말로 살아있다면 왜 아직도 소식이 없을까요?”

“누가 알아. 어디서 미소년이라도 헌팅하고 있을지.”




“어떻게 우리가 이곳에 있는 걸 알았죠?”

“나의 추적을 벗어난 미소년은 이제까지 없었거든.♥”

“......”

나는 별로 잠이 오지 않길래 가게 안으로 들어가는 대신 정원군의 패거리들을 찾아 보기로 했어. 길도 잘 모르는 낯선 동네를 이리저리 헤매다 보니까 운좋게 그애들이 모여 있는 강둑으로 오게 되었지.

그나저나 이 동네는 왜 이렇게 길이 복잡한지, 치매동이라는 이름하고 정말 잘 어울려. 이런 곳을 빙빙 돌다 보면 자기가 치매 아닌가 하고 의심하게 되지 않을 사람이 세상에 어디 있겠냐구?

뭐어, 지도를 가지고 다니면 된다고? 그건 너희들이 이곳의 복잡한 길목들을 와 보지 못해서 하는 소리야!

정원의 패거리들은 주변 풀밭에 바이크들을 아무렇게나 세워 두고 강둑 위에 누워서 밤 하늘의 별들을 생기없는 눈초리로 바라보고 있었어. 갈 곳도 잘 데도 없었던 것인지 그애들의 얼굴은 하나같이 풀이 죽어서 쓸쓸해 보이더군. 정원은 다른 아이들과 약간 떨어진 곳에 걸터앉아서 뭔가를 곰곰이 생각하고 있었지.

“어떻게 하면 그렇게 잘 싸울 수 있죠?”

“아주 쉬워. 노력하면 돼.”

“......”

내 말주변이 별로 좋지 못한 탓인지, 정원은 몇 마디를 나누다가 잠시동안 입을 굳게 다물어 버리더군.

그러나 내가 일어서서 가려고 하니까 정원은 내 쪽을 바라다 보며 말렸지.

“...잠시동안만, 잠시동안만이라도 좋으니까 같이 있어주면 안돼요?”

“............”

그래서 우린 몇 시간동안 함께 앉아 하늘을 같이 바라보았어. 밤 하늘을 가르며 떨어지는 유성의 비가 정말 아름다웠지. 가게 옆에 사는 발명가 아저씨에게 망원경이라는 물건이 있다고 했는데 그걸 좀 빌려왔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싶더라구.

그때, 한동안 말이 없던 정원군이 그대로 앞을 바라보며 말을 시작했지.

“가난했지만 단란하게 살아가던 한 가정이 있었어요. 그러나 불의의 사고로 그 집안의 부모님은 세상을 떠나고, 남은 어린 남매를 아무도 돌보아 주지 않으려고 했죠. 심지어는 그들의 단 하나뿐인 친척인 숙모마저도요. 남매는 누구에게도 해를 끼치지 않고 열심히 살려고 노력했어요. 하지만 그러던 중에, 누나가 중한 병에 걸렸죠. 동생은 천금같은 누나를 살리려고 백방으로 알아보고 다녔지만 아무런 도움도 얻을 수 없었어요. 마지막으로 장사를 하는 숙모에게라도 도움을 청하려고 했지만, 매정한 숙모는 자기도 먹고 살기 힘들다면서 동생을 한겨울 길거리로 내쫓아 버렸어요. 그러는 동안에, 누나는 아무도 지켜보는 이 없는 쓸쓸한 골방에서 떨고 있어야만 했어요. 그러나 동생의 극진한 간호 덕분에 어느 정도 차도가 보이기는 했죠. 남매는 이제 살았구나 싶었어요.”

이야기를 계속하던 정원의 눈에 눈물이 고이기 시작했어.

“마땅한 집이 없었던 남매는 버려진 옛 상점가에 있는 낡은 건물에서 살고 있었죠. 도와줄 이웃도 아무것도 없는 황량한 곳이었어요. 숙모의 도움을 받아서 집을 옮겨보려 했지만 숙모는 그들의 말을 채 들어주지도 않았어요. 그런데 어느 날, 동생이 돈을 벌려고 나간 사이에......”

바로 그 즈음에 정원의 두 주먹에 힘이 들어가더군.

“......도시에 커다란 괴수가 나타났고, 괴수를 잡으려고 애쓰던, 그 뭐였더라.... 하여간에 렛츠인가 뭔가 하는 기관 사람들은 가장 인명피해가 적으리라고 예상되는 지역으로 그 괴수를 몰아넣었고, 그 곳이 바로 그 남매가 살던 곳이었어요. 남매가 꿈을 키우며 정답게 살던 그 무허가 건물은... 괴수의 발 아래에서 처참하게 무너졌고, 소식을 듣고 급히 달려온 동생은 누나를 구하려고 했지만, 경찰관들에게 붙잡혀 밖으로 밀려났어요. 결국 동생이 바라보는 눈 앞에서... 누나는 비명 한 번 지르지도 못한 채... 거기에서......”

그 애는 두 무릎 사이에 얼굴을 파묻고 부들부들 떨고 있었지.

나는 아무 말도 해 주지 못했지만, 그제서야 비로소 그 이야기가 누구의 이야기인지를 깨달았어. 나는 정원군의 어깨를 말없이 감싸안았고 그애는 눈물범벅이 되어 내게 매달려서는 계속 얘기를 쏟아냈어.

“그 이후 동생은 삶의 의미를 잃고 거리를 방황하며 힘자랑을 해 대는 한심한 놈이 되어 버렸고, 숙모는 참회를 한답시고 어려운 이들을 대가 없이 도와주기 시작했어요... 하지만 그건 위선이에요... 정작 필요할 때는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하고서는... 이제 와서 그런다고 뭐가 달라지죠! 이제는... 이제는... 두 번 다시 누나를 볼 수 없어요...! 으어어어어엉~~~”

나는 내 상의가 정원의 눈물 콧물로 더럽혀지는 것도 모르고 그애를 더욱 힘껏 안아주었어. 왠지 몰라도, 나도 갑자기 눈물이 날 것만 같았거든.

......사실은 다른 속셈이 있었던 거 아니냐고 하는 사람이 누구야?




“저희들의 사부님이 되어주세요!!!”

며칠 후 가게 정리를 끝내고 나와서 우아하게 밤바람을 쐬던 내게 다가온 정원의 패거리들은 이런 황당하고 말도 안되며 밑도끝도없는 얘기를 다짜고짜 하더라는 거야. 내 싸움 실력이 그애들에게 너무나 멋있게 보여서라나. 음 그건 사실이긴 하지만 갑자기 이렇게 찾아와서는 무슨 부탁을 저리도 멋대가리없게 한단 말이니 글쎄. 게다가 나에게는 더욱 심각한 어려움이 있었는데, 그게 뭐냐면......

“사부? 그거 먹는거니?”

“............”

몇분동안 그애들과 대화를 하고 나서야 사부란 것이 다른 사람을 가르쳐 주고 이끌어 주는 훌륭한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라는 것을 이해할 수 있었어. 아무래도 머리를 다칠 때 기억만 잃은 것이 아닌 모양이야.

“저희들은 이제까지 아무 목표도 없이 제멋대로만 살아왔어요. 하지만 누나가 이끌어 주신다면 뭔가 멋진 일을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이렇게 부탁드리러 온 거죠. 제발 저희의 소원을 들어주세요, 네?”

그래그래, 정원군 너 참 말 잘한다. 미소년은 자고로 저렇게 사람을 알아볼 줄 알아야 하는 법.

사실 언제까지나 송씨아줌마 신세만 지고 살 수도 없었고, 뭔가 더 재미있는 일에 뛰어드는 편이 기억을 찾는 데 도움이 될 것 같기도 해서, 나는 그애들의 제의를 받아들이기로 했지.

......그러나 물론 우.아.하.게.♥




“하라선배, 오늘 조간 보셨어요?”

“신문 보는거야 피요양 전문이잖아. 뭐 재미있는 기사라도 있어?”

“최근 며칠 사이에 정체불명의 십대 폭주족들이 창궐하고 있대요.”

“폭주족이야 옛날부터 흔하게 있었던 거잖아?”

“그 폭주족들의 행태가 문제죠. 이들은 여타 패거리들과는 달리, 세간의 주목을 받을 만한 장소들만 휩쓸고 지나간대요. 마치 정의의 사도라도 된양.”

“어떤 장소.”

“여기 사건 일지를 보세요. 처음 나타난 곳이 의원들이 패싸움 벌이던 국회의사당, 그 다음은 비리혐의로 걸릴 것 같으니까 외국으로 달아났다가 얼마 전에 돌아온 전직 장관의 저택, 그 다음은 사기세일로 망신살이 뻗친 대형 백화점, 또 그 다음은 학교의 문제점을 교육청에 고발했다는 이유로 한 학생을 제적처분한 모 고교 교장실, 그리고 또......”

“동기야 어떻든 간에 특이하긴 특이하네?”

“그렇죠?”

“그런데 그런다고 뭐가 달라질까? 깡패들이 그런 짓을 저지른 자들을 찾아가서 혼내줘 봐야 얼마나 정신 차리겠어? 오히려 자기들이 피해자라고 악악거릴걸.”

“그렇기는 하지만... 저는 솔직히 통쾌하다는 느낌인데요. 선배는 안 그래요?”

“사실은...... 나도 그래.”




“대체 어떤 녀석들이길래 이렇게 간이 클까? 거기에다 18명이나 한꺼번에 몰려다니면서 전혀 붙잡히지도 않다니 황당하지 않아?”

“무슨 얘긴데 그래?”

“아, 대장님. 요즘 한창 화제가 되고 그 폭주족 있잖습니까. 왜 그 ‘18사도’라는... 대장님도 소식은 들으셨죠?”

“듣긴 들었지만 거짓말 같던걸. 울긋불긋한 얼굴 페인팅에다 정신나간 듯한 바이크 개조법에다... 사회에 불만이 많은 녀석들이 우리들 말고도 또 있었나봐.”

“우두머리는 가죽 허리띠를 미친 듯이 휘두르는 젊은 여인네라던데, 대체 정체가 뭔지 궁금하던데요.”

“대장님, 유태씨, 여기 이 사진 보셨어요?”

“봤지만 너무 작아서 얼굴을 알아볼 수가 없던데.”

“그래도 어쩐지... 어디선가 많이 본 듯한 얼굴같지 않아요?”

“저언~혀 모르겠어.”

“이상하다. 대체 어디서 봤더라......?”

“그건 그렇고, 대장님.”

“왜 그러나, 유태군.”

“언제나 드리는 말씀이지만, 제 이름은 유트입니다.”

“......그게 그렇게도 중요했나?”




“오늘도 멋진 하루였지, 얘들아?♥”

“두말하면 잔소리죠!!!”

여기는 정원과 그의 패거리들이 예전부터 은신처로 써 오던 낡은 폐건물이야. 공교롭게도 그곳은 내가 정신을 잃고 발견된 건물더미 바로 근처에 있더라구. 옛날에 정원과 그 누나가 함께 오손도손 살던 곳도 이런 곳과 분위기가 꽤 비슷했다고 그래. 하긴 경제난 때문에 건축업체들이 마구 죽어나는 판이니 낡은 건물을 수선하고 철거하는 일이 그렇게 활발하지가 못하고, 그러다 보니 이런 버려진 건물들도 많이 생겼다지?

아무튼 이러다가 앙끄시가 온통 주인없는 건물로 덮이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 그 괴수라는 놈들 에게 무너진 채로 남겨진 건물까지 합치면 그 수가 아마 장난 아닐걸.

......관계없는 얘길 너무 길게 하지 말라구? ;;;;;;

“오늘은 이만 하고, 내일을 위해서 쉬어 두자구. 내게 배울 게 남은 사람은 날 따라서 뒷마당으로 왓~~~!!!”

“알았사옵니다!”

처음에 얘네들의 사부가 되겠다고 했을 때에는 솔직히 뭘 할지 좀 막막했지만, 같이 다니면서 서로에게 부족한 것을 가르치고 배우다 보니 가닥이 잡히더라. 나는 걔네들에게 싸우는 법을 가르쳐주고 걔네들은 내게 오토바이 타는 법을 가르쳐줬지. 정말 재미있었어.

얘들은 더 이상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을 등쳐먹는 짓은 안 해. 내가 못하게 했으니까. 열심히 오토바이 연습을 해서 언젠가는 전국 모터 레이스에 앙끄시 대표로 단체출전할 계획도 세워두고 있어. 낮 동안에는 땀흘려 아르바이트를 하는 한편 밤에는 오토바이를 타고 인적 없는 대로에서 긴장을 풀거나 내게서 배운 무술로 이전의 자기들처럼 못된 짓을 하는 녀석들을 혼내주는 게 일이었지.

하지만 그렇게 지내다 보니까 보람은 있는데 뭔가 허전한 느낌이 들더라고 걔네들이 말해 왔지. 정말로 세상에 도움될만한 일을 하려면 아직도 몇 년이나 더 노력하며 기다려야 되는 건 알지만, 지금 당장이라도 할 수 있는 것은 없을까 하고.

그러나 내가 뭔가 이상하다고 느끼고는 약간 더 캐어 물으니까 결국 정원군은 기어들어가는 소리로 대답하더군. 아직까지 자기들은 그 불량배 시절의 스릴을 완전히 잊지 못하고 있어서, 그냥 건전하게만 살려니까 미칠 것 같다나 뭐라나. 아아 역시 내 눈썰미는 칼이야♥

......뭐, 자아도취? 그게 무슨 의미야?

그래서 결국 나는 어떡하면 건전함을 지켜나가면서도 그러한 스릴을 돈 안 들이고 되살릴 수 있을까 하는 것을 이 좋은 머리를 굴려 가며 며칠 동안 연구한 끝에 해답을 얻었지.

그게 어떤 방법인지는 자세히 말하지 않는 게 좋겠어. 너희들이 경찰에 불어 버리면 그걸로 꽝이니까. 그치?♥




“비상경보! 정원괴수(精猿怪獸) 스나이피우스 출현! PETS 전원은 즉각 치매동 교외로 출격하도록!”

“3주 전에도 비슷한 지역에서 소란을 피웠던 녀석이죠?”

“하라군의 말대로다. 그때는 운이 나빠서 놓쳤지만, 이번에야말로 확실히 본때를 보여주도록 하자! 이의 있나?”

“없습니다!”

“그럼 출동!”

“잠깐만 유성군, ‘그 거인’이 이번에는 나타나리라고 보나?”

“저로서는 예측하기 어렵습니다, 장관님. 우리에게는 미지의 존재니까요.”

“지난번 사건 때는 왠지 몰라도 나타나지 않아서 우리가 애를 먹었는데, 이번에는 어떨지 궁금하군.”

“장관님. 우리는 외부의 도움을 바랄 만큼 약하지 않습니다. 저번에만 그 거인이 나타나지 않은 건 아니었잖습니까. 그래도 우리들은 이제까지 그럭저럭 잘 해 왔습니다.”

“알고 있네. 알고 있어. 다만 뭔가가 좀 아쉬울 뿐이라서.”

“출렁거리는 그 무언가가 말입니까? (;^_^)”

“...자네 출동 안할건가? (;-_-)”




“뭐야? 괴수가 하필 이쪽으로 온다고?”

“틀림없이 방금 뉴스속보에 나왔어, 대장. 이대로 가다가는 약 3분 후에 이쪽 무인지대로 달려 들어올 거래. 어떻게 할래?”

“큰일났다. 너는 빨리 사부님에게 알려! 너는 어서 다른 아이들에게 짐을 챙기게 해서 이쪽 공터에 모이도록 하고! 아냐 잠깐, 나하고 같이 가는 편이 빠르겠다! 어서 서두르자!!!”

정원군의 참모(사실은 러버♥)라는 소문이 자자한 색안경의 윤석군에게는 저녁 때마다 혼자 가지고 다니는 고물 액정TV를 시청하는 것이 살아가는 낙이었다는데, 그것이 우리에게도 도움이 될 줄은 미처 생각지 못했지. 우리에게 괴수가 나타났다는 뉴스를 제일 먼저 전해준 것도 그애였거든.

우리들은 그 소식을 듣자마자 하던 일을 휘리릭 내던지고 부엌 아궁이에 데인 백한마리의 점박이 강아지떼마냥 정신없이 이리저리 돌아다니면서 은신처를 정리하고 필요한 물건만 간단히 챙겨서 오토바이에 실어야 했어. 얼큰한 컵라면 하나 끓여먹을 때는 정말 길게 느껴지던 그 3분이라는 시간도 이럴 때는 너무하다싶을 정도로 짧더군. 왜 하필 그 지랄맞은 괴수님은 이리로만 몰려오셔서 사람을 고생시키시는지 몰라.

......작가를 잘못 만난 탓이라고? 사실은 나도 그렇게 생각해.

열심히 가방을 챙기고 있으려니까 바깥에서 별별 괴상한 소리들이 우우 하고 한꺼번에 몰려들어서 정신이 없을 지경이었어. 뭐가 와르르 무너지는 소리, 두드드드 하는 총쏘는 소리, 찌리리리리 하는 전기 통하는 소리, 끼르르르르 하는 이상야릇한 울음소리, 휘이이이잉 하는 비행기 소리, 쿵쾅쿵쾅쿵콰당 하는 요란하기 짝이 없는 발자욱 소리까지, 정말 어지간한 사람도 들으면 겁먹겠더라구. 게다가 뒷걸음질치던 괴수가 한 번 몸통박치기까지 해서 건물이 흔들흔들거리니 이거 정신 차릴 겨를이 어디 있기나 하겠어?

우리는 짐도 다 챙기지 못한 채 옆에 있던 것들만 대충 짊어지고는 숨어있던 건물에서 겁에 질린 얼굴로 뛰쳐나왔지. 내 얼굴이야 거울이란 물건이 없어서 모르겠지만 옆에서 손을 잡고 달려가는 다른 아이들 얼굴을 보니 거울이 필요할 것 같지도 않더라구. 이제 죽었구나 하는 심정은 다 마찬가지였으니 말야.

우리는 어떻게 나왔는지도 모르게 그 낡아빠진 건물에서 기어나와서 앞쪽 돌계단에 기대어 두었던 오토바이를 차례로 일으켜 세우고는 시동을 걸려고 했어. 이때까지는 별 문제 없었는데 결국은 여기서 좀 귀찮은 문제가 생기고야 말았지.

우리가 출발하려고 할 때 방금 전까지 우리가 있었던 다 무너져가는 건물 3층 쪽에서 뭔가 큰 소리가 들리지 않겠어?

“어이 이봐!!! 날 두고 가지 마!!!”

“맙소사, 잠꾸러기 상원이 아냐! 어쩐지 저 낮잠왕이 오늘은 재빠르다 싶었더니......”

“거기서 뭘 해? 어서 내려와! 꾸물거릴 시간 없어!!!”

“그게 말.... 문... 열리지 않......!!!”

이제는 괴수가 거의 우리들 건물에서 엎어지면 코 닿을 곳까지 와 있어서, 조금만 잘못 움직여도 흙먼지에 파묻히거나 파편에 맞기 십상이었지. 그런데 상원군은 여전히 그 위에서 내려오려 하지를 않았어. 주변이 너무 시끄러워서 외치는 소리가 잘 안 들렸지만 그애가 하는 말로는 워낙 낡은 건물이라 문이 빡빡해서 잘 열리지가 않더라는 거야. 어쩌면 아까의 진동 때문에 지붕 일부가 내려앉아서 문을 막고 있는걸지도 모르지. 무허가 건물이 다 그런 거 아니겠어. (-_-)

나는 마침 건물 바깥에 소화기와 함께 걸려 있던 도끼를 스윽 집어들고는, 당황한 얼굴로 옆에서 시동을 걸다 말고 상원군 쪽을 바라보고 있던 정원군들에게 냅다 소리질렀지.

“뭣들하고 있어!!! 저 뒤편까지 괴물이 왔는데 이러고만 있을거야? 이럴 때일수록 빨리빨리 움직여야 살잖아! 일단 너희들은 안전한 곳으로 피하도록 해! 내가 올라가서 어떻게 해 볼 테니까! 어서!!!”

“하지만 어떻게 사부님만......!!!”

“도망쳐서 살래, 여기서 나한테 죽을래?”

참 내가 생각해도 대단한 대사였어. 그런데 이상한 것은 꼭 예전에 어디선가 이 말을 누군가 다른 사람한테서 들은 것 같다는 느낌이 들더라는 거야. 하여간에 내 살기등등한 얼굴을 아주 짧은 시간동안 바라보던 정원군은 모자를 푹 눌러쓰고 오토바이에 오르더니 내키지 않는 목소리로 명령을 내렸지.

“......전원, 출발!”

나는 몇초동안 그애들이 부다다다 달려가는 걸 지켜보다가 방향을 돌려서 재빨리 건물 안으로 뛰어들어갔어. 한 손에는 소방용 도끼, 한 손에는 아까 오토바이를 고치라고 정원군이 빌려준 꽤 묵직한 스패너를 들고서 말이지. 이게 아직까지 내 손에 남아있었던 게 그나마 다행일까나.

나는 심하게 낡아서 삐걱거리는 나무계단을 황급히 뛰어 올라가서 상원군이 갇혀 있는 방으로 달려갔지. 가 보니까 뭐가 문제인지 금방 알 수 있었어. 아까 괴수가 부딪힐 때 충격으로 그러잖아도 약하던 방문이 으스러져서 문틀에 꽉 끼어버렸던 거야. 게다가 원래는 위로 젖혀져 있던 빗장까지 제풀에 걸려 버리는 바람에 아주 완벽한 밀실이 되어버렸지.

뭐어, 밀실에 갇힌 미소년을 생각하며 우후후♥거리지 않았느냐고?

유감이지만 상원군은 말이지, 일전에 내게 BB탄을 쏘려다 테니스공에 맞은 그 통통한 우량아란다. 차라리 정원군이 갇혔으면 더 재미있을 뻔... 아니, 내가 무슨 소릴?

하여간에 나는 미친 듯이 스패너로 빗장을 비틀어 뜯은 다음에 문 안쪽을 향해 소리질렀지.

“다치지 않게 뒤로 물러서!!! 이제부터 문을 부술테니까!!!”

잠깐동안 사이를 둔 다음 나는 도끼로 문을 빠개기 시작했어. 송씨아줌마네 책장에 꽂혀 있던 옛날 소설책에 ‘장작을 팬다’라는 표현이 있던데 이게 바로 그런 것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절실하더라구. 그러는 동안에도 바깥에서는 별별 요란한 소리가 다 들리고 건물은 더욱 심하게 흔들리고 있었지. 수차례 도끼를 휘둘러 댄 끝에서야 나는 겨우 문에 사람 하나 들어갈 만큼의 구멍을 낼 수 있었어. 평소 때에는 상상도 못하던 힘이 솟구치는 걸 깨닫고 내 자신이 무서워지더라니까 글쎄.

“사, 사부니임!!”

흙투성이에 지저분한 꼴을 한 상원군이 싸다 만 배낭을 거의 둘러메다시피 하고는 구멍을 빠져나와서 내 팔에 매달렸어. 나는 그애의 손을 무슨 보물이라도 되는 것마냥 꽉 쥐고 계단을 따라 내려가서 건물을 나서려고 했지. 아직은 괴수도 이 건물까지는 손을 뻗치지 못한 것 같지만, 언제 제풀에 무너질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상태가 심각했거든. 게다가 바깥에서는 뭐가 계속해서 와르르 무너지는 소리가 장난이 아니게 들려오니까 무섭기도 하고 말이지.

그래서 우리는 가까스로 출입구가 보이는 1층 로비까지 무사히 내려왔고, 어두컴컴한 복도를 지나 모래먼지 사이로 환한 빛이 비치는 출입구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지. 나는 걸음이 훨씬 빠른 상원군을 앞세워 달리게 하고 그 뒤를 따라가는 중이었을거야 아마.

그런데......

“앗, 사부님! 조심하세요! 천정이!!!”

뭔가 엄청나게 무거운 것이 내 위로 떨어지는 듯한 느낌이 들어서 멈칫하는 순간, 요란한 소리와 함께 묵직한 덩어리가 내 몸을 덮쳐왔고 나는 그 자리에 쓰러지고 말았어. 천정을 받치고 있던 들보 하나가 충격으로 무너지면서 내 위에 정통으로 떨어진 것 같더군. 다행히 상원군은 무사했지만 나는 몹시 꼴사나운 모습으로 들보에 깔린 채 꼼짝달싹 못하는 꼴이 되고 말았어. 달려가던 상원군은 다시 돌아와서 나를 꺼내려고 했지만 들보가 워낙 무거워서 윗몸만 겨우 끌어낼락말락 했지. 온몸이 장난 아니게 쑤셔 왔어.

그때 내 귀에 심상치 않은 소리가 들려오는 걸 느끼고는, 나는 있는 힘을 다해서 상원군을 뒤로 밀어냈지. 자잘한 파편이 내 머리 위로 우수수 쏟아진 것은 바로 그 다음의 일이었어. 나는 탁한 공기 때문에 목이 잠겨서 말이 잘 안 나왔지만, 겨우겨우 기어들어가는 소리로 달아나라고 외칠 수 있었지.

“어서 달아... 문 앞... 내 바이크가 있... 전속력으로 밟으... 친구들... 에게...”

상원군은 그래도 안 가겠다고 고집을 부리다가 자기 쪽으로도 벽돌과 콘크리트 조각이 비처럼 쏟아지는 걸 알고는 결국 발길을 돌려서 출입구 쪽으로 달려갔지. 어두워서 잘 알 수는 없었지만 상원군, 울고 있었나 봐.

... 뭐야, 남자답지 못하게시리.



들리는 소리로 봐서 괴수는 계속 바깥에서 난동을 부리고 있는 모양이야. 하지만 지금은 몸이 너무 아파서 그런 것 따위에는 전혀 신경을 쓸 수가 없어. 속으로는 온갖 무서운 생각이 다 들고, 누가 날 좀 구해 달라고 큰 소리로 목이 터져라 외치고 싶었지만, 아무 말도 나오지가 않았어.

들보에 깔린 다리는 점점 감각이 없어지고, 그나마 빠져나와 있는 팔과 윗몸도 파편에 찔리고 스쳐서 쓰라려 죽겠는 거야. 이제 나는 죽게 될까? 아무도 돌봐주지 않는 이런 곳에서? 결국 내가 누구고 어떤 일을 하던 사람이었는지도 알아내지 못한 채로?

나는 무서웠어. 죽는 것도 무서웠지만, 내가 죽은 후에 과연 누가 날 알아줄까, 누가 날 기억해 줄까, 그런 것은 물론이고, 내가 누군지도 모른 채 아무런 보람없이 죽어버리면 얼마나 허무할까 하는 것도 무서웠어.

암굴에 갇혀 버린 비극의 여주인공이 어쩌고저쩌고 하는 건 모두 책을 팔아먹기 위한 시시껄렁한 헛소리야. 진짜로 남아있는 건 쿡쿡 쑤셔오는 온몸의 상처하고 어딘가 뼈가 부러진 듯한 어색한 느낌, 그리고 입 속으로 쉴새없이 기어들어오는 메마른 콘크리트 가루들 뿐이야!

그래서 말인데,




사.람.살.려.어!!!!!!!!!!!!!!!!!!!!!!!!!!!!!!!!!!!!!!!!!!!!!!!!!!








“대장님, 방금 관할 경찰에서 연락이 들어왔는데, 그 무인지대에 사실은 사람이 있었답니다. 비어있는 폐건물을 은신처로 사용하는 십대 폭주족들이라는데요.”

“지금 말해봐야 너무 늦었어. 벌써 저렇게 휘젓고 다녔는데 어쩌라는거지? 그들의 대피는 어떻게 되었나, 피요대원?”

“지금 죽어라고 안전지대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제는 누가 남아 있어도 어쩔 수 없어. 하라대원, 준비되었나?”

“예, 대기상태입니다. 언제라도 발사가능합니다.”

“좋아, 조준, 3-2-1, 엔드메이커 결정반응탄(結晶反應彈) 투하!!!”

“잠깐만 들어주십시오 대장님, 그곳에 아직 희미한 생명반응이......”

“반응탄은 이미 발사되었어. 행운을 빌어줄 수 밖에......”

“반응탄 투하 완료, 모두 광파 차단 안경을 써 주십시오!”




“저건 뭐죠? 저곳에 뭘 떨어뜨리려는 거예요?”

“괴물을 퇴치하려는 것이겠지. 몸에 해로우니 모두 뒤로 물러서서 눈을 가리도록 해!”

“이거 놔주세요. 나는 저곳에 다시 가 봐야 해요. 그분을 구해야 한다구요!!!”

“누구라도 저 안에서는 살아남을 수 없어. 잘못하다가는 너도 다쳐.”

“그래도 가야 해요!!!”

“정말 성가시군. 이봐, 누가 이 꼬마들 좀 저쪽으로 끌고 가 줘!”

“사부님! 사부님!”

“자자, 이쪽으로 와라. 이곳은 위험해.”

“뭔가가 번쩍 하는데요!”

“투하되었군! 모두 엎드려!!!”

“사, 사부님.......”

“정원아, 참아야 해. 갔다가는 너도 저렇게......”

“누.나.-----------------------------!!!!!!!!!!!!”






THE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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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EW  ENDING  :  NEXT  QUEEN ☆



고귀함과 우아함의 향기에 싸여

세상을 발 아래 굴복시킨 그대

하지만 두 뺨 위의 눈물은

무엇을 말하는 걸까요


당당함과 청순함의 광휘를 펼쳐

자유의 노래를 전하는 그대

하지만 그 입술의 떨림은

무엇을 구하는 걸까요


이겨내요 버텨내요 그대의 시련

아무도 함께할수 없는 시간을

다가가요 마주봐요 그대의 약점

지금이 아니면 할수없는 일들을


언젠가 모든 것이 끝나고 나면

사람들은 말하겠죠 그대의 영광

거짓과 악의가 세상 가득 채워도

사람들은 믿고 있어요

그대의 전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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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央久プロ․NOW․ウルトラハ製作委員會  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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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OW  IT  CONCLUDED  ◆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구? 지난 3주동안 어디서 뭘 했는지도?”

“네에......”

무휼박사는 (오랜만의 등장이다!) 두 손을 허리에 모으고 나름대로 심각한 표정을 지으면서 의무실 한구석을 빙빙 돌며 이 문제를 곰곰이 생각해 보고 있었다. 그 옆의 침대에는 만신창이가 되어 전신에 붕대를 감은 구급반의 애물단지 동거녀가 힘없는 얼굴로 천정을 바라보며 누워 있었다. 두 다리와 어깨, 그리고 머리까지 붕대로 칭칭 감은 그녀의 모습에서는, 가히 옛날 공포영화에나 나오는 이집트의 미라를 연상케 하는 고전적인 맛이 풍겨 나오고 있었다.

그녀의 멍청하기 짝이 없는, 해롱거리는 얼굴이 그 고전적인 맛을 완전히 코미디의 재료로 바꿔 버리고 말았다는 점이 문제이긴 했지만.

“아무리 생각해 봐도 해괴한 일이 아닐 수 없어. 3주 전에 그 괴수가 처음 나타났을 때 부상자 구조하러 나갔다가 실종된 사람이 3주가 지난 후에 다시 같은 괴수가 난동을 부린 장소에서 정신을 잃고 발견되다니 말이지. 게다가 본인은 그동안의 일에 대해서 아무런 기억이 없다고 하고.”

옆에서 거녀의 용태를 살펴보던 선림과 미나가 한 마디씩 한다.

“혹시 그때 괴수에게 당해서 어딘가에 파묻혀 있다가 이제야 발견된 거 아닐까요?”

“말도 안돼. 파묻힌 채로 살 수 있는 사람이 어디 있냐?”

“거녀양같이 둔한 체질이라면 혹시 동면(冬眠)이라도... (;^o^)

“하지만 그렇다면 왜 옷이 바뀌었지? 그때 입고 나간 제복은 어디로 가고 저런 촌티나는 옷을 입고 있대냐?”

“그건 그렇네요.”




정원은 며칠 전에 반응탄 폭격으로 초토화되어버린 치매동 근교의 버려진 주택가에 서 있었다. 그는 땅 위에 몸을 굽히고 가루가 되어 흩날리는 콘크리트를 한 줌 쥐었다. 그는 마치 그것이 죽은 누이의 뼛가루라도 되는양 슬픈 눈으로 하염없이 들여다보고 있었다.

이제 그는 더 이상 미소년이 아니었다. 부드럽게 물결치는 머릿결과 갸름한 얼굴은 그대로였지만, 그 얼굴에 붙어있는 커다란 눈망울은 이미 빛을 잃고 있었다. 젊은이의 타오르는 열정이 꺼진 자리에 커다란 허무감과 상실감이 들어차 있었다.

그는 이제 더 이상 자기가 어디로 가야 할지를 몰랐다.

정원은 다가오는 발소리를 듣고는 일어섰다. 그곳에는 검은 파카의 사나이가 서 있었다. 정원은 가루를 훅 불어 날려버렸다.

“얘기는 들었다. 상심이 크겠지.”

“당신이 상관할 일이 아니라고 했잖습니까.”

“그 여자는 내 환자이기도 했다. 환자를 맡은 뒤에는 끝까지 책임을 지는 것이 의사의 도리야.”

“여전히 말은 잘 하시는군요.”

“이제는 어쩔텐가?”

“모르겠어요. 이제 나는 누나를 두 번이나 죽인 못난 놈이 되었어요. 가슴이 뻥 뚫린 것처럼 허전해서... 앞으로 뭘 해도 채워지지 않을 것 같아요...”

“그건 자네 잘못이 아니었어.”

“그런다고 위로가 되는 건 아니에요. 남의 속도 모르면서...”

“글쎄, 그럴까.”

이 우람한 체구에 어울리지 않게 니힐한 인상을 풍기는 사내는 등 뒤에 차고 있던 죽도를 꺼내어 소년의 얼굴에 대고 말을 이어 나간다.

“검의 마음을 알고 있나? 그것이 너를 구해줄지도 몰라.”

“지난번에는 메스의 마음을 떠벌이시더니 이번에는 뭐라고요?”

“그건 의사일 때의 얘기지. 어때, 도장에 나올텐가?”

“해보죠. 어차피 달리 갈 곳도 없으니까.”

소년은 죽도의 한쪽 끝을 힘차게 꽉 쥐었다. 검은 파카의 사나이가 무뚝뚝한 얼굴에 한 줄기 미소를 띄웠다.

석양이 붉게 타오르는 저녁이었다.




‘李’로고가 걸려 있는 고층건물에도 똑같이 석양은 비치고 있다. 그러나 그 속에서 들려오는 대화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결국 원점으로 돌아온 셈 아닙니까? 이렇게 되었다면,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수확이라 할 만한 것이 없다고 여겨집니다만...”

“그건 자네가 한쪽 면만 보고 있기 때문에 그렇게 보이는 걸세, 발도제.”

“그럼 회장님이 보시기에는 성공이라는 말씀입니까?”

“아직은 몰라. 하지만, 평소에는 볼 수 없었던 상태에서 나타나는 반응을 체크하는 것도 흥미로운 일이었네. 게다가, 몇 주 뒤에는 더욱 흥미로운 실험을 하게 될 테니까, 좋은 연습이 되어 주겠지.”

“그렇다면 바로 그 계획을 추진하시려는......?”

“그래, 그녀가 마침내 이리로 오고 있다.”




앙끄 국제공항의 입국창구 중 한 곳에서 어떤 이국적인 분위기의 젊은 여성이 조심스럽게 입국수속을 밟고 있는 모습을 특별히 눈여겨보는 사람은 없었다. 어딜 가나 그렇지만, 특히 이렇게 사람이 많이 드나드는 곳에서는 자기 일에 신경쓰는 것만 해도 바쁜 법이다.

재미없는 얼굴을 하고 있는 창구 직원은 한쪽 손으로 그녀가 제시한 여권을 집어들고 몇 가지 사항을 확인하면서 다른 쪽 손으로는 재빠른 손놀림으로 키보드를 두들기고 있었다. 여인은 별 필요도 없는 듯한 복잡한 서식과 절차에 질린 지 오래였지만, 끈기있게 창구 앞에 서서 모든 것이 끝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직원은 고개를 들고 그 여인의 우수어린 얼굴을 바라보며 질문을 던졌다.

“Sightseeing?"

그러나 곧바로 따라 나온 여인의 대답에 직원의 눈은 왕방울눈이 되고 말았다.

“No, Duel!"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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