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기/숨기기 가능합니다^^
분류 전체보기 (326)
창작의 샘터 (88)
패러디 왕국 (85)
감상과 연구 (148)
일상의 기억 (5)
보이기/숨기기 가능합니다^^
[1999-08-02] 울트라하 : 본편 제11화
창작의 샘터/울트라하 | 2010. 7. 4. 21:35
 


==========================================================================





◁ PROLOG ▶




7월 말의 앙끄시는 조용하기 그지 없었다.

이맘때쯤이면 내습해 오기 마련인 무더위를 피해 전 시민의 60%가 남으로 남으로 시원한 바다를 찾아서 민족 대이동을 벌이고 있었던 것이다. 때마침 방학을 맞이한 아이들이나 어거지로 휴가를 앞당긴 직장인들의 작당(?)으로 인해서, 수많은 가족들이 짐을 꾸리고 가방을 싸서 열차에 오르거나 공항으로 향하는 풍경이 심심치 않게 보였다.

같은 목적지를 향한다 하더라도 길을 떠나는 사람들의 머릿 속에는 각각 다른 생각이 들어 있어서, 뜨거운 햇살과 (괴수 이름이 아니다) 차가운 파도를 음미하며 인생의 무게를 되짚어보려는 노인네들과, 끝없이 펼쳐진 백사장을 무대삼아 신나게 모래장난을 벌이려는 어린이들의 속셈이 같을 리가 없었고, 부장님 만나러 간다고 구라를 풀고는 마누라 몰래 나이트로 튈 생각만 하는 중년 아저씨들과, 해변을 거닐며 육체미를 과시하여 물좋은 영계를 꼬시려는 건장한 총각의 꿍심이 같을 리가 없었다. 그러나 모두의 생각이 다르다 하더라도, 그들의 이동에는 분명 한 가지의 공통점은 있었다. 그것은 참을 수 없는 여름의 열기를 조금이나마 식혀 보고자 하는, 극히 본능적인 동기에 있다.

아무튼 이런 이유로 해서 앙끄시는 여느때와는 달리 비교적 고요하게 돌아가는 중이었고, 이런저런 사정 때문에 미처 피서를 떠나지 못한 불행한 중생들은 사무실 블라인드를 열었다닫았다 하거나 공사장 벽돌들을 퍽퍽 걷어차거나 또는 잘 나오지도 않는 텔레비전을 쿵쾅쿵쾅 두들겨패면서 저 하늘의 태양을 내심 저주하고 있던 참이었다.

지난번 일하던 연구소가 난데없이 폐쇄되는 바람에 다시 룽룽사의 물품창고 수위로 취직한 조필성씨도 그런 사람들 중의 하나였다. 일자리 구하기 힘든 요즘 세상에 어떻게 이리도 자주 직장을 옮겨다닐 수 있는지 거참 수수께끼로다.

“어매~ 더운거. 거 누가 이 더위 좀 싸악 잡아가지 않으려남? 이럴 땐 시원한 얼음 한덩이나 사와서 아사삭~”

동짓날 팥죽같은 땀을 흘리며 길에서 받은 광고용 부채로 나오지도 않는 바람을 억지로 일으키느라 애쓰는 조필성씨의 눈에 뭔가 이상한 것이 들어왔다.

“얼러려? 날이 너무 더우니 헛게 보이나... 얼음이 떼지어 걸어다니네 잉~~ 허지만 저렇게 많이는 필요없는디... 가만... 이제보니 저거... 에구머니나!”

그가 목격한 것은 도시 한가운데로 겁도 없이 저벅저벅 걸어오고 있는 아홉 개의 거대한 눈사람이었다.





==========================================================================


울트라하 ― 별에서 온 여왕

ウルトラハ ― 星からの女王さま

(C)央久プロ․NOW․ウルトラハ製作委員會


==========================================================================



★ NEW  OPENING  :  ECLIPSE  ★



갑자기 세상을 뒤덮는 검은 어둠

이리저리 무너지는 자연의 균형

사방을 둘러봐도 의지할 곳 없네

믿을 건 오직 나의 용기뿐! (Ultraha)


절대로 물러서지도 도망치지도 않아

여기서 돌아봐도 동정받을 수 없어

남들을 바라봐도 위로받을 수 없어

두려움만 퍼져나갈뿐! (Ultraha)


불타올라라 나의 용기 세상을 밝히는 등불

솟아올라라 나의 희망 사랑을 지키는 미소!

어둠 속에 남겨져서 홀로 싸운다 해도

나는 포기하지 않아 (Never Give Up!)


부활하여라 나의 광채 어둠을 부수는 불꽃

뛰어넘어라 나의 한계 목숨을 걸고서 돌진!

절망 속에 방황하고 주저앉는다 해도

나는 다시 일어설 거야 (Just Carry On!)



==========================================================================


제11화 울트라하 석양에 지다!

第11話 『ウルトラハ 夕陽に散る!』


==========================================================================





“......인큐버스 ...양산형?!”

현장의 돌개바람에 옷깃을 여미며 어메장관이 질린 얼굴로 되묻자, 피요대원이 그에 못지 않게 황당하다는 얼굴로 데이터패드를 들고 보고한다.

“지난해 벌어진 인큐버스 사건 이후 그 얼음괴물의 잔해를 면밀히 검토해본 결과에 따르면, 인큐버스는 단순히 마법에 걸린 얼음덩어리가 아니라 그 속에 일종의 초소형 나노머신을 함유하고 있는 정밀기계였다고 합니다. 즉 얼음만으로 이루어져 속이 텅 빈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그 얼음 안에 수천만개의 나노머신들이 유기적으로 결합되어 있어, 동력원과 구동계, 조종 소프트웨어 등등의 역할을 모두 겸했다는 것입니다. 그때의 모든 연구 데이터는 일급비밀로 분류되어 방위군 정보뱅크에 봉인되었으나, 그전에 한 부의 복사본이 외부로 유출된 사고가 있었다고 합니다. 방위군에서는 저 괴물들에 대한 어떠한 책임도 완강히 부정하고 있는 걸 보면, 그때 새어나간 데이터를 기초로 외부의 누군가가 인큐버스의 모사품을 대량으로 복제해냈다고 보아도 무리는 없을 것 같습니다.”

장관은 초조한 듯 손가락으로 옆의 크롬기둥을 두들기며 투덜거렸다.

“이거 참 야단났군. 1년전에도 물리치느라 애 좀 먹었는데, 이번에는 비슷한 놈이 무려 아홉 마리라니. 녀석들의 진행 상황은 어때?”

피요대원이 디스플레이를 빠른 손놀림으로 조작하며 대답한다.

“3마리씩 3조로 나누어서 시내로 계속 이동중입니다. 한 조는 마이윈 스퀘어에서 방위군 제42기갑사단과 교전 중이고, 또 한 조는 기린광장에서 방위군 흰곰부대와 대치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대기 중인 보곰3가로 오는 것은 남은 3마리입니다. 진행속도로 보아 3분 후에는 도착합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이번의 양산형들은 인큐버스처럼 앙끄시 전체의 기후를 바꿔버릴 정도의 위력은 가지고 있지 않다는 점이었다. 그들의 인공 눈보라와 냉동광선이 미치는 영향은 고작해야 반경 3킬로미터 이내에 한정되어 있었다. 다만 여러 마리라는 이점을 살려서, 합동공격을 해 오는 것이 골칫거리였다.

“알았다. 3분 내에 작전을 세우지 않으면 안 되겠군. 마침 이번에는 E-M반응탄도 두 발이나 준비되어 있으니 별 문제는 없겠지. 그럼 피요군, 펫츠이글과 주변에 포진하고 있는 방위부대 쪽으로 회선을 연결해 주게. 작전은...”




“잘 될 것 같나?”

장관급으로 보이는 군복차림의 사내가 옆의 위관급에게 물었다. 어딘지 모를 깊숙한 곳의 사령실에서 스크린을 통해 바깥 상황을 무표정하게 지켜보는 그의 옆모습에는 왠지모를 조바심이 묻어나오고 있었다. 그에게는 바깥의 모든 것이 비현실적으로만 보였다. 파란 스크린 위에 하얗고 빨간 점들의 발광.

“이제까지는 계획대로입니다. 다음은 ANC-98과 AOL대표부에 달려있습니다.”

“놈들은 아직 쌩쌩하겠지?”

“그들을 물리치려고 고생들 깨나 하고 있겠지만 아직까지는 속수무책으로 보입니다.”

“일이 성사되기 전에 놈들이 죽어버리면 곤란하니까 적당히 손을 써 두게.”

“알겠습니다, 중장님.”

중장이라 불린 사내는 두손을 깍지낀채로 시트에 깊이 파묻혀 스크린에 시선을 고정시켰다. 눈사람들의 진로를 나타내는 아홉 개의 점들이 저마다 천천히 위치를 옮기는 중이었다. 그들을 막아서는 수십 개의 점들도 우왕좌왕하고 있다.

말판과 주사위는 준비되었다. 이제 남은 것은 누가 주사위를 던지느냐겠지.

하지만 결국 최후의 승리자는 내가 되리라.




3마리의 눈사람이 건물들을 헤치고 거리에 나타나자마자, 유성대장이 탑승한 펫츠이글 α가 그들의 정면으로 돌진하여 주의를 끌었고, 그 즉시 측면 요소요소에 대기 중이던 방위군 지원부대가 화염방사기와 DD블라스터로 일제사격을 퍼부었다. 그러는 사이에 그들의 뒤편으로 돌아간 펫츠이글 β는 최강의 병기인 엔드메이커 결정반응탄의 적재를 마치고 서서히 접근 중이었다. β에 탑승한 하라대원과 유태대원은 신중하게 녀석들의 크기와 서로간의 간격, 주변에 휘날리는 인공 눈보라의 풍속 등을 측정하고 그 일대에서 가장 피해가 없을만한 곳을 선정하여 지휘소에 보고하였다. 그 데이터를 근거로 하여, α와 β가 각각 정면과 후면에서 위협사격을 가하여 그들의 진로를 바꾸게 만드는 동안, 목표지점의 인원을 완전히 대피시키고, 그 다음에 그들을 목표지점으로 몰아넣어 반응탄을 쏘아넣는 작전이었다. 물론 A급 파괴병기의 사용에 필요한 방위군 네트웍의 암호 조회와 발사 허가는 미리 받아둔 다음이었다. 저놈들이 인큐버스처럼 주변에 자기장을 둘러치거나 방해전파를 발사할 수 없는 것이 천만다행이었다.

작전은 예정대로 순조롭게 진행되어, 이제 남은 것은 반응탄을 발사하고 효과를 지켜보는 것뿐이었다. 하라대원의 꼼꼼한 지시에 따라 유태대원이 심심하던차에 너 잘걸렸다 하는 표정으로 방아쇠를 당기려고 하는 순간!

“여기는 사령부, 발사허가를 취소한다. 반복한다. 발사허가를 취소한다.”

“으잉? 무슨 소리야. 아무 문제도 없다고 들었는데!”

김샌 얼굴로 불평하는 유태대원을 제지하면서 하라대원이 다시 질문했다.

“여기는 PSE-00β(제로 제로 베타), 발사허가 취소의 이유는 무엇입니까?”

“당신들 주변에 방송국 헬기가 진입했다. 민간인의 피해를 줄이기 위해서다.”

뒤쪽을 바라보니 과연 ACN의 로고를 붙인 붉은 헬기가 들어오고 있었다. 저 거리에서라면 반응탄의 폭발에 휘말려 큰 손상을 입을 것이 뻔했다. 그런 것을 알면서도 진입허가를 내준 것이란 말인가?

“납득할 수 없습니다! 지금은 저 괴물들을 처치하는 것이 최우선입니다. 어째서 방송국 헬기의 진입을 허용하는 것입니까?”

“워낙 급하게 진입해 들어와서 어쩔 수 없었다. 또한 괴물의 퇴치만큼이나 국민의 알권리도 중요하다고 하는 사령부의 판단도 있었다.”

허, 그런 사람들이 정작 방위군의 연간 예산은 비공개로 자기들끼리 쑥덕쑥덕 처리한단 말이지? 하라대원은 목구멍까지 올라오는 울화통을 참고 다시 정중하게 요청한다.

“알권리는 괴물의 위협이 사라진 후에 충족시킬 수 있다고 봅니다. 그러니..”

“당신들의 판단을 모두 듣고 있을 시간이 없다. 반응탄을 쓰지 않고 최대한 가능한 수단을 모두 동원한 후에도 효과가 없다면 다시 한번 허가를 요청하라. 이상.”

뭔가 이상해. 반응탄을 쓰면 안되는 일이라도 있는 걸까? 하라대원은 괴물들의 냉동광선을 최대속도로 피해나가면서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고 있었다. 유태대원은 모처럼의 스트레스 해소를 방해받아서 그런지 잔뜩 부은 얼굴이었다.

“내가 선배였다면 사령부 자식들에게 먼저 반응탄을 먹여줬을 거라구요. 도대체가 그녀석들은 현장에도 와보지 않고...”

“그러나 나는 나니까,”

하라대원은 그의 말을 잘랐다.

“가능한 모든 방법을 다해 볼거야. 불평말고 사격을 맡아줘, 유태군.”

“대장이다. 일단은 사령부의 지시에 따라라, 유태군.”

“알았다구요. ... 이건 마치 내가 괴물이 된 것 같은 기분이잖아.”

상공을 선회 중인 ACN헬기를 잠시 째려보면서 유태대원이 우물거렸다.

펫츠이글 두 대는 공격대형을 재편성하여 발사가능한 모든 화력을 괴물들 쪽으로 퍼붓기 시작했다. 투명한 눈사람들의 표면이 형광색으로 빛났다.




금지해 기자는 흥분된 얼굴로 아래쪽을 내려다 보는 중이었다. 평소에는 몸에 잘 맞지 않아서 멀미가 나던 헬리콥터 비행도 오늘은 뒷산 등반처럼 두근두근거리는 경험으로 변했다. 긴머리를 파란색 비단으로 질끈 동여매고 계란형 안경을 고쳐쓴 뒤 붉은 등산용 재킷과 손에 든 무선 마이크를 한 번 점검한 다음, 금기자는 목소리를 가다듬고 현장의 상황을 어떻게 전달할지 머리를 굴리고 있었다. 헬기의 문틈으로 새어들어오는 냉기가 기분나쁘게 느껴졌다.

솔직히 말해서 어제 저녁 모종의 소식통으로부터 앙끄시에 어떤 괴변이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는 긴가민가했지만, 오늘 이렇게 제일 먼저 달려와 숨가쁜 추격전에 끼어들고 나서 보니까 확실히 믿을만한 이야기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이 저 눈사람들의 폭주를 어떻게 미리 알고 있었는지 궁금했지만 취재원에 대한 예의 때문에 그것까지 무리하게 캐고 들어갈수는 없었다.

아, 앞에 있던 카메라맨의 사인이 들어왔다. 3호 헬기로부터의 중계가 끝나고 이젠 우리 차례다. 이제 나의 얼굴이 전 나우민국의 텔레비전에 뜨게 생겼군. 화장을 좀 더 신경써서 해야 하는 건데.

아무튼 시작이다.

“...여기는 4호 헬리콥터 금지해 기자입니다. 현재 상황은 보시다시피 소강상태로, PETS의 전투기들은 적극적인 공격을 펼치지 못하고 괴물들의 주위를 맴돌면서 위협을 가하는 중입니다. 무엇이 그들을 주저하게 하는 것일까요?”

...정말 몰라서 묻는건가?




“「잉큐」? 어떤 의미의 이름인가?”

“그건 모릅니다만 방위군 사령부 측에서 제의한 것입니다. 별다른 이름 없이 그냥 ‘눈사람’이니 ‘괴물’이니 하고 부르는 것은 혼동의 여지가 있으므로 인큐버스를 줄인 약칭으로 부르는 편이 좋겠다는 뜻 같습니다.”

“저런 얼음딱지들 이름을 붙여서 뭐하게요? 생일카드라도 보낼건가요?”

유태대원의 가시돋친 목소리가 통신기 저편에서 들려온다.

“피요군 말마따나 행정상의 편의를 위한 조치다. 이의 없으면 이제부터 저놈들을 잉큐라고 부르도록 하겠다.”

“이의 있습니다!”

“듣지 못했다. 이상 끝.”

“.........(T.T)”

펫츠 비이클에 대기중이던 ‘소년’의 이의제기를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짓밟는 우리의 어메장관이었다.

“그나저나 어떻게 할까요? 저주파 냉동 미사일은 저놈들과 속성이 안 맞아서 쓸 수가 없고, 반응탄은 발사허가를 받을 수가 없는 상태입니다. 보통의 화기로는 저놈들의 앞길을 막을 수는 있어도 파괴는 불가능합니다!”

하라대원의 최대한 절제되었으나 나름대로 절박함이 느껴지는 하소연에 장관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지금 임시로 사령부를 통할하고 있는 청운중장은 그로서도 어찌할 수 없을 정도로 톱 클래스의 인물이다. 그의 생각은 도대체 어떤 것인지...

“장관님, 코코아입니다.”

“아, 고맙네, 거녀양.”

장관은 상념에서 벗어나 앞을 바라보았다. 토끼귀가 달린 귀여운 에스키모복을 차려입은 동거녀가 종이컵과 보온병을 들고 그의 앞에 서 있었다.

“뭘요, 다들 힘들게 싸우시는데 저는 그냥 구경만 하고 있으니...”

“사람들을 구호하는 것도 어떤 면에서는 하나의 싸움이라네.”

어울리지 않게 멋져 보이려고 노력하는 어메장관을 보고 속으로 쿡쿡거리며 웃음을 참는 피요대원과 ‘소년’.

“싸움 얘기가 났으니 말인데요, ‘그 거인’은 이런 경우라면 어떻게 싸울까요?”

동거녀의 주저주저하는 얼굴을 잠시 물끄러미 들여다보다가 장관이 대답한다.

“울트라하인가 하는 그친구 말인가.”

“네.”

“아마 힘들고 외롭기는 하겠지만, 아주 당당하고 멋지게 싸워주지 않을까. 지금까지 언제나 그렇게 해 왔으니까.”

“하지만... 그런 사람이라도 도망치고 싶은 때가 있지 않을까요? 그래서 지금도 이렇게 될 때까지 나타나지 않는 것일지도...”

“늦더라도 꼭 올거라고 나는 믿네. 항상 그래왔던 것처럼.”

“정말로 그렇게 확신하세요?”

“내 다음다음달치 월급을 걸고 장담하겠네.”

“왜 하필 다음다음?”

“다음달치는 이미 가불해버렸거든.”

“...(멍)... 고맙습니다. 코코아 더 드릴까요?”

“아아, 고맙네. 그런데 왜 갑자기 그런 질문을 하는거지?”

“네? 저, 그게... 아뇨, 그냥 생각이 나서...”

“흠, 그래.”

장관의 농담인지 진담인지 알 수 없는 위로에 그래도 기운을 얻은 듯 힘차게 그 자리를 뜨는 동거녀였다. 물론 피요대원과 ‘소년’에게도 따스한 코코아 한잔씩이 돌아갔다. 거녀에게 감사를 표한 뒤 뭔가 생각이 난 듯 피요대원에게 때아닌 질문을 던지는 ‘소년’.

“그런데 왜 우리는 항상 코코아만 받는 건지 알아요, 피요양?”

“작가가 커피를 안좋아한대나 어쩐대나.”

“......(-_-)”

바깥에는 더욱 거센 눈보라가 휘날리고 있었다.

쭈삣거리며 의무반으로 향하던 거녀의 발길이 반대방향으로 돌아갔다. 그러다가 다시 의무반 쪽으로, 다시 반대방향으로, 다시 의무반 쪽으로, 다시...

반대방향으로.




“시뮬레이션 계산이 끝났습니다. 파괴계수와 기타 자료들로 미루어 보아 사용해도 큰 문제는 없을 듯 싶습니다. 오히려 우리에게는 생각지 못한 도움이 될 수도 있습니다.”

위관급이 건네준 서류를 받아든 청운중장은 여전히 표정없는 얼굴로 내용을 찬찬히 살펴보고는 명령을 내린다.

“좋아, 그럼 허가를.”

“옛. 방송국 헬기는 안전권으로 대피시킬까요?”

“당연하지. 다만 그 효과를 확실히 찍을만큼은 가까이 두도록 해.”

위관급이 통신기를 잡고 새로운 지령을 내리는 동안, 청운중장은 서류를 다시 훑어보며 그로서는 보기 드문 미소를 짓고 있었다.

“이 계산대로라면 녀석들은 큰 곤경에 처하게 될게야. 그걸 보는 것도... 나름대로 재미있겠군.”




발사 허가가 내려졌으니 이젠 거리낄 게 아무것도 없다. 아까의 작전으로 돌아간 펫츠이글 두 대는 신속하게 적들을 막다른 골목으로 몰아넣은 뒤 E-M반응탄을 명중시키는 데 성공했다.

“으하하하 어떠냐! 이 정의의 일격이! 이 유태어르신은 눈사람도 절대 안봐준다고!”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드디어 시민의 수호자를 자처하는 PETS가 그들의 최강무기라는 반응탄을 발사했습니다. 얼마나 위력이 대단한지 안전권으로 대피했음에도 불구하고 헬기가 마구 요동치는군요. 눈앞이 빙빙 돌고 멀미가 날 지경이지만 어떻게든 참고 있습니다. 이제 앙끄시의 안전을 위협하던 잉큐들도 끝장난걸까요? 거리는 반응탄의 폭발로 인해 연기에 뒤덮여서 잘 보이지가 않습니다. 아! 드디어 연기가 걷히고 뭔가 윤곽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그런데... 맙소사...!”

금기자는 하도 놀라서 마이크를 떨어뜨릴 뻔 했다.

엔드메이커 결정반응탄은 원래 여러 가지 괴수의 체조직에 반응하여 그 세포를 결정화시켜버림으로써 무력하게 만든 다음에 체내에서 연쇄폭발을 일으켜 완벽하게 괴수를 날려버리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어떤 조화에서인지는 몰라도 잉큐에 대해서만은 그것이 통하지 않았다. 대신에 아까 3마리뿐이던 잉큐들이 더욱 작은 잉큐 9마리로 나누어져 있을 뿐이었다. 그 크기는 원래의 40미터급에서 20미터급으로 줄어들었지만, 그들이 뿜어내는 냉동광선과 인공 눈보라의 위력은 2배로 증가했다. 그들이 지나는 거리는 순식간에 눈의 왕국으로 뒤덮여 혼란의 도가니에 빠졌다.

게다가 다른 곳에서 잉큐들을 상대 중이던 전투부대로부터도 비슷한 보고가 들어왔다. 백곰부대가 자랑하던 ‘숯불 박격탄’을 얻어맞은 잉큐들이 9마리의 미니잉큐로 분열해 버린 것이다! 이제 시내에서는 총 27마리의 미니잉큐들이 한자리에 모여서 쉴새없이 난장판을 만들고 있었다. ‘미니’라고는 해도 20미터라면 10층 빌딩에 육박하는 크기다. 어떤 지역은 피서 때문에 한산했고, 어떤 지역은 대피가 끝나서 조용했지만, 아직 사람이 남아 있던 대부분의 지역에서는 때아닌 국지적 기후변화에 적응하지 못해 여름감기와 동상에 걸린 환자가 속출했다. 잉큐가 지나간 뒤 수시간이 지난 곳에서는, 온도차로 인해 그들이 만든 얼음이 갈라지면서 건물들에 균열이 생기고 도로와 지반의 붕괴 사고가 연속으로 일어나는 중이었다.

1년 전만큼 끔찍하지는 않더라도, 나름대로 골치아픈 광경이었다.

“...이것이 과연 시민의 수호자가 보여줄 행동입니까? 괴물들을 퇴치한다는 것이 도리어 괴물들을 도와준 꼴이 된 PETS의 공격은, 이제와서 보면 너무 경솔한 것은 아니었을까요? 잉큐는 지금도 시민들의 재산과 안전을 위협하며 캐사모스톤 지구로 넘어가고 있는 중입니다. 주변 대피상황은...”

라디오 수신으로 금기자의 낭랑한 목소리를 들으면서 어메장관은 자기들이 꼼짝달싹할 수 없는 지경에 빠졌음을 감지하고 있었다. 뭔가가 잘못되었다. 그것도 아주 지독하게.

“장관님! 연료와 탄약이 떨어져갑니다! 보급을 받기 위해 착륙하지 않으면 안될 것 같습니다! 허가를 내려 주십시오!”

“알겠다. 유성군은 제55포스트로, 하라군과 유태군은 제48포스트로 가서 보급을 받고 따라오도록. 우리는 의무반과 방위부대와 함께 녀석들의 진로를 따라서 계속 이동하겠다.”

“알겠습니다. 들었나, β? 포스트의 유도에 따라서... 아앗! 어딜 가나!!!”

펫츠이글 β는 그들의 말을 완전히 무시하고 상부와 하부로 급속분리하여 미니잉큐의 행렬에 재빠르게 접근하고 있었다.

“아직 5분 정도 더 비행할 수 있습니다. 그동안에 저들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서 LS입자빔을 최고출력으로 조사(照射)해 보겠습니다! β-1과 β-2가 양쪽에서 발사한다면 효과가 달라질지도 모릅니다!”

“하라군, 너무 무모한 짓이다! 어서 돌아와! 보급이 우선이다!”

“대장님 말리지 마십시오! 저희 둘이서 어떻게든 해보겠습니다! 하라선배와 저의 열혈이라면 뭔가 되어도 크게 될거라고 한건 바로 대장님 아닙니까!”

“자넨 게임 얘기를 진짜로 믿나!!! (-_-)”

“어쨌든 갑니다! 유태군, 조준 똑바로 해!”

“선배도요!”

그들은 미니잉큐들 중에서 가장 허술해 보이는 두 녀석을 골라 그 측면으로 접근하는 중이었다. 그런데 낌새를 알아챘는지, 녀석들 중 십여마리가 갑자기 그들을 향하여 엄청난 양의 눈보라를 소용돌이처럼 뿜어대었고, 그 때문에 두 대의 β-전투기는 입자빔의 조준도 끝마치지 못한 채 엔진이 꽝꽝 얼어붙은 채로 급강하, 얼음 때문에 딱딱해진 지면에 격돌했다.

“저런!”

“하라선배! 안돼!”

“응답하라, β-1, β-2! 응답하라, 거기 아무도 없나? 어서 대답해!”

“어째 오늘 운세가 안좋게 나왔다 싶었더니만...”

하라대원과 유태대원으로부터의 통신은 완전히 두절되었다. 충격으로 둘 다 기절한 모양이었다. 너무나 갑작스럽게 역습을 받아서 탈출할 정신도 없었지만, 냉기로 인해 캐노피가 얼어붙는 바람에 탈출장치 자체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던 것이다. 결국 제대로 공격을 해 보지도 못한 채 추락하고 만 두 대의 β-전투기는 참혹한 몰골로 얼음더미 속에 파묻혔다. 연료탱크나 전기계통이 폭발을 일으키지 않은 것만 해도 불행 중 다행이었다.

지면에 거칠게 내려앉은 두 기체의 표면 위로 두꺼운 눈발이 쌓이고 있었다. 이대로 두었다가는 파일럿이 동사할 위험도 있다. 그러나 구조대는 여느때와 다름없이 도시의 다른 지역으로 몽땅 파견나갔고 PETS의 의무반은 그러잖아도 일손이 모자란 판에 또다시 몰래 빠져나간 어떤 사람 때문에 곤란을 겪고 있었다.

“누구 거녀양 본 사람 있어요?”

“또 고양이만 자리에 놔두고 어디로 도망갔지?”

“돌아오기만 해봐라, 일주일간 의무실 청소당번이야!”

이들의 원성을 아는지 모르는지 한구석 호젓한 귀퉁이로 빠져나간 동거녀의 품 속에서 그 유명한 보랏빛 부채가 요사스런 광채를 내며 튀어나왔다.

“----------------여왕이라 불러랏------------------!”




“ANC-98쪽에서는 완전히 준비가 끝났답니다. 그곳의 메인 컴퓨터가 목표물의 위치와 방향을 잡아내어 계산 중이고, ‘그것’의 조작 권한은 약 2시간 동안 우리들에게 임시로 양도됩니다. 에너지 비축량은 걱정 없다고 합니다.”

청운중장은 손바닥을 마주 대며 만족스런 눈길을 보냈다.

“좋아, 제대로 되어 가는군.”

“아, 그리고 이건 방금 들어온 보고인데......”

“나타났나?”

“나타났습니다. 바로 그 자리에.”

“놀랄 일도 아니군.”




어느 사이엔가 나타난 은색의 거인은, 주변을 둘러싼 냉기에 다소 불편한 듯한 인상을 주면서도, 27마리의 미니잉큐의 앞을 경쾌하게 막아서며 그들의 앞줄에 선 녀석들에게 우아한 필살여왕두발차기를 선사했다. 27마리의 미니잉큐들이 도미노처럼 와르르 쓰러졌으나, 곧 전열을 가다듬고 거인의 팔다리에 매달려 오기 시작한다.

십여마리가 넘는 20미터짜리 눈사람이 40미터급의 거인에게 옹기종기 매달려 움직임을 제압하려 애쓰는 그 모습은 마치 어느 비오는 날에 발을 헛디더 웅덩이에 빠진 선생님을 덮치는 유치원 원아들의 행태를 방불케 하였다. 뿐만 아니라, 미니잉큐들은 자기들의 주무기인 냉동광선을 무차별 난사하여 거인의 몸체 곳곳을 냉동 통조림으로 만들어가고 있었다. 애초에 적응기제가 없는, ‘추위’라는 감각이기 때문에, ‘고통 피드백’ 시스템에도 대응되지 않는다!

그들의 지독스런 공격에 필사적으로 저항하는 거인이었으나, 워낙 추위에 약한 울트라인인지라 쉽사리 빠져나오지를 못하고 있었다. 펫츠이글 α의 보급에는 아직도 5분이 더 남아 있고, 얼음 속에 파묻힌 펫츠이글 β의 회수에는 몇 시간이 소요될 전망이었다. 어쩌면 꼭 이럴 때만 나타나서 도와줄래도 도와줄수가 없게 하는건지 정말 야속한 거인이었다!

장관은 피요대원과 함께 상황을 열심히 지켜보고 있었다.

“어떤 공격이 가장 효과적이라고 보나? 저번에 사용한 방법은...”

“부비부비는 추위에 약한 저 거인의 체질상 무리가 따릅니다. 게다가 지금은 상대가 27마리이니 그걸 일일이 다 붙잡고 부비부비를 하다가는 세상 하직할 겁니다.”

작년의 영상 데이터를 불러내면서 피요대원이 반론을 제기한다.

“내 생각에도 그건 안될 것 같네. 채찍으로 가격하는 것은 어떨까?”

“그러나 잉큐의 세포 하나하나가 다 독자성을 갖춘 나노머신이라는 것을 생각해보면, 아무리 타격을 주어서 작은 조각으로 갈라놓아도 그 조각들은 서로를 다시 끌어당겨 재조합을 하게 될겁니다. 아까 E-M반응탄도 그런 작용을 촉진시키는 것밖에는 별 효과가 없었으니, 보통의 타격으로 깨뜨리는 것이라면 더 위험할지도 모릅니다.”

이번에는 잉큐의 예상되는 해부도를 불러내며 이의를 제기한다.

“자꾸자꾸 쪼개고 쪼개고 하다보면 사람 크기가 되어서 잡기도 수월해지지 않을까요.”

‘소년’도 제법 명쾌한 의견을 내며 끼여들었다.

“오히려 그러면 여기저기 숨을 곳이 많아지기 때문에 색출에 시간이 걸릴지도 모릅니다. 일을 더 어렵게 만드는 것이 됩니다.”

이번에는 앙끄시의 숨을만한 곳 베스트 500을 불러내며 반대의견을 말한다.

“그럼 남은 길은 하나뿐이군.”

“뭔가요?”

“저 거인도 이제는 마지막일테니 많이많이 찍어서 비디오로나 팔아먹어야지.”

장관의 오른손에는 어느새 편하고 실용적인 리사(社) 캠코더가 들려있었다.

“장관님 그러시면 안됩니다.”

“응?”

역시, 하는 얼굴로 ‘소년’을 돌아보는 피요대원, 그러나.

“찍는 김에 화질 좋은 디지털 카메라로 찍어보시죠. 아메리고 제품입니다.”

피요대원은 조용히 하늘을 올려다보며 신에게 용서를 빌었다. 보급 포스트에서는 유성대장이 침울한 얼굴로 마구 당하고만 있는 거인을 바라보고 있었다.

나머지 방위대원들이 두 지점에서 교전을 벌였던 부대들과 합류하여 응전태세를 취하고 있었지만, 얼마나 도움이 될지는 미지수였다. 시간은 어느덧 오후를 지나 저녁으로 넘어가고 있었다.




//히메... 나는... 나는...//

사정없이 손발을 마구 움직여서 달라붙는 잉큐의 무리들을 뿌리치던 라하세르의 뇌리에 복잡한 생각들이 스쳐지나갔다. 전번에 히메와 결투를 벌인 이후로 아직까지 마음에 상처가 남아있는 것 같았다. 아무래도 제대로 전투를 벌일 만한 상태가 아니었다.

무엇보다 그녀를 짓누르는 것은, 히메의 질책이 사실이라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라는 고민이었다.

아직도 히메의 비웃는 소리가 귓가에 들려오는 것만 같았다.

그러는 사이에 어느덧 시간은 300초를 경과하고 있었다.

//이 얼음과자들을 막으려면... <부들> 뭔가 생각을 해내야 하는데... <부들> 보통의 방법으로는 통하지 않으니... <추워> 하지만... 하지만 그랬다가 또 다시 엉뚱한 실수를 저지르면 어떡하지? ... <오슬> 히메가 말한 대로 우리 일족의 명예를 더럽히는 짓을 범하면 어떡하지? ... <부들> 난 대체 어떻게 하면 좋지? ... 어떻게 하면...? 어떻게...? <부르르> 도망치고 싶어... 아무도 알지 못하는 곳으로... <오싹> 여왕도 아무것도 없는 그런 곳으로... 아무것도 없는...//

남은 시간 365초.

//그렇지만... 내가 이렇게 늦지만 않았더라면 하라선배가... 유태씨가...//

라하세르의 마음은 책임감에 불타는 강한 마음과 책임을 회피하려는 약한 마음 사이에서 심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놀이공원의 고장난 바이킹마냥 삐걱삐걱.

그러는 동안에도 잉큐들은 끊임없이 냉기를 방사하여 울트라하의 은빛 거체를 얼음 속에 가두고 있었다. 그들 중 일부는 다시 공격을 개시한 방위군의 연탄포 사격에 명중하여 활동을 정지했지만, 남은 20대는 계속해서 울트라하에게만 집중적으로 달려들고 있었다.

손발의 감각이 급속하게 사라지고 정신이 흐려졌다. 눈앞이 어둡다.

//나, 나는...//

남은 시간 363초.

초조하게 시계를 바라보던 피요대원이 찌꺼기만 남아있는 빈 종이컵을 휘휘 돌리다가 갑자기 팍 찌그러뜨리며 소리를 질렀다.

“그렇지, 코코아다!”

“피요군. 자네마저 헛소리를 하다니! 정신차려!”

통신기를 통해서 유성대장의 노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니에요. 그게 아닙니다. 저 잉큐들을 물리칠 방법이 생각났습니다.”

“정말인가?”

“장관님께서는 근처의 전 방위군에 지급되어 있는 코코아를 남김없이 회수하여 뜨거운 물에 타 주시고, 대장님께선 보급부대에 부탁하셔서 그것들을 분출할 수 있는 커다란 펌프와 호스를 펫츠이글 α에 임시로 장착해 주세요. 그리고 너는 여기서 내 계산 좀 도와줘.”

어떻게 해서 그렇게 빨리 했는지는 모르지만 하여간 300초만에 필요한 장비가 모두 모아져, 유성대장은 펫츠이글 α를 이끌고 하늘로 힘차게 날아올랐고, 피요대원의 지시대로 현지조달된 대형 고물 펌프의 힘을 빌려 팔팔 끓인 뜨거운 코코아를 잉큐들을 향해 뿌리기 시작했다. 그러는 동안에도 싸울 힘을 잃고 바닥에 쓰러진 울트라하는 시시각각 두터운 얼음에 뒤덮여 가고 있었다!

남은 시간 55초.




차가운 전자눈이 붉은 빛을 깜빡이며 상관을 호출했다.

“사령관님, 준비가 끝났습니다. AOL의 메인컴퓨터와도 접속 완료입니다.”

“수고 많았네 안시군. 아래쪽 상황은 어떤가?”

“매우 안 좋습니다. 발사 커맨드를 실행할까요?”

“아직 안돼. 지상 사령부로부터 허가가 나지를 않았다네.”

“제게는 허가를 무시할 수 있는 프로그램도 있지요.”

“그러나 내게 그걸 시험해 볼 기회를 줄 필요는 없다네.”

하이아 사령관은 씁쓸한 표정으로 중앙 컴퓨터를 달래고 있었다.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착각이겠지만, 그 목소리에는 기계답지 않은 따스함이 묻어나왔다.




“이건 기적인데요! 코코아물을 뒤집어쓴 6마리의 잉큐가 햇살에 봄눈 녹듯 녹아내리고 있어요! 게다가 이상한 것은, 나노머신들이 전혀 재조합을 일으키지 않고 얌전히 분해되어가고 있다는 겁니다!”

‘소년’이 디스플레이를 들여다보며 흥분하여 외쳤다.

장관은 설명을 요구하는 눈초리로 피요대원을 바라보았고 그녀는 아무 것도 아니라는 표정으로 설명하기 시작했다.

“저 나노머신들이 재결합을 하기 위해서는 순수한 얼음층 안에 있어야만 합니다. 아무리 외부에서 충격을 주어 흩어놔도 그 조각들 사이에는 공기 아니면 소량의 먼지뿐이니, 그것들을 자체적으로 제거해버리면 재조합에는 문제가 없습니다만... 저렇게 코코아를 뒤집어쓰면 얘기가 달라지죠. 뜨거운 물의 열기로 인해 얼음이 녹으면서 물 속에 녹아있던 코코아의 입자가 얼음층 안으로 파고들어, 나노머신 사이를 차단, 네트웍을 형성할 틈을 막아버리는 겁니다. 그래서 상대를 잃은 나노머신은 오작동을 일으켜 재조합되는 대신 자체분해되는 겁니다. 간단한 원리죠.”

“내게는 전혀 간단하게 들리지가 않는데?”

과학에는 빵점인 장관이 머리를 싸매며 납득하려 애쓰고 있었다.

“하여간 이렇게 해서 현재 6마리를 해치웠고, 지금 또 다른 2마리에게 코코아를 들이붓고 있습니다. 남은 19마리 중 7마리는 행동중지. 따라서 12마리만 더 처리하면... 네, 대장님?”

피요대원이 통신기를 꺼내들고 펫츠이글 α로부터의 송신을 받는다.

“피요군, 이제는 틀렸다.”

“왜요? 혹시 제 이론이 뭔가 잘못...”

“아냐, 자네는 잘못한게 없네. 모든게 계산대로야.”

“그런데 왜?”

“......코코아가 바닥났다네. (-_-)”

피요대원은 당황한 얼굴로 장관을 돌아보았다.

“여기 있는 방위군의 배급분을 다 끌어모은거 아니었나요? 계산대로라면 그정도로 충분히...”

“으음, 그게 말이지... 에에, 그걸 운반하던 친구들이 몸을 녹이려고 몇잔 마셨나봐.”

“종이컵으로요?”

“아니, 맥주잔으로.”

“.................(-.-)”

남은 시간 49초.




“멍청한 친구들이 어떻게 해보려 한 모양이지만... 역시 한계가 있나보군.”

“게다가 그 거인조차도 웬일인지 힘을 전혀 못 쓰고 있습니다.”

“우리에겐 잘된 일이지. 좋아. 쇼가 막을 내릴 때가 되었군. ANC-98에 급전, 즉시 발사개시하라.”

“위성통신으로 긴급전문을 보냅니다. 사령부에서 ANC-98에게...”

청운중장은 두 주먹을 꽉 쥐고 점으로 얼룩진 스크린을 들여다보았다.

드디어 주역의 등장이다.




“뭐? 주변에 포진하고 있는 방위군 및 PETS는 몽땅 퇴각하여 안전지대로... 도대체 무슨 일이길래 그러는 거야?”

“깜짝 놀랄 만한 일이라네 어메군. 하여간 시간 없으니까 내 말을 들어줘.”

“알겠네. 더 이상 손 쓸 도리도 없으니... 그런데 자네네 ANC-98까지 나설 정도라면 다이핀치는 다이핀치인가 보군?”

“그 얘기는 나중에 함세.”

울트라하의 한계시간을 45초 남겨두고 ANC-98로부터 들어온 의문의 통신을 받은 어메장관은 현장 지휘관으로서의 권한을 이용하여 주변의 병력을 모두 안전지대로 철수시키고, 섬광방지용 고글을 착용하도록 지시했다. 그러고 나서 수초후, 아직도 살아서 꿈틀대며 도시에 위협을 가하고 있는 잉큐들의 머리 위로 하늘의 분노라도 되는 양 수십 발의 페이저 빔이 쏟아져 내려왔다!

“자유연맹군(Alliance Of Liberty = AOL)이 개발중이라고 하던 위성 페이저포예요! 하지만 그들에게는 우리 앙끄시의 지형지물까지 알 만한 데이터는 없을텐데...”

놀란 얼굴로 고글 너머에 펼쳐지는 불꽃놀이를 바라보던 피요대원이 소리쳤다.

“...알겠어요. 그래서 ANC-98에서 AOL의 메인컴퓨터와 접속을 해서 그쪽으로부터 일시적으로 발사권을 이양받고 난 뒤에 ANC-98의 컴퓨터에 내장되어 있는 앙끄시의 3D지도를 활용해서 더욱 세밀한 사격을 할 수 있게 한 거로군요!”

“깜짝 놀랄 만한 일이란게 이거였나... 하이아군?”

붉은 빛의 페이저 광선은 엄청난 위력으로 잉큐들을 제압, 그들을 둘러싸고 있는 얼음층은 물론, 그들 체내에 들어있는 나노머신들까지 흔적도 없이 태워버리고 있었다. 남은 12마리는 물론, 기능정지된 7마리에까지도 그 응징의 손길을 어김없이 뻗어나가고 있었다. 이렇게 해서 단 2마리의 잉큐만을 남기고 거의 모든 잉큐들이 형체도 없는 플라즈마로 변해 버렸다.

사령실에서 잉큐를 나타내는 점들이 소멸해 가는 것을 지켜보던 청운중장은 만족스런 표정을 지으며 옆의 대위에게 물었다.

“남은 2대의 처리도 문제없겠지?”

“예, 그런데 놈들의 상태가 좀 이상한데요. 피하지도 않고 가만히 있는건 좋은데 어쩐지 그 숫자가... 이, 이럴수가!”

“무슨 일인가?”

“레이더의 착오겠지만... 아니 착오가 아닙니다! 분명 둘이었던 놈들이 셋으로 불어나고 있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무슨 소리야 그게. 생식기능이라도 가지고 있다는 건가? 그런 보고는 없었을텐데!”

“글쎄요. 이건 도대체 뭐가 뭔지...”

남은 시간 33초.

갑자기 지상을 강타하던 페이저빔이 뚝 하고 그쳐버렸다. ANC-98에서는...

“어찌된 일인가 안시군? 아직 대여시간이 남았을텐데?”

“저쪽 메인컴퓨터의 전문입니다. ‘신용도 체크 결과 대여시간을 줄이는 쪽으로 결정이 났다. 구조조정부터 먼저 하고 빌리러 와라.’ 이상입니다.”

“..............(-_-)”

이 전문을 전해들은 청운중장 또한 당황하고 있었다.

“이거야 원, 자기들이 무슨 세계은행도 아니면서...”

“어떡하시겠습니까 중장님? 이제 셋에서 넷으로 불어나고 있습니다!”

“......음.”

중장은 고개를 들었다.

“...내 사직서 준비해둬. 책임은 내가 진다.”

남은 시간 30초.

살아남은 잉큐의 일부분이 변이(變異)를 일으키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그들은 다시 넷에서 다섯으로 불어나며 음험한 냉기를 도시 곳곳에 퍼뜨리려 하고 있었다. 기능정지된 것으로 보였지만 사실은 변이를 위해 쉬고 있었던 것뿐일지도 몰랐다. 그들이 다시 진격하려 할 때, 뒤쪽에 쓰러져 있던 거대한 얼음덩이를 깨고, 오라에 빛나는 울트라하가 일어섰다.

“이제 28초뿐인데, 어떻게 할 생각이지?”

금지해 기자는 여전히 안전권 안에서 열띤 중계 중이었다.

“아아, 드디어 일어났습니다, 의문의 거인. 몸도 안 좋아 보이는데 과연 어떻게 할려는지? 차라리 집에 가서 발닦고 푹 쉬는 편이 지구를 위해 좋은 게 아닐까요? 앗 말씀드리는 순간, 거인 눈부시게 빛나는 광(光)채찍을 불러내어 어루만지고 있습니다. 아아 저도 여자이지만 참으로 가슴 떨리는 광경이 아닐 수 없네요. ...앗 실례했습니다. 방송중이었죠. 괜찮아요 정현씨, 어차피 편집될거니까. ...아무튼, 그 채찍으로 다섯... 아니 이제는 여섯으로 불어난 잉큐들을 한꺼번에 옭아맨 우리의 거인, 과연 어떻게 할 셈일까요? 아...... 저런!”

남은 시간 앞으로 15초.

계속 세포분열중인 잉큐들을 기차놀이하듯 채찍으로 동여맨 라하세르는 마지막 힘을 다해 그 꾸러미를 하늘 높이 들어올리더니, 공중으로 날아오른 다음 그 채찍의 한쪽 끝을 잡고 마치 투포환 선수가 포환을 던지듯 꾸러미를 빙빙 돌리더니 하늘 높이, 아니 우주 저편까지 우악스럽게 던져 버리는 것이었다!

훗날 국제초인학회에 의해 「초극한메주투척검」이라고 명명되는 필살기였다.

거리에 모여있던 방위군들은 물론, 이 상황을 지켜보던 사령부와 ANC-98의 대원들까지 이 뜻밖의 전개에 환호하며 서로 얼싸안고 앙끄시의 구원을 축하하는 것이었다. 근엄하게 보이기 위해 박수를 억제하는 청운중장만 빼고.

그런데...

공중에 잠시동안 백조처럼 우아한 자세로 떠 있던 울트라하가 갑자기 힘없이 지상으로 떨어져내렸다. 언제나처럼 하늘로 날아올라 사라지는 대신에...!

그녀의 이마에 박힌 둥근 램프는 붉은 색으로 점멸하고 있었다. 블라스터에 맞은 R2-D2의 신음소리만큼이나 애처로운 경보음과 함께. 어느덧 석양이 깔려 오는 길거리에 쓰러진 은빛의 거인은 두 번 다시 일어설 줄을 몰랐다. 깜짝 놀란 어메장관이 피요대원의 어깨를 붙들고 물어보았다.

“저런 경우를 묘사한 전설도 있는가?”

“‘제한시간을 넘김으로써 컬러 타이머가 붉게 물든 채로 지상에 쓰러진 울트라인은... 울트라인은...’”

“울트라인은?”

유성대장도 독촉한다.

“‘두 번 다시 일어설 수 없다’.”

비통한 얼굴로 피요대원이 말을 맺었다.

“뭐라고? 그럼 울트라하도!!!”

“말도 안돼! 그럴 리가 없어! 뭔가 방법이 있을거야. 그렇지? 응, 피요양?”

‘소년’마저도 평소에는 좀처럼 보이지 않던 당황스러움을 감추지 않고 묻지만, 피요대원은 그저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대원들의 침통한 얼굴을 보며 뭐라 말해야 좋을지 헤아리던 장관은, 통신기에 들어온 연락을 받고 약간 얼굴을 펼 수 있었다.

“그래, 나다. 뭐? 그래. 두 사람 모두 무사하다고... 알겠다. 곧 가보겠네.”

장관은 남은 대원들을 간단히 위로해준 뒤 천신만고 끝에 구출된 하라대원과 유태대원의 용태를 보기 위해 의무반 쪽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담배를 한 대 피우려고 꺼내물었지만 왠지 기분이 나지를 않아서 다시 집어넣었다.

대원들이 눈물을 억제하지 못해 고개를 잠시 돌린 사이, 대지의 품에 안긴 것처럼 편안하게 누워 있던 거인의 몸체는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 그 대신에 거인의 체중으로 인해 깊게 패인 크레이터 어딘가에, 동거녀의 상처입은 여린 몸이 피흘리며 누워 있을 것이었다.

눈과 얼음과 혼돈과 파괴로 얼룩진 앙끄시를 부드럽게 감싸듯 붉은 석양이 서서히 타오르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 대원들의 눈에는 그것마저도 잔인한 핏빛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THE  END?






==========================================================================



☆ NEW  ENDING  :  NEXT  QUEEN ☆



고귀함과 우아함의 향기에 싸여

세상을 발 아래 굴복시킨 그대

하지만 두 뺨 위의 눈물은

무엇을 말하는 걸까요


당당함과 청순함의 광휘를 펼쳐

자유의 노래를 전하는 그대

하지만 그 입술의 떨림은

무엇을 구하는 걸까요


이겨내요 버텨내요 그대의 시련

아무도 함께할수 없는 시간을

다가가요 마주봐요 그대의 약점

지금이 아니면 할수없는 일들을


언젠가 모든 것이 끝나고 나면

사람들은 말하겠죠 그대의 영광

거짓과 악의가 세상 가득 채워도

사람들은 믿고 있어요

그대의 전설을



==========================================================================


(C)央久プロ․NOW․ウルトラハ製作委員會  1999


==========================================================================





◀ EPILOG ▷




“구사일생이었지.”

파이프에 담배를 채우며 청운중장이 내뱉었다.

“기껏 벌려놓은 일이 엉망으로 되지 않아서 사직도 면하고 방위군의 지휘권도 완전히 손에 넣었으니 말야. 다만 누구보다도 싫어했던 ‘그 거인’ 덕분에 그렇게 되었다는 건 좀 아이러니이지만.”

방 한쪽 테이블에 앉아있던 정장차림의 범상치 않은 남자가 술잔을 들고 얼음 수를 맞추며 그에게 말했다.

“「인큐버스 방위로봇화(化) 계획」이 실패작으로 판명되었는데도 오히려 그걸 역이용해서 AOL의 신병기를 시험해 보고, 방위군 내에서의 입지도 강화했다는 말이군. 자넨 역시 보통이 넘어.”

“운이 좋았던 게지 뭐... 그런데 그 「잉큐」라는 이름은 뭔가 다른 의미가 또 있는건가?”

“별거 아냐. Instrumental Nanomachinery Quartz를 줄여서 「InQ」가 된 것 뿐이지. 흔해빠진 말장난일세.”

“흐음 그랬었군. 재미있는 생각일세.”

“그래, 일은 제대로 되어가는 건가?”

“그렇다네. 자네 회사 덕분이지. 어찌되었든 이번에는 큰 신세를 졌으니 언젠가 톡톡히 갚아주겠네. 농담이 아니야.”

“언젠가...라, 너무 늦은 건 아닐까?”

“아니, 이제부터가 시작이니까. 시간은 많아...”

수더분해보이는 인상과는 달리 억센 신경을 소유한 자산가인 그 사나이는 그래도 미심쩍다는 눈초리로 그를 지켜보고 있을 뿐이었다.

그와는 상관없이 청운중장이 자신만만하게 말을 맺었다.

“...신이 우리에게 허락하시는 한은.”

神이라, 상대편 사내가 조용히 조소를 띠었다.

허약한 지구인들에게는 그런 게 필요한 법이겠지.

그러나 나는 어떨까?





To  Be  Continued...




==========================================================================


:
위로
보이기/숨기기 가능합니다^^
«   2024/05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보이기/숨기기 가능합니다^^
보이기/숨기기 가능합니다^^
보이기/숨기기 가능합니다^^
RSSFe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