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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03-02] 울트라하 : 본편 제13화
창작의 샘터/울트라하 | 2010. 7. 4. 2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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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녀양------------! 거녀야아아앙-----------! 들리면 대답해애애!!!”

무정한 겨울 눈보라가 그들의 필사적인 외침을 먼지를 빗자루로 쓰레받기에 쓸어담듯이 가로채 도망가버린다. 서너 개의 사람 그림자가 두터운 방한복에 커다란 등산용 배낭을 짊어지고 스틱으로 눈바닥을 짚으면서 눈보라 때문에 한치 앞도 잘 보이지 않는 산길을 엉금엉금 기다시피하여 걸어가는 중이다.

“안되겠어요, 하라선배. 이런 눈보라 속에서는 잘못하다가 우리까지...”

“정말 속썩이는 애라니까 도대체가. 그렇게 잘 따라오라고 주의했건만.”

“일단 눈보라가 그칠 때까지 어디 안전한 곳으로 피해서 기다리죠.”

“아마 조금만 더 가면 여행자용 오두막이 하나 있을거야.”

그들은 길잃은 동료를 찾는 것에 지친 나머지 잠깐 숨도 돌리고 눈보라도 피할 겸 방금 미나라고 불리는 사람이 말한 지점으로 이동하기 시작한다.

그들 중 한명이 발걸음을 옮기다가 뒤를 돌아보며 중얼거린다.

“괜찮을까 거녀양. 이런 추위 속에서라면 동사하거나...”

“너무 걱정할 필요 없어요, 하라씨. 그애라면 한번 죽다 살아난 적도 있으니.”

“선배, 빨리 오세요. 저쪽에 오두막이 보여요.”

“그래... 하긴 목숨 하나는 바퀴벌레같은 애니까.”

도착하자마자 그들은 문을 세게 두드렸다.

오두막의 문이 열리고 회색 털옷을 입은 노인이 걸어 나왔다.




‘......여긴?’

동거녀는 반쯤 풀린 눈동자를 한곳에 고정시키려 애쓰면서 서서히 몸을 일으켰다. 그녀가 누워 있는 곳은 아무리 봐도 자연동굴로는 보이지 않는 어떤 석굴 안이었다. 어두침침하지만 어디선가 한줄기 희미한 빛이 굴 안을 밝혀주고 있었다. 촛불인지 뭔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왠지 마음을 포근하게 해주는 빛이다. 그녀가 일어난 것을 보고 방 한구석에 있는 화덕에서 뭔가를 조리하고 있던 사람의 그림자가 천천히 다가온다.

“야아, 정신이 들었네.”

거녀는 애매한 눈빛으로 그 사람을 바라보며 정신을 가다듬었다. 나는 분명히 선림언니의 고향마을에 휴가차 내려와서 등산을 하다가 눈보라에 길을 잃고...

“...네가 나를 구했구나?”

“운이 좋았어. 장작을 구하러 나갔다가 길목에 쓰러져 있는 걸 보았지 뭐.”

하나도 따뜻할 것 같지 않은 남루한 스웨터와 펑퍼짐한 바지에다 시대착오적인 기미까지 풍기는 노란 털목도리를 두른 그 소녀가 무덤덤한 얼굴로 답했다.

“그랬구나... 정말 고마워, 너 아니었으면 꼼짝없이 동태가 될뻔...”

“인사는 나중에. 지금은 일단 몸부터 녹여. 미음을 끓여올게.”

소녀가 건네준 나무접시에 담긴 미음을 후후 불어 입으로 집어넣으며 거녀가 물었다.

“여기서 혼자 사니?”

“전에는 가족들도 있었지만, 지금은 혼자야.”

“그런데 그 옷차림으로는... 춥지 않아? 난 이렇게 껴입고도 덜덜 떨리는데.”

“저언혀. 난 나우를 얼리는 설녀(雪女)거든.”

농담이라고 이해한 거녀는 스스로도 피식 웃으며 말한다.

“정말? 난 모78성운에서 날아온 우주인인데.”

소녀는 장작을 화덕에 집어넣다가 그쪽을 돌아보며 답했다. 말투에 웃음기가 배어 있었다.

“그거 영광이네. 편히 쉬다 가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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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트라하 ― 별에서 온 여왕

ウルトラハ ― 星からの女王さま

(C)央久プロ․NOW․ウルトラハ製作委員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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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rd  OPENING  :  FACE  THE  FUTURE  ★



아무도 지나가지 않은 길을

맨 먼저 지나가는 기분 (기분!)

아무도 해보지 않은 짓을

맨 먼저 저지르는 기분 (기분!)

도무지 쓸데없어 뵈는 일을

골라서 해치우는 기분 (Yeah!)


아직은 아직은 말할 수 없지

나만의 깜짝놀랄 비밀 (비밀!)

하지만 하지만 그때가 오면

함꼐 나누자 밝은 내일 (내일!)

마법의 주문은 어렵지 않아

Let's Face the Future (Yea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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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화 설녀의 환상을 보았다!

第13話 『雪女の幻を見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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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TS의무반원 선림의 고향인 가희마을에는 2월말까지도 영하의 날씨를 자랑하는 특이한 뒷산이 하나 자리잡고 있다. 낙수산이라 불리는 이 산에는 겨울만 되면 세찬 눈보라가 몰아쳐서 한다 하는 사냥꾼들도 접근하지 못했고 다른 계절에도 이상할 정도로 시원하여 가끔 이곳을 찾는 기상청 직원들을 당황하게 했다. 그 특유의 기온 때문에 옛날 왕조시대에는 이곳에 석빙고가 설치된 적도 있다고 전해지고 있다. 사람들은 이 마을과 명산의 이름을 합쳐 가희낙수(嘉姬樂樹)라고 불렀다.

거녀를 위시한 PETS대원들은 마지막 겨울 휴가를 얻어 놀러온 김에 이 산에 대한 소문을 듣고는 친척어른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산행을 강행한 끝에, 동거녀 분실이라는 대사건에 직면하게 된 것이었다.




“친구가 길을 잃었다고 했소?”

“예, 여기서 좀 떨어진 곳을 지나다가.”

“포기하는 게 좋을게요. 이쪽은 워낙 바람이 사나워서 눈속에 파묻혔다 하면 끝장이지. 게다가 그 설녀가 나오는 계절에는...”

“설녀가 나온다거나 하는 소문은 그저 전설이 아닙니까?”

하라의 질문을 들은 회색옷의 노인은, 피요양이 권한 커피를 들고 한참동안 뜸을 들이다가 겨우 말을 잇는다.

“전설로만 아는 사람도 있겠지만, 나는 직접 그녀석을 보았소. 게다가...”

“그녀석에게 가족이라도 잃은 건?”

“날카로운 아가씨구만. 어떻게 알았지?”

“저기 벽에 걸려있는 사냥총은 구식이지만 상당히 손질이 잘 돼 있고 빈틈없이 장전도 되어 있어서 얼마든지 쓸 수 있죠. 게다가 구경으로 봐서는 사슴이나 곰을 잡으려고 갖다놓은 것은 아닌 듯하고. 저건 코끼리 사냥에도 쓸 수 있을 정도니까요. 그리고 설녀의 얘기를 할 때 영감님의 눈빛은...”

“내 눈빛?”

“금방이라도 잡아죽이고 싶다는 분노, 그것이 언뜻 비쳤죠. 그런 눈빛은 평생 한가지 사냥감을 쫓아다닌 사람에게서나 볼 수 있는 것이지요. 그 흰고래를 쫓던 누군가처럼.”

노인은 고개를 끄덕이며 커피를 한모금 마시고 얘기한다.

“그말대로 난 그녀석을 죽이려고 반평생을 여기서 보냈소. 처자가 녀석이 일으킨 눈사태에 깔려 골로 갔지. 난 살아남은 아들놈 하나를 돌보는 일도 남에게 맡긴 채 녀석을 쫓아다니기 시작했다오. 그게 벌써 20년 전인가...”

“어떤 녀석이길래 눈사태까지 일으키죠?”

“말로는 설명할 수 없을 만큼 악독하지. 주민들은 산의 수호신이니 뭐니 하고 겁을 내지만 난 안 믿어. 그녀석은 악마라오. 난 녀석을...”

노인의 주름살 가득한 얼굴에는 가족을 잃은 사람의 쓸쓸한 표정과 고요히 타오르는 복수심이 어지럽게 교차하고 있었다. 노인은 끝내 말을 잇지 못했다. 옆에서 지켜보던 미나와 선림의 얼굴에도 측은함이 떠올라 있었다. 하라는 냉정함이, 피요는 호기심이 측은함보다 앞선 얼굴이었다.

“...이제 난 가봐야 되겠수다. 커피 고마웠수. 마침 눈보라도 그쳤구만.”

그 나이든 남자는 벽에 걸어둔 총을 챙겨들고 미리 정리해 두었던 배낭을 단단히 둘러맨 뒤 문을 조심스레 열고 밖으로 나섰다. 하라는 냉정한 얼굴로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중 그의 바지 뒤춤에 매달려서 희미한 빛을 내고 있는 붉은 돌을 발견하고 의심스런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노인의 모습은 얼마 안 가 하얀 설경 속으로 녹아들듯이 사라졌다.

피요가 입을 열었다.

“복수에 불타는 중년남이라, 왠지 너무 통속적인 전개 아녜요?”

하라가 일말의 동요도 없이 그 말을 받았다.

“단지 작가의 능력 부족이지.”

...너무들 하는군.




“아하하하하하, 이거 참 신나는데, 응- 이렇게?”

“그래, 그런 다음에는----- 자, 간다!”

“하아앗♥”

소녀의 이름은 ‘겨니’라고 했다. 둘은 눈보라가 그치기를 기다리며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누었고, 산 속에서 살아가는 데 따르는 어려움에 대해서도 대화를 했다. 그리고 눈보라가 가라앉은 뒤에 둘은 밖으로 뛰쳐나와 간만의 여흥을 즐기고 있었다. 겨니의 동굴 위쪽에 그다지 경사가 가파르지 않은 언덕배기가 하나 있어서, 그 위에서 나무로 만든 눈썰매를 타거나, 눈뭉치를 굴려 아래로 내려가는 것을 지켜보거나, 눈바닥에 구르며 자기 몸도장을 찍거나 등등 여러 가지 놀이가 가능했다. 처음 지구에 왔을 때는 초겨울 냉풍에도 감기를 앓던 거녀였으나, 이제 2년도 넘게 체류한 뒤에는 좀 익숙해진 모양이다.

“그런데 정말로 그것만 입고도 춥지 않아?”

겨니의 한겨울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가벼운 차림에 신경이 쓰였는지 거녀가 물어본다.

“절대 절대 괜찮아. 그 이상은 묻지 말기.”

아마도 특이체질인가보다, 라고 거녀는 자기 멋대로 납득해버렸다.

“옛날에는 동생이랑 참 많이 했었어. 이런 것들.”

지금은...이라고 물으려다 거녀는 말을 그대로 삼킨다. 겨니의 얼굴에 언뜻 어두운 표정이 스쳐지나가는 것을 느꼈던 것이다. 무슨 일이 있었을까?

거녀는 화제를 돌려야 했다.

“정말 아름다운 산이다. 이런 데서 사니까 힘들긴 해도 좋을 것 같애.”

“그래, 아름답지. 하지만...”

“응?”

“저 아래 사람들은... 그걸 망치고 있어. 산이 아파하는데도 그걸 모르고.”

“아..............”

거녀는 산중턱에 대규모 리조트를 포함한 스키장 건설 계획이 진행중인 것을 떠올리고 있었다. 지나오면서 흘끗 본 정도이지만 어째 스키장치고는 지나치게 산을 깎아먹는 것은 아닐까 싶어 안타까웠다. 시설의 면적이 평균을 훨씬 넘었던 것이다.

내후년에는 반대편에 골프장이 지어질 거라는 얘기도 들었다.

“저, 나 이제 그만 가봐야겠어. 일행이 걱정할테고 해서. 너한테도 너무 폐를 많이 끼쳤고.”

“아쉽네. 좀더 같이 있고 싶었는데... 다시 와줄래?”

“그럼, 가기 전에 한 번 더 와야지. 그 장작패는 법, 또 배우고 싶어. 또 사슴가죽 다듬는 법이나 돌팔매질도 다시 보고 싶고. 지푸라기로 만든 인형들도.”

겨니의 하얀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어느덧 해가 지려고 하고 있었다. 겨니는 간단한 채비를 마치고 나와서 거녀를 등산객들이 잘 다니는 길까지 안내해주고는 돌아섰다.

거녀가 뭐라고 말하기도 전에 그 모습은 설경 속으로 빨려들듯이 사라졌다.

“어어, 하라선배 저기, 내가 지금 보고 있는 거 선배도 보고 있어요?”

“거녀양같이 생긴 멍청한 물체라면 나도 보고 있어.”

“왜들 그래요, 기껏 살아돌아왔더니만~ 아앙~”

“그나저나 다행이다. 어서 내려가자. 선림이네 친척들도 걱정할 거야.”

“기분나쁜 눈산님, 안녕.♥”

선림의 말에 거녀만 빼고 모두가 동의하는 눈치였다.




“있잖아요 하라선배. 제가 오늘 설녀를 만났다면 믿겠어요?”

“내가 믿기를 바래?”

“아뇨, 그냥 농담이에요.”

“거녀양을 구조한 사람과는 별도지만, 설녀라고 불리는 뭔가가 존재하는 것 같다는 생각은 들어.”

“네?”

하라는 간단하게 오두막에서 만난 노인 얘기를 해 주었다. 거녀는 추위에 오돌오돌 떨며 이불을 머리끝까지 포옥 덮어쓰고 그 얘기를 들었다. 옆에서는 선림과 미나가 친척 동생들과 함께 화투판을 벌여놓고 정신없이 몰두해 있었다. 피요양은 한쪽 구석에서 역시 이불을 덮어쓰고 책을 읽는 중이었다. 거녀는 애매한 표정으로 방을 한바퀴 둘러본 뒤 다시 하라에게 시선을 고정하고는 물었다.

“그런데 그 영감님이 쫓는 설녀란 건 어떤 걸까요?”

“그것에 대해서는 뭐라고 말을 안 해 주었으니 모르지. 하지만 코끼리도 잡을 정도로 대구경의 총을 가지고 쫓는다면 굉장히 위험한 동물이 살고 있는 것은 틀림없어. 단순한 망상 때문에 비싼 총을 새로 구입하여 들고 다니는 바보는 아닌 것 같아 보였으니까.”

거녀는 어쩌면 겨니의 가족도 그 설녀에게... 라는 생각을 했다.

어둠이 짙게 깔리고 불이 하나둘씩 꺼진다.




동거녀는 어지럽게 울려퍼지는 사이렌 소리에 잠을 깼다. 마을 이장이 뭔가 고래고래 소리지르며 대피하라고 하는 것 같았다. 바깥에서는 아우성과 애 울음과 고함소리가 한데 뒤섞여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옆에서 자던 동료들도 모두 일어나 부시시한 얼굴로 짐을 챙기고 옷을 껴입고 있었다. 거녀는 피요양에게 매달려 뭔일인지 물어보았다. 피요 역시 졸리는 얼굴에 안경을 고쳐쓰며 말한다.

“어떤 괴수가 스키장 건설 현장에 나타나서... 여기도 위험하니 대피하래요.”

하지만 방송이 워낙 중구난방이라 자세한 것은 알 수 없었다.

거녀는 대피호로 가지 않고 중간에 슬쩍 빠져나와 몇백 미터밖에 떨어져있지 않은 산중턱의 건설현장으로 달려갔다.

“누가 거녀양 못봤어요? 방금까지 내 옆에 있었는데...”

“속썩이는 아가씨네 정말. 내가 가서 찾아올테니 빨리 대피해.”

하라대원이 배낭에서 DD라이플 한 자루를 꺼내어 들고 하얀 입김을 내불며 민첩하게 뛰어간다. 시골마을의 새벽 공기가 얼음장같이 차게 느껴진다.




거녀는 누군가의 집 근처에 세워져 있던 사천리 자전거를 억지로 끌어내어 타고 달렸다. 왠지 누군가가 그곳에서 자기를 부르고 있는 것만 같아서. 더 빨리 더 빨리 그곳으로 달려갔다.

뒤에서 누군가 부르는 소리가 들렸지만 무시했다.

건설현장에는 아직 다 지어지지 못한 리조트 건물이 몇 개 허여멀건한 벽들을 내보이며 엉거주춤하게 서 있었고, 여기저기 자재와 건설기계들이 내버려진 물건처럼 어지럽게 쌓여 있었다. 그 한가운데에서 뭔가 거대한 형체가 네 다리로 날뛰는 것이 분명하게 보였다.

마치 하얀 삽살개를 연상케 하는 털투성이의 거대한 생물이 왠지 슬프게 들리는 울음소리를 내며 골조를 무너뜨리고 벽을 허물어뜨리는 중이었다. 괴물이 내지른 짤막한 꼬리에 옆에 있던 건설기계들이 차례로 쓰러져 간다.

거녀는 신속히 ‘두․세트라․바시스’ -그 유명한 보랏빛 부채- 의 에너지를 개방하여 울트라하의 모습으로 변신했다. 희미한 새벽빛을 받으며 보라색의 거인과 백색의 괴수가 망가진 건물을 사이에 두고 대치했다.

잠시동안 서로의 움직임을 살피던 두 형체가 한데 엉겨붙어 엎치락뒤치락 몸싸움을 벌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괴물의 슬픈 울부짖음에, 거인의 펀치가 일순 멈칫했다.

//.........너는..........?//

//.........네가..........?//

그들은 한동안 서로의 팔을 붙들고 믿을 수 없다는 태도를 보이며 정지해 있었다. 인간의 귀에는 들리지 않는 공명파(共鳴波)가 그들 사이에는 통했다.

//너, 정말로 설녀였니......?//

//너야말로, 진짜 우주인...이었어...?//

//대체 왜 이러는 거야? 저 산이 네 집이고 네가 산을 아끼는 건 알지만 이건 너무 지나치잖아? 그만둘 수 없겠니??//

//지나치다고? 이걸 보고도 그런 소리가 나올까??//

거대한 삽사리는 젖은 눈망울로 울트라하를 쳐다보며 지상건물 하나를 부숴버리고 지하실을 임시로 덮은 천을 거칠게 벗겨냈다.

그 아래에는 방사능 경고 마크가 붙은 수십 갤론의 드럼통이 깊숙히 묻혀 있었다. 무엇인지는 말하지 않아도 알만했다.

//이제는 알겠지? 그러니까 나를 막지 마! 아무리 막으면 너라도!//

거대 삽사리는 흰 털을 휘날리며 재빠르게 공격을 가해왔다. 울트라하는 겨우겨우 그 발톱을 피해가며 몸의 균형을 잡기 위해 비틀거렸다. 삽사리의 입에서 얼음장같은 냉기가 뿜어져 나왔고 울트라하의 몸 절반이 꽁꽁 얼었다. 거녀는 급히 손에서 발생하는 초고열파로 몸을 녹여가며 도망치고 있었다. 울트라하는 삽사리의 공격을 피하면서 공격 자세를 취했으나 광선기를 날리려다가도 주저하는 빛을 보이고 있었다. 반격을 하려고 할 때마다 겨니의 모습이 삽사리 위에 겹쳐져 눈에 어른거렸던 것이다.

‘산이 아파하는데도...... 그걸 모르고.......’

마침내 도망만 다니다가 기운이 다한 울트라하는 삽사리의 육중한 두 앞발 아래에 깔려 허공을 올려다보게 되었다. 거녀는 삽사리의 날카로운 이빨과 입에서의 냉기가 자신의 얼굴을 향하는 것을 느끼고 괴로워했다.

그때 전혀 예상치 못한 방향에서 대구경의 탄환이 날아와 거대 삽사리의 가슴 아랫부분을 정통으로 맞추었다. 거녀는 당황하여 탄환을 막으려고 몸을 일으켰으나 이미 두세 발의 탄환이 더 날아와 피를 튀기고 말았다. 거대 삽사리는 괴로운 신음 소리와 함께 엉뚱한 방향으로 비틀거리다가 근처의 골조 위로 쓰러져 꿈틀거리고 있었다.

탄환이 날아온 방향에는 피로에도 불구하고 이글거리는 눈빛을 유지하며 총을 겨눈 채 그쪽을 응시하는 회색옷의 노인이 있었다.

거녀는 재빨리 행동해야겠다고 생각하고 그 자리에 일어서서 노인의 시야를 방해하며 삽사리 쪽으로 다가가 두 손을 그녀에게 갖다댄다. 그리고 다음 순간, 울트라하의 전신이 밝은 무지개빛으로 빛나며 두 손에 에너지가 집중되어 일종의 역장(力場)을 형성했다. 접촉한 상대의 비축 에너지를 일순간에 중화시켜 무력화하는 방어기술, 이그조스팅 필드를 사용한 것이다.

노인이 시야를 확보하려고 자리를 옮기는 동안에 거대 삽사리의 모습은 사라지고 대신 그 자리에는 심하게 총상을 입은 겨니가 엎드려 있었다.

그때, 또 눈보라가 몰아쳐 그 주변을 백색의 장벽으로 둘러싸기 시작했다.

그쪽에 도착하여 울트라하의 사투 아닌 사투를 지켜보며 뭘 할까 고민하던 하라대원마저도 길을 잃고 헤맬 정도로 강력한 눈보라였다.




동거녀는 인간의 형태로 돌아와 겨니를 바로 눕히고 어떻게든 살리려고 애쓰고 있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유학오기 전에 회복 촉진 염력을 열심히 배워두는건데. 상급교육기관인 벨․라카데미아의 초능력 개발 코스에서 라하세르의 성적은 그다지 좋지 않았다. 이럴 때 이스펄 언니가 곁에 있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겨우 정신을 차린 겨니였으나, 거녀를 바라보는 눈길은 냉랭하기만 했다. ‘너도 결국 그런 자들의 편인 거니?’라고 힐난하는 듯이. 게다가 뭔가 말을 하려 해도 호흡이 거칠어지고 있었다. 체온은 원래 낮은 것인지 아니면 내려가고 있는 건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나빠지고 있는 것만은 분명했다.

그 곳에 눈보라의 장막을 뚫고 노인이 나타났다. 그 행색을 본 순간 거녀의 뇌리에 하라선배가 말한 그 노인의 얘기가 떠올랐다.

노인이 냉정한 얼굴로 총을 겨누었다.

“비켜 주시오.”

“잠깐만요! 무슨 일인지 모르겠지만 이 애는...”

“...아가씨가 그 애와 어떤 사이인지, 어떤 은혜를 입었는지 난 관심없수. 내가 알고 싶은 건 대체 몇 발이나 맞아야 그 괴물이 숨을 거둘까 하는 것 뿐이지. 내 아내와 아이들이 눈사태에 휘말려 죽던 그날 밤에 나도 죽어야 했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나를 이렇게 살려둔 건 저 녀석을 없애라는 하늘의 뜻일게야.”

그때 호흡을 고르고 있던 겨니가 고통을 참고 말하기 시작했다.

“말 한 번 잘하시는군, 아저씨. ... 마야가 죽은 건 나도 슬펐어. 당신이 생각하는 것처럼 내가 기뻐서 춤이라도 추었을 줄 알아? ... 그럼 나도 한가지 물어볼까, 대체 우리 할머니의 심장을 가져가서 뭘 하려고 했지? ... 그것을 돌려주지 않은 사람은... 당신이었어. 그래서 나는 그걸 받으러 갔던 거고!”

그때 둘 사이에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당황하고 있던 거녀의 머릿속에 어떤 이미지가 전해지기 시작했다.

말로 하는 것보다 훨씬 생생하고 진실된...

그 어느 날의... ‘기억’.




설녀의 계보. 오랜 세월을 전해내려오는 추운 나라의 혈통.

그들의 ‘심장’. 산의 영령을 봉인해 둔 석영의 결정.

한 남자의 실수. 여행중 설녀에게 구조되었으나 ‘심장’을 들고 도주.

영령의 가호가 사라지고, 가족이 죽어간다. 설녀는 마침내 한 명만.

심장을 돌려받으러. 위험을 무릅쓰고 산 아래 그의 집으로.

그때 일어나는 눈사태. 남자의 집이 휩쓸린다.

설녀는 거대하게 변하여 그것을...

그것을...




“...그랬나, 그랬었나! 그때 내가 살아날 수 있었던 것은...”

노인은 총을 거두고 바지 뒤춤에 매달아 두었던 붉은 돌을 끄집어내어 휘둥그래진 눈으로 가만히 들여다본다. 돌은 변함없이 잔잔하게 반짝이고 있다. 그러나 그 뒤편에는 생명을 주무르는 무언가가 깃들어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그러더니 그만 그 자리에 털썩 무릎을 꿇고 주저앉고 만다.

“......제엔장, 그럼 지난 20년 간은 도대체... 뭣 때문에... 얼어죽을...”

거녀는 아까의 이미지를 정리하려고 애를 쓰지만 아직 머리가 혼란스러워서 제대로 입을 놀리기조차 힘들었다. 그래도 뭔가 해야만 할 것 같은데 도무지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르겠으니. 히메, 이렇게 황당한 일도 있을 수 있는 건가요?

겨니는 여전히 차가운 눈으로 그를 바라볼 뿐이었다.

노인은 잠시동안 주저앉은 채로 중얼중얼하다가 겨니 쪽을 바라보며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겠다는 얼굴로 입을 열었다.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모르겠는건 나도 마찬가지야... 이 불길한 돌, 가져갈테면 가져가든지 말든지. 이젠 다 귀찮아... 이 말종같은 세상.”

그리고 그는 그 자리에 힘없이 쓰러졌다. 붉은 돌을 든 오른손을 겨니 쪽으로 향한 채. 겨니는 거녀의 부축을 받아 힘겹게 일어서서 그 돌을 되찾았다. 돌을 손에 쥠과 동시에 그녀의 몸을 붉은 기운이 감싸기 시작하면서 상처가 아물고 신음소리가 잦아들기 시작했다. 그녀의 하얀 얼굴에 활기가 돌아왔다.

생체 에너지의 보존에 쓰이는 ‘인피니트 버퍼’야! 거녀는 빨리도 납득했다.

겨니에게 있어서 그것은 이 산만큼이나 소중한 것이었으리라. 혈족의 생명이고 또한 소중한 유산인 그것을, 인간의 욕심 때문에 잃어버릴 뻔한 것이다.

하지만 노인은... 정말로 사과할 마음이 없었던 걸까?

거녀는 지구인의 마음은 정말 알다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겨니는 붉은 돌을 손에 쥔 채 눈보라 속으로 서서히 걸어갔다. 거녀에게 보내는 냉랭한 눈길은 거두었지만 여전히 얼굴에는 웃음이 돌아오지 않은 채로.

사라져 가는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거녀는 그녀의 평범한 옷차림 대신에 눈발과 함께 펄럭이는 하얀 드레스를 보았다는 착각에 휩싸였다.

그리고 노인의 시신도 어느 샌가 눈에 파묻혔는지 사라져 버렸다. 무식하게 큰 사냥총만 남기고서.

무장을 갖춘 하라대원이 눈보라를 뚫고 달려온 것은 그 직후였다. 동거녀는 그때까지도 겨니가 사라진 방향을 바라보며 자기도 모르게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사실은 너와 친구가 되고 싶었어.

정말로 너에게 도움이 되고 싶었는데...

난 아무것도 하지 못했어.

난...

아침이 다가오면서 눈보라는 점점 잦아들었다.




PETS멤버들의 신고로 지방 경찰이 조사에 나선 결과, 리조트 건설업체는 다량의 폐기물을 산에 무단으로 버리기 위해 위장건설을 행하고 있었음이 밝혀졌다. 게다가 그들의 표면상의 주목적이었던 스키장 건설도 불법적인 로비를 통해 허가를 얻은 것임이 판명되어, 대표자는 구속되었고 업체는 해체를 면치 못하게 되었다.

그러나 거녀는 정말 그것만으로 끝나는 것일까, 라고 스스로에게 물어보았다.

‘아파하는 산’은 이곳 하나뿐이 아닐텐데.




거녀와 일행들이 주민등록부에서 확인해본 결과, 노인의 이름은 임석우로 밝혀졌다. 낙수산에서 의문의 실종을 당했다가 3년만에 돌아와서 떼부자가 되었다느니, 이상한 붉은 돌을 보물단지처럼 아꼈다느니, 원인불명의 눈사태로 아들 하나를 제외한 가족 전원이 몰사했다느니 하는 이야기들이 마을 여기저기에 전설처럼 퍼져 있었다.

거녀 일행은 노인이 남긴 사냥총을 들고 유일하게 살아남은 아들인 임재녕씨를 찾아갔다. 그는 그 근처에서 운수업을 경영하는 평범한 30대의 아저씨였다.

“이거 정말 감사합니다. 이건 아버님께서 특별히 아끼시던 총인데 그 눈사태 이후 찾을 수가 없게 되어서, 어떻게 하나 고민했었지요. 이젠 아버님께서도 편히 잠드실 수 있을 겁니다.”

좀 이상한 기분이 드는 것을 억누르고 거녀는 질문을 던졌다.

“그래도 좀더 수색해 보는 것이 좋지 않을까요? 물론 제가 보았을 때에 돌아가신 것은 맞는 것 같지만 잘 찾아보면 시신이라도...”

재녕은 묘하다는 표정으로 그들을 쳐다본다.

“무슨 말씀이시죠?”

거녀의 심장이 빨리 뛰기 시작했다. 하라와 피요가 서로 마주보았다.

“아버님은 이미 20년 전에 돌아가셨습니다. 그 눈사태로...”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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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rd  ENDING  :  HARMONY  ☆




아침에 서둘러 달려가다

그사람과 경쾌하게 충돌! (꽈당)

뭐라고 사과를 하려 했지만

야속한 입술은 천근! (만근)

얘기할수 있을까 다시 만나면

뭐라고 해야하나 그땐 (글쎄 약간 무릴까)


저녁에 신나게 퇴근하다

그사람과 보기좋게 접선! (럭키)

한마디 인사를 건네 보지만

야속한 소음이 방해! (빵빵)

고백할수 있을까 먼 장래에

당신이 왠지 좋다는걸 (랄랄 라랄 라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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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央久プロ․NOW․ウルトラハ製作委員會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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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자 로고가 붙은 빌딩의 최고층에서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누고 있다.

“결국 그렇게 되었나, 자네의 보고대로라면, ‘그 원소’는...”

“결국 ‘글로우나이트’는 그녀에게 돌아갔습니다. ‘설녀’에게로...”

범상치 않은 얼굴의 사나이가 흰 양복의 주름을 펴며 중얼거렸다.

“재미있는 일이지. 고대 음만제국이 인큐버스의 전횡으로 인해 냉각화된 이래, 수많은 노예종족들이 추위에 적합한 체질이 되도록 개조를 받았었어. 그런데 결국 끝까지 살아남은 것은 그 ‘설녀’ 종족 뿐이었다... 무엇이 그들을 그렇게 강하게 만든 걸까?”

“역시 글로우나이트...일까요.”

“아마도.”

남자는 서류를 돌려주며 발도제라는 남자에게 지시를 내린다.

“하여간 납량특집 치고는 별로 뒤끝이 좋질 않군. 이건 극비로 분류하여 철해두게. 누가 봤다가는 만화 스토리 쓰느냐고 긁어댈지도 몰라.”

“그럼 전 이만...”

남자는 문이 닫히는 것과 동시에 자리에서 일어나 대형 글라스 쪽으로 걸어간다. 떠오르는 태양을 바라보는 그의 눈에는 아무런 감정도 없다.

아주 자그마한 흥분을 제외하고는.

“......이제 더 많은 ‘손님’들이 찾아오겠군. 이길 수 있겠는가, 라하세르?”

여객기 한 대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빌딩 저 위로 지나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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