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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05-12] 3인의 구직자
패러디 왕국/건담관련 | 2009. 11. 24. 2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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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인의 구직자 >>

~ Aim  For  A  Job! ~

A Parody written by ZAMBONY@hitel.net

1998/0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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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가 어려워지다 보니 요즘 직업 소개소를 찾는 사람들도 부쩍 늘어났다. 그러나 이들을 두루 만족시킬 만한 일자리를 찾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그래도 혹시나 어딘가 빈자리가 나지 않을까 하는 희망에서, 오늘도 그들은 계속해서 사무실 문을 두드린다. 그러한 희망도 없다면 인류는 오래 전에 멸망했을 지도 모른다. 하긴 공해에 시달리는 지구에게는 그 편이 더 좋았을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안경을 고쳐 쓰고 내 앞에 앉아 있는 세 사람을 둘러보았다. 시간이 모자라고 사람은 밀려드니 한꺼번에 세 명씩 상대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러한 면접은 아무래도 효율이 올라가는 대신 그만큼 신빙성은 줄어들기 마련이다. 지금 내 앞에는 고약한 인상을 하고 붉은 머리띠와 붉은 망토로 치장한 삐죽머리의 싸움패같이 생긴 청년 하나와, 계절에 어울리지 않게 초록색 민소매 티셔츠에 청바지 차림을 한 준수한 용모의 미소년 하나, 그리고 간편한 활동복 차림에 벨트지갑을 메고 호기심 가득한 얼굴을 한 개구쟁이 같은 소년 하나가 앉아 있다.

나는 그들의 이력서를 살펴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도몬 카슈 씨. 스페이스 콜로니 네오저팬 출신. 직업 무투가(武鬪家) 겸 건담 파이터. 13회 건담 파이터 우승자. 특기는 G파이팅, 각종 격투기, 일본 검술, 에어카 운전, 돌아다니며 사람찾기, 맨손으로 총알 잡기...”

“그런 걸 다 읽을 필요는 없다. 내게 맞는 일자리가 있는지만 말해줘.”

“글쎄요. 저희들로서는 당장에 뭐라고 말씀드리기가 어려워서... 당신에게 어울리는 자리라면 무술도장의 사범이나 직업적 해결사 정도겠지만 그쪽에는 현재 빈자리가 없습니다. 다음 G파이트가 시작될 때까지 먹고 살 길이 막막해진 사람은 당신 혼자만이 아니거든요.”

“그런가... 그럼 한가지만 더 물어 보지.”

그는 웃옷 주머니에 손을 집어넣더니 반쪽난 사진 한 장을 꺼냈다. 그는 사진을 내 앞으로 내밀더니 단도직입적으로 질문을 던졌다.

“이 남자, 여기에 찾아온 적 있는가?”

나는 사진을 받아 들고 한참 들여다보았지만 고개를 갸우뚱거릴 수밖에 없었다. 사진에는 둥근 안경을 끼고 저팔계같은 얼굴을 한 통통한 중년 남자가 찍혀 있었다. 거리의 모습으로 보아 홍콩에서 찍은 사진 같았다.

나는 사진을 돌려주며 말했다.

“여길 찾아오는 사람은 많습니다만 이런 자는 본 적이 없군요. 누굽니까?”

“당신과는 관계없는 일이야.”

나는 그 남자가 출연료를 떼먹고 달아난 그의 전(前)고용주일 것이라고 짐작했다. 요즘에는 이런 일이 자주 일어나니까.

“결과는 좀 있다가 말씀드릴 테니 잠시 기다려 주시고... 자, 다음 분?”

싸늘한 바람이 돌 정도로 무표정한 얼굴을 유지하고 있던 그 소년이 이쪽을 돌아보았다. 그는 기다리다 지친 듯 잠시 창 밖을 조용히 바라보고 있던 중이었다.

“히이로 유이 씨. 본명 불명. L-1 콜로니군 태생. 직업 용병 겸 에이전트. 한때 생크킹덤 왕실 근위대에서 복무. 특기는 MS조종, 승마, 운전, 사교춤, 접골, 고공 낙하, 시설 침투, 시스템 해킹, 자폭, 사격, 펜싱, 자물쇠 따기, 농구, 밥먹듯이 전학 다니기, 부품 훔쳐 수리하기, 구급차 강탈, 폭탄 설치 및 해체...”

“긴 말 하지 않겠다. 일자리는 있는가?”

어째서 오늘은 이런 시건방진 녀석들만 걸리는 건지 모르겠다.

“당장 말씀드리기는 곤란한데요. 아시다시피 지금은 평화시라서 당신 같은 뛰어난 병사를 필요로 하는 곳은 그리 많지가 않습니다. 전투와 관계없는 다른 특기를 살려도 좋겠지만, 그러자면 자격증을 새로 따오시는 것이 유리할 겁니다. 지금은 자격증 시대니까요. 아무리 재주가 좋아도 자격증으로 증명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얘기지요.”

“예상대로군.”

그는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재빠른 동작으로 허리춤에서 리볼버를 꺼내 들고 한치도 흐트러짐 없이 내 머리를 겨누었다.

“일자리를 당장 마련해 주지 않으면 ... 너를 죽이겠다.”

나는 짐짓 놀란 척 하면서 그를 달래야 했다. 고약한 일을 하다 보면 이런 사람도 가끔 만나게 되는 법이다.

“이성적으로 생각하셔야죠. 나를 죽인다고 해서 없는 일자리가 갑자기 생길 것 같습니까?”

“적어도 시체 치우는 일은 생기겠지. 장의사도 나쁘지는 않아.”

장난이 아니군. 아무래도 작전을 바꾸어야겠다.

“아무 죄도 없는 민간인을 전쟁터도 아닌 곳에서 죽인다면 퀸 릴리나님께서 어떻게 생각하실지 생각해 보았습니까?”

사실 별로 기대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이 방법은 그런대로 효과가 있었나 보다. 소년은 또 잠시 동안 뭔가를 생각하더니 천천히 총을 쥔 손을 아래로 내렸다. 왠지 그의 두 어깨는 힘이 빠진 듯 했다.

“...난 이제 누구도 죽이지 않아. ... 죽이지 않아도 돼...”

나는 안도의 숨을 내쉬고는 그 틈을 타서 세 번째 지원자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그는 자기 차례가 가장 나중이라서 짜증이 난 것처럼 보였다.

“가로드 란 씨. 출신지 불명. 직업 벌쳐. 특기는 MS강탈 및 조종, 미소녀 유괴, 금고 뒤지기, 기계 수리, 고철 수집, 방해하는 사람 잠재우기 등등. 수십 대 얻어맞고도 금방 회복하는 기적의 얼굴을 가지고 있으며...”

“그게 바로 접니다. 좋은 일자리가 있었으면 기쁘겠는데요.”

그러나 내가 보기에는 이 친구의 경력은 아까의 두 사람보다 더 비참했다. 게다가 쓸만한 재주도 그다지 많아 보이지는 않는 것 같다. 그 잘난 얼굴로 코미디언이나 하면 또 모를까.

“에... 뭐라고 말씀드려야 좋을지 좀 난감합니다만, 귀하의 재능은 이런 조직적인 현대 도시에서는 별로 쓸만하다고는 할 수 없겠는데요. 차라리 전쟁으로 인해 전 지구가 폐허로 변한 뒤라면 살아남기에는 좋을지 몰라도...”

“그건 너무해요. 고물상이라도 할 수 있다면 열심히 하고 싶은데... 저는 혼자 몸도 아니라고요.”

15세밖에 안 돼 뵈는 소년이 홀몸이 아니라는 것은 무슨 뜻일까?

“고물상 자리는 이미 어제 찾아온 사람들이 다 차지해 버렸습니다. 레이, 아시타, 맥스웰, 레즈너, 붓호 등등. 애석하지만 남은 자리가 하나도 없어요.”

나는 또 한바탕 벌여야 하는가 하고 걱정했지만 소년은 뜻밖에도 선선히 돌아섰다. 그의 표정에도 한 가닥 깊은 수심이 감돌고 있었다.

“큰일났네. 티파에게 뭐라고 하지...?”

“일단 신청서를 접수시켜 주시면 며칠 내로 다시 한 번 알아볼 수도...”

“앓느니 죽지! 차라리 내가 다른 데 가서 알아보겠어요. 그럼... 달밤에 다시 만납시다.”

내가 이 뜻모를 인사말에 당황하여 멀뚱히 서 있는 동안 소년은 사무실을 나서서 어딘가로 가 버렸다.

옆을 돌아보니 아까의 그 청바지 소년도 어느새 사라져 버리고 없었다. 정말 바람 같은 족속들도 다 있군.

오직 삐죽머리의 열혈청년만이 희망을 버리지 않고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이거 죄송합니다. 상담이 길어지다 보니 결과를 말씀드린다는 게 좀 늦어졌군요.”

“정말로 가망이 없는 건가?”

“당신이 하기에 달렸지요. 혹시 아까 말한 것들 외에 다른 특기는 없습니까?”

그는 잠시 머리띠를 잘근잘근 씹어 대며 잘 돌아가지 않는 머리를 열심히 굴리더니 갑자기 생각났다는 듯 나에게 말했다.

“하나 빼먹은 게 있었어.”

“뭡니까?”

“설거지.”

그는 마침내 일자리를 얻었다.




- 後記 -



나중에 들어온 소식이지만, 그 청바지의 미소년은 결국 어딘가의 정부 기관에 자리를 얻었다고 한다. 무슨 일을 하는 조직인지는 알기 힘들었지만 마치 펜타곤을 연상시키는 별모양의 마크가 박힌 재킷을 입은 그의 사진이 일간신문에 조그맣게 실려 있었다. 물론 사진의 초점은 그가 아니라 그가 수행 중인 어떤 유명한 인물에게 맞춰져 있었다. 누구인지는 말하기 곤란하지만, 막강한 카리스마를 무기로 대통령에 출마한 유망한 여성 지도자라는 것만 밝혀 두도록 하자.



그 고철상 소년에게서는 끝내 소식이 오지 않았다.

그러나...

보름달이 뜨는 달밤만 되면 어째 기분 나쁘게 생긴 붉은 혓바닥의 MS 하나가 우리 직업 소개소 주위를 돌아다니며 무언의 시위를 하는 모습이 자주 보이기 시작했다. 그 때문에 소장은 노이로제에 걸려 입원해야 했고 나는 일을 잘못 처리한 책임을 지고 영구 휴가를 신청해야 했다.

이제 내일은, 내가 직업 소개소를 찾아가야 되겠지...



--- 카므란 브룸, 전직 공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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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 ZAMBONY 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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