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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01-01] 울트라하 : 본편 제18화
창작의 샘터/울트라하 | 2010. 7. 4. 22:31
 




코발트 블루의 물결이 솟구쳐오르는 바로 그 곳에 그녀들이 서 있다.

“말해봐 라하세르. 너는 무엇 때문에 여왕이 되려고 하지?”

“...생각해 본 일도 없었어요. 오직 여왕이 된다는 것 하나만을 목표로...”

“정말 구제불능이군. 너에겐 자격이 없어. 너는 본국으로 돌아가야 해.”

“그건 너무해요! 이제까지 얼마나 노력해왔는데...”

“목표가 있다 해도 그 의미를 모른다면 어떤 노력을 해도 헛일이야!”

순간, 진홍색의 섬광과 함께 상대는 은색의 거인으로 변하여 광선을...

“히, 히메-!!!”

허억 하는 외마딧소리와 함께 동거녀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전신이 땀으로 흠뻑 젖어 있다. 마치 장거리 경주를 마친 선수처럼 숨가쁘게 심장이 뛰고 있다. 방 한구석에는 아롱이가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 쌔근쌔근 잘도 자고 있다.

그녀는 손을 뻗어 이부자리 옆에 놓여있던 가오가이곰 전등을 켜고는 이마의 땀을 훔친다.

“......꿈...이었나......”

창 밖으로 아직 채 지나가지 않은 밤의 어둠이 조용히 흘러가고 있다.

그리고, 소녀의 눈썹과도 같은 초승달을 배경으로 한 대의 우주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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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트라하 2001

ウルトラハ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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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OPENING  :  LIGHT  OF  COURAGE 



Shining! 용기의 빛은

Flying!  결코 꺼지지 않아

Trying!  정의의 마음은

Rising!  모든 것을 뛰어넘는 힘


우리가 영원할거라 믿었던 것들이

어느날 갑자기 허무하게 사라진다 해도

우리가 함께할거라 바랬던 이들이

어느날 갑자기 우리곁을 떠난다 해도

다시한번 일어서자 푸른하늘 아래

상처따윈 잊어버려 너답지 않아


Shining! 기적의 힘은

Flying!  결코 거짓이 아니야

Trying!  사랑의 마음은

Rising!  모든 것을 비춰주는 빛


소녀는 세계를 품에 안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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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화 꿈꾸는 자의 론도

第18話 『夢見る者のロンド』

- 악몽우주인 트라우마성인 등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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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단한 열창이었다. 음정도 박자도 보컬도 작곡도 흠잡을 데가 없었다.

그러나 오디션의 심사위원은 고개를 저었다.

“대체 이유가 뭐죠? 이정도면 남에게 뒤지지 않을거라 자신하는데...”

“우리가 지금 구하는 것은 무대에서 적극적으로 공연을 펼칠 댄싱 계열의 아이돌 가수입니다. 당신의 보컬은 하드록이라면 모를까 댄스에는...”

“아주 상식적인 답변이시군요, 정말로 그것뿐인가요?”

“...사실 키가 너무 크다는 문제도... 백댄서와 보조를 맞추려면...”

“참 솔직하시네요. 대단히 고맙습니다!”

곤혹스런 얼굴로 열심히 변명하는 심사위원의 책상에 강력한 발길질을 날리고는 조용히 뒤돌아서서 그 자리를 떠난다.

마리 안(瑪理 安)에게는 이런 일이 처음이 아니었다. 항상 그놈의 키가 문제였다. 겉으로는 싱글거리는 얼굴로 이러니저러니 변명을 늘어놓지만 결국은 그게 가장 큰 이유였다. 승용차를 탈 때나 문턱이 낮은 방에 들어갈 때 허리를 숙여야 하는 불편함은 사소한 것이었지만, 단지 여자가 키가 크다는 이유로 인해 남들로부터 이상한 시선을 받고 그 때문에 평생 부르고 싶은 노래조차도 못 부른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부모님이 이렇게 낳아준 걸 날더런 어쩌란 말인가.

게다가 연예계의 메카라는 창선(創選)프로덕션의 신인 오디션은 어떻게든 잡고 싶었던, 평생에 한번 올까말까한 기회였다. 발탁되기 위해서 내가 얼마나 열심히 연습했는데, 밤잠도 거의 안자고 새벽까지 미친듯이-!

‘그렇다고 해서 다른 직종을 알아보려 해도 기술이 없고... 그냥 접대같은 일을 하려 해도 받아주지를 않을테고... 아 정말이지, 어떤 고집센 PD라도 뻑가게 만들 기적의 노래같은 걸 부를 순 없을까. 키 같은 것은 눈에도 들어오지 않게 할 정도로 혼을 빼놓을 노래를 말야.’

바로 그때였다. 회색양복에 색안경을 낀 이상한 사람이 다가온 것은.

“고민이 있는 표정이군요. 좋은 걸 가르쳐 드릴까요...”

그가 왼팔에 차고 있는 수정 팔찌가 희미하게 빛나고 있었다.




“이런 노래는 처음 들어보는걸! 당장 계약합시다! 다른 프로덕션에는 안갔죠?”

“물론이고말고요.”

“저번에는 너무 심하게 대해서 죄송했습니다. 그런데 그동안 실력이 엄청나게 늘었군요. 무슨 비결이라도?”

“글쎄요... 노력이랄까요?”

효과가 있다! 처음에는 단순히 돈을 뜯어내려는 사기꾼의 농간으로 여기고 그냥 지나치려 했는데, 그자는 돈을 필요로 하는 게 아니라며 신제품의 테스트를 위해 협조해 달라는 것이었다. 기묘한 녹색 빛을 내뿜는 작은 수정 목걸이를 그냥 건네주면서.

속는셈치고 목에 걸어보았더니 이후 며칠간 말로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기분이 상쾌했다. 두뇌회전도 평소보다 잘 되는 것 같고, 노래를 부르는 목소리에도 절로 힘이 들어가, 어려운 화음이나 높게 올라가는 곡조도 쉽게 소화할 수 있었다. 전에는 부를 엄두도 내지 못했던 댄스계나 테크노의 노래들은 물론이고, 가곡이나 민요에 이르기까지 장르를 넘나드는 노래가 마구 터져나오기 시작했다. 밤에도 기분좋은 꿈을 꾸면서 편안하게 잠을 이룰 수 있었으니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었다.

하루하루가 모노톤의 지루한 일상이었던 그전과는 달리 온통 장미빛으로 가득한 나날의 연속으로 채워져 갔다.

화려한 데뷔, 콘서트 투어, 토크쇼 출연, 미디어의 유명인사. 그리고, 그리고.




“이제 내가 바라던 미래가...”

그녀는 혼잣말을 뇌까리며 오른손을 앞으로 약간 내밀더니 마치 눈에 보이지 않는 뭔가를 붙잡으려 하듯 주먹을 쥐어보였다. 머지 않아, 이제 곧...

마리 안은 다 마신 음료수 캔을 휴지통에 경쾌하게 던져넣고 휴게실을 빠져나와 다음 스테이지 준비를 하기 위해 복도를 걸어가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때, 이상하게 맑은 눈을 지닌 소년 하나가 그녀의 앞에 다가왔다. 얘는 뭐야, 스튜디오 관계자는 아닐테고? 그 남자와 같은 팔찌를 차고 있네?

“그 목걸이... 계속 걸고 있으면 위험해요.”

“뭐???”

“어서 떼어버리세요. 너무 늦기 전에. 그건 불길한 물건이에요.”

“말도 안되는 소리 마. 이건 내 행운의 상징이야. 점장이같은 소리는 딴데나 가서 하라구.”

“농담을 하는게 아니에요. 그걸 떼어내지 않으면 누나의 꿈이 전부...”

“내 꿈은.”

마리 안은 목걸이를 가만히 들어올리면서 말했다.

“이게 이루어줄 거야. 남의 꿈보다는 자신의 일이나 걱정하시지 그래?”

마침 그 자리를 지나가던 동거녀가 그 광경을 본다. 그녀는 캠코더와 사인북 몇 권이 들어있는 쇼핑백을 들고 약간 어리둥절한 눈으로 사방을 살핀다. 아무래도 의무실 선배들과 공연 구경 왔다가 길을 잃은 모양이다.

“난 분명히 경고했어요. 하지만 더이상은 어쩔 수 없군요...”

소년은 오른손을 잠깐 허리춤의 주머니로 가져가서 뒤적거리더니 뭔가 금속질의 광채가 나는 성냥곽같은 물건을 꺼내어 마리 안을 정면으로 겨누었다. 벽에 걸린 방송국 안내도를 열심히 살피던 동거녀가 이상한 낌새를 느끼고 그쪽을 돌아본다. 소년이 꺼내든 도구에서 형광색의 광선이 발사되고, 당혹감을 감추지 못한 채 그 자리에 서 있던 마리 안을 거녀가 달려들어 쓰러뜨린다! 광선은 표적을 맞추지 못하고 대신 그 뒤에 있던 <설날특집 ACN마당놀이 운지천!>이라고 쓰여 있는 포스터를 불태워버린다. 소년은 낭패스러운 표정을 짓더니 휙 돌아서서 비호같이 복도 저편으로 사라져버린다...

마리 안은 거녀의 부축을 받으며 일어서서 소년이 사라진 쪽을 바라본다.

“저 아이... 대체 뭐였죠?”

“저도 모르죠. 그나저나 큰일날뻔 했네요. 다친 데는요?”

“덕분에 괜찮아요. 뭐라고 감사를 드려야 할지..”

“아앗- 그러고보니 최근에 떠오르는 샛별이라고 불리는 마리 안씨 아니세요?”

“네? 그건 그런데요...”

거녀는 옆에 팽개쳐뒀던 짐꾸러미에서 사인북을 꺼내어 낼름 들이댄다.

“사인 좀... <생명의 은인에게>라고 쓰는 것 잊지 마세요♥”

마리 안은 아까보다 두배는 더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거녀를 쳐다본다...




“그 목걸이를 떼어내라고 했단 말이지?”

유성대장이 미심쩍다는 얼굴로 되묻는다.

“그렇다네요. 그걸 거절하자 페이저총 비슷한 것까지 쏘았다니까요.”

동거녀는 심각한 얼굴로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PETS 대원들을 돌아보며 설명했다. 의문의 소년과, 마리 안에게 그가 한 말들, 그리고 그뒤에 벌어진 사건을.

피요대원이 수집한 기사들을 작전실 중앙 스크린에 차례로 띄우면서 말했다.

“확실히 최근 몇주동안, 이상한 수정 목걸이가 앙끄시 전역에 걸쳐 유포되고 있다는 정보가 들어오고 있어요. 처음에는 시제품이라며 공짜로 나누어 주다가 효과가 좋다는 소문이 돌자 찾는 사람이 많아져서 이제는 일반판매를 하고 있는 중이죠. 숙면에다 뇌파 활성화, 학습효과 증진, 그외 여러가지 기능 때문에 젊은 사람들, 특히 창조적인 일을 하는 예술가나 연예인들이 주요 고객이래요. 마리 안은 그 목걸이로 인해서 자기 재능을 120% 이상 끌어내서 성공한 케이스죠. 하지만 최근에는 기존의 스타들까지도 서로 다투어서 그걸 구하려고 야단들이에요. 어딘가의 블랙마켓에서는 꽤 높은 가격에 암거래되고 있다죠 아마?”

유태대원이 소화불량에라도 걸린듯한 뚱한 얼굴로 덧붙였다.

“거기에다 더불어, 우리 직장 안에도 그 효험을 보신 분이 계시지.”

모두의 시선은 작전실에서 뭘 하는지는 아랑곳없이 한구석에 돗자리까지 깔아놓고 열심히 최신 게임을 밤새워가며 공략하는 ‘소년’에게 쏠렸다. 벌써 사흘 밤낮을 자지 못하고 게임기에만 매달린 듯, 두 눈은 미이라처럼 퀭하고 머리는 귀신같은 산발에다 옷에서는 천년묵은 기름때가 묻어나왔다. 기계가 견디지 못하고 과열되면 다시 미리 준비해둔 다른 기계로 바꾸어 공략을 계속하는 중이었던 것이다.

“유키- 유키- 유키이이이이이-;;;”

“계속 이런 상태입니다. 처음에는 단순히 반사신경이나 두뇌회전이 좋아지는 정도이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계속 한가지에만 몰두하여 자기 몸도 돌보지 않는거죠. 만약 이 친구에게 벌어진 일이 다른 구매자들에게도 벌어진다면...”

하라대원이 ‘소년’의 헤벌어진 입을 슬슬 어루만지며(?) 걱정스레 말한다.

“그런 하라선배야말로 그 목걸이를 하면서 동인지를 평소의 두배 이상이나 빠른 속도로 그려냈잖아요. 그런데 언제 떼어냈어요?”

피요대원의 순진한 듯하지만 날카로운 지적이다.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되자마자 곧바로 버렸어. 내가 있어야 그림도 있지.”

하라대원의 냉정한 한마디에 모두들 고개를 끄덕이며 다음 대책을 논의한다.

“그런데 저대로 두었다간 저친구 위험하겠는데요. 억지로라도 떼어내는게..”

유태대원이 모처럼 마음을 쓰지만...

“조금만 더 상태를 지켜보고 정말 위험하다고 판단되면 그때...”

유성대장이 대답하는 목소리는 거녀의 비명에 묻혀버린다.

“세상에- 저럴수가아------!!!”

모두 ‘소년’ 쪽을 돌아보고 경악의 표정을 짓는다. ‘소년’이 있어야 할 자리에 그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빛나는 수정의 관(棺)이 놓여져 있었던 것이다. 그 정체불명의 물질은 ‘소년’의 육체를 감싸고 요사스런 녹색의 광채를 내뿜으며 희미하게 요동치고 있었다. 기묘한 울림과 함께...




중앙 스크린에는 쉴새없이 수정체의 화상(畵像)이 들어오고 있다.

“앙끄시 전역에서 거의 동시에 비슷한 사건이 계속해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 목걸이를 걸고 있던 사람들이 성분을 알 수 없는 수정질의 캡슐 안에 갇힌 채 잠에 빠져들고 있습니다! 현재 보고된 피해자 수는 3275명... 아니 3276명!”

오퍼레이터 젤라스 정의 집계는 가공할 만한 것이었다.

문제의 목걸이를 산지 얼마 안되어 떼어버린 소수의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거의 모든 구매자가 같은 괴현상에 말려들었다. 덕분에 앙끄시의 전 지역에서 엄청난 혼란이 일어나고 있었다. 예술의 전당에서 콘서트를 하던 관현악단 전원이, 영화 촬영장에서 컷을 외치던 명감독이, 작업실에서 열심히 명화를 배출하던 화가가, 방송국 스테이지에서 열띤 성원 속에 춤과 노래를 보여주던 가수들이, 심지어는 학원에서 피아노 레슨을 지도하던 교사까지도 갑자기 정체모를 크리스탈에 둘러싸여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갑자기 일어난 이상한 일에 주변 사람들은 다만 아연한 얼굴로 지켜볼 뿐, 아무런 수도 쓰지 못하고 있었다.

관계당국은 문제의 목걸이를 전량 회수하여 분석에 들어갔고, 피해자들은 인근 병원으로 옮겨져 철저한 검사를 받는 중이다.

각종 감지기를 동원하여 문제의 캡슐을 검사한 피요대원이 보고한다.

“이건 지구에서는 제조되지 않는 특수한 성질의 메타-크리스탈 결정체입니다. 뇌파의 변화로 보아, 이 안에 갇힌 사람은 일종의 가사상태(假死狀態)에 빠져들어 렘 수면의 단계에서 계속 꿈을 꾸도록 유도되는 것 같습니다. 피해자의 꿈은 이 결정체에 각인(刻印)된 제어 프로그램을 통해 전송 가능한 에너지의 형태로 컨버팅되어, 외부로 송출됩니다. 그렇게 하면 어딘가에 위치한 메인프레임이 그 에너지를 받아들여, 알 수 없는 목적에 사용하게 되는 거겠죠.”

유태대원이 불쾌하다는 얼굴로 말한다.

“이제는 남의 꿈까지 훔쳐가다니 치사한 세상이야.”

동거녀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한다.

“마리 안... 어떻게 되었을까... 기껏 힘들여 구해냈더니 이런 일이...”

유성대장이 단도직입적으로 질문한다.

“피요군, 메인프레임의 위치를 알 수 있을까?”

“시 전역으로부터 수집된 자료에 의하면 현재 이 결정체들은 일정 지역에 걸쳐 균등하게 분포되어 있는 모양입니다. 아마도 에너지 송신에 가장 알맞는 위치에 각 결정체가 자리잡았을 때 송출이 시작되도록 프로그램된 것 같은데요, 그 분포도를 거꾸로 계산해서 정확히 한가운데가 되는 지점을 찾는다면 불가능한 일은 아닙니다. 계산에 따르면...”




바론가(街) 101번지에 자리잡은 폐공장, 그곳이 문제의 장소였다.

펫츠이글과 프로토 펫츠윙을 타고 바람같이 달려온 대원들이 일제히 공장의 망가진 자물쇠를 걷어치우고 안쪽으로 돌입한다. 그러나 공장 안에 인기척이라곤 없다. 피요대원의 열원 감지기에도 도무지 제대로 된 반응이 나타나지 않는다.

대원들은 DD건의 안전장치를 풀고 신경을 곤두세운 채 각기 조를 나누어 사방으로 흩어져서 조사에 들어간다. 유성대장과 유태대원의 1조는 2층과 3층, 피요대원과 하라대원의 2조는 1층과 지하, 그리고 경비부의 일반대원으로 이뤄진 3조는 바깥에서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며 대기.

마침 어메장관이 장기출장 중인데다 ‘소년’마저도 출동 불능인지라 PETS 정예대원이 4명밖에 안 되는 상황이다. 경비부 대원들은 대(對)쇼크 장비와 무반동 DD캐논을 갖추고 경계의 눈초리를 번득인다. 그리고 그 뒤편에서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여 의무반과 정비반의 차출인력들이 대기하고 있다.

“저건?”

공장 안을 돌아다니며 의심가는 곳을 샅샅이 뒤져보던 중, 유성대장은 눈 앞에서 뭔가 희끄무레한 형체들이 달려가는 것을 목격하고, 그것을 쫓는다. 모두 똑같은 회색양복을 입고 수정 팔찌를 낀 10여명 가량의 사람들이다!

“2조! 이쪽으로 와서 우리와 합류한다! 3조는 정문에 주의!”

유성대장은 그들이 올라간 공장 옥상으로 급히 달려가지만, 그들은 도저히 인간의 능력으로는 어쩔 수 없는 높이에서 훌쩍 뛰어내려 상처 하나 없이 착지한 뒤에 유유히 철조망을 뛰어넘어 사라져 버렸다. 사방을 에워싸고 지켜보던 3조 역시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그들의 곡예를 뻔히 보고 있었던 것이다.

“젠장, 역시 외계인인가! 3조! 산개(散開)하여 공장 주변을 봉쇄! 1조와 2조는 라이드 머신에 탑승하여 공중수색에 들어간다!”

3조는 후다다닥 명령에 따라 사방으로 흩어져 수색에 돌입.

“그, 그런데 대장, 저쪽에!”

“이런- 함정인가!”

유태대원이 가리킨 곳에는 기묘한 형태의 원추형 장비가 서너 개 바닥에 꽂혀 있었다. 그 장비는 그들의 체중을 감지하고는 엄청난 양의 전류를 흘려보내며 시동(始動), 윙윙거리는 소리와 함께 바닥으로 파고들어갔다.

바닥에 금이 가고, 철골이 붕괴하기 시작한다...

“어서 아래로! 건물이 무너진다! 서둘러!”

“그렇게 말씀하셔도...”

피요대원이 가리키는 쪽을 보니 비상구의 철제 셔터가 닫혀 있었다.

“자동으로 잠기게 해놓다니, 용의주도한 놈들!”

“감탄할 때가 아닙니다, 대장님! 비상용 마이크로 패러슈트를!”

“선배... 그거 장비점검한다고 어제 감사과에서 회수했는데요.;;;”

이런 삽질을 하는 동안에도 계속하여 균열은 그들 쪽으로 다가온다.

“아무런 희망도 없는 건가!”

유성대장이 이도저도 못하고 부하들을 감싸는 그 순간!

“어-이, 여기예요!!!”

난데없이 하늘로부터 울려오는 외침, 그리고 헬리콥터의 로터 소리가!




회색양복들의 탈출극을 멍한 눈으로 지켜보고 있던 거녀는 누군가 자기를 부르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고는 살짝 그 자리를 빠져나와 폐공장 뒤편의 낡은 건물로 다가갔다. 이건 분명 언젠가 한 번 느꼈던 그...

방송국에서 만났던 그 소년이 서 있었다. 뭔가를 애원하는 듯한 표정으로.

//...역시, 당신은 지구인이 아니군요.//

주저하는 듯한 상대의 텔레파시에 기운차게 대답하는 거녀 = 라하세르.

//...보아하니 너도 그런 것 같은데. 대체 너는 누구니? 그 이상한 사람들은, 아니 그것보다도 그 목걸이는 대체 뭐야?//

//트라우마 성인에 대해 알고 계시나요?//

소년의 말을 듣는 순간, 라하의 머릿속에 본국에서의 기억이 떠올랐다.

분명 힐더 교관과의 대화에서 나온 얘기였지...




머나먼 SM78성운의 기억.

“<지구>라는 별의 사람들도, 우리처럼 꿈을 가지고 있을까요?”

“그 별뿐만 아니라 이 은하의 모든 지성체는 꿈에 상응하는 뭔가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해. 꿈은 지성체가 삶을 이어나갈 수 있게 해주는 원동력이니까.”

“꿈을 내 맘대로 조종할 수 있다면 정말 재미있을텐데.”

“그렇게 생각하겠지, 라하세르? 하지만 그러한 능력이 너무 지나쳐서 불행해진 자들도 있었단다.”

“정말이에요? 어떤 사람들이죠?”

“옛 전설에 따르면... 트라우마 성인은, 전 은하에서 가장 다양하고 풍부한 꿈을 꿀 수 있는 <드림마스터>의 일족이었다고 하지. 하지만 그들의 그 꿈이 화를 불렀어.”

“어째서요? 꿈이 많으면 많을수록 행복했을 것 같은데.”

“그들의 발달된 과학기술이 그들의 꿈과 융합해서, 너무나도 생생한 꿈을 만들어냈기 때문이지. 그들은 결국 꿈과 현실을 제대로 구분할 수 없을 정도에까지 도달해서, 꿈에 중독된 채로 서로 죽고 죽이는 참극을 되풀이했단다... 결국 제정신을 회복하고 났을 때에는 고향별의 대부분이 불모의 땅으로 변해버리고, 그들의 화려한 문명도 그걸로 끝이었대.”

“불쌍하게도... 그 뒤에는 어떻게 되었나요?”

“트라우마 성인의 생존자들은 은하계 각지로 흩어져서, 소식이 끊어졌지. 근 4백 사이클 동안 그들의 모습을 실제로 본 자가 없을 정도란다. 다만...”

“다만 뭐죠?”

“꿈의 폭주를 두려워한 그들의 장로가 어떤 조치를 취해서, 트라우마 성인들은 이제 더이상 스스로는 꿈을 꿀 수 없게 되어버렸다고 하는 전설도 있어. 그것이 사실이라면, 그들은 이제 살아가기 위해 다른 종족의 꿈을 훔쳐야만 한다는 거겠지.”

다른 종족의 꿈을...!




라하세르는 순간적으로 모든 것을 이해하고는 소년에게 말했다.

//그럼 너희들은...//

//...맞아요. 트라우마 성인의 멸망은 전설이 아니라 엄연한 사실이죠. 그 불행한 사건 이후 저희 일족은 일곱 은하 각지를 방랑하며 다른 종족의 꿈을 약탈하여 근근이 목숨을 이어가고 있는 거예요. 그 때문에 이 지구에도...//

//...하지만 너는 그것에 반대하는 거구나? 그래서 마리 안의 목걸이를?//

소년은 쓴웃음을 지어보이며 말을 이었다.

//처음에는 몰랐지만, 어느 순간부터인가... 아무리 살기 위해서라도 남의 꿈을 훔치는 것은 온당치 않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어요. 우리에게 꿈을 빼앗기고 말라죽어버린 행성의 주민들을 너무나도 많이 보아왔죠. 그래서 어떻게든 꿈을 빼앗지 않고도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찾으려고...//

라하세르는 알겠다는 표정을 짓고는 화제를 바꾸었다.

//그렇게 하자면 너희들이 스스로 꿈을 꿀 수 있는 능력을 되찾아야만 하겠지. 하지만 어떻게 해야 할까? ...잠깐, 그 팔찌는 뭐지? 너희 동족들도 다 차고 있던데?//

소년은 왼손을 들어보이며 웃었다.

//아, 이거요? 별거 아니에요. 우리 몸의 일부라고 할까요. 모든 트라우마 성인은 태어날 때부터 이걸 끼고 살도록 되어 있어요. 우리 몸이 자라남에 따라 이녀석도 함께 성장하죠. 잘은 모르겠지만, 아마도 다른 종족에게서 빼앗은 꿈 에너지를 흡수하는 수신기가 아닐까 하고...//

//더이상 말하지 않는게 좋을텐데, 린!//

갑자기 날아온 제3의 텔레파시에 소년이 당황하며 고개를 돌렸다.

//......로데스!!!//

나머지 회색양복과는 약간 다른 느낌의, 은발의 중년 여자였다.




문제의 폐공장은 수십초만에 요란한 소리를 내며 폭삭 내려앉았다.

“우와아아~ 십년감수했네, 고맙수다 기자양반.;;;”

유성대장이 호쾌하게 감사를 표한다.

“뭘요. 이렇게 인명을 구할 기회도 흔치 않은걸요.”

붕괴하는 건물로부터 PETS 대원들을 구해낸 것은 바로 금지해 기자가 타고 온 ACN 취재 헬기였던 것이다. 금기자의 설득으로 조종사가 생명을 건 곡예를 펼친 덕분에 4인은 무사히 구조되어, 공장 바깥에 세워둔 라이드 머신에 올라탈 수 있었다.

“이 은혜는 두고두고 잊지 않겠습니다!”

“금기자님, 저녁 사드려요?”

“아니, 언제 시간나면 독점 인터뷰나 하게 해 줘요.(^^)”

“PETS 출동!”

유성대장의 펫츠이글 α호와 유태대원, 피요대원의 펫츠이글 β호가 기운차게 날아올라 대인용(對人用) 레이더로 수색을 개시한다. 프로토 펫츠윙은 성능상의 문제가 있어서 정비반의 점검을 기다려야만 하는 것이다. 초조해하던 하라대원은 착륙장소 근처를 맴돌던 회색양복을 발견하고 그 뒤를 쫓아간다.

“그런데 거녀양은 또 어디간거야?”

“에에? 아깐 분명 앰플 나르고 있었는데... 혹시 그 괴한들 쫓아간거 아녜요?”

“뭘 먹을거 준다고 걔네들을 쫓아가겠어. 분명 근처 빵집에라도...”

“미나언니, 이 근방 100km는 폐공장밖에 없다구요. 재개발 지역이잖아요.;;;”

“하여간 오기만 해봐. 버릇을 단단히 고쳐줄텨!;;;(-_-)”




//린, 솔직히 말해서 너에게 실망했어. 그래도 우리 종족의 <차기 후예>들 중에서는 가장 똑똑하다고 생각했는데.//

//로데스, 당신은 잘못 생각하고 있어요! 우리는 더이상 이런 짓을 해서는..//

//그 얘기라면 전에도 몇번 했었지, 린? 내 생각엔 변함 없어. 스스로 꿈을 꿀 수 없다면 남의 꿈을 빼앗을 수밖에 없는거야! 빼앗기는게 싫다면 진작에 잘 지켰어야지, 우리의 잘못은 없어! 알겠니?//

린은 낙담한 얼굴로 양쪽을 번갈아 바라보지만 말은 더이상 잇지 못한다.

로데스가 자신만만한 얼굴로 동거녀를 쳐다보고 이야기한다.

//...호오, 이게 누구신가. 제오니스의 <공간해적> 리사크 형제를 단번에 해치웠다는 울트라의 왕녀로군! 당신이 이 별의 수호신이란 말이지? 그래, 우리를 막기 위해 이제 어쩔 셈이지? 응?//

//지구인들의 꿈을 돌려주시죠. 로데스. 분명 다른 방법이 있을 거예요.//

로데스는 코웃음을 치며 손가락을 들어 라하세르를 정면으로 가리킨다.

//네가 나를 이긴다면 그럴지도 모르지, 올린세스 라하세르!!!//

곧이어 로데스가 양복 윗주머니에 꽂혀있던 크리스탈로 만들어진 장미꽃을 빼들고 하늘을 향해 집어던지자, 그녀의 몸 주변으로 녹색의 광채가 몰아치면서 그 모습이 갈색 바탕에 백색의 무늬가 어우러진 이형(異形)의 존재로 변모한다. 기괴하지만 우아한 체형과 날카로운 갈기를 지닌 그 존재는, 거대화하여 30미터급의 거인으로 자라나는 것이었다!

동거녀는 어쩔 수 없군, 이라는 표정을 지으며 보랏빛 부채를 꺼내들었다.

“여왕님이라 불러랏-!”




빛의 거인 울트라하가 트라우마성인 로데스와 싸움을 개시한 것을 포착한 PETS 대원들도 그곳으로 날아온다. 주변에 흩어져 있던 경비부 대원들 또한 그쪽으로 몰려들어 지원에 나선다. 린은 두 거인의 싸움을 불안한 얼굴로 지켜보다가 어딘가로 발길을 돌린다.

한편 회색양복을 추격하던 하라대원은 막다른 골목에서 길을 잃는데, 그때 회색양복들이 사방에서 우루루 몰려나와 트라우마 성인으로 변신, 그녀를 급습한다. 하라대원은 신개발품인 00(제로제로)라이플을 들고 반격에 나선다.

“얼마든지 와라! 남의 꿈을 소중히 여기지 않는 녀석들-!”

그리고 격투.

//다시 한번 생각해봐요, 로데스. 이건 옳지 않아요!//

라하는 다시한번 설득을 개시하지만,

//옳고 그르고의 문제는 생존이 걸리면 아무런 의미가 없게 된다는걸 몰라?//

로데스는 주춤하는 울트라하에게 강력한 킥과 펀치의 연타를 먹이고, 뒤로 한발짝 물러나서 녹색의 광구(光球)를 날린다. 폭발에 괴로워하는 울트라하. 로데스는 반격할 틈을 주지 않고 사정없이 공격을 계속한다. 라하세르는 배리어를 쳐서 날아오는 광구(光球)를 막아내지만,  로데스는 훌쩍 위로 뛰어올라 3연 공중제비를 돌더니 라하세르의 뒤로 내려서서 열선을 발사, 그녀의 허를 찌른다.

α호가 날아들어 로데스에게 소형 미사일을 발사하지만 로데스는 손바닥만으로 그것을 가볍게 받아쳐 버린다. β호의 페이저 빔도 소용이 없다. 그때, 가까스로 기회를 잡은 울트라하가 뒤로 돌아서서 광(光) 채찍을 날린다. 그러나 로데스는 자기도 손목에서 녹색 빛이 감도는 솔리톤 채찍을 꺼내어 그것을 막아낸다. 무표정한 가면 같은 울트라하의 얼굴 위에 당황하는 빛이 스치고 지나간다.

//너의 공격법 따위는 이미 다 알고 왔어...//

로데스는 솔리톤 채찍을 능숙하게 다루어 라하세르의 손을 강타, 광(光) 채찍이 소멸하고 울트라하는 곧이어 날아온 타격에 고통스러워한다. 공중에서 이 상황을 지켜보며 손에 땀을 쥐는 PETS 대원들.

“뭐하나 울트라하-! 빨리 일어서!!!”

“대장님, 그 대사 저작권에 걸리는데요?;;;”

“지금 그게 문제야 천재양?;;; 아이구 저런! 또 당하겠다!!!”

로데스는 채찍을 거두어들이고 비틀거리는 라하세르에게 접근하여 목을 조르고 헤드록을 걸려 한다. 기력을 잃은 울트라하는 어떻게든 그것을 피하여 필살기인 레모나이트 광선을 날리려 하지만, 약삭빠른 로데스가 그것을 회피하고 만다.

빗맞은 광선에 의해 충격파가 발생하고 폐공장 두서너 군데가 무너진다. 밸런스를 잃고 휘청거리는 PETS의 라이드 머신들.

거의 혼자서 트라우마 성인 10여명과 싸우는 도중인 하라대원도 그쪽을 흘끗 바라보며 중얼거린다.

“울트라하, 절대 포기하면 안돼! 너에게도 꿈이 있겠지? 그렇다면 우리에게 그 꿈을 나누어줄 때까지, 절대로 죽지 마!!! 절대로----------------!”

한편, 세류종합병원의 어느 병실. 이곳에는 마리 안이 갇혀있는 수정체가 운반되어 있었다. 관계자의 눈을 피하여 마리 안의 크리스탈 옆에 나타난 린.

//...결국, 이렇게 되고 말았군요. 내가 좀더 확실하게 막았더라면... 당신도 이렇게 되지는 않았을텐데...//

소년의 눈에 깊이를 알 수 없는 슬픔이 감돈다.




울트라하는 계속 고전중. 머리의 램프가 점멸하기 시작한다. 앞으로 1분!

그러나 라하세르는 설득의 목소리를 멈추지 않는다.

//로데스, 당신은 잘못 생각하는 거예요! 꿈을 빼앗는 것을 되풀이하는 한 절대로 그 이상은 될 수가 없어요!//

//스스로의 힘으로는 어떤 꿈도, 어떤 환상도 도저히 볼 수가 없지. 그게 어떤건지 알기나 해? 그런 고통을 모른다면 우릴 이해할 수 없어! 꿈이 없으면 우리 종족은 사멸하게 된단 말이야!//

//그렇다고 해서 다른 생명을 희생시키다니, 너무나 지독한 짓이에요!//

//네가 우리 처지가 된다고 해도 그런 말이 나올까? 고귀하신 왕녀님!!!//

라하세르와 광선기를 주고받으며 격렬하게 싸우던 로데스는 다시 공중제비를 돌아 라하세르의 뒤쪽으로 착지, 뒤편으로부터 채찍으로 라하의 두 팔을 움직일 수 없게 동여맨 다음, 손목에서 녹색의 빛이 감도는 솔리톤 블레이드를 생성하여 빛의 거인을 끝장내려 한다.

라하의 목을 향하여 다가오는 칼날...!

//너는 고통을 오래 주면 줄수록 그걸 힘으로 바꾸겠지? 하지만 내 공격은 속전속결로 끝내는 거라서 좀 아쉽겠어, 후훗♥//

“안돼!”

“울트라하!”

“저런!”

PETS나 경비부, 취재반, 그리고 방송으로 그것을 보고있는 시민들까지도 이 커다란 위기를 지켜보며 경악하고 있었다.

다시 종합병원, 린 역시 텔레파시로 라하의 위기를 감지하고 있었다.

//......라하세르? 뭐라고요?//

그는 누군가의 말에 귀를 기울이듯 잠시 머뭇거리다가, 서서히 밝은 표정을 되찾고는 알았다는 표시로 고개를 끄덕였다. 상대방이 눈앞에 없음에도.

//......알았어요. 그렇게 할게요!//

린은 두 손을 마리 안의 크리스탈에 대고는 정신을 집중했다.

크리스탈이 녹색이 아닌 금빛으로 빛나며 한줄기 빛을 발산, 그 빛은 즉각 그 병원의 다른 크리스탈로, 다른 병원이나 시설의 크리스탈로, 그리고 급기야는 앙끄시 전역의 같은 피해자들에게로 퍼지기 시작했다!




마리 안은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끝없이 계속되는 흐릿한 풍경들. 영원히 이어지는 환각과 몽상.

그 환상의 중심에, 유유히 떠돌고 있는 그녀의 의식이 있다.

‘...노래는?’

입이 열리지 않는다.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아.

남은 것은 몽롱한 느낌과 머리가 비어가는 듯한 불쾌감.

‘...어디야? 어디에 있는 거야?...’

갑자기 몽롱함이 쓰라림으로 바뀌었다. 뭔가 잘못됐다. 이건 <좋은 꿈>이 아니야. 깨지 않으면 안되는데 어떻게 하면 되는지 모르겠어. 누가...

고개를 돌리자 새로운 풍경이 나타났다. 텅 빈 스테이지는 거미줄과 쓰레기로 뒤덮이고, 옆의 시냇물에는 망가진 악기와 찢어진 악보들이 흘러내려간다. 청중들은 모두 하나씩 새나 나무가 되어 모습을 감춰버린다. 노래는 어디 있지? 노래는?

그리고 어둠.

그녀의 의식은 절망에 싸여 주저앉는다. 머리를 감싸안은 채로.

‘......못 나가는 거야? 이대로?......’

그때 그 의식을 뚫고 한줄기 섬광같은 목소리가 ‘느껴져 왔다’.

//천만에, 나갈 수 있어요!//

어둠을 가르고 동거녀라고 하던 그때의 그 팬이 나타난다. 어째서 여기에?

//당신은, 당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살아왔죠? 그렇기 때문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거죠? 그렇다고 한다면 그것을 넘을 수도 있을 거예요! 반드시...//

‘하지만 나는... 더이상...’

//당신 자신의 힘을 믿으세요. 당신은 수정에 의해서 스타가 되었다고 생각하죠? 하지만 수정은 당신에게 숨겨진 힘을 끌어낸 것에 불과해요. 그 힘의 이름은 바로... ‘꿈’. 미래를 믿고, 앞으로 나아가려고 하는 ‘꿈’.//

‘정말로 그렇게 생각해요?’

거녀는 밝은 얼굴로 엄지손가락을 들어 보인다.

//정말로 진짜!//(윙크)

다시 현실. 린의 손에 힘이 들어간다. 크리스탈을 감싼 금빛이 역류하기 시작한다. 그 속에 갇혀있는 마리 안의 눈에서 한줄기 눈물이 흘러내린다. 스파크와 함께 린의 팔찌가 저절로 깨져 산산이 흩어진다.

동거녀 = 라하세르의 외침이 마리 안의, 그리고 그 수정을 통하여 이어진 모든 사람들의 마음 속에 메아리친다. 간절하게!

//그러니까 지금, 나에게 힘을 빌려주세요, 여러분의 꿈을 지키기 위해서!!!//

그 순간, 기적이 일어난다.




울트라하의 목에 솔리톤의 칼날이 다가간다. 램프 점멸, 앞으로 30초!

그때, 앙끄시 중심가 쪽에서 무수한 금색의 빛살들이 날아온다. ‘꿈’을 지키는 자, ‘꿈’을 사랑하고 소중히 여기는 자의 마음에 부응하듯이.

그리고 빛을 온몸에 받은 울트라하는 정열로 불타오르는 적색의 S모드로 변신! 활활 타오르는 불꽃과 함께 두팔을 붙잡은 솔리톤의 채찍을 태워버리고, 자기의 목을 향해 다가오는 칼날마저도 가루로 만들어버린 울트라하는 온힘을 다하여 필살의 전격여왕업어치기로 로데스를 공중에 띄워올린 뒤에, 자신도 하늘로 날아올라 공중 3회전을 보여준 다음 그 반동을 이용한 뒷발차기로 상대의 배를 강타, 완벽하게 지상에 녹다운시키는 것이었다.

그리고 빛의 입자로 바뀌어 사라져가는 두 거인. 동시에 라하세르에게 모여들었던 금빛의 ‘꿈’들도 다시 주인을 찾아 돌아간다.

“해냈다-!”

“역시 그럴줄 알았다니까!”

“잘했다웅-!”

“여러분께서는 지금 도저히 믿을 수 없는 기적의 현장을 보고 계십니다. 이것은 실제 상황입니다. 트릭이 아닙니다. 지금까지 현장에서 금지해 기자였습니다. 스튜디오 나와주세요-”

물론 트라우마 성인들을 겨우 쓰러뜨리고 빠져나와 임시 포스트에 닿은 하라대원도 이를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꿈을 지키는 자... 그것이 빛의 거인...”




다시 인간체로 돌아온 라하와 로데스는 근처 폐기물 처리장에 나타났다. 엄청난 타격을 받고 쓰러지는 로데스, 그리고 숨을 몰아쉬며 겨우 균형을 잡는 라하세르. 로데스는 믿을 수가 없다는 얼굴로 겨우겨우 말을 꺼낸다.

//...이럴...리가 없어... 꿈을 모두 빼앗긴.. 인간들에게 아직도 그런...//

라하세르는 측은한 얼굴로 은발의 여인을 바라본다.

//이제는 알았겠죠, 로데스? 결국 그들은 스스로 꿈을 찾은 거예요. 당신이 돌려주지 않았기 때문에. 자신들의 힘으로 꿈을 되찾은 거라고요. 지구인은 그런 존재죠.//

로데스는 쓸쓸한 표정을 지으며 몸을 추스리고 일어서려 한다. 부축하는 라하.

//...이제 다 끝났군. 네가 이겼어. 하지만... 문제는 아직 남아 있어. 이걸로 트라우마 성인은 멸종될 거야. 나는 일족을 지키지 못한 무능한 <메라이>로서 웃음거리가 되겠지.//

이상할 정도로 밝은 표정의 라하가 그녀의 얼굴을 빤히 들여다보며 말한다.

//아뇨, 그렇게 두진 않을 거예요!//

//...뭐?//

라하는 잽싸게 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내어 로데스의 왼쪽 손목에 갖다댔다. 피요대원이 발명한 <우주물질 분해기>. 이것은 유기체에는 영향을 끼치지 않고, 그것을 둘러싼 특정 무기물만 분쇄하는 작용을 하는 포터블 파괴 병기였다. 개발한지는 얼마 안되지만 시험삼아 PETS 대원 전원에게 지급되었다.

//...잠깐, 무슨 짓이야. 그건 우리의 혈통...!!//

다음 순간, 녹색의 빛을 발하던 크리스탈 팔찌가 그 빛을 잃고 돌가루로 변하여 흩어졌다. 그리고 그 순간, 로데스의 머릿속에 뭔가 변화가 일어났다.

현기증을 이기지 못하고 무릎을 꿇은 채 이마에 손을 갖다대는 로데스.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머리가 갑자기 상상할 수도 없었던 엄청난 양의 이미지로 채워지는 느낌이 들어...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세계의 광경들이,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 이들의 속삭임이... 이게... 나의 꿈...?//

라하는 여전히 웃는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그건 당신 조상 때부터 내려오는 집단 기억의 잔해... 이제 당신의 꿈은 당신 자신이 살아가면서 만들어야 해요. 그게 바로 꿈이란 거니까.//

//살아가면서 만드는 것...?//

라하의 추리는 옳았다. 수천년전 엄청난 꿈의 폭주로 인해 행성 규모의 대참사를 겪었던 트라우마 성인의 선조들은 아예 태어날 때부터 꿈을 억제하는 특수한 장치를 개발하여, 후예들의 유전자에 프로그래밍해둔 것이었다. 그 중추의 역할을 하는 것이, 그들이 차고 있는 팔찌. 그러나 전통에 얽매인 그들은 그러한 억제에 대해서는 전혀 상상도 하지 못한 채, 부족한 꿈을 채우기 위해 다른 종족의 뇌를 흡수하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당신만이 꿀 수 있는, 당신 자신만의 꿈을 꾸는 거예요. 그것이 바로 진정한 꿈의 의미인 거예요!//

노을지는 석양을 배경으로 두 여인이 서로 마주보고 고개를 끄덕인다.




로데스의 지시로, 살아서 잠복 중이던 다른 트라우마 성인들도 모두 동시에 팔찌를 깨뜨리고 본래의 꿈을 되찾았다. 정확히는 꿈을 꿀 수 있는 ‘능력’이지만.

그리고 그와 함께, 앙끄시 전역에 흩어져 있던 의문의 크리스탈 또한 소멸하여, 그 속에서 가사상태에 빠져 있던 피해자들 역시 안전하게 구출되었다. 그들 중 일부분은 다소 혼란한 정신상태 때문에 단기간의 재활치료가 필요했지만, 대부분 또렷한 기억을 유지하고 있어서, 완전히 꿈을 회복한 것으로 진단되었다. 다만 그들이 이전처럼 환상적인 예술활동을 벌일 수 있을지 어떨지는 그들의 의지에 달린 문제겠지만...

“한가지 분명한 건, 꿈을 다 잃어버리고 절망밖에 남지 않은 것처럼... 느껴졌던 바로 그 순간에... 그것이 나타나서 힘을 주었다는 거죠. 그래요. ‘아름다운 빛의 거인’이...”

“네 감사합니다. 지금까지 세류종합병원에서 금지해 기자였습니다.”

TV중계를 지켜보던 PETS대원들은 한시름 놓았다는 표정이다.

“아아- 정말 악몽같은 사건이었어.;;;”

유태대원이 신음소리까지 섞어가며 넌더리를 낸다.

“이로써 ‘꿈’은 완전히 본래의 주인들에게 돌아간 건가?”

유성대장의 질문에 피요대원이 신중하게 대답한다.

“적어도 현시점에서는 부작용은 나타나지 않고 있으니 그렇다고 봐도 좋겠죠. 다만 앞으로도 정기적으로 사후검사가 이루어져야 하겠지만... 거기에 대해서는 트라우마 성인들이 제공해 준 테크놀로지가 유용하게 쓰일 겁니다.”

유성대장이 고개를 끄덕이고 다음 질문에 들어간다.

“그런데 크리스탈에 흡수되었던 연예인이나 예술가들의 복귀는?”

하라대원이 리스트를 들여다보며 답한다.

“각자의 사정에 따라 다르겠지만... 반년 안에 모두들 본래의 기운을 회복할 것 같답니다. 가장 빨리 회복한 인물은...”

그때 갑자기 작전실로 뛰어들어온 동거녀가 말허리를 자른다.

“앗 선배, 대장님, 모두 죄송해요-♥ 잠깐 채널 좀 돌릴게요-♥”

“뭔 일이야 거녀양, 뭔가 중요한 프로라도?”

“그럼요. 록커로 변신한 마리 안의 컴백 공연이라고요!”

여전히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표정으로 화면을 바라보는 대원들을 싸악 무시하고 동거녀는 채널을 돌렸다. 강렬한 비트와 함께 무대 위에 올라서는 마리 안.

희망에 가득한 얼굴, 힘찬 목소리, 마침내 그녀의 진짜 무대가 시작된다.

마리 안은 노래에 들어가기 전에 잠시 생각에 잠겼다.

다른 사람들이 본 것은 빛의 거인이었는데... 왜 나에게는?

그녀는 해답을 알 것도 같았다.

‘하지만 당분간은 비밀로 해 두자. 이 노래가 최대의 답례가 될 테니까! (^^)’




<< 울트라하이야 >>


WE ARE THE GIRLS

항상 못된 내겐 BLESS 내게 미쳤다고 내게 모두 그래

다들 그래 맞어 그래 난 더 미치고 싶어

솔직한 해답을 갖자 여왕이란 존재는 더는 없어

이미 죽은지 오래 무척 오래 저 태양아래 바로 이날의 여왕은 바로 너야

WE ARE THE GIRLS 항상 넌 또 내겐 GRACE 내게 미쳤다고 모두 그래

미친하이야들에 세상 밝은 미친세상

울트라하 어렸을적 내꿈엔 여긴 진정 어떤 도시인지 (날 바꿨던 어떤 대백과)

이제부턴 진정 난 수퍼 울트라하이야

빈듯했던 네겐 울트라 같은 채찍 간듯했던 네겐 울트라 같은 채찍

내숭의 세대 닫힌 네겐 서툰 조교조차 두렵겠지만 난 좋기만해

난 더 기대가 돼 너 다시 내게 짓궃게 굴땐

가만안두리라 넌 이제 울트라하의 이름의 심판 받으리라

네 잣대로다 우릴 논하다 조만간 넌 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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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NDING  :  BLUE  BILLBOARD  ☆



우주는 흔들리는 소용돌이

지구는 떠도는 작은 조약돌

많고 많은 별들 중에서

바로 이곳에서 너를 만난 이유

아직은 잘 모르겠지만

그래도 운명이란 것을 믿기에

함께 내일을 본다 (Ah Ah Ah)


하늘은 푸른색의 빌보드

바다는 흐르는 시간의 길목

지금 바로 이순간 바로 이순간

위기는 끝이 없지만

그래도 기적이란 것을 믿기에

함께 오늘을 달린다 (Hey Hey Hey!)



==========================================================================


(C)Studio Astronuts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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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가 밝아오는 아침. 동거녀는 쓰레기 봉지를 버리기 위해 추위를 참아가며 목도리와 벙어리 장갑으로 고구마장수같은 패션을 꾸미고는 문 밖으로 나왔다.   “호오- 어유 손시려- 빨리 들어가서 된장국이나 끓여갖구 아침 간단히 먹고 선림언니 온천가는데 빌붙어야쥐- 아니 그런데 이 연탄 쪼가리가 왜 이리 안 떨어져어어-”

그때 바로 그 앞에, 코발트 블루의 정장차림을 한 낯익은 그림자가 선다.

“여전히 궁상맞구나, 라하.”

“-히메! 설마 또 골탕먹이러 온거예요?”

“안심해. 지난번 테스트 이후로 너의 성적이 점점 좋아지고 있어서, 이번엔 그냥 인사만 하러 온거니까. 그렇다고는 해도... 아직 나의 질문이 남아 있지.”

“왜 여왕이 되려고 하냐구요? 그건- 그건-”

“역시 아직도 생각없이 사는거니?”

그 순간, 거녀의 - 라하의 머릿속에 자기만의 노래를 찾아 열창하던 마리 안의 얼굴이, 다시 우주선을 타고 희망의 별을 찾아 떠난 로제스와 린의 얼굴이, 그리고 언제나 정겨운 PETS의 동료들이 스치고 지나갔다.

라하세르는 천천히 고개를 들면서 자신있게 말한다.

“이제는 알았어요. 그 이유를... 그건 바로, ‘꿈’을 지키기 위해서죠. 나의 꿈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사람의 소중한 꿈을... 그것이 바로 내가 여왕이 되려 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였어요!”

히메는 여전히 차가운 얼굴로 듣고만 있다. 그러나 그 눈빛에 어딘가 부드러운 기운이 도는 것을 라하세르는 놓치지 않았다.

히메는 그렇게 한동안 약간은 어벙하지만 어딘가 성숙해진 후배의 얼굴을 바라보다 마침내 입을 열었다.

“.........많이 컸구나. 라하♥”

“네?”

어쩔 줄 모르는 라하의 얼굴을 바라보고 의미를 알 수 없는 웃음을 지으며 그녀는 다시 발길을 돌렸다.

“또 만나자.”

“히메-! 식사라도 하고-”

“네가 만드는 밥이 어떤지 뻔히 아는데 내가 어떻게 그러겠니.”

“너무해애애-”

말은 없었지만, 두 사람 사이에는 다시 옛날과 같은 유대가 살아나고 있었다.

지금은 그것만으로도 좋은 것이다.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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