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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12-25] 까미유 끌로비단
패러디 왕국/건담관련 | 2009. 11. 24. 2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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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借用列傳外傳 : 까미유 끌로비단 ★

Camille Claubid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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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는 예술가를 원하지 않았고 예술가는 세계를 원하지 않았다.

다만 서로 우연히 마주치는 일이 가끔 있었을 뿐...


-- 로자밀리 B. 끌로비단, 『황금의 나라 지옹그』중에서





당시 샤아를르 오귀스뜨 로즈나블은 몽마르뜨르 사이드의 콜로니 ‘베라로나크루즈’에서 가장 유망한 MS세공사(細工師)로 손꼽히는 유명인사였다. 그의 정교하고도 신묘하며 아름답고도 휘황찬란한 세공 솜씨에는 당대의 유명한 제도사(製圖師)인 프로페서 C. 나가노 마모르슈도 혀를 내두르며 “이렇게 뛰어난 솜씨는 앞으로 79년 동안에는 절대로 다시 나올 수 없으리라”고 예언했을 정도였다. 도대체 왜 87년이나 93년이 아니라 겨우 79년밖에 안 되었는지는 본인도 설명하지를 못했지만 하여간 그런 일도 있었다는 얘기다. 그러한 그의 솜씨가 워낙에 예술계에 미친 임팩트가 컸기 때문에, 그는 ‘붉은 운석’이라는 별칭으로도 불리고 있었다.



샤아를르가 청년기를 거쳐 장년기에 접어들기 시작하면서 한층 성숙한 작품세계를 추구하며 노심초사하게 되었을 때, 우연히 친구인 카멜 도렌도렌의 소개로 한 명의 젊은이가 그의 문하에 제자로 들어오게 되었다. 가냘픈 체구와 신경질적인 눈망울에 촌스러운 머리꼴을 하고 하로캔디를 질겅질겅 깨물며 (...?) 화려한 발걸음으로 작업실에 쳐들어온 그 사람의 이름은 까미유 끌로비단이라고 했다.

“까미유? 여자 이름 아닌가?”

“그래서, 안 됩니까?”

다음 순간 샤아를르의 몸은 중력을 거스르며 하늘 높이 떠올랐다가 작업실 바닥에 경쾌하게 널부러지고 있었다. 그는 아픔을 참으며 동짓날 팥알같은 눈물을 사방에 흩뿌렸다. (어디서인지 몰라도 장미꽃잎까지 날리고 있었다)

“이, 이것이 젊음이란 놈인가......!”

또다시 얻어맞을까 두려워진 샤아를르는 당장에 두 말 않고 그 젊은이를 제자로 받아들였다.

“나도 참 운이 없군. 잘나가던 차에 이런 녀석을 만나다니...”



처음에는 사방에 흩어져 있는 제도화(組立說明書)를 일련번호에 따라 정리하고 작품의 재료나 골조 등을 편의에 맞게 조달해 오는 등 허드렛일에서 시작하였으되, 서서히 그의 솜씨를 알아챈 스승은 몇 달만에 파격적으로 생각을 바꾸어 새로 제작되는 거의 모든 MS(Mobile Statue)의 제도와 세공 작업에 그의 손을 빌리기로 했다. 과연 그의 안목은 과히 틀리지 않았고, 이 선택은 수많은 걸작들이 그들 두 사람의 손에 의해 태어나는 결과로 이어졌던 것이다. 그 중에서도 가장 유명하다고 손꼽히는 것이 오늘날에도 많은 이들에게 극찬을 받는 매혹의 조형물 재타건담(災打乾膽)이었다.

“나도 꽤 운이 좋군. 목마는 가깝다.”



그들은 마침내, 모든 세공사들의 숙원이라 할 수 있는 안하무인... 아니 아나하임 MS대전의 특별대상인 ‘목마상’까지 받아챙기고서 수많은 상금을 둘만 아는 어딘가에 꼬불쳐 두고 날마다 뭔가 얻어내려고 찾아오는 언론사 기자들과 세무서 직원들을 따돌리려고 격에도 맞지 않는 목성 여행까지 다녀오지 않으면 안 되었다.

여기서 잠시, 당시의 추적에 관계한 두 사람의 증인을 만나보도록 하자.

먼저 삐딱한 논조의 총알탄 저널리스트로 유명한 카․이시덴 씨.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샤아를르는 싫습니다. 놈은 본래 그보다도 훨씬 더 떳떳하게 할 수 있는 놈인데도 불구하고 계속 도망만 치고 있습니다.”

다음은 세무서의 직원이었으나 공용재산을 빼돌리고 쫓겨난 커므․란브룸 씨.

“분명합니다. 샤아를르는 엄청난 양의 금괴를 숨겨두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와 관련된 몇몇 거래에 공증인 자격으로 입회하여 그것을 확인했습니다.”

물론 여기서 우리가 알아보고자 하는 것은 샤아를르의 재산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이미 수십 종의 월간지와 스캔들 전문지, 그리고 부동산정보지에서 여러 번 다루어졌던 흔하디흔한 이야기다. 믿지 못하겠으면 지난 주에 발매된 「프론티어 크로니클」이나 「세인트 조셉 트리뷴 특별호」 또는 「앙그라는 말한다! - 진실과 왜곡의 기나긴 싸움」라는 출판물을 구해 보기 바란다.

여기서 하려는 얘기는 좀더 본질적인 것이다.



그것은 아나하임 MS대전 예선을 앞둔 어느 날에 벌어진 예상치 못한 사건이었다고 한다. 그날도 여느때와 다름없이 스승과 제자는 출품할 MS를 마지막으로 손보기 위해 밤낮을 새 가며 침식을 잊고 작업에 몰두하여 있었다.

“피로를 느끼는 건 아닌가?”

“피로라뇨? 그런 건 느끼지 않아요. 피로에 진다면 뉴타입이, 아, 아니, 세공사가 될 수 없을 테니까요. 그렇지 않은가요?”

“연장 CC-2다. 이리로 건네줘.”

그때, 뜻하지 않은 사고로 7미터가 넘는 미완성 MS의 하단부 프레임이 기우뚱거리다가 넘어져버리는 일이 생기고 말았다. 그런데 하필이면 그 프레임이 정통으로 까미유의 호리호리한 동체를 깔아뭉개버리다시피 한 것이 화근이었다.

뜻밖의 돌발사태에 놀란 스승은, 이제까지의 걸걸한 목소리로서는 도저히 상상도 못할 정도의 하이톤으로 비명을 지르며 있는 신음 없는 신음을 다 내면서 그 자리에 찌그러져 있는 불쌍하기 그지없는 애제자를 구하기 위해, 초인적인 힘을 발휘하여 혼자서 그 골조를 치우고 까미유를 간신히 끌어낼 수 있었다. 이미 반쯤 정신을 잃다시피 한 제자는 피투성이가 되어 힘없이 스승의 팔에 안겨 침대로 실려갔다. 샤아를르는 몸 상태가 아무래도 젊었을 때와는 많이 달라졌음을 통감하며 제자를 겨우겨우 침대 위에 눕히고 의사에게 전화를 걸기 위해 비드폰 수화기를 들었다.

“......지금은 왕진 나가니까 급한 용무가 있으신 분은 멧돼지를 남겨주슈.”

핫산 박사는 유머감각이 너무 지나쳐서 탈이다.


그밖의 병원에 전화를 걸어봐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연말이라 다들 바쁘거나 휴가를 떠나거나 둘중 하나였다. 결국 다급해진 샤아를르는 자기가 직접 응급처치를 해 두기로 결심한다. 이럴 때 의사지망생인 여동생이라도 근처에 살면 참 좋았을텐데. (그러나 그녀는 공부한답시고 지구로 내려가서는, 되지도 않는 주식 투자에 맛을 들였던 것이었다)

안 쓴지 7년이 넘는 서바이벌 키트를 찾아서 이리저리 부산하게 뒤지고 비상용 디지털버너로 깨끗한 물을 끓이고 붕대와 구급약을 마구 벌려놓는 등 미끈한 얼굴에 어울리지 않게 별별 호들갑을 다 떨며 간호준비를 마친 샤아를르는 여전히 비몽사몽에 시달리는 제자 곁으로 다가와서 물수건으로 피를 대충 닦아내고 상처입은 부위를 살피기 위해 겉옷을 슬슬 벗겨내기 시작했다. 열심히 마우스를 클릭해 가며... 가 아니고 아무튼 벗기기에 열중하고 있던 (...) 금발벽안의 스승은 갑자기 손놀림을 멈추고 믿을 수 없다는 눈초리로 침대 위의 사람을 바라보았다.

“......아무리 대단한 충격이라 해도, 어떻게 그게 없어질 수가 있지?”

도대체 어디까지 벗겨낸 것인가는 독자의 상상에 맡긴다.



수 시간 뒤, 혼수상태에서 그럭저럭 깨어난 까미유는 자기 몸이 머리에서 발끝까지 욱신거리는 통증과 새하얀 압박붕대로 온통 뒤덮여 있다는 사실에 경악하는 눈치였다. 어설프게나마 출혈을 멈추게 하고 적절한 약을 발라두는 등 완벽한 응급처치를 한 덕택에 생명은 건질 수 있었다. 이제 의사가 오기를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고 스승은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말하는 것이었다.

“......그렇게까지 제게 신경을 써주시다니... 감사합니다.”

“그런데 본의는 아니었네만 좀 곤란한 경우를 만난 것 같아서.”

“네?”

여전히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을 힘들게 유지하며 스승은 늘 쓰고 다니던 선글래스를 어루만졌다. 콜로니의 따가운 인공조명이 자극적이라는 이유로 한시도 눈에서 떼놓는 일이 없었다.

“......자네의 이름이 괴상한 취미 때문은 아닌 것 같다는 얘기야. 그러니까.”

“까미유란 이름은 남자 이름으로도 쓰입니다. 구세기의 라프랑시아 혁명 당시 활동한 혁명가 중에도 까미유라는 이름이...”

“내가 관심이 있는 건 죽은 역사가 아니고 지금 살아있는 자네다.”

한껏 분위기를 잡으며 샤아를르는 그 유명한 선글래스를 우아한 동작으로 벗어들었다. 이마 한복판에 전에 없던 가느다란 상처자국이 생겨나 있었다.

“마에스토르, 설마 그 상처는...”

“갈마 자바라는 자와 칼싸움을 하다가 그런 것이라고만 해 둘까.”

물론 지어낸 말이라는 것은 방금까지 같이 있었던 까미유가 더 잘 안다. 사실은 그를 억지로 파편 속에서 끌어내려다가 입은 상처인 것이다. 그러나 남들의 입장에서는 사소한 상처라고 해도 반반한 얼굴을 재산으로 여기는 마에스토르 로즈나블에게 있어서는 결코 사소한 상처가 아니다. 까미유는 그 상처 때문에 스승이 남은 인생을 얼마나 괴롭게 보내게 될지 짐작하고도 남았다.

언젠가 샤아를르는 지구를 방문했다가 실수로 그의 얼굴에 BB탄을 갈겨준 밤색머리 꼬마의 집에 운동장만한 소행성 두 덩이를 답례로 날려준 일도 있었다.

물론 그 일로 인해 으랏싸인지 뭔지 하는 작은 마을이 지도에서 삭제되었지만 워낙에 유명인사라 대충 넘어간 것이다.

더러운 건 샤아를르가 아니라 세상이었다. 적어도 샤아를르 본인의 생각은 그랬다.

“...죄송합니다. 저 때문에 그런 손해까지 입으시다니... 면목이 없습니다.”

“알았나. 나의 고민을 풀어 준다면 나는 나나이와 라라아를... 아, 아니, 상처 따위는 잊겠다.”

벙 찐 얼굴로 맥가이버같은 머리모양의 대스승을 바라보던 까미유는 생전 처음 들어보는 어색한 말투로 미묘하게 음색을 바꾸어 가며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옐로우 벨몬드의 정반대 경우라고 보면 된다. 자아 이제부터 토●타 노부●에서 미●타니 유●로 넘어간다고 생각하기로 하자.)

(...왜 하필 ●즈타니냐고? 테카맨 레이피아잖아!)



사실인즉 이랬다.

예로부터 유명한 MS세공사의 집안이었던 끌로비단 가의 프랑크푸르트린은 언제부턴가 일과 여색(女色)에 미쳐서 가정을 돌보지 않고 집을 비우는 날이 점점 늘어만 갔다. 그러던 중에 막대한 도박빚까지 지게 되어 론데니온의 고리대금업자인 애브니저 바스크로부터 상당한 압력을 받게 되었고, 결국 프랑크푸르트린은 바스크가 보낸 검은 유니폼의 폭력단원들에게 납치당하고, 아내 힐데린은 그것을 저지하려다 복장이 터져 죽고 말았다. 겨우 탈출한 프랑크푸르트린마저도, 제 버릇 개 못준다더니 빈민구제기구 애유고의 재산인 중장비를 운전해본답시고 폭주하다가 사고로 죽어버렸다.

(이미 고인이 되었지만, 바스크 영감의 나쁜 짓은 이미 다른 기사에서 밝혀진 바가 있다. 자세한 것은 사이비 신화의 사이비 권위자인 S. G. 잠보니 교수의 「이상하고 이상한 宇宙世紀 성탄 이야기집」을 참조하기 바란다.)

그 뒤에 단둘이 남겨진 끌로비단 가의 어린 자매 케이와 유리...가 아니고, 까미유와 로자밀리는 부모 없이 어렵고 힘들게 살아가며 바스크에게 복수할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고 한다. 공예에 소질이 있었던 까미유는 샤아를르 아래에 들어와 MS세공사의 길을, 문학에 소질이 있었던 로자밀리는 싸이코대학 히스테릭분교 문예과에 들어가서 문학도의 길을 걷고 있었던 것이다. 언젠가는 세상에 부끄럼없는 위인이 되어 부모의 한을 풀어주기 위해서...

(확실히 그놈의 위인전기가 애들을 망친다는 점에는 동의해야 할 것 같다. 특히 「아무로 후다다닥」이나 「우수(憂愁)의 쥬도」 같은 것은 애들에게 절대로 보여주지 말기 바란다.)


“그러나 어째서 남장을 할 필요가 있었던 것인가?”

“밑바닥에서 살아남으려면 강해야 했기에 그 편이 더 좋았습니다. 이름 때문에 놀려대는 녀석들을 패 주기에도 편했고, 그리고... 그리고 MS세공사라는 직업의 세계는 아직도 보수적이어서, 여자를 받아들여주지 않는 곳이 더 많았습니다. 그래서 마에스토르도 그러면 어쩌나 하는 생각에서 결국...”

“꼭 그렇지는 않다. 퍼플토닉이나 오데브린, 드‘아르노나 에이기같은 훌륭한 여성 세공사도 있어. 그들은 온갖 어려움을 뚫고 MS미학사에 이름을 남긴 사람들이다. 나도 그런 이들을 존경하고 있다.”

“괜찮겠습니까? 이런 일까지 아시게 된 뒤에도 여전히 저를 이전의 저와 똑같이 받아들여 주실 수 있겠습니까?”

“내가 그렇게 그릇이 작은 남자로 보이나?”

그들은 상처가 아픈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를 사뿐히 얼싸안았다. (어이어이)

......물론 이것은 단순한 야사일 가능성도 있다.



그후 두 사람의 관계는, 외부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급속히 가까워지기 시작했고, 대상을 탄 이후에 목성으로 뜬 것도 실은 단순한 도피를 가장한 일종의 밀월여행은 아니었을까 하는 추측도 돌고 있다. 당시 목성에서 기록된 방문객 명부 중에 ‘슈리 크라임 & 크와로트 버지니아’라는 이름이 발견된 것도 의심의 근거가 되고 있다. 크와로트는 샤아를르가 무명시절에 쓰던 예명(藝名) 중 하나를 변형시킨 것이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그들의 성공은 세상의 찬사와 질시를 동시에 몰고 왔고, 전보다 더욱 많은 주문량에 폭주하는 일감을 때우느라 정신없는 밤낮을 보내는 것은 아예 일상적인 일이 되어버렸다. MS세공사가 한 번 출세하면, 아나하임같은 거대 동업조합은 그를 절대로 놓아주지 않는 법이다.


그러나 이같은 성공의 그늘에는 또 다른 슬픔이 있었으니, 바로 여동생 로자밀리 끌로비단과의 사이가 급속히 멀어지기 시작한 일이었다. 로자밀리는 하나밖에 없는 육친이 복수를 잊어버린 채 자신의 행복에만 눈이 멀어 다른 사람과 얽혀버린 것을 용서하지 못했다. 그녀의 회고 중의 한 대목.

“◎결해.”

“무슨 소리야? 마에스토르는 내게 무척 잘 대해주시는 것 뿐인데.”

“어떻건 간에 그걸 그냥 받아들이는 까미유는 불◎해.”

“그럼 나보고 어떻게 하라는 얘기야? 이제서야 진정한 1류 세공사로 발돋움할 수 있는 기회가 열렸는걸. 마에스토르를 떠나면 이젠 아무것도 못 해.”

“당장 나가줘. 이제 내겐 아무도 ◎어.”

“그렇겠지. 넌 항상 오◎에게 의지하지만, 너에겐 원래 ◎빠가 없◎니까.”

“가르쳐줘서 대단히 고맙군. ◎보 같은!”

“로자밀리......!!!”

“나가!!! 난 어떻게든 오◎를 찾을 거니까!!!”

(◎는 배드섹터로 인해 판독 불가능한 대목. ‘◎보’가 ‘바보’인지 ‘갈보’인지에 대해서는 수년간 다투어져 왔지만 아직 명확한 결론은 나지 않고 있다.)


좀더 믿을 만한 언론의 기록에 따르면, 이후 이들의 관계는 상당히 악화되어서, 서로 원수처럼 총을 맞대고 대치한 상황도 몇 번 있었다고 한다. 까미유는 필사적으로 그녀를 말리려고 애를 썼지만, 히스테리 상태에 빠져든 로자밀리는 횡설수설하며 그를 위협했다고 당시의 신문 기사는 전하고 있다. 그녀의 난동으로 인해 15블럭에 달하는 콜로니의 거주구가 신경 개스 공격을 받았고 43블럭에 달하는 거주구의 시민들이 우주로 튕겨나가 산소결핍증에 걸리고 말았다.


이러한 로자밀리의 정신불안은 출판사 매니저인 게쓰 캐파슨이 그녀의 신변을 맡아서 관리하기 시작한 이후에도 한참 동안 계속되었고, (게쓰는 기꺼이 그녀의 오빠 역할까지 자청할 정도로 그녀를 아꼈으나 치료에 있어서는 별 소용이 없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결국 한 번은 까미유가 마지못해 날린 라이플 탄알이 그녀의 급소 근처를 관통하여 치명상을 입히는 비극에까지 이어지지만, 그것은 이미 잘 알려진 이야기이므로 생략한다.


“로자밀리!!!”

“오빠! 오빠! 어디있는거야, 오빠는?”

“그러지마! 가엾지만 쏘겠어!”

“찾았다아~ 옵빠아~!!!♥♥♥”

타앙!


......그녀는 결국 사건 이틀 후 아로이스 모즐리 기념병원에서 유서 하나 없이 쓸쓸하게 죽어갔다. (까미유는 그라나다 미술관에서의 폐콜로니를 이용한 설치미술제에 참석하느라 자리를 비운 상태였다. 그때 그가 방아쇠를 당긴 이유가 정확히 사회방위를 위한 사명감에 있었던 것인지 아니면 로자밀리의 닭살돋는 대사로 인한 갑작스런 쇼크에 있었던 것인지는 분명치 않다.)

그녀가 남긴 유물과 기록들은 묘하게 대조적인 인상을 주는 소행성대 출신의 어느 쌍둥이 자매가 경매를 통해 구입했다고 전해진다.



까미유의 결말도 그다지 순탄하지는 못했던 것 같다. 로자밀리의 비극적인 사망으로 인해 받은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청천벽력같은 사건이 일어나고야 말았다. 샤아를르가 갑작스럽게 그와의 결별을 선언하고 자기만의 스타일을 재빨리 확립하여 경쟁을 시작하는가 했더니, 뒤로는 비열하게도 그동안 공동으로 개발한 도안들을 모두 가로채고는 오히려 까미유가 그를 방해하고 아이디어를 훔쳐가서 많은 손해를 입었다고 형사고발까지 한 것이었다.

까미유는 백방으로 손을 써서 결백을 밝히고 샤아를르의 비겁함을 알리려고 했으나 유명한 일급변호사 호르스트 하네스를 고용한 그의 철통 수비진에는 어쩔 도리가 없었다. 결국 까미유에게 돌아온 것은 상당한 금액의 손해배상 청구와 패소로 인한 정신적 충격, 그리고 사회의 멸시와 오해의 물결이었다.

“저게 까미유 뭐라는 이의 작품이라지? 너무 난해한데.”

“지나치게 어두워. 대체 뭔 생각하고 만든 거야?”

“이미 샤아를르가 5년전에 해먹은 기법을 되풀이하는 것 뿐이잖아?”

“재료나 소재는 좋은데 조합하는 솜씨가 너무 산만하다고 느껴져...”

“이제 변형하는 조각의 시대는 갔다구. 중요한건 중량감이야 중량감!”

“그만 은퇴하시지 그래?”


온갖 비난과 악담에 파묻혀 두문불출하며 몬샤표 위스키로 세월을 보내던 비운의 예술인 까미유에게 남은 길은 명백한 것처럼 보였다. 그것이 처음으로 뚜렷해진 것은 어느 4월의 맑은 날, 파티마스 W. 시록코라는 여우같은 상판대기의 채권자가 찾아와서 그를 닦달하던 때였다.

“제때 빌린 돈도 못 갚는 자네같은 인종은 정리되지 않으면 안된다!”

“그런 억지를!”

“억지라고 항변하고 싶으면 빨리 갚으란 말이다, 예술가가 되다 만 녀석!”

“뭐얏!!!”

분에 넘친 까미유는 시록코의 배때기를 향해 힘차게 돌격하여 필살의 박치기를 날렸고 시록코는 그때의 충격으로 힘이 빠졌는지 “네놈의 머리통도 함께 가져가마!!!”라는 악담을 퍼부어대며 일단 후퇴했다. 그는 집으로 돌아간지 한 시간도 못되서 장파열로 사망했다.

까미유에게 이상이 생긴 것을 발견한 사람은 이웃에 사는 중장비 운전수 파파랏파 유이리였다. 평소 불쌍히 여기던 예술가 양반이 전혀 인기척을 보이지 않는 것에 이상함을 느낀 유이리 양은 이것저것 주섬주섬 싸들고 옆집의 문을 노크했다. 그러나 대답 대신 기괴한 혼잣말만이 새어나오는 것이었다.

“어어? 눈앞에 조그만 것들이 반짝거리고 있네? 운석인가?”

유이리 양은 갑작스런 불길함에 몸을 부르르 떨었다. (오오)

“아냐, 운석은 아닐거야. 운석은... 운석은... 이러엏---게, 더 빠르게 움직이는걸... 그런데 여긴... 여긴 왜 이렇게 덥지? 어어이! 나가게 해줘!”

그 말에 이어서 문을 미친 듯이 탕탕 두들기는 소리에 화들짝 놀란 유이리 양은 번개같은 동작으로 문을 빈틈없이 못질하고 ‘위험 - 접근금지’라는 푯말까지 할부로 사와서 매달아놓은 뒤에 핸드비드폰으로 어딘가에 전화를 걸었다.

“원장님, 트라이브 원장님... 까미유씨가... 아, 아가마스칼 병원 맞습니까?”



까미유 끌로비단은 이유도 모른 채 정신병원으로 끌려가서, 그곳에서 몇 년 동안을 보냈다. 신문 기록에 따르면, 그후 20대 중반도 되기 전에 아무도 보지 않는 병상에서 자기 여동생과 마찬가지로 쓸쓸하게 죽어갔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어떤 비공식적인 소식통에 따르면, 그는 이후 무난히 회복되었으며 이전의 괴로운 상처를 씻고 새로운 생활을 시작하였다는 얘기도 있다. 그동안 그를 친절히 간호해 준 파파랏파와 함께 어느 해변가를 달려가며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았다는 사람도 적지 않게 나타나고 있다. 진위 여부는 불명이지만.



어쨌거나, 까미유의 비극을 불러일으킨 원흉인 샤아를르에 관해서 말하자면, 그는 이후 곳곳에 숨겨놓았던 재력과 인맥을 동원하여 지방정치에 뛰어들었다가 뜻하지 않은 강적을 만나 대참패를 겪고 행방이 묘연해졌다고 전해진다.

그 강적의 이름은 아물어뢰이(兒物於雷裏)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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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 ZAMBONY 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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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OSTSCRIPT ◆




소위, 「까미유♀♀론?!」에 대해서 보다 명확한 증거가 발견되었다는 소식은 아직 듣지 못했다. 그러나 최근에 발견된 로자밀리 끌로비단의 회고 중에서 이를 뒷받침하는 여러 가지 세세한 기록들이 나타나고 있고, 생전의 까미유를 보아 온 많은 주변 사람들의 말을 종합해 보건대 그의 태도나 성격에 뭔가 심상찮은 점이 있었다는 것만은 틀림없는 듯 하다. 특히 사후에 발간된 근대미술사(近代美術社)의 초호화양장본 「까미유 편력기」에 실려 있는 의문의 전신 초상화가 이러한 추측과 소문에 불을 붙이는 역할을 한 것은 유명하다.

이를 검증한 사람들 중 하나인 전뇌실험예술가 햐데스틴 코로모스氏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내가 그 그림을 처음 본 것은 아주 어릴 때의 일이었지만 지금도 생생히 기억나는 것은, 남자를 그린 초상화치고는 매우 부자연스러웠다는 점이다. 특히나 두 다리와 몸체가 만나는 그 미묘한 부분의 묘사는 뭔가 수상한 데가 있었다.”

물론 이러한 증거들이 당장 뭔가를 확실하게 나타내 주는 것은 아니며 이 문제에는 좀더 많은 연구가 필요할 것임은 확실하다.


일각에서는 이를 거꾸로 해석하여, 까미유는 남성이 틀림없었지만, 사실은 샤아를르의 취향에 문제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겠느냐는 설(說)도 제기되고 있다. (특히 이 설은 전설적인 인물들을 소재로 각종 해괴한 이야기를 꾸며대는 데 일가견이 있는 아카-앙그라의 작가들에게 인기가 많다. 아무튼 이에 따른다면 위 기록의 일부분은 다시 쓰여져야 할 것이다.)

그러나 생전에만 해도 무려 5명의 여인(그중 둘은 미성년자였다)과 염문을 뿌려댄 샤아를르가 마치 구세기의 카오스 와일드니스처럼 미소년에 관심이 있었다고는 믿기 어렵다.

가능성이야 어떻든, 역사는 언제나 그 자리에 그대로 존재하는 것이고, 진실은 언젠가는 밝혀져야 하겠지만.



마지막으로, 가장 최근의 연구에 따르면, 샤아를르로 하여금 까미유를 배반하고 그를 곤경에 빠뜨리도록 몰아간 것이 다름아닌 애브니저 바스크와 (그 당시에는 아직 살아 있었던) 그의 동업자 제이코프 하이만일지도 모른다고 한다.

만약 그것이 사실이라면, 그들은 멋지게 성공한 셈이다. 물론 뱃속검은 파티마스 시록코가 네오지온 카르텔과의 협상 자리를 틈타 하이만을 쏴죽이고 한때나마 상회의 실권을 쥐었던 것만 뺀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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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RRY MERRY CHRISTMAS 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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