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기/숨기기 가능합니다^^
분류 전체보기 (326)
창작의 샘터 (88)
패러디 왕국 (85)
감상과 연구 (148)
일상의 기억 (5)
보이기/숨기기 가능합니다^^
[2003-05-14] 세상이라는 이름의 퍼즐
창작의 샘터/잠본이 환상극장 | 2010. 7. 4. 23:39
 



<< 세상이라는 이름의 퍼즐 >>

The Puzzle Called The World







그녀의 이름은 케스티앙 솔베르Questian Solver라고 했다. 처음 만났을 당시 우리는 꽤 나이 차가 많이 나는 사이였다. 나는 세상 돌아가는 이치를 전혀 모른 채 친구들과 뛰어놀기에만 바쁜 열두 살 꼬마였고 그녀는 이미 오십을 넘긴 노부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묘하게 죽이 잘 맞았다.

“좋은 걸 보여주마.”

어머니의 먼 친척이라는 인연 덕에 알게 된 그녀는 교외의 오래된 저택에서 조용히 혼자 사는 고풍스런 분이었다. 그분은 어느 날의 가족 모임에서 나를 처음 만났다가 지그소 퍼즐에 대한 화제로 이야기꽃을 피운 것이 기억에 남았는지, 며칠 뒤 생판 남이나 다름없는 나를 자신의 집으로 불러들였다. 어머니가 그집의 일을 돌봐주고 있는 에롤 부인과 홍차를 곁들인 잡담을 나누는 동안, 노부인은 나를 위층으로 데려갔다.

“퍼즐을 좋아한다고 했으니 이것도 아마 맘에 들 게야.”

잔뜩 기대에 부풀어 있는 나를 앞에 두고 그녀는 잡동사니가 가득한 벽장에서 먼지가 가득 끼어있는 오래된 흑단[黑檀] 상자를 들고 내려왔다. 한때는 윤기가 가득 흘렀을 표면 위에 세월과 함께 쌓인 흔적들이 두터운 층을 만들고 있었다.

“이건 아주 오래된 물건이란다. 어쩌면 지그소 퍼즐이 처음 발명되었을 때까지 거슬러 올라갈지도 몰라. 나도 할머니의 할머니의 할머니한테서 물려받았지.”

흥분에 들뜬 나는 손발을 붕붕 휘두르며 빨리 열어보시라고 재촉했다. 하지만 그 상자가 열리고 그 안의 내용물이 마침내 모습을 드러냈을 때에는 이미 그 열기는 식어버리고 말았다. 뭔가 화려한 것을 기대했지만 예상과 전혀 달랐다.

“저, 여기엔 아무 그림도 그려져 있지 않은데요, 부인?”

나는 잔뜩 실망한 얼굴로 노부인 쪽을 돌아보며 공손하게 확인했다.

“그냥 케스라고 불러도 상관없다. 나도 그냥 너를 페니라고 부르마. --그래, 확실히 여기엔 아무 그림도 없지. 그저 하얀 마호가니로 만들어진 퍼즐 조각들이 어지럽게 흩어져있는 것처럼 보일게다. 하지만 그건 아직 이녀석들이 잠에서 충분히 깨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란다. 이렇게 하나씩 하나씩 모양을 맞추어 나가다 보면...”

시큰둥하게 바라보던 나는 다음 순간, 내 눈을 의심했다.

그녀의 손에 의해 짜맞춰진 몇 조각의 퍼즐 위에, 어떤 그림의 일부분으로 보이는 컬러풀한 도형이 서서히 나타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마치 부드러운 화선지 위에 물을 섞은 포스터 컬러를 떨어뜨려 색이 서서히 번져나가는 것처럼.

“정말이네! 이런 건 처음 봐요!”

“그러게 내가 뭐라고 했느냐. 이런 건 세계 어딜 가도 없을게야.”

이윽고 완전하게 짜맞춰진 퍼즐 위에는 하나의 완전한 그림이 나타나 있었다.

의미는 알 수 없었지만, 꽤 예쁜 색채로 생동감있게 그려진 그림이었다. 새파란 하늘과 붉은 색의 땅이 선명한 대조를 이루며 그려져 있었고, 그 사이로 커다란 새같은 형체 하나가 수많은 깃털을 떨어뜨리며 추락하고 있었다. 그 새의 형태는 어딘가 전체적으로 균형이 어긋난 모습이었고 색깔은 짙은 보라색이었는데, 날개죽지 한구석에는 링글랜드 왕실의 문장이 자그마하게 숨겨져 있었다.

나는 그 그림의 의미를 알 수 없어 고개를 갸우뚱거리면서도, 그림에서 묻어나오는 어딘가 서글픈 분위기에 젖어 우울한 기분이 들었다. 내 표정을 한번 흘낏 쳐다본 노부인은 아차 싶은 얼굴이 되어 나를 위로하기 위해 애썼다.

“그저 그림일 뿐이야. 그렇게 심각하게 바라볼 필요는 없어.”

“그래도 왠지 자꾸 눈물이 나려고......”

“감수성이 예민한 아이로군. 하지만 이걸로 다 끝난 건 아니란다.”

케스는 다시 벽장에서 낡은 기계식 카메라를 들고 내려와 필름을 확인한 뒤 그 그림을 정성들여 사진찍더니 퍼즐 조각들을 원래대로 흩어놓았다. 그러자 그 위에 떠오른 그림들은 눈 깜짝할 사이에 신기루처럼 사라져버렸다.

나는 눈처럼 새하얀 마호가니 퍼즐조각을 하나하나 들어올려 자세히 뜯어보았지만 도저히 그 원리를 알아낼 수가 없었다.

“어떻게 이런 게 가능하죠?”

케스는 한쪽 눈을 찡긋 해 보이며 장난꾸러기처럼 나에게 속삭였다.

“마법이지. 어린 아가씨, 마법이란다.”





내가 그때 본 그 퍼즐이 단순히 아이들 놀잇감만은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 데에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케스의 집을 방문한 바로 다음날, 아침 식탁에서 아버지가 읽고 있던 신문을 곁눈질로 쳐다보던 나는 깜짝 놀랐다. 링글랜드 왕실의 전용기인 초고속 제트기 ‘데임 바이올렛Dame Violet’이 추락사고를 일으켰다는 기사가 실려 있었다.

신장염으로 와병중인 여왕을 대행하여 세계 순방길에 올랐던 남편 체스터필드 경과 사촌 웰즈 왕자를 비롯한 여러 사람들이 사망했고 공항 주변은 연쇄폭발을 일으켜 순식간에 불바다가 되었다 - 마치 내가 그 그림에서 보았던 것처럼 새빨갛게 땅을 물들이면서.

마침 TV에서도 그 뉴스를 크게 다루고 있었는데, 나는 공항 감시 카메라가 찍은 추락 순간의 사진을 보고는 그 비행기가 떨어져내리는 각도가 어제 본 커다란 새가 추락하는 구도와 상당히 닮아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물론 그 비행기의 컬러링은 밝은 연두색이었지만, 이름에 보라색을 뜻하는 ‘바이올렛’이 들어가 있었다.

이건 단순한 우연일까?

열두 살 꼬마의 두뇌로 그 모든 걸 이해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내가 그 사고에 대한 기사만 유심히 찾아보는 걸 눈치챈 부모님은 무슨 일로 저러나 하고 궁금한 눈초리를 보냈지만 곧 신경쓰지 않게 되었다.

“있잖아 발레리, 예언이란게 진짜로 존재하는 걸까?”

학교에 가서도 그 일로 인해 싱숭생숭하는 마음을 달래지 못하고 있던 중에 마침 오컬트에 관해 관심이 많다고 알려진 발레리 포스터를 만나 다짜고짜 이런 질문을 꺼냈다. 물론 그 전에 가뜩이나 없는 점심값을 쪼개어 슈크림 도넛 두 개와 애플사이다를 대접하면서 말문을 트지 않으면 안 되었고, 덕분에 그날 점심은 눅눅한 감자 튀김과 벌레먹은 사과 하나로 버텨야 했다.

발레리는 얼굴을 거의 뒤덮다시피 한 커다란 안경을 빛내며 이야기했다.

“아직까지 진짜인지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역사상으로 예언자라고 불린 인물들은 많았지. 그중 어떤 사람들은 꿈을 통해 미래를 보았다고 하고, 어떤 사람들은 깨어 있는 동안에 백일몽 비슷한 상태에서 투시를 했다고도 해. 하지만 지금까지 나온 예언 비스무리한 것들 중에서 100% 들어맞은 예는 별로 없는 모양이야. 너무 애매모호하게 치장을 해놔서 이리 맞추면 맞는듯 하다가도 저리 맞추면 어긋나는 예도 있고, 딱부러지게 구체적으로 말하긴 했지만 보기좋게 틀린 예도 적지 않대. 그래도 진짜라고 믿는 사람은 있는 모양이더라구. 솔직히 유령이나 미확인 비행물체에 비해 낭만도 별로 없고 확인하기도 곤란해서 나도 큰 관심은 없지만 말야.”

역시 발레리는 아버지가 대학 교수인데다 자기도 별 오만 잡책들을 눈이 나빠질 정도로 거듭 읽다보니 말하는 게 꼭 작은 어른 같았다. 하지만 차분히 생각해보면, 그 내용은 결국 속빈 강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도넛 값의 본전이라도 뽑기 위해 좀더 구체적인 질문을 들이댔다.

“알았어... 그럼 한가지만 더. 어떤 사람이- 그러니까 네가 말한 그런 능력을 가진 사람이... 미래에 일어날 일을 투시해서 그걸 그림으로... 종이나 캔버스 위에 띄울 수도 있을까? 어디까지나 가정이지만 말야.”

“염사[念寫]를 말하는 거야? 그건 또 다른 분야에 속해. 특이한 능력으로 현재나 과거에 관련된 이미지를 사진 건판에 찍어내는 기술이야. 하지만 아직까지는 그런 능력이 미래 투시와 결합된 예가 있다는 얘긴 못들어봤어. 글쎄... 적어도 내가 아는 한도에서는 말야.”

나의 터무니없는 상상을 이론화하는 데에는 이것만으로도 충분했다.

“그런데 페니, 혹시 더 알아보고 싶다면 내게 좋은 책이 있는데... 카산드라 램의 「초능력은 새로운 진화인가?」라는 제목이거든. 만약 네가...”

나는 고맙지만 괜찮다고 말하고 그 자리를 빠져나왔다.





나는 그 뒤로도 자주 케스를 방문했고, 그녀는 거의 손녀뻘인 나를 기꺼이 친구로서 맞아들여 주었다. 나는 그때마다 그 신기한 퍼즐에 대해서 물어보고 싶은 말이 한 두가지가 아니었지만 아직 증거도 없는 판이라 꾹 참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는 동안에도 그녀는 때때로 그 퍼즐을 꺼내어 조심스럽게 그림을 맞추었고 그 때마다 찍은 사진은 액자로 만들어져 그녀의 응접실 한 구석에 따로 마련된 갤러리에 질서정연하게 걸리곤 했다.

그림들은 급진적인 초현실주의 작품들을 연상케 하는 혼란스런 것들에서부터 누가 봐도 무엇을 나타낸 것인지 금방 알 수 있는 고전적인 것들에 이르기까지 가지가지였다. 하지만 대부분은 별로 깊은 뜻은 없는 평범한 이미지들이었다. 개를 데리고 산책하는 노부부, 대자연 속에서 기지개를 켜는 산악인, 생일 케익을 앞에 두고 박수치는 가족들, 타이프라이터 앞에 앉아서 고민에 빠진 남자, 두번 다시 떨어지지 않을 것처럼 서로 부둥켜안은 연인 등등, 다양하긴 했지만 상상을 초월하는 것은 별로 없었다.

그러나 어떤 때에는 정말로 소름이 끼칠만큼 실제의 큰 사건과 연관된 듯한 암시적인 그림들이 주기적으로 나타났다. 예를 들면 이런 것들이다.

수많은 청중들 앞에 세워진 연단, 그리고 그 위에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는 구레나룻의 키큰 남자 - 이 그림이 나타난 반나절 뒤에 진보적 정치인의 대표주자였던 아르보 마르슬랭이 반대파의 총격을 받아 쓰러졌다.

그는 구레나룻을 기른 키큰 남자였고 그가 암살 당시에 입었던 옷은 그 그림에 나타난 색과 일치했다.

도시 한복판을 가로지르는 큰길 위에 가뭄으로 인해 갈라진 논바닥처럼 커다란 빗금이 쫙 가고, 그 틈새로부터 검은 연기와 함께 튀어나와 버둥거리는 녹색의 거대한 뱀 - 이 그림이 나타난 이틀 뒤에 뉴턴시 한복판을 통과하는 고속 지하철에서 폭발사고가 일어나, 열차 십수 량이 전복되고 그 중 하나가 지상을 향해 수직으로 처박히는 대참사로 번졌다.

그 차량의 색깔은 선명한 녹색이었다.

지구로 보이는 푸른 별을 배경으로, 지상을 향하여 비스듬하게 떨어져내리는 눈부신 빛의 화살 - 이 그림이 나타난 다음날 저녁에 아메리고 연방의 우주 왕복선 베스티아 14호가 지구궤도 재진입 도중 기체 결함으로 공중분해, 승무원 전원이 사망했다. 그 떨어져내리는 파편은 빛의 화살이 되어, 인류에게 있어서 영원히 잊혀지지 않을 궤적을 그리며 사라져 갔다.

마치 노아의 대홍수를 연상시키는 엄청난 큰물과 그 속을 떠내려가는 슬픈 눈의 쌍봉낙타들 - 이 그림이 나타난지 사흘 뒤, 중동의 베리야 사막에 이상기후로 인한 수백년만의 폭우가 내리는 바람에, 그 지방에선 평생 가도 구경 못한다는 대홍수가 일어났다.

인간을 원망하듯 슬픈 눈을 하고 떠내려가던 그 낙타들은 어디로 흘러갔을까.

나는 근 10년간 빠짐없이 일주일에 최소한 한 번씩은 케스를 찾아가서, 그녀가 끓여주는 차와 쿠키를 대접받고, 그녀가 살아온, 겉으로는 평온해 보이지만 사실은 폭풍우가 끊이지 않았던 지난 세월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며, 바깥 세상의 변덕스런 유행에 대해 의견을 나누고, 이제는 박물관에서나 볼 수 있는 LP레코드로 흘러간 노래들을 듣기도 하면서, 많은 시간을 보내곤 했다.

그동안 집은 서너번 이사를 하고, 학교도 일곱 번 옮겨다니고, 친구들도 여러 번 바뀌곤 했지만 결코 이 시간만은 바뀌는 일이 없었다.

그리고 항상, 모든 일과의 마지막에는, 어떤 그림이 나타날까 가슴을 두근거리며 하얀 마호가니 퍼즐을 맞춰 나가는 그녀와, 그것을 호기심어린 눈길로 조용히 지켜보는 나의 모습이 있었다.

가끔 에롤 부인을 시켜 그런 모습을 사진찍기도 했지만, 케스는 결코 그런 사진을 내게 주는 법이 없었다. 나는 그것이 다소 야속하게 느껴졌으나 겉으로 내색하지는 않았다.





오랜 세월이 지난 뒤에야 나는 그 퍼즐에 대해 내가 세운 가설을 케스에게 말할 수 있었다. 그녀는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고 온화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며 이렇게 말할 뿐이었다.

“그거 참 흥미로운 생각이로구나. 솔직히 말한다면 마법인지 초능력인지 그런 용어는 내게는 어느쪽이든 상관없는 것이란다. 그걸 어떻게 부르느냐보다는 그것이 어떻게 작용하느냐 하는 게 더 재미있지 않겠니?”

“어떻게 작용하죠? 제게만 살짝 말씀해 주시겠어요?”

어느새 팔팔한 대학생이 된 나를 앞에 두고 60대 노부인은 미소를 지었다.

“말로 할 수 있는 거라면 벌써 했겠지. 나는 그저 그러고 싶은 느낌이 들 때면 퍼즐을 꺼내어 맞추는 것 뿐이란다. 그러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어떤 힘에 의해 그 위에 그림이 새겨지는 것이지. 어떤 의미에서는 내가 퍼즐을 맞춘다기보다는 퍼즐 조각들이 나를 이끌어주는 걸지도 모르겠구나.”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설명이 되질 않아요. 어떻게 미래의 일들이...”

“페니, 아직도 세상에는 인간의 머리로 이해할 수 없는 수많은 일들이 있단다. 그 모든 것이 한꺼번에 베일을 벗는다면 오히려 그것처럼 혼란한 일도 없겠지. 지금 당장은 모르는 채 내버려 두었다가 언젠가 장래에 알게 됨으로써 더욱 재미나는 것도 있는 법이란다. 내 생각엔 이 퍼즐도 그런 게 아닐까 싶구나. 게다가 나는 이런 것을 그저 ‘해온’ 것뿐이지, 차근차근히 연구한 적은 없으니, 내게 그런 걸 물어봤자 소용이 없을게다. 그렇게 생각지 않니?”

하기야 육상선수를 붙들고 당신의 근육은 어떻게 그렇게 조화롭게 움직이는 겁니까 라고 물어봤자 만족할 만한 대답을 들을 수 있을리가 없다. 그저 ‘그러고 싶어서 그러는 거죠! 그런걸 왜 물어봐요?’라는 정도의 대답이 고작일 것이다.

하지만 오기가 생긴 나는 질문의 초점을 바꾸어, 어째서 이런 대단한 능력을 가지고 계시면서 예지한 사실을 사람들에게 알려 역사를 바꿀 생각을 하지 않으시냐고 물어보았다. 잘하면 수천 수만명을 구하는 영웅이 될 수도 있었을텐데.

케스는 잠시 심각한 얼굴로 생각을 거듭하다가, 이윽고 노안[老眼]을 껌뻑거리며 뺨에 홍조를 띤 채 대답했다.

“내가 퍼즐에 열중하게 된 건, 젊은 나이에 남편과 아이들을 잃고 절망했던 바로 그때부터였지. 너도 알다시피 전쟁이 너무나도 많은 것들을 빼앗아갔어. 다행히 내 앞으로 된 이 집은 남아있어서 길거리에 나앉는 것만은 면했지만,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했던 시간들은 영원히 돌아오지 않았단다.

남편이 남기고 간 빚을 갚기 위해 죽도록 일하고, 남는 시간에는 나보다도 더 고통받는 이들을 위해 봉사하고, 그런 식으로 시름을 잊으려고 노력했지만, 마음 한구석은 언제나 허전하기만 했단다.

그러다 문득 할머니로부터 물려받은 마호가니 퍼즐이 생각나서, 호기심으로 맞춰보기 시작했지. 처음에는 마냥 신기하기만 했어. 맞추면 그림이 나타났다가 흩으면 다시 사라지다니 - 꼭 모래 위에 그림을 그리는 것 같았지! 게다가 맞출 때마다 똑같은 그림은 한 번도 다시 나오지 않는거야! 어쩌면 이렇게 우리네 인생과 똑같을까! 대충 그런 식으로 감탄하면서, 적어도 한 달에 한번은 그 퍼즐을 맞추며 마음을 가다듬는 시간을 보냈지.

나는 바깥 일에 별로 관심이 없었기 때문에, 그 그림들이 실은 아무렇게나 그려진 것이 아니고, 저 바깥 세상의 누군가에게 ‘곧 일어날 일’을 알려주는 것이란 사실을 깨달은 것은 그 후 십수 년이 지나서였단다. 어느 날 에롤 부인이 가져온 조간 신문에서 내가 찍은 그림과 똑같은 구도로 사람들이 모여서 행진하는 걸 발견하고 얼마나 놀랐는지! 그 뒤로 불길한 생각에 사로잡혀 한동안 퍼즐에 손도 안 댄 적도 있었지...“

케스는 한숨을 내쉬며 먼 곳을 바라보는 시선으로 다시 이야기를 계속했다.

“하지만 나는 결국 다시 퍼즐을 꺼내지 않을 수 없었다. 젊은 때라면 몰라도 그때는 이미 중년에 접어들어서, 다른 마땅한 소일거리도 없었고, 무엇보다도 맞출 때마다 그림이 바뀌는 그 만화경같은 매력이 날 못 견디게 했어.

아까 내게 왜 영웅이 되려고 하지 않았는지 물었지? 내가 전혀 아무 손도 쓰지 않은 걸로 생각하느냐? 처음에는 불길한 그림이 나오면 믿을 만한 이들에게 상담도 해 보고 신문사나 방송국에 전화나 엽서를 보내기도 했지. 나름대로 바깥 세상 일을 조사해서 이게 대체 어떤 예언일까 추측해 보기도 했고.

--하지만 곧 모두 다 소용없는 일이라는 걸 깨달았다.“





“왜죠?”

나는 놀라움을 감추지 않고 이유를 물었다.

“예언이란 말이다, 페니, 그것 자체만으로는 아무런 결과도 만들지 못해. 아무리 정확하게 미래의 일을 알아맞춘다 해도, 그것을 맞추는 사람이 앞으로 벌어질 일에 대해서 확실하게 설명할 수 없다면, 그건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일이란다. 퍼즐이 나에게 보여주는 것은 언제나 추상적인 이미지에 불과해. 그것만 갖고서는 대체 어디서 무슨 일이 어떻게 일어날지 제대로 알아낸다는 건 불가능에 가깝단다.

페니, 세계에는 많고도 많은 사람들이 저마다의 자리에서 다양한 일들을 하고 가지각색의 삶을 살고 있단다. 그런데 퍼즐이 알려주는 것은 그 속에서 일어나는 단 하나의 사건 뿐이야. 그건 마치 세균이 수억마리 들어있는 배양기를 앞에 두고 다음에 어떤 세균이 돌연변이를 일으킬지 짚어낼 수 없는 것과 같은 거란다. 그저 우리는 가능성만 가지고 추측을 할 수 있을 뿐이지.”

“하지만 그림이 나타내주는 이미지는 일반적인 경향을 나타내는 게 아니잖아요. 명백히 하나의 특징적인 사건을 가리키는 것이니까... 그 특징을 조합해서 앞으로 일어날 일을 대강이라도 예측한다면...”

케스는 경험 많은 여선생님이 철부지 학생을 바라보는 듯한 눈길로 말했다.

“이론적으로는 그런 게 가능할지 모르지만, 그 퍼즐에 대해서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은 고작해야 나 하나뿐이었다는 사실을 잊지 말거라. 나는 너희처럼 유연한 두뇌와 세계를 포괄하는 정보망을 사용하는 젊은이가 아니었어. 기껏해야 한 가문의 외동딸이자, 아마추어 간호사이자, 약간의 문학 지식을 가진 가정주부에 불과했지. 내겐 너처럼 테라넷도, 위성 뉴스릴도, 모바일 패드도 없었어.

아무리 예언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 해도, 그 예언은 퍼즐의 예언이지 나 자신의 것은 아니고, 나로서는 그 의미조차 파악하기 힘들었어. 한정된 경험과 지식밖에 없는 나로서는 저 그림이 (그녀는 땅을 뚫고 나오는 녹색 뱀을 가리켰다) 지하철 사고를 의미하는건지 아니면 진짜 글자그대로 거대한 괴물을 의미하는건지 전혀 알 수가 없었지. 역시나 마찬가지로 저 그림도 (그녀는 지구로 쏟아져내리는 빛의 화살을 가리켰다) 소행성인지 천사인지 왕복선인지 저것만 가지고는 모른단 말이야. 나중에 그런 일이 일어나고 나서야 아 그거였구나 하고 알게 되는 것이지. 슬픈 일이지만 인간은 언제나 한발 늦는 존재일 수밖에 없단다.

페니, 예언은 나중에 그에 부합되는 ‘사건’이 생기고, 사람들이 거기에 예언을 끼워맞춤으로써 진정으로 ‘예언’으로 인정을 받게 되는 거란다. 아직 ‘사건’ 자체가 일어나지도 않은 상황에서 예언의 의미를 파악한다는 것, 그리고 그것을 올바로 다른 사람들에게 알린다는 것은 너무나도 힘든 일이야.“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안타깝고 서글픈 기분이 들었지만 그것을 말로 옮길 재주가 없었다. 그녀의 말에 틀린 점이라곤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나는 무언가 말을 하려고 고개를 들었다가 그녀의 옆얼굴을 보고 말문이 막혔다. 그녀는 특별히 ‘대재난’에 해당하는 그림들만을 모아놓은 갤러리를 바라보며, 얼굴을 슬프게 일그러뜨린 채 조용히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나는 그제서야 알 수 있었다. 그녀가 처음에는 그 참사들을 막아 보려고 얼마나 노심초사했었는지를. 그 누구보다도 사람들을 구하고 싶어했었다는 것을.

그러나 결국 한번도 성공하지 못하고 좌절과 실망만을 떠안게 되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그때의 마음을, 죽어간 사람들에 대한 슬픔을 잊지 않기 위해서, 가장 잘 보이는 저 자리에 저 그림들을 걸어둔 것이다.

“케스, 정말 죄송해요. 제가 철없는 말을 해서... 공연히 상처만 건드리고..”

그녀는 눈물을 닦고 다시 평소의 온화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아니야, 페니, 언젠가는 너에게 이 이야기를 들려주려고 생각했었단다. 오히려 네 쪽에서 이렇게 솔직하게 말을 꺼내줘서 고마울 정도인걸? 난 오랫동안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고 이렇게나 많은 비밀을 가슴에 묻어두고 살아왔다... 이젠 죽어도 여한이 없구나.”

“죽다니 무슨 말씀이세요. 아직도 많은 퍼즐이 남아있잖아요? 어쩌면 다음에는 그 예언을 좋은 쪽으로 활용할 길이 생길지도 몰라요. 다시 바꿔보려고 노력은 해 봐야죠. 제가 도와드리겠어요!”

그러나 케스는 멍한 얼굴로 내 얼굴을 빤히 바라볼 뿐이었다.

“......내가 말 안했던가? 아아 그래, 네 표정을 보니 말 안했나보구나.”

나는 불길한 예감에 사로잡혀 몸이 떨려왔다. 대체 무슨 말씀을 하시려고?

“-무슨 얘기를요?”

그녀는 대답 대신에 탁자 한구석에 뒤집혀 있던 액자 하나를 내게 건네주었다.

“어제 악몽을 꾸고 난 뒤에...... 이걸 맞추었단다.”

새로 만든 액자에 들어있는 사진에는...

낯익은 침대에 누워 싸늘하게 식어있는 노부인과, 그것을 슬픈 눈으로 내려다보는 한 소녀의 모습이 찍혀 있었다. 노부인은 평소때의 케스와 똑같은 온화한 미소를 띠고 있었으며, 소녀는 검은 상복을 입고 흑단 상자를 들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나였다.





그리고 일주일 뒤에 케스, 아니 솔베르 부인은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

나는 의사에게 가 보시라고 졸라댔지만 케스는 듣지 않았다. 오히려 퍼즐의 속박에서 벗어나 영원한 안식을 얻게 되었다고 생각했는지 여유롭기만 했다. 보통 예언의 효과는 길어야 사흘 안에 나타나는 게 보통이었으므로, 나는 나흘이 지나도 그녀가 건강하게 티타임을 즐기는 것을 보고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역시 그 그림에 나타난 이들은 이 지구상 어딘가에 있는 다른 사람들이었나봐 하고.

그러나 내가 틀렸다.

비는 커녕 구름 한 점도 없는 맑은 금요일 날, 그녀는 아침 디저트로 나온 푸딩을 들고 방으로 올라가 책상을 정리했다. 그리고 평소와 다름없이 에롤 부인에게 몇 가지 지시를 내리고 가계부를 정리한 다음 서재에서 퍼즐을 맞추다가 그 자리에 앉은 채로 잠자듯 조용히 세상을 떠났다.

나는 장례식에는 참석했지만, 관에 들어가기에 앞서 침대에 누워있는 그녀에게 이별의 말을 전하지는 않았다. 퍼즐에 나타난 것과 똑같은 장면이 실현되는 게 무서웠다. 그리고 영원히 눈을 감아버린 케스를 보는 것도 두려웠다.

내 기분은 그야말로 최악이었다.

저택은 시에 기증되어 박물관으로 개조되었고, 에롤 부인은 고향으로 돌아갔다. 부인의 가까운 친척들이 모두 실종되거나 죽었기 때문에, 얼마 남지 않은 유산은 자선단체에 기부되었고, 생전에 가깝게 지내던 이웃사람 몇몇에게 크고 작은 소지품들이 남겨졌다.

다만 퍼즐을 찍은 사진들의 행방은 아무도 몰랐다.

케스는 죽음을 앞에 두고서도 담담하게 뒷일을 생각하며 유언을 작성했던 모양이다. 나라면 그렇게 못할 것이다. 아마도 오늘 죽을려나 내일 죽을려나 초조하게 기다리느니, 친구들을 몽땅 불러모아 파티로 밤낮을 밝히면서 요란한 음악을 틀고 잼보니를 사발로 마셔대며 억지로 기운을 내려고 했을 것이다.

그녀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아마도 그녀는 알고 있었을 것이다. 자신이 일찌기 막으려고 했던 많은 사람들의 죽음처럼, 자기 자신의 죽음도 피할 수 없는 숙명이라는 것을.

그렇지만 나는 그녀가 아름답게 죽음을 맞이한만큼 더더욱 아쉬웠다.

뒤에 남겨진 나는 생각지도 않고 혼자 멀리 가 버린 것만 같아서!

그 때문에 나는 내 앞으로 남겨진 케스의 퍼즐 상자를 십년 가까이 열어보지 않고 창고에 처박아 두었다. 그리고 곧 그 존재조차 잊어버렸다.

잊기라도 하지 않으면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기에...





“좋아. 그 아무짝에도 쓰잘데기 없는 테니스라켓은 저리 치우고...다음.”

“여기 뭔가 고풍스런 상자가 보이는데요, 이게 페니 당신이 찾던 건가요?”

“뭐? 어디 한번 보여줘어!”

왜 하필 그날따라 창고 정리를 하고 싶어졌는지는 나로서도 알 수 없었다.

천신만고 끝에 자리를 잡고 집을 떠나 새로운 생활을 시작한지도 5년 째. 밀려드는 일거리에 정신없는 나날을 보내다가, 문득 뭔가 집에 놓고 온 듯한 기분이 들어서, 모처럼의 휴가를 집에 돌아와서 보내고 있던 참이었다.

나의 권유로 방문 중이던 내 비서 칼리를 부려먹어 가며 (미안) 창고를 열심히 뒤집어엎은 끝에, 나는 드디어 원하던 것을 찾아냈다.

“................................”

검은 흑단 상자를 보물인양 소중히 껴안고 서있는 나를 묘한 눈길로 쳐다보는 칼리에게, 나는 말없이 미소를 지어 보였다. 어차피 말로 설명할 수 있는 성질의 물건이 아니었으니까.

대충 뒷정리를 하고 샤워를 한 뒤에, 우리는 내 방에서 그 상자를 열어보았다.

그 안에는, 문제의 마호가니 퍼즐 말고도 놀랄 만한 것이 들어 있었다.

첫 번째는, 케스와 내가 함께 찍은 빛 바랜 흑백사진들.

칼리는 사진을 열심히 들여다보면서도, 도대체 신들린듯이 퍼즐만 맞추는 노부인과 그것을 옆에서 똘망똘망하게 넘겨다보는 소녀의 모습에 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가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표정이었다.

그렇다고는 해도 당시에 내가 짓고 있던 표정들이 의외로 하나같이 바보같아서, 사진들을 키득거리며 구경하는 칼리를 암매장하고 사진들을 슥슥 불태워버리고 싶은 충동마저 일 정도였다. 콧잔등 위에 연필을 올려놓고 입술을 삐죽 내민 채 허공을 바라보고 있질 않나, 멍하니 입을 딱 벌리고 발진에 걸린 애새끼마냥 뺨을 붉히고 있질 않나;;;

“헤에, 엉겅퀴같은 검사님에게도 이런 사랑스런 소녀시절이 있었군요.” (^.^)

“-더 말하면 죽어.” (-_-)

그리고 또 하나는, 그녀의 마지막 편지.

나는 좀더 일찍 이 상자를 열어보지 못한 것을 후회하면서, 떨리는 가슴으로 편지를 차근차근 읽어내려가기 시작했다.




-페넬로페 반 다이크에게


내 소중한 친구 페니, 아마 네가 이 편지를 읽고 있을 때엔 나는 이 세상에 없을 게다. 너와 마지막으로 만났던 그날 우리가 나누었던 대화, 그리고 그때의 나를 바라보던 너의 표정이 도저히 잊혀지지 않아서, 그날 못다한 말을 편지로나마 남기려고 한다. 졸지 말고 잘 들어다오.

네가 슬픈 얼굴로 돌아가고 나서 나는 많은 생각을 했다. 하지만 결국 아무리 생각해 봐도 네 말대로 예언을 이용해서 미래를 바꾸는 것은 가능하지 않을 뿐더러 만약 성공한다고 해도 희생이 많이 따르고 바람직하지도 않은 일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단다.

아직도 그런 말을 하느냐고 화내지는 말아 다오. 난 운명에 맞서야 한다는 너의 의견도 충분히 존중하고 있단다. 하지만 나는 내 방식대로 운명과 마주할 작정이다. 너도 너의 방식대로 후회없는 삶을 살아가길 빈다.

퍼즐에 대해서 너에게 얘기 못한 게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퍼즐이 어느 정도는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의 심리 상태에 영향을 받는다는 점이란다. 물론 사용하는 사람이 자기의 마음대로 미래를 결정해서 퍼즐 위에 새겨놓을 수 있다는 얘기는 아니다. 다만 퍼즐을 맞추는 사람이 즐겁고 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을수록, 퍼즐이 잡아내어 그림으로 나타내 주는 미래의 모습도 보다 바람직한 것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지.

너는 아마 몰랐겠지만, 나는 일찍부터 이러한 경향을 발견해서 내 나름대로 통계를 내 보았단다. 그랬더니, 내가 우울하거나 불행한 날에 맞춘 그림들은 하나같이 대참사였다는 걸 깨달았단다! 사실 너와 처음 퍼즐을 맞췄던 그 날도, 나는 약간 다른 일로 마음이 흐트러져 있었지. 오, 아냐, 물론 네 잘못은 전혀 아니란다. 그점에 대해선 걱정하지 않아도 돼.

무슨 얘길 하고 있었지? 아 그래, 퍼즐 얘기였지.

우리가 함께 보낸 수많은 시간들을 기념하며, 그리고 네가 나의 어리석지만 자부심에 찬 언행들을 기억해 주기를 바라며, 나의 퍼즐 상자를 너에게 남기마. 좀더 좋은 선물을 주고 가지 못해 미안하지만, 세상에는 기대를 뛰어넘는 공짜란 없는 법이다. 너도 반더펠트 부인의 생선가게를 폐점 시간 직전에 들러봤다면 이해할 게다.

이 퍼즐이 나와 같은 능력을 지닌 사람에게만 효과가 있는 건지, 아니면 전혀 능력이 없어도 퍼즐만 있으면 같은 효과를 끌어낼 수 있는건지, 상당히 흥미가 있더구나. 그런데도 왜 생전에는 너한테 한번이라도 퍼즐을 맡기지 않았냐고? 이렇게 재미있는 걸 남에게 그냥 맡길 수는 없지 않니. 아마도 내 생각에는 너나 누구 다른 사람이 맞춰도 이 퍼즐 위에 두번 다시 그림이 나타나는 일은 없을 것 같구나. 하지만 언제나 세상에는 뜻밖의 결과란 게 있으니 기쁘게 너의 실험을 고대하마.

마지막으로 좀 다른 이야기를 해야겠구나. 늙은이 신세타령이 너무 길다고 타박하지 말고 조금만 더 들어주렴. 아주 중요한 이야기란다.

페니, 이런 생각 해본 적 있니? 우리가 맞추는 지그소 퍼즐처럼, 이 세상도 사실은 하나의 거대한 퍼즐일지도 모른다는... 세상에는 많은 수수께끼와 신비가 가득하지. 그리고 그 수수께끼와 신비 속에서 우리들 개개인, 아니 인류를 포함한 세상의 모든 생물과 무생물과 환경이 한데 얽혀 조화롭게 살아가고 있지. 그런 조화 속에도 여러가지의 법칙이 숨어 있어서, 마치 제대로 딱딱 맞춘 퍼즐처럼 서로가 맞물려 하나의 거대한 그림을 이루고 있는 것이 아닐까? 그러다가 그 조화가 깨지면 잘못 맞춰서 아귀가 맞지 않는 퍼즐 조각들처럼 산산히 깨지기도 하고 말이야.

어떻게 보면 우리는 하나의 퍼즐 조각으로 태어나서 매일 매일을 다른 조각들과 아귀를 맞춰보면서 그림을 만들려고 노력하고 있는 것일지도 몰라. 우리들 각자가 하나의 피스piece인 동시에, 그것을 맞추어 그림을 완성하려고 애쓰는 유저user이기도 한 것이지.

경이로운 생명을 너무 왜소한 존재로 과소평가하는 게 아니냐고? 확실히 그럴지도 모르지. 하지만 들어봐라 페니. 퍼즐 조각이란 말야, 전체에 비해서 덜 중요해 보일지도 모르지만 그 피스들이 없으면 전체도 결코 성립할 수 없는 법이란다. 또한 각각의 피스는 저마다 그에 맞는 위치와 역할이 있어서, 그 중 하나라도 빠지면 결코 그림을 완성할 수가 없는 거야. 게다가 모든 개체에게는 한 가지의 고정된 역할만 있는 건 아니란다. 페니 너만 해도 너희 가족들 안이나 학교에서 그리고 나와의 관계 등에서 각각 다른 역할과 성격으로 살아가겠지. 말하자면 하나의 피스가 한 그림의 고정된 일부에 머물지 않고 이리저리 옮겨다니며 무한한 그림의 무한한 일부로서 변화무쌍한 역할을 하고 있는 거란다. 재미있지 않니?

페니, 내가 하고 싶은 말이란 바로 이거란다. 너는 네 앞에 놓여있는 조그만 퍼즐을 맞추는 데만 급급해서 세상이라는 거대한 퍼즐을 간과하고 있지는 않니? 만약 그렇게 생각된다면 지금이라도 당장 내 마호가니 퍼즐은 엎어버리고, 바깥 세상으로 달려 나가거라. 그리고 그곳에서 만나는 모든 생명들, 인연들을 소중히 여기도록 해라. 그러면 언젠가는 너도 생을 정리할 때가 가까워져서 네가 만들어 온 아름다운 그림들을 한눈으로 내려다보게 되겠지!

페니, 세상이라는 이름의 퍼즐을 이루는 한 피스로서, 너라는 피스를 만나게 되어 정말 기뻤단다.

네가 자랑스럽구나.


-퍼즐과 인간과 홍차를 사랑하는...

케스티앙 솔베르





나는 편지를 다 읽고 나서 흑단 상자에 가만히 집어넣었다. 가슴 속에서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뜨거운 그 무언가가 치밀어오르는 듯한 기분이었다.

흑단 상자에 흑백 사진들과 마호가니 피스들을 잘 챙겨 넣고 상자를 정성스럽게 닫는다. 역시 이 퍼즐들을 다시 맞춰볼 용기는 나지 않았다. 아무것도 없는 하얀 공백만 나온다면 실망스러울 테고, 무언가 엉뚱한 그림이 나와서 대사건을 예언한다면, 그것을 막으려고 삽질을 해댈 테니까 말이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이것은 케스의 것이다. 나는 보관자일 뿐이었다.

그녀는 천국에서도 세상이라는 이름의 퍼즐을 계속 맞춰보며 웃고 있을까?

나는 그러기를 바란다.

“헤에, 검사님이 우는거 처음 봐요. 이렇게 앙증맞을 수가♡”

......칼리는 하여튼 분위기 깨는 데 뭐가 있다.

“우는거 아냐. 상자에 덮여있던 먼지가 눈에 들어간 거라구.”

“우는거 맞잖아요.”

“아니라니까!”

나는 눈물과 콧물이 범벅이 된 얼굴로 억지로 웃으며 베개를 집어던졌다.

세상은 그렇게 다시 돌아가는 것이다.





THE END!





(C) ZAMBONY 2003.05.14.





:
위로
보이기/숨기기 가능합니다^^
«   2024/03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보이기/숨기기 가능합니다^^
보이기/숨기기 가능합니다^^
보이기/숨기기 가능합니다^^
RSSFe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