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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01-21] 울트라하 : 본편 제4화
창작의 샘터/울트라하 | 2010. 7. 4. 1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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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 R O L O G U E ◆



옛날 옛날 한 옛날...

지금의 앙끄시가 위치한 곳에는 캐러왕국이라 불리는 하나의 고대 국가가 존재하고 있었다. 이 왕국은 위대한 전설의 여왕 세이레스 올리비엔의 통치 아래 오랫동안 번영의 시대를 구가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열흘 붉은 꽃이 없고 달도 차면 기우는 법. 그 찬란하고 장대한 왕국의 번영도, 여왕의 뒤를 이을 후계자를 선정하는 과정에서 파생된, 치열한 권력 투쟁으로 인해 그 빛이 흐려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여왕이 식사 도중 의문의 죽음을 당하고 그녀가 가장 사랑했던 막내왕자 준군이 실종되면서 왕국은 몰락의 길을 걷게 된 것이었다. 준군의 행방은 끝내 밝혀지지 않았고, 생전에 여왕에게 달라붙어 아부를 일삼고 온갖 권모술수를 동원해 가며 싸워 온 수많은 일가친척들과 친구들, 그리고 서로 충성을 다투어 가며 버텨 온 신하들은, 격화되는 긴장에 견디다 못해 내란에 돌입했다.


그리고 캐러왕국은 1만 4천 5백 2십 7년의 역사를 마감한다.


왕국이 멸망하고 그 화려한 궁궐터도 잿더미로 화한 뒤, 그 자리에서는 새로운 이주민들이 기존에 살던 사람들과 뒤섞여 또 다른 문명과 영화, 그리고 전설을 만들어 가기 시작했다.

오직 황성 옛터에 홀로 걸터앉아 양들을 지켜보며 오카리나를 불어 대던 늙은 양치기만이, 오래된 왕국의 잊혀진 이야기를 후세에 전할 뿐이었다.

물론 비운의 왕자 준군이 어디로 갔는지는 그 또한 알지 못했다.


그리고,

그로부터 7천 년의 세월이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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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트라하 ― 별에서 온 여왕

ウルトラハ ― 星からの女王さま

(C)央久プロ․NOW․ウルトラハ製作委員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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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OPENING  :  BRIGHT  STARS ★



믿고 있었어

아무도 따라와 주지는 않았지만

오직 나만의 길을

찾아서 떠나가야 한다는걸


저하늘 너머 아름다운 별들

마치 우리를 손짓해 부르는 것처럼

반짝이고 있어

이리 오라고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어떤 두려움이 몰려와도

나는 할 수 있어

나는 여왕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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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화 미소년의 외침

第4話 『美少年の叫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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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불과 나흘 전에 일어난 일이었다.


앙끄시의 변두리 중에서도 가장 변두리인 캐사모스톤 지구의 어느 건설 현장에서 한참 땅을 파고 있던 인부들이 건설부지 밑에서 이상한 무덤을 하나 발견했다는 소식은 대단한 특종이었다. 그 무덤 안에는 값어치를 따질 수 없이 귀중한 온갖 부장품들과 묘하게 생긴 거대한 석상 하나, 그리고 수정으로 만들어진 관처럼 생긴 물건이 하나 있었는데, 그 관 속에는 7천 년 전 실종되었다고 알려진 고대 캐러왕국의 왕자 준군이 살아있을 때의 모습과 거의 다름없는 상태로 잠들어 있었다고 한다. 정말로 이상스럽게도, 7천 년이라는 세월 동안 전혀 부패하지도 건조되지도 않은 채로, 마치 잠깐동안 잠을 자고 있을 뿐인 것처럼 말이다.

황급히 현장에 달려와서 문제의 고분을 조사하기 시작한 앙끄시의 저명한 고고학자들은, 고분 내에 그려진 벽화와 글자들을 분석함으로써 ‘시체’의 신분을 알아내고는, 이루 말로 다 할 수 없는 흥분에 휩싸였다. 멸망 이후 그 존재를 증명해 주는 단서가 전혀 남아 있지 않아서 쪽지(口傳)와 몇 안 되는 갈무리 파일(古書)로만 전해 내려오던 전설의 캐러왕국이 실제로 존재했었다는 것을 밝혀 주는 귀중한 자료가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특히나 살아 있을 때와 다름없이 생생한 모습을 유지하고 있는 준군의 ‘시체’에 대해서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대체 어떻게 해서 그토록 철저한 방부처리가 가능했을까에 대해서는 아직 밝혀지지 않고 있었지만, 학자 중의 한 사람이, 세밀한 화학처리와 함께 일종의 ‘마법’이 병행된 듯하다는 의견을 표명하였다. 또한 출처가 밝혀지지 않은 옛 전설에 근거하여, 뛰어난 연금술사이자 마도사(魔道士)였던 세이레스 여왕이 자기가 가장 아끼는 왕자를 내란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서 그를 잠재운 후에 문제의 고분에다가 피신시켰을지도 모른다는 설(說)도 제기되었다.

......다만 그 피신의 기간이 너무 길었다는 점이 문제였지만.


그거야 어쨌든 간에, 학자들은 이 역사적인 발견에 대해서 마치 신우근 중위가 아*카 LD를 만나고 ‘소년’이 비*스 파*브 테입을 손에 넣은 것처럼 기뻐 날뛰며 한 가지라도 더 밝혀 내기 위해 날밤을 새워 가며 연구에 착수했고, 이 발견을 이용하여 국가의 위신을 드높이려는 당국자들 또한 그들의 작업을 주시하게 되었다.

그러잖아도 경제 위기에다 대량 실업 사태에다 연쇄 부도 등등 우울하기 짝이 없는 소식들로 심란해진 앙끄시의 대다수 시민들은 잊혀진 고대 왕국의 신비와 낭만에 젖어 들어 현실을 잠시나마 잊어 보고자 하였고, 이러한 심리를 재빠르게 예견한 앙끄시의 주요 언론사들은 1분1초를 다퉈 가며 현장 보도에 주력하였다.


결국 고분 발견 7시간 후, 발굴현장은 각지에서 앞다투어 몰려든 온갖 종류의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루게 되었던 것이었다.

그 면면을 들여다보자면, 발굴품의 종류를 기록하고 진품 여부를 검증하기 위해 찾아온 전문가들, 문화재 관리 공단에서 작업을 감찰하기 위해 파견한 공무원들, 격려차 앙끄시장의 전문을 가지고 달려온 당국자들, 행여나 귀중한 발굴품을 도난당할까봐 삼엄한 경비를 펴고 있는 기동타격대, 학자들의 숙식을 보조하기 위해 급히 보내어진 공익근무요원, 발굴 광경을 견학하려고 야외수업을 나온 각급 학교 학생들과 유치원생들, 발굴 과정을 생생하게 보도하기 위해 몸싸움을 벌여 가며 카메라를 돌리고 마이크를 휘두르는 언론사 기자들,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기 위하여 달려온 119구조대, 무슨 일인가 싶어서 와글와글 구경 나온 동네 주민들, 몰려든 사람들에게 심심풀이 오징어 땅콩과 엄대일표 호박엿을 바가지 씌워 팔아먹는 잡상인들, 이들을 협박하여 자릿세를 갈취하는 사기꾼들, 혹시나 귀한 보물을 빼돌릴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슬그머니 숨어든 도굴꾼들, 이들을 뒤쫓는 트렌치 코트의 사복경관들, 「박도작과 핑크제로」의 특별 공연이 있을 거라는 헛소문을 믿고 벌떼같이 달려온 소녀팬들, 발굴현장이 상영회 장소인줄로 착각하고 몰려든 앤이동 회원들, 그들을 감독하고 질서를 규율하기 위해 슈퍼 아스라다와 新 마하 5호를 나눠타고 달려온 운영진 여러분, 이 기회를 놓칠세라 동인지 판매전을 벌이기 시작한 전국 만화동호인 연합회, 혹시나 어린이들에게 해악을 끼칠 요소는 없는가 하는 우려에서 모니터링을 개시한 Y모 단체, 울트라하 4화를 억지로 쓰다가 진저리가 나서 바람이나 쐬려고 도망쳐 나온 작가 녀석, 그밖에도 우연히 지나가다가 길이 막히는 바람에 순전히 타의(他意)로 휩쓸려 들어온 행인들 등등, 정말로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어 엄청난 혼란을 빚었던 것이었다.

세상일이란 항상 이렇게 부풀려지는 법이다.


아무튼 그런 혼란 속에서도 우리의 용감하고 영리한 고고학자 아저씨들은 맡겨진 과업만을 묵묵히 수행하느라 진땀을 흘리고 있었고, 가장 중요한 발견물인 준군의 관은 더욱 자세하고 정밀한 검사를 행하기 위해서 그 내용물과 함께 국립 문화재 연구 센터로 극비리에 이송되었다. 방금까지만 해도 멀쩡하던 날씨가 갑자기 칙칙해져서 태산같은 폭풍이 몰아치고 가끔씩 벼락이 떨어지기는 했지만, 이송작전은 그런대로 별 탈 없이 완수되었다. 할 일을 다 끝낸 수송대원들과 관리인은 안심하고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그러나, 진짜 사건은 그 이튿날에 벌어졌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사건이 발생한 것을 사람들이 알게 되었다고 하는 편이 옳겠다.

준군의 ‘시체’가 감쪽같이 사라져 버린 것이다!


그 사실을 가장 처음 발견한 사람은 연구 센터의 경비원인 조필성씨였다. 아침식사 전에 한 번 순찰을 돈답시고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문을 열어보고 이상이 없나 살피다가 준군의 ‘시체’가 보관된 특별실까지 오게 되었는데, 이상스럽게도 수정으로 된 관이 텅 비어 있더라는 것이었다.

특별실의 창문은 벼락이라도 맞은 듯 엉망으로 깨져 있었고 창문 아래의 화단에는 비에 젖은 발자국이 나 있었다. 그러나 발자국은 한사람 몫뿐이었고, 무거운 물건을 들고 간 것 같지도 않았다. 게다가 특별실 창문은 지상 5층에 위치하고 있었으므로, 도대체 어떤 방법으로 ‘시체’를 옮겼는지 알 수가 없었다.

결론적으로, 도둑의 소행이라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어찌 되었거나, 이 일로 인해서 가장 속이 타는 사람은 발굴 책임자인 노병민 박사였다. 일평생 동안 아무도 믿어 주지 않는 캐러왕국의 실재를 끈질기게 주장하며 학계의 웃음거리가 되어 오다가 이번의 발견을 계기로 명예를 회복할 기회를 잡을 수 있었기 때문에 더더욱 그러했다.


학계에서는 필사적으로 소문이 새어 나가는 것을 막고자 애썼지만, 이러한 사실은 말썽많은 언론들에 의해 삽시간에 퍼져 나가서, 그날 오전이 다 가기도 전에 앙끄시 전역에는 7천년 전에 매장된 미소년이 되살아나서 어딘가를 걸어다니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소문이 쫙 퍼졌다. 모 방송사는 자기네의 인기 프로그램인『저것도 알려주라』를 통해 ‘美少年의 저주인가? 소생하는 고대 왕국의 전설!’이라는 超스펙터클 특집 방송을 2시간 연속으로 내보낼 계획을 짜기 시작했고, 소문을 곧이곧대로 믿은 소수의 호사가들은 그 미소년이 과연 얼마만에 발견될지를 놓고 한판 내기를 걸었다. (이들을 대상으로 임시 발행한 ‘미소년 복권’은 반나절만에 다 팔려서 2차 인쇄에 들어갔다.) 각지에서 몰려든 사립탐정들과 현상금 벌이꾼들은 발굴현장에서 찍힌 해상도 최악의 사진 한 장만을 단서로 미소년 찾기에 나서게 되었다. 이미 소문을 막기에는 때가 늦어 버렸다고 판단한 당국이 노병민 박사의 반대를 묵살하고 거액의 상금을 내걸었던 것이다.

앙끄시는 때아닌 보물찾기 선풍에 휩싸여 활활 타올랐다.



“7천 년 전에 매장된 ‘미소년’이라구? 그게 사실이야?”

여기는 3주전에 PETS 본부가 무너진 뒤 대원들이 임시 사령부로 쓰고 있는 천막 안이다. 묘한 흥미를 느낀 하라대원은 소식의 진원지인 ‘소년’을 추궁한다.

“하힐잉아바요. 오을 아힘 앙끄일오에 일면 어잇이하오 아왔어은요.”

점심으로 배달되어 온 상해정의 고기만두를 열나게 씹어대며 ‘소년’이 웅얼거렸다.

“다 먹고 나서 똑똑히 말햇!!!”

그 버릇없는 대답에 분노한 하라대원이 ‘소년’의 목을 졸라대며 필살 코브라 트위스트를 걸었다.


원래 ‘소년’이 본부에 배달되어 오는 신문을 제일 먼저 보는 이유는 그날의 TV 프로그램을 확인하기 위해서였지만, 가끔가다 뭔가 희한한 소식이 나왔다 하면 그것도 덤으로 머릿속에 기억하고 있다가 점심 시간에 화제로 들고 나오는 일이 흔했다. 문제는 그가 생각하는 ‘희한한 소식’이라는 것의 범위가 매우 다양해서, 때로는 대원들을 귀찮게 하는 일도 적지 않다는 점이었다. 이를테면 이미 고인이 된 김현식이 앙끄시의 어느 햄버거 코너에서 엘비스와 필사의 팔씨름을 벌이는 것이 목격되었다는, 도무지 말도 안 되는 화제를 가지고도 두 시간 넘게 계속 이야기를 할 정도였다. 처음에는 유령의 실재에 관한 과학적 탐구에서 시작해서는 김현식과 엘비스의 음악세계와 사생활 이야기로 옮겨가더니 나중에는 그들의 유족이 지금 어디서 무얼 하고 있는지에 대해서까지도 쏟아내고 결국에는 남이 듣건 말건 도망가건 말건 ‘내사랑 내곁에’와 ‘Heartbreak Hotel' 등의 히트곡을 논스톱 메들리로 불러댈뿐만 아니라 기분이 좋으면 덤으로 메틀버전, 트로트버전, 펑크버전으로도 열창하는 ‘소년’의 기막힌 입담에, 다른 대원들은 삶의 의욕을 잃고 어딘가로 뿔뿔이 흩어지기 일쑤였던 것이다.

......그런 날이면 으레 PETS의 작업 능률은 반으로 떨어지곤 했다.


하여간에, 지금 ‘소년’이 하고 있는 얘기는 두말할 나위 없이 준군 실종(?)사건에 관한 것이었다.

“난 안 믿어. 보나마나 사람들 관심을 끌기 위해서 평범한 도난 사건을 신문사에서 각색한걸거야.”

항상 불평분자인 유태대원이 기사의 진실성에 대한 회의를 털어놓았다.

“하지만 앙끄일보뿐만 아니라 종합 3대 일간지와 스포츠신문, 경제신문, 심지어는 어린이 신문들도 다 같은 내용의 기사를 실었어요. 이건 신문사들끼리 미리 약속이 되어 있었거나, 애초에 정보를 알려주는 쪽에서 똑같은 얘기를 해 주었다는 의미예요. 단순한 도난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거지요.”

언제나 맑고 둥근 안경알을 빛내며 방대한 자료를 분석하는 피요대원이 반론을 제기한다. (도대체 어린이 신문은 왜 조사하는 걸까?)

“그렇다면 그 시체가 스스로 걸어나갔을 수도 있다는 겁니까?”

‘소년’이 다시 눈망울을 빛내며 호기심을 드러냈다.

“말도 안돼. 자그마치 7천년 전에 매장된 시체야. 매장 당시에는 죽지 않았었을지도 모르지만 어차피 그 동안 생명이 끊어졌을 거라고 보는 게 옳아. 단지 방부처리가 잘 되어서 썩지 않았다 뿐이지.”

이유 모를 허전한 심정을 애써 감추며 하라대원이 말한다.

“어젯밤에 친 벼락이라도 맞고 벌떡 일어났을지도 모르지요. 왜 옛날 영화에도 그런 거 나오잖아요.『프랑켄소시지의 괴물』이라던가.”

‘소년’도 물러서지 않고 자기 생각을 얘기한다.

“어쨌거나 우리 소관은 아니니까, 경찰에게 맡겨 둘 수밖에 없어. 우리가 지금 신경써야 할 일은 본부 복구다. 이제 점심시간도 끝났으니까, 개인적인 잡담은 뒤로 밀어 두고 다시 작업을 시작하도록 하지.”

미소년에 대해서는 별 관심이 없는 유성대장이 소년의 이야기에 찬물을 끼얹는다.

“대장님! 아까운 식수를!”

“음? 미안하네, 피요군.”

식사를 끝마친 대원들은 입가심으로 곰쇠수정과를 마신 뒤 옆에 세워 둔 부삽을 치켜들고 용맹스러운 기세로 재건의 현장에 임하였다. (BGM: 잘살아보세)


“그런데 왜 우리가 이런 일까지 직접 해야 하는 건가요, 대장?”

유태대원이 툴툴거리자 유성대장이 차근차근 설명해 준다.

“전에 말해 주지 않았었나? 고용조정 정책 때문에 대부분의 정부기구가 감축되었다고. 따라서 앞으로 경기가 호전될 때까지 모든 정부기관은 자급자족 태세에 들어가게 되었지. 한마디로, 스스로의 문제는 스스로의 손으로 해결하라는 지시다... 그런 이유 때문에, 우리는 외부의 도움 없이 우리의 손으로, 이 본부를 재건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유성대장은 저도 모르게 타오르는 열혈을 억제하지 못하고 소리쳤다.

“대, 대장님, 입에서 불꽃이!”

“으음? 누가 물 좀 가져다주지 않겠나.”


그의 말대로였다. 물론 최소한의 기자재나 원료는 정부에서 기본적으로 대 주지만, 높은 인건비 때문에 노동력만은 별도로 차출할 수가 없었다. 따라서 PETS 대원들은, 비상시에는 출동하여 괴수를 상대하고, 평소에는 비번인 사람까지도 합세하여 본부 재건축 작업에 힘을 모으고 있었던 것이다.

벌써 3주일이 지났건만, 본부가 있던 자리는 여전히 전쟁터를 방불케 하는 황야로 남아 있었다. 복구작업은 이제 겨우 지하층 부분만이 끝났을 뿐이었고 지상 부분까지 완성을 보려면 몇 달이 더 걸릴 판이었다. 그 동안 대원들은 본부 앞 공터에 몇 개의 임시 막사를 짓고 그 안에서 모든 업무를 처리해야만 했다. 숙식이야 요원의 99%가 출퇴근하는 처지라서 별 상관은 없었지만, 전투지휘․병기개발․정비작업․환자간호․일반사무 등등 해결해야 할 일은 그것 말고도 많았다. 점심식사 또한 임시로 설치된 파오(몽골식 천막집) 안에서 꿀꿀이죽과 강냉이로 때웠다. 가끔 가다 운이 좋으면 별식으로 공갈빵도 나오곤 했다. 기억하자 6.25 무찌르자 공산당...

......이, 이게 아니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은, 본부 붕괴 이전에 모든 비행용 메카들을 VTOL로 개조해 두었기 때문에 활주로가 따로 필요 없다는 사실일지도 모른다.

“으흑, 방위군에 있을 때에는 그나마 기지는 멀쩡했었는데...”

힘겹게 땅을 갈아엎던 유태대원이 작은 소리로 투덜거리고 있었다. 그의 머리 위로 무정한 오후의 태양이 둥둥 떠가고 있다.

“잇힛히히 오후의 태양단 영업 개시다~~~!!!”

......얘네들은 누구지?


한편, 그들이 있는 곳과는 약간 떨어진 장소에 자리한 의료 캠프의 한구석에서, 우리의 주인공 동거녀는 제딴에는 열심히 의무실장 무휼박사와 구급반의 활동을 돕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은 전혀 알지 못했지만, 동거녀는 자기의 실수로 인해 본부가 파괴된 것에 대하여 깊은 책임을 느끼고 있었다. 따라서 작업에도 그 누구보다 열과 성을 다해서 간호에 참여하고 있었던 것이다. 다만 그 솜씨가 열성을 미처 따라가지 못해서, 오히려 역효과를 내는 일이 더 많기는 했지만.

“앗, 죄송합니다. 이게 그 약이 아니었나 보네요.”

“그건 소화제야, 소화제!”

“아아 큰일났다. 또 거즈를 잘못 잘랐어요.”

“빨리빨리 해, 상처가 썩어 들어가고 있어!”

“저... 붕대 남은 거 없을까요?”

“또? 아까 가져간 것은 어떡했어?”

“어머나, 왜 마취가 완전히 되지 않는 걸까?”

“누가 마시다 남은 동동주를 링겔 병에 넣었어?”

“선림씨, 이 환자분 뱃속에 뭔가 있나 본데요.”

“거녀양, 내 메스 못 봤나?”

......지, 지옥이 따로 없군.

하늘이 도우셨는지, 이제까지는 다행히도 한 사람의 사망자도 내지 않고 의연히 환자를 돌보는 거녀.

......그러나 과연 내일도 무사할 것인가?



같은 시각, 앙끄시 중심가에서는...

“궁금한게 하나 있는데, 왜 모든 사건은 중심가에서 벌어지는 건가요?”

따지지 마라. 피요대원.


...중심가에서는, 역사책에서나 볼 수 있는 화려하고 고풍스러운 옷차림을 한 어느 소년을 둘러싸고 한바탕 소동이 벌어지고 있었다. 그 소년은 매우 수려한 외모를 하고 있어서 한 번이라도 그의 얼굴을 본 사람은 남녀를 막론하고 가슴이 콩닥콩닥하는 야릇한 감정을 느끼지 않고는 못 배길 정도였다. 백록담같이 맑고 푸른 눈, 귀여운 느낌을 주는 오똑한 코, 불로장생주라도 마신 듯이 장밋빛으로 발갛게 물든 양볼, 수줍은 미소를 가득 담고 있는 작고 창백한 입술, 걸어갈 때마다 눈부시게 살랑거리는 갈색의 모발, 지나치게 통통하지도 마르지도 않은 균형잡힌 체형, 모성애를 불러일으키는 가냘픈 걸음걸이, 우아하고 품위 있는 손놀림과 몸 동작. 그야말로 천국에서 잠시 내려왔다가 날개를 잃어버리고 방황하는 한 마리(?)의 천사 같은 느낌을 주는 신비한 분위기의 미소년이었다.

그의 얼굴은 신(神)이 장난삼아 라인하르트 폰 로엔그람과 이모노야마 노코루를 반쯤 섞어 부은 뒤에 히이로 유이와 밀리아르드 피스크래프트를 살살 풀어서 넣고 세이야와 유귀를 맛보기로 살짝 뿌린 다음 프린스 하이넬과 초인 로크를 곁들인 후에 끝마무리로 말라이히와 반크램을 살포시 얹은 한 잔의 칵테일과도 같았다.

(아마 神이 잠깐 정신이 나갔었다면, 그 대신에 파타리로와 긴다이치 하지메, 또는 시로쯔크 라다트와 마사루를 함께 얹었을지도 모를 일이고, 최악의 경우에는 십수 년 전에 죽은 고[故] 히이로 유이를 실수로 집어넣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다행인지 불행인지, 신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 미소년은 아직까지 자기가 어디에 와 있는가를 전혀 파악하지 못한 듯 약간은 멍한 얼굴로 계속해서 걸어가고만 있었다. 그의 모습에 매력을 느낀 사람들이 그를 불러 세우거나 뭔가 질문을 해도 그저 고개를 저을 뿐,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러한 그의 태도는 더욱 더 신비감을 불러 일으켜, 많은 사람들이 그의 뒤를 따라 걷기 시작했고, 마침내 그의 발걸음 뒤에는 한 떼의 앙끄시민들이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마치 하메룬의 피리 부는 사나이에게 매료당한 어린이들 마냥 황홀한 얼굴로 줄지어 따라오고 있었다. 닐니리야 닐니리야~

무슨 일인가 해서 끼여드는 사람도 생겼고, 질서유지를 위해 출동한 경찰관들마저도 그 소년의 얼굴을 보고는 뭔가에 홀린 듯이 경찰봉을 집어던지고 행렬에 참가하였다.

그가 바로 전설의 미소년 ‘준군’이었다.

(호노오 준이나 아오이 준이 아니다. 김 준이나 독고 준도 아니다. 박준미장원의 박 준도 아니다. 준군이다 준군.)


준군이 중심가에 나타났다는 소식을 접한 학자들, 당국자들, 도굴꾼들, 바운티헌터들, 사립탐정들은 앞을 다투어 그가 있는 지점으로 달려왔다. 일부는 귀중한 연구자료를 놓치지 않기 위해, 일부는 정부의 이익을 추구하려고, 일부는 현상금을 가장 먼저 타기 위해서 등등, 저마다 서로 다른 목적을 가지고 급히 달려온 것이었다. 그 선두에 노병민 박사가 선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그러나 준군을 우상으로 모시는 열광자들은 그들의 손길을 용납하지 않았고, 충돌은 불가피한 것이었다. 순식간에 준군을 따르던 평화로운 행렬은 수천 수백명의 사람이 뒤엉킨 대규모 폭동으로 번졌고, 그 와중에 수많은 사람들이 이유도 모른 채 서로 싸움을 벌이고 분노의 주먹을 주고받았다. 진압에 나선 앙끄방위군조차도 사태의 복잡함에 골머리를 앓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한 소동에도 불구하고 자기의 목적을 잊어 먹지 않은 일부의 추적자들이 마침내 모든 방해를 뚫고 준군이 있는 지점에까지 도달하는 데 성공했다. 그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준군의 조그만 몸에 손을 뻗쳤고, 자기들이 있는 쪽으로 끌어들이려고 경쟁을 벌였다. (이상한 광경이군...) 준군의 아름다움을 지키려는 순수한 사람들이 그들에 대항하여 싸움에 뛰어들었다. 정작 소동의 당사자인 준군 자신은 대체 왜들 이러는지를 알지 못한 채 겁에 질려 떨기 시작했다. 그의 마음을 대변하듯 하늘도 점점 어두워졌다.

먹구름,

천둥,

그리고 가랑비.

준군의 얼굴에 떠오른 두려움은 어느덧 분노로 바뀌었고, 그는 자기를 잡으려는 자들을 믿을 수 없는 힘으로 뿌리치고는 한쪽으로 물러서서 몸을 움츠렸다. 그래도 추적자들이 멈추지 않자, 준군은 하늘을 향해 두 팔을 쭉 뻗고 해독 불가능한 언어로 뭔가 주문 같은 것을 외기 시작했다.

“&S#/A[@R($E`_M)<B%$W+`K(^-D%......!!!”

싸움에 휘말려들어 작년에 왔던 각설이 같은 몰골이 되면서까지 준군을 쫓아온 집념의 사나이 노병민 박사가 놀라서 소리쳤다.

“크, 큰일났다! 설마 수호신을...?”

다음 순간, 발굴현장에 남아 있었던 거대한 석상에서 녹색의 연기가 피어올랐다. 그리고 자욱해진 연기가 걷힌 직후, 그 자리에는 흉악하게 생긴 고대 괴수 한 마리가 우뚝 서서 마치 우박 맞은 미니라처럼 포효하고 있었다. 꼼꼼하기로 유명한 세이레스 여왕은 준군을 잠재우면서, 그에게 믿음직한 호위병도 함께 붙여 주었던 것이다.

괴수는 경악하는 주위의 사람들을 철저히 무시하고 등뒤에 달린 날개를 쫘악 펼친 다음 하늘 높이 날아올라 준군이 있는 곳을 향하여 날아가기 시작했다.


“1급 비상사태다! 긴급 출동 준비!”

“싫다 정말... 이제 겨우 오후 작업 끝낸 참인데......”

피요대원이 부삽을 툭 떨어뜨리며 한숨을 짓는다.

“믿을 수 없다! 컴퓨터 두뇌 피요양이 저토록 인간적인 대사를!“

......당신 누구야?

“약한 소리 마라. 시민의 안전이 위협받고 있는 한 우리는 언제든 출동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그것은 다른 일로 인해 심신이 지쳐 있을 때도 마찬가지인 것이다!”

오늘은 왠지 원칙론적인 이야기만 하면서 계속 대원들의 가슴에 못을 박는 우리의 유성대장.

“대장님, 아픕니다.”

“곧 빼줄게.”

......장난이 아니네.

“이번엔 무슨 사건이래요?”

‘소년’의 물음에 하라대원이 차갑게 답한다.

“자네가 말하는 프랑켄소시지가 나타난 모양이더군.”

“으헥?”

‘소년’의 얼굴 표정에 당혹감과 즐거움이 샌드위치되어 스쳐지나갔다.


본부 붕괴 당시 격납고도 함께 무너졌기 때문에, 각종 장비들은 바깥에 엉성하게 가설된 초대형 천막 (토**짱의 서커스단이 쓰던걸 주워 왔음) 안에 수납되어 출동을 기다리다가 사건이 생기면 단 5초만에 연료 및 탄환 준비를 마치고 출격 프로세스에 들어간다. 먼저 천막이 한쪽으로 걷히고 메카들의 모습이 서서히 드러난다. 그 다음에는 자체 추진으로 각 메카들 사이의 안전거리를 확보하고 나서 각자 출발을 하게 되는 것이다.

비행 메카는 VTOL기능을 이용하여 곧바로 위로 떠오른 뒤 통상 제트엔진으로 전환하고, 육상 메카는 터보 부스트를 이용하여 주변 도로로 곧장 뛰어오른 뒤 폭발적인 스피드로 달려가는 것이다. 물론 일반 경찰차와 마찬가지로 사이렌을 켜고 달리기 때문에 다른 차들이 비켜 주도록 되어 있다. 가끔 정식 경찰차가 아니라는 이유로 배짱을 부리며 앞에서 버티는 몰지각한 차들도 있었지만, 그런 녀석들을 처리하기 위해서 강력한 펄스 레이저총이 실려 있었기에 별 걱정은 없었다.

“펫츠호크 1호, 유성대장․유태대원, 발진!”

“펫츠호크 3호, 하라대원, 출격!”

“펫츠 비이클 출발! 사건 현장으로 급행합니다!”

“메디컬 밴, 부상자 구출을 위해 같이 출발합니다!”

“제군들의 건투를 빈다. 부디 열심히 싸워 다오!”

어메장관은 쉬지도 못하고 출동하는 부하들의 고달픈 모습을 안쓰럽게 바라보며 담배 한 대를 피워 물었다. 그러나 그 담배는 그리 오래 가지 못했다.

......너무나 긴장한 나머지 불붙인 쪽을 입 속에 넣었기 때문이었다.

“앗 뜨거!!!!!!”



노병민 박사의 지휘하에 고분에서 발견된 문서자료를 해독한 결과, 괴수의 이름이 네드리드리라는 것과, 오랜 옛날에 미소년 준군의 파수꾼으로 만들어진 인조 괴수라는 사실이 드러났다. 그리고 또한, 아무리 세월이 오래 지난 뒤에라도 만약 준군이 다시 깨어나서 위험에 처했을 경우, 그의 호출에 반응하여 네드리드리도 함께 각성하도록 되어 있었다는 것도 밝혀졌다. 그러나 그 약점이나 퇴치법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적혀 있지 않았다. 단지 ‘자기 자신을 모르는 자, 자기 자신에 의해 망하리라’라는 수수께끼 같은 글귀 하나만 빼고.

그 의미가 무엇인지 도저히 밝혀 내지 못한 학자들은 이제까지의 연구결과와 함께 그 글귀를 PETS 사령실에 전송해 주었고, 현장에 달려간 대원들도 그 내용에 대해 통보받는다. 그러나 그것이 대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르는 건 그들도 마찬가지였다. 게다가 네드리드리는 준군을 보호하기 위해 중심가 이곳저곳을 마구 유린해 가며 난동을 부리고 있으니 그것만 따로 생각하고 있을 시간도 없었다. 일단 구급반을 포함한 전 대원에게 그 글귀를 알려주어 의미를 생각해 보도록 조처해 두긴 했으나, 그 수수께끼를 제때 풀어낼 만한 사람이 있을는지도 의문이었다.

아무튼 PETS는 신속히 대응 행동에 들어갔다.

“저기 온다. 전원 공격개시!”

유성대장의 힘찬 지휘를 신호로, PETS는 공격태세를 갖추고 괴수를 향해 맹렬히 돌진했다. 펫츠호크 1호는 유태대원의 제안에 따라 2단분리하여 양쪽 방향에서 DD블라스터로 괴수의 복부를 공격했고, 펫츠호크 3호는 하라대원의 능숙한 조종 솜씨에 힘입어 곡예와도 같은 아슬아슬한 비행을 계속하면서 이곳저곳을 A탄과 N탄으로 두들겨대었다. 상대적으로 방어력이 약한 펫츠 비이클은 안전권 안에 머물러 있으면서 대구경 펄스 레이저를 겨누고 괴수의 발끝을 쏴 대었다.

또한 무휼박사가 이끄는 구급반은 방위군의 병사들과 협력하여, 시내 여기저기를 누비면서 희생자들을 구출하여 적절한 응급처치를 하고 중환자를 근처 병원에 옮기는 일을 처리하였다.

“이봐, 누가 거녀양 못 봤어?”

“어? 방금 전까지만 해도 저쪽에 있었는데...”

“꼭 일손이 필요할 때만 없어지는구만.”

무휼박사는 열심히 붕대를 감으면서, 오늘에야말로 불성실한 신참 대원에게 한바탕 따끔한 충고를 해 주리라 마음먹었다. 요새 젊은 사람들은 도대체가 말이야...


한편 하라대원이 탄 펫츠호크 3호는 가진 탄환을 다 쓰고 회피비행에 들어갔으나 괴수의 반사신경은 예상외로 빨랐다. 괴수는 하라대원의 잔재주에 속지 않고 그녀가 나아갈 방향을 미리 예측한 뒤 전광석화같은 움직임으로 펫츠호크 3호의 엔진부분을 후려쳤다. 연기를 내뿜으며 무너진 건물 한쪽에 추락하는 펫츠호크 3호는 불꽃에 휩싸이고 하라대원으로부터의 연락은 두절된다!

“대장님, 하라선배가!!!”

피요대원의 찢어지는 듯한 목소리가 통신기 저편에서 울려 왔다.

“지금은 어쩔 수 없다! 구출은 구급반에게 맡기고 우리는 제 위치를 지킨다!”

이렇게 말하는 유성대장 또한 가슴이 쓰라리긴 마찬가지였다. 하라대원이 서포트하지 않으면 누가 우리의 공격력을 받쳐 준단 말인가? 이런 생각을 하는 동안에도 전투는 점점 격화되고 있다!


같은 시각, 전투가 벌어지는 곳에서 약간 떨어진 중심가 한구석의 어떤 골목길 안에서 한 명의 어리벙벙하게 생긴 여인이 결연한 표정으로 서 있다. 그녀는 입술을 꽉 깨물고 뭔가를 결심하더니 품속에서 초록색 테두리가 달린 보라색 고급 부채 하나를 꺼낸다. 여인이 부채를 오른손에 들고 하늘 높이 치켜들더니 평소와는 다른 우렁찬 목소리로 외친다.

“테크마크마야콘 테크마크마야콘 울트라하가 되어라!”

......그게 아니야.

“어, 아닌가? 그럼 힘이여 솟아라 그레이스컬--”

......그것도 아니야.

“정말 이상하네. 아, 그럼.. 힘을 주세요! 샬랑얄랑 빰빠라밤빰~~~”

......정말로 잊어먹은 거야?

“설마 이건 맞겠지. 하늘이여 땅이여 불이여 물이여 나에게 힘을 주소서--”

......네가 들고 있는 건 검랑(劍狼)이 아니란 말이닷.

“그럼 이건가? 랜싱어스톤 카시오시계 에스엠 에스엠 라하딘”

......포기하는 게 낫겠는데.

“아아 생각났다 생각났어! 자아--- 여왕님이라고 불러랏!!!”

동거녀가 마침내 제대로 된 주문을 외며 가면 라이더를 연상시키는 일련의 동작을 취하자 그녀의 몸 주위에 무지갯빛 광채가 둘러싸이기 시작한다. 다음 순간 그 광채 속에서는 정의의 용사 울트라하가 그 웅장한 모습을 드러내며 점점 거대하게 커지고 있었다. 완벽한 거인의 모습으로 돌아온 울트라하는 네드리드리와 정면으로 맞서는 위치에 서 있었다.


“어떻게 하면 저렇게 정확한 지점에 서게 됩니까?”

따지지 말라고 했다. 피요대원.


“대장, 그 거인입니다!”

유태대원이 들뜬 목소리로 외쳤다. 아직 ‘울트라하’라는 이름은 공식적으로는 쓰이지 않고 있었다. 첫 회에서 맛본 모멸감이 가시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번에도 우리를 도와줄까?”

유성대장의 목소리에도 기대감이 묻어 나왔다. 동시에 어메장관으로부터의 통신이 들어왔다.

“유성군, 지금 그 화면 녹화중이겠지?”

“당연하지 않습니까. 전투 기록을 남겨야 하니까.”

“좋아, 특히 가슴이 ‘출렁~’할 때를 클로즈업해야 하네.”

“......”

유성대장은 잠시 말을 잃었다. 장관이 왜 아니스 팜과 타카야 노리코를 좋아하는지를 어렴풋이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어서 지원 공격 준비를 해야 하지 않습니까?”

“나도 알고 있다, 피요대원. 저들이 전투에 돌입하면 우리는 재빨리 착륙하여 탄환과 연료를 보충하고 5분 휴식을 취한다. 그리고 유태대원, 근처에 파괴되지 않은 가게가 남아 있으면 팝콘 네 봉지만 사 오도록.”

......이봐 이봐, 레슬링 경기가 아니라고.


울트라하는 네드리드리의 정면으로 돌진하여 필사의 몸통 박치기를 시도한다. 그러나 원래 단단한 석회질의 몸체를 가진 회백색의 괴수 네드리드리는 아무런 충격도 받지 않고, 오히려 돌진해 온 울트라하를 몸 속에 용수철이라도 가지고 있는 것처럼 가볍게 튕겨낸다. 그 반동으로 날아간 울트라하는 반대편에 있던 건물에 부딪치고, 건물은 요란한 소리를 내며 붕괴된다. 동시에 네드리드리는 눈에서 괴광선을 발사하여 울트라하의 이곳 저곳에 상처를 입히고, 울트라하는 에너지를 비축하기 위해 청순의 M모드로 전환한다. 저항하지 않는 상대방에게 화가 난 네드리드리는 입에서 초음파를 뿜어대며 울트라하를 마구 밟아댄다. 울트라하는 아직 에너지가 완전히 충전되지 않은 듯, 그저 맞고 뒹굴 뿐이다. 그 사이에 휴식과 보급을 마친 PETS의 대원들이 각자의 메카에 올라타고 공격을 재개한다. 그들의 공격은 물론 울트라하에게 집중되어 있다. 그리고 마침내, 충전을 완료한 울트라하는 정열의 S모드로 전환, 마치 나비부인같은 화려한 동작으로 공격을 펼친다. 이제 네드리드리의 퇴치도 시간문제인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놀랍게도 네드리드리는 울트라하의 모든 공격을 별로 힘들이지 않고 다 받아치면서, 지능적으로 시간을 끌고만 있었다. 울트라하의 활동시간에 제한이 있다는 것을 간파하기라도 한 것처럼. 울트라하는 스페시움 채찍을 소환하여 섬광전격(閃光電擊)을 가하기도 하고, 메타리움 촛농광선으로 괴수의 동체를 꿰뚫어 보려고도 하고, 사크시움 초합금부채로 괴수의 팔다리를 베어 보려고도 했지만, 교활하고 음흉하기가 마치 닥터 슬럼프같은 괴수 네드리드리에게는 아무 소용이 없었다. 그러던 끝에 어느덧 소요 시간은 600초에 이르렀다.

남은 시간 앞으로 66초.

네드리드리의 놀라운 생명력에 울트라하도 PETS도 당황하고 있었다. 그들은 남은 무기를 총동원하여 협공을 시도해 보기로 한다. 그러나 네드리드리는 등의 날개를 마치 커다란 망토처럼 변형시켜 모든 공격을 빨아들여 버렸다.

“소용없습니다! 저 괴수는 망토 내부에 작은 블랙홀을 발생시켜 모든 공격 에너지를 흡수해 버리고 있어요!”

피요대원이 비이클에 내장된 이동용 분석기로 스캐닝을 해 보고는 약간 맛이 간 얼굴로 외친다.

“버스터 쉴드와 같은 원리인가!”

유성대장은 마치 사라진 아틀란티스를 연상케 하는 고대 캐러왕국의 기술력에 경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오타쿠들이 모여서 만든 캐러왕국」이란 전설이 헛말이 아니었군...”

“뭐 저런 녀석이 다 있어!”

유태대원은 약이 올라서 핏대를 세워가며 조종간의 방아쇠를 누르지만 네드리드리의 막강한 쉴드에 모조리 차단당한다.

이제 어떻게 할 것인가?


남은 시간 앞으로 40초.

여전히 어떤 공격도 통하지 않는다. PETS는 탄환과 에너지가 고갈되어 일단 후퇴. 울트라하는 제 자리에서 꼼짝도 않고 네드리드리와 대치하고 있었다. 이대로는 이길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울트라하는 남은 시간 안에 가장 적절한 해결책을 찾기 위해서 잘 돌아가지도 않는 머리를 열심히 굴려가며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고 있었다. 물론 네드리드리의 집요한 공격을 피해 가면서 말이다.

‘그 문장이 열쇠일지도 몰라. 「자기 자신을 모르는 자, 자기 자신에 의해 망하리라.」 이게 무슨 뜻일까?’

남은 시간 앞으로 31초.

울트라하는 열심히 도망다니면서 준군의 재생과 네드리드리의 광포함, 그리고 아까 들은 문장의 상관관계를 여러모로 분석하고 있었다. 네드리드리의 무서운 꼬리 휘감기에 걸려들지 않으려고 몸을 움츠리는 순간, 그 괴수의 흉악하고 흉악하고 또 흉악한 몰골이 눈에 들어왔다. 그 순간, 라하세르는 마침내 해답을 알아냈다.

‘내 생각이 맞다면 이게 통할지도 몰라!’

“뭘 어쩌려는 생각이지?”

유성대장은 쌍안경으로 전투를 지켜보며 초조해하고 있었다. 보급을 마치기까지는 앞으로 1분이 더 필요하다. 직접 나가서 돕지 못하는 자신이 초라하게 느껴졌다.

남은 시간 앞으로 27초.

울트라하는 괴수로부터 멀찌감치 떨어져서 안전거리를 확보하고는 이미 건물이 무너져 빈터가 다 된 어느 스포츠센터 자리로 이동하여 공격자세를 취한다. 괴수는 멋모르고 그냥 돌진해 올뿐이다. 그 순간, 울트라하는 갑자기 공격자세를 거두고는, 두 팔을 하늘로 쫙 펼치더니 자기 몸 주위로 하나의 커다란 직사각형을 그리기 시작한다. 그 팔의 궤적(軌跡)을 따라서, 한 개의 불투명한 빛의 장벽이 생겨났다. 이것이 바로, 훗날 괴수물 연구자들에 의해 ‘화이트 리플렉션’이라는 명칭이 붙게 되는 새로운 필살기이다.

피요대원이 분석기를 다시 들여다보더니 외친다.

“남은 에너지를 모아서 배리어를 쳤습니다! 하지만 표면의 응집력이 너무 약한데... 저 정도로 공격을 막을 수 있을까요?”

남은 시간 앞으로 19초.

계속 돌진해 오던 네드리드리는 갑자기 제 자리에 멈추어 섰다. 그리고는 그 하얀 장벽을 물끄러미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그 에너지의 장벽은 어느새 하나의 거대한 전신 거울이 되어, 네드리드리의 무지막지하게 무서운 모습을 남김없이 비추고 있었다. 네드리드리는 생전 처음 보는 자기의 모습을 흥미로운 듯 찬찬히 관찰하기 시작했다.

다음 순간, 정말로 믿을 수 없게도, 네드리드리는 공격할 의욕을 몽땅 잃은 듯 뒤로 물러서서 인간으로 말하면 대성통곡에 해당하는 몸짓과 울음소리를 보여주더니...

......스스로 자폭하고 말았다.

남은 시간 앞으로 5초.

이마의 램프가 점멸하는 것을 알아챈 울트라하는 잽싸게 하늘로 날아올라 머나먼 구름 저편으로 사라졌다.

그와 함께, 앙끄시의 상공에 끼어 있던 먹구름이 스러지고, 비도 그치기 시작했다.

뜻밖의 전개에 황당해진 PETS대원들은, 아무 말도 못하고 멍하니 하늘을 쳐다보고 있을 뿐이었다.



“......자기의 못생긴 얼굴을 비관하여 자살한 것이라고??”

유성대장이 못미더운 얼굴로 되묻는다. 그들은 모두 앙끄시 중앙병원의 어느 깨끗한 병실 안에 사복 차림으로 모여 있었다.

피요대원이 다시 설명을 시작한다.

“저 괴수는, 처음 만들어진 이래로 자기가 어떻게 생겼는지를 전혀 알지 못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해독된 나머지 기록에 따르면 저 괴수를 인공적으로 만들어낼 때 기본 틀로 사용된 것은 준군 자신의 체세포였다고 합니다. 게다가 저 괴수는 준군 본인과 텔레파시로 링크되어 있었기에, 자기를 준군과 동일시해 왔고, 자기도 준군처럼 미소년의 얼굴을 가지고 있을 거라는 착각을 가지고 있었나 봅니다. 그런데 저렇게 자기의 진짜 얼굴을 선명하게 보여주었으니, 엄청난 충격을 받았겠지요. 결국 그러한 이유 때문에, 삶의 의욕과 자신의 존재 의의를 상실하여, 만약의 경우를 대비하여 몸 속에 장비되어 있었던 자폭장치를 스스로 발동시켜 자살한 것으로 보입니다.”

“우리는 그럼 나르시스트 괴수와 싸웠단 말인가. 어쩐지 의인화가 너무 심한 거 같은데.”

“인공 괴수이니까 되도록 사람과 같은 방식으로 생각하도록 특수한 유전자 조작이 가해졌을지도 모르지요.”

“그렇다고는 해도 저 괴수의 일차적인 의무는 준군을 목숨을 걸고 지키는 것이었을 텐데, 너무한 일이네요.”

여전히 준군을 찾지 못한 것을 아쉬워하는 ‘소년’이 끼여든다.

“때로는 의무보다 앞서는 것이 있는 법이지...”

옆의 침대에 말없이 누워 있던 하라대원이 뼈 있는 말을 한마디 중얼거린다. 그녀가 탄 펫츠호크 3호는 추락 직후 불길에 휩싸였지만, 그녀는 다행히도 비상 탈출 장치를 이용하여 추락 직전에 빠져나올 수 있었다. 그러나 탈출용 좌석에 장착된 낙하산이 뒤엉키는 바람에, 상당히 꼴사나운 형태로 착지했고 그 과정에서 왼쪽 팔에 금이 가고 두 다리에 약간의 외상(外傷)을 입었다. 그녀는 착지 직후 과다 출혈로 정신을 잃었지만, 마침 현장에서 길을 잃고 헤매던 동거녀라는 신참이 우연히도 하라대원이 떨어진 장소를 지나가다가 그녀를 발견한 덕분에 때늦지 않게 구급반의 치료를 받을 수 있었다. 불행 중 다행이 아닐 수 없다.

“결국, 그 거인이 유적에서 발견된 문장의 수수께끼를 풀어낸 셈이군요. 「자기 자신을 모르는 자, 자기 자신에 의해 망하리라.」 생각보다는 머리가 좋은가 보죠?”

피요대원이 안경을 고쳐 쓰며 쾌활한 어조로 말했다. 다른 대원들도 그 말에 동조하여 고개를 끄덕였다. 거녀에게는 안된 일이지만, 아직도 이들에게 있어서 울트라하의 이미지는 그리 좋은 편이 아닌가 보다.

얘기에 정신이 팔려 있던 ‘소년’이 갑자기 생각났다는 투로 말을 꺼냈다.

“그런데 준군의 행방은 아직도 밝혀지지 않은 건가요?”

유성대장이 그 말을 받아 대답한다.

“사건 직후 경찰과 방위군이 합동조사반을 조직하여 주변을 샅샅이 뒤졌지만 흔적조차 찾을 수 없었다더군. 귀신이 곡할 노릇이라고 모두들 이상하게 생각하더라구. 전투에 휘말려 죽었다면 시체라도 찾아냈을 것이고, 누군가가 이용하려고 데려갔다면 적어도 지금쯤은 뭔가 꼬리가 잡힐 만도 한데 말이지.”

“학자들에게는 별로 좋지 않은 소식이네요. 모처럼 찾아낸 귀한 연구대상이었을텐데.”

하라대원은 신문에 실린 노병민 박사의 기사를 떠올리며 이렇게 말했다. 박사는 거의 울상이 되어서 연구의 중단을 공식 발표하였다. 더 이상 얻을게 없다고 판단한 시 정부가 연구에 배정된 예산을 형편없이 깎아 버렸던 것이다. 남은 부장품들은 앙끄시 박물관으로 옮겨졌고 문제의 고분은 역사적인 유적으로 지정되어 인기 만점의 관광 자원으로 변했다. 그리고 노병민 박사는, 비록 캐러왕국의 실체가 어느 정도 드러났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학계의 골치덩이로 남게 되고 말았다.

대장과 마찬가지로 미소년 따위에는 별 흥미가 없는 다혈질의 사나이, 유태대원이 한마디한다.

“그깟 원시인 나부랭이가 어디로 갔던지 그게 우리하고 무슨 상관입니까? 하라선배가 이렇게 무사히 돌아온게 더 중요한 일 아닐까요?”

“역시 자넨 의리의 사나이다.”

유성대장이 흐뭇한 얼굴로 유태대원의 어깨를 툭툭 두드리며 그를 칭찬한다. 다른 대원들도 모두 웃는 얼굴로 그들을 바라본다. 하라대원도 또한, 겉으로는 별로 내색하지 않았지만, 속으로는 살짝 미소짓고 있었다.

하라대원은 잠시 창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창문 너머로 앙끄시의 맑은 하늘이 눈에 들어왔다.



같은 시각, PETS의 임시 본부에서는 또 작업 도중에 실수를 저지른 동거녀가 참다못해 화를 터뜨린 무휼박사로부터 진정한 의료인의 직업 윤리에 대한 기나긴 설교를 2시간 동안 계속해서 듣고 있었다.

“아아, 난 왜 제대로 하는 게 하나도 없는 걸까?”





END  OF  EPISODE  #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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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NDING  :  STRANGE  LAND ☆



너무나도 낯선 세계

이리저리 몰려가는 사람들

그 안에 내가 있어


난생 처음보는 것도 많지만

익숙해지려고 노력해

내가 사는 곳이니까

내가 지키는 곳이니까


모두들 떠나갔지만 너만은 남아줬지

내가 상처입었을 때

아무도 모르지만 너만은 알고있지

내가 누구라는 걸


한번더 상쾌한 기분으로

이제부터 모든걸 다시 시작해

나의 하나뿐인 삶이니까

나의 소중한 ‘펫’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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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央久プロ․NOW․ウルトラハ製作委員會  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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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 P I L O G U E ◆



얼마나 지났을까. 소년은 서서히 눈을 떴다.

완전히 정신을 차리고 나서야, 자기가 칠흑같이 어두운 방안에 꽁꽁 묶여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것도 빨랫줄이나 동아줄 정도가 아니라 아주 단단한 철사줄로 꼼짝달싹 못하게 묶여 있다는 것을.

잠시 후, 방 저편에서 문 열리는 소리가 들리고 빛이 아주 약간 들어온다. 그 빛 덕분에 방금 방안에 들어온 사람의 모습을 어렴풋이 알아볼 수 있었다.

작달막하고 별 특징이 없는 체구, 여성인지 남성인지 알 수 없는 중성적인 매력을 풍기는 수수한 얼굴, 가벼운 발걸음과 조심스런 태도.

그 사람이 소년의 앞까지 다가와서 우뚝 섰다. 문이 다시 닫혔기 때문에 모습은 잘 보이지 않게 되었지만 희미한 발소리는 들을 수 있었다. 그 사람은 소년의 얼굴과 몸 여기저기를 가만히 더듬어 보더니 환희로 몸을 떨었다.

그 사람이 입을 열었다.

“이렇게 불편하게 묶어 놔서 미안해. 하지만 이렇게라도 해 놓지 않으면 넌 새장에서 빠져 나온 새처럼 훨훨 날아가 버리고 말겠지. 조금만 참아 줘. 언젠가는 너도 나를 떠나서는 못살게 될 테니까. 후훗.”

소년은 물론 한 마디도 알아듣지 못했다. 그의 시대는 너무나도 옛날에 지나가 버렸기에. 하지만 그 말속에 담긴 아슬아슬하고 두근두근하고 은근슬쩍하고 생기발랄하고 깜찍스러운 즐거움의 감정만은 느낄 수 있었다.

그는 비록 몸은 불편했지만 마음은 서서히 풀려 가는 것을 느꼈다. 그 사람은 그의 그런 상태를 알아차렸는지 다시 한 번 정성스럽게 그의 얼굴을 쓰다듬어 주었다. 두근거리는 설렘과 함께.


이렇게 해서, ‘헤인 리‘라는 이름의 이 수집가는, 자신의 미소년 컬렉션에 또 하나의 수집품을 추가하는 데 성공했다.


그 이름은 준군이었다.




〈 NOT  THE  EN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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