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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12-31] 이상한 성탄의 바스크 제4장
패러디 왕국/건담관련 | 2009.11.24 23:20
 


제 4 부 Spirit of Destiny

運命の心靈




  저 멀리 어두운 밤거리로부터 한 가닥의 하얀 그림자가 바스크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저것이 세 번째 유령이구나. 바스크는 생각했다.

  “혹시 은철 999 차장처럼 형체 없는 투명인간이 나타날 리는 없겠고, 그럼 혹시 담배를 꼬나문 피트가 나올려나? 아무래도 직접 봐야 알겠지만, 너무 무섭게 생긴 녀석이면 곤란한데 말이지.”

  그 하얀 그림자는 가까이 옴에 따라 점점 커져서 마침내는 커다란 북어 대가리처럼 생긴 MA의 형태가 되었다. 외눈박이에, 커다란 두 다리같이 생긴 부분은 장거리 항행용 슈츠룸 드러스터임이 확실했다. 어쩐지 위압감을 주는 그 괴물의 어깨 위에, 역시 하얀 두건과 망토를 뒤집어쓴 인간 모습의 형체가 앉아 있었다. 바스크는 주위가 점점 더 추워짐을 느꼈다.

  하얀 북어 대가리가 정지했다.

  그 위에 올라타고 있던 그림자가 내려서더니 두건을 벗었다.

  그 속에서 드러난 것은 아까의 유령보다 약간 더 어려뵈는 소녀의 얼굴이었다. 소녀의 머리는 하늘색에 가까운 옅은 파란색이었는데, 양쪽 위로 길게 묶어 넘겨 빨간 리본으로 고정시켜 놓은 모양이었다. 열 셋쯤 되어 보이는 순진하고 귀여운 얼굴이었으나, 그 위에 자리잡은 보라색의 눈동자는 아까의 두 유령들보다도 더 슬프고 애절하고 메마른 빛을 띠고 있었다. 어쩐지 존속 살해의 범죄라도 저지른 것 같아 보일 정도로 처절한 눈빛. 그리고 그것과는 전혀 상반되는, 망토 사이로 언뜻언뜻 내비치는 금색과 베이지색의 세련된 의상. 그 소녀의 얼굴에서는 아까의 두 유령에게서는 볼 수 없었던, 일종의 반항 의식과 외로움이 느껴졌다.

  (*배경 음악: QUESS)

  바스크가 입을 열었다.

  “네가 미래의 크리스마스 유령이냐? 어째 너무 어린 것 같은데.”

  유령은 대답하지 않고 고개만 끄덕이더니 바스크에게 타라는 손짓을 했다.

  바스크는 벙어리인가 하고 의아해하면서도 버릇대로 어리석은 질문을 던졌다.

  “거절한다면?”

  (*앗차, 바스크는 순간 후회했으나 때는 늦었다. しまった!)

  유령은 표정 하나 바꾸지 않고 그를 손가락으로 가리켰고 그 북어 대가리는 그를 향해 돌아섰다. 입 부분의 구멍에서 맹렬한 녹색 빛의 파동이 일어나고, 바스크의 발 앞에 있던 건탱크 모양의 핫도그 자판기가 순식간에 파쇄조각으로 변해버렸다.

  “전율의 그린이군.”

  마침내 바스크는 억지로 낑낑거리며 그 북어 대가리의 어깨 위로 올라가야만 했다. 그가 한시간을 투자하여 다 올라와 보니 유령은 아직 보도 위에 서 있었다. 바스크는 소리쳤다.

  “야 임마, 넌 왜 안올라오는거냐?”

  그때 유령이 북어 대가리에게 손가락을 퉁겨 보였다. 즉시 북어 대가리는 왼쪽 어깨 아래에 달린 유선 메가입자포를 아래로 늘어뜨렸고, 유령은 그것을 붙잡고 119구조대와 같은 속도로 단숨에 어깨까지 올라왔다.

  바스크는 황당해져서 중얼거렸다.

  “왜... 왜.... 왜 나만 이 고생을..... 끄으으으으으으으으으으으”

  북어 대가리는 밤하늘로 힘차게 날아올랐다.


  그들이 처음에 간 곳은 론도니움 중심가의 주식 거래소였다. 바스크도 자기 생활의 일부로써 잘 알고 있었던 장소였다. 분명히 미래를 보여주는 것이라면 자기도 당연히 여기 어딘가에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 바스크는 그곳을 요리조리 살펴보았으나 그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 대신, 커다란 주식 전광판 근처에서 그가 아는 몇몇 기업인들의 모습만을 찾을 수 있었다.


  그가 맨 처음에 알아 본 사람은 탐욕스럽고도 교활한 불독을 닮은 중년의 통통한 기업가였다. 어디선가 골프라도 치고 온 듯 어깨에는 고급 골프백이 찬란하게 빛을 발하고 있었고 입고 있는 복장도 간편하고 활동적인 골프웨어 차림이었다. 넓은 이마에다 탄탄한 납작코에 이중턱을 가진 그의 얼굴은 한평생 기업계에서 닳고닳은 관록을 보여 주고 있었다. 그 땅딸막한 사나이가 주머니에서 시가를 꺼내어 불을 붙이며 말을 이어 나갔다.

  “......그래서, 결국 그 사람도 죽고 말았다는 거로군요? 아까운걸! 그는 우리의 가장 유력한 대주주 중 한 명이었는데, 그의 회사도 거래처로서 제법 신용을 쌓고 있었고 말이오. 물론 그의 인간성은 논외로 해야겠지만.”

  옅은 금발과 완고해 보이는 눈매에, 젊었을 때에는 한 가닥 했을 것으로 보이는 강인한 체격을 지닌 중키의 노인이 옆에 서서 그의 말을 듣고 있었다. 그는 어디선가 돈으로 사온 족보를 내세워 귀족의 혈통임을 자부하며 신진 기업가로서의 첫발을 내딛고 있었던, 바스크의 경쟁자 중 한 명으로서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고물상을 콘체른 규모로까지 키워 낸 불굴의 기업가였다.

  “그는 분명 사업에는 뛰어난 자였지만 역시 인간적으로는 하등의 부류였소. 그같은 자와 생전에 거래하고 있었다는 것은, 내 귀족으로서의 혈통에 비추어볼 때 상당히 불명예스러운 일이었지.”

  바스크가 잘 알지 못하는 또 다른 사나이가 그 곳에 있었다. 각박한 목성에서 한평생을 보냈다는 소문이 자자한, 왼쪽 눈을 기계장치로 보정한 고집스런 인상의 작달막한 대머리 노인이 거친 팔자수염을 어루만지며 끼여들었다.

  “그는 날 잘 알지 못하겠지만, 몇년전의 富野프로젝트 입찰경쟁 때 그놈이 치사한 짓을 하는 바람에 나는 나의 한쪽 눈과, 내 절친한 친구 무타마를 잃었소이다. 그놈의 죽음은 하늘의 징벌이 틀림없다고 생각하오!”

  불독을 닮은 사내가 시가 연기를 음미하며 감정 없이 말했다.

  “아무튼, 죽은 사람은 죽은 사람이고 이제는 사업 얘기나 합시다. 지난번에 의논했었던 연방군의 주력 신병기 컴피티션에 대한 건인데, 바야흐로 시대는 소형 MS가 주도하는...”


  그들의 악의에 찬 대화를 듣는 순간 바스크는 뭔가 잘못되어 가고 있다는 걸 알았다. 왜 이들은 죽은 자에 대해 그토록 악평을 해대는 것이지? 나는 어디에 있지? 그는 유령을 붙잡고 물었다.

  “설마 이게 내 경우라는 말은 아니겠지? 왜 이런 것만 보여주는 거야? 저따위 안 보여줘도 나는 저 작자들이 얼마나 간사한 치들인지 이미 알고 있단 말이다!”

  유령은 아무 대답 없이 그를 싸늘하게 쳐다볼 뿐이었다.

  갑자기 바스크의 눈 앞이 어두워졌다.


  그들이 다음으로 간 곳은 암초주역(暗礁宙域) 안의 어떤 쓸쓸한 소행성이었다. 아니 순수한 소행성이라기보다는 지난 시대에 흘러온 폐우주선의 부품들과 고철들을 얼기설기 엮어 소행성에 연결한 일종의 변칙적인 우주기지였다. 이런 곳에 누가 살까 궁금해질 정도로 황폐하고 메마른 불모의 지대, 마치 가시나무로 뒤얽힌 하나의 정원(庭園) 같았다.

  그 안에도 틀림없이 사람은 살고 있었다. 그 안의 조그마한, 잡동사니와 각종 폐품으로 가득한 공간 속에서, 거의 대머리가 다 되어 가는, 적갈색 턱수염을 기른 중년 사내가 싸구려중의 싸구려인 가르시아표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마치 너구리같은 교활한 표정과 인색한 심성을 지닌 장물아비의 전형이었다.

  (*배경 음악: HIDDEN MOON)


  침묵을 깨고 (*사실 우주니까 어찌해도 소리가 안 들리겠지만...) 한 대의 잔지발급 우주선이 남몰래 그의 작은 성채로 들어와서 도킹베이에 선체를 연결했다. 그 안에서는 몇몇 인상 나쁜 사람들이 다소 출처가 의심스런 물건 보따리를 가득 안고 내릴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들에게 명령을 내리는 것은, 검은빛을 띤 풀색의 긴머리에 약간 살기 어린 미소를 띠고 장식용 부채를 든 중년의 여성이었다. 그 살기등등하고 자신만만한 표정은 오래 묵은 구미호를 연상케 했다.

  너구리같은 남자가 구미호같은 여자를 반갑게 맞이했다.

  “어서 오라고, 마담 시마.”

  “꽤 오랜만이군, 오설리반 영감. 아나하임에서 쫓겨나더니 한다는 게 고작 장물아비야?”

  “반정부군 활동 걷어치운 뒤에, 우주해적 간판 내걸고 실제로는 좀도둑질이나 일삼는 건 누군데?”

  “나도 먹고살아야지 어쩌겠어. 물건이나 봐줘.”

  “몇 가지는 꽤 괜찮군. 알렉산드리아 침대라. 하지만 나머지는 쓰레기인걸.”

  그가 가져온 보자기를 털털 털어보았다. 안에서는 색이 벗겨진 아카제 제타건담 장식물, 녹슨 연방군 철모, 몬샤표 83년산(産) 독주 다섯 병, 독수리 문양의 야광 침대보, 주인 잃은 은수저와 <우주이민 XX주년>이라는 기념문이 인쇄된 반다이제 플래티넘도금 접시 등등 별별 것이 다 나왔다. 그러나 돈될 만한 것은 극히 적었다.

  “나도 알고 있어. 하지만 좀 봐달라고. 연방의 감시가 상당히 강화돼서 여기까지 눈치채이지 않고 오는데만 해도 힘 좀 들었단 말이야.”

  “전부 해서 160길더 주지, 솔라레이로 쏴죽인다해도 그 이상은 안돼.”

  바스크는 눈을 감아버렸다. 뭔가가 점점 확실해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한참 뒤에야 정신을 가다듬고 유령에게 말할 수 있었다.

  “그래, 알겠다. 한 인간이 죽어서 저 정도로밖에 남들에게 뭔가를 줄 수밖에 없단 말이지. 전혀 슬퍼해주는 이도 없고. 그럼, 누군가의 죽음으로 인해 진심으로 슬퍼하는 것은 환상에 지나지 않는단 말이냐? 좀 다른 걸 보여줘! 이젠 질렸다!”

  유령은 슬픈 얼굴로 바스크의 어깨 너머를 가리켰다.

  그곳에는 브라이트 크래칫의 가족들이 그들의 허름한 집 안에 모여 있었다. 그들은 분명히 울고 있었다. 내색은 하지 않고 있지만, 그 자신, 그의 아내, 그의 아들, 그의.....

  “그 다리 절던 꼬마는 어디 있어? 안 보이잖아!!!”

  바스크는 유령에게 소리질렀다. 역시 묵묵부답.

  브라이트가 말하기 시작한다.

  “아아, 불쌍한 꼬마 체밍..... 좀더 일찍 손을 쓸 수만 있었어도.... 내게 약간이라도 돈이 있었더라면.... 그 애는.... 그 애는 지금.....”

  그는 말을 다 잇지 못하고 흐느끼기 시작했다. 바스크는 가슴이 철렁했다. 브라이트가 울다니! 내게 아무리 철권을 얻어맞아도 눈 하나 깜짝 않던 저자가 울다니...

  미라이가 그를 위로한다. 역시 울먹이며,

  “당신 탓이 아니에요. 사람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고 당신도 말했잖아요? 이제 남은 일은 그 애가 아무로 레이의 인도를 받아 천국에 갈 수 있도록 정성을 다해 기원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당신 말이 옳소. 하사웨이, 촛불을 가져오너라, 불쌍한 우리 꼬마를 위해 마지막 기도를 드리자꾸나.”

  “네..... 아빠.”

  “울지 마라, 원래 사람은 영원히 살 수 없는 거야. 그것이 순리란다.”

  “하지만... 어째서 하느님은 그런 것을 가지고, 사람을 시험하는 걸까요?”

  “시험? .... 아아, 그래, 우리 인간은 모두 시험을 당하고 있는 것이지.”

  하사웨이는 그의 말에 울음을 그치고 오데사산(産) 양초를 찾으러 방을 나갔다.

  (*배경 음악: 눈물의 바이얼린)

  바스크는 갑자기 열이 뻗쳐서 유령의 멱살을 잡고 외쳤다.

  “겨, 결국, 저 불쌍한 꼬마를 데려간 건가? 어째서지? 나 같은 놈이야 그렇다고 치고, 왜 그 죄없고 순진한 꼬마까지! 대답해!”

  유령은 그의 손을 뿌리치려고 하지도 않고 가만히 바스크를 노려보고 있었다. 말없는 힐난의 눈빛이었다.

  한순간 주위의 풍경이 다시 바뀌었다.


  다음 순간, 그들이 서 있는 곳은 맥스웰가(街) 근교에 위치한 묘지였다.

  그 곳은, 우주세기 이전의 무덤들이 다 그러했듯이, 어딘지 모르게 어둡고 을씨년스러운 기운이 흘러 다니고 있는 기분 나쁜 곳이었다. 게다가 분위기를 돋구기 위해서 주변에서는 간간이 들개 울음소리가 아우우우우우우~~ 하고 퍼져나왔다. (*콜로니 관리국이 언제 이런 음향 효과까지 신경을 썼던가?)

  오래된 묘비에는 이끼가 끼어 있고, 그 주위로 낫을 치켜들고 검은 망토를 뒤집어쓴 묘지 관리인이 쉴새없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그 모습은 마치 사자(死者)를 데려가려고 대기하고 있는 죽음의 신과 같았다.

  그것은 바로 데스사이즈 헬이었다.


  바스크는 최대치의 한기를 느꼈다.

  “날 왜 여기로 데려온 거지?”

  유령은 대답하지 않고 바스크를 한구석으로 조용히 끌고 가더니 외딴 곳에 서 있는 낡고 초라한 묘비 하나를 가리켰다. 바스크는 그것을 볼 용기가 없었다.

  “그만! 더이상 날 괴롭히지 마! 날 보내달라구!!! 이걸로 충분하잖아! 뭐가 더 필요한 거야!?”

  유령은 한동안 잠자코 있다가 갑자기 그의 손을 움켜쥐더니 바빌의 전기뱀장어라고 불리는 에너지 충격파를 그의 몸에 흘려 넣었다. 바스크의 모자가 벗겨지고 대머리가 빛을 발했다. 전압을 이기지 못해서 안경에 금이 가고 있었다. 바스크는 정신이 아득했다.


  그때, 그의 머리에 한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그는 이 미친 짓을 종결시킬 만한 묘수를 찾아냈다고 여기고는 유령의 공격을 받으면서도 정신없이 외치기 시작했다.

  “그래! 맘대로 하라고 그래! 이런 식으로 하면 내가 개심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겠지? 하지만 그건 오산이야. 나는 이미 디킨즈의 책을 읽었고, 디즈니의 만화영화도 봤고, 하다못해 마블 코믹스의 각색본에다가 리얼 고스트버스터즈의 스크루지편까지 다 보아둔 사람이란 말이다! 내가 이렇게 고전적인 수에 넘어갈 거라고 생각한다면 그건 이 바스크를 잘못 봐도 아주 잘못 본 거야! 이건 환각이지 실제가 아니란 말이다!!! 미래가 진짜 이따위로 돌아갈지 내가 알게 뭐냐고, 난 어차피 죽을 때 죽게 될텐데 무슨 상관이냔 말야!

  잘 들어둬, 이 멍청하고 능력 없는 사이비 작가놈아, 이제 날 괴롭히지 말고 그만 포기하라고!!! 난 바스크란 말이야, 스크루지가 아니란 말이다!”

  (*그건 나도 안다 임마. 하지만 여기서 포기한다면 내가 작가겠냐???)


  그때 갑자기, 유령은 바스크를 순순히 놓아주었다. 힘이 하나도 없었던 바스크는 외마디소리를 내며 그 자리에 쓰러졌다. 그가 아픈 머리를 부여잡고 겨우겨우 몸을 추스려 일어나자 그의 눈에는 믿을 수 없는 광경이 펼쳐졌다.

  과거, 미래, 현재의 크리스마스 유령들이 그의 앞을 둘러싸고 서 있었던 것이다.

  더더군다나 놀라운 점은 그 현재의 유령이 데리고 있었던 두 꼬마까지도 깨어나서 그를 쳐다보고 있었던 것이었다. 완전히 각성 모드에 들어선 듯 싶었다.

  그들이 그를 쳐다보는 눈빛은 이제까지의 차갑고 냉랭하고 감정 없는 그런 것이 아니었다. 그를 진심으로 불쌍히 여기는 측은함과 애처로움이 가득한, 인간적인 눈빛이었다.

  “얼씨구 그래, 이젠 혼자선 안되겠다 싶어서 떼로 몰려왔냐? 헛수고하지들 말라고. 나는 그 정도에 겁먹을 만큼 호락호락한 아저씨가 아니야. 알겠어?”

  과거의 유령이 말했다.

  “저희의 임무는 당신을 겁주는 것이 아니라 바른 길로 가도록 이끄는 것입니다.”

  “말 잘했다. 그 바른 길이란 게 대체 뭔데? 인간들이 자기 편할 대로 정해놓고 따르지 않으면 처벌하는 그런 임의적인 것이 아니더냐? 내가 왜 그런 길을 가야 하는 거지? 난 나대로의 길이 있고 그것이 내 정의다! 정의를 말하고 싶으면 날 쓰러뜨리라고!”

  (*묘지 뒷길로 마쿠베 록크와 창 우페이가 귀를 긁으며 지나가고 있다)

  “그것은 당신의 속 좁은 생각일 뿐입니다. 일찍이 뉴타입 아무로 레이는 말했지요. '그러기에 세상에 사람 마음의 빛을 보여주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다....!'라고 말이지요.”

  “뉴타입 따위, 믿지 않아!”

  “당신이 믿든 안 믿든 상관없습니다. 푸르, 푸르 투!”

  그 신호에 답하기라도 하듯 두 오렌지색 머리의 소녀가 손을 맞잡고 잠시 명상에 들어가더니 곧이어 몸 전체에서 주황색의 오라를 발산하기 시작했다.

  바스크는 쟤네들이 또 무슨 쇼를 벌이려고 저 야단인가 하는 표정으로 가만히 지켜보고 있다가 갑자기 얼굴에 경악의 빛을 띠기 시작했다.

  그 두 소녀의 뒤에서 눈부신 광휘와 함께 일단의 망령들이 한꺼번에 떠오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망령이라고는 하지만, 그것은 너무나도 선명해서 바스크에게는 마치 현실처럼 느껴졌다. 아니, 자신도 그 속의 일부인 것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바스크는 비명을 지르며 그것을 외면하려 했지만 그것은 눈이 아닌 마음으로 흘러들어오고 있었다.



  그것은, 오랜 옛날부터 있어온 신화였다.

  아니, 그것은 오히려, 이미 일어난 일이며,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이기도 하고, 앞으로 일어날 일이기도 한, 다층적이고 복합적인 의미를 가진 '살아있는 이야기'였다.

  아주 먼 옛날, 백의 기사들(聯邦白騎士團)과 녹의 총사들(地溫綠銃士團)이라는 두 개의 세력이 서로 다투고 있었다.

  그들은 너무나도 큰 세력들이어서 한 번의 전투만으로도 이 세계를 처참하게 뒤흔들 정도였다. 그들은 시대에 따라 전혀 다른 모습, 전혀 다른 얼굴을 가지고 싸우기도 했지만 본질적인 갈등은 언제나 변하지 않았고, 수많은 사람들이 그 싸움 때문에 죽어갔으며 또한 그 불화 때문에 상처 입었다.

  (*배경 음악: 비 창)

  그 와중에 뉴타입(新聖)이라 불리는 아무로 레이(兒武老來以)의 출현이 있었고 사람들은 그에게서 새로운 시대의 여명을 예감하였다.

  하지만 그는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았기에 그들의 기대를 외면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한동안 흔적도 없이 어디론가로 사라져서 다시는 나타나지 않을 것처럼 보였다.

  (*배경 음악: 메그리아이, 연주곡)

  그를 다시 맞기 위해 인류는 무수한 고통을 겪고, 셀 수 없는 인명의 희생을 감당해야 했다. 그리고 그러한 과정 중에 역시 베쓰(制二種)의 뉴타입이라 불리는 카미유(加美流)와 쥬도(酒盜)가 나타났으나, 그들은 아무로를 대신한다는 무거운 부담을 이겨내지 못하고 미쳐버리거나 황야를 방황하는 나그네가 되거나 한 것이었다.

  (*배경 음악: 제타 시간을 넘어서-와 SILENT VOICE-의 메들리, 연주곡)

  인류는 두 번의 실망에 굴하지 않고 다시금 희망의 날을 찾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 후, 한때는 뉴타입의 길을 추구하여 인류의 완전한 대오각성(兒倭異求忍)을 기다리고 있었으나 결국 인류의 거듭되는 악행에 실망하여 광기의 길로 들어선 알레프(制一種) 뉴타입의 생존자 붉은 성인(赤聖) 샤아(始野我)는 인류 그 자체가 모든 죄악과 불미스러움의 근원이라 규정짓고 전 인류를 벌하기 위해 스스로 붉은 마신(赤邪魔聖)이 되었던 것이었다.

  (*배경 음악: 역습의 샤아 메인 테마)

  그리고 그는 전 인류에 대한 최후의 심판으로써 거대한 불구슬(哀首太路以島) 악시즈(惡示主)를 인류의 성지 지구(地久)에 떨어뜨리려 했던 것이었다.

  그러나 그때, 어딘가에서 속세와의 연(來異磁通信)을 끊고 수행에 열중하고 있었던, 잊혀진 과거의 용자 아무로는 샤아의 악행을 더이상 두고 볼 수가 없었기에, 그의 맹세를 깨고 다시 나타나 그를 단죄하려고 나섰던 것이었다.

  (*배경 음악: SALLY)

  그들은 서로의 마신기(模飛樓守土)인 뉴건담(尼宇乾多武)과 사자비(死者碑)를 타고 처절하게, 아니 피튀기게 싸웠다. 서로의 길을, 서로 틀렸다고 말하면서...

  그들의 싸움이 끝에 이르고, 악시즈가 지구의 결계(大氣圈)를 뚫고 들어가려고 할 무렵, 샤아는 아무로의 손에 붙잡혀 꼼짝못하게 되고, 아무로는 마지막 힘을 다하여 악시즈를 지구로부터 멀어지게 하려고 시도한 것이었다. 그의 노력은 처음에는 헛된 것처럼 보였으나...

  아무로의 마음에 감응한 죽은 자들의, 산 자들의, 전 인류의 마음이 한 곳에 모이고, 그것이 하나의 강력한 영력(使理故厚來任)을 형성하여, 악시즈는 찬란한 무지개색 광휘(悟露羅)에 휩싸인 채로 방향을 바꾸어, 영원히 천상계(大宇宙) 저편으로 사라진 것이었다.

  그리고 분쟁의 원인이 무엇이었든 간에, 그 후로 분쟁은 철저히 사라졌다.

  이 중대한 사건을 계기로 크게 깨달은(覺醒) 인류는 완전한 한마음이 되어 번영을 이룩하고 마침내는 천상대천(小行星帶)에까지 그 생활 공간을 확장하여, 새로운 발전의 시대를 맞이하였던 것이다.

  (*배경 음악: BEYOND THE TIME, 연주곡)

  그리고 이 사건의 와중에서 사라져 버린 아무로와 샤아의 이름은.....

  인류의 구원을 향한, 장대한 발걸음을 내디딘 고귀한 희생자들로써 길이 기억되게 되었고, 그들의 운명을 점쳐낸 무명의 구도자이자 예언자인 크리스티나(九里守態而羅)의 이름을 따서, 그 두 뉴타입 중에서도 특히 위대하다고 여겨지는 아무로 레이의 생일을 크리스마스(九里守馬修)라 일컬으며 축하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 크리스티나는 사이드 6의 야구용품점 주인 크리스티나 맥켄지와 자주 혼동된다.)

  “이것이... 우리의 크리스마스가 갖는 의미였던 겁니다.”

  바스크의 의식에 대고 현재의 유령이 속삭였다.

  (*아악 살려줘, 진짜로 이렇게 쓸 생각은 아니었는데, 갈데까지 가고 말았으)

  바스크가 눈을 끔뻑거렸다. 그는 다시 정신을 잃었다.



  그것은 어떻게 보면 하나도 새로울 것이 없는 이야기였다. 그러나,

  바스크는 이 이야기를 그토록 깊이 생각하고, 또 그토록 간절하게 느껴본 적이 없었다. 그에게는 갑자기 크리스마스의 모든 것이 새롭고도 경이롭게 다가오고 있었다. 그는 이제야 알 수 있었다. 브라이트네의 트리에 걸린 그 정체 모를 빛의 의미를, 아무로 레이가 마지막 기적을 행할 때 나타났었던 그 아름다운 빛과 똑같은 빛깔의 의미를.

  그것은 서로를 아껴주고 위해주며 이해해 주고 생각해 주는.......

  사.랑.이.었.다.



...............



  침대 위에 누워 있구나!

  정신을 차린 바스크는 아직 유령들이 가지 않고 자기를 쳐다보고 있는 것을 느꼈다.

  “아직도 볼일이 남았나? 뭘 말하려는 건지 알만큼 알았어. 이제 나도 잠 좀 자게 해줘. 응?”

  유령들은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과거의 유령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생각 외로 담담하시군요. 이 요법은 충격이 꽤 크기 때문에 비상사태일 경우에만 사용하는 것인데도. 아무 느낌도 없으신건가요?”

  “느낌이 왜 없겠나? 하지만 아직 정리가 안 되었을 뿐이야. 그래, 아직까지는 내가 그전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될 거라고 보장할 수는 없지만, 내 안의 뭔가가 확실히 변했어. 이게 진심일 거야. 그리고...”

  그는 잠시 뜸을 들이더니 세 명의, 아니 다섯 명의 유령을 돌아보았다. 오렌지색 머리의 두 꼬마 유령은 다시 기나긴 탈진상태에 들어가 있었다. 아마 다음 고객이 그들을 필요로 할 때까지는 절대로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바스크는 그 중에서 미래의 유령을 가장 오래 쳐다보더니 말을 이었다.

  “이상한 일이지만, 남에게 좋은 일을 해 주는 것도 때로는 나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는군. 그게 좋은 건지 나쁜 건지는 알 수 없지만.”

  미래의 유령이 살짝 미소지었다. 처음으로 보는 그녀의 미소였다.

  과거와 현재의 유령이 바스크에게 예의 바르게 인사했다.

  “글쎄요. 나쁜 일은 아닐 거라고 생각합니다만, 어디까지나 그것을 알아내는 것은 당신의 일이겠지요. 그럼 저희는 물러가겠습니다. 정말 힘든 하룻밤이었네요.”

  “하룻밤? 난 사흘밤은 족히 지난 것 같은데?”

  “생체시계와 외부의 시계를 다르게 가도록 만들었지요.”

  “여전히 뭔소린지 모를 말만 하는군. 잘들 가게.”

  바스크는 작은 소리로 나머지 말을 중얼거렸다. 그의 자존심이 그 정도까지 허락한 것만 해도 놀라운 일이긴 했지만.

  “인정하긴 싫지만.... 애써 준 것에 대해서는 감사하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가 변했다고 생각하면 곤란해!”

  물론 유령들은 그의 말을 알아듣는데 아무 문제도 없었다.

  과거의 유령이 웃으며 말했다.

  “어떻게 하실지는 당신의 선택이지만, 저희는 애프터서비스에도 충실하기 때문에... 저희들은 계속 당신을 지켜보게 될 겁니다. 당신이 싫건 좋건 그건 부차적인 문제이지요. 계약은 이행되어야 하므로.”

  “대체 누가 그따위 계약을 한 건가? 나는 한 적 없는데.”

  “당신도 알고 계시는 염소수염의 노신사입니다.”

  현재의 유령이 친절하게 가르쳐 준다.

  “빌어먹을 하이만 영감, 죽어서도 여전히 사람을 못살게 구는군.”

  (*여전히 자기가 남을 못살게 구는 건 전혀 생각지 않고 있는 바스크)

  첫 번째 유령이 제일 먼저 떠나갔다. 그녀는 창문 밖에 나타난 녹색 연꽃에 올라타고 수많은 백조를 동반하여 하늘 저편으로 날아가면서 바스크에게 마지막 인사를 남겼다.

  “성 아무로의 가호가 있기를.”

  두 번째 유령이 탈진한 조수들을 주섬주섬 챙긴 뒤에 검은 상자곽에 올라타고서는 떠나갔다. 이번의 인사는 좀 길었다. 세 사람 몫이어서인가.

  “성 카미유와 성 쥬도의 가호가 있기를.”

  마지막으로 미래의 유령만 남았다. 이제는 말할 성인의 이름도 다 떨어졌을 테니 그냥 말없이 사라지겠구나라는 바스크의 예상을 깨고, 놀랍게도 미래의 유령이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성 아즈나블의 가호가 있기를.”

  “너, 너 말을 할 수 있었구나???”

  “당신들이 하는 말을 분석해서 외우느라 시간이 걸렸습니다.”

  “전번에 화산섬에서 발견되었다고 신문에 난 아이가 너였나? 그 애는 남자라고 들었는데.”

  유령은 대답하지 않고 미소만 지으며 창문 밖을 잠시동안 응시했다. 그러더니 갑자기 인간의 힘으로서는 낼 수 없을 만큼 큰 소리로 자기의 자가용을 호출했다.

  “아지르-------------------------------------------------------!!!”

  하얀 북어 대가리가 윙윙거리는 소리를 내며 떠올라 창문 밖에 정지했다. 미래의 유령은 그를 한번 힐끗 돌아보더니 가볍게 목례를 했다. 하얀 북어 대가리가 설명할 수 없는 힘으로 자기의 주인을 끌어당겨 어깨에 태웠다. 그 동안에도, 윙윙거리는 소리는 그치지 않았다.

  “저것은, 인력 장치!!!”

  놀라는 바스크를 뒤로 하고 미래의 유령을 태운 그 하얀 물체는 영롱한 빛에 둘러싸여 수직으로 날아올랐다. 그 물체가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바스크는 창문 가에 서서 꼼짝 않고 밤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갑자기 소름이 쫙 끼쳐왔다.

  “그, 그럼, 그 녹색 빔은, 과, 과, 광자탄이었나???”

  그 미래의 유령이 에너지 충격파를 사용한 것도 이해가 가기 시작했다. 미래의 유령은 가장 어려 보였지만, 가장 위협적인 힘을 숨기고 있었던 것이다. 마음만 먹으면 그를 죽일 수도, 기억을 빼앗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바스크는 지쳐버린 심신을 달래기 위해 다시 침대로 돌아갔다.

  콜로니의 밤 거리에도 이윽고 다음 날의 여명이 조용히 다가오고 있었다.

  크리스마스의 새벽이었다.



-Fourth Interlude-



  약간 떨어진 이웃 콜로니의 한구석에서는, 한 무리의 껄렁한 불량소년들이 섬뜩한 컬러링의 전투 바이크 부대에게 쫓기고 있었다. 케인 와카바는 왜 저놈들이 이 허접한 데이타디스크를 그렇게나 원하는 것인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그들은 이윽고 수송선 아이다호의 격납고에 도착했다.

  새로운 운명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당연한 말이겠지만, 이제 이 이야기 중에서 이들을 다시 볼 기회는 아마도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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