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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4-13] 당신의 꿈은 안녕하십니까?
창작의 샘터/잠본이 환상극장 | 2010. 7. 4. 23:33
 



<< 당신의 꿈은 안녕하십니까? >>

Is Your Dream Perfectly All Right?






“아름다워.”

그웬 드렉슬러는 거의 본능적으로 그렇게 중얼거렸다. 그녀의 눈 앞에는 마치 옛날 동화에서나 나올 법한 화려한 저택이 미인대회 참가자처럼 우아한 자태를 빛내며 서 있었다.

사실 그 저택이 그냥 평범한 재료로 지어진 보통의 집이었다면 그녀가 그정도로 감탄할 일은 없었을 것이다. 그녀는 건축에는 문외한이었지만 집은 쓸데없이 넓기보다는 기능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고용인도 없이 혼자서 고대광실같은 대저택을 하루종일 쓸고 닦아야 한다면 당신은 어떤 기분이 들겠는가?

“게다가 먹음직스럽기까지 하네!”

그 집은 과자로 지어져 있었던 것이다. 기둥은 손만 대도 바스러져 흩어질 듯한 딸기크림 웨이퍼였고, 창문은 은은한 빛이 도는 반투명의 설탕유리에다가, 지붕은 오돌토돌한 형상의 피스타치오 아몬드 쿠키로 덮여 있었다. 정원은 쑥과 클로렐라를 섞어서 쪄낸 풀색의 카스텔라로 되어 있고, 그 한가운데 위치한 레모네이드의 분수 속에는 화이트 초콜렛으로 빚어진 오리들이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그웬은 무언가에 홀린 듯한 기분으로 어쩐지 아까보다 가벼워진 팔다리를 흐느적흐느적 움직여 가며 그 집의 딱딱한 러스크 대문을 열어젖히고 안으로 들어가려 했다. 그런데 그때 갑자기 엉뚱한 걱정이 그녀의 마음 속에 떠올랐다.

‘가만, 그런데 난 지금 다이어트 중 아냐? 저런걸 집어먹어도 될라나?’

그러나 초콜렛 오리가 살아있는 것처럼 하늘로 푸드덕거리며 날아오르는 걸 보고는 금세 사태를 이해하고는 미소를 짓는 것이었다. 난 또 뭐라고. 이거 꿈이잖아. 그렇다면 잠이 깰 때까지 조금 맛만 봐도...

보통은 대강 이런 시점에서 잠이 깨고, 아쉬운 듯 입맛을 다시며 잠이 덜 깬 눈으로 부스럭부스럭 출근준비를 하는 것이 그웬의 평소 일과였다.

그런데 그날 밤은 뭔가 좀 달랐다.

“어라, 그대로잖아? 이상한걸, 잠에서 깨어나지 않다니...(정상적인 반응이다) 아마도 다이어트 땜에 피골이 상접한(거짓말이다) 나를 불쌍히 여기시어 꿈에서라도 배불리 먹으라는 하늘의 계시인가봐~(자기본위적인 해석이다). 만세!”

본래 낙천적인 그웬은 꿈이건 현실이건 상관없다는 생각으로 앞에 펼쳐져 있는 온갖 달콤짭짜름한 기호품의 천국을 향해 달려가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때 평소때와는 다른 그 무언가가 또 끼여들고 말았다.

눈 앞을 지나가던 박하사탕으로 만들어진 고양이가 갑자기 사람의 형상으로 변하여 온갖 전단지와 풍선을 들이대며 이런 소리를 지껄이는 것이 아닌가!

“안녕하십니까! 항상 여러분의 건강을 생각하는 테이스티스텁스TastyStuffs의 텔러 마빈입니다.(고개 꾸벅) 저희 회사에서는 이번에 새봄을 맞이하여 직영 매장에서 전품목 40% 할인을 하고 있습니다. 혹시 새로운 맛에 관심이 있으시다면 꼭 한번 들러 주세요.(허리 꾸벅) 세일 기간 중에는 보양에 좋은 해물 조리법도 가르쳐 드립니다!(냄비를 꺼내들고...)”

간신히 박하사탕 아저씨를 뿌리치고 달려가자니 이번에는 정원 한구석에 피어 있던 계피로 만든 장미꽃이 어거지로 만들어 붙인 듯한 함박웃음과 낯익은 제복을 갖춘 아가씨의 모습으로 변하여 또 무언가를 권하기 시작한다!

“엘라 뉴먼의 토탈 바디케어 클럽에 와 보셨나요? 아직 와보신적이 없다구요? (검지를 좌우로 흔들며)저런저런, 그러면 안되죠. 비만이나 과체중은 외모로만 알 수 있는게 아니라서, 겉보기엔 멀쩡해 보이는 분도(그웬의 허리를 빤히 바라보며) 안심할 수 없답니다. 이 기회에 손님의 체질을 정확히 알아보고 그에 맞는 현명한 건강 관리를 도모하심이 어떠하신지요? 이런 부질없는 사탕과자 따위는 잠시 잊어버리고(설탕유리를 주먹으로 깨 버리며), 모든 걸 엘라에게 맡기세요. 다른 어설픈 다이어트와는 비교도 안되는 과학적인 프로그램! 지금 연락 주시면 톱스타 지니 라이스의 홀로그램 포스터도 드린답니다~”

그웬은 과자로 만든 집이야 어찌되건 간에 이제는 제발 빨리 잠에서 깨어났으면 하고 간절히 바랬지만, 어찌된 일인지 그녀의 꿈은 도무지 끝날 줄을 몰랐다. 결국 그녀는 사방팔방에서 날아오는 집요한 광고 메시지를 싫도록 듣고 듣고 또 들은 뒤에야 벌개진 눈으로 잠자리에서 일어날 수 있었다.

“내 삼십평생에 이렇게 스폰서가 많이 붙은 꿈은 처음 꿔보네.......(#_#)”

그날 그웬의 업무효율이 눈에 띄게 떨어진 것은 물론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비슷비슷한 구역에 거주하는 다른 동료들도 그다지 나은 처지는 아니었다는 점이다. 환자도 주위에 같은 병을 앓는 사람이 많으면 위안이 되지 않던가!





“물론, 우리는 그런 일에 쓰려고 그 시스템을 개발한 건 아니었어요.”

마리사 유메카와 교수는 단어 하나하나에 힘을 주어가며 이렇게 얘기했다.

“그러니까 교수님 말씀은... 에...그 뭐였더라... DIVX라고 하셨던가요?”

“정식으로는 Dream Integrating Virtual eXperiment의 약자인데, 우린 그냥 디벡스라고 하죠. 아시다시피 대학이나 정부기관이란 곳이, 뭔가 그럴듯한 이름을 붙이지 않으면 예산을 죽어도 안 내준단 말예요.”

하킴 무타바 기자는 익숙치 않은 과학용어에 대한 경외감과 짜증이 반씩 섞인 기기묘묘한 표정을 영업용 스마일로 애써 은폐하면서, 애초에 자기가 하려던 질문을 계속 이어나갔다.

“예 알겠습니다. 하여튼 간에, 그 디벡스를 처음 만드셨을 때는, 지금 성행하고 있는, 상업적 용도로 쓰일 거라는 점을 전혀 예상치 못하셨던 거란 말씀이시죠? 그렇다면 본래 예정되어 있던 용도는 무엇이었나요?”

“이미 전송해 드린 자료를 보셔서 아시겠지만, 디벡스의 원리는 수면 중에 꿈을 꾸게 하는 뇌의 일부분에 직접 전자기적으로 간섭해서 특정한 시각적-청각적 신호를 피험자의 정신에 전송한다는 것이죠. 자세한 설명은 얘기가 너무 길어질테니 생략하고, 한 마디로 말해서 우리가 원하는 어떤 이미지든 간에 꿈을 통해서 보여주고 들려줄 수 있다는 얘깁니다.”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만.”

교수는 사무실 한구석에 걸려있는 어떤 사진을 흘낏 바라보고는 말을 잇는다.

“애초에 우리가 목표로 했던 것은 심각한 정신질환이나 뇌장해를 앓고 있는 사람들을 치료하는 것이었어요. 외과수술이나 약물치료, 카운슬링으로 대처하는 데에 한계가 있을 경우, 마지막 수단으로써 ‘꿈’을 통한 간섭과 대화를 거듭함으로써 환자 스스로가 문제를 자각하고 스스로 고쳐나가도록 유도하는 것이죠. 시스템 자체는 원리상으로는 별 문제가 없었지만...”

“다른 문제가 발생했군요.”

“그것을 실제로 구현하는 데 상당히 오랜 기간이 걸렸고, 그러는 동안에 대학 당국에서는 인내심과 돈이 한계에 이른 거죠. 보다 빨리 성과를 보여준 다른 프로젝트에 예산을 돌리는 바람에, 우리가 어떻게든 연구를 계속하기 위해서는 외부에서 스폰서를 구하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그때 나타난 것이 파워슈트라우스 에이전시PowerStrauss Agency였던 거예요.”

“전세계 광고계의 85%를 차지하고 있는 거물 광고대행사군요.”

“그들이 처음 접촉해왔을 때, 연구를 계속하게 해주는 대신 조건을 내걸었죠. 시스템이 완성되면 먼저 그들이 원하는 용도에 우선적으로 쓰게 해 달라는.”

“그렇지만 특허까지 넘겨주실 필요는 없지 않았습니까?”

교수는 흰머리를 신경질적으로 쓸어넘기더니 어깨를 으쓱 해 보였다.

“제가 출장중일 때 그들이 법적으로 손을 쓸 줄은 미처 몰랐거든요. 덕분에 저도 지금은 명예 말고는 아무것도 없는 빈털터리랍니다. 어처구니가 없어서!”

“교수님도 피해자라는 사실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하킴은 전자수첩에 몇 가지 메모를 하면서 상대를 위로했다.

“하지만 과학자에게는 도의적인 책임이란 것도 있지 않을까요.”

유메카와 교수는 찌푸리고 있던 얼굴에 약간의 미소를 띄우며 대답했다.

“제가 이 인터뷰를 수락한 게 무엇 때문이라 생각하세요?”

하킴도 시니컬한 웃음으로 답했다.





“꿈꾸기엔 별로 좋은 날이 아니군.”

뤼 치앙 첸 기동대장은 침통한 얼굴로 시위대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빌어먹을 ‘꿈꾸시는데 죄송하지만 잠시 전하는 말씀이 있겠습니다’ 트렌드가 도시 전역으로 퍼진 이래, 이런 일은 비일비재하게 되었다. 불과 6개월만에 이 정도로 많은 일이 벌어질 거라고는 누구도 생각지 못했다.

그웬 드렉슬러를 비롯한 초기의 피험자들은 수 주일 동안 수면부족과 신경쇠약 증세에 시달리는 부작용을 겪었지만, 광고회사는 그러한 사례를 철저히 분석하여, 피험자의 의식에 거부감이 들지 않을 정도로 광고의 강도를 적절히 조절하게 되었다. 여기저기서 불쑥불쑥 나타나 강매를 시도하는 이상한 나라의 세일즈맨들은 얌전하게 주변 풍경이나 소품 속에 녹아들어가 꼭꼭 숨어 있는 광고판과 기업 로고, 이동 전광판 따위로 대체되었다. 이 해괴한 시스템에 대한 진실이 언론을 통해 알려지고 그것이 생각만큼 끔찍한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사람들도 점차 그것에 익숙해지게 되었다. 결국 광고사도 소비자도 적절한 선에서 타협을 보게 된 것이다. 게다가 피험자 중의 대다수가 지난밤 꿈에 나타난 상품이나 서비스를 무의식적으로 선택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는 통계가 나오면서, 처음에는 반신반의하던 여러 기업들이 파워슈트라우스의 본사로 돈보따리를 싸들고(e-크레딧이 일반화되어 있으므로 이건 어디까지나 비유다) 몰려들게 되었다. 이 사업은 그야말로 ‘꿈의 비즈니스’로 발돋움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뤼는 입술을 깨물며 중얼거렸다. “어떤 꿈은 악몽이기도 하지.”

보슬비를 맞아가며 옆에 서있던 부하가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로 쳐다본다.

“어제 저녁에 뭐 상한 거 드셨나요?”

“그런 건 아닐세. 다만, 저기 서있는 사람들의 심정을 헤아려 보다가 잠시 기분이 우울해졌어. 그뿐이야.”

“오늘은 그 우울이 특히나 심해지신 것 같은데요.”

뤼는 통신기의 음량을 재조절하며 느릿느릿하게 말을 이어나갔다.

“이를테면 이런 거야. 꿈을 이용한 그 신종 광고법이 차차 익숙하게 되어가는데도 왜 저 사람들은 끈질기게 반대하는지 아나?”

“글쎄요. 역시 부작용이 남아서 견디기 힘들기 때문일까요?”

“부분적으로는 그런 것도 있지만, 그 밑바닥엔 인간의 본성이란 게 있어.”

“본성이요?”

부하는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갸우뚱할 뿐이었다. 비는 그칠 줄 몰랐다.

“인간이란 원래, 무리지어 사는 동물이지만 동시에 간섭받기를 무지하게 싫어하는 동물이기도 하지. 내밀하고 사적인 영역을 보장받는 데 익숙해진 이 도시의 주민들은 더더욱 그럴 거야. 점점 남들과의 삶으로 인해 자기만의 공간을 잃어가는 사람들에게 ‘꿈’이란 최후로 남은 혼자만의 영역이 아니겠나. 그런데 과학이란 이름의 술수를 동원해서 그 영역까지 파헤치고 간섭하고 자기들 맘대로 영향을 미친다면... 누군들 좋아하겠는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저도 가끔씩 즐거운 꿈을 꾸다가 전혀 엉뚱한 곳에서 광고문구나 기업체 마크를 발견하고 기분이 팍 상하는 일이 있어요. 해변에서 여자친구랑 놀고 있는데 그녀의 수영복 뒤쪽에 담배회사 로고가 붙어있는 걸 보고 돌아버리는 줄 알았다니까요.”

부하의 동의를 얻은 뤼는 짐짓 무심한 태도를 유지하며 이런 얘기도 한다.

“그런 잔재주들이 때로는 무서운 꿈마저도 무섭지 않게 만들어버리지. 우리 딸아이는 꿈 속에서 공룡에게 밟힐 뻔했는데 밟히는 순간 공룡 발바닥에 운동화 상표가 붙어 있어서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겠더라고 얘기하더군!”

“아끼던 찻잔으로 차를 마시는 꿈을 꾸고 있는데, 다음 순간 그 찻잔이 신장개업한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나눠주는 머그컵으로 바뀐 일도 있었죠. 짜증이 났지만 다음날 어째선지 그 식당에를 가게 되더군요. 생각해보니 오싹한데요.”

부하는 부르르 몸을 떨며 담배를 한 가치 빼들었다.

“그나마 시의회에서 금지법안을 상정한다니 거기에 희망을 걸어 봐야지.”

뤼가 고풍스런 라이터를 꺼내들고 불을 붙여준다.

“아, 감사합니다.”

“그런데 그 담배는 자네가 즐겨 피우던 것이 아니잖나?”

부하는 잠시 멍한 눈으로 담배 케이스를 내려다보다가 입을 열었다.

“실은 이것도 지난밤 꿈에, 돌아가신 아버님이 나타나셔서 피우시던 겁니다.”

뤼는 할 말을 잃었고 부하는 쓴웃음을 지으며 담뱃재를 길 위의 웅덩이에 털었다. 시위대는 경찰이 뭘 하든 아랑곳하지 않고 열심히 구호를 외치는 중이었다. 우리에겐 광고없는 꿈을 꿀 권리가 있다! 알겠는가? 우리에겐......





“다시 한번 말해 주겠나?”

둔중한 체구에 다갈색 피부, 시대에 뒤떨어진 외알안경을 낀 카를로 몬테네그로 의장은 상대의 의중을 신중하게 살피면서 이렇게 부탁했다. 그의 맞은편 소파에 느긋한 태도로 앉아있던 붉은 양복의 젊은 남자는 별로 어려운 일도 아니라는 것처럼 나직한 목소리로 방금 전의 제의를 되풀이했다.

“디벡스 금지법의 전면철폐, 혹은 그것이 불가능하다면 부분적인 요건 완화만이라도 상관없습니다. 이미 대부분의 의원님들과는 얘기가 된 상태이니 남은 것은 의장님의 결심과 투표권 행사라는 말씀을 드린 겁니다.”

의장은 안경을 벗어들고 합성 빌로드 천으로 만들어진 클리너로 정성들여 닦으며 방금 들은 말을 곱씹어보았다. 확실히 3개월 전의 디벡스 금지법 채택으로 광고업계는 큰 손실을 보았을 터이고, 무언가 조치를 취하려고 한다는 낌새도 채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이 아무리 급하다고 해도 이렇게 노골적인 로비를 벌일 것이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는데... 의장은 자신의 정치생명과 재계의 이득과 시민의 복지와 가족들의 평안을 머릿속으로 열심히 저울질하면서 눈알을 번득이고 있었다. 상대방의 마음이 동요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챈 남자는 탁자에 놓여 있는 유리잔을 집어들고 한모금 들이킨 뒤에 이렇게 말했다.

“거절하시겠다면 아마 다음 선거에서 약간 불미스런 일이 생길지도 모르겠다는 뜻을 전하라고 저희 고용주께서 말씀하시더군요. 아아, 알고 있습니다. 의장님의 지금 그 표정을 보아하니 ‘네가 여기 와 있는 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불미스럽지 않냐’고 생각하시는 거죠? 하지만 세상에 공짜가 없다는 건 저희도 잘 압니다. 그게 우리 세계의 법이니까요. 이번에 큰맘먹고 도와주신다면, 다음 대선 때 중앙의회로 진출하실 좋은 기회를 잡으실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런 세속적인 문제보다 의장님께는 더 나은 선물이 준비되어 있습죠.”

의장은 궁금하다는 얼굴로 “더 나은 선물이라니?”라고 물어보았다.

“의장님 댁에만 특별히, 디벡스의 효과를 무력화시킬 수 있는 차단장치를 설치해 드리겠습니다. 물론 완전 무료에 해 드리고 애프터 서비스도 보장합니다.”

“그런 게 개발되었다는 소리는 못 들었는데.”

젊은 남자는 껄껄 웃으며 들고 온 가방에서 설계 도면을 꺼내 보여주었다. 잠시 동안의 기술적인 해설이 이어진 뒤에 그가 말한다.

“실은 그동안에 발명자인 유메카와 교수와 접촉이 있었습니다. 다만 그분은 우리가 의뢰인이란 걸 모르고 있죠. 어디까지나 파워슈트라우스의 무자비한 광고공세로부터 세계 사람들을 지키려는 숭고한 이상에서, 차단장치의 개발을 해주신 겁니다. 안타깝게도 계약자가 우리와 비밀리에 연관되어 있는 치들이라서 문제지만 말입니다. 그렇게 해서, 저희들은 칼뿐만 아니라 방패도 손에 넣은 셈이지요. 지금은 의장님께만 서비스해드리는 겁니다만, 내월부터는 일반판매도 시작할 겁니다. 물론 그 값어치에 어울리는 금액을 지불하시는 분들께만 말이죠.”

“무서울 정도로 머리가 잘 돌아가는 자들이로군. 그렇지만, 그런 기업 비밀을 함부로 발설해도 되겠는가? 내가 언론에 터뜨릴 수도 있을텐데.”

“그것은 저희가 그만큼 의장님을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저희들이 의장님에 대해서 몇가지 흥미로운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아신다면, 의장님께서도 저희의 비밀을 공표하기 전에 한번쯤은 더 생각해 주시리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요. 예를 들면... 5년 전에 라슈펠 재단에서 출처가 확실치 않은 자금이 슬그머니 빠져나간 일이 있었는데, 그 수신인은...”

의장은 당혹함과 불쾌감, 그리고 한방 먹었다는 체념이 뒤섞인 복잡한 표정으로, 황급히 그의 말을 가로막았다. 협상이 막바지에 다다르려 하고 있었다.

“그만. 충분히 알아들었네. 좋아, 한번 검토해 보도록 하지. 그런데 자네가 말한 차단장치, 효력은 확실한가?”

“의심스러우시면 결정하시기 전에 시험삼아 써 보실 기회를 드리죠.”

의장은 유리잔의 내용물을 끝까지 비우고는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자네 회장은 보기드문 능구렁이였지.”

그는 젊은 남자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그런데 자네는 그보다 더한 능구렁이같군. 맘에 들었어.”

“그러시다니 다행입니다.”

조금도 좋아하거나 흐트러지는 기색 없이 젊은 남자, 루크 스톡턴이 대답했다.

“잼보니 한잔 더 하겠나?”





“자살이라고?”

페니 반 다이크 지방검사가 낭패스럽다는 얼굴로 전화통을 붙잡고 중얼거렸다.

“대체 이유가 뭐래? 아니, 잠깐만 가만있어봐, 맞춰볼게. ‘나는 디벡스가 싫어요!’ 이거지, 맞지?”

상대방의 웅얼거리는 목소리가 광파이버를 통해서 들려온다.

“빙고! 내가 맞췄으니 다음에 만나면 마티니 한잔 내. 그건 그렇고, 이런 자살이 벌써 이번달만 해도 여섯 번째잖아? 이번엔 어떻게 한 거래? 응, 응, 상공회의소 건물 옥상으로 몰래 올라가서... 유서를 저장한 메모리 카드를 남겨두고, 그래, ...미리 준비해둔 잭킹 툴로 시내 라디오 채널 24개를 통해 ‘뛰어내릴래!’ ... 그러고 훌러덩? 대담하구만. 그나저나 일주일 전부터 테라넷 게시판을 통해 예고를 했다면서 그걸 못 막았대? 뭐라고? 그 바보가 장소를 예고에 적어놓지 않아서 여러곳에 분산배치 중이었는데 마침 상공회의소 쪽 멤버들이 밥먹으러 갔었다고? 세금이 아깝다! ...어쨌든 고마워. 그래, 나머지 얘기는 다음에 린제이하고 만나서 하자. ...그래, 잘지내!”

흥분이 가시지 않은 얼굴로 전화통을 던지듯이 제자리에 놓은 페니를 보고, 옆에서 무표정한 얼굴로 듣고만 있던 비서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이번에도 검사님의 활약은 없겠네요.”

“꼭 그걸 말로 해야만 속이 시원하겠어?”

“그건 아니지만... 처리할 사건도 많은데 어째서 꼭 디벡스 관련 소동에만 열을 올리고 계신가 해서요.”

“아니 그거야 물론... (잠시 심호흡) 인류의 궁극적인 가치인 자유는 신체의 자유와 의사의 자유로부터 비롯되는 것인데, 그나마 신체의 자유에 대해서도 여러가지 부당한 제약과 침해가 많은 판에, 마지막 남은 의사의 자유와 관련된 영역인 꿈에 대해서까지 대기업의 마수가 뻗쳐오는 건 명백한 인권 침해의 첫걸음이 아니겠어? 그러니까 정의를 구현해야 할 입장인 나로서는 이 사건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 것이지, 음하하!”

도저히 디벡스의 악마같은 영향력에 속아서 별 필요도 없고 우라지게 비싸기만 한, 레이스 달린 18세기형 메이드복과 저중력 코르셋을 36개월 할부로 구입한 것이 피눈물 나도록 아까워서라고는 절대로 말 못하는 페니였다.

“정의도 좋지만 본 직무에 충실하라는 총장님의 지시는 어떻게 하고요?”

“그야 물론 (또 잠시 심호흡) 항상 잊지 않도록 노력하고 있지, 오호호호!”

“그 노력이 가상하군, 반 다이크 군!”

뒤에서 들려온 고목나무 바람빠지는 목소리에 화들짝 놀라는 초보검사.

“헉, 호첸베르크 총장님! 기체 일향 만강하시옵고 가내 두루 평안하십니까! 칼리, 난 아무것도 이상한 말 한 것 없어. 그렇지! 그렇다고 말해줘~~!”

검은 머리에 둥근 안경을 낀 포보스-아리아계의 유능한 비서 칼리 네루다는 쩔쩔매는 페니의 처지를 속으로는 불쌍히 여기면서도 ‘이제 난 어떻게 되어도 몰라요’라는 얼굴로 서류만 열심히 들여다보고 있었다.





“이번엔 시의회뿐만 아니라 중앙의회에서도 완전금지라.”

“또한 외국 대사들과 여러 NGO에서도 항의성명을 내고 있다지 않소!”

“대다수 시민은 별 불만 없는데도 자살자 몇명 때문에 그러다니 정부 사람들도 너무 소심하군요.”

“문제는 우리가 어떻게 이 난관을 헤쳐나갈까 하는 점이오.”

“경영진 쪽에서는 어떤 대책을 준비하고 있습니까? 생산 설비의 투자는?”

파워슈트라우스 에이전시의 주주총회에 모여든 인물들이 저마다 한마디씩 하는 통에 회의장은 어수선한 분위기였다. 표면상으로는 종합광고대행사를 하고 있지만 정재계의 각종 인맥과 얽혀있고 여러 우량 중소기업에 자금줄을 대주고 있어서 사실상 엄청난 지배력을 행사하는 이 기업은, 소문에 따르면 월면 마피아와도 연관을 맺고 있다고 했다. 지난 15년간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하고 현상유지에만 급급해 오던 파워슈트라우스가 간만의 히트작으로 빚어낸 기획품인 디벡스가 사양되어버릴 위기에 처하자, 그동안 이 제품에 큰 기대를 걸고 막대한 투자를 해온 주주들과 투자자들로서는 가슴에 열불이 나서 로켓처럼 솟아오를 지경이었다. 그런 사람들의 웅성거림을 무시하고 한 남자가 일어섰다.

“루크 J. 스톡턴 개발부장.”

이사회장이 무미건조한 목소리로 책임추궁을 시작했다.

“자네의 제안과 추진력에 기대를 걸었기에 여기까지 버텨왔지만 지금으로서는 상황이 그다지 좋지 못하다는 점에 대해서 이의가 없을 줄로 믿네. 어떻게 이 손해를 만회할 생각인가?”

스톡턴은 흰 장갑을 낀 두 손을 잠시동안 유연하게 만지작거리다가 평온한 태도로 입을 열었다.

“본래의 의도대로 해 나갈 수 없다는 건 확실합니다. 하지만 이런 일도 있을까 해서 (잠시 과장된 제스처를 취하다가) 디벡스의 새로운 판로에 대한 계획을 미리 짜 두었습니다. 자세한 것은 화면에 나오는 프리젠테이션을 참조해 주십시오.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이미 아시겠지만 이런 때에 우리가 가져야 할 마음가짐은 다름아닌...”

그는 마술사처럼 우아하게 제자리에서 한바퀴 돌더니 이런 말을 내뱉었다.

“<장사 한두번 해보나> 라는 겁니다.”





그웬 드렉슬러는 간만에 편안한 꿈을 꾸고 있었다.

아 바로 이거야. 귀찮은 세일즈맨도, 광고판도, 전단지도, 여기저기 박힌 회사 로고나 애드벌룬도 없이, 익숙한 사물이나 사람이 갑자기 ‘올해의 CF대상’에나 나올 그런 것들로 허락도 없이 바뀌는 일도 없이, 그냥 있는 그대로를 헤쳐 나가면 되는, 그런 게 바로 꿈의 진짜 모습이라구! 이번엔 기필코 그때 그 과자집을.......

그런데 꿈속에서 느끼는 감정이라기엔 너무나 생생한 불안감이 그녀를 덮쳤다.

또 뭐가 일어날 거란 말인가? 빨리 잠에서 깨어나야 한다. 안 그러면...

“안녕하십니까! 이번에 시장선거에 출마한 프랑코 라로카입니다.(배지를 나누어준다) 행복이 가득한 도시를 만들기 위해(씨익 웃으며 장미꽃을 뿌린다) 기호 3번, 라로카에게 한표를!”

사람 모양의 피넛버터 쿠키가 정치인 모자를 쓰고 선거운동을 하고 있잖아!

“허어 이런 이런~ 마음에 수심이 가득하고(얼굴을 뜯어본다) 몸에는 나쁜 기운이 충만해 있군!(어깨를 잡고 흔든다) 그런데 혹시 타오[道]나 콰이[氣]에 관심 있으시오?”

겨우 도망쳤더니 이번엔 토끼 모양의 생강과자가 이상한 종교를 전도하고!

“한번 들어보시겠습니까? 이번 1/4분기에 우리 정부의 극빈자 주택공급 정책은 상당한 성과를 거두었죠. (계산기를 두드리며) 이로써 4만5천8백2십7명의 집없는 사람들이 따뜻한 난방과 차가운 수도가 갖춰진 집에서 겨울을 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전국에는 3백만명이 넘는 (지도를 펼쳐보이며)......”

그 반대편에서는 성탄절 막대사탕이 정부시책을 홍보하고 있다니! 뭐야 이게!

그웬은 꿈에서 깨어나기 위해 눈을 부릅뜨고 계속해서 달렸다. 그러다보니 이제는 어딘지도 알 수 없는 깊은 숲 속으로 들어오고 말았다. 그리고 기진맥진한 그녀가 아직도 잠에서 깨어나지 못한 채 쓰러지자, 그 앞쪽에서 다가온 것은...

/// ¤∬‡*¿∽…¸˛ §♂♀∠∮…¡¡¡ ///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이방의 언어로 말을 걸어오는 잭-오-랜턴(호박등잔)의 행렬이었다... 그 언어가 외국어인지, 아니면 이 세계 바깥의 어떤 다른 존재의 것인지는 그웬으로서도 알 수가 없었다. 그녀는 빨리 이 빌어먹을 꿈에서 깨고 싶을 뿐이었다. 그녀는 나오지 않는 목소리를 짜내어 실제로는 거기에 있을 리가 없는 하늘을 향해 죽어라 외쳐댔다.

하지만 그녀가 뭐라고 외쳤는지는 그녀 자신도 알 수 없었다.

그저,

외치고,

외치고,

또 외쳤을 뿐이었다...





THE END?




-(C) ZAMBONY 2003.0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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